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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요?
사무엘 상 12 : 23, 누가복음 22 : 32
David H. C. Read
라디오 설교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종종 편지로 부탁하고는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방송 끝 무렵에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는 말로서 설교를 끝마치곤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생각 속에 이런 표현을 목사이기 때문에 으레 하는 것, 즉 너무 자주 하는 것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설교 도중에 잠깐씩 이러한 요점에 대한 기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그러한 기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또 어떠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의심 많은 이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는 말에 \"그래서 요,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하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남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며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 우리는 우리 마음 한구석에서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것을 느낍니다.
1. 성경에서는 기도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시편기자나 욥, 그리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일을 거리낌없이 적어 놓은 성경구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불평이 그들의 뜨거운 믿음 속에서 비롯되었고, 기도는 유익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영향을 미치는 꼭 필요한 것임을 점점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같은 지도자들,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 20세기를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들, 이들 모두가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였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공통된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그들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 사회, 친구들, 그리고 적들을 위해 정열을 가지고, 때로는 주님께 불평하고, 성을 내면서까지 기도하고 간구 하였습니다.
(2) 그들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 못할지도 모를 정도의 큰 의미로 생각하였습니다.
모세의 예를 들자면,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사막을 지날 때, 여러 번 사람들이 모세에게 그들로부터 손을 떼고 떠나갈 것을 요구할 때도 있었지만, 이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또 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피가 없는 사이에 금으로 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에워싸고 유흥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성이 나서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으나 다시 주님께 나아가서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1-32)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열렬하고 그리스도인다운 기도입니까? 우리가 흔히 형식적으로 세상의 평화와 국가의 번영을 기도하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기도입니까 ?
(3)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인상적인 중보기도는 선지자 사무엘이 하였던 기도입니다.
그 당시 사무엘은 그의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왕위 다툼을 하는 것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자녀로 삼으신 주 하나님이심을 망각한다면 많은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 속에서도 그는 피의 중보기도를 계속해야만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마 이러한 말에 \"그래서요, 그게 어떻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쓰여졌을 당시의 상황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는 차이점이 많아 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종종 말하고는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주님께 응답을 받아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기도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잘됨을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져야 하고, 그래서 이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영혼도 살찌우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성경이 쓰여졌던 당시의 세상과 판이하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우리가 오늘날 하는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경이 쓰여졌던 당시의 세상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 사회에 살고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신비로운 영적 교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또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저로 연관되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신비를 믿을 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진리입니다.
2. 중보기도의 필요성을 사람들이 점점 더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수년 전보다 저는 요즈음 더 많은 중보기도의 요청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중보기도의 필요성을 항상 믿고있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 사항이 되는 것이 중보기도이기에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그래서요,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이 말에 대한 대답은 기도가 어떤 식으로 행하여졌는가, 즉 기도의 정신적 깊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기도는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하여 동정심을 나타내고, 또 잘되기를 기원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단순히 이런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도라고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위로의 말이나 기원의 말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와 대조적으로 이 기도는 쪽지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축복 내리실 것을 간구하는 정신이 깃들여진 기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기도에 대해\"그래서요,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2)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말의 값어치는 이 말을 하는 사람 이 얼마나 진실되고 성스러운지에 따 라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성스러움에는 도달하기 어렵지만 진 실됨은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됨은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얻어지며, 이러한 진실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기도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동정심을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가 중보기도를 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질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어떤 한 대상자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의 수가 몇 명 이상이 되어야지만 응답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의 숫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1) 종종 우리는 기도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직접적인 연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도는 나와 하나님과, 그리고 내가 기도해 주고 있는 사람과를 연결시킨 삼각형의 선이라고 생각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생각입니다. 그보다 더 성숙한 생각은 중보기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사에 하나님의 은총이 물밀듯이 흘러들어 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혼자서이든 여럿이든 간에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 그리고 도덕적인 가치의 희생을 위해 기도할 때 이러 한 하나님의 은총이 밀려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슬픔, 평화와 폭력, 건강과 병들음 등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며,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고 또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담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속으로 더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는 말과 또 중보기도의 참의미를 더 많이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중보기도할 때 주님께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에 대하여 이러이러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또는 이렇게 되 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식의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식의 기도는 믿는 자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대신에 주님께서 주님 이 보실 때 그 기도 대상자에게 가장 적당한 것을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나와 가 깜거나 혹은 조금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나를 불구하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다 잘 알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신약성경에는 위대한 중보기도자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또 개개인에 대한기도도 하셨는 바, 믿음이 흔들리는 제자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 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 값주고 사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또\"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라는 말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의 기도
신명기 3:23∼25
이상운 목사
오늘 본문은 모세에게 매우 섭섭한 상황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는 나이 80세때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아래서 소명을 주신 후에 충성된 일꾼으로 봉사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줄 것을 직언(直言)하기도 했고, 애굽에 10가지 재앙이 임하도록 하나님의 도구로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홍해를 건넌 후 가나안을 눈앞에 둔 40년 간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힘껏 발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본문에서 그 같은 당당한 자세를 보이질 못합니다. 혹시 므리바 샘물에서 자신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예전의 금지조항을 취소하실 의향이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단호하십니다. 우유부단하게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자세는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을 끝까지 보기를 간구했습니다(24절).
그는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작하셨사오니\'라는 말이 의미심장한 간구입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통해 가나안에 완전히 정복하여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는 욕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성취되는 순간에 동참하고 싶다는 과욕이기도 합니다.
신앙인 중에서 이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받을 때나 남선교회 혹은 여전도회의 임원으로 봉사할 때 공로패 같은 것을 받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이요, 나는 다만 청지기나 일꾼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를 주인으로 착각할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일꾼 중에서도 마치 자신이 빠지면 교회의 일이 엉망진창으로 될 것처럼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 뒤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불신앙이 있음을 명심하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 시내의 대형 교회의 목회자 한 분이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내심(內心)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내가 없는데 교회가 아무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자신이 없던 1년 사이에 오히려 교인수가 증가하고, 교인들이 더 열심히 사역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목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이 뛰어나기에 부흥되는 것이 아니라는 청지기 의식을 철저히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하신 것을 계속 졸라대는 실수가 없었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그의 선조였던 요셉이 말한 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 50:24)는 신앙적 자세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his part)과 우리가 해야 할 일(our part)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 모세는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즉 가나안으로 건너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25절).
사람은 누구나 생애 가운데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망했던 바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숱하게 원망하고 불순종하면서 반역을 하던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견뎠던 것입니다. 문제는 모세의 이러한 간구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4∼26은 모세의 신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것이 원래 모세의 신앙적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는 하나님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졸라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적인 자세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시고, 모세의 원래적인 바른 신앙으로 그를 바로 세우셨습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하기로 서원한 수도사 두 사람이 여행을 함께 떠났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장마비를 만나서 큰 개울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젊은 여인이 건너기 어렵게 되었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개울가에 서 있었습니다. 한 수도사는 \"내가 어찌 젊은 여자의 몸에 손댈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물살을 헤치고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동료 수도사가 젊은 여인을 등에 업어서 사나운 개울을 헤치며 건너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노정 중에 그는 동료 수도사를 계속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묵묵히 비판을 견디던 수도사가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이보게, 자네는 그 여자를 지금도 마음에 담고 있는가? 나는 개울가에 내려 주면서 벌써 잊어버렸는데…….\"
여러분! 사실은 누가 그 여인을 못 잊고 있는 것입니까?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 그런 방식으로 잘못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모세는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인간적으로 매우 섭섭하고 아쉬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몇 년 더 산다고 해도, 그것이 하늘 나라의 상급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세의 애처로운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리고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서 담대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정욕적인 기도와 하나님의 뜻이 담긴 기도를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다음과 같은 모범적인 기도문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에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제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한 마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일과 받아들여야 할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거절하신 소원들
야고보서 4 : 3
Thomas W. Currie
예수님은 \"구하라‥‥‥주실 것이요\"(눅 11 : 9),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 : 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음 소원들은 거절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거절된 소원들
(1)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막3 :32)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은 예수님이 \"미쳤다\" 하여(3 : 21) 찾아다닙니다(3 : 31).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3 : 35)이라고 대답하실 뿐 나가서 만나지 아니하십니다.
(2)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 8 : 21). 제자 중에 하나가 이 소원을 말합니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22절)고 대 답하십니다.
(3) \"선생님 내 항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 12 ; 13). 가르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이 소원을 말합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14절)
(4)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마 14 : 15). 빈들에서 가르치실 때날이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이 요망하는 말입니다. \"갈 것 없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16절).주님의 대답입니다.
(5) \"주여 그리 마옵소서\"(마 16: 22).예루살렘에서 받으실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만류하는 말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23절).예수님은 책망까지 하십니다.
(6)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앓게 명하소서\"(마 20 : 21).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23절).
(7)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눅 22 : 49).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에 대하여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이것까지 참으라\"(51절 ).
2. 거절하신 이유
(1)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으므로(막 6: 5).
(2) 제자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므로(눅 14 26).
(3) 물질만을 원하므로(요 6: 27).
(4) 영의 양식(교훈)을 받은 자들은 육의 양식도 받아야 하므로(마 6 : 33),
(5)고난 없이 영광만 구하므로(롬 8: 17).
(6) 십자가를 포기하게 하므로(마 16: 24).
(7) 검을 가지면 짐으로 망하게 되므로(마 26 : 52).
변함없으신 예수님(히 13 : 8)은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소원은 오늘도 거절하십니다(약 1 : 6-7, 4: 3).
금대접
요한 계시록 5 : 8, 마태복음 5 : 8-13
Nels F. S. Ferre
성경에서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는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면서 이 본문을 읽고 있는데, 이 이야기의 진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 찬 금쟁반에서 하나님의 제단으로 옮겨졌었나 봅니다. 그 위에서 천사들이 그 기도들 과 어우러져서 금 향로로부터 향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4)고 하셨습니다. 이 향연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기 위해 피어올랐고 천사들 은 제단으로부터 불을 지상으로 보냈습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 8 : 5).
성도들이 기도할 때는 언제나 중요하므로 확실한 일이 일어납니다. 신실한 기도는 불붙은 성냥개비를 휘발유 탱크에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즉 진실한 기도의 능력은 폭발적인 것입니다.
1. 첫째로 진실한 기도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인으로서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
(1) 만일 오랫동안 서로 가까이 알았던 사람들끼리도 다른 사람의 생애 에 들어갈 수가 없다면 현대인들이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실제한다고 느끼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이라는 수레바퀴 속에 갇힌 사람들이 자신들의 야망이나 이익 이외에 더 중요하고 진실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실존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2) 현대인의 의심은 현대인의 지식의 부재보다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 즉 우리 자신들이 실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보다 더욱더 실제한다고 인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인의 문제입니다. 아무 것도 옳거나 실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현대인은 자신들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식 깊숙이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 깊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인정하는 방법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인간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인정하고자 하는 간절한 노력에서 자신이 무릎을 꿇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기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다시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기도는 또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 현대인에게 더 어려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은 민주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우리들의 기본적인 원리에 정반대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민주주의에 살고 있으므로 봉건시대의 영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뜻이 우리들에게 내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우리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만일 이 세상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유 안에서의 성장과 자유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한 가지 뜻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에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자신들을 이해하고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좋으며 가장 깊숙이 묻혀 있는 우리자신들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은 온전히 전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모시는 것은 다른 우상에 대한 충성이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시간을 십계명중 첫째 계명인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계명을 어기며 지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기도와 실제 생활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그를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 모두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한 참그리스도인의 기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에 들어가야 할 것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성도들의 기도와 같이 금접시에 놓여지고 하나님의 제단에 들려 올려지며 능력으로 이 세상을 돕기 위해 다시 내려오려면, 우리들은 참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우리들모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겠습니다.
3. 기도는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참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인 청원(petition)과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Intercession)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이들은 너무나 우아해서 하나님께 아무 것도 간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므로 그에게 간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번 설교나 논의를 통해서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기도문에 그것을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는 또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 않겠느냐.\"(마 7 : 11) 라고 확인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이 사랑이 필요한 어린이 이며, 음식이 필요한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지창조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이기 보 다는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간구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들이 중심이며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우리 기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들의 쓰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자신을 내놓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친교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기꺼이 원하는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그에게 올려지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능력과 통찰력으로 새롭게 되어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기회가 주어지고 참기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즐겁고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를 할 때 우리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 몸을 충만케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우리들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도 훨씬 능력이 있으며, 그러한 기쁨을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은, 더 나은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합니다.
(3) 본문말씀에 의하면 우리들의기도가 금접시에 담겨지기 위해서 곧바로 올라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지고 하나님에 바쳐졌으며 커다란 능력과 함께 세상에 돌려보내졌습니다. 기도란 단순한 자기 암시나 초심리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도움을 넘어서 더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일을 시작하고 진행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무능하지 않습니다. 인간 역사에 대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나타나는 참믿음입니다.
4. 마지막으로 기도는 증언입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 참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긍정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영광을 증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적절한 기도는 하나님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기도하십니다. 말은 점점 더 중요성이 없어지고 하나님만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됩니다. 기도를 점점 덜 믿게 되고 하나님을 점점 더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권능과 그의 영광을 증거하는 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의 안에서가 아니면 아무 것도하지 않고 아무 것도 믿지 않게 됩니다. 그의 안에서 우리들은 모든 것이 존재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2) 예수께서도 당신 자신은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하신 모든 것들이 그의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반영하면 할수록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뜻과 행동을 주관하시는 이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제를 인정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그 실제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를 위해서 실제로 존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만이 실제이시며 그를 통해서만 우리의 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야말로 우리들의 삶의 중심을 하나님의 뜻과 맞추게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실제가 되시며 우리의 삶이 영원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참그리스도인의 기도로 새 삶을 얻으십시오.
기도에 대한 가르침
누가복음 11 : 1 - 13
John R. Rodman
오늘 설교의 제목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에 대한가르침이라는 말씀이 어떻게 기도를 하며,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는지를 배우는 뜻이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가 항상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그의 좋은 선물을 위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1. 기도의 요소
기도의 기본적인 요소는 반드시 목적과 목표와 기원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우리의 기도에 들어가야 할 적당한 분위기와 알맞은 목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분을 인식해야 합니다.
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선언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는 전능하신 창조주시요 우주의 왕이십니다.
③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는 그가 영원한 계획 속에서 그의 창조의 모든 부분마다 하나님의 전위와 그의 거룩하신 권리와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가 바라시는 것을 우리가 바라며 우리 자신들을 그에게 바치는 것을 보여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청원은 우리들을 우리의 뜻과 소망과 바라는 바를 검사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께 보여 드리기 전에 그것들이 하나님의 뜻과 합당한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것을 청원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서 우리는 음식만을 간구하면서 한 번에 단 하루의 분량만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청원은 두 가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공기, 물, 기타의 음식까지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매순간 순간 마다이며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식사 때나 잠자리에 들 때마다의 기도에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는 아무데나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3) 은혜와 정의로우심 안에서의 재건을 위한 청원
누가복음에서의 말씀은 우리들 기도의 목적이 죄사함의 간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죄라는 단어 대신 빛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누가가 사용한 죄라는 단어는 우리가 행하여야 할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뜻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누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빛을 용서하여 줄 수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죄를 사하여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서 그가 우리들을 매순간 지켜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시게 간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죄가 큰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만큼 우리들은 영혼의 지배자가 우리가 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2. 집요함의 중요성
(1) 불친절한 친구
예수께서는 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와주기를 꺼려하는 친구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친구는 우정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끈덕짐에 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간구에 대한 응답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버트릭은 그 친구가 이웃의 구원이 단지 장난이 아니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를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친절하신 분이 아니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우리의 각오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우리가 끈덕지게 조르는 것을 원하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비유는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 안의 교제에 있다는 것은 확신시켜 줍니다.
(2) 부지런함을 요구하심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여러분은 확실한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현재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 사이에 간단한 비유를 사용하심으로써 기도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열리기를 기다리는 천국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친절한 이웃이나 사악한 아버지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로의 부르심
야고보서 5 : 16
Brian Harbour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은 단순히 성경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한 구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를 초월해서 증명된 기도의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증거입니다. 킹 제임스(King James) 번역본에 의하면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의인의 효력 있는 뜨거운 기도는 많은 곳에 유용하다. \"
이 말씀에는 능력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힘\'(에너지)을 나타내 주는 그리스어이며, 다른 하나는 \'강함\'(strength)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입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함으로써 느슨했던 것이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통하여 유용해질 수 있는 그 위대한 능력을 새롭게 실현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사역엔 다시 여러분을 부르기 위하여 오늘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1.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모두 기도에 다시 헌신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내 주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 다니엘의 경험을 기억해 보십시오.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 의해 대단히 높임을 받았습니다.
파사의 원로 지도자들에게서 맹렬한 질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불신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다리오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인간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조서에 어인을 찍도록 다리오 왕을 설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 :10)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다니엘의 기도는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기도하는 백성입니다. 노아는 보호받을 것을 기도 드렸으며, 아브라함은 갈 길에 대하여 기도 드렸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위해 기도 드렸고, 모세는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위해 기도 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승리를 위해 기도 드렸습니다. 세례 요한도 응답하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기도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3)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모든 관심은 자아실현에만 있습니다. 우리들이 무릎을 꿇고 세상을 향하여\"우리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고 말할 때, 그리고 기도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2. 또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모두 기도에 자신을 헌신하도록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믿는 자들로서 우리를 성숙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 바울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바울이 왜 그렇게도 강력한 신앙을 지녔는가 기이히 여겨본 적이 없습니까? 왜 바울은 그렇게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지녔습니까? 바울의 영적인 능력에 대한 비밀은 갈라디아서 1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자기의 회심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15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
(2) 바울은 그 다음절에서 \'그 후 삼년 만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홀로 하나님과 더불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쇠를 얻었습니다. 그 3년 동안 바울은 기도의 습관을 개발했습니다. 그 습관은 바울의 전생애에 걸친 목회 사역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성장케 하는 것은 항상 기도의 궁극적인 결과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누가복음 18 : 1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믿음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통해서입니다.
3.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에 다시 헌신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우리의 교세를 극대화시켜 주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경험을 기억 하십시오
(1) 구약성경에는 예배에 관한 중요한 용어로 샤카(shachah)가 있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엎드리다\', 또는 \'부복하다\'라는 뜻으로 존경과 숭배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배에 관한 중요한 용어로 프로스쿠네오(proskuneo)가 있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손에 입을 맞추다\' 혹은 \'엎드리다\'의 의미입니다. 역시 존경과 숭배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찾아서, 새롭고 신선하게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는 위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 님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친구로서 아브라함은 전 생애 동안 기도했고, 그 기도 때문에 일평생 하나님과 궁극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3) 그런 잎이 우리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 :8). 그것은 기도에 대한 성경의 가장 위대한 말씀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며,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교회요 성도들이 기도에 다시 헌신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1) 초대교회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적으로 말해서,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던 작은 제자의 무리들이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팔레스타인 구석구석을 찾아 갔습니다. 로마 제국을 찾아갔습니다. 마침내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헌신적으로 무릎을 꿇었을 따름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해답은 사도행전 1 : 14 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2) 기독교 역사를 추적해 보면 여러분은 같은 열쇠를 찾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각성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의 위대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각성과 운동 위에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매일 기도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그때 우리는 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싸울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입을 열어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포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존전에 서 있으며 그분의 눈을 깊이 응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기도에 대하여 더 말씀드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끝으로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에 다시 헌신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 주 하나님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1) 갈멜산 위에서의 엘리야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하루 종일 훌륭하게 영적인 전쟁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강 18 : 39)
(2) 그것은 기도의 궁극적인 결과입니다.
우리가 기도 사역에 헌신할 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극대화하고 증인들을 움직이게 되면 그때 비로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그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라고 엘리야 시대의 백성처럼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3) 이 모든 것이 야고보 사도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할 때에만 비로소 능력 있는 백성으로 이 세상과 싸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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