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야망

거룩한 야망/대상4:9-10/어린이,학생설교/

거룩한 야망
대상4:9-10





70년대 초에 신학교를 가게 되었을 때 저는 \"이제 나에겐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꽤 힘들어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성직자의 길이란 분명히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만, 당시 저는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의 모든 낙과 즐거움을 다 버려야 한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곧 인생의 즐거움과 꿈을 송두리째 버려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부와 명성은 접는다고 해도 오히려 보다 더 크고 숭고한 목적,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 의미있고 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은 신학교에 가는 것을 다른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비교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제가 신학교에 갈 때 만해도 제 심정은 그랬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야망(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바울, 그 외 많은 이들을 보면 그런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망이 있어야 힘과 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꿈과 야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활기도 없고, 힘도 없고, 심지어 살맛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망(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야망이요, 다른 하나는 거룩한 야망입니다. 여기서 야망을 \'꿈\'이란 말로 바꿔도 됩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야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야망을 갖되 아름답고 큰 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거룩한 야망(비전)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적인 야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우리에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 예수의 향기 나는 삶의 모습을 갈망하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성을 아직 좇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요, 예수의 제자로서 온전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번은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가 자기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선생님이 나라를 차지하실 때,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한편 예수를 따르면서도 그들은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좇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청탁을 예수님께 하는 것을 듣고서 나머지 열 제자가 두 형제에게 분개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당시에는 열 두 제자 중에서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걸 생각하실 때 예수님의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나중에 그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받고 완전히 거듭날 때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인간적인 야망(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으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만, 세상의 명성과 부와 권세를 좇는 세속적 야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에겐 이 세상의 것들이―아무리 좋은 것들이라해도―다 분토만도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세상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주를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3:8)고 강하게 말씀한 것입니다.

목사 다섯이서 <융 심리학>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저 외에 어떤 목사님이 한 분 나오는데, 그분은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를 담임하셨던 분입니다. 그분 말씀이 그 때는 당연직 이사장만 해도 십여 자리를 감당해야 했는데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체 다른 모임에 안 나가고 우리 융 심리학 공부 모임에만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명예나 세상 야망을 떨쳐 버리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그 목사님은 이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 같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바울은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썩을 면류관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 면류관을 다른 데서는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금 면류관, 영화로운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등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애쓰십니까? 아니면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 힘쓰고 계십니까? 어느 쪽입니까?

이왕이면 거룩한 야망을 갖고 삽시다. 거룩한 야망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야망입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야망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려는 불타는 소원입니다. 이런 삶은 참으로 멋진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형통(亨通)케 하십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 감리교 본부 주최의 2001년도 목회 계획 세미나 특강을 속초에서 했는데, 강의가 끝나고 옛날 제 군종 참모이셨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강의를 제일 열심히 듣는 분이 바로 그 목사님이셨습니다. 요즘은 부흥회를 많이 다니시는데 얼마 전에 미국 어떤 교회(500여명 모이는)에 가셔서 설교하시면서 제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와 그 미국에 있는 교회 담임 목사가 전에 당신을 잘 따랐는데 지금은 다들 잘 됐다고 자랑하셨답니다. 사실 그 목사님이 저는 참 좋습니다. 인간적이고 매우 순수하신 분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연세가 꽤 드셨는데도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은 계속 연구하는 분입니다. 그런 모습이 있기에 목사님은 항상 활력있고 싱싱한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눈 여겨 두었던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격려하고, 칭찬하고 어디 가서도 자랑하십니다. 그분은 옛날부터 \"나는 좋은 설교가가 되는 것, 영어 잘하는 목사가 되는 게 꿈이야\"하시며 열심히 노력해 오시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분은 정말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사는 주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야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째,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단 한 가지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존귀와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다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던 그의 야망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동요 없이, 침착하고 고요하게 살고자 했습니다(살전 4:11). 이것을 다른 말로는 \"내적 고요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은 묵상적인 삶을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의 묵상의 대상이 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43:6에서 시인은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프레드릭 파머라는 시인은 \"오직 앉아서 하나님을 생각하기만 하라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 생각을 하는 일, 그 이름을 호흡하는 일, 이 땅에서 그 일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읊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우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롬 15:20)이 그의 꿈이요, 삶의 전부였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 이런 사람이 거룩한 야망―복음 전파의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사는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선교사처럼 저 멀리 인도의 고원 지대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을지라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꾸준히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살고 싶진 않으십니까? 이런 사람이야말로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부터 오늘 본문에서 야베스가 가졌던 거룩한 야망을 살펴 볼 차례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고통\'(아픔, 근심)입니다. 그 어머니가 그를 야베스라고 한 이유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 자체를 보면 매우 부정적인 이름입니다.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 버렸습니다. 야베스에 대해서 성경은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9절)고 했습니다. 야베스가 저절로 존귀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한 그의 기도에 그의 야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그는 \"靈的 祝福\"을 간구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영적 축복을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여기서 야베스는 아마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7)―을 생각하며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축복을 받은 사람이 참으로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충만한 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삽시다.

2. \"나의 지경(地境)을 확장해 주옵소서\"하라 간구했습니다.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은 공간만을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작은 테두리 안에서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의 삶의 영역이 훨씬 더 넓어져서 더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나의 지경을 확장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은 \"의식(意識)의 확장을 위한 기도\"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의식이 넓어지면 보는 관점이 넓어집니다. 그 때 전혀 새로운 안목과 관점(비전)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중심이 잡혀 어떤 곤란과 위기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여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했습니다. 시편 138편 7절에도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야베스는 만일 하나님의 손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즉 그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능히 해 낼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세례 요한의 경우입니다.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눅 1:66) 주님의 길을 매우 능력있게 예비할 수 있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나를 주의 든든한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능력으로 맡기신 모든 일을 신실하고 충성되이 감당하게 하옵소서.\"

4. \"환난(患難)을 벗어나 근심 없이 거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야베스는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란 말을 \'악\'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악과 환난은 같은 것의 두 면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7장 15절의 주님의 기도―\"내가 비옵는 것은...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것은 슬픔의 인간이 되지 않도록 그의 모든 원수의 책략에서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원수에게서 건져달라고하는 기도가 시편에만 70번이 넘게 나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17: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56:9).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68:1).

야베스는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위의 네 가지를 간구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10절 끝).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실까요?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거룩한 야망(열심)을 품고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심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