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의 모델 골4:7-18
♠ 서론
옆에 있는 sfc운동원들과 인사합시다. \"당신은 복음의 동역자입니다.\" 골로새서 강해 마지막 시간인데, 오늘 본문에 늘 강조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제자\'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각자의 달란트를 통해서 현장을 변화시킨 현장 전도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들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크게는 전도총회와 한 팀이 되고, 또 강서로 교회가 한 팀이 되어 단 한 사람도 낙오자나 세상 길로 가거나 종교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이 복음을 가지고 이 골로새서에 기록된 동역자들과 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6-7절).
두기고는 바울의 사역 가운데 늘 함께 도왔던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로마에 갇혀 있는 바울의 형편과 소식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는 역할을 한 사람이 두기고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생명 걸고 전달해서 세계 복음화에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도 두기고를 통해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두기고는 주로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는 성경이 많았는데 다 정리해서 66권만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뺄 것이 없으니 생명을 걸면서 바울의 편지를 전달한 것은 귀한 일입니다. 주옥같은 바울의 서신을 전달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보여지는 일, 생색내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좌지우지되니 보이지 않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직분을 가진 사람이 달란트를 많이 가졌든 작게 가졌든 하나님 편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부장 직분이 교회적인 차원에서 영향이 크니 크게 느껴지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다는 것을 믿고 작은 일을 일심으로 지속하는 성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남이 모르는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주안에서 기뻐하며 신앙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기고가 바울 심부름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심부름이 무슨 일이냐가 결정됩니다. 바울은 그 당시 초라한 사람이었습니다. 도망 다니며 늘 감옥에 갇혀서 쫓겨다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두기고는 바울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께 붙들린 것을 본 것입니다. 직분을 감당할 때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말없이 맡겨진 직분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히 서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넉넉히 자족할 줄 아는 복음을 가진 자는 언약 성취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대 생활의 좌절을 표현하는 글이 있습니다. \'잠들만하면 기상하라고 하고, 먹을만하면 식사 끝이라고 하고, 외박하려고 하면 외박금지라고 하고, 쉴만하면 휴식 끝이라고 하고, 볼만하면 동작 그만하고, 정들만 하면 전출 보내고, 휴가 갈만하면 비상 걸리고, 책 좀 볼만하면 소등하라고 하고, 놀려고 하면 개인활동 금지하고, 편안할만하니 전역을 시킨다.\' 군대 가면 공짜로 밥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니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용돈까지 주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군대라고 하면 질색을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편한 보급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도 돌아보기 싫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군대는 다 있는데 한가지, 자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도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무슨 뜻입니까? 세상 사람은 자유가 없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불안합니다. 욕심을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미래의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똑같은 환경 속에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 언약 잡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환경가운데에서도 넉넉하고 편안하고 자유하는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도 찬양하면서 기뻐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감당할 때 언약을 잡았다면 어떤 고통과 억울한 말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최고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불신자처럼 돈에 욕심을 내고 세상 야망가지고 살면 늘 불안하고 끊임없이 고독합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극복하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불평, 원망, 고민은 다 창세기 3장의 찌꺼기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습관이 버리기 힘듭니다.
빌리 센데이라는 목사님에게 여집사님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화를 너무 잘 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막말을 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때 선데이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집사님은 화가 오래가지 않지만, 상대에게는 그 말이 오래 오래 갑니다.\'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가 온유해져야 합니다. 말과 행동과 인격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큰 상처를 받고 있으면 화합이 안됩니다. 나는 뒤끝이 없고 화통하다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멋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성격이 나와 같지 않습니다. 또 말을 막 쏟아 붓는 사람은 자신이 당하면 못 견딥니다. 하나가 되어야 지역과 민족을 살립니다. 이런 상처들을 교회 안에서 받고 있으면 하나가 되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러니 말을 직선적으로 하고 남의 약점을 찍어대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바쳐서 헌신하고 자기 능력껏 하고 있는데 찍어대면 무엇으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힘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습관화되기 바랍니다. 어느 한 사람 도 자신에게 좋지 못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혀를 삼가야 합니다. 상대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어야 합니다. 이름 없이 빛 없이 두렵고 떨림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고난도 함께 받을 줄 알아야 한다(10절).
10절에 아리스다고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었는데, 바울이 고생할 때 항상 같이 있었습니다. 행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돌을 맞아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때에도 같이 있었습니다. 배가 파산되어 떠내려 가다가 이름 모를 섬에 도착해서 고생을 할 때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감옥에도 같이 있었습니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바울과 같이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썬다싱이 친구와 함께 네팔에 전도하러 가기 위해서 인도에서 히말리아 산맥을 넘어가는 도중에 너무 추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썬다싱이 저 사람 데리고 가자고 하니 친구와 싸움이 일어났고 친구는 먼저 가 버렸습니다. 썬다싱이 얼어서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업고 히말리아 산맥을 넘어서 가고 있는데 한참 가다 보니 앞에 가던 사람이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썬다싱은 땀이 나서 둘이 함께 살아 산맥을 넘어 갔다는 실화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와 함께 갈 수 있는 신앙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혼자 생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함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혼자 사역을 한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같이 사는 길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어려워질 때도 참된 동역자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몸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6-27)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개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때는 자기 것이 없이 다 팔아서 사도들 앞에 두고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육신적으로 생활을 같이 못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신앙의 사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손가락 다섯 개가 서로 잘났다고 자랑합니다. 첫째 손가락이 내가 최고라고 하니 엄지손가락이 뭘 가르칠 때는 내가 있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손가락이 내가 제일 크다고 하니, 넷째 손가락이 중요한 반지는 내 손가락에 다 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섯째 손가락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병신이라고 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 귀합니다.
3. 함께 사역할 줄 알아야 한다(11절).
11절에 \'이들만\' 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유스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습니다. 이들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11절에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각자 수고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휘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목표와 방향이 하나님 나라에 맞추고 충성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으니 자기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나가야 하는데 자기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세운 목표가 \'내가 주는 땅으로 가라!\'입니다. 함께 나가야 합니다. 현장을 함께 장악해야 합니다. 서로 약한 것을 도와주고, 세워주고, 부족한 것을 함께 하면서 가야 합니다. 서로 다릅니다. 집안, 개성, 표현, 교양, 경제수준이 다릅니다. 이런 문화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 느린 사람, 하나님은 각자 그렇게 만들어 모아놓았습니다. 문화가 다 다릅니다. 이런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을 살리고 지교회가 됩니다. 지교회를 세워나가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교회당을 운영해 나가는데 개성과 주장이 다릅니다. 그런데 말없이 되는 것이 기가 막힌 작품입니다. 지금도 몇 곳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질이 극단적인 사람은 상처를 많이 줍니다. 언제나 팀이 구성되기 바랍니다.
본문 10절에 등장한 마가는 1차 전도 여행 때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 여행 때는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가자고 하고 바울은 못 데려간다 하며 심히 다투었습니다. 결국은 동서로 갈라져서 2차 전도 여행을 떠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가도 달라지고 바울도 마가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마가가 배신하고 떠날 때 바울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가가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올 때 받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유익하다고 하면 개인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정말 복음에 유익하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하고, 비방하고, 섭섭하게 했다고 할지라도 정말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주어야 합니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선입견과 편견이 심합니다. 화해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한잔 같이 마시면 되는데, 교회는 안됩니다.
12-13절의 에바브라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4절에 누가도 등장하는데 누가는 의사입니다. 전도 여행을 하면서 의료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복음 전파에 끝까지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신의 기술을 사용했고 하나님이 보내는 곳이라면 성실하게 전문 사역자로 갔습니다.
14절에 데마를 언급하는데, 데마는 바울이 쓴 편지에 3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마가는 돌아왔지만 데마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데마는 시대적인 축복을 놓쳤습니다.
언제나 남을 관용할 줄 아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여유가 있고 믿음이 있고 관용이 많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인간 관계를 통해서 상처를 받고 교회 일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어도 남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남을 욕하지도 않고 흉을 보지도 않느냐고 질문을 하니 왜 난들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만 기도로 하소연하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왔는데 아내가 남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남을 욕하고 흉보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고소하세요. 너무 답답합니다. 억울합니다. 이 문제를 저 사람이 도대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깨닫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사람은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잘못한 사람에게 성령이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하십니다.
♠ 결론
바울과 함께 동역한 사람은 다양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 복음 증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목적의식이 같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목적과 방향이 같아 하나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방향을 다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를 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을 양육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전도 신학원, 선교사훈련원은 제자 삼는 것입니다. 캠프와 지교회는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방향을 맞추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편에는 한 명도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어마한 계획이 있다는 주인공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어도, 다락방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고, 기도도 못해도 분명히 나를 보내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시간표가 되면 여러분을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절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보통 죄가 아닙니다. 자기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안에 계신데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큰 죄입니다.
어느 아들이 다섯인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도 없는 친구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는 집도 가난하니 한 명만 달라고 했습니다. 부탁을 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장남이라서 못 주고, 둘째는 머리가 좋아서 못 주고, 셋째는 잘생겨서 못 주고, 넷째는 병이 들어서 못 주고, 다섯째는 막내라서 못 주었습니다. 시대적인 언약을 잡고 놓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알아야지 바울이 정말 한분을 귀하게 본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하게 사용할 줄 믿고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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