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의 젖을 떼라

미성숙의 젖을 떼라/히5:11-14/어린이,학생설교/

미성숙의 젖을 떼라
히5:11-14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지가 재미있습니다. \"사람은 머리 쪽으로 자라는가 다리 쪽으로 자라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주장합니다. \"나는 사람이 다리 쪽으로 자란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어렸을 때 아빠가 사준 바지가 작아진 것을 보면 분명히 다리 쪽으로 자라는 거야!\"합니다.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나도 어릴 때에는 사람이 다리 쪽으로 자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머리 쪽부터 자라는 게 틀림없어.

왜냐하면 내가 어저께 길거리에서 군인들이 백 명 정도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다리를 보니까 땅 바닥에 가지런히 맞더란 말이야. 그런데 머리 쪽을 보니까 높이가 들쭉날쭉 했어 그러니까 분명히 사람은 머리 쪽으로 자라는 게 맞아!\"하며 둘이 옥신각신 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어느 쪽으로 자랍니까?

그 대답이야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자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키가 자라고 정신이 자라야 정상입니다. 비단 사람뿐이겠습니까? 모든 생명체는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반드시 올바른 성장이 필요합니다. 키와 나이에 걸 맞는 정신과 행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성숙>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성숙정도를 네 가지 양태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지적성숙>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의견을 정립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 할 줄 알고 상대방의 말대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되면 자기의 견해를 변경 할 용의가 있고 자기 계획을 조정하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정서적 성숙>입니다. 이것은 무조건 이탈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고 토라지기보다는 자기의 불만을 솔직하게 얘기하며 자기에 대한 비판을 깊은 상처 받는 일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성숙>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마음을 열고 타인에게 나가는 능력, 타인과 잘 어울리는 능력, 그리고 그들과 의미 있는 우정관계를 맺는 능력에서 나타납니다.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단체의 이상과 단체적인 요구의 실현을 위해서 자기를 굽힐 줄 아는 사람입니다. 즉, 단체를 향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단체의 수준에 맞춰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사회적인 성숙>을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미숙아입니다. 다른 소리 할 것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 다음 네 번째는 <도덕적 성숙>입니다. 어린아이의 도덕은 보통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그에 따른 도덕적 성숙의 도가 깊어지면 대단히 구체적이고 애타주의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의 이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도덕적 성숙입니다. 중요한 것이죠.

『아버지가 아들을 잠자리에 눕히고 \"잘 자거라!\"하고 불을 끄고 아이의 방을 나왔습니다. 10분 후 아들이 부릅니다.\"아빠!\"아버지가 \"왜 그래 잠자지 않고!\"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나 물 좀 떠다 줘요\"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너 아까 물 마셨잖아! 그만 자거라!\"....또 10분 후 아들이\"아빠!\"아버지가\"왜 그래 여태 안자고!\"아들\"나 물 좀 떠다 줘요!\"아버지\"그만 자라니까! 한번만 더 부르면 매맞는다!\"....또 10분 후 아들이\"아빠!\" 아버지가 짜증을 내며\"또 뭐야!\"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나 때리러 올 때 물 한 컵 갖다줘요!\"... 』

우리 아이들이 이러면서 자랍니다. 그러나 평생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집안 시끄럽겠습니까? 하지만 성숙합니다. 지적으로 성숙하고, 정서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성숙하고, 도덕적으로 성숙하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성숙한 한 인격체가 됩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냥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과정을 돌이켜 보십시오. 기억나십니까? UCLA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로저 고울드(Roger Gould)박사는 성인의 발달과정을 7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6-17세: 부모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도망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때는 누구나 가출의 충동을 느끼는 시 기입니다.

⊙18-22세: 자기의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는 <탐색의 시기>를 지내는데 이때는 친구가 가족보다 더 좋은 시 기입니다.

⊙23-28세: 구체적인 이 세계에 나가 하나의 경쟁자로서 정력을 쏟아 붓는<투쟁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29-34세: 인생문제를 전반적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는<회의의 시기>를 지나서

⊙35-43세: 자기 인생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어쩐지 허탈해 지고 초조 해지는<불안의 시기>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44-50세: 시간의 흐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춤하여 멈추어 서서 과거를 돌아다보는<회고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는데 이 때 비로소 지금까지 지상의 목표로 하던 돈보다 친구 나 사랑하는 사람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50세 이상이 되어서야 나를 알고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 되는<성 숙의 시기(Period of Mellowing)>에 접어든다는 것입니 다. 이 때는 인생의 경험을 서로 나누는데 열이 생기고 건 강 문제에 부쩍 관심이 커진다고 로저 고울드 박사는 말 합니다.

이 사람에 의하면 50세가 안 된 사람은 아직 사회적으로는 미성숙자입니다.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 앞에서는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분류에 의하면 저는 <불안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기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자,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성숙에 대한 이론들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더 하려고 합니다. 바로 오늘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성숙입니다. 이른 바 <영적 성숙>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영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것을 책망하며 오늘 우리에게는 올바른 <영적 성숙>을 이룰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의 미성숙 상태를 어린아이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아이는 부모의 양육으로 장성하여 성인 이 되면 부모의 도움 없이 성인이 먹는 음식을 먹고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처음에는 미숙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으나 장성한 신앙인이 되면 성숙하게 되고 마침내는 남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위치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법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성장이 아니라<기형적인 성장>이라고 불리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근심을 끼치게 하는 동시에(엡4:30),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영적 형제 된 다른 성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도 영적인 진보를 가지도록 자기를 성장시키는 일에 노력해야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 자란 어른이면서도 아직 영적 어린아이를 벗어나지 못해서 젖병을 입에 물고 사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도무지 먹지를 못합니다. 젖병에 든 우유 외에 조금의 단단한 것만 들어가도 소화 불량이 되고 설사를 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시험이 오면 넘어져서 아예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때가 오래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쉽게 풀이하면 \"예수 믿은 지 일,이년도 아닌데...\"이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몇 십 년 믿으면 뭐합니까? 아직도 영적으로 미성숙하여 젖병 물고 있는 어린아이인데......

『어린 소년이 연못가에서 손으로 만든 작은 종이배를 띄우며 놀고 있었는데 배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려나자 소년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소년의 형이 배가 나가는 방향에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형이 배를 맞추어 가라앉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더 소리내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형이 던진 돌맹이가 수면 위에 떨어져 잔물결로 인해 배를 연못가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울음을 그쳤습니다.』우리들 대부분도 어린 소년과 같이 생각지 못한 고난 앞에 당황하고 울고 맙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도와 주기 위해 충고를 하고 바른 소리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나를 해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마치 형이 던지는 조약돌을 보고 더 큰 울음을 터뜨렸던 소년처럼 말입니다. 언제까지 어린아이의 모습을 못 벗어날 것입니까? 젖병을 물고 있는 어른,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성인,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성인 아이, 상상이나 가십니까?

갓 태어난 아기는 눈은 뜨고 이것저것 쳐다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물체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 물체의 색깔을 구분하고 아빠,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때가 오래되면\"우리 속에 있는 미개한 신앙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 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들은 아무나보고 \"엄마, 아빠\"라고 합니다. 구별능력과 인지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신앙적 구별능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져서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시험에 들고, 매사를 어린아이 수준에서 상상하고 혼자 대본을 쓰고 앉아서 사건을 만들고 있다면 이야말로 <성인아이>입니다.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누구 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몸집은 비대한데 하는 짓은 어린아이를 벗어나지 못한 유치한 삶을 산단 말입니다. 오늘 성경대로 젖도 떼지 못한 아이입니다.

여러분! 젖 먹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뉴욕 타임지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모습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대답이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젖을 먹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우유병이 어린아이의 입에 물려 있을 때에는 아름답고 평화롭고 너무너무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우유병이 지금 우리 어른들 입에 물려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보! 우유병 가져와!\"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것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제는 젖을 떼고 단단한 것도 먹을 수 있는 영적 성숙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단한 음식이란 신앙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이릅니다. 아픔도 견디고, 슬픔도 이기고, 시험에도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신앙의 성숙자라고 말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에는 알에서부터 큰 누에가 되기까지 몸무게가 일 만 배 가량 성장하며 누에 일생에 네 번 탈피한다고 합니다. 알로 지내는 기간이 15일, 애벌레로 25일, 고치를 짓는 기간이48시간, 번데기로 15일, 나방으로5일 합해서 60일이 누에의 일생이라고 합니다.』한 과정이라도 거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우리 또한 영적인 성장을 향한 껍데기들을 탈피하고 커질 때마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겪는 진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통을 겪지 않으려고 합니다. 도망치고 맙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 안에 이런 영적 미숙아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믿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라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뽐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신 있어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즉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냥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수염이 난 어린아이입니다. 몸은 어른인데 유모차를 타고 젖병을 입에 물고 있는 영적 미숙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말씀이 들릴 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합니까? 11절에\"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여\"그랬습니다. \"둔하다\"는 말이 IQ가 모자란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저 지나쳐 가는 말씀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설교하면서 듣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치고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가끔씩 설교하면서 보면 고개는 들고 있는데 표정이나 눈동자는 다른 것에 매여서 생각이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내내 아예 눈뜨고 자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느 교회나 그렇다고 합니다.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공과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왜 떠들면 안되죠?\"모두들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 궁색해 합니다. 그 중에 한 녀석이 얼른 손을 들고 대답합니다. \"예, 어른들이 자고 있기 때문에 떠들면 안돼요. 잠을 깨우면 안 되잖아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우스운 이야기까지 생겨나겠습니까?

여러분! 영적으로 미숙하여 이렇게까지 둔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제발 입에 물고 있는 젖병을 떼고 성숙한 어른으로 살라고 충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거장인 사도 바울에게도 한때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13:11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오늘 우리들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젖병을 입에 물고 있는 영적 미성숙자의 모습은 아닙니까? 성인아이를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입에 물고 있는 젖병을 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아무리 단단한 음식이라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