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 딤후2:15-/ 어린이,학생설교/ 2002-02-05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
딤후2:15-





어느 시골정거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두 젊은이가 이별을 하는데 기차에 탄 친구가 창 밖을 내다보면서 플랫폼에서 자기를 전송하는 친구를 향해 \"딤후 25\"라고 인사를 하니 플랫폼에 서있던 친구도 떠나는 친구를 향해 \"딤후 25\"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신사가 가만히 듣고 있자니 참 이상한 이야기였습니다. 친구간에 헤어지면 \"잘 있으시오, 잘 가시오, 안녕히 있으시오\"라고 인사를 해야 할텐데, 암호로 인사를 하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 신사는 앞에 앉은 젊은이에게 \"여보 젊은이, 아까 정거장에서 친구와 헤어질 때 이상한 말로 인사를 하던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젊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같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끝에 신약성경의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 나오는 말씀을 따라 살기로 정하고 만날 때나 헤어질 때에 \'딤후 25\'라고 인사를 하면서 이 말씀을 서로 상기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잠깐 읽어 봅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 말씀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도전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삶입니다.

우리가 흔히 디모데전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모든 성도들 뿐 아니라 특별히 목회를 하며, 준비하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세 가지 도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는 하나님의 도전은 우리 목회하는 자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권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사랑하고 열심히 읽으며, 그리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더욱 젊을 때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사를 통해 보면 언제나 영적 각성이 있을 때마다 말씀과 기도의 회복이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구약성경 에스라서를 보면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방 땅에 있으면서 80년 전에 스룹바벨로 예루살렘으로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이 엉망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조국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에스라 7장 10절에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에스라의 세 가지 결심이 나옵니다. 그는 이미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지만 또 다시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준행하기로, 먼저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피아노를 잘 치는 비결을 자신에게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연습에 있는 것입니다. 하루 연습하지 아니하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아니하면 내 청중이 알고, 삼일만 연습하지 아니하면 온 세계가 다 내 피아노 소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압니다.\"

스위스 피아노의 대가 지그문트 탈베르크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도 이어지는 연습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대음악회가 개최되는데, 그에게도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 음악회는 언제 개최합니까?\"
\"다음달 1일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때까지는 연습을 할 수 없습니다.\"
\"연습이요? 선생님께서도 연습을 하십니까?\"
\"이번에도 신곡을 연주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대도 3일 정도면 연습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많은 음악가들을 알고 있지만 한 번 하는 연주에 4일 이상 연습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하물며 선생님 같은 대가는 연습이 필요 없지 않겠어요?\"
그러자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신작발표회를 가지려면 적어도 1,500회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하루에 50회씩 연습하면 1개월은 걸리겠지요. 그때까지 기다려 주신다면 출연하겠습니다. 연습할 시간이 없으면 절대 출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에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설교를 하는데 정말 어느 정도의 땀과 정열을 쏟아 준비하는지, 설교자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이라고 말씀합니다. 열심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문제는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말씀을 올바르게 분변해서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둘째,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는 일꾼이 되려면 주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난당하신 모습을 묘사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최고의 방법은 십자가의 방법이지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은 시대가 이상해 져서인지 목회도 성공 위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목회 성공비결\' 같은 세미나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그런 세미나는 거의 문제가 많습니다.

목회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다만 충성만 있을 뿐입니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서 하나님이 요구하고, 하라는 일을 하는 충성이 있을 뿐이지 성공이라는 말은 세상에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목사가 아닙니다. 오늘날 이런 풍토는 대단히 경계해야 할 무서운 유혹이고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방법을 좋아하시고,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이해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증명하기 의하여 우리의 사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과 은총, 사랑과 구원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다는 감격에 빠져서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데이트) 목회의 길은 힘든 길인가?]

마 7장에 보면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누가 참 선지자이며, 누가 거짓 선지자입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냐면 열매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에게는 \'열매\'에 대해 선입관이 있습니다 \'열매\'라고 하면 모두가 30배,60배, 100배를 떠올립니다. \'열매\' 라고 하면 물론 일차적인 뜻이 언제나 실천과 결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열매는 그것이 아니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지요?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그 나무를 알아보는 가장 대표적인 표입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구별할 줄 아십니까? 사과나무와 배나무가 어떻게 다릅니까? 사과나무는 사과를 내고, 배나무는 배를 냅니다. 지나가다가 사과가 달려 있으면 사과나무이고 배가 달려 있으면 배나무입니다. 지금은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으려고 애쓰지 말고,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삶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목회자가 된다는 것,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되려고 할 때에 자기 점검을 철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 가지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없는 사람이 목회를 하면 하는 사람도 괴롭고 듣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둘째, 보살피는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설교 잘하고 성경 공부 잘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전인격적으로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따뜻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지도자적인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되면 싫든 좋든 교회라는 조직의 지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은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 시대야말로 좋은 목회자가 참으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이 식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오늘날 목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오늘날이야말로 교회와 사회에서 좋은 지도자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그 지도자는 헌신된 지도자입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무엇이 되는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되는가, 선교사가 되는가, 전도사가 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 삶의 중심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고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목자는 양을 쳐야 할텐데 양보다는 자기 위치의 안정과 자기 권위의 확보를 위해서 양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헌신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인들은 늘 이런 기도를 합니다. \"고통을 없애달라\",병을 낫게 해달라\", \"가난을 면하게 해달라\", \"애들 공부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이런 기도밖에 할 줄 모릅니다. 교역자가 된 우리들까지도 기도의 대부분을 \"고통을 없게 해달라.\"는 데 투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충성되게 짐을 지고 주님 앞에 서게 해달라.\"는 기도는 오늘날 참 희귀한 것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짐은 사실 복된 짐이고 영광스런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에게서 무슨 다른 가치를 찾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어렵지 않게 넘어가고 영광은 받겠다는 이런 욕심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져야 할 짐을 참 기쁨으로 져야 하고, 주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왔습니다.\" 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고백한 것같이 우리도 우리가 진 짐을 달게 받을 뿐만 아니라 기뻐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아주 오래 전입니다만 제가 전도사일 때 학생 하나가 저에게 \"왜 신학교를 가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왜 신학교를 들어갔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 신학교를 갈 때에 나름대로 가슴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이유와 소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영광을 얻고자 신학교를 다니며,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그것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매스컴에도 좀 나오고, 총회장, 노회장 등과 같은 직분도 맡아 폼도 재고 싶고 말이지요. 그리고 되도록 쉬운 길, 편안한 길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뜻보다는 안일을 추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변질이라고 합니다.

엡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요즘 헌신이라는 말을 쓰기에 너무 부끄럽지는 않습니까? 혹시 \'나중에 헌신해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신앙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나중에\' \'차차\' 라는 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지금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걸음을 인도해 가시고, 그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헌신의 삶을 살게하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헌신의 삶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다시 마음이 뜨거워 질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감격이 나로 그 길을 걷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고 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 길을 걷게 합니다.
그 위대했던 리빙스톤 선교사도 이 약속을 믿고 승리의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화니 J. 크로스비 여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류시인입니다.
태어난 지 6개월만에 소경이 되었습니다.
아주 감성이 예민한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는 무력해졌고 그의 달란트는 감추어져 있었고 그는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세월을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30세가 되었을 때, 뉴욕의 어떤 전도집회에 참석했다가 찬송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 찬송가 141장입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반복되는 찬양, 몇 번씩 반복되는 찬양을 듣다 찬양의 가사가 이 여인의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주님이 날 위해 죽으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큰 복음이 어디 있어요?
주님이 날 위해 돌아가셨다고요? 그녀에게 이것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 \'이 몸밖에 바칠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그 찬송을 부르면서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주님 나를 쓰실 수가 있다고요?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마음에 \"얘야, 너느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니?\"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주님으로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고 구원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사명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찬송을 작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처음 작사했던 것이 우리 찬송가 321장입니다.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사랑의 햇빛을 왜 버리고 너는 더 멀리가나.// 고달파 지친 자 쉬라시네 쉬라시네 쉬라시네 무거운 짐진자 다 나오라 쉬게해 주시리라\'라는 찬송입니다.

자기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붓을 들어 작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95세까지 살면서 무려 8000곡의 찬송가를 작사합니다.
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명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육체의 빛보다도 더 강렬한 빛을 체험하기 시작했고 그의 미래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미래가 열린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사명의 문이 여린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시대에 아름답게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