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레19:32.딤전5:1-4/ 2004-05-14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레19:32, 딤전5:1-4





파란 하늘을 날던 비행기 한 대가 갑자기 날개에서 짙은 연기를 뿜으며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조종사, 사업가, 정치가, 노인, 보이스카웃 소년 이렇게 모두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불까지 붙은 채 계속 아래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조종사가 승객들에게 말합니다. “승객 여러분, 이 비행기는 엔진 고장으로 지금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준비된 낙하산은 네 개 밖에 없습니다. 저는 처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러면서 낙하산 한 개를 짊어지고는 뛰어내려버렸습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남아 있던 4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사업가가 ‘자신은 인류를 위해서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 낙하산 하나를 짊어지고 탈출했습니다. 곧 이어서 정치가도 ‘자신은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일해야 할 사람이기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서는 낙하산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비행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이제 비행기 안에는 노인과 보이스카웃 소년 둘이 남았는데, 낙하산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소년에게 “얘 꼬마야! 나는 이제 살만큼 다 살았으니,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한 네가 마지막 남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거라.”라고 양보를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던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아직 낙하산 두 개가 남았어요. 아까 정치가 아저씨가 제 보이스카웃 배낭을 메고 뛰어내리셨거든요.”




물론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인들의 어깨가 좁아지는 것처럼 갈수록 노인들의 위치가 좁아져가는 시대가 오늘 우리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이 시대의 모든 어버이들을 존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게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오늘 구약에서 읽은 말씀에 보면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인을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정으로 노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 아버지 어머니만을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을 내 부모님처럼 섬기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게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왜 모든 어른들이 공경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연로하신 분들은 오늘 우리 시대를 있게 만든 주역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오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부모님에 대해서 좋지 않는 기억이나 감정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불행한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도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흘러오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어버이의 은덕을 10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어머니 배에서 10달을 품고 지켜주는 은혜요, 둘째는 해산날에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요, 셋째는 자식을 낳고서 근심을 잊는 은혜요, 넷째는 쓴 것은 당신이 삼키고 단 것은 뱉아 먹이신 은혜요, 다섯째는 진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시는 은혜요, 여섯째는 젖을 먹여 기르시는 은혜요, 일곱째는 손발이 다 닳도록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은혜요, 여덟째는 먼 길 떠났을 때 걱정하는 은혜요, 아홉째는 자식의 장래를 위해 고생을 참으시는 은혜요, 열째는 끝까지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입니다.

이 열 가지 은덕 가운데 우리가 느끼지 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모님들은 이런 사랑으로 자식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 마디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쪽 눈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냐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안구를 기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네게 나의 장님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여러분, 이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느 어머니인들 이런 사랑이 없겠습니까? 그게 자식을 향한 본능적인 사랑인걸요. 두 눈을 다 주고 싶은 게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지만 한 쪽 눈만을 주는 것은 장님이 되어버린 몸뚱이가 자식에게 짐이 될 것 같은 어머니의 넓고 큰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두 눈을 다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만 그렇습니까? 이 땅에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모든 어르신들이 후손들에게 좀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생활을 할 때에는 후손들에게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독립 운동을 펼쳤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전장에서 죽어가야 했습니까?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고 노래 부르며, 동이 트기 전부터 얼굴에 땀을 흘리며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그런 우리 조상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라 상황이 조금 어렵다고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만큼이나마 살 수 있게 된 것이 다 누구의 덕이겠습니까? 지금은 얼굴에 초라한 주름살만이 남아 있고 머리는 백발이 되어버린 그분들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젊음의 때를 그렇게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과 후손들을 위해서 고생하셨던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풍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르신들은 우리의 존경과 섬김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두 번째로 노인은 지혜의 보고이기 때문에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고려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고려장이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고구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은 땅 속 광에다 두었다가 죽으면 그곳에 묻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 고려장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 온 사신이 세 가지 문제를 내면서 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많은 조공을 바쳐야 한다고 협박했습니다. 세 가지 문제라는 것은

1> 호두알만한 구슬 속에 구불구불하게 구멍을 뚫어놓고는 가는 명주실로 그 구멍에 꿰어서 반대편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똑바로 뚫려 있는 구멍이 아니라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되어 있는 구멍에 가는 명주실을 꿰어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2> 생김새와 크기가 똑같은 말 두 마리를 보여주면서 한 마리는 어미이고 한 마리는 새끼인데, 말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어느 것이 어미이고 어느 것이 새끼인지 구별해내라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이빨을 보면 어미와 새끼를 금방 구별해 낼 텐데, 손을 대지 말라고 하니 구별해 낼 방법이 없어보였습니다.

3> 위 아래를 똑같이 다듬은 나무 하나를 보여주면서 위 아래를 구별하여 뿌리를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궁중에서 학식 높은 학자들이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도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궁중에 꽤나 높은 벼슬을 하고 있던 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효성이 지극한지라 늙으신 어머니를 고려장시킬 수가 없어서 남몰래 산 속에 움막을 지어 놓고 매일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움막에 있던 늙으신 어머니가 음식을 갖고 찾아온 아들의 얼굴을 보니 평소와는 달리 수심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캐묻자 아들은 사실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어머니는 별 문제도 아니라면서 아들에게 해답을 알려주었습니다.

다음날 조정에 들어간 그 신하는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먼저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가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 구슬을 갖다 놓고는 개미 허리에다 가는 명주실을 매고서 구멍 한쪽에다 집어넣었습니다. 그랬더니 허리에 명주실을 맨 개미는 반대 구멍 쪽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두 번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신하는 말이 좋아하는 풀을 한 아름 가져다가 두 마리의 말 앞에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마리는 코를 벌름거리며 풀을 먹는데, 다른 한 마리는 입맛만 다시고 기다리고 있다가 한 마리가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야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먹는 놈이 새끼이고, 나중에 먹는 놈이 어미였던 것입니다. 어미는 본능적으로 새끼부터 먼저 먹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나무를 물 위에 띄워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쪽이 다른 쪽에 비해서 더 무거워서 비스듬하게 기울어 가라앉은 것입니다. 먼저 가라앉은 쪽이 뿌리였습니다. 뿌리는 가지보다 무겁기 때문에 먼저 가라앉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문제를 모두 풀게 되었고, 중국 사신은 그 신하의 지혜에 감탄을 하고서 그냥 돌아갔습니다. 임금님은 그 신하를 칭찬하면서 ‘어떻게 이런 것을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는 사실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데 고려장하여 산 속에 버려야 하지만, 아들된 도리로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움막을 짓고 지금까지 어머님께 음식을 갖다 주면서 보살펴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노인의 지혜가 나라를 구했음을 알고서 고려장의 풍속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고려장을 없앤 이야기는 노인의 지혜가 나라를 구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노인의 지혜를 무시하다가 나라가 큰 어려움에 빠진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이야기입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솔로몬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이 북쪽지역인 세겜을 방문합니다. 왕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북쪽 지역 사람들은 죽은 솔로몬 왕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피신 가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 르호보암 왕과 협상을 하게 됩니다. “당신의 아버지 솔로몬이 나라에 큰 일들을 많이 벌려놓고 우리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던 것 당신도 잘 알지 않습니까? 또 세금은 얼마나 많이 거둬갔습니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버겁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새로이 왕이 된 당신은 우리의 이 힘든 것들을 하감하셔서 고역을 줄여주시고 세금도 감면해 주시면 우리가 왕인 당신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3일 동안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말하고서, 먼저 아버지 솔로몬 때에 나라를 위해서 일했던 연로한 신하들을 불러놓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연로한 신하들은 한결같이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그들이 지금까지 너무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풀어주면 그들이 왕을 위해서 충성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이 이번에는 젊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습니다. 젊은 신하들은 ‘이 백성들이 한가해서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이니 더 강압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금도 더 많이 물리고, 강제 노역도 더 많이 시켜서 정신 못 차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은 노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북쪽 지역 사람들이 일제히 르호보암 왕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북쪽 지역으로 초도순시를 나갔던 르호보암 왕은 도망치듯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고, 북쪽 지역 10개 지파는 르호보암을 떠나 여로보암을 자기들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과 솔로몬, 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왕조는 결국 두 지파만 남게 되었고, 반역을 일으킨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따라서 북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해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르호보암 왕이 연로한 신하들의 지혜를 받아들였다면 나라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젊은이들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시대적인 흐름이기에 그것에 대해서 나쁘게 평가할 일은 아닙니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시대 흐름의 중심에 서 있는 386세대로 지칭되는 젊은이들이 나이드신 분들의 충고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젊은이들에게는 지식이 있습니다. 예전 먹고살기 힘들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들에 비하면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시시각각 변하는 세대 속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그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젊은이들의 지식이 교과서라면 노인들의 지혜는 교과서를 이해하도록 돕는 참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면 그 지식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연로하신 분들은 지식은 많지 않아도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지혜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지식과 노인들의 지혜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 빨리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개미’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삶의 지혜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노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단지 잔소리라고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인생을 살아온 삶의 지혜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지식은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연구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내 머리에 넣을 수 있는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식이 없어 망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머리 속에 저장된 그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나라는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중국이 세계적으로 무서운 나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그렇게 무서운 나라도 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나 국제대회가 열리면 중국에서는 반드시 연로한 학자와 젊은 신세대 학자가 항상 같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젊은이의 감각과 연로하신 분들의 지혜를 함께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의 지식만을 중시하지 않고, 그렇다고 젊은이들의 지식을 부정하지도 않고, 거기에 노인의 지혜가 함께 어우러져 내일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무서운 힘을 가진 나라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 지혜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고, 그 지혜를 가진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도 언젠가 다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인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로 태어나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면 누구나가 노인이 되어갑니다. 지금 젊다고 말하는 분들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으면 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보험을 들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의 본문 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보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젊은이들에게 효를 행해야 할 대상이 있으면 효를 다하도록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섬겨야 할 부모님이나 조부모를 다른 사람에게 짐 지워서는 안 됩니다.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모습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내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섬기는 모습을 통해서 내 자녀들이 효를 배우도록 하라는 말씀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효의 종교입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님이나 조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를 다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죽은 후에는 아무리 값비싼 것으로 제사상을 차려놓는다 하더라도 그게 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상을 차릴 돈이면 살아계실 때에 고기 한 근 더 사 드리고, 부모님을 한 번 더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을 자녀들이 배워서 본받도록 본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금 젊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우리가 늙을 때에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고 섬김과 존경을 받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어르신들을 섬기고 존경하는 모습을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내 부모님을 다른 사람에게 짐 지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섬기며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멀리 계셔서 섬기기 힘든 분들은 교회의 어른들과 주변에 우리 부모님과 같은 분들을 내 부모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내 부모님과 이웃의 어른들을 섬기는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우리가 늙었을 때 우리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을 인용한 ‘며느리전서 13장’을 소개해 드립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애교 있는 말로 안부전화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세상지식과 지혜로 교회의 집사가 됐을지라도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재물로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려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은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할지라도 참고, 시어머니가 좀 심한 말을 할지라도 온유하며, 남편이 시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려도 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시어머니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며 시어머니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합니다. 사랑은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와도 참으며, 가사가 힘겨울지라도 끝까지 견딥니다.”

이런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우리의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르신들을 섬김으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