| 은혜로운 노년기를 위하여 딛2:1-5 5월이면 생각이 나는 시가 있습니다. 서정 시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런 제목의 시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탄생과 소멸, 생명과 죽음의 신속함을 가슴 아파하는 심정이 너무 절실하지 않습니까? 모란이 뚝뚝 떨어지는 봄이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면 나는 늙지 않겠지 하던 사람들도 인생은 속절없이 늙는구나 하고 실감합니다. 어떤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은 자기가 늙어서 할미꽃이 된 것을 상상하고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늙으면 슬픕니다. 외롭습니다. 그리고 아픕니다. 영어에서 “당신 나이가 몇이냐”고 물을 때 “How old are you?”라고 합니다. 너는 얼마나 늙었니? 얼마나 중고차가 되었니? 아무 쓸데가 없는 존재가 될 날이 얼마나 남았니? 슬픈 질문입니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린아이도 늙고 있고, 학생도 늙고 있으며, 젊은이도 늙고 있고, 늙은이는 바로 무덤 곁을 걷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연만한 성도님들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어떻게 은혜스러운 노년기를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늙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는 백세가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자기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롬 4: 19~22). 이것보다 믿음을 쉽게 설명할 순 없지요. 바울은 칭의의 믿음, 구원얻은 믿음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사건을 언급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생생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와 갈렙을 보세요. 그들의 나이가 80세가 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지팡이 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친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이가 들면서 믿음이 약해지고 있는가 강해지고 있는가를 아시려면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하여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나이 많은 옛 성도들의 가슴 속에는 이렇게 감사와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연만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이 한참입니다. Life begins Sixty란 말이 있듯이 성경에 보면 깊은 신앙의 인생은 From Eighty, 80부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내 육체는 날마다 후패하나 내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고후 4:16). 60부터, 80부터 신앙의 싱싱하고 젊고 순수한 나이를 다시 세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위대한 분들은 그 믿음이 육신의 나이가 들수록 더 싱싱해 갔다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들의 속사람을 젊게 합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75세가 되었을 때 유명한 말을 했지요. “나는 39세의 생일을 36번째 맞이하였습니다”(39+36=75세).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함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2~15)고 했습니다. 잠언 기자는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백향목은 60년, 80년, 100년쯤 되어야 큰 재목이 됩니다. 오래 될수록 좋은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의 Old boy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으로 늙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늙어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의 일생이란 믿음으로 한번 늙어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소망 가운데 늙어야 합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늙으면서 노욕이 생기고 추하게 됩니까? 이 세상의 것을 내가 더 누리지 못한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가 가지는 복스러운 소망은 이런 잘못된 소유욕, 지배욕, 명예욕을 능히 초월하고 승화시키고도 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의 소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혼의 닻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앞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보좌 우편에 들어가셨습니다(히 6:20). 이것은 변치 못할 사실입니다. 우리 영혼의 닻이 그리로 들어갔으므로 우리도 반드시 그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히 11:9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아파트 평수나 부동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옛 성도들과 함께 동일한 유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 때는 외국에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외국 여행은 한 달이 한계입니다. 외국 생활도 20~30년이 한계입니다. 그러면 다 돌아오고 싶어집니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집니다. 장막이라고 하는 임시 거처에 사는 것처럼 세상에 살면 훨씬 자유롭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천국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세상 환란과 오랜 시련 가운데서도 넉넉히 인내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제일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했습니다. 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천당갈 때까지의 세월은 하나님 나라에로 출생하기까지의 임신기간과 같고, 진통기간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소망을 주시고 그 소망으로 인내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 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0:36에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인내가 필요함은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고, 약 5:7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Old lady and gentleman 여러분, 여러분의 지친 몸, 병든 몸이지만 족장 야곱처럼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소망을 품고 더욱더욱 주님을 찬송하십시오. 영생의 나라에로 다시 출생하기 전 마지막 몇 년간을, 소망 가운데 늙으십시오.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이란 번데기를 벗고 신천신지의 나라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사랑 가운데 늙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소망이 우리의 가슴 속에 넘치면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5:5). 그래서 소망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부끄럽지 않게 되고 그 사랑은 방향을 바꾸어 우리 이웃을 사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늙으면서 더 크게 더 많이 우리 이웃과 후손들을 사랑하며 봉사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이 들면서 더욱 많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눅 2장에 나오는 90대의 시므온과 안나를 보세요. 그들은 세상의 일락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모든 연만한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 기도의 그루터기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위대한 선배들은 기도하며 봉사하며 열심히 일하다가 그들의 기운이 다했을 때 주님을 좇던 그 발을 침상에 거두었습니다(창 49:33). 주님의 일에 부지런히 수종들던 그 손을 가슴에 거두었습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그 열조의 길로 그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후진들은 말합니다. “그분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다가 가셨습니다. 부활의 날이란 바로 그 유별난 사랑의 부활이요 해후가 아니겠습니까?” 넷쨰로, 우리는 지혜 속에 늙어야 합니다. 욥 12:12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말에 경험이 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늙은 사람, 나이든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제일 큰 지혜는 절제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헤퍼집니다. 쓸데없는 일에 호사가가 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라고 했습니다. 또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하거나 참견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늙으면서 제일 중요한 지혜는 절제입니다. 절제하면서 잘 늙은 분은 얼마나 아름답고 위엄이 있는지 모릅니다. 정말 백발은 경건한 길에서 얻는 것입니다. 잠 20:29에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했고, 잠 16:31에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절제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은사를 구하며 절제하면서 지혜 속에 늙어갑시다. 늙지 않은 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우리 위해 33세의 젊은 몸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늙지 않는 분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 늙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목도 아프고 다리도 아픕니다”하고 엄살을 부립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장로님이 대답합니다. “목사님, 다 늙기 때문에 생긴 병입니다. 그런 병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생은 한 번 범죄했기 때문에 늙도록 되어 있고 병들고 아프도록 되어 있고 죽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노년기를 위하여 우리 모두 마음 속에 단단히 다짐했으면 합니다. 첫째, 믿음과 감사 가운데서 늙어갑시다. 둘째, 소망과 인내 가운데서 늙어갑시다. 셋째, 사랑과 봉사 가운데서 늙어갑시다. 넷째, 지혜와 절제 가운데서 늙어갑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죽음이 아름답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시는(시 116:15) 하나님이여, 임종의 축복을 주옵소서. 우리의 끝이 처음보다 아름답도록, 우리의 마지막이 시작보다 더 좋도록 고종명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은혜로운 노년을 보내다가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날, 훌쩍 이 세상을 떠나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