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딤후4:1-8
우리는 이상적인 교회를 말할 때마다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1세기, 초대 교회의 생명력, 그 생동력이 어디에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이것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초대교회 문서에서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초대 성도들은 폭풍이나 번개가 몰아치면 \"주여, 이제 오십니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에 아름다운 별들을 대할 때마다 \"주님 이제 오시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마라나타\" -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삶에 있어 마지막에 대한 긴박감을 갖게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고 능력 있고,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서 어느 시대에나 진지한 영적인 부흥과 도덕적인 각성이 일어 날 때에는 이 재림 신앙이 항상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 이 순간은 1세기에 성도들이 살았던 그 때보다 마지막 날에 훨씬 더 가까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는 \'종말의식\'은 오늘날 우리 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그런 극단적인 \'종말의식\'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한결같이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말의식을 가진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열매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그들은 \'예배\'를 성도의 의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배\'는 의무이기 이전에 그들의 \'생명\'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로마의 핍박과 칼날에도...지하 교회에서도 한번 모이면 두 세시간 이상씩 기도하며 찬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눕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
그리고 또 하나의 열매는 \'전도\'입니다. 종말의식을 가지고서 거리에 나가보니 내가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이 결코 사소한 만남이 아니라는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떡해서든지 그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가 발휘할 수 있는 놀라운 영향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아들아,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날에 예수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야. 바로 그 날 우리는 엄연히 그 앞에 서야만 할 터인데 너 가지고 갈 것이 있느냐\' \'따라서 말씀을 전파해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권면합니다. 이 \'종말의식\'이 살아 숨쉴 때 교회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힘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서로가 서로를 끔찍이 아껴주며, 서로의 물건을 제 것이라 하는 자 없고, 심지어 자신의 땅까지 팔아가면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로마 제국과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두려워하게 하기도 했고,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하기도 했던 그 원동력은 바로 \'종말의식\'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이 우리 앞에 흔들릴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의 삶에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열매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열매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전도입니다.
본문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전도는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의 마땅한 열매입니다. 전도는 억지로 쥐어짜서 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무작정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런 다음,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먼저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면 사람을 낚는 일에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국엔 목숨까지 내어놓고 주님을 따르는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이 성령 받은 사람들이길 바랍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 안에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마지막 날을 향하여 오늘 하루도 보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긴장의식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여러분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의 열매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라… 무슨 말입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항상 깨어있는 의식, 늘 \'종말의식\'을 염두에 두며 사는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고난을 감수하며, 고난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그 어느 성도도 \'고난\'을 환영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고난\'을 기뻐하며, 고난을 취미로 즐기는 성도는 없습니다. 고난은 분명히 우리에게 어려운 고비이며,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될 수 있고,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은 더욱 순결해 질 수 있으며,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는 \'고난\'은 가장된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이 잠시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있던 2차 대전 당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을 떠나면서 남겼던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다. \"나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I shall return) 2년 후 필리핀의 레이트 만 해안에 상륙하면서 맥아더 장군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속한대로 나는 다시 돌아 왔다.\" (As I promised you, I come) 성실한 한 인간이 자기 개인의 명예를 걸고 그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의 구세주요, 세상을 창조하신 역사의 주인이신 그 분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
베드로전서가 쓰여지는 거의 동시대인 1세기에 일어난 아주 놀라운 사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로마 제국 이탈리아의 베스비우스라는 산중턱에 위치한 한2,000명 정도가 사는 마을에 주후 63년 어느 날 수염이 텁수룩한 노인이 등장했습니다. 그 노인은 자칭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방탕과 부도덕한 생활 속에 빠져있는 마을 사랑들을 향해서 경고했습니다. \"저 화산은 폭발할 것이요. 살길은 두 가지 밖에 없소. 하나는 당신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거나 아니면 이사가시오.\" 아무도 이 미친 노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미쳐버린 노인의 망언이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16년이 지나간 A.D.79년 8월 24일 베스비우스의 그 유명한 화산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2천명의 마을 사람들과, 역사가이며 그 지역의 통치자인 플리니(Pliny)라는 사람도 이 마을에 왔다가 같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예언자의 얘기는 플리니의 아들이며 나중에 소아시아 비두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 2세에 의해서 역사의 한 조각으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종말의식\'을 느끼며 살아갔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여러분, 예수를 믿는 자는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날을 소망 중에 기다렸으며, 부푼 기대감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예배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마지막 날을 관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과 7절입니다 .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다. 내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그 길을 뒤돌아보지 아니하며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그 푯대를 향하여 담대히 달려가십시다. 천국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늘나라의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고 나가는 굳건한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늘에서 상을 받을 사람은 세 종류밖에 없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첫째는, 순교자들이요, 둘째는, 청춘을 바쳐 헌신한 성스러운 자들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몸과 시간과 물질로 봉사하고 헌신하고 투자한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하여 신앙적 헌신과 노력과 봉사로서 천국을 소유하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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