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에 대한감사의기도 [빌립보서강해]




교인들에  대한 감사와 기도 (빌 1:3-6)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각\"(므네이아, 대격 여성 단수). 므네이아는 \'기억, 회상, 언급\'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기억\'이나 \'회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할 때마다\"(에피 파세).. 에피는 감사의 근거나 이유를 암시하며, \'~로 인해, ~때문에\'라는 의미를 지닌다. 파세는 \'모든\'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휘몬을 목적 속격으로 보면 \'내가 너희에 대한 모든 회상으로 인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휘몬을 주격 속격으로 보면 \'내가 나에 대한 너희의 모든 기억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직역할 수 있다. 후자의 번역은 \"교제\"를 언급하고(빌 1:5) 그들의 인정(친절)에 대한 실제적 표현을 지적하는 문맥과 훌륭하게 일치한다(H.A.A.Kennedy).
이 서신을 쓴 바울은 이제 약 800마일 떨어진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이며, 빌립보 교인들에게 최초로 선교활동을 한지 10년이 지난 때였다. 그처럼 세월이 흘렀으나, 그들이 자기를 기억하고 친절을 베푼 것을 생각하며(선교사역을 도운 것, 빌 4:15-18)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간구할 때마다\"는 문자적으로 \'모든 간구에서\'이다.
\"간구할\"(데에세이,여격 여성 단수). 데에시스는 본래 \'부족\'을, 그 후에 \'소용, 필요, 간구, 간청\'을 의미하게 되었다. 70인역본에서 이 단어는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요구할 때만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이 단어(18회)는 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기서 간구는 필요에서 일어나는, 즉 부족한 것의 충족을 위한 간구이다(참조: 엡 6:18이하).

\"너희 무리\"(판톤 휘몬)는  문자적으로는 \'너희 모든 사람\'이다. 이것은 바울이 모든 사람을 다 같게 사랑하고, 그들 중에 어떠한 분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자 한 것이다(JFB).
\"기쁨으로\"(메타 카라스). 기쁨은 본 서신의 특징이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기쁨은 기도에 특별한 활기를 준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그의 최고의 감정을 표하는데 그에게 기쁨을 주는 거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있고 그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JFB).
\"간구함은\"(데에신)는 데에시스의 대격 여성 단수이다.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것은 \"감사\"(빌1:3)의 근거이다.
\"교제함\"(코이노니아, 여격 여성 단수). 명사 코이노니아는 \'참여, 나누어줌(함께 나눔), 교제(친교)\', \'자선품\'이나 \'기부금\'을 의미하며, 여기서 이들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상호 친교와 화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 그들의 관계에 관한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는 쉬그코이노누스(\"함께 …참예한 자\", 7절)를 미리 표현하며, 그리고 복음 사역에서 바울과 그들의 공동참여를 의미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연합행위, 곧 협동의 관념을,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에게 대한 그들의 도움, 그들의 선물에 대한 유형적인 표현을 함축한다.

\"복음에서\"(에이스 토 유앙게리온)는 문자적으로 \'복음을 위하여\'이다. 코이노니아의 유형적인 개념은 에이스의 용법에 의해 지지받는데, 이와같은 문맥에서 돈의 지불, 자선금, 모금 등의 목적지를 의미하는 전문용어로 사용되었다. 호트(Hort)는 행 2:42의 코이노니아에는 어떤 유형적인 것이 있다고 지적한다. 동일한 사실은 다른 구절들에서도 나타난다. 모금은 두 교회간의 친교를 보여주는 분명한 형태이며, 마음에서 우러난 나눔(고후 9:13)으로 섬기는 교제의 의의를 지닌다. 히 13:16에서도 적극적인 나눔을 언급한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영적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복음을 위하여 교제했다(참조: 바이블렉스2000; A.A.A.Kennedy).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착한\"(아가돈, 대격, 중성, 단수). 형용사 아가도스는 \'선한, 착한, 좋은, 탁월한, 우수한, 훌륭한\'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선한(착한)\'을 의미한다(참조: 바이블렉스2000). 학자들 중에서 \"착한 일\"을 5절의 코이노니아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 영적 생활의 생산\', 7절의 \'은혜에 참여\'등을 포함하는 구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참조:H.A.A. Kennedy; BKC). 이\"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빌 2:13).

\"시작하신\"(에나사륵메노스)는 에나르코마이의 분사 부정과거 중간디포넌트 주격 단수 남성이다. 이 동사는 고전 헬라어에서 제의적 의미로 \'시작하다\'를 의미한다. 이 말은 희랍의 제례가 시작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례가 끝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사용된 동사는 에피테레오 이다. 바로 뒤따라 나타나는 에피텔레세이(\"이루실\")가 이 동사의 직설 미래 능동태이다. 이 두 단어가 갈 3:3에서도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그리스도께 드리는 계속적인 제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자 한 것 같다(롬 12:1).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빌 1:10과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참조: 살전 5:2; 살전 5:4; 살후 1:10; 살후 2:22; 고전 1:18; 고전 3:13; 고후 1:14; 롬 13:12). 바울은 주의 재림의 시간을 정하지 않았으나 복된 소망을 인하여 기뻐했다.
\"이루실\"(에피텔레세이)은 에피텔레오의 직설 미래 능동이다. 이 동사는 집행과정과 완성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은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성취시켜 나가시고 완성하실 것이다.

\"우리가 확신하노라\"(페포이도스)는 페이도의 분사 완료 능동 주격 1인 단수 남성이다. 이 동사는 \'납득시키다, 확신시키다\', 수동태로 \'확신하다, 신뢰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확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시작하신 착한 일을 계속 행하여 성취시킬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확신은 믿음의 확신이다. 그것은 주안에서 되는 것이며(갈 5:10; 빌 2:24),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빌 1:6; 히 2:13; 마 27:43).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할 때 대부분 신앙의 형태를 띠게 되고 현재의 처지에서 구원보다(시편의 입장) 종말론적인 구원에 관계된다(참조: 바이블렉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