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과 수신인들(빌 1:1)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바울\"(파울로스)는 라틴어 고유 명사, 파울루스(Paulus)에서 유래한 헬라어 음역이다. 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사울\' Saul이었다. 그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행 9:11; 행 21:39; 행 22:3) 유대인 양친에게서 태어났다(빌 3:5). 그의 부친은 바리새인이었으며(행 23:6) 로마의 시민이었다. 따라서 그 자신도 출생 시부터 로마 시민이 되었다(행 22:28; 행 16:37). 그는 도덕적, 지성적 양면에서 모두 탁월한 은사들을 부여 받았었다. 그는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다. 바울은 청년기 초에 예루살렘으로 내려와서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에게서 유대인의 신학을 철저히 교수 받았다(행 22:3; 행 5:34). 처음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극히 흉포하게 공격하고 핍박했으나 마침내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한 기적에 의해 갑작스럽게 그리스도께로 개종하였으며 지칠 줄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그리스도의 전파자요 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자가 되었다. 그가 기독교의 동료들로부터 불후의 존경을 받을 자격을 확립한 것은 비단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사역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의 불멸의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사실, 즉 그가 자기의 하늘의 주님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살아있는 믿음\"을 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과, 모세 율법에 종노릇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 창시자가 되는 영적 자유와 전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지극히 명료하게 가르쳤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 그의 열심과 교리로 그는 스스로 유대인들의 불구대천적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57년에[또는 보다 일반적인 의견에 따르면 58년] 그를 투옥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그는 처음에 팔레스틴의 가이사랴로 호송되었다가 2년 후에 로마로 보내졌으며 거기에서(64년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러나 유세비우스에게서 유래한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이 영어 생활로부터 풀려나 스페인과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에 2차로 투옥되어 네로가 아직 황제로 재위하였던 67년 또는 68년에 로마에서 마침내 사형을 당했다 한다.(참조:바이블렉스2000) 이 서신에서는 바울이 다른 여러 서신에서 쓰던 자기의 사도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창설했고 그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 발신인으로 되어 있는 디모데가 사도가 아닌 것을 고려한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디모데와 같은 위치에 세우는 겸손도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사도라 하는 대신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크리스투, 속격 남성 단수). 크리스토스는 \'기름 붓다\'를 뜻하는 크리오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람어 메쉬하, 히브리어 마쉬아흐에 해당하며, 그 의미는 어떤 직책을 위해 의식적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한다. 메쉬하의 헬라어 음역은 멧시아스인데 시그마(-s)를 붙여 격변화된 것이다. 멧시아스란 단어는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 1:41과4:25에만 두번 나오며, 다른 곳에서는 모두 크리스토스로 나온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이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처음에 하나님 앞과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직능을 묘사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이 용법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종들로, 기름부움을 받은 왕, 제사장, 선지자의 역사, 오실 평화의 왕에 대한 예언자의 약속과 찬양, 시온산에서 적절한 신탁의 말씀과 찬송으로 드린 축하식, 그리고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의 고상한 소망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출현과 사역과 부활에서 절정에 달하고 성취되었다고 이해하였다. (참조: 바이블렉스2000)
\"예수\"(예수, 속격 남성 단수). 예수스는 구약에 나오는 예수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인데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한 다음, 격변화를 위해 시그마(s)를 붙인 것이다.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수아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름은 여호와라는 신성한 이름을 포함한 오래된 이름이며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DNTT). 모울(H.C.G. Moule)은 본절에서 \"그리스도\"가 앞에 나온 이유를 구주의 메시야적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넷슬(Nestle) 헬라어 본문에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되어 있고, 스테펜 헬라어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되어 있다. 많은 특별한 의미들은 매우 초기 고백에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2:36)고 하였다. 구원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여 메시야를 통해서만 받는다. 구원은 온 인류에게 약속되고 이스라엘 백성를 통하여 그를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참조, M. Barth).(참조:바이블렉스2000).
\"종\"(둘로이, 남성 복수). 둘로스는 데오(묶다)에서, 아니면 델로(올가미)에 걸다, 생포하다)에서 유래했으며(참조: Vanicek p.322), \'노예, 종\'을 의미한다. 둘로스에는 자기 자신이 자율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둘로스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내맡긴 자로서, 자기 자신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사람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노예의 삶은 집안일이나 공무에서 노동과 봉사가 강요되는 삶이었다. 70인역본에서 둘로스 어군은 대부분 히브리어 어근 아바드와 그 파생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 관계를 통해서 둘로스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둘로스는 천하고 낮는 사회적 지위와 전적으로 주인의 지배하에 있는 노예 또는 노예상태, 왕에 대한 신하의 관계로서의 종, 하나님에 대한 그의 백성의 종속과 섬김의 관계로서의 종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선민들에게 있어서 옳은 유일한 것은 오로지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이다(삿 10:16; 시 2:11 등). 이런 이유로 종이 모세(수 14:7), 여호수아(삿 2:8), 아브라함(시 106:42), 다윗(시 89:3), 그리고 야곱(이스라엘을 대표함,사48:20)과 같은 유명한 인물들에게 사용될 때, 명예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종들은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에서도 이 단어는 70인 역본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신약시대에는 노예나 노예상태에 있는 자들에 대한 지위와 대우가 달라지고 좋아지며, 어쨌든 종들은 모든 신자들과 함께 사랑의 일반법에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이 법이 일단 적용되면 결국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노예제도의 종말을 가져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둘로스 이에수 크리스투(예수 그리스도의 종)라는 문구를 자신의 칭호로 사용할 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속(redemption)으로 해석하는 것에 의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 문구는 먼저 이 문구를 사용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주장(claim)에 복종하는 것을 암시하고 따라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연합하는 것을 암시한다. 바울의 목적은 교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지정받은 자리에서 그의 직무를 이행하는 자로서 교회의 덕을 세우고자 한다. 그렇지만 모든 곳에서 이 문구가 강조하는 바는 단순히 예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고백 뿐만 아니라 이 문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주인 자신의 권세를 지닌 특별한 직분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 권위는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위임에 의해 일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주장을 나타내고, 오로지 그리스도에게만 전심전력해야 하며, 당연히 그의 둘로이로 불리운다. (참조: 바이블렉스2000)
\"디모데\"(디모데오스)는 \'하나님을 종경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바울의 \"사랑하는 아들\"이며(고전 4:17; 딤전 1:2-18; 딤후 1:2), \"복음의 동료 일꾼\"이다(살전 3:2).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신실한 유대인이다(행 16:1, 유니게, 딤후 1:5; 딤후 3:14). 디모데는 루스드라 혹은 더베에 살았으며,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기간 중 그 곳을 방문하였을 때 개종하였다(A.D. 48년경).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시 이 청년을 그의 비서 겸 조력자로 삼기를 원했다(행 16:1-4). 그는 빌립보 교회를 세울 때(행 16:1,13: 행 17:14) 바울과 함께 있었다. 그는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빌레몬서에서도 바울과 공동발신인으로 되어있다. 그는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쓸 때는 고린도에서, 고린도 후서를 쓸 때는 마게도니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다. 그가 공동 발신인이지만 공동 저자가 아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같이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에 관한 문제를 토의했다. 그리고 바울이 저자로서 이 편지를 썼다.(참조:바이블렉스200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엔 크리스토 예수)와\"빌립보에 사는\"라는 말은 두 영역을 지적한다. \"빌립보\"(필립포이스)는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이 사는 지역이며, 지구상의 주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들의 영적 영역이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과 우리를 포함한 전 그리스도인들의 활동과 관계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다. 빌립보는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대 동서 에그나티아 대로에 있는 동부 마게도냐의 한 도시이다. 팡게아 산 능선의 돌출부에 건설되었다. 빌립보의 옛 이름은 \'그레네데스\'였다. B.C. 358년에 마게도냐 왕 빌립이 크레네데스를 정복하여 요새를 만들고 자기 이름을 따라 빌립보라 이름을 붙였다. 마게도냐가 B.C. 168년 로마에게 정복되었을 때 빌립보는 4 부분으로 분할된 영토 가운데 첫 번째에 포함되어 있었다. B.C. 42년 빌립보 아래의 평원에서 옥타비누스와 안토니의 병력이 로마 공화정의 병력을 패배시켰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이 도시에 특별한 시민권 특전이 주어졌고 중동에서 작은 로마로 포고되었다. 빌립보 주민들은 항상 로마 시민으로서 특권을 자랑으로 여겼다(행 16:21). 빌립보를 \"지경의 첫 성\"(행 16:11)으로 묘사한 것은 아마도 \"마게도냐 사람\"(행 16:9)인 기자 누가의 열광적인 호평 때문일 것이다. 이 성에 대한 기자의 자부심과 그 지리에 익숙함, 그리고 생동감 있는 일인칭 서술(행 16:10-17)등 이 모든 점은 누가가 빌립보와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 시대에 빌립보에 살던 유대인 식민자들은 회당을 가질 만한 능력이 없었으며, 강기스데스(Gangites)의 강둑의 울을 두른 야외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 곳은 이 도시의 인구가 조밀한 언덕 지역에서 떨어져 한적하고 조용했을 뿐만 아니라, 레위법의 정결의식도 행할 수 있었다(참조: HBD; ISBE)(참조: 바이블렉스2000). 빌립보는 유럽대륙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을 받은 첫번째 도시였다. 바울이 처음 빌립보에 전도하기는 주후 52년 경이었다. 마게도냐 사람의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소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배타고 유럽의 네압볼리에 상륙하여 빌립보로 갔다(행 16장). 바울의 빌립보 전도에는 자주 장사 루디아, 귀신들린 여종, 로마의 간수 등 세 사람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그때 세상의 대표적인 사람들로, 루디아는 값진 물감을 파는 호상인 아시아 부인, 여종은 도구에 불과하는 헬라 여인, 로마 간수는 로마 시민으로 중류층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서 세 나라를 대표하는 세 계층의 사람들을 본다. 기독교가 국적, 계급을 초월했음을 보인다. 바울은 핍박과 불법 감금에서 놓여 빌립보를 떠나고, 빌립보 교회는 그 핍박을 물려 받았다(빌 1:7; 빌 1:28-30). 같은 고난 중에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사이에는 사랑이 두터워졌다. 바울은 자기 손으로 일해 자급전도에 힘썼으나 빌립보 교회만은 예외였다. 바울이 거기를 떠나 데살로니가에 이르자 빌립보 교회는 쓸 것을 \"한 번, 두 번\" 보냈다(빌 4:16). 그가 고린도에 간 후에도 빌립보 교회는 그를 잊지 않고, 그의 \"부족한 것을 보충했다\"(고후 11:9). 그는 그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빌4:1)이라 하여 어떤 교회보다 각별한 사랑을 표시했다(참조: W.Barclay).
\"성도\"(하기오이스, 남성 복수). 옛 헬라어 하기오스는 존경의 의미에서든 반감의 의미에서든 \'두려움의 대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기(taboo)보다는 예배할 가치가 있는 거룩한 것을 더 강하게 시사한다. 그 후에 \'사당\'(shrine; Herodotus에서), \'사람\'(Aristoph)에 대해 사용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에 이 단어는 \'신들\'이나 \'신들을 묘사하는 수식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하기오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형용사 카도쉬는 \'분리\'나 \'구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따라서 카도쉬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 또는 신적 의식이나 제의 행위에 의해 거룩한 영역에 속하게된 것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거룩한 것들은 도덕적 순결보다 범속한 것으로부터 분리, 곧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보통 사용으로부터 분리하여 놓거나 따로 떼어 놓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말은 모든 것, 특히 악한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절대적 분리성을 표현한다(사17:7).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분리, 구별하여 자기의 소유물로 삼았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레20:26; 신7:6; 14:2; 26:19). 예배의식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 예배를 위해 따로 떼어(분리, 구별)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영역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생제사의 여러 부분(레6:16; 7:6), 성전과 그 구성요소(시65:4; 레6:16 등), 제사장(레21:6,8), 레위인(대하35:3), 절기, 안식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같은 맥락에서 \'예배하기 위해 모인 회중\', \'이스라엘 백성\', 때때로 \'천사들\'을 \"성도들\"이라고 부른다(출15:11; 출19:6; 신7:6; 시16:3; 시34:9; 시89:5,7; 단7장; 에녹1:9; 19:1,4-5; 유딧31:14). 그러므로 \'거룩한 것\'이라는 개념은 윤리 이전의 개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윤리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출31:13; 시편과 선지서).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을 통과하면서 \'거룩한, 신성한, 성별된, 봉헌된, 순결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본절에서 복수가 사용되어 \'거룩한 자들, 성도(들)\'를 의미한다. 바울은 여기서 구약에서 \'성도\'라 부른 동일한 명칭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교 출신의 수신자들에게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을 위해, 천사들을 위해 전에 예비한 특권을 수여하고 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은 성도이며, 성도는 순결, 성결해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성결은 거룩한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 성도의 의무는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예배)는 생활이다. 하나님 자신은 최고의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시다. 바울에 따르면, 이방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will)에 달려있다(살전4:3). 그러나 이방인들이 실제로 거룩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바울은 거룩함(성화)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달성된다는 것을 부언한다(고전1:2,30; 고전6:11). 그리스도인들은 이와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성도로 구별되고, 성화되고, 마침내 그 완성에 이르게 된다. 에베소서는 전부가 성화의 근거, 방법, 범위, 목적에 대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참조, M. Barth).(참조: 바이블렉스2000)
\"감독들\"(에피스코포이스, 남성 복수). 에피스코스는 일반 헬라어에서 \'감독자 overseer, 감시인 watcher\'을 의미하며, \'보호자protector, 후원자patron\',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은 감시, 감독과 관련있는 여러가지 직무(분)에 대해 사용되게 되었다. 종교적인 용법에서 신들은 에피스코포스이다. 이 단어는 공직의 명칭으로서 국가에 책임있는 관리 감독하는 공직자,사법기능을 지닌 관리, 여러 분야의 보호자, 감독자, 감시인, 정찰병에 대해 사용되었다. 70인 역본에서 에피스코포스는 분명하게 지칭된 직책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감독, 십장\'(overseer), 특정한 경우에 (삿 9:28; 민 31:14) 권세의 지위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 관리들, 국고 감독자들(대하 34:12,17), 제사장과 레위인들(느 11:9,14,22), 성전의 관리들(왕하 11:l8), 성전 직무(분)(민 4:16)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필로는 \'영혼을 아는 자\'에 대해, 요세푸스는 \'도덕의 수호자\'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신약성경에서 에피스코포스는 5회 나오며, 벧전 2:25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른 구절에서는 기독교 공동체 내의 기능이나 직무를 가진 개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행 20:28; 빌 1:1; 딤전 3:2; 딛 1:7). 후자의 경우에 에피스코포스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에피스코포스는 순회하는 카리스마적인 복음의 전도자, 사도, 선지자에 대하여 결코 사용하지 않고 정착한 회중, 곧 특정한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신앙 생활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목자적인 감독에 대한 필요는 히 l2:15에도 분명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원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워지는 의무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감독은 특별한 직분의 과제가 되었다. 이 전환은 행 20:28에서 보게 된다. 이 구절에서 에베소 장로들(프레스뷔테로이)에게 행한 바울의 연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처음에는 프레스뷔테로이와 에피스코포이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여기에서, ① 모든 프레스뷔테로이는 예외없이 에피스코포이로 불리워진다. 그들은 신분상으로는 장로들이며, 책무상으로는 감독들이다. ② 그들의 책무는 양들을 돌보는 일이다(참조: 벧전 2:25; 벧전 5:2이하). ③ 한 교회에는 여러 명의 에피스코포이가 있으며. 그들 중에 아무도 상위권이 없다. ④ 그들의 감독에 대한 소명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것이 선택이나(참조: 행 1:21이하; 행 6:3이하) 사도에 의한 임명을 배제하지는 않는다(행 14:23). 그렇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그들의 감독직의 수임과 권위의 기초가 되는 성령의 역사(役事)이다. ⑤ 문맥에 따르면, 그들의 기능은 공동체의 존재가 오로지 달려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기초하여 회중을 세심하게 감시하고 염려하는 감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참조: 바이블렉스2000).
\"집사들\"(디아코노이스, 남성 복수). 디아코노스는 고전 헬라어에서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 종, (식사) 시중드는 사람\' 후에 제의적 식사와 관련해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비종교적 세계에서 디아코노스는 사자, 청지기, 빵굽는 사람, 조타수, 그리고 심지어 정치가들 같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된 것 같다. 그렇지만 요세푸스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디아코노스라고 부르며, 에픽테투스도 견유학파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다. 70인역본에서 디아코노스는 오로지 관정의 노예(에 1:10; 에 2:2; 에 6:1, 에 6:3, 에 6:5)와 고문하는 사람(마카베오사서 9:17)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디아코노스는 \'식사의 시중을 드는 자\'(요 2:5),\'주인의 종(마 22:13; 요 12:26 등), 비유적 의미로 선하든 악하든 \'영적 능력의 종이나 일군\'(엡 3:7; 골 1:2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디아코노스이며, 그리스도인 직분자들은 특별히 그러하다. 본문에서 디아코노스는 교회의 집사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봉사 직무를 가진 교회 지도자들이었다(행전 6장). 그들의 책무가 행정과 봉사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칭호, 그들에게 요구되는 자격, 그리고 그들과 감독과의 관계, 그리고 신약에서의 용법에서 추론될 수 있다. 집사가 사도행전 6장에 7명에서 기원하였다는 주장은 이 7명이 복음을 전하고 설교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그럴듯하지 않지만 간접적인 관련은 있는 것 같다. 집사 직분은 일반적으로 식사 봉사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다. 교회에서는 이 본래의 의미가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음식의 제공은 실제적인 봉사의 한 모델이며 공동 식사는 예배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집사들도 초대 사도, 선지자 그리고 교사들이 사라지면서 완전히 부상한다(참조: 1 Clem. 42. 1이하). 단일 감독체제의 발전과 더불어, 집사들은 감독에게 보다 종속적이 되고 삼중 구조가 확립되며 집사의 직무는 더욱 뚜렷하게 그 방향이 정해졌다. 그리고 예를 들어, 로마에서는 일곱명의 집사들에게 일곱 개의 지역을 할당한다. 여집사 제도도 있었다. 롬 16:1에 나오는 뵈뵈는 디아코노스이다. 비록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보다 일반적인 봉사로 이해하지만 이 언급은 어떤 직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참조: 바이블렉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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