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회복자, 노년에 봉양자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
룻1:19-22,4:13-17





하나님의 선물(Ⅶ) 한 5년 전에 미국에서 출판 된 책 하나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 왔습니다. 미래를 연구해서 그 연구결과를 발표해서 교회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연구소가 있는데 이 연구소의 소장이 미국 풀러 신학 교수인 조지 바너입니다. 이 연구소의 소장인 조지 바너는 21세기에는 이런 변화가 예측이 되니 교회들이 그 변화를 빨리 직감해서 대처를 해야 교회가 21세기에 살아 남아서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 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책을 펴냈는데 그 책이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입니다. 개구리는 온도 변화에 둔합니다. 그래서 찬물의 솥 안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결국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에 둔감해서 삶은 채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주변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가 그 상황을 잘 알아서 대처하지 못한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나 죽은 교회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 대한 정보를 97년 예배 갱신 세미나에 참석하려 미국에 들렸을 때 들었습니다. 그 후 일년도 못되어 한국에 출판되었습니다. 교역자들과 자체 세미나를 통해서 읽고 우리 교회 상황에, 앞으로의 한국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을 할 것인가를 토의도 했습니다. 그 책에서 21세기에 교회는 혼합가정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러면 혼합가정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현대는 3C만 넘기면 오래 산다고 합니다. 교통사고(car accident), 암 (cancer),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중성 지방질(cholesterol)입니다.

저는 간혹 운전을 하면서 교통방송을 듣습니다. 어떤 때는 일부러 듣기도 합니다. 특히 전화로 상담하는 내용을 새겨듣는 편입니다. 새겨듣는 이유 중에 한 가지는 너무나 교통사고로 아픔을 당하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작년인가요? 어떤 가정이 변호사에게 상담하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저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못합니다만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30대 초반의 주부이야기입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대방 운전자가 과실로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차가 아닌 빌린 차로 사고를 냈습니다. 아이들도 다쳤는데 도저히 만족할 만한 보상을 못 받을 처지인데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할머니가 키우고 본인은 생계를 위해서 일하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행복했던 가정이 불의의 사고로 긴 어둠에 빠져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가정들을 어떻게 회복을 시켜야합니까?

한 3년 전에 저의 교회 등록한 새 신자가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입니다. 심방을 갔습니다. 가니 왼쪽 팔이 잘라져서 없습니다. 물어 볼까 말까 속으로 수 차례 망설이다가 물어 보았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다시 살리려면 그 분에게는 아픔이지만 좀더 잘 말씀으로 치유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물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말을 듣고 한동안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를 가는데 큰 나무를 싣고 가는 차 뒤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뒤에 실은 나무를 묶었던 줄이 풀리면서 그 큰 통나무가 차 위로 덮쳐서 남편은 그 자리에서 죽고 자기는 한 쪽 팔이 다 잘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참 인간의 앞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자매의 경우 어떻게 치유를 해야합니까? 저는 정말로 신앙 생활을 잘해서 좋은 사람 만나서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볼 때마다 일부로 팔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한 일년 지난 후에 이사를 가면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마음속에는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좋은 사람 만나서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이런 아픔을 가진 자들이 잘 적응을 해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정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함을 아주 절실히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목사합창단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왔습니다. 이번의 일은 독일에서 2년에 한번씩 개신교의 날이라 해서 일주일 정도 각종 신학 세미나와 문화행사 그리고 찬양축제들이 거대하게 열립니다. 특히 이번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남북 지도자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정보를 늦게 알았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그 개회 예배 중에 특송을 몇 곡 불렀다면 북한측도 놀랐을 것입니다. 저렇게 목사들로 구성된 찬양 팀이 있다는 것만도 큰 효과입니다. 그러나 남한측 대표는 한번 넣자고 했으나 북한측은 일정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상부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그들이 거부해서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참 아쉬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 대한 내용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글로 한 번 싣겠습니다.

저는 이번 연주 여행 중에 저의 교회와 크기가 비슷하고 저와 목회 성향도 비슷한 그리고 나이도 비슷한 (저보다 한 살 많습니다.) 목사님과 같은 방을 썼습니다. 그 분은 그 교회에 92년 8월28일 부임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9월 4일입니다. 참 비슷합니다. 그런데 딸한테 전화를 거는데 \'현진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아들은 대학교 일 학년이고 딸은 고2입니다. 그런데 그 딸의 이름이 현진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 우리 딸하고 이름이 같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누가 지었습니까? 하니 자기가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자가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으세요. 그래서 어질 현자에 보배 진입니다. 하니 거참 한자까지 똑같네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저는 제 딸이 잠언 30:31절 이하에 나와 현숙한 여인은 그 값이 진주보다 더하다고 한 그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하니 본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이야기가 많이 진척이 되었지요?

우리는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자기는 이번 여행 중에 이 목사님을 가까이 알게 되어서 참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참 이 목사님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였습니다. 노래도 잘하지만 지난 봄인가요? 그의 아내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목사님 늦게나마 위로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모님 하나님 품으로 돌아 간 것에 대해서 그러니 이 목사님도 알고 계셨네요?\' 그래서 \'제가 듣기는 들었습니다만 언젠가 한번 위로의 인사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늦었습니다.\'

여러분!
이 목사님의 경우엔 어떻게 가정이 회복되어야 할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교회의 성도라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합니까? 교회의 목사의 삶에도 이런 아픔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그런 일들이 안 온다고 장담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교통사고 뿐 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고로 또한 질병으로 배우자 중에 한 분이 일찍 세상을 떠난 가정들을 어떻게 회복을 시켜야합니까? 이 때 이루어지는 가정을 혼합 가정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저쪽은 남편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쪽은 아내가 일찍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 때의 가정을 서로 다른 환경 속에 있던 가정들의 결합이라고 해서 혼합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혼합가정의 문제가 크게 대두가 되는가하면 현시대에 각종 질병과 사고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혼하는 가정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더 이혼의 증가율이 늘었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없이 나도 혼자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시 두 분이 다 절실한 신앙인이라서 예수 안에서 주님 안에서 엄숙히 서약을 한 결혼이라면 어쨌든 가정을 지켜야지요. 하나님께서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나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와 남편이 결혼 할 때 믿음도 없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약도 없이 그냥 좋아서 세상적으로 결혼을 했는데 도저히 같이 살수가 없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예컨대, 성격의 차이, 남편의 폭력, 알코올 중독, 노름 중독, 외도, 아내의 바람기, 도저히 가정에는 관심이 없고 집에 붙어 있지 않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와도 식사를 차려주는 일이 없고 그저 놀러 갔다가 늦게 돌아와서 남편이 손수 저녁을 차려서 드는 이런 아내와는 도저히 살수가 없어서 이혼한 가정들을 교회는 삶의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도록 어떻게 지도와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오늘 하루에 다 말씀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차차 강단에서 다루겠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혼합 가정을 이룰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아픔을 딛고 아주 행복하게 일어선 가정이 나오미와 룻의 삶입니다. 어쩌면 결과론적으로 말을 해서 룻은 오히려 남편을 사별한 것이 더 잘되었습니다. 헤어진 것이 더 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헤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피치 못해서 삶에 아픔이 있었다면 그 아픔에 대해서 내가 잘 대처하기만 하면 더 이전의 삶보다 더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합니까?

회복된 가정은 신앙이 맞아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의 특징 가운데 첫 번째가 신앙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생명과 관련 된 일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입니다. 하나님이 최초에 인간의 마음속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갈등이 없어야 행복합니다. 영혼의 갈등이 있으면 참 행복하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신대 상담학을 가르치는 오성춘 교수께서 몇 년전에 저희 교회 교사 세미나에 와서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처녀들에게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20년은 마음 고생할 생각을 하고 하라고 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불신 남편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데 걸린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청년들에게 꼭 예수 안에서 결혼을 하라고 신신 당부합니다. 이번에 가정 설교 시리즈도 청년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혼합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거나 소개를 받으려면 예수 잘 믿는 분을 소개 하셔야 합니다.

보세요. 나오미의 삶 속에 왜 아픔이 있었습니까? 그 모압 지방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거리, 우상 숭배하는 곳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간 결과 아닙니까? 나중에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20절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왜 실패하였는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알았습니다. 신앙 안에서만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이 이삭 주우러 갔다 와서 말을 할 때 \'애야 너는 다른 밭에 가지말고 보아스의 밭에서만 주우라\'고 한 것입니다. 왜 보아스의 밭에서만 이삭을 주우라고 한 것입니까? 나오미는 알았습니다. 보아스처럼 신앙의 사람을 만나야 이 젊은 과부 남편을 일찍 여읜 이 과부의 삶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정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심령들은 새겨들으시길 바랍니다. 신앙 제일주의로 하고 사람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신앙이 어정쩡하면 미련을 갖지 마시고 돌아서길 바랍니다. 정에 약한 것이 인간이기에 그 정 때문에 넘어집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주저주저 하다간 또 다른 상처를 당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리고 특히 여자의 경우 남자를 만나서 혼합된 가정을 이루시길 원하는 분은 특히 남편이 될 사람의 경우엔 성령 충만한 신앙의 소유자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남편이 리더가 되어야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머리가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에 아주 냉정하게 대처를 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아니해도 전 남편도 신앙이 없어서 아주 맘 고생을 했는데 그런 전철을 두 번 다시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우들도 사람을 소개시킬 때는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소개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조금 있는 것 같아, 한 번 만나봐\' 그렇게 책임 없는 소개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아주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위에 필요한 것은 서로 위치를 잘 도울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동물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받으면 예뻐집니다. 처녀들이나 총각들이나 누구든지 인간은 사랑을 받고 주는 상대를 만나면 삶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처녀들이 얼굴이 밝으면 \'너 사랑하는 사람 생겼구나?\' 하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만 표정이 진실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랑을 어떻게 구별을 합니까? 우선 만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은 평강의 아버지입니다. 왠지 만나고 나면 평안하지 못하다 조금이라도 거북스럽다. 사람이 진실치 못한 감이 있다. 그러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함이 들 때까지 철저히 점검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만나고 돌아오면 잠을 잘 잘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구별하려면 고린도전서에서 가르치는 구별법을 쓰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부드럽지 아니 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 앞에서는 다 부끄러워집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만나면 이것저것 떠벌리는 자 그는 가짜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무 떠 벌이지 마세요 꼭 속이 빈 것 같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것은 큰 소리가 압니다. 큰북이 심금을 울리지 아니합니다. 작은 피리가 심금을 적십니다. 그래서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입니다. 예절이 바른 것입니다. 좋아한다고 상대방의 의견에 관계없이 집으로 밤늦게 전화를 하는 행위, 술에 취해 갖고 \'당신이 아니면 나 못살아요, 나를 받아 주세요\' 하는 행위, 일터에 말없이 찾아오는 행위는 사랑이 아닙니다. 밤늦게 상대방의 집 앞에 기다리면서 만납시다 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자는 반드시 결혼을 하면 아내 남편 괴롭힙니다. 목적을 위해서만 사랑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심은 목적이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앞에 예절을 지키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기다림의 예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어떻게 예쁜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여동생이 소개해서 한 번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진작 마음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인정상 한 번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첫눈에 반했는지 자꾸 따라 다닙니다. \'목숨을 바쳐서 사랑을 하겠습니다\' 하면서 집 앞에서 기다립니다. 자꾸 만나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밤늦게 집으로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는 것입니다. 이 아가씨는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입니다. \'웬 남자가 밤늦게 전화냐?\' 하고 이게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되면 갈수록 정은 점점 더 떨어집니다. 아주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습니다. 사실 이런 분하고 결혼을 하면 사랑 받기 어렵습니다.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에 아주 다른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그것의 그의 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절 없는 자의 구애에 속지 마십시오.

특히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혼합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말로 내가 지금 만나는 자가 나를, 나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을 하는가? 그것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혼자 된 분은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늘 사탄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나타납니다.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본색은 약탈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잘못 만나서 결합을 하게 되면 돈을 다 빼앗기고 버림을 당합니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압니다. 그래서 사탄처럼 살랑 살랑 거리면서 돈을 야금야금 앗아갑니다. 그리고는 다 먹으면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노인들뿐만 아니라 중년들의 재결합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자료로 다 날리고 퇴직금 다 날리고 자녀들이 준 용돈까지도 다 날렸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여유가 있는 분은 특히 참 사랑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괜히 뭐 좀 있다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자칫하면 다 날려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참 사랑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보아스를 보시기 바랍니다. 홀로된 젊은 과부 룻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말없는 자상한 배려입니다. 그 밭의 소년들에게 이삭을 많이 떨어 뜨리라고 하지 아니합니까? 자기가 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룻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정말로 말없는 자상한 배려가 있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부목사 시절에 교구에 이혼을 한 젊은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딸을 위해서 집을 한 채 주었습니다. 그 딸은 새로 생활을 합니다. 참 열심히 살아 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교구를 맡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은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철저히 뉘우쳤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면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3년 정도의 아픔이 지난 후에 한 남성을 사귀었습니다. 그 남성은 신사동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는 분입니다. 정말 신사동 멋쟁이들이 가는 양복점입니다. 이 사람은 이 분을 만나서 잃었던 신앙을 다시 회복을 했습니다. 일터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둘이 만나는 눈빛만 봐도 진심으로 서로 아껴주는 모습을 봅니다. 특히 변화는 그 집사님은 그 분 앞에만 서면 아주 얌전해지고 부끄러워집니다. 정말로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난 작아지는가 입니다. 그렇게 한 육개월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분이 여자에 대한 자상한 배려가 얼마나 많은지 이 여 집사님이 목사님 말씀에 큰 은혜를 받는 것을 보고 제게 감사의 표현을 여러 번 했습니다. 저는 그 후 금성교회로 왔습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재결합을 해서 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합가정의 결합은 특히 내가 저분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만나면서도 이 분을 통해서 내가 무슨 도움을 받을까 그렇게 되면 참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일단 아픔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잘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이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소명정도로 느껴져야 합니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나의 이런 부분을 충당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앞서면 혼합 가정의 앞날을 장담 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핏줄의 두 식구가 한 지붕 안에서 살려면 바로 내가 저들에게 필요한 존재인가에 대한 사명감을 느낄 수가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법을 지키면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사랑한다고 느낀 시어머니가 룻에게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밤에 타작한 후에 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분이 기분이 좋아서 밭으로 돌아오면 너는 그 발치 밑에 누워 있으라. 그러면 보아스가 \'놀라서 누구냐?\' 하고 물으면 \'룻이라\' 이야기를 하고 \'나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 주소서\' 그리하면 보아스가 일을 진행할 것이다.\' 그래서 룻이 그렇게 진행을 합니다. 그 달밤에 보아스의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중년의 외로움입니다. 그 룻이 그 밤에 얼마나 이뻤을까요? 더구나 술 한잔 한 상태이니(팔레스틴은 물사정이 나빠서 포도주를 먹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정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아니했습니다. 달밤에 조용히 아주 소곤소곤 사랑의 밀어를 나누었습니다. 해도 잠든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것처럼 소곤대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와 룻은 참 사랑을 하기에 그 밤을 아주 아름답게 지나갔습니다. 마치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단편 소설처럼...

여기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정욕적으로 만남을 이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룻처럼 과부가 무슨 처녀성이 중요한가 해서 그냥 맘에 든다고 보아스도 외롭다고 그냥 정욕에 치우쳐 만남을 가지지 아니했습니다. 혼합가정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순결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행동에 정결함을 보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망가진 몸이라고 해서, 육체의 순결이 뭐가 중요한가 해서 함부로 굴렸다가는 아름답게 회복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정욕을 채우기 위한 만남으로 전락될 우려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육신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정욕의 흐름에 몸은 망가지고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 같은 아픔을 갈등을 체험 할 뿐입니다.

오늘 보아스가 룻을 언제 품에 안았습니까? 그 당시 사회의 법적인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을 한 후에 결혼식을 올린 후입니다. 바로 그런 질서와 순결을 지킨 이 둘의 결합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셔서 삶의 회복되는 기쁨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재결합을 해서 다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심으로 믿음의 일치를 이루면서 참 사랑 안에서 \'나는 정말 저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이다\' 라고 느끼고 사랑을 하면서 정식으로 법안에서 순결을 지키면서 합법적인 결합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에게 생명의 회복자인 아들을 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실패해서 아픔이 있었던 그 모든 것을 회복하는 열매들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나오미가 룻의 삶의 회복을 위해서 보아스를 만날 때 환영하고 말없이 떠벌이지 않고 은밀히 기도로 도와주었던 것처럼 그런 관심을 보일 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회복되기 위해서 만나는 자를 이상하게 보고 수근거리면 그들이 어찌 정착을 하겠습니까? 괜히 시기하거나 색안경으로 보지 마시고 \'누구누구 만난데\' 하고 수근거리지 마시고 진심으로 나오미처럼 조용히 기도로 지켜보는 관심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금성교회 베들레헴의 떡집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금성교회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삶이 회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들도 행복을 같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룻과 보아스가 결합을 할 때 마음껏 축복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4장 11-12절의 축복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잘 만났군요 정말로 인생의 후반부를 잘 가꾸셔서 아름다운 역전골을 많이 넣어서 참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빌어줄 수가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