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주일 설교 26편

어버이주일 설교 26편\"|어버이주일
 

제목:예수께서 어린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본문:마태18: 1-5

누군가 18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했다고 하였습사러수는 역사의 원년을 이루는 그의 삶 속에서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인의 표본으로 교훈하셨습니다(마 18:2, 막 9:36).

Ⅰ.예수의 어린이관에 대한 성경을 봅니다(마 18:1~5).

마태복음 18장 2~5절 중에서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15절에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 35~37절에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3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어린이관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어린이는 한편 구석에 있어야만 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른들 구석이나 가족들의 구석이나 사회나 국가의 한 구석이나 교회의 구석에 있어야 될 존재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들 한가운데 세우셨을까? 우리는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사실을 능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1) 어린이 자체의 존재적 중요성을 일깨워 줌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예수님 제자들이나 어른들은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업신여겼습니다. 사실상 저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여자들과 함께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어린이는 아직까지 미숙한 존재로 가운데가 아닌 구석이나 밖에 있어야 될 자들로 취급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실로 놀라운 예수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존재적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2) 어린이는 마땅히 영접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부모와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서 언제나 그 중심으로, 한가운데로 영접 곧 환영받아야 될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어린이를 영접함이 곧 예수를 영접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영접할 정도가 아니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결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가운데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어린이는 천국인의 표본이 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게 있는 특성을 강조함으로 중생인(거듭남)의 품성을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① 돌이킴, 곧 회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잘못에 대한 자기 변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②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③ 남을 섬기는 받듦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④ 부모를 향한 신뢰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⑤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⑥ 주어진 행복에 대한 만족과 감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⑦ 미래를 향한 소망심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3복음서에서는 어린이에 대하여 말할 때,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한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이 아닌가!

4) 어린이는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① 영접하였습니다. ② 자기에게 나옴을 용납하였습니다. ③ 그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④ 저희 위에 안수해주셨습니다. ⑤ 그리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마땅히 가운데 세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 아닌가! 예수 사랑과 축복의 대상들은 언제나 가운데 세움을 받는 자들입니다.

5) 어린이는 하늘에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 18:10).

Ⅱ. 교회의 한가운데 어린이를 세워야 됩니다(마 18:6~14).

예수님의 삶은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운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에 대한 교훈을 행하신 그 배경에는 제자들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쟁론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게 된 것입니다(막 9:33~34). 저들은 또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라고 주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크냐고 하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제일 큰 자’라고 대답하시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고 천국에 대한 교훈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에 와서 교회로 하여금 어린이를 교회 가운데 세워야 한다는 책임 있는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우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1)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실족케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8:6~9).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소자’(mikrovi)는 앞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지목할 뿐만 아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에게도 해당됩니다. ‘실족’이란 말은 ‘넘어지게 하다’(마 16:23), 혹은 ‘오해하게 하다’(마 17:27)라는 뜻으로 유혹에 빠뜨려 그 믿음을 넘어뜨리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함으로,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의 받을 앙화(殃禍)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자를 실족케 하는 손이나 발이나 눈은 예외없이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마 18:7~9).

2) 예수 믿는 하나의 소자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멸시하지 말라, 관심 밖의 존재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있는 데도 없는 것 같이, 귀한 데도 천한 것 같이 여기지 말라고 한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그 소자들은 이미 하늘에서 파송받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국가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단 10:13, 12:1). 교회를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1:20). 혹은 개인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12:15). 본문에는 어린이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마치 신복이 왕을 가까이 배알하듯이(왕하 10:8), 하나님 앞에서 저 어린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8:10).

3) 예수 믿는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지 않고 다 찾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3~14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심정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그것을 100마리의 양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예수의 목자적 가슴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소자에 대한 교회의 목자적 가슴은 ① 개인적인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리 양, 한 소자입니다. ② 참으시는 인내의 사랑입니다.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는 인내입니다. ③ 궁극적으로 찾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찾고 마는 것입니다. ④ 그것은 기뻐하는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궁극적 구원의 사랑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 교회가 어린이(小子)를 한가운데 세워야 할 책임있는 사명입니다. 교회가 어린이를 한가운데 세움에 있어 그 어린 소자 하나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는 찾도록 찾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아니 감사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라고 하였습니다. 천국복음의 비밀이 어린아이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그 현장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를 찬양하는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마 21:16)라고 격찬하며 만족하셨습니다. 천국은 바로 아이들의 세계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였습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어린아이에게 끌려 다니는 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6). 젖 먹는 어린아이와 젖 뗀 어린 아이들이 맹수들과 함께 사는 평화세계라고 하였습니다(사 11:8). 말하자면 갓난아이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영적 중생인들의 세계를 말합니다(벧전 2:2, 벧전 1:2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이것은 지상의 전투 교회와 내세의 승리 교회(천국)의 특색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세계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 한가운데 서야 될 존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저희 한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시민성을 교훈하였습니다. 중생받은 영적 어린이는 하나님나라에서 중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회개와 겸손과 신뢰심과 순종과 감사와 소망의 품성을 지닌 천국인의 표본이 됩니다. 저들이야말로 주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교훈하였습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이러한 어린아이들을 한가운데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을 한가운데 세우기 위하여 하나라도 실족케 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그 하나를 잃으면 찾도록 찾아내고 마는 예수님의 목자적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인의 품성을 교훈하셨습니다. 지적으로, 체력적으로,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도록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야말로 가정과 교회와 역사의 중심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중심에는 영적으로 거듭난 아이, 곧 갓난아이, 젖 먹는 아이, 젖 뗀 아이, 어린아이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저들이 교회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교회된 특색과 미래적인 중심의 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받은 새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교회의 한가운데, 역사의 한가운데 세우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영적 어린아이는 교회에서 가장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이 집의 가운데는 어린아이들이 서 있어야 합니다. - 아 멘 -
  ===========================================================================================                                                                                          제목 : 어른이 되고자하는 자는                                       본문 : 마-18-01-5                                       어른이 되고자하는 자는 먼저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마 18:1-5)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질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는 누가 큰자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마가복음서의 기사에 의하면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를 떠나 가버나움으로 오는 도상에서 이 질문을 가지고 제자들사이에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앞에 세우시고 가르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큰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문화권에서는 큰분을 가르켜 어른, 어르신네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의 교훈을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른이 되려면 먼저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또 하나의 믿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역설이란 모순되어 보이지만 진리인 것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의 교훈의 핵심이 어린이의 소중함이었다면 오늘 어버이 주일의 교훈의 핵심은 어른들의 소중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이와 어른의 소중함을 놀라운 진리의 역설로 가르치십니다. 어린이는 어른같이 다루어 질수 있어야하고, 어른은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성숙한 인격의 질로서 \'어른아이다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야 한다는 교훈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어린아이의 유치함, 어린아이의 나약함, 어린아이들의 흔들림등에 대한 적지않은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울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성인들이 이 어린이들에게서 배울 것들은 천국백성들의 인격적 본질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천국백성들이 배워야 할 어린아이다움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1. 어린이의 신뢰성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과 비교할 때 가장 현저한 대조적인 특성은 신뢰성일 것입니다. 어린이는 잘 믿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믿지 못합니다. 종종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주의시키는 말 가운데는 \"사람 다 믿지 말라\'는 말 아닙니까?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상처받은 혹은 배반당한 인생 경험 때문에 세상을 믿지 못합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믿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도 신뢰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없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수도 천국에 들어 갈수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 혹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믿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시람을 믿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는 얼마나 잘 믿습니까? 그들은 친구를 믿습니다. 이웃을 믿습니다. 선생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렸을 때 믿음을 갖지 못하면 어른이 될수록 늙어 갈수록 믿음갖기가 더욱 어려워 진다는 것은 통계학적인 진리입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믿지 못할 여러 배신의 경험으로 가득차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결코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갈수 없습니다. 수학의 공식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믿음의 전제(명제)를 수용하지 않고는 수학도 풀리지 않습니다. 과학자가 자기의 실험이나 탐구의 결과를 믿지 못한다면 그의 실험이나 탐구가 진행될수 있겠습니까? 사업가가 자기가 착수하는 사업의 결과를 믿을수 없다면 의욕적인 사업의 추진이 가능하겠습니까? 정치가가 자신의 선출을 믿지 못한다면 또한 자기의 정치참여를 통한 보다 낳은 세상의 개혁을 믿을수 없다면 정치에 투신할수 있겠습니까? 교육가가 자기의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의 배움과 학문의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면 교육이 가능하겠습니까? 의사가 자기의 진단과 치료를 믿을 수 없다면 진료가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초도 믿음입니다. 잘 아시는 히브리서11:6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님의 구주 되심에 대한 믿음-이 믿음 없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한1: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2. 어린이의 단순성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성의 반대는 복잡성입니다. 어른들의 사고는 복잡합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단순합니다. 단순하기 때문에 잘 믿고 잘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금세기의 영성운동의 큰 스승인 리챠드 포스터는 단순성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의 트레이드 마크(trade mark)이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단순성의 두가지 표현은 솔직함과 만족함이라고 가르칩니다. 단순성은 솔직함입니다. 단순한 사람은 투명합니다. 그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사고는 복잡합니다. 여러 가지를 계산하기 때문합니다. 어린이가 솔직할수 있는 것은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익계산을 다하고 예수님 따를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수요예배에 12제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제자들에게 공통된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단순성입니다. 단순하게 믿고 단순하게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순함이 세상을 감동시키는 힘인 것입니다.

단순성의 또 하나의 표현은 만족함입니다. 단순한 사람은 단순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의 만족은 현재에 있습니다. 그는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보십시오. 별것아닌 것 가지고 기뻐하며 만족합니다. 누가 어린이에게 고가의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까? 어른들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장난감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종이조각 하나, 떨어진 단추하나, 나무 가지 하나도, 기어다니는 곤충하나도 모두 신기한 장난감입니다. 이것들과의 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십시오. 행복함 그 자체가 아닙니까?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오늘의 가치관은 현대인들에게서 단순한 행복을 빼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어떤 수도사 지망생이 산위 높은 곳에 있는 수도원을 찾아올라 와서 큰 스승앞에 엎드려 진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이 스승은 젊은 수도사 지망생에게 \"산위에 오르는 동안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찾느라고 미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하자,\"네가 산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지나친 그 많은 꽃들의 행복과 시내물의 노래소리를 떠나 어디에서 너는 진리를 찾고 행복을 구하겠느냐\"고 되돌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눈을 떠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지금 여기서도 만족할수 있는 행복이 지천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내가 숨쉴수 있는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릴수 있는 행복,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수 있는 행복, 이런 단순함의 눈이 열린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도 천국을 보고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단순성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3. 어린이의 개방성을 배워야 합니다.

개방성은 열린 마음입니다. 호기심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실로 어린이의 특성은 끊임없는 호기심이 아니겠습니까? 열린 마음의 반대는 닫힌 마음입니다, 폐쇄성입니다. 더 이상 새로운것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탐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의 의식구조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발전이 없습니다. 호기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관찰해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하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더 알고 싶어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신비를 더 알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백성들의 특성이 아닙니까? 그런데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상실한채로, 비 본질적인 것들을 가지고 논쟁을 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에 대한 호기심보다도 천국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에만 관심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개방성이야 말로 우리를 젊게하는 비밀입니다. 유대인 랍비 시드니 그린버그는 정신적인 청년과 정신적인 노인의 차이를 이렇게 구별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믿는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의심으로만 대한다면 노인이다. 우리가 받기보다 주고자 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받기만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즐길 것을 즐길줄 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인생이 뜻대로 안된다고 해서 꿈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로부터 존재한 편견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아직도 성공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공상만 일삼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다면 노인이다. 우리가 아직도 사랑을 찾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독을 떠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아직도 행복을 추구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우리가 사랑을 주고 받을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받기만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성실성에 달려 있다고 믿고 아직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어버이들께서 이런 개방성을 지닌 어린이의 마음으로 혹은 청년의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개방성은 창조력의 원천이요 우리가 창조할수 있는 한 인생은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소위 창조적인 계절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노년기에 오히려 더 위대한 창조를 남긴 사람들의 기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선 성경을 보십시오. 모세는 80세에 자기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위대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84세에 메시야 대망의 기도가 응답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아직도 \"그 산지를 내게 주소서\"외치며 미완성 과업을 향한 인생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90세에 주께로부터 환상을 받아 인류 역사에 대한 불멸의 계시를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된 생명 이삭을 품에 안을수 있었습니다.

대령 샌더스는 나이 66세에 유명한 캔터기 프라이 치킨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소설가 홈스는 70세에 \'커피잔 너머\'라는 명작을 저술했습니다. 레이건은 70세에 미국 대통령이 되어 미국 역사상 가장 인상깊은 스피치들을 남긴 대통령으로 또한 통치기간 가장 백성들을 행복하게 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전도자 빌리 그래함은 80대에 아직도 왕성한 열정으로 세계적인 전도 집회들을 인도하며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시인 로버트 부라우닝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자./가장 좋은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나니/인생의 끝 그것은 처음을 위하여 만들어졌나니/하나님을 신뢰히라. 전체를 보라. 두려워 하지말라.\" 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태어날 때 모든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홀로 울었나니. 그러나 내가 죽는 날 모든 사람들은 울고, 나는 홀로 웃을수 있는 삶을 살자\"

그렇습니다. 젊음을 결정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우리교회 모든 어르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시고 어린이의 믿음, 그 단순성 그리고 개방성을 가지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시는 영원한 소년 소녀, 영원한 청춘을 누리시는 어버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제목 : 천국의 스승                                       본문 : 마-18-01-6                                      
  

 

시      편   15: 1- 5
마태복음  18: 1- 6
 

  카릴 지브란의 책 속에 나오는 예언자 알무스타파는 어린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아니니라. 그들은 당신을 빌어서 오나 당신으로부터 오지는 않느니라. 그리고 비록 그들이 당신과 더불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의 것은 아니니라.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어도 좋으나, 당신의 생각을 주려고 하지는 말아라.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당신은 그들이 몸담을 집을 지어줄 수는 있으나, 그들의 넋이 깃들 집은 지어줄 수 없나니, 그들의 넋은 당신이 찾아갈 수 없는, 꿈에서라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서 살고 있기에.

  당신은 그들과 같이 되려고 애써도 좋으나, 그들을 당신과 닮게 만들려고 하지는 말아라. 삶은 뒷걸음질치지도 않거니와 어제와 더불어 꾸물거리지도 않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천국의 스승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려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가르치려 하고 또 소유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이들을 그르치고 그들로 말미암아 부모 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산층의 자녀들이 범죄 청소년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가르칠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그것으로 아이들을 무엇인가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는 부모 때문입니다. 차라리 가난하였을 때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배우도록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웁니다. 자연을 보고 배우며 하나님이 저들을 위하여 두신 모든 환경에서 배웁니다. 음악적 소질이 있으면 아무리 가난하여도 스스로 그 음악적 재질을 키워나갑니다. 하나님이 아이에게 주신 재능과 소질을 우리가 올바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억지로 부모가 원하는 재능을 강요할 때 그 아이는 그릇되기 시작합니다. 소질이 없는데도 피아노를 쳐야만 하는 현대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괴롭기만 합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옆에서 이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남의 집 아이를 잠시 맡았을 때 그 아이에게 우리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들입니다. 하나님이 잠시 우리에게 맡겨 주셨을 뿐입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면 하나님이 곧 찾아가십니다. 아이들은 그 부모를 곧 떠납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 아이에게서 배우고 그들을 올바로 돌보아 줄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을 올바로 양육하는 비결은 그들을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들을 내 마음대로 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육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부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바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소유하지 않고 독립된 인격으로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쩌다가 가끔 아이들의 책상에서 그들이 써놓은 일기나 편지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이것을 쓴 것이 내 아이인가를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생각이 내 아이 속에 있었다는 발견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내가 너무 그 아이와 동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곤 하였을 것입니다. 결코 아이들은 내 소유일 수 없습니다. 내 생각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소유가 아닙니다. 내가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섬세하며 까다롭고 거룩한 인격입니다. 간단한 기계조차 그 원리를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복잡하고 섬세한 인격을 알 수 있으며 다룰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화초를 가꾸는 일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적당한 토양에 심어 때를 따라 적당량의 물을 주면 화초는 저절로 자라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들이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적당한 사랑을 부어주면 저들은 아주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좋은 환경이란 좋은 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환경을 뜻합니다. 자연이 그 무엇보다도 좋은 환경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그 아이들에게는 최적의 토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물을 주면 나무의 뿌리가 썩는 것처럼 지나친 과보호나 사랑은 그 아이를 그릇되게 만들기 쉽습니다.

요즈음 화초를 가꾸는 일에 있어서도 화초가 가진 본성대로 자라게 두지 아니하고 억지로 그 모양을 바꾸고 혹은 성장을 억제해서 사람이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들어 놓습니다. 철사를 감아서 억지로 휘어지게 만들고 가지를 잘라내므로 모양을 가다듬습니다. 이런 분재(盆栽)는 기르는 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뜯어고쳐 기형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우리의 아이들을 그런 모양으로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소질이 없는데도 억지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음악을 공부하게 합니다. 좀 자유롭게 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이를 억지로 가두고 공부하도록 몰아넣습니다. 자기 적성과는 상관없이 덮어놓고 아무 과나 선택하여 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기형적인 인격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가 만든 분재와 같은 작품입니다. 분재는 기형일수록 보기가 좋습니다만 우리 아이의 기형적인 인격은 우리의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사랑을 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천국의 스승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그들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자

우리의 아이들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회개하여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는 우리에게 천국을 가르쳐주는 스승입니다.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어린 아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정에 아이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어린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정결치 못함과 신뢰치 못함과 사랑 없음을 깨달으면서 회개하여 이런 아이와 같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야말로 천국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런 천국의 스승을 우리 가정에 다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들에게서 배우려 하는 대신 그들을 악마의 자식으로 만들려 하며,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아 가지고 온 그 사랑과 믿음과 순진함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런 것은 바보스러운 것이요 미완성의 것이며, 출세하는데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와 같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끊임없이 우리를 어린 아이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는 소리가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사는 일은 손해요, 믿음을 갖는 것은 항상 사기 당하기 쉽고, 겸손한 자가 되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라는 소리를 따라 우리는 늘 욕망이 가득한 어른으로 머물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어른에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순진함을 되찾고 정직하며 겸손하며 단순해지며 사랑하며 믿으며 그리고 꿈을 갖는 것―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천국의 스승인 어린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에게서 이런 보배들을 보면서 배우고 동시에 그 보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가꾸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가르칩니다\"라는 시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그 어린아이는 당신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당신이 가르치는 그 아이가 당신을 가르칩니다.
  당신은 그더러 예수와 같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당신은
  그가 이미 당신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잊었습니까?
  당신은 그의 잘못을 올바로 가르친다고 하지만 가르치는 쪽은
  당신이 아니라 마음이 더 깨끗하고 자유로운 그입니다.
  당신은 그더러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알 수 없겠습니까?
  그보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는 단순한 믿음으로 즉시 믿으나
  당신은 당신 나름의 의심과 이유를 찾아냅니다.
  당신은 그더러 용서하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모르겠습니까?
  그는 당신이 가르칠 때 이미 용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가 용서할 때는 당장에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습니까?
  원한을 오래 품고 빚진 자를 잊지 못합니다.
  당신은 그에게 사랑을 가르치려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외칩니다.
  \"얘야, 내가 선생이 아니라 네가 선생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르치는 그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를 닮으십시오.
천국에 가려면 그래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순진하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가 미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단순하던 아이들이 간교하고 얄밉도록 꾀를 쓰게 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이 모두가 어른들의 잘못이요 책임입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서 그 보배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귀하게 여겨 배우며, 동시에 그것을 잘 간직하도록 도와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의 양육은 믿음 없이는 올바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천국을 맛보게 하는 아이들

이 어린이들은 우리에게 천국을 가르쳐 줄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천국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 어린 아이가 있으므로 해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잠시라도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랑을 선사하고 기쁨을 주며 우리로 웃게 만듭니다. 이런 보배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린이를 주시는 것은 천국을 우리에게 선물하시는 것입니다. 그 아기의 웃음소리, 그 눈짓, 그 몸짓 하나하나가 기쁨이요, 사랑이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때면 가족들이 모입니다. 이런 때에 언제나 주인공은 예쁘게 자라나는 아기들이 단연 그 모임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아기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이루어지고, 그 아기의 재롱 때문에 웃으며, 그 아기 때문에 분위기 전체가 기쁨에 충만하게 됩니다. 아기가 있는 곳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마귀는 무서워 도망을 갑니다. 젖내나는 아기를 품안에 안을 때 누구나 거기서 사랑을 느끼며, 기쁨을 맛봅니다.

가끔 내 자녀들의 어렸을 적 사진을 들추어보면서 그들의 해맑은 웃음이 함박꽃처럼 피어있는 사진을 발견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잔잔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함박 웃음은 하나님의 미소입니다. 조지 라이드 아웃의 \"어린이 찬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창조하실 때 이른 아침부터 하셨다. 어둠을 물리치며 떠오라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시고 밝아오는 하늘색으로 아기의 눈빛을 삼으셨고, 진홍빛 아침 노을로 아기의 뺨을 칠하시고, 황금빛 햇살로 비단결 머리를 만드셨다. 재잘재잘 지저귀고 속삭이는 새들의 노래를 들으시고 아기의 목소리를 삼으셨다. 때로는 부드럽고 낮은 음으로, 때로는 감미롭고 강렬한 음으로 조율하셨다.

양떼 속에서 이리저리 뛰노는 어린양들을 보시고 그 활발한 동작을 아기의 심장에 넣으셨다. 은빛 여울을 보시고 그 음악을 들으시고 아기의 웃음을 여울소리처럼 만드셨다. 사랑의 날개를 타고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려 서둘러 가는 빛나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시고 순결과 사랑으로 아기의 마음을 지으셨다.

아기를 만드신 다음 세상에 내려보내 가정에 기쁨을 주시고 푸른 들판에 웃음을 주시고 가는 곳마다 즐거움을 주셨다. 아기를 가정에 보내시고 부모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이 아이를 양육하라.\" 교회에 보내시고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과 계명을 가르치라.\" 나라에 보내시고 말씀하셨다. \"사랑으로 대하여 주라. 나라를 위해 은총을 빌 것이며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겨레에 보내시고 말씀하셨다. \"선하게 대하여 주라. 가장 거룩한 재산이요 희망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이는 천국의 스승입니다. 나의 소유로 생각하고 내 뜻대로 하려 하지말고 겸손히 그들에게서 천국을 배우고 그들이 천국에서 가지고 온 보배들을 고이 간직하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감사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그 웃음을 통해 위로 받으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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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마18:1-7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거듭해서 가르치신 말씀들 중의 한 말씀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지난 22년 동안 거듭해서 강조한 말씀들 중의 한 말씀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좋은 신자가 될 수도 없고 행복한 신자가 될 수도 없다고 강조한 말씀입니다. 오늘아침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3가지 순수한 성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어린아이는 순수한 소원을 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를 손으로 잡고 싶고 하늘에 떠 도는 흰 구름을 보면 구름을 타고 멀리 날아가고 싶은 순수한 소원을 품습니다. 아빠를 보면 아빠와 같이 되고 싶고 엄마를 보면서 엄마와 같이 되고 싶고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과 같이 되고 싶어하는 소원을 품습니다. 우리교회의 성혜진 어린이는 어린아이 때부터 목사님을 좋아하며 목사님과 같이 되고 싶은 소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3월 6일 저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성혜진이예요. 목사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저도 커서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목사님이 되고 싶으면 성경과 찬송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우고, 많이 쓰고 그래야 겠죠. 그렇지만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목사님! 목사님은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어요. 제 생각에는 목사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많이 믿고, 성경과 찬송을 많이 외우고 부르고 쓰셨죠? 목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님 같아요. 목사님! 저도 목사님이 될려면 목사님처럼 성경을 많이 읽어야 겠죠? 목사님 그리고 목사님이 될려면 참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꼭 목사님이 되서 하나님도 잘 믿고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될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님이요. 목사님 궁금한 게 있어요?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은혜로운 말씀을 어디서 가져오세요? 성경책에서 가지고 오신 것 같아요. 성경책에서는 은혜로운 말씀이 담겨있으니까요. 목사님 찬송가에도 은혜스러운 찬양이 담겨있을까요?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목사님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성혜진 올림.\"
 저는 이번 워싱턴 디씨에서 강의를 하면서 거기 모인 목회자들에게 혜진이의 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이길자 라는 어느 여자 전도사님이 혜진이의 편지에 감동을 받고 저에게 20불을 주면서 혜진이에게 선물을 사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혜진에게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혜진이의 순수한 소원을 축복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순수한 소원을 품고 사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소원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저는 어렸을 때 평양에 있을 때 3가지 소원을 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소원과 마음껏 공부하고 싶은 소원과 목사가 되고 싶은 소원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둘째, 어린아이는 순수한 믿음을 가집니다.
 어른들은 계산적이지만 어린이들은 무조건 믿습니다. 저는 이번 시카고 헤브론 교회에서 3일간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6살 난 어린아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헤브론 교회는 2000여명의 성도들을 가진 순수하고 뜨겁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너무나 좋은 교회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송용걸 목사님과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왔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은혜를 흡족하게 받으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참으로 좋은 교회였습니다. 넓은 땅에 아담한 교회당과 커다란 교육관 건물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넓은 땅과 교회당 건물들을 사게 된 동기가 6살 난 어린아이의 소원과 믿음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헤브론 교회의 담임 목사님인 송용걸 목사님의 6살 난 딸 송수잔이 어느날 유치원에 갔다가 오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선교 단체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교단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선교단체가 소유하고 있던 8 에이커 즉 1만 평의 넓은 땅과 8동의 선교부 건물들을 파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6살 난 딸은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에게 그 넓은 땅과 건물을 사서 교회의 땅과 건물로 쓰자고 했습니다. 그 땅은 너무 넓고 그 건물들은 너무 큰 건물들이기 때문에 송용걸 목사님은 처음에는 딸의 말에 선 듯 동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딸은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그 땅과 건물을 사자고 졸랐습니다. 순수한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송수잔 어린이는 그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땅과 건물을 사자고 졸랐습니다. 송 목사님도 단순하고 순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면 사도록 하자고 말하고 교회의 성도들과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도 모두 그 땅과 그 건물을 사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결국 그 땅과 그 건물을 샀습니다.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1990년 5월 입당예배를 드리는 날 헤브론 교회는 500불짜리 수표를 감사의 뜻으로 송수잔 어린이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헤브론 교회가 한 어린아이의 순수한 소원과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도 교회의 분위기가 너무 순수하고 순박하고 감동과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이루어 주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가 품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11살 때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믿음을 현실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해 주셨고 마음껏 공부하게 해 주셨고 목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셋째, 어린아이는 순수한 사랑을 지닙니다.
 순수한 사랑이란 조건 없이 주고 싶어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이해 타산적이지만 어린이들은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동혁이네 가족들과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저희는 또한 이번에 강변교회 부교역자 출신 목회자들과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뉴욕 중부교회의 김재열 목사님과 김숙희 사모는 강변교회를 같이 시작한 창립 멤버들입니다. 뉴욕중부교회 역시 순수하고 소박하고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아주 좋은 교회였습니다. 3일 동안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김재열 목사님과 김숙희 사모는 20여년 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아니 더 순수하고 사려 깊은 사랑을 저희들에게 베풀어주었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New England 풍의 호텔에서 편히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집회를 인도하도록 세심한 사랑의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헤어지는 날 뉴욕 공항에서 잠시동안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받을 사례비를 중부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린다고 돌려주었을 때 안 받는다고 승강이를 벌였고 나는 다시 돌려준다고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사람들이 몰려들고 공항 경비원까지 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완강하게 사례비를 돌려주고 도망치듯 뛰었을 때 김숙희 사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워했습니다. 사랑을 순수하게 주고받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일이고 어린아이들의 성품을 지닌 어른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 흐뭇한 일입니다.
 이강호 목사님과 방영희 사모는 강변교회에서 함께 주님을 섬기던 신실하고 순수한 분들입니다. 런던 갈보리 교회에서 목회를 너무나 잘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갈보리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순수하게 은혜를 사모하며 흡족하게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방영희 사모가 말하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강호 목사님과 방영희 사모님이 저희 두 사람과 동혁이네 가족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너무 극진했습니다. 이틀 밤을 너무 좋은 호텔에서 너무 잘 쉴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주었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호텔에서 헤어지는 날 아침 잠시동안 또 한번의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제가 이미 지불한 호텔 비용을 극구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제발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면서 방영희 사모가 봉투를 제 가방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순수하게 주고받을 때 저희들의 마음에는 잔잔한 감동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조건 없이 순수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세계이며 교회와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기뻐하시며 우리들의 삶을 축복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기뻐하며 행복을 누렸습니다. 남한에 내려와서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신학교에 다니던 주일학교 선생님 두 분이 너무 가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저는 중학생이었지만 쌀을 구해다가 두분 선생님들에게 갖다 드린 일도 있고 선생님 한 분에게는 성경책을 사드린 일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강변교회 어린이들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유년부의 다원이는 언제나 저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순수하게 주고받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한 소원을 가집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한 믿음을 가집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순수하게 가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불순하게 됩니다. 소원도 믿음도 사랑도 불순하게 변질합니다. 예수님은 불순하게 된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우리들을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어 주십니다. 다시 순수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너무 어른이 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얘들아”라고 부르시면서 어린아이가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품은 소원이 어떤 소원입니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들이 주고 받는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입니까? 어린아이들의 것과 같은 순수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른들의 것과 같은 이기적이고 불순한 것들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아침에도 2천 여년 전과 꼭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소원과 믿음과 사랑을 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도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정말 어린이 순수한 성품을 지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정말 어린이의 순수한 성품을 지니도록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어린이 천국 잔치                                       본문 : 마-18-1-10                                      
마태복음 18 : 1-10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 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 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 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 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 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 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 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 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 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 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 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 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 세기는 남자를 발견했고,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 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이해에 대한 변화를 나타내는 말 같 습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신기 원이시던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 고 저 위대한 자신의 천국 복음을 입증하였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야 어린아이들의 중요성을 발견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도 확실히 세기적(世紀的) 선구자였습니다.

Ⅰ. 예수님과 어린아이와 천국에 대한 교훈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천국 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하 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 은 자기 앞에 모인 여러 어린이들 가운데 한 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은 어른들의 교만(방자함)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들의 겸손을 지목 하고 있습니다.

다시 4절에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심으로 어린이를 겸손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5절에 「누구든지 내(예수) 이름으로 이 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 (예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심으 로 어린이가 크게 환영을 받아야 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6절에 「누구든지 나(예수) 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 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지 말라는 말은 거침돌이 되지 말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0절에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 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을 위 하여 항상 수호 천사를 파송하고 있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4 절에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언덕에서 한 어 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 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가지고 저 놀라운 이적의 재료로 삼았습니 다(요 6:9-13). 그 어린이가 가진 보 잘것없는 소유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요 6:14)의 표적을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을 먹여 주는 간접적 요 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최후 예루살렘 입 성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자신을 보고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의 열 광적인 환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 다. 이때 유대교권주의자들인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을 내며, 예수님께 저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 리를 듣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 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 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하시며, 구약 시편 8 편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 이는 젖먹이들의 감사 찬송을 하나 님이 기쁘게 열납하고 있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호 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어린 아이들의 소리는 결코 시끄러운 소 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 시는 온전한 찬미의 제사라고 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 고」 천국 시민의 자질을 말씀했다 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디베랴 언덕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도 사실상 그 한 어린아이가 저들 가운데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는 어린아이들이 저들 가운데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던 사람 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 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그 일을 꾸짖었습니 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을 내시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 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3-15)고 하셨습니다. 그리 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 19:13-14, 눅 18:16-17)고 하시 며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 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막 10:16).
예수님은 교만한 무리(어른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 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의 심성의 특징인 겸손과 신뢰성과 순진성과 단순성과 봉사와 희생성과 이타적 애정성을 들어 천국 시민의 영적 자 질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가운데 자기 를 세우고 자기를 나타냅니다. 사람 들은 역사의 한가운데 자기의 업적 과 공로와 명예를 나타내기를 좋아 합니다. 아니면 역사의 한가운데 영 웅이나 호걸이나 가인들을 세우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어 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을 교훈하셨습니다.

Ⅱ. 천국은 어린이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연령적으 로, 체력적으로, 지적으로 미숙한 한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고 천국을 교훈하신 것은, 결국 그가 이룩하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사실상 어 린아이들이 중심된 세계임을 웅변 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내다 본 메시야 왕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왕국의 시민들이 모두 어린아이로 묘사된 평화의 나라였습니다. 예수 자신이 「한 아기」, 「한 아들」로 예언 되었습니다(사 9:6).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양과 표범과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끌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 11:6).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 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 충만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사 야는 천국의 시민을 「어린아이」, 「젖먹는 아이」, 「젖뗀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갓난아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방금 태어난 아이\'를 뜻합니 다. 그 아이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을 빨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 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 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 물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요 3:3, 5, 고후 5:17). 새 사람, 곧 아이들 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옛 것은 벗어 버린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감사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게는 숨겨져 버리고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나게 됨이 감사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5). 이것이 아버 지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1:26). 이른바 유대교권주의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갈릴리 제자들, 죄인 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곧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자들을 어린아 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이를 하나 님의 나라(천국)는 아이들만의 세 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 국에는 이른바 어른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오른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저 들이 받은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모든 무리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어린아이들입니다 (계 7:9-10). 영적으로 천국은 거듭 난 새 사람의 세계, 곧 어린아이들 의 세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판을 치는 세계입니다.

Ⅲ.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지금 우리는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주일마다 어린이 천국 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 배와는 별도로 주일 오후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우리가 이곳에 새 성전을 시작 하고 금요 밤마다 모이는 기도회에 서 이미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입니 다. 우리는 3년이 가깝도록 새 성전 신축 완공과 입당 그리고 어린이 천 국 잔치를 위하여 기도해 오고 있습 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우리 교회 교육국으로 하여금 어린이 천국 잔 치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연구 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하였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응답하셨습 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역사적인 새 성전 입당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 고 지난 5월 24일 주일 오후부터 마침내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를 열 었습니다. 첫날부터 잔치는 대성황 입니다.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중에 진행 되는 주요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어 린이 찬양과 율동, 동화, 성경 이야 기, 미니 올림픽, 성화(영화) 상영, 기독교 명사들을 초대하여 각종 묘 기(진기 명기) 등을 시범적으로 보 여 주는 일(축구, 태권도, 연극… 등) 등 다채로운 순서들이 주일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이 천국 잔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성전 한가운데 어린이들 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들 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 다. 이 천국 어린이 잔치를 통하여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어린이 전도는,
① 어른 전도보다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저들에게 있는 겸손과 순진과 신뢰심과 순종심이 어른들보 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 수 복음의 진리를 흡수하는데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② 가정 전도의 첩경입니다.
닫혀 버린 가정의 문을 두드리 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 이 바로 그 가정의 어린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어린이 새소 식반과 어린이 선교원이 한몫을 하 고 있습니다.
③ 교회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받은 축복의 묵 시(vision)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 전도입니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그 앞이 캄캄합니다.
④ 어린이 전도는 미래지향적입니 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입니다. 21세 기를 대비하는 복음 운동의 모든 자원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에게 있 습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가 저들에게 바른 신관, 바른 인생관, 바른 구원관, 바른 존재적 가치관을 정립시켜 줍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내일의 위대한 구령 운동의 목회자, 선교사, 신학 교수, 사회 봉사자, 정치가, 경제가, 교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세계는 무한한 미래의 잠재력이요 폭발력입 니다. 아니 위대한 축복의 미래적 물결입니다. 아니 그 어린이 자체 가 천국 운동이요 천국의 전령사들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 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폭풍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계의 위대한 사건들은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 아이들은 역사 가운데 지진이요 폭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 를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성전 입당과 함께 경향 어린이 천국 잔치 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 스마일즈(Samuel Smiles) 는 \'유년기는 거기에 비친 영상 (image)을 내세에 반사해 주는 거 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셀렉트(Selected)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당신이 무엇을 쓰든지 물로 지울 수 없다. 모래는 파도가 사나울 때 옮겨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노력은 썩어 버릴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없어지고 어떤 노래들은 잊혀질 것 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이 기록들…, 세월도 그 것은 변경하지 못하리라. 어린이의 가슴 속에 무엇을 써넣든지 기쁨의 이야기든 근심의 이야기든, 하늘이 축복했든지 땅이 모독했든지, 변함 없이 거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 리 경향 4반세기 25년은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을지 로에서, 동자동에서, 여의도에서의 교회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 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교회의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 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 고 저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 앙의 고백과 감사의 서원이 경향의 자원과 미래가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새 성전 한가운데에 어린이들을 세웁시다. 그리고 저들 이야말로 경향이 받은 천국 운동의 기수들이 되게 합시다. 이 위대한 어린이 천국 잔치에 수종드는 모든 경향인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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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10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 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 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 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 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 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 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 에게는 화가 있도다 8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 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 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 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 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 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10삼가 이 소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 기요, 19C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C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한 이가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람 수에도 들지 못하 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 쳐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 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 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 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 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 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 습니까?
로마 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도 있고 마음 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에 편지하기를
\"만 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 라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 면 버리시오\"하고 펴지 했고 세네카는
\"약하거나 못생긴 아이들은 우리는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이 들과 여자들은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된 사 상을 말씀으로 행동으로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한번은 많 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 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 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 짖으며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때에 예수님은 오 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을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 장 16절)\"고 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잘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 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 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1. 어린이를 사랑해야 합니 다.

아일랜드의 역사가 나피엘 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린 소녀가 유리 조각을 주우며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느냐 고 물었더니 몹시 사나운 주 인집의 유리병을 잘 못하여 깨뜨려서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나피엘 은 자기가 그 깨어진 그릇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 기에게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 그리하여 내일 그 자리에 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이 마침 자기의 연 구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만나 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피엘은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많은 연구비를 못 받는 한이 있어 도 그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서 깨어진 그 릇을 사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폰서가 그 다 음날 더 많은 연구비를 가져 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게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키울 때 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 학교 어린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추운 겨울 새벽 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내복을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입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마자
\"아침부터 어린것이 어른의 옷을 왜 입고 있니?\"
하고 꾸 짖었다고 하니 그 어린 동심 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 습니까?
어느 26세의 젊은이가 자신 이 열등감이란 고정관념에 사 로 잡혀 고민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 청년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올라갔더 니 그의 부모는 자기가 어려 서부터 공부를 잘 해도, 운동 에 우승을 해도, 모형 비행기 를 잘 만들어도 부모가 칭찬 은 해주지 않고 만족하지 못 하다는 듯이 트집만 잡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청년은 만사에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 할 때 에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교 회에서는 목사님께, 학교에서 는 선생님께 반항적이고 불평 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 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칭찬해 주 면 교만한 성격이 자리잡게 될 염려도 있기는 하지만, 부 모가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대 단히 주요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표 현해 주어야 합니다. 꼭 안아 주며, 궁둥이를 두들겨 주거 나 뺨에 뽀뽀해 주거나 어깨 를 툭툭 치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 사랑의 채찍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 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 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 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 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 나는 많은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어머니인데, 그녀는 말 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 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 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을 기르는 것이 된다.\"고 했고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 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 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 고 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이 무법천 지처럼 되어 가고 자식이 부 모를 구타하거나 죽이기도 하 는 등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 각하게 증가되고 악화되는 것 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제멋대 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 니다. 교육 철학 자체가 잘못 된 이유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학생에게 체벌을 못하게 하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내 버려두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규휼이나 사회 의 규율을 어겼을 때는 고통 이 오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합 니다.
②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반항할 때는 반드시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자 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는 사 람이 됩니다.
③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버 릇은 어려서부터 고치도록 징 계해야 합니다.
④ 출처 모를 물건을 가져 왔을 때 묵인하지 말고 반드 시 그 근거를 캐내어 징계를 해야 하고 제자리에 돌려놓도 록 해야 합니다.
어느 강도 흉악범이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집행을 당 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면회를 청하더니 철 창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끌 어당기더니 그 코를 이빨로 물어뜯더랍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까 어려서 물건을 훔쳐 와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자기가 결국 사형 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육체 적인 고통을 주는 방법이나, 방안에서 혼자 벽을 향하여 한 시간씩 앉아서 반성하게 한다든지, 좋아하는 것을 하 루나 한 두시간 못하게 한다 든지, 회초리를 따끔하게 때 려서 깨닫게 해 주는 방법 등 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때리라는 것은 아닙 니다. 일평생에 몇 번, 꼭 필 요할 때 채찍을 들 필요가 있 습니다.
벌을 줄 때는 반드시 기억 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를 때려서 는 안됩니다. 부모가 감정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어야지. 화풀이로 때렸구나 하는 인상 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 게 되면 부모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 모는 도끼나 칼을 가지고 쫓 아다니며 죽일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입니다.
② 공평하게 징계해야 합니 다. 어느 아이는 더 사랑하고 어느 아이는 더 많이 때리거 나 하면 자녀가 감정을 사서 더 삐뚤어진 길로 가게 됩니 다.
③ 징계 받는 이유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유 없이 고통 을 주면 징계가 무의미하고 반항심만 갖게 합니다.
④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의논해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는데 어머니는 역성을 든다던가하 면 역효과가 납니다. 어머니 는 때리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를 나무란다던지 하면 교육이 안됩니다.
⑤ 매를들때 욕구 불만을 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 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필요 없이 때리기 만 하지 말라. 매를 쥘 때는 하나님께 그것을 축복하시도 록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자신의 심령이 해를 입 고 자녀에게도 유익이 없다\"
고 했습니다.
⑥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 니다. 한번 벌을 주면 그것으 로 용서해 주고 끝나야지 한 번 지난 일을 두고두고 되풀 이해서 말하면 안됩니다. 하 나님도 우리가 한번 회개하면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아침 안개가 사라짐같이 우리 의 죄를 도말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⑦ 그 아이에게 맞도록 벌 을 주고 그 아이만 있는데서 벌을 줘야지 사람이 많은데서 망신을 주면 안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 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으 며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 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 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 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자식들 은 한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 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3. 부모가 생활로 본이 되 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은 자녀들이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 지만 눈을 보는 것은 결코 잊 지 않고 깊은 감화를 받습니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진실 한 신앙생활과 헌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자녀는 속이지 못합니다. 자식들 보는 데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 정 성껏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 여 주면 그것이 백번 말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꿈에도, 교 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헛된 약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 속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 지 키지 않으면 부모의 위신도 떨어지고 거짓말쟁이가 됩니 다.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잘 생각해서 줘야 할 것은 약속 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은 끝까지 시행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식들 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는 반 드시 시행했는지 여부를 확인 해야 됩니다. 말만해 놓고 내 버려두면 부모의 말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적당히 기회 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 게 해야 합니다. 또 시행하지 못할 것은 명령을 하지 말아 야 합니다.

4.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 께 데려와야 합니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 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 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 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의 아들이 고3 이라고 교회에 나오지를 안길 래 물어 봤더니, 입학하면 나 오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서 지금은 예배를 못 드리게 했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에 대학에 떨어져서 온 가족 이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데, 그 집에 가서
\"대학에 떨어진 것은 걱정하면서 자식이 지옥 으로 떨어 질 것은 걱정 안합 니까?\"라고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 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 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 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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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사랑> 막10:13-16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그의 시대의 고정관념과 일반적 관행을 깨뜨리는 혁신자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린아이들의 존재와 인권에 관한 의식이 오늘날처럼 높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어린이들은 힘없고 약하며 의존적이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이들은 가진 것 없고 내놓을 것 없는 존재여서 어른들에 의해 하찮게 여겨지고 무시당하곤 했습니다. 당시의 이러한 사고와 관행은 오늘 본문에서 보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태도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온 사람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꾸짖는다\"는 말은 그 의미가 매우 강한 말로서 마가복음에서는 귀신을 내쫓거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한다고 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본문 1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말로 꾸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고 쫓아버리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사고와 관행에 정반대 되는 입장을 표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의 편에 서시고, 어린아이들을 반겨 품으시며, 어린아이들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만드시고, 어린아이들을 높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노하셨다고 했는데(13-14), 이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아이들 편에 서실 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당대의 사고와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심으로써(16) 어린아이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존중과 축복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14) 어린이를 더할 나위 없이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시며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언급하시며 하나님나라와 연결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린이 사랑은 하나님나라의 법이요 원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나라에서는 어린아이라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소홀히 여겨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막9:37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에 의해 영접되는 것이고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이며 인격적 존재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우리 각 가정에 위탁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는 가장 좋은 길은 그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하고 그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아온 사람들은 그 시대의 일반적 풍조에 비추어 보면 예외적인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아이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고 온 것입니다(13).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마19:13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들을 기뻐 맞으시고 그들이 바란 대로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16).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데리고 나아오고 그의 품에 안기게 하고 그에 의해 복을 받게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백성 됨의 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데리고 나아오지 않고 그의 품에 안기게 하지 않고 그에 의해 복을 받게 하지 않는 부모는 그 아이에 대하여 가장 큰 실책을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크나큰 불충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아직도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는 부모들, 자녀들이 고3이라고 해서 주일날 교회 대신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라고 하는 부모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이 시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복 받을 기회를 자녀들에게서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식사랑과 정반대 되는 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들 자체만으로도 어른들에게 기쁨과 행복이 되지만, 또한 어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는 거울이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 14-15절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먼저 14절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온통 아이들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 물론 아닙니다. \"이런 자\"란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나라백성들의 특징으로서 예수님께서 가리키고자 하신 것은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장점들이라기보다는 어린이들 자체, 즉 어린이들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내어놓을 것 없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진 것 많고 자랑할 것 많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나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기댈 것이 없음을 아는 사람들의 것임을 가르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어른들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도구로, 거울로 어린아이들을 허락하셨음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열심히 배우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많은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도 어른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15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라고 했는데 \"받들지 않는 자\"보다는 눅18:17에서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자\"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진 것, 내어놓을 것,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저 죄인이고 벌거벗은 자일뿐임을 고백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여 하나님나라백성 되기를 간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깨닫도록 하나님께서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선물로 주셨음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며, 아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시며 가르치신 대로 어린아이들을 천대하거나 무시하는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들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내 아이들만 사랑하는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 받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회가 복된 사회입니다. \"개구리소년들\"이라는 비극을 발생시키는 사회는 극악무도한 사회입니다.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어른들의 이익이나 탐욕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제재하고 단호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오염시키고 병들게 하는 모든 환경을 제거하고 추방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비뚤어진 성의식을 심어주는 일체의 음란유해요소들을 철저히 뿌리뽑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성노리개로 삼는 사회는 악마적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풍조에 맞서 싸우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방치하거나 비호하는 당국이나 모든 악한 세력들을 질책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인 어린이 사랑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밝고 건강하며 복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제목 : 어린이 신앙 교육과 국가의 운명                                       본문 : 막-10-13-16                                      
 

마가복음 10장 13-16절


오 헨리(O. Henry)의 작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만 데리고 살았는데, 직장에 갔다오면 신문만 보고 딸아이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면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함께 놀자고 해도 놀아 주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해 주니까, 그 소녀가 점점 자라서 불량한 짓을 하고 거리의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소녀가 죽어서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너 같은 사람은 여기에 못 들어 갈 것이라고 말하니까,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그 소녀를 들어오게 하라. 그러나 너무 바쁘다고 해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이 아버지 같은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자녀교육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 세상이 어지럽고 불의와 불법이 가득 찬 이유는 자녀교육을 잘못시켰기 때문입니다. 밥 먹이고 옷만 입히면 자식을 키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귀중하기로 말하면 어린이들이 꽃이나 애완견이나 다이아몬드에 비하겠습니까? 그 나라의 장래는 그 나라의 어린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늘날 걸핏하면 어린 학생들이 총을 난사해서 학생들과 선생들을 무참히 죽이고, 어린 학생들이 술, 담배, 마약을 복용하고, 중 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까지 임신하는 형편이니 얼마나 이 세상이 부패했습니까? 이 모든 원인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1.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예를 든다면 형식으로라도 학교마다 채플(Chapel)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칠 때에는 미국이 저렇게 타락하지 않았는데, 케네디 대통령 때 채플 시간을 없애고 성경 교육 시간을 없이한 다음부터 장발족이 생기고, 히피족이 생기고, 음주.흡연.마약 복용자가 늘어나고, 걸핏하면 총기를 난사하여 애꿎은 생명을 죽이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지면 청소년들이 이렇게 타락하지 않습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장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지혜와 명철의 근본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그 분을 두려워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엊그제 전국 여선교회 대회 때 김종문 감독께서 설교하시는 가운데 아주 속시원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찬송을 부르는 도중 윗방에 있던 그 집 딸이 문을 확 열더니 머리를 쑥 내밀고는 큰소리로 “내일 나 시험이란 말이예요”하고는 문을 확 닫더랍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겁이 난 얼굴로 “목사님, 찬송 좀 조용히 부를 수 없을까요? 그 애가 전교에서 일등이예요” 그러더랍니다. 기가 막혀서 그 목사님이 윗방으로 올라가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 학생 등에 손을 얹고, 예수님에 관해서 교회에 관해서 쭉 설명을 해 주었더니 이번에는 울면서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해 준 일이 없어요” 그러더랍니다. 집사라도 엄마가 더 한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믿음 생활하는 것을 대학 입학보다 더 중요하고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믿음을 하나도 심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신명기 6장 4-9절은 선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인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대로 철저히 가르쳤기 때문에 나라는 망해서 세계에 흩어져 살아도 그 신앙과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① 그 심령에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심어 주어 거듭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했습니다. 영생을 못 얻고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은 걱정하지 않고, 대학에 떨어질 것만 걱정하는 집사가, 집사입니까?

②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어려서부터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무디 선생은 “성경이 죄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주든지, 죄가 성경으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주든지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③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하기 시작해서부터 주님을 찾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또 부모가 날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이명박 장로님이 그 어머니의 기도 생활과 철저한 믿음의 생활을 가르쳐 준 데 대하여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④ 교회의 출석과 예배의 중요성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학교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TV를 보느라고 교회에 안 가는데도 가만 두는 부모가 기독교인입니까? 때려서라도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자아비판을 하고 전교생 앞에서 매를 맞고 퇴학을 당하면서도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2. 정직과 진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엊그제 어느 신문을 보니까, 한 예수 믿는 여자가 은행에 돈 100만원 맡겼는데, 와서 통장을 보니까 500만원으로 적혀 있더랍니다. 잠시 동안은 마음에 시험을 받았지만, 즉시 은행 담당직원한테 전화를 해서 사실을 말해 주었더니 반가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400만원이 비어서 찾고있는 중이었는데 못 찾으면 제가 400만원을 물어내야 했었는데 참으로 감사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생겼느냐?”고 해서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 18살 때 점원을 하는 중에 어느 날 밤 문을 닫고 돈을 계산하는데 3센트가 남더랍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낮에 왔던 아줌마 생각이 나서 그 밤중에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가 전해주었더니, 황금 같은 3센트라고 칭찬하며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더랍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의 세 아들, 조카까지 엄청난 부정, 비리에 쌓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 않습니까? 정직과 진실을 잃어버렸으면, 일류 대학을 나와도 쓸데없고, 대통령이 되어도 무엇합니까?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권세를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죄를 더 짓고 세상을 그만큼 부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제일 시급한 일은 경제나 정치가 아니라 정직성과 진실성이 실종된 것입니다. 아무리 수지맞는 일이 있어도 “아니요”할 수 있고, 아무리 큰 고통이 따라와도 “예”할건 “예”할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 심히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성공 못할 것 같고, 못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했고, 역대상 29장 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사오며...”하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도 먼저 정직함,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엄청난 재물을 드렸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성령을 속이다가 큰 변을 당했습니다.
정직과 진실을 잃었으면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인간입니다.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정직함과 진실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귀의 속성은 거짓말쟁이요 잔인함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직성과 진실성을 저버린 사람은 그 믿음도 헛되고 거짓된 것입니다. 거짓된 마음에는 참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거나 더러워진 사람의 믿음은 파선한 배와 같아서 그의 믿음도 파괴된 것과 같습니다.
이 나라 장래의 운명도 어린이들의 정직성과 진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스위스나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국민이 몇 백 만 밖에 안 되지만, 그 국민의 정직함과 진실함을 믿기 때문에 그 나라 제품은 신뢰하고 사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미래의 운명도 이 국민의 정직성과 진실성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의 머리는 우수한데, 정직함과 성실함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자녀와 어린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과 정직함과 진실함을 심어 주면 이 나라의 장래는 밝고 소망이 있습니다.
거짓말하거나 속일 때에는 오래 기억에 남도록 따끔하게 벌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귀한 그릇으로 쓰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부터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정직함과 진실함의 본을 보여야 따라 옵니다. 자식들 눈에 위선자로 보이면 믿음도 안 가지려고 합니다.
선민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거짓되고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했던 일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했습니다.

3.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부모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커서도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하나님도 두려워할 줄 압니다. 오늘날 세계가 왜 이렇게 어지럽고 혼탁해 지는가 하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자기 고집을 꺾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제멋대로 하도록 버려 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법을 어기거나 부모에게 불순종할 때에는 고통과 벌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철학이 잘못돼서 체벌을 절대로 주면 안 되고 자유방임주의로 교육해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하고 자라며, 또 산아제한 때문에 하나, 둘만 나아서 과잉보호와 과잉사랑을 베풀며 키웠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술, 담배, 마약을 하고 조금만 꾸중을 하면 반항하고, 부모에게 덤벼들고, 스승을 구타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화난다고 총기를 난사해서 수많은 사람을 비참하게 죽이고 돈 몇 백만 원 얻자고 20대 젊은 여자들만 골라서 다섯 명, 여섯 명 죽여서 자동차에 싣고 다니는 끔찍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렇습니다. 칭찬할 땐 칭찬하고 잘못할 때는 따끔하게 벌을 주어서 자기 고집을 꺾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13장 14절에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했고,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했고, 17절에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호박순은 방향을 잡아주는 대로 뻗어 올라갑니다. 어려서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소도 새끼가 젖을 먹다가 못되게 굴면 뒷발로 걷어찹니다.

4. 극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을 참고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유익한 인간이 되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고통과 고난을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이 귀하다고 병역을 기피하게 만들고, 편한 자리에 있게 하려고 돈을 써 가며 운동하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군에 갈 때에는 가서 훈련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한국에 5대 명문 대학이 있다고 합니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등 그 다음에 해병대라고 합니다. 이 어렵고 힘든 해병대를 마친 사람은 고난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입니다. 군대만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고난, 실패의 고난, 핍박의 고난, 비판과 비난의 고난, 질병의 고난 등을 잘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복음 5장 11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했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67절, 71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이길 줄 모르는 사람은 무익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로 다투는 자 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함이라”,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왜 극기를 배워야 합니까? 세상에는 너무나 마귀의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죄의 결과가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고, 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귀한 그릇, 유익한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2002년 5월 5일 어린이 주일 설교
 
  ===========================================================================================                                                                                          제목 : 천국의 자녀                                       본문 : 막-10-13-16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그것을 친히 실천해주고 계심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가 제일 큰 자가 되느냐고 토론을 벌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세우시며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을 하늘나라의 자녀라고 불러주셨다는 것과 이 말씀의 해석 중에 어린아이와 예수님을 같은 수준에 놓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어린이 주일을 통하여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받아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 우리도 어린아이를 예수님처럼 영접하자.
왜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영접했을까요? 우리는 가정에서 손님이 오시면 시끄럽다며 아이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고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는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나이에 간절히 구하여 이삭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며, 한나 또한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여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자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의 소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높여주고 위해준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를 우리는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2. 어린이를 천국의 자녀로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
어린이는 천국의 자녀이기에 천국의 자녀로 자랄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키워야 합니다. 어떤 받침대로 키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묘목처럼 어린이 또한 어떠한 받침대로 키우느냐에 따라 다르게 자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아기 때의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아이에게 올바른 받침대를 주어서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마땅히 가르칠 일,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하며 하나님을 순종하는 믿음을, 무엇보다도 비전을 갖고 앞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게 해야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바로 갖출 수 있도록 부모들이 도와야할 것입니다.

3. 우리도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한다.
“누구도 어린아이 같지 않고서는..”이라고 말씀에서는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고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은 유치한 짓을 하는 철부지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결성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끝없는 상상력과 호기심 신뢰를 가지고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순결한 청순한 처녀성을 간직한 어린아이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두 단순한 마음의 어린아이와 같이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결론
어리면 어릴수록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겸손하여, 틀에 잡혀 사는 것이 아닌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이 나의 고집과 주장을 버리고 아이를 예수님처럼 영접하여 도와주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                                                                                          제목 : 예수님의 사랑을 보라                                       본문 : 막-10-13-16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 가운데 하나가 어린 아이들이 우리 교회에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학교에 한 10,000명 정도가 출석을 하고 있고, 2,400명의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세계적으로 저희 교회가 받은 은혜인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보면 아무 유익도 없는 것 같고 교회학교는 필요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인 출석에 아이들을 포함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없는 교회, 어린이가 없는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의 소망은 위로는 하나님이시고 아래로는 자라나는 어린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자라날 때만 하더라도 농촌에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와글와글하고 교회에 가도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농어촌에는 거의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면에 다섯 개, 여섯 개가 있던 초등학교가 거의 다 없어지고 하나만 남고, 노인들만 삽니다. 농촌이 힘이 든다고 가지를 않습니다. 특별히 농사는 남자들이 지어야 하는데 남자들이 안 갑니다. 안가는 이유가, 결혼을 못하는 거예요. 농촌으로 결혼해 오는 처녀들이 없어요. 죽어도 농촌은 안 가려고 하는 거예요. 땀 흘리고 고생하지요, 평생 일해봐야 자녀 교육도 못 시키고 생활도 할 수가 없고, 열심히 일해도 일년에 몇 100만원 벌기 어렵고, 몇 천 만원 빚이 없는 분이 없다고들 합니다. 모두 그 고생을 하면서 얻는 것은 없고, 먹는 것, 입는 것도 없으니 안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여자들이 농촌으로 결혼해 오는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중국에 신랑을 다 두고 와서 위장으로 결혼을 해 가지고는 밤에 그만 도망치는 거예요. 농촌의 총각들이 어떻게 기적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하루 아침에 또 혼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농촌의 총각들이 자살하고 목 매어 죽습니다. 장가가고 싶어 가지고요. 그런데 처녀들이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또 요사이는 필리핀 처녀들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리핀 여자들이 이곳에 와서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농촌을 위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 마을마다 있습니다. 거기에 교역자들이 다 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열 분, 다섯 분 앉혀 놓고 목사님들이, 전도사님들이 가 있어요. 저희 지역에도 이야기를 들으니까 1개의 면에 출생신고를 한 명이 했대요. 1년에 아기를 한 명 낳았는데 그 아이도 전도사님의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농촌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희 교회가 농촌의 사과도 팔아주고 고추도 팔아주고 하면 불평하는 분도 있는가 본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도시 교회들이 농촌의 그런 일이라도 해 주어야 돼요. 더덕도 팔아주고, 대추도, 무도 팔아 주어야 합니다. 이 일마저 안하면 농어촌의 목회자들이 위로 받을 길이 없어요. 농촌이 없이 도시만 있을 수 있어요? 도시에서 자동차를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다 농촌에서 나오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선진국 미국도 농촌이 저렇게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농촌을 없이 하면 안됩니다. 농촌도 잘 되도록 우리가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어쨌든 저희 교회에 어린이들이 많은 것은 큰 은혜입니다. 어제는 제가 유아 세례를 272명을 주었어요. 일년에 유아세례도 이렇게 많이 주니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지… 오늘도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왔다 가니 얼마나 좋아요. 아이들이 많다라는 것 큰 은혜예요. 농촌에 있는 그 전도사님 아이가 너무 신기해서 동네 어른들이 하도 쓰다듬어서 애가 클 수가 없대요. 아이들은 우리 나라의 소망이에요. 아이들을 잘 길러야 돼요. 오늘 아이들 잘 기르는 것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공부시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이를 잘 기르는 길은 예수를 잘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 것 없어도, 설령 못 먹고 못 입고 좋은 학교 못 나온다 할지라도 하나님 잘 경외하며 하나님 잘 믿으면 다윗도 될 수 있고, 솔로몬같이 지혜로울 수도 있고, 히스기야 같이 훌륭한 정치인도 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 잘 믿는 것 이상의 복이 없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느 나라 사람이나 우리 인간을 축복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안으셨습니다. 교회 나올 때는 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다윗도 말합니다. \'나는 아이라.\' 갓난아이 같은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올 때에 우리는 주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품은 사랑의 품입니다. 안겨야 사랑을 받습니다. 능력의 품입니다. 안겨야 능력을 받습니다. 은혜의 품입니다. 안겨야 은혜를 받습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품에 안길 때 보혈의 은혜, 신령한 은혜, 각양 은혜를 받는 줄 믿습니다.

♬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편히 쉬겠네 ♬

  쉬는 품안이에요. 누구든지 안아주시는… 나라도 안아 주시고, 가정도 안아 주시고, 기업도, 모든 교회도 안아 주시는 넓은 품입니다. 온 세계를 품는 사랑의 품, 은혜의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또 주님은 안기운 모든 사람들을 안수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실 이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손은 우리에게 안수하는 손입니다. 치료하는 손입니다. 긍휼의 손이십니다. 자비의 손입니다. 기적의 손이요, 축복의 손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안겨 안수를 받는 사람은 모든 저주가 변하고, 슬픔도 변하고 불행이 변합니다.

  주님은 또 축복해 주셨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자연도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 아닙니다. 축복이란 말은 영어로 blessing인데 사전을 찾아보니까 이 축복이란 blessing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용어라고 동아백과 사전에 말하고 있어요. 다른 종교에는 축복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축복하시는 기독교의 독특한 용어예요. 모든 종교가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축복을 누가 주십니까? 우리에게 손을 올려서 축복할 이는 전능하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축복은 위로부터 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모든 좋은 것들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축복이 있습니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학교에 있고 사람에게도 있고 길에도 있고 숫자에게도 있는 이런 것이 아니에요. 복은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좋은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숫자 하나도 모두 복 받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여덟 자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여덟이라고 하면 일본 사람들은 미친대요. 왜냐하면 아래로 복이 양쪽으로 뻗어 나간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은 이 숫자를 좋아해요. 이태리 사람들은 17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라틴어 순서를 바꿔놓으면 17은 \'나는 죽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싫어할 수밖에 없지요. 서양 사람들은 13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성만찬 베풀 때에 가롯 유다가 13이였거든요. 유다의 숫자라 해서. 아주 13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파티를 해도 12명은 받아주고 13명은 받아 주지를 않습니다. 13명 테이블이 없습니다. 비행기 좌석도 13을 하지 않습니다. 13은 아예 나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13하고 금요일이 겹치는 날을 아주 최악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 날은 교통사고도 많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신적으로 모두가 눌리는 거예요. 컴퓨터 바이러스도 제일 많이 뜨는 것이 바로 이 겹치는 날이라고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4자를 제일 싫어합니다. 죽을 4자라는 것입니다. 4자는 성경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4자는 좋은 숫자예요. 아파트에도 4층은 F라고 해서 4는 아예 없애버리고 싫어합니다. 우리나라는 겹자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1월 1일 설, 3월 3일 제비 오는 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겹치는 것을 좋아해요. 어쨌든 축복을 받으려는 마음은 온 세계 사람들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어요.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없어요.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부름 받아도 하나님을 잘 경외함으로 그 안에서 천하의 축복을 다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인간의 실수가 많아도 하나님을 떠나는 실수보다 더 큰 실수는 없습니다. 어리석음이 많아도 하나님 떠나는 어리석음, 교회를 떠나는 어리석음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습니다. 아무리 다른 면으로 미련하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 떠나는 죄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어요. 다른 것은 다 길도 있고 소망이 있어요. 회복이 있어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거지나 기생이나 술집여자나 바람둥이나 어떤 무식한 사람도 소망이 있어요. 회복이 있어요. 성경을 보세요. 기생 라합도, 이방 여인 룻도, 다 예수 안에는 길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잘 살던 솔로몬 왕국도 무너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는 거예요.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놀라운 일은 없는 거예요. 그를 경외하면 그 안에 온갖 회복이 있고, 치료가 있고, 기적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분을 항상 예수에게로 인도해 주고 어린아이들에게 자나깨나 예수 잘 믿도록 \'너는 하나님 잘 경외해라\'고 해야 합니다. \"목마른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실패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미국 부시 대통령은 허랑방탕하고 인간답지 않게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시에게는 존 에번스라고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상무 장관이 되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생일날 와서 교회로 인도하고 성경을 365개로 나누어 묶어서 \'너 하루에 1권씩 읽어라\'고 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읽어봐요. 말씀 속에 지혜 있지요, 소망이 있지요, 능력이 있지요, 치료가 있지요, 은혜가 있지요. 말씀이 거울이에요. \'아! 이래서 안되겠구나!\' 자기를 보게 됩니다. 말씀이 망원경이에요. 세계와 우주를 보는 거예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말씀이 보는 거예요. 사람이 치료할 수 없는 것을 말씀이 치료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시가 성경을 읽고 사업이 잘 되고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에 영적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부활하지요, 기도하는 것을 부활하지요, 백악관에 예배 드리는 것을 부활시키지요, 얼마나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왜? 자기가 해 보았으니까. 주님을 떠났더라면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폐인으로 벌써 죽었을지 모를 사람이에요. 날마다 그렇게 술을 먹는데 10년 동안 먹으면 끝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의 말씀에 비춰지고 주님을 찾았더니, 주님을 만났더니, 중 예수 넓은 품에 안겼더니, 그 넓은 품이 부시를 안아 주어서 세계의 지도자로 만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민족이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항상 오직 주님을 향해 달려가듯이 주님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아무 것 없을지라도 우리는 낙심할 것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10가지 유언을 하였습니다. 록펠러는 가난하여 9살부터 남의 집 점원으로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물려준 신앙을 물려받은 거예요. 적어 보세요. 성경 뒷면에 이 10가지를 붙여 놓으면 참 좋은 거예요.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는데 진리의 말씀으로 자녀를 이끌지 아니하고, 엉뚱하게 자녀들을 이끌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하고 이 신앙을 물려주었는데 록펠러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너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가 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목사라고 하면 배가 아파하는 분이 있어요. 목사라고 하면 삐딱한 눈으로 보구요 넥타이 맨 것도 시기하구요 주의 종이라고 하면 물고 늘어지는 진돗개 같은 분이 있어요. 교회에 와서 항상 목사를 걸고 씨름하려고 하는 분이 있어요. 항상 목사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영적으로 시험 드는 분이 있어요. 신앙 생활은 그러면 안돼요. 열 가지, 백 가지 가운데 주의 종과 걸려 가지고 유익 될 일이 하나도 없어요.
  3. 주일 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내 교회가 있어야 돼요. 내 자리가 있어야 돼요. 교회에 와도 아무 곳이나 말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좋아요. 얼마나 축복이에요. 윤보선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자리에 앉았어요. 항상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내 집이 있듯이 내 교회가 있는 거예요. 떠돌아 다니는 것, 집이 없다는 것,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교회도 내 교회 없이 돌아다녀 봐요. 한 달만 다녀봐요. 믿음이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고아가 되는 거예요. 유리, 방황, 걸식하는 거예요. 꼭 설교 들어서 은혜 받는 것이 아니에요. 내 교회는 문만 열고 들어와도 평안이 와요. 은혜가 되는 거예요.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주머니가 십일조 주머니예요. 평생동안. 세계 최고의 재벌이라도, 십일조 잘 하기로 유명한 분이 록펠러예요.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친구를 만들고 원수를 만들면 안돼요.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품어 주시고, 용서하는 주의 삶을 본받아요.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그냥 되는대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거예요.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아침기도 얼마나 좋아요? 아침에 문을 열 듯이 기도하면 길이 열리는 거예요. 활짝 길이 열리는 거예요. 아침기도, 새벽기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앞서 가시고 그 길을 축복하실 때 얼마나 잘 되겠어요?
  7.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성하며 기도하라.
  하루를 지나면 잘못한 것이 있지요. 저는 늘 있습니다. 저는 잘못하는 것이 늘 많습니다. \'오, 아버지!\' 잠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밤에 복을 내려 주시는 거예요. 낮에는 인도하시고 밤에는 평강을 주시고 잘 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밤사이에 준비해 주셔서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해 주시는 거예요. 얼마나 좋아요?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고 일어나면 신문을 보지요. 사실 신문 읽으면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세상 돌아가는 만 가지를 보니까요. 별의 별 어려운 것들, 슬픈 것들, 답답한 것들 보니까 마음이 답답해요. 해외에 나가서 한 열흘동안 신문을 안 보면 한 이틀은 궁금하다가 한 일주일 지나면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신문 없는 곳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여러분 천국의 뉴스는 나에게 유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매일 내게 소망이 되지만 세상은 아무리 읽어도 날마다 날마다 그런 것만 연속이예요. 특별한 것이 어디 나와요?
  9. 남을 도울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남을 돕는 것이 좋아요. 평생 남을 기쁘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 한 마디라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고 용기 주고 아끼고 이것은 다 좋은 일들이에요. 선한 일을 하는 거예요.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어른들도 본받아야 돼요. 이렇게 살아야 돼요. 이것을 평생 어머니 말씀을 잘 지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 안에 무엇을 못 받겠어요. 다 얻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 내려 주시는 거예요.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안내자예요. 우리는 가이드예요.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녀들.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심령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해 갈 때 주님의 손이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안아 주시고, 안수하여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우리 인간은 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주의 품안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만나면 저가 우리를 존귀하게 하고 우리의 모든 불행과 슬픔과 가난과 저주를 물리쳐 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형통하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TV를 보니까 낚시하는 것이 잘 나오더라구요. 신앙은 낚시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낚시꾼은 앉아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먹어가면서 하루고 이틀이고 그냥 앉아 있어요. 교회도 우리가 나오면 그렇게 편하고, 아무도 없는데 물보고 혼자 앉아 있는데도 그렇게 편하고 행복해요. 우리도 주님 앞에 나오면 떠날 줄 모르고 좋아하는 낚시꾼처럼 예수 믿어야 돼요. 낚시하는 분들은요 매일매일 가구요. 못 잡아도 또 가고요 어떤 때는 배를 타고 원정가고요 또 며칠씩 갔다고 돌아와요. 오늘 우리는 주님을 이렇게 좋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 오면 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교회만 오면 물 보듯이 편안하게 앉아 있아야 해요. 저는 낚시가 잘 안 맞더라구요. 오래전에 친구 목사님이 낚시하려 가자고 해서 밤에 갔어요. 서울에서 초저녁에 떠나서 한 11시에 도착을 했는데 낚시를 하다가 저는 졸려서 텐트에서 잤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밤을 새우며 낚시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낚시를 좋아하는지…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물을 놓으면 많이 잡을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한 시간에 한 마리씩 어떻게 잡나?\" 나는 답답해서 못 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낚시 때문에 목회를 못한 분도 있대요. 그냥 당기다가 예배 시간도 놓쳐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낚시꾼은 많이 잡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래요. 낚시에 딱 걸렸을 때에 그 당기는 기분이요 그건 사람을 잡는다고 그래요. 고기하고 어떤 때는 한시간을 싸운대요. 도망가려는 고기와 당기고 풀고 하면서 한 마리를 잡는 그 기분은 말로 못한대요. 정말 우리의 신앙이 그래요. 예배 시간에 주님의 말씀이 딱 걸리면 잡아당기는 거예요. \'저 말씀은 내 말씀이다.\' 저같은 경우는 늘 그렇게 믿었어요. 그래서 모든 예배 시간이 저에게는 낚시하는 사람이 큰 월척을 잡듯이 내게는 한없는 흥분과 감격과 축복의 시간이었어요. 성가대 찬양도 내게는 낚시에 걸리듯이 찬양이 나를 위한 찬양인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하고 눈물 흘립니다. 어느 말씀이든지 예배 시간마다 싹 내게는 걸리는 거예요. \"오! 아버지\"하고 잡아당기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예수 믿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인류 역사에 큰 축복을 받은 분이 되었습니다. 삭개오 같은 죄인도 예수 믿어가지고요 의인되고 그 가정이 천국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의 복을 받았어요.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나와서 주의 말씀 듣고 믿음의 생활하면 내 영혼에, 내 가정에 월척을 낚는 이 축복이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예배 시간 시간마다 참석해서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고 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든지 외모를 볼 필요 없구요 어떤 세상적인 불행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면 다 해결되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한나처럼 오직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성전 가까이 믿음의 생활 잘 하도록 가르쳐만 주면 그 외에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아이에게 축복이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또 우리는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고 축복해 줄 수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듯이 우리는 모든 분들을 축복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하기를 좋아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30여년. 전체적인 우리 삶에 사회적인 분위기는 폭로 문화예요. 망신주는 거예요. 그냥 대통령 하신 분들. 망신시키는 거예요. 재벌 망신시키는 거예요. 또 몇 년 전에는 선생님들 망신을 주고요 선생님들이 부끄러워 못 다닐 정도로 망신을 주었어요. 작년에는 의사 망신 주고 또 몇 년 전에는 군인들 망신 주는 거예요. 군인이라고 하면 천하에 죄인이 되는 거예요. 또 검찰 망신 주고요 전부 망신만 주는 거예요.  작년에는 목사도, 교회도 망신을 주었어요. 이 나라에는 망신열이 뻗혀 가지구요 전부 나쁜 놈들만 있구요 천하에 역적들만 모여서 사는 나라. 아주 세계에 제일 나쁜 사람만 모여 사는 나라가 됐어요. 사람을 길러 주지를 못하고 전부 망신을 주는 거예요. 대통령마다 감옥에 집어넣어 버리고, 쫓아 내버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망신만 주는 거예요. 그리고 국민이 좋아해요.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에요. 어느 나라도 안 하는 짓을 하는 거예요. 중국 보세요. 공산주의 국가인데도, 정권이 바뀌어도, 다 보호받아서 괜찮게 지나는데 우리나라는 바뀌면 망신살이 들어요. 제가 지난 주에 세계를 다니며 보아도 선생님들 권위가 얼마나 있는지… 대학의 권위가 얼마나 있고 교수님 권위가 얼마나 있는지… 지도자들 권위가 얼마나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전부 나쁜 사람들만 사는 데가 되었어요. 사람 하나 길러 내지를 못해요. 세계가 알아주는 존경하는 인물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되었어요. 이래서 되겠어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우리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안아주고 안수해 주고 God bless you! 하고 축복해 주는 이런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서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잘 합니다. 아름답습니다. 훌륭합니다. 잘 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모든 분들에게 박수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까? 칭찬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까? 계속 헐뜯는 문화가 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하겠습니까? 폭로하면 서로 원한에만 맺히는 거예요. 각 지역별로 항상 원한에 맺혀 있어요. 저희 교회도 부목사님들이 60명이나 됩니다. 다 천사같이 잘 하는 것 아니에요. 할 말이 있어도 제가 개인적으로 부르던지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깨닫게 되어 있어요. 부목사님 하나하나 한 것을 앞에 세워서 교인들 앞에 창피 주어봐요. 교회 분위기도 옳지 않고, 목사님도 원한에 맺히지… \'김삼환이 두고 보자\' 속에 이런 것이 맺힐 것 아니에요? 다 덕이 없어요. 좋은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전부 다 \'두고 보자\' 가슴에 다 맺혀 가지고 사는 거예요. 그러면 또 보복하고 보복하고 끊임없이 이어져 나가는 거예요.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 이제는 안아야 되고, 이제는 사랑해야 되고 이제는 모두 너, 나 할것없이 칭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들춰내고 창피 주는 이런 문화가 안개처럼 걷어지고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주시는 축복만이 우리 교회에, 이 삼천리 반도 위에 넘치게 꽃이 피는 21세기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이 땅이 되고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엘리와 한나의 가정교육                                       본문 : 삼상-02-29-30                                       엘리와 한나의 가정교육

사무엘상 2장 29~30절


오늘은 어린이주일이고 다음 주일은 어버이주일입니다. 그리고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기 중의 하나는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교실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이혼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이 버리워지거나 고아원에 갖다버려진 아이들이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녀교육에 실패한 제사장 엘리와 자녀교육에 성공한 한나를 대조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엘리는 자식들의 죄에 무관심했고
   한나는 자식을 거룩하게 키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으면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제사를 짓밟고 신성을 모독했습니다. 백성들이 제사드리러 오면 세살 갈고리로 솥에서 찔러내어 구워 먹고 삶아 먹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헌금이 들어오면 마음대로 끄집어내다가 제멋대로 써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에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22절에 보면 소위 제사장들이란 사람들이 회막문에서, 즉 거룩한 성전 안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는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무관심했습니다. 23~24절에서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하는 정도로만 이야기했지,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야단을 치거나 심하게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3장 13절에 두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는 말이 히브리어에는 “그들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아들들이 저주받을 짓을 했는데도 눈살도 찌푸리지 않았으니 어찌 죄의 심판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는 평범하게 나무랄 뿐 호되게 꾸짖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는 뜻은 거룩하게 구별해 키웠다는 뜻입니다.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수종 들며 구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제사장 엘리에게는 계시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 어린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결국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나갔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자기들도 전사해서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사무엘은 큰 회개의 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잘못을 바로잡고 죄를 지으면 징벌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잠언 14장 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했고, 잠언 13장 24절에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했습니다.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툭하면 화풀이로 때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잘못된 교육철학이 나라들을 어지럽게 하고 부패하게 만듭니다. 체벌도 못하게 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해도 때가 되면 다 고쳐지니까 가만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된 짓 다 하고, 부모를 구타하거나 멀리 갖다버리기도 하고, 스승의 머리를 깎거나 구타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2. 엘리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존중히 여겼고,       한나는 하나님을 더 존중했습니다.

  엘리는 자식들을 너무 사랑하고 귀중히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룩함을 짓밟는데도 심상히 여겼습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요, 그 자식을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29절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고 하나님의 분노에 가득찬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전혀 그와 반대입니다. 한나는 기도 응답으로 받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젖떨어지자마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성전에서 자라며 수종 드는 일을 했습니다. 웬만하면 “서원은 그렇게 했지만 몇 년만 더 데리고 있겠습니다.” 했을 터인데 한나는 젖떨어지자마자 냉정하게 떼어 성전으로 보냈습니다. 결국 그 아들이 영적으로 큰 부흥을 일으켰고 나라도 구원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백 세나 돼서 받은 아들을 너무 귀히 여긴 나머지 하나님만 차지해야 될 마음의 지성소에 아들이 차지한 것을 보시고 “번제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아들을 돌려주실 뿐 아니라 엄청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TV에서 연속극이나 보고 만화나 보면서 교회에 안 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내버려두는 부모는 하나님께 큰 책망 받을 것을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밥과 옷으로만 키운다고 다된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일류 대학엔 못 가도 신앙교육은 바로 시켜야 합니다. 자식의 육신이나 정신의 교육보다 영원한 영혼을 바로 이끌어 주는 것이 정말 복 받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신앙으로 바로 키우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낳지 않으니만 못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임마누엘 교회 김국도 목사가 초등학교 때 몹시 추운 겨울날 교회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저의 어머니께서 밥도 안 주고 옷을 다 벗기고 밖으로 내어쫓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영하 20도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혼만 내고 금방 들어오게 한 것이 아니라 5분, 10분, 15분, 문을 꼭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기 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할 때 “얼쿠려면 바싹 얼쿠어야 감기가 안들지 찬바람만 쏘이면 도리어 감기 든단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7남매가 엄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4형제가 모두 목사가 되고 딸들은 목사 혹은 장로의 부인이 되었고, 손자들도 모두 목사 혹은 목사 부인이 되었습니다. 평생 “너희들 공부 잘 해라” 혹은 “돈 많이 벌어라” 하는 말씀은 듣지 못했으나 “내 평생 소원은 너희들 예수님 잘 믿는 것이다” 하는 말씀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말 안 듣고 속 썩히는 자식들이 있었지만 결국 다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며 자녀들의 육신과 영혼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 엘리는 기도하지 않았고
     한나는 간곡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2~13절에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한나는 “오래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간절히 깊이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으면 엘리가 “술 취한 사람”인 줄 알았겠습니까? 사무엘상 1장 15절에 있는 한나의 대답을 보십시오.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사무엘상 1장 16절에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한나는 어려운 문제를 기도로 해결한 사람이며 억울하고 분한 것을 사람에게 복수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물 쏟듯이 쏟아놓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는 것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엘리가 한나의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는지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할 때에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한 말씀을 보면 한나는 참믿음의 기도를 드린 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종 엘리의 축원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한 말씀을 보면 “주의 종의 기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는”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신 것 같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 엘리는 기도했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눈이 어둡고 영의 귀가 어두워서, 간절히 기도하고 오래 기도한 한나를 술취한 사람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엘리의 자식들은 타락하고 방탕하다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법궤도 다 빼앗기고 나라를 망쳤지만 기도의 사람,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영적으로 큰 회개운동, 기도운동, 부흥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 배후에는 거의 다 위대한 기도의 부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4형제가 다 목사가 되고 부흥사가 된 것은 저의 어머님의 기도의 영향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Augustine의 어머니 모니카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방탕한 아들을 위하여 여러 해 동안 기도하고 눈물을 흘려도 응답이 없어서 유명한 암브로드 감독에게 찾아가 상담을 했더니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이 망하는 법이 없으니 계속 기도하라”고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Augustine은 세계적인성자가 되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식들이 무서운 죄를 지어도 꾸짖지도 않고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심상히 여기고 간절히 기도하지도 않았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더니 그 가정이 비참하게 망해서 제사장 대도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 군사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엘리는 전쟁에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꼬꾸라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자부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기를 낳다가 “이가봇” 하고 죽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과 자부가 다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나라를 구원했고 영적인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는 여러분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                                                                                          제목 :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본문 : 삿-13-07-14                                      
본 문 : 삿 13:7-14

설교자 : 류병규목사 (광주중앙교회)

5월은 교회적으로 전도의 달이면서 또한 가정의 달이며, 오늘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
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5월 전도의 달에 우리 교회가 제창하는 표어가 있습니다. 119운동입
니다. 한 사람, 한 영혼, 구원하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5월 전도의 달에 우리 모두가 한 사
람이 한 영혼을 구원하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5월을 맞이하여 교회
가 외적으로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가운이 바꿨고, 또 창에 커튼이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
이 우리의 마음도, 믿음도 새롭게 단장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자녀들과, 자손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해년마다 5월이 되면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게 되고 또
내일은 어린이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처럼 어린이 주일을 보내면서, 어린이날을 우
리가 보내면서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받으며 믿음의 답을 찾고자 합니다.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
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12). 그렇다면 이
질문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질문과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길러야 할까
요?

첫째 기도로 길러야 합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
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
게 하소서\"(8). 13장 2절 말씀에 보면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어찌 된 연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를 잉태치 못하였습니다. 어
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가 출타하고 없는 가운데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하는 말
이 \"네가 본래 잉태치 못하여,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는
놀랍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남편에게 마노아의 아내는
이 사실을 이야기했고 그 사실을 들은 마노아는 오늘 8절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들에
게는 도저히 자녀를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없었는데,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였는데, 하나님
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자기들에게 주어질 그 아들이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자녀가 아니라,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이요,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기업이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주셨을 때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
셨을 때는 무엇인가 우리의 자녀들을 통하여서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
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내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내 뜻과 내가 원하는 대로 우
리의 자녀들을 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모들은 그러한 생각들을 가져서
는 안됩니다. \'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기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에,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양육해야된다\' 하는 그런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마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까? 자기들의 힘으로는 자기의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길러
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나 험악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갖은 재난
과 재앙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어려움과 어려운 사고
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는 그 자녀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
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날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내 곁을 떠나 있으면은 불안합니
다. 염려가 됩니다. 그 말은 그마만큼 이 세상에 위험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은 죄악된 세상입니다. 너무나 죄가 관영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죕니다. 귀로 듣
는 것이 죕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듣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의 죄악이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정말로 믿음으로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자
녀들을 바르게 길러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자녀들
의 미래를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미래가 불분명한 세상 가운데 우리는 살
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10년, 20년 후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직장문제가 그렇습니다. 사업의 문제가 그렇습니
다. 앞으로 진로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성한 자녀들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그 자녀들의 가정이 온전할 것이며, 행복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노아가
말합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마노아는 믿음
의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
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서 일하시는 하나님신 줄로 믿습
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래서 불의
의 길을 가다가도 돌이키게 하시고, 실패와 좌절 가운데 빠져 있다가도 하나님이 그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악과 위험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능히 능력의
손으로 건져내 주실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녀는 망하
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귀신들린 자기 딸을 위하여 주님을 찾아
온 가나안 여인을 우리는 만날 수가 있습니다. 자기 딸을 위하여 주님 앞에 찾아왔습니다.
주님의 냉대와 정말로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하
는 딸을 위하여 간구하는 믿음의 어머니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
린 아들을 주님께 데려온 아버지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
서\"라고 주님 앞에 간청했을 때에, 주님의 응답을 받고 아들이 고침 받는 귀한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어느 농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믿음이 신실한 사람이었는데,
두 아들은 믿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늘 권면하고 권면해도 믿음의 생활을 할 기미가 전
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아침에 들녘에 일을 나가려고 하면은 헛간
에 가서 농기구를 가져오는데 들어가서 한참을 계십니다. 자녀들은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
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서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
나자 집안을 정리하던 두 아들이 아버지가 아침이면 일을 하기 위해서 농기구를 가지러 간
그 헛간을 정리하러 들어갔다가 무엇인가 발견했습니다. 움푹 패인 땅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땅은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들을 위하여서 아침마다 일을 나가기 전에 무릎을 꿇고 하나
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던 기도의 흔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두 아들은 그 자리에서 무
릎을 꿇고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들
을 위하여서 얼마나 기도를 해왔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자녀들
이 형통한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며, 바르게 자라주기를 원하고, 염려하며 근심은 하는데 얼
마만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
하는 믿음의 아버지들이여,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위하여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
노아는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라고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에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들을 위
하여 기도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부모의 눈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을 것이고 그 기도 까닭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풀
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길러야 합니까?

둘째 말씀으로 길러야 합니다.
어느 날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하
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 앞에 마노아가 하는 말이 무엇
입니까?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
떻게 행하오리이까\" 라고 물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
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즉 어떻게 그 아이를 기르며
행해야 하는가 하는 마노아의 질문 앞에 여호와의 사자는 그에게 말한 것을 삼가 다 지키게
하라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이 아이는 삼손인
데 하나님께서 그를 나실인으로 구별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된 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나
실인의 규례가 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셔서는 안됩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하고,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실인이 지킬 규례였습니다. 나실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
나는 삼손처럼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생을 살아가다가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로 나 자신을 헌신하여 드림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되겠다\' 라고 생
각한 사람이 나실인으로 서원하고서 일정한 기간을 나실인으로 지내는 것입니다. 나실인의
규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것,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어서
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먹지 말고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에 삭
도를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그 사람 위에 무엇이 있는가를 상징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하는 것은 너 위에 하나님이 있는 것을 인정하
면서 살라 하는 교훈이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행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것들을 먹고, 마시며 행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풍속을 따라 살아가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
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가르쳐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
래서 유대인들은 자기의 자녀를 낳으면 그들의 입이 열리기 전에, 귀가 트이기 전에 하나님
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
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
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으로 우리들의 자녀
들을 양육할 때에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의 일군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
다. 그리고 내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시내 곳곳에 많은 어린이날을 겨냥한 선물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기들의 자녀들과 손주들을 위해서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한번 돌이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이 어린이
주일인데 여러분들의 아들과 딸들이, 여러분들의 손자와 손녀들이 오늘 아침 주일학교 예배
에 참석했습니까? 아니 지금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오늘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렸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선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자
녀들이,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도
록 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일 어린이날인데 혹은 아들, 딸들에게 혹은 손자들
에게 한번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엄마 아빠가 주는 성경책을 선물해 볼 수 있기를 원합
니다. \"이 성경책을 열심히 읽어라, 이 성경책을 들고 주일마다 꼬박 꼬박 빠지지 말고 하
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를 드려라, 그리고 말씀과 믿음대로 살아라\" 한번 권면해 볼 수 있기
를 원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네스북이라고 세계 제일 가는 이야기들,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런
데 미국의 일리노이주에 다부라고 하는 사람이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합니다. 오른 이유가
무엇이냐, 57년동안 주일학교를 개근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57년 동안 믿음 생활하는 것
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 다부라고 하는 사람은 57년동안 주일학교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하면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1932년 이 다브씨가 은퇴겸 생일을 맞이하
여 축하잔치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 다브씨는 네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한 통은 중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에게 온 편지였습니다. 또 한 통은 미 연방은행의 총재에게서 온 편지였
고, 또 한 통의 편지는 후버대통령의 비서실장에게서 온 편지였으며, 마지막 네 번째 편지
는 후버대통령 자신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어느 날 이 다브씨가 길을 가다가 길에서 놀고
있는 네 명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들은 전도해서 주일학교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로 그들이 훗날 미국을 이끌어 가는, 세계선교를 감당하
는 귀한 일꾼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적인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칠 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
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내가 말한
것들을 다 삼가서 명한 것을 다 지킬 것이라\' 이 말씀대로 우리의 자녀들과 자손들을 하나
님의 말씀으로 다 양육하여서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의 귀한 일군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
다.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셋째, 믿음의 본을 보여 길러야 합니다.
마노아는 그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 아내에게 말하고, 자기에게 말한 것을 믿음으로 될 줄
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
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삿 13:4), 이 말은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지만 마노아의 아내, 즉 삼손의 어머니에게 한 말씀입니다. 먼저 너 자신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가진 엄마가
얼마나 어린 생명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조심하는가를 잘 압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가진 엄
마의 태교가 새 생명에게 그마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믿음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너무나 큰 신앙의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가장 위대한 스승
입니다. 부모는 가장 믿음의 좋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을 보
면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
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가르친다면은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살아 계
심과 응답하심을 믿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부모들의 주일마다 하
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일평생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
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작은 일에도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훗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
혜인줄 알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내 부모가 다른 사람을 사
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보이며 살아갈 때에, 우리의 자녀들이 이웃을 사랑하
며 봉사하며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는 일군들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
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신앙의 감시자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
을 누가 봅니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누가 봅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봅
니다. 그러므로 엉터리 믿음 생활하는 부모, 그 자녀가 바르게 믿음생활 할 것이라고는 기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도 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더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보고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어
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을 보고 자랐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
까? \"디모데야 너의 그 믿음은 너의 어머니와 너의 외할머니에게 있던 믿음인데 내가 너에
게도 있는 줄 아노라\" 디모데가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울의 믿음의 동역자가 될 수 있
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와 그의 외할머니의 믿음을 보고 본받아 자랐기 때문이요, 그의 어머
니와 외할머니가 믿음의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의 자녀들
앞에, 내 손자 손녀 앞에 과연 믿음의 본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
적인 것들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
다. 그리고 말씀에 도전을 받고 우리의 자녀들 앞에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본을 보이고, 예배의 본을 보이고, 감사의 본을 보이고, 사랑과 봉사의 실천의 본을
보여서 우리의 자녀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어린 딸과 아빠가 함께 있으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딸이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하
나님 죽으셨어요?\" 아빠가 깜짝 놀라서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죽이시다니?\"
\"옛날에는 아빠가 하나님과 대화를 자주 나누셨는데 요즘엔 통 아빠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죽으셨는가봐요\"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아빠
가 늘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가 기도를 쉬게 될 때에
그 어린 딸이 그 아빠에게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자녀들이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구나\"
라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
에 우리의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예배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
도여러분, 우리의 자녀들과 자손들에게 좋은 믿음의 선생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노아를 통해서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길러야 하는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
다. 기도함으로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러야 합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며 길
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였던 사
사 삼손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믿
음의 귀한 일군들이 배출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여호와의 주신 기업                                       본문 : 시-127-03-5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
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
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기업이라고 하면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회사로 생각합니다. 사업가는 기업을 통하
여 부와 성공과 행복을 창출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기업과는 관계가 먼 것으로 생각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바로 그 자식이 하나님께서 주
신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인간을 기르는 기
업, 즉 자식양육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업을 잘하면 하나님
의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잘 기르면 우리 일생의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삶의 최고의 기업인 자식양육을 등한시하고 세상적인 기업
에만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 그 결과 자식기업에 실패하고 자식이 재앙이 되어서 돌아올 때
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 기업을 어떻게 경영하
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자녀 기업은 농심으로 해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
식을 기르는데는 농부가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자식을 돌보아야 합니다. 농부는 논밭을 갈
고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물대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비료를 주고 김매고 병충해를 방지하
는 지극한 정성과 관심과 사랑과 돌봄을 통해서 수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
부는 봄이 오면 가을 추수할 때까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쁩니다. 그냥 씨만 뿌려놓고 내던
져 놓는다고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 이웃에 가난에 찌든 농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사는데 유독 그 분
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술먹기를 좋아하고 도박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농사
를 지을 때 마지 못해 논갈고 밭갈고 씨는 뿌려놓고 그 다음에는 내동댕이 쳐놓았습니다.
논에 가면 피가 잔뜩 나 있습니다. 농작물은 비뚤어져 있습니다. 밭에도 풀이 무성합니다.
소는 하루종일 묶어 놓아서 뼈만 남았습니다.그렇게 게으르게 농사를 지으니까 가을에 거
둘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자식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낳아 들풀처럼 그냥 던져 놓으면 저절로 자랄 것이라
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지극한 정성과 관심과 사랑과 돌봄이 있어야 자식농
사도 잘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
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은 오랜 세월 큰 인내를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때문에 농심이 없이는 자식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데 농심을 가지지 않고 낳아서 돈만 주고 내던져 놓으
면 자연적으로 들풀처럼 자랄 줄 아는데 이런 자녀들이 자라서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2. 자녀 기업은 가정 교육으로 형성된다

가정은 자식농사의 못자리이자 기업의 터전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교육하고 키우는데 학교가 돌보아 줄 것이니 학교에만 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안되
는 것입니다. 사랑과 화목과 평안이 넘치는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자식들은 그 분
위기를 마시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화목과 평안
이 있는 가정에서 자식들은 그 분위기를 마시고 자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분열이 있고 분쟁
이 있으면 그 분위기가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며 그 자녀들은 올바른 인격자로서 성장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뭡니까?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화목하고 평안을 가지고 기쁨
을 함께 나누며 소망을 가지고 사는 공동체입니다. 가족들에게는 내가 손해 보더라도 화해
하고 화목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부부간의 관계, 부모 자식간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는 이해를 따지면 언제나 손해가 옵니다. 이해를 따지지 말고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로 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
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
다. 이것은 패배주의적인 철학이 아니라 우리가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주
시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이해를 가지고서 따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때문에
이겨도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놀라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과 화목과 평안이 넘치
는 분위기 속에서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롤 모델(Role model), 즉 모범으로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신
랑, 신부를 알려면 그 부모를 살펴보면 됩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를 모범으로 삼고 딸은 엄마를 모범으로 삼습니다. 어릴 때 늘 보고 배우는 것이 아
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린이의 인격은 1세에서 6세 사이에 토대가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아동교육 전문
가 폴디 마이어는 인격의 85%가 1세에서 6세 동안에 완성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가 1세에서 6세 동안에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와 같이 있습니다. 때문에 자녀의 성장
모델이 부모라는 것을 알면 부모의 언어, 심사, 행동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
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
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버님이 저에게 참으로 좋은 모범이 되어주신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합니
다. 저는 한국전쟁의 전란 중에 자랐습니다. 학교에 가면 학교가 아니라 완전히 난장판이었
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애들은 다 구석구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술병을 들고 학교
에 왔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큰 아이들은 떼를 지어 창녀촌으로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저
는 그곳에 전혀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자랄 동안에 아버님이 우리 보는 앞
에서 절대로 담배 피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이 술취해서 술주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허랑방탕하게 우리 집안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늘 그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아버님이 그렇게 안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며 마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대개 결손가정이나 불안한 가정의 산물입
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인정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사회적인 물
의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청소년 범죄자의 가정 배경 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거기서 자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
게 됩니다. 10명 중 6명의 부모가 자주 싸웠습니다. 부모가 늘 싸우는 것을 본 어린아이들
은 상처를 입고 나가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청소년 4명 중 3명
이 제약없이 마음대로 키움을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부모가 징계를
하지 않고 막 기른 것입니다. 10가정 중 7가정에 건전한 오락기구가 없기 때문에 애들이 밖
으로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10명 중 8명의 부모가 자녀의 친
구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10명 중 8명의 부모가 자녀에게 전혀 무관심했습니다. 그래
서 이 자녀가 사회적인 문제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소년 범죄자들이 결손가정이었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대다수 소년 범죄자들이 되었고 청소년 범죄자들의 80%가 신앙교육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그들이 신앙적인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고 범죄
하지 않을 것인데 80%가 전혀 신앙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이 범
죄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의 선악의 선(線)을 부모들은 분명히 그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했
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말며 악을 행했을 때는 경고와 벌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22
장 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배우지 못했으므로 미련하지 않습니까? 그러
나 성경은 말하기를 징계하는 채찍이 이 미련을 마음속에서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23장 13절로 16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
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채찍으로 때리면 영혼을 멸망에서 구원합니다.
오늘날 교육은 어린아이들에게 채찍을 때리지 말라고 합니다. 학교 교육도 체벌을 못합니
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이 방종하게 자랍니다.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
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
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준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을 방임하면 안됩니다. 또 과보호하면 안됩니다. 잘할 때
는 칭찬하고 잘못했을 때에는 꾸짖고 채찍으로 때릴 수 있어야 지혜를 얻게 되고 마음에서
어리석음이 쫓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자녀 기업은 신앙 교육으로 결실한다

자녀가 장차 자라서 대통령이 되고 재벌이 된다 해도 목숨을 잃어버리면 그 삶은 아무 소
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쯤 되는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지옥
에 떨어지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을 구
원하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신앙을 넣어주면 떠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
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으므로
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신앙은 그 어머니의 품에 심어졌습니다. 바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유대민
족에게 아들을 낳으면 모두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죽
음의 위험이 임하자 바구니에 담겨 나일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왔다가 어린아이 우는 울음소리를 듣고 그 바구니를 건졌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세
의 누이가 와서 히브리인 유모를 추천했는데 바로 친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서 모세를 그 품에 길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나이가 들자 바로의 궁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래서 40세가 될 때까지 바로의 궁에서 온갖 학문을 다 배우고 영화롭게 살았지
만 어릴 적 젖먹을 때 엄마 품에서 신앙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평생 모세의 마음을 떠나
지 않았습니다.
40세에 그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치고 나중에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모
세의 마음의 신앙은 어릴 때 형성되었습니다. 1세부터 10세 전에 엄마 품에서 젖먹고 자랄
때 넣어준 그 신앙 때문에 그 이후로 그 40년을 살면서 바로의 궁전에서 호화의 극치의 삶
을 살고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어도 그 신앙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디모데의 신앙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
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 1장 5절).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
데가 그렇게 좋은 신앙을 가진 것은 먼저 그 신앙이 외조모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다음에
는 그 신앙이 그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신앙을 가졌으므로 디모데가 그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보면 훌륭한 신앙을 가진 어
머니의 품에서 자란 자녀들은 끝까지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적인 삶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됩니다. 신명기 6장 5절로 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
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가정예배를 착실
히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교회 오는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자녀의 손을 잡
고 교회 와서 교회학교에 보내고 부모가 예배 드리고 또 자녀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이것
이 그들의 습관이 되면 오래오래 그 마음속에 그 신앙의 모범이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
다. 저는 우리교회 훌륭한 부모님들이 십일조를 드릴 때 꼭 자녀를 데리고 와서 자녀가 보
는 앞에서 제게 십일조를 드리고 안수기도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교훈입니
까?
윌리암 콜게이트는 콜게이트 치약, 콜게이트 대학 등을 설립한 사람입니다. 18세 되던 해
에 성년식을 마친 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에게 가서 인생 자문을 구하자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은 자신이 있
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청년의 손을 잡고 ‘네가 좋아하는 바로 그일을 하거라.
단 한가지 조건은 예수님을 네 동업자로 모시고 수입의 십일조를 반드시 동업자에게 드려
라. 그러면 너게 크게 성공해서 잘살게 될 것이다’라고 충고했습니다. 콜게이트는 그 노인
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는 비누와 초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해서 일했고 십일조를 반드시 드렸습니다. 그 결과
로 큰 사업가로 성공하여 세계적인 치약과 비누 회사를 운영하고 콜게이트 대학을 설립해
서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놀라운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유산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이 바로 그 유산
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
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
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
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
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
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니겠습니까? 어떠한 일류대학 졸업장보다
더 자녀들에게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주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가장 놀라
운 유산을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것을 물려 받을 어린이
에게 좀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으라. 이것이 내 일생에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라”고 했습
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21세기는 도덕성을 지닌 민족만이 번영할 수 있다”고 말했
습니다. 도덕성이 없는 민족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번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도 알려 있지 않습니까? 도덕성을 잃은 큰 기업들이 부실경영을 해서 넘
어지지 않습니까? 결국 도덕성을 가진 기업이 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성공합니다.
우리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국은 입시교육에 눌려
인성교육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저 입시공부, 일류대학에 애들이 찌들어집니다. 그
래서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완전히 공부에 질려서 공부를 등한시하고 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있어도 지혜는 없고, 저주할 줄은 알아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기할 줄은 알아도 칭
찬할 줄 모르고, 경쟁할 줄은 알아도 협동할 줄 모르고, 쾌락은 알아도 사랑은 모르기 때문
에 오늘날 인성교육이 없는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도처에서 화합과 단결을 가져오지 못하
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1889년에 이 세상에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이는 히틀러이고 한 아이는 아이젠하
워입니다. 똑같은 해에 동갑으로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보다 사교생활을 더욱 중
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아이를 알
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
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고 1차대전
에 독일이 패배한 이후에 정치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교육이 없었
고 신앙교육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34년 독일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
고 그는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온 유럽을 잿더미로 만든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에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
의 사랑을 흡족히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
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에서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 어머니의 두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
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 졸업하여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고 이후 미국 대통령을 지냈는데 바로 아이젠하워였습니다.
1944년 6월 6일 이 두명의 동갑내기가 전투에서 대면했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와 연
합군 사령군 아이젠 하워는 서로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전쟁에 패배하고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갈채를 보내었
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전 세
계가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을 보여 주
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바람둥이 어머니 밑에서 잠시 자란 히틀러
는 사회와 인류에 대해서 무지무지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결국에는 독일의 총통
이 되고 난 다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류문명을 잿더미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사랑
과 신앙교육을 받은 동갑내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쟁에서 인류를 구원했고 미국의 대
통령이 되고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자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기업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자식을 개인 소유물처럼 취급해서는 안됩니
다. 4월 4일자 국민일보를 보면 제주도에서 한 아버지가 이민주 양이라는 어린 딸을 때려
서 죽였습니다. 그는 자기 부인과 생이별을 하고 있었는데 그 딸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
마에게 몰래 전화한다고 그 아버지가 그 딸을 굶기고 얼마나 매를 때렸던지 매맞아 죽었습
니다. 이런 창피하고 몰상식하고 몰지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딸이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한다고 자기의 살과 피인
자식을 굶기고 때려 죽이다니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의 형상이 되어서 너무나 부끄럽
습니다.
아동학대는 하나님 앞에 범죄도 보통 범죄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19장 1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보면 우리나라 잠재 피해아동은 45만명이라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9
만 7천명, 부산에서 3만 5천명, 제주에서 5천명, 경기에서 8만 3천명, 대구·인천에서 2만 3백
명이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아동의 75%가 11세 이하 아동인데 어떻게 학대를 하느냐.
밥을 안 주고 굶겨요. 옷을 제대로 입히지 않아서 동상에 걸리게 해요. 때려요. 정서적으로
구박을 해요. 버려요.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가 자식을 성폭행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극
적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로 6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학대에 대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무지무지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추궁할 것입니다. 아동은
제2세 국민으로서 사랑받고 보호되고 양육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
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때 어
떠한 사랑을 베푼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돌보고 양육해서 천국백성으로 만들어 주
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필요
한 물건이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며 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니까 한 아이가 손
을 들더니 ‘선생님! 저는 냉장고가 되고 싶습니다’ ‘왜 냉장고가 되고 싶습니까?’ ‘그 이유
는 속에 가득 찬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가 있고 또 냉장고는 우리 어머니가 항상 열
었다 닫았다 하므로 우리 어머니가 저를 냉장고처럼 열었다 닫았다 돌보아 주기 때문입니
다’
둘째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너는 뭐가 되고 싶으니?’ ‘저는 텔레비전이 되고 싶습니다’
‘왜?’ ‘그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좀더 자주 저를 보실 것이고 더 열심히 돌보아 주며 훨씬
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밖에 나가 놀라고 하지도 않고 끝나기 전에 주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 부모님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으니까 제가 텔레비전만 된다면 우
리 부모님이 항상 저를 쳐다봐 주고 제 말도 들어주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는
잠도 안주무시고 저를 돌보아 줄 것 아닙니까?’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부모의 돌봄과 사랑이 필요했기에 어머니가 늘 열었다 닫았다하는
냉장고가 되고 싶다, 부모님이 늘 바라보는 텔레비전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겠습니
까? 이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내버려 놓았다는 증거
가 되는 것입니다.
아동은 국가의 장래이고 교회와 천국의 장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린이주일을 매
년 지나가는 행사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부모들이 과연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식들을 잘 기르는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 보아야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
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도 한때는 다 어린아이였고 우리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
으로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자녀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
수님을 보내셔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시사 말씀으로 돌
보아 주시므로 우리가 신령한 자녀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라서 천국까지 가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어린이주일에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우리의 자녀를 잘못 기른 것
도 회개합니다. 또한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서 더 많은 정성과 관심과 뜨거
운 사랑을 가지고 농부가 농사를 짓는 그 농심으로 자녀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
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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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본문 : 신-06-04-9                                      
 
        신 6:4-9, 20-25
 
 
 
5월은 가정의 달이지요. 다양한 행사가 5월이 되면 정부는 정부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모든 기관이 가 정의 달에 맞추어 행사가 많습니다. 그 중에 먼저 어린이날이 제일먼저 오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행 사가 계속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가정,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선물들을 우리는 믿음 안에서 잘 길러서 5월의 푸르름같이 아름다움같이 하나님 주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저들로 통하여 확장하고 또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아브 라함과 이삭, 야곱과 그의 후손들로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아가는, 태어날 앞 으로의 수많은 우리 후손들을 통하여 이 민족이 복음화되고 거룩한 땅이 되고 제사장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나라가 되기를 우리는 모두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누구나 할 것 없이 잘 길러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교육 은 백년대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백년대계가 아닙니다. 천년만년 가도 교육보다 앞설 수는, 어떤 것 도 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잘 가르쳐서 잘 길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녀 를 사랑합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수고를 자녀를 위해 바치고 모든 돈을 자녀를 위해 서 다 쓰여져도 우리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왜? 자녀가 잘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까요. 그래서 우 리는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누구보다도 앞서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이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녀를 잘 기를 수 있습니까? 무엇을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할 것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 \'쉐마\'를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르쳐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명기 6장 4절로 5절 이 두 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귀한 메시지입니 다. 이것을 쉐마라고 합니다. 쉐마라는 히브리말은 들으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쓰기 전에 공부하기 전 에 먼저 듣는 것처럼 쉐마의 교육은 어머니 태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 아이에게 늘 말하는 겁니다. 너는 들어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일생동안 마음을 다 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을 계속해서 가르치는 겁니다. 부 모님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가르칩니다. 학교가 가르칩니다. 제사장이 가르칩니다. 사회 가 가르칩니다. 언론이 가르칩니다. 모든 유대인의 교육은 이 쉐마 교육에 온 나라가 다같이 참여하 는 것이지, 집에 있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만 가르치는 교육이 아닙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너 희 믿는 여호와 야훼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를 너는 일생동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섬겨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교육은 1-2년에 끝나 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계속합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밖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이 교육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손에도 손목에도 이 쉐마를 써서 기록하고 달고 다니고 이마에도 붙이고 다니고 문설주에도 바르고 밖의 문에도 바르고 온 집이 쉐마로 온 교육이 쉐 마로 가득 채운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잘 섬겨라, 잘 믿어라.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해 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백번 천번 만번 십만번 억만번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입니다. 끊임 없이 이것을 반복합니다. 유대인의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유대인의 우수한 교육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계 최고의 교육하면 유대인인데 유대인의 교육의 핵심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시키는 게 유대인의 교육입니까?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공부시키는 것이 유대인입니까? 아닙니다. 유대 나라 모두 교육을 연구하러 가보는 분들이 우리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더 철저한 것도 아니 고 어려서부터 일찍이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의 교육의 핵심은 쉐마입니다. 쉐마 교육을 받은 유대인은 오늘 세계를 지배합니다.

여러분 지난번 신문 보셨죠? 노벨상 받은 사람이 299명인가, 유대 인이 3분의 1, 94명. 우리 전 아시아 다 해도 몇 명되겠어요? 조그만 한 나라가 노벨상 받은 사람이 이 한 나라에서 90명 이상 백여명 가까이 나오고 전 미국의 대학교수의 35%가 유대인이고 모든 교육 계, 세계 정치계,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예술분야, 과학에 유대인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세계 돈도 다 갖고 있습니다. 이 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샘은 하나입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한곳에 서 나옵니다. 쉐마에서 나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선생님이 학교가 집에서 들에서 정치가 어른이 제사장이 랍비가 모두가 다 쉐마입니다. 계속 반복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간직하게 하고 생활 속에 간 직하게 하고 끊임없이 쉐마를 묵상하며 큐티하며 감사하며 믿으며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보는 눈을 열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앎으로 이 세상을 아는 것은 간단하 게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그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세계를 보는 눈이 넓어지 고 그릇이 커지고 지혜와 총명이 생기게 되고 담대함이 오게 되고 총명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 다. 교육은 어려서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 교육이 제일 중요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그러 지 않았습니까.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 지 아니하리라. 시편 71편 17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 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어려서 교육이 참 진짜 교육입니다. 좋은 것은 어려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이 우리에게 주신 자녀를 어려서부터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마귀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할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서 나이가 들어서 여러분 30, 40이 되어서 50이 되어서 공부하지마는 그거는 잊어버립니 다.

그러나 어려서 배운 것은 터가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는 좋은 가정은 쉐마 교육 입니다. 우리가 후회하는 삶은 자녀를 잘못 기른 것은, 잘못 먹이고 잘못 입힌 것이 아닙니다. 쉐마 교 육을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지 못하고 훈련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데, 이 얼마나 복잡한 세상인데요. 이 얼마나 피곤한 세상인데요 얼마나 유혹 많은 세상인데요. 미국에 가 있는 한국 사람도 정신병자로 지금 버림받은 폐인이 6천 명 이나 된다는 것을 제가 보고를 듣고 야, 미국 땅에 가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방황합니다. 현대인 의 이 방황과 무질서와 혼란과 이 정신적인 고통이 먹지 못해서 배우지 못해서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이 허무할 수밖에 없고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말씀 은 생명의 샘과 같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은 산을 옮기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기 때문에 말 씀으로 훈련받은 사람은 어떤 환경도 어려움도 이겨내고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쉐마입니다. 끊임없 이 반복해야 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다. 하나님을 잘 섬겨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 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는 찬송을 통하여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엿새동안 창조하시고 칠일은 쉬셨다. 이 날은 거룩한 날이다. 예배는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야. 깨끗한 옷을 입어야 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가 야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된다. 주일은 다른 것 하면 안 된다. 거룩한 날이다. 정성껏 헌 금을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전능한 자 앞으로 아이를 이끌고 가야합니다. 너는 원숭이의 자 손이 아니야. 너는 하나님의 자손이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천국 가서 영원히 살아 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야. 너의 조상은 버러지가 아니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우리가 왔다는 것을 쉐마를 통해서 천번만번 반복해야 됩니다.

나이 많아서 배우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우리 교단에 목사님 한 분이 연세 많은 90 넘으신 목사님이 한분 계시는데 또 80 넘으신 목사님하고 두분이 만나셨어요. 대화를 하시는 거예요. 여보, 당신 입원 했다지. 그래 입원했어. 그래 좀 어때? 괜찮아. 그러고 좀 이야기하시다가 정확하게 10분 이내로 또 한번 묻는 거예요. 자네 입원했다지. 그래 입원했어. 어떻게 됐어? 퇴원했어 괜찮아. 그러고 죽 이야 기하시다가 또 10분되면 또 그 이야기해요. 자네 입원했다지. 옆에서 들어보니까 계속 일곱 번 여덟 번 반복해요. 그 이유가 왜 그런지 아세요? 10분전에 한 이야기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다 잊어버려 요. 연세가 많으면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아침 먹은 걸 잊어버리고요 자기 나온 걸 잊어버려요.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금방 잊어버려요. 나이 많으면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80, 70, 60 되어서 어른들한 테 잘하는 건 다 잊어버려요. 소용없어요. 금방 잊어버려요. 그런데 어른들 만나보세요. 언제 것은 기 억하느냐? 20대, 10대에 있었던 일은 골목골목 돌 하나 있는 것까지 다 기억해요. 하나도 안 잊어버려 요. 모든 이야기, 언제 이야기만 하느냐? 어렸을 때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연세 많은 것은 금방 잊어 버려요. 자녀에게 가르칠 때 언제 가르치라고 했느냐? 여기 보면 어렸을 때 가르치라, 네 어린아이에 게 가르치라는 거예요. 뭘 가르치느냐? 야훼를 가르치라는 거예요. 높은 분을 가르치는 창조자를 가 르치라는 거예요. 하늘에 계신 분을 가르치라는 거예요. 그러면 땅의 것은 저절로 알게된다는 거예 요. 신령한 것을 가르치라는 거예요. 육신의 것은 금방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가 르치라는 거예요. 영원한 것을 먼저 가르치고 생명을 먼저 가르치라는 거예요. 먹고사는 물질, 땅의 것을 가르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늦어도 된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귀중한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하나님 주신 우리의 가정이 있습니다. 하나 님이 주신 우리의 선물들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을 저들로 잘 믿게 하고 내가 믿는 하나 님을 저들이 잘 경외하고 잘 섬기게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부모의 할 일입니다. 에베 소서에도 부모들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 녀를 잘 길러라, 신앙의 본을 보여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물려주는 부모같이 훌륭한 부모 가 없습니다. 기도의 부모같이 훌륭한 부모가 없습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축복이고 자녀에게도 큰 유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돈을 많이 물려준다 해서 물려준 돈으로 그 자식이 행복한 것도 아니 고 부모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부모님이 연로하셔가 지고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아들 삼형제가 와서 임종을 맞이했으니까 와서 장례식을 준비하는데 계속 다투는 거예요. 병원에서 아버지 입원해 가지고 지금 다 힘들어 이러시는데도 관을 우리 아버지 이렇 게 우리 귀한 아버님이신데 좋은 관을 쓰자 3백만 원짜리 쓰자 이러니까 또 130만 원짜리도 좋은데 무 슨 이러면서. 장례식 때는 다 화목하게 이렇게 일을 예를 치러야 되는데 상을 치러야 되는데 막내 아 들 의견이 안 맞는 거예요. 화장하자 그러고 공원 묘지로 모신다 그러고 자꾸 그러니까 아버님이 다 들으실 거 아니에요. 이래 들으시더니만 얘야 그 옷좀 다고. 그러시더래요. 왜 그러실래요 그러니까 아이고 너희들이 너무 힘드는 거 보니까 내가 그냥 묘지로 걸어갈란다. 관 살 필요가 뭐 있냐. 그냥 내 가 누울 테니까 그냥 묻어라. 그렇게 다툴 필요 뭐 있냐. 여러분 보세요. 요사이 신앙 이외에는요 부모에게 오히려 부모를 빨리 돌아가시게 해 가지고 뺏으려 고 하는 일이 일년에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 교회 집사님이 경남 진주에 은행지점장 하신 집사 님이 계세요. 우리 교회에는 지점장 하신 분이 많아요. 몇 년 전에 보니까 현직 지점장으로 계신 분이 120명이에요. 은행에 계신 분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는 돈이 많다는 거죠. 은행이 이렇게 많 으니까 얼마나 축복이에요. 은행에 높은 분들이 또 많거든요. 그 집사님이 진주에 계시는데 그 은행 에 돈을 제일 많이 저축하는 어른이 계시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오실 때마다 그 저축한 돈 가지고 다시 이자 받아 가지고 또 저축하고 또 모은 거 가지고 또 저축하고 그렇게 정확하게 그분이 오신대요. 그 런데 놀라운 것은 돈을 일원도 안 남기고 다 저축하고는 가실 교통비가 없어 가지고 꼭 타 가지고 간 대요. 버스비 천원만 해도 가실 텐데 절대로 안 간대요. 처음에는 지점장이 너무 감사해 가지고 엄청 난 돈을 맡기시니까 늘 먼저 드리고 만원도 드리고 이만원도 드리고 이랬는데 돈이 몇 십억 몇백억이 되면 좀 쓰실 줄도 알아야지 나중에는 지점장 집사님도 좀 이상한 마음이 들어가지고 한번 한 서너시 간 모른 척 하고 바쁜데 일을 하고 이래 보면서 다녀 봤대요.

그런데 세시간을 안가고 기다리시더래 요. 그 천원 받아가려고요. 그래서 또 천원을 드렸대요. 그래서 일년이 지났는데 그 어른이 돌아가셨 다고 연락이 와 가지고 장례식에 갔대요. 다른 분은 모르는데 지점장은 아실 거 아니에요. 그분이 갖 고있는 현금이 얼만지 아시니까 문상을 갔는데 5남매인데요 장례식을 못하고 대판 싸움이 나가지고 그냥 장례식이 수라장이 되었대요. 전쟁터가 되는 거예요. 다른 분은 모르지마는 우리 집사님은 어떻 게 지금까지 지나온 것을 너무 잘 아시니까 참 불쌍하고 그 어른이 보면 불쌍하고 자식은 또 불행하 게 보이는 거예요. 저런 놈들이 어디 있냐. 얼마나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데 저것 가지고 서로 더 가지려고. 장례식 끝나고 그래도 되는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자녀를 길러야 됩니까? 대체로 모두 이 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부모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자식은 불행하고 자신은 속 고 사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갈 때는 부끄러워 설 수가 없고요.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기르고 쉐마 에 집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이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소망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부유하신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이 하나님 한 분만 바로 믿는 믿음 위에 서면 어디가도 두려울 것 없고요 어디가도 어려울 것 없고요 찬송가에 있는 대 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만사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구약은 율법인데 율법이 법이 몇 개가 있느냐 하면요 율법이 몇 개의 조문이 있거든요. 하라, 하지 말라 하는 이 계명이 있는데 전체가 613개의 계명이 있어요. 이것은 기억하시는 게 좋아요. 613계명 가운데 하지 말라, 하면 안된다라는 게 몇 개가 있냐면 너무 쉬워요. 365개,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 지 말라는 것이 365개예요. 그러면 하라는 게 몇 개가 나오느냐? 248개가 나와요. 하라는 것은 248, 하 지 말라는 것은 365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사는 거예요. 하지 말라는 게 더 많 아요. 그래야 성공하는 거예요. 하지 말라는 게 분명히 있어요. 어디가나 거절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은 다니엘은 거절을 잘했다고요. 나는 못합니다. 그런 건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건 안됩 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때 좁게 살아요. 모든 성공하는 사람은 안 하는 것이 많 은 사람이 성공하는 거예요. 실패하는 사람은 이거나 저거나 없이 다하는 사람 그것이 실패의 인생이 에요. 누구나 사랑하는 거 무절제한 삶이듯이 오늘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은 아무 짓이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야훼를 잘 믿고 쉐마 교육이 된 사람은 못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요. 이것은 안됩니 다. 안 합니다. 오늘 이 사회에 참으로 능력 있는 지도자, 세계를 향하여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안 하는 것이 많 아요. 365가지 훨씬 더 많습니다. 교인들은 안 먹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안가는 곳이 있어야 됩니다. 안 하는 짓이 있어야 됩니다. 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은 어렵지마는 쉐마 교육이 잘 된 사람은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마귀의 자녀는 아무 것이나 먹게 하지마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사람은 거룩한 길로 가야하고 축복된 사람은 축복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먼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천국을 심는, 천국을 건설하는, 천국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농촌은 보면 지금은 아주 봄의 계절은 씨뿌리는 계절입니다. 어느 밭이냐 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뿌리느냐가 중요합니다. 뿌리는 대로 밭이 됩니다. 밭은 하나입니다. 뿌 리는 대로 밭이 바뀌는 거예요. 콩 심으면 콩밭, 옥수수 심으면 옥수수밭, 감자 심으면 감자밭, 보리 심으면 보리밭이 됩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됩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어린 심령 위에, 우리의 마 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고 거룩한 성령의, 하나님의 은혜의 씨를 뿌리면 일생동안 거룩한 밭 이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밭이 됩니다. 사람은 겉에 있는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 의 밭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마음에 거룩한 것을 뿌려야 됩니다. 우리가 뿌리지 않으면 마귀가 뿌려버 리는 것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벌써 마귀가 씨를 뿌려 가지고 마음이 강퍅해지고 거칠어지고 애들도 보면 잔인한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이 뿌리는 씨는 그렇 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뿌리는 은혜의 씨는 쉐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온유하게 하고 평 화롭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기쁘게 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 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불경기도 잘 이깁니다. 요사이 경기가 좀 어렵다고 하죠. 제가 총회의 상담소, 제가 책임을 지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곳 은 그전에 도시산업선교회인데 지금은 상담소로 명칭을 바꾸어 가지고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라고 70년대 80년대 우리 한국 노동운동의 본산지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을 상담실로 바꾸어 가지고 아주 노숙자들 특별히 이런 분들에게 여러 목사님들이 참여를 해 가지고 봉사를 하고 있습니 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용산까지 계속 걸어서 다니면서 수많은 노숙자에게 라면도 주고 이불도 주고 덮을 것도 주고 하는데 며칠 전에 소장이 저에게 와서 그래요. 목사님, 요사 이 노숙자가 얼마나 늘어나고요 그렇게 죽는 사람이 많대요. 젊은 사람이 괴로우니까 속상하니까 그 냥 술 먹고 불경기에는 독한 술이 잘 팔린대요. 그냥 소주가 잘 팔리고 속상하니까 막 먹고 그러다가 밖에 시멘트 바닥에 자다가 그냥 죽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또 가서 전부다 뒤를 봐주고 그러는데 불경기를 당하니까 모든 가정이 더 흔들려요.

예수 믿는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쉐마, 율법과 같아 요. 오히려 가정도 안 되는 일을 더 잘 하고 힘드는 일을 더 잘 감당해야지 그게 365개예요. 좋은 것보 다, 좋은 건 누가 힘들어요. 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해야죠. 불경기가 되었다 해서 가정이 흔들 리고 그러면 안돼요. 태연하게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할렐루야. 불경기가 되면 사람은 안 한대요. 네 가지를 특별히 안 한다 그러죠. 안 먹고요 그러니 식당이 어려워진대요. 안 입고요 옷가게 어려워진대 요. 안 탄대요. 관광업이 어려워 져요. 안타요. 비행기도 안타고 차도 안타요. 그 다음 또 안 아프대 요. 조금만 머리 아파도 병원에 가던 분이 아파도 안 간대요. 머리 아파도 설탕물 먹고 그냥 끝내버린 대요. 그렇게 아프던 분이 또 끝나는 거예요. 병원이 사람이 끊어져요. 왜? 안 아프다는 거예요. 그러 니까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가정이 흔들리는 거예요. 막 서로 안 사는 분이 이혼하는 분이 더 많아지 는 거예요. 어려울수록 힘을 모아야 되는데 흩어지면 더 어려워지지. 어려울수록 하나되어야지, 서로 더 사랑해야지. 더 귀히 여기고 참읍시다 우리 잘 이겨냅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좋은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산을 넘을 때 서로 짐을 나누어지고 격려하고 힘을 얻어서 올라가야 될 거 아니에요. 믿음으로 살면 항상 그때그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요. 할렐루야. 어려움은 잠깐 있 으면 지나갑니다. 담대함을 가져야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가정예배 드리고 성령으 로 충만하고. 교회는 꼭 은혜 되고 좋아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은혜가 안되어도 나오고요 아래층에 서 은혜 못 받으면 위층 올라가면 되고요 위층에서 은혜 못 받으면 비디오실로 가요. 어디서라도 나와 서 은혜 받아야 돼요. 속상해도 교회 나와야 돼요. 부부간에 싸워도 교회 나와야 돼요. 무슨 낯으로 나 가냐? 믿는 낯으로 나오는 거예요. 어젯밤에 대판 싸워도 내가 은혜 받아야 안 싸울 거 아니냐 하고 나와야 돼요. 어떤 분은 토요일날 요사이 친구들하고 술 한잔 하는 분은 그 다음날 또 안나오는 분이 있어요. 취해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 어떻게 나가냐고 무슨 얼굴로 나가냐고. 내가 집사냐 잡사지 어떻게 나가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원래 토요일날 술 먹고 주일날 회개하는 거예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마는 회개해야될 거 아니에요. 안나오면 더 먹지. 한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 고. 교회는 반드시 나와야 돼요. 교인은 얼굴이 두터워야 한다 할렐루야. 어떤 이유이든 간에 교회와 멀어지면 안돼요. 돈 떼먹은 분도 나와야 돼요. 그래야 벌어서 갚을 거 아니에요. 안나온다 그래서 도 망치고, 하여튼 안 된다 그래서 교회와 멀어지면 안돼요. 요사이 사업이 안 된다, 여기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지. 삶이 재미가 없다, 여기 나와야지. 답답하다, 나와야지. 요사이 참 되는 거 하나 없다, 나와 야 되는 길이 열리지, 나와야지, 나오면 되는 거예요. 나와서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으면 승 리할 줄로 믿습니다.

마틴 루터도 우리 인류 역사의 지도자 아닙니까? 얼마나 마귀가 루터를 보고 네가 무슨 종교개혁자 냐 그러고 막 낙심을 주고 죽어라 죽어라 그러고요. 그분이 집무실에 잉크를 던진 것이 아직 있대요. 마귀가 막 성경 번역하면 와 가지고 너 따위가 무슨 종이냐 그러고요 그럴 때 루터가 이 사탄아 그러 고 잉크를 던졌다라는 거예요. 제가 독일에 곧 큰 집회가 있는데 가려그러니까 목사님 그 자리 한 번 가보십시오 라고 교수님 한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낙심을 줘요. 우 리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요 좌절하게 하고요 스트레스 받게 하고요 신경질 내게 하고요 인생을 부정 적으로 비관적으로 낙심하게 하고요 대인관계를 파괴하고 자꾸 이래요.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을 신 앙으로 믿음의 눈으로 쉐마를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는데 내가 부족하지마는 주님 앞에 나가야 지. 끊임없이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사는 길도 이 민족이 잘되는 길도 쉐마입니다. 하나님 잘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 잘 안 믿 고 잘사는 민족이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서 잘된 역사가 인류 역사에 없습니다. 가정도 쉐마로 돌아와 야 되고 어른도 쉐마로 국가도 쉐마로 지도자도 쉐마로 우리나라의 교육도 학교 교육을 살리는 길도 쉐마 교육으로 가야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더라도 악한 길로 데려가려고 수많은 방법을 다 동원하 고 있습니다. 쉐마가 자리잡는 한 어두움의 세력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희는 집에 있을 때에든지 앉았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항상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네 손목에 매어서 기호로 삼고 이마에도 붙 이고 문설주에도 바르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가르치고 항상 강론할 것이며 끊임없이 쉐마 쉐마 천번 만번 억만번 쉐마만 바로 되면 다른 건 아무 염려할 것이 없는 거예요. 교회 나오셔서도 아직까 지 쉐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갈라지고 헛된 일에 유혹을 받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심 령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질서가 없고 풍요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쉐마 위에 굳게 서서 이 어려 운 시대를 이기고 요사이 쉐마 비슷한 유행병 들어오잖아요. SARS가 쉐마에 꼼짝 못합니다. 남북 핵 문제나 어떤 문제일지라도 쉐마만 있으면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의 귀한 사랑하는 성도들이 오늘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아와 이 스라엘아 들으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 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게 하시고 날마다 듣고 또 듣고 배우고 또 배워 서 든든한 믿음 위에 서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영원히 축복 받는 가정, 기업으로 만들어 주옵소 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제목 : 부모의 과제                                       본문 : 신-6-5-9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 르치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침이 되면 밖에 나갔다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호텔이 있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집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집이 최고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가서 잠을 자는 것에 더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가게 되면 안정감이 없고, 불편하고, 부자유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내 집처럼 자유하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쓸쓸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인들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 기르는 과정이 어렵고 고되지만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정의 행복의 요소이고, 기쁨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정에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불량하고, 탈선을 하고, 사고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오히려 부모들에게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앗아가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5)는 것이고, 둘째로는 \"내가 명한 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7)는 것이고, 세 번째는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발라 기호를 삼으라\"(8)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녀들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우선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로 하여금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 합니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그 어느 것에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애처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보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탈선하고, 반항하고,  제를 일으켜서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부모들의 근심이고 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적인 요소입니다.  이 타락된 정신은 피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벽이나, 방랑성 그리고 주벽, 불성실, 유흥성의 기질은 유전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의 핏속에 다 들어 있는 유전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환경에 있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정신의 변혁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청년은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야 곧고 고루 균형된 인격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결손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우선 정신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불화하고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는 정서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성을 잃고 밖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탈선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모세나 삼손이나 세례요한 같은 경우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인간은 태아 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어느 임상학자가 이 경우를 실험했습니다.  산모의 태 중에 전깃줄을 넣어 불을 키니까 태 속의 어린아이는 눈을 가리더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빛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켜서고 어둡던 곳이 밝아지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고, 문을 쾅하고 닫으니까 이 아이는 태 중에서도 놀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니까 그 때서야 안정하고 조용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 주정을 피우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환경에서 잉태되고, 자라난 아이들은 늘 긴장 속에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난폭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라야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실내에 있으면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 크게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어린 태아는 태 중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적이고 평온을 유지할  때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심성을 유지하면서 자라겠지만 불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는 쉽게 불안정한 아이로 형성될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니까 늘 싸우고, 화를 내고, 흥분을 하고, 욕을 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서 잉태되고, 자라고, 성장한 아이의 심성이나 성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이 쉽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자녀양육의 필수적인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 육성을 위해서\" 입니다.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사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중에는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학교의 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한 역할입니다.

  아이들은 분위기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서 신앙인으로 만들어지지도 하고, 비신앙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수가 있어도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비신앙 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초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기초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3빌딩을 짓는데 기초공사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초가 그만큼 단단하고 잘 되어 있으니까 그 기초 위에 63층을 올려도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는 것입니다.  모태 신앙 자들이 뜨겁거나 신앙의 활발성은 적으나 끈질기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기초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동안 세계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든든함을 보여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대처했고 개입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처럼 실패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의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닙니다.  완전히 한물간 나라입니다.  쇠퇴했습니다.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공립학교들이 수업시작 전에 기도하던 제도를 폐지했던 그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미국의 모든 학교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던 힘이었고, 구심점이었고, 미국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먼저 그것부터 폐지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구심점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이 얻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월남전의 패배입니다. 그 때 부터 미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신뢰도를 잃게 되었고,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의지도 모호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이제는 완전히 종이 호랑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미국의 몰골을 보십시요.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 북한으로부터 질질 끌려 다니는 저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됩니다.  국가든 사회든 그곳이 가정이든지 이같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힘이 약화되고 구심점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 그 말씀을 강론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집집마다 가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훈의 목적은 순전히 교훈성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그 가정의 뜻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훈을 중심으로 해서 온 가족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보면 좋은 정신이 들어 있는 가훈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에 기록하여 가르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훈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가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다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도 먹여서 잘 키워야 하지만 정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영의 양식도 충분히 먹여서 골고루 섭취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부여된 역할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서 40명의 어린아이들이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                                                                                          제목 : 효자집에효자난다                                       본문 : 엡-06-01-4                                      

에베소서 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
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
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하라
어린이날은 어린이
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그들을 인정해 주고, 더 많이 사랑하는 날입니
다. 어린이날은 “내 자녀만”의 날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의 날입니
다. 그러므로 주변에 있는 소년 소녀 가장과 어려운 이웃의 자녀들도 돌아보아
야 하겠습니다. 혼자만의 기쁨은 잠깐이나, 함께 하는 기쁨은 늘 새롭습니다.

그런데 최근 신문 방송을 보면, 값비싼 어린이날 선물 때문에 부모의 허리
가 휜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어린이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
면, 요즘은 어린이를 물질로만 채워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린이들을
물질과 지식으로 키우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한다면, 인생의 “옳은 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일평생 복 받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효”
야말로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옳은 길이며, 복 받는 길이라고 증거합니
다. ꡔ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
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
서 장수하리라ꡕ(엡 6:1-3).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여, 재물
을 모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더 많은 사
랑과 정성을 쏟으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라고
말합니다.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은 비싼 선물이 아니라, 효자로 키우는 것입니
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효자로 키울 수 있을지 함께 알아보고, 모든
어린이를 삶의 옳은 길과 복 받는 길로 인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효자가 되자


우선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마 10:37). 최우
선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풍성한 복과 건강과 장수를 허락하십니다
(출 23:25-26). 부모의 하나님 섬김은 자녀에게도 복을 받게 하는 길인 것입니
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섬김이 없는 자녀 사랑은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
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더 사랑했습니다(삼상 2:29).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과 그 가문을 영원히 끊어버리셨습니다. ꡔ나
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ꡕ(삼상 2:30-31). “자식을 빌어먹게 하려면 재산을
남겨주고,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신앙과 신념을 넣어 주라”는 서양 속담이 있
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은 바로 신앙과 그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신념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모들이 먼저 자신들의 부모님께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들
은 “가르치는 대로” 행하기 전에 “보는 대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를 효자로 키우려면 내가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속여도 자
녀들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자녀 교육의 첫 걸음은 효의 본을 보이는 부모다
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부모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말과 행실이 다
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먼저 이웃의 어른들께도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웃어른은 이
사회의 부모입니다. 우리는 형식적인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성경
적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효도할 부모가 없다”고 말하지 맙시다. 이웃집
어른, 스승, 국가 지도자, 영적 지도자, 홀몸 노인이 모두 우리가 공경해야
할 부모입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항상 잊지 말고 존경을 표시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ꡔ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ꡕ(레 19:32)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 하
나님을 섬기고, 부모님과 이웃 어른을 공경하는 좋은 부모가 됩시다.


둘째, 효를 가르치라


어린이날 최고의 선물은 자녀에게 사랑으로 효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젊은 부모들은 사랑은 많이 말하나, 사랑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그래서 어
려움을 겪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속출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
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ꡔ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
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ꡕ(잠 22:6). 하나님
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된 우리를 성령과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가르침의 방법은 “함께” 배우고, “함께” 행하는 것입
니다. 효도하지 않는 부모가 효도하라고 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엡 6:4상).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들과 3년 반을 “함께” 하
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며 본을 보인 것처럼, 부모들도 자녀
들과 “함께” 효 말씀을 공부하고, “함께”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21세기에는 지식교육보다 인성교육이, 인성교육보다 영성교육이 필요합니
다. 영성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성경적 효를 실천하는 영성의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녀들에게 성경적 효를 잘 가르쳐서 지
성, 인성, 영성에 탁월한 21세기의 지도자로 키웁시다.

또한 자녀를 잘 가르치려면 사랑의 “칭찬”과 사랑의 “매”를 아끼지 말아
야 합니다. 성경은 ꡔ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
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ꡕ(잠 13:24)고 교훈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
라 부모들은 칭찬도 잘 못 하고, 회초리도 잘 못 듭니다. 많은 부모가 칭찬하
면, 조건적 칭찬이나 남의 자녀와 비교해서 합니다. 칭찬은 자녀의 바른 인격
과 장점을 보고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초리는 아주 어릴 때 들어야 합니
다. 요즘 부모들은 공부 회초리는 들면서 효 회초리는 들지 않습니다. 공부 회
초리가 지식을 줄지 모르나, 효 회초리는 자녀를 지혜롭게 합니다(잠 29:15).
효 회초리로 지혜로워진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줍니다. ꡔ네 자
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
라ꡕ(잠 29:17).


셋째, 효자로 인정하라


부모가 먼저 우리의 자녀가 효자임을 믿고, 선포하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
니다. 부모가 보기에 많이 모자라도 효자라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이라고 먼저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시몬
을 보시고 “베드로”(반석)라고 먼저 인정해 주셨습니다(요 1:42). 예수님이
“베드로”라고 인정해주시자,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처
럼 부모가 효자라고 인정하고 선포하면, 그 믿음 때문에 자녀들이 효자로 성장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효자, 부모님께 효자, 웃어른께 효자는 반드시 성공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효자로 인정한 만큼 자녀에게 효도할 것을 “요구”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
나님도 우리들에게 다 주시고, 십일조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도 자
녀들에게 당당하게 효도하라고 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인정도 하지 못하고, 요구도 하지 못합니다. 또는 자녀를 너무 어려워하거나,
자녀를 너무 무시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눈치를 보면, 자녀는 세상에 나가서
세상의 눈치를 봅니다. 자녀들에게 당당히 효를 요구함으로, 자녀들이 하나님
께 축복을 받도록 합시다.
 
사랑이 제일 좋은 교육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를 사랑해야 하며, 사랑하기 때문
에 효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부모만 되지 말고, 좋은 조상이
되길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먼저 좋은 신앙인이 되고, 효자가 되
어서, 가문을 빛내는, 후손을 빛내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그들을 사랑하기에 신앙교육을 하고, 효
를 가르치기 원합니다. 부모가 먼저 효자가 되어 자녀들 가운데도 많은 효자
가 나오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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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4


현대인의 가장 큰 죄가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물 질문명에 취해서 편리한 것들만 찾 아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깊 이 공부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 어는 요새는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 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만 은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입니다. 깊이 공부하며 책 을 읽는 그러한 일들이 점점 멀어지 는 것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합 니다. 깊이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 를 묻는,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이올시다. 둘째는 실천하 지 않는 겁니다. 아는 대로 행하질 않습니다. 부득이 하다는 말로, 인 간은 약하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가 지고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 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많고, 비 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행하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비참할 정도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겁 니다. 그래서 의지 박약, 그것이 바 로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세번째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가 르치지 않을 뿐더러 자녀에게까지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어느 제 아는 친구 목사님이 또 다른 일본 목사님과 이야기한 얘 기를 제게 옮겨 주었습니다. 그 일 본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셋이 있는 데 자녀가 하나같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적 으로 삽니다. 이것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가만히 보니깐 자녀들에 대 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목사님은 그 자녀들이 이렇 게 교회에 안나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요? 종교는 자유인데요. 애들에게 왜 내가 예 수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르쳐야 됩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악으로 키웁니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 런히 자녀들에게, 친구에게, 이웃에 게 내가 깨달은 바 소중한 것 또 진 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 도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이 만큼, 세계적으로 볼 땐 아주 잘 삽니다. 특별히 IMF라 고 하는 이 경제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만큼 잘 견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는 미처 생각하지 못 하지만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저것을 잘 견딜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땅도 좁고, 사람은 많고, 자연 자본 도 없지만은 한국사람들 자녀들 공 부시키는데는 극성입니다. 이것이 밑천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린 6·25를 통해서 이 엄청난 희생과 큰 사건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만은 정리해보면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어요. 첫째가 교육이 먼저다. 그 동안에는 양반이니 귀 족이니 뭐 해 가지고 돈을 많이 벌 어서 자자손손이 땅을 물려주고 살 면 이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돈, 땅 이것만 생각했습니다만은 전쟁을 치 르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땅문서 소용없어요. 지식이요.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배웠습 니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가르치 고, 한 마리밖에 없는 소도 팔아서 자식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이 한 국사람의 교육열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 해서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있는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6·25를 통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온 세 계에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나아졌 습니다만은 50년 전만 해도 공산주 의가 세계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했 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여기 서 공산주의의 정체가 노출이 됩니 다. 그리고 온 세계에 증거하게 됐 습니다. 이렇게 역사가는 말합니다. 만일에 6·25가 없었더라면 우리 한 국은 틀림없이 월남이나 캄보디아같 이 되었을 거라구. 완전 공산화 되 가지고 지금 얼마나 비참해 집니까? 캄보디아에서요 킬링필드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한 곳에서 150만을 죽였어요. 사람 죽이기를 뭐 거침 없이 해요.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보면서 이 남의 얘기가 아니요. 우 리가 일찍이 6·25전쟁을 만나지 않 았더라면 이래 될 뻔했다 하는 겁니 다. 정신이 아주 아찔합니다. 공산 주의를 배우게 됐어요. 또 세번째 는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로 신앙의 색으로 드러났어요. 6·25를 통해 서 교회가 부흥되고 영적 세계의 소 중함을 알아서 철저한 종교성이 높 은 그러한 민족으로 발전하게 됩니 다. 자 이제 보세요. 결국은 이만 큼 우리가 하나님께서 6·25를 통해 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많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양육 하라\"하고 말합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는 먹이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 니다. 자라게 하시는 일, 생명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뿐이십니 다. 그런데 그가 자라게 하실 텐데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어요.
\"먹이 라\"
그랬어요. 먹일 것을 먹여요.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 4장에서 말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지속 되는 것이올시다. 누가복음 2장 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에 아주 교육철 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 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하는 말입니다. 키가 자 라며 \'체육\', 지혜가 자라며 \'지육\'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 더라 \'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더라 \'도덕\', 이런 네 가지 측면으 로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 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 속 영향을 공급해야 됩니다. 균형 있는 영향,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불균형이 되고 실조가 되어서 잘못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 분위기나 이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더 구나 우리 북한에 가 보면은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이 들이 비참한지요. 저희가 이 자리 에서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약 삼천 명의 고아를 저희 소망교회에서 계 속 식량을 오래 전부터 대고 있습니 다. 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 을 보면은 영양실조가,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울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거, 앞으로 커서 사람될는지 모르겠 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나 끔 찍한 지 거기 지도자들도
\"목사님, 그 애들 만나지 마세요. 그 애들 비참한 거 보고나면 목사님 아마 한 달 동안은 식사를 못 할겁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 만큼 비참합니다. 먹지 못한다는 것, 먹 지 못해서 비틀어져 가는 영양실조, 얼마나 비참한 지 모릅니다. 자 그 런고로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키워야 겠지요. 잘 키워서 잘 먹여야 됩니 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 지요. 더구나 입맛은 부모가 만드 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 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 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 야 합니다. 먹이도록, 먹도록, 그래 서 충분한 영향을 공급해야 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 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고, 보아야 할 것은 보고, 경험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그래야 지능 이 발달합니다. 이런 우스운 얘기 가 있어요. 수다스러운 어머니를 가진 아이의 I.Q.가 높다고. 말없는 것보다 나은가 보죠. 수다스러운 어머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생각이 발전한다고 그래요. 멍청한 어머니 는 아이들을 멍청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게 양육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경험하 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내 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 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자, 낳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 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거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한 말씀 이지만은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노엽게 하지 마라.\"
이게 뭡 니까? 화를 내게 만들지 말아요.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분위기에 맞추지 못했 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못한 거 예요.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에 할, 들어야 할 말이 따로 있어요. 저들 도 피곤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무 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 다. 생각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조 로 분노를 일으킨단 말이요. 그래 서 교육이 빗나갑니다. 마음이 빗 나갑니다. 또한 이해의 수준이 있 고 경험의 정도가 있습니다. 소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 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은 이게 또 문제가 되는 겁니다. 요샛말로 눈 높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 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이보 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 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을 알면서부터 비로 소 교육은 교육되는 것이올시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렸을 때는 나 혼자가 다인 줄로 알고 아버지, 어 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나를 사랑하는데 조금 있다가 동생이 태 어나니까 사랑이 이동합니다. 그 쪽으로 옮겨가요. 이 아이는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신자가 돼버려요. 아버지가 미워 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제 무 슨 교육이 통하겠습니까? 화가 났 거든요 지금. 사랑을 빼앗겼으니까 요. 이 배신자들 그들의 원수 같은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들을 수가 없 죠. 여기서 한번 삐뚤어져서 일생 가는 거예요. 참으로 무서운 겁니 다. 심지어는 어떤 책에는 그런 말 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젖 땔 때가 문제라구요. 젖 땔 때. 분명히 어 머니에게 젖이 있는데 저걸 먹지 말 라는 거예요. 이건 보통 고민이 아 니요. 이건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 는 거예요.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예요. 그런데 알 바 아니오. 여러분, 화내게 하지 마세 요.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안 통한다는 얘깁 니다. 자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고 로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주고 이것이 진정한 사 랑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요새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한번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오체불만족\' 이라는 책입니다. \'오체불만족\'.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 선천성 사 지절단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팔 다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팔이라는 것이 도대체 10cm밖에 안됩니다요. 이런 고구마 같은, 몽 땅한 것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의사가 받아놓고, 의사가 깜짝 놀란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머니 가 이걸 보면 아마 기절할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한달 동안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못 보게 했 습니다. 한달 후에 어머니와 아들 이 첫 상봉을 합니다. 기가 막힌 장면을 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상상을 하십니까? 이 어머니는 분명 히 기절할 거예요. 그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 기.\"
조금도 티없이 아이를 사랑합 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그의 간증을 들 어보세요. 대학 다닐 때까지 자기 는 자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 답니다. 집에서 꼭같이 키우고 있 으니까, 편안하게 키워줬으니까. \'남과 다르다. 남이 있는 것이 하나 가 없다.\' 그것뿐이지. 내가 장애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는 전혀 그걸 느끼지 않 았다는 겁니다. 전혀. 그리고 그에 게 모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심지 어는 이 보세요. 야구 선수가 되고, 축구를 하고요. 수영도 하고, 컴퓨 터를 하고, 붓글씨를 쓰고……. 못 하는 게 없어요. 모든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자랐어요. 이제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청년은 이렇 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특별 한 개성일 뿐이다.\"
너무너무 엄청 난 얘기 아닙니까?
\"남과 좀 다를 뿐이지, 개성이 강할 뿐이지 별거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고 있구요. 또,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은 여기 있습니다.
\"마음을 열 고 나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던 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존재에 대 해서 충만하고 마음을 열고 보니까 모두가 친구더라는 거예요.
\"친구 가 많다.\"
얼마나 귀한 얘기입니 까? 그리고 마음을 열라고 외칩니 다. 또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 달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할 수 없 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특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만 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렇게 외 칩니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라 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더욱이 그 림에도 보면은 그 얼굴이 얼마나 밝 은지요.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다 니는데 휠체어를 스위치를 눌러서 이렇게 높여요. 이렇게. 높여.
\"왜 높이느냐?\"
하니깐 자기하고 걸 어가는 사람하고 눈 높이를 맞추려 고. 얼마나 멋진 얘기이에요. 눈 높이를 맞춰가며, 그는 명랑하게, 그 밝은 얼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밝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밝게 키울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 는 헬렌켈러 여사의 말을 인용합니 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이 어머니가 조금 도 낙심하지 않고, 밝은 마음,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이 불편한 장애 인 오토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이라는 겁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이 라는 말이 뭡니까? 주님의 말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하는 겁 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 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으로 가르치라. 제가 오래 전 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거짓말하면 못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게 아 니라
\"성경을 가져와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르쳐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 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으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그저 주의 교 양으로 가르치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미국 오클 라호마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알지 않습니까?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두 젊은 사람. 고등학생이 총을 그대로 마구 쐈어요. 이 엄청난 사 건이 있은 후에 미국은 벌컥 뒤집혔 는데,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도대 체 총기가 문제다. 총기를 쓰지 않 도록 법을 통과해야겠다. 두번째, 성경을 다시 가르쳐야겠다. 종교는 자유인데, 왜 기독교 성경만 강요하 느냐?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오랫동 안, 수백년동안 가르쳐 온 성경을, 그 과목을 폐지해버렸어요. 이거 폐지한 다음에 이 모양 됐다. 다시 성경을 가르치고, 이걸 입법화해야 겠다고 사방에서 부르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경 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요새 음악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이 제게 CD 한 편을 보내 왔어요. 한 장을 보내왔는데, 그 아 무 곡명도 없고,
\"Music Clinic\"
딱 고 몇 자만 써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거죠. 음 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겁니다. 그 런데 그 음악은 제가 늘 듣던 아주 쉬운 클래식 음악들이에요. 쇼팽, 모차르트, 뭐 그런 것들이에요. 이 론은 이렇습니다. 요새 락이라는 음악이 있고, 랩이라는 음악이 있고, 그런 그 리듬 자체가 발광적인 것들 이 많습니다. 이제 보세요. 동물에 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계란도 잘 낳고, 새끼도 잘 나요. 우유도 잘 나오고. 이 동물에게도 락을 들 려주면은 발광을 해요. 낙태를 해 요. 아시겠어요? 요새는 또 식물 에게다 합니다. 식물도 여기다가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은 식물이 40% 더 잘 자란답니다. 거기다가 또 락을 틀어주니까요. 전부 고개 를 돌리더랍니다. 이 미친 리듬이 이 발광적인 리듬이 그 다 듣고 나 가서 뛰쳐나가서 범죄화가 되는 거 예요. 심성이 고요해져야지. 음악 도 조용한 음악으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잘못되는 사람은 없어요. 불 량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음악을 좋 아하는 거예요. 요새 더구나 이렇 게 워크맨이라는 걸 끼고 돌아가는 데요. 이거 많이 끼고 돌아가는 아 이들이 I. Q가 40% 떨어진답니다. 미쳐요. 발광하는 거예요. 공부가 안 되요. 보세요.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듣는 대로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들어서 담아야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 죠. 또,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
그랬습니다. 주의 훈계. 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준 그 훈 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 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줘야 됩 니다. 가치관을 보여줘야 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 여주고, 진실로 사는 본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 을 보여줘야지요. 섬기면서 기뻐하 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 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자녀들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을 먹고삽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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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4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참 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 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외 한다면 세 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직 장에 문제가 생겨도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 제가 생겨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 러나 아무리 그와 같은 것들이 힘들 고 어렵다고 하여도 자녀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그만큼 자녀의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자녀를 문제 없이 키운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 들과 가정에 자녀로 인한 갈등과 고 민과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 니다. 많은 가정이 부모와 자녀 사 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에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상의 문화적인 환경과 여건이 우리 의 자녀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적인 환경 과 여건은 참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 육하는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 나 문제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직접적 인 원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 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 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사랑한 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녀를 문제 없이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 고 사랑은 하지만 정작 자녀를 바르 게 양육하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 어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문 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찾아내 그것 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랑 때문에 문 제가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는 문제 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이 시간 몇가지 문제를 말씀드 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지함\'과 \' 무례함\' 그리고 \'본이 되지 못함\'입 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 대하 여 모릅니다. 무지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하여 거의 잘 모릅니다. 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거의 모 릅니다.
별 것 아닌 자동차도 운전 을 하려면 많은 훈련과 공부가 필요 합니다. 그와 같은 훈련과 공부를 통하여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운 전을 합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그와 같은 공부와 훈련을 받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한다면 세상에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아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운전 면허가 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자동차 를 몰래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내는 경우를 뉴스를 통하여 보곤 하는데 바로 그것이 훈련과 공부없이 자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일으키는 큰 사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 의 사고를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서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도 많 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 부와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비유하 자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교육 에 있어서 무면허자들입니다. 그래 서 사고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책도 읽어야 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좋은 강의들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 을 이해하고 저들을 바르게 운전하 는 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은 자 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저 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 이 저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 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 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 \'어 떻게?\'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 요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함에 있 어서 무지 보다 더 나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 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다. 많은 부 모들이 자녀들에 대하여 무례합니 다. 자녀들의 대한 부모의 무례함이 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고 불편하게 들리는 부모님들이 혹 여 러분들중에 있으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많은 자녀들이 바로 이 보모들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상 처와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상처와 고통이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때 무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례함 때문에 사 랑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 나가 바로 이 무례함입니다. 사랑하 는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무례함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무례함입니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함부로해도 된다고 잘못 생 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 습니다. 자녀들이 비록 어리기는 해 도 저들도 하나의 소중한 인격들입 니다. 물론 아직 미숙한 인격이기 때문에 저들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미개한 것으로 보지만 잠언 13:24에 보면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말씀이 있 습니다. 필요하다면 자녀들에게 매 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고 교훈하고 심 지어 매질을 할 때에도 저들의 인격 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인격 을 함부로 무시하고 저들에게 무례 함으로 저들에게 정신적이고 인격적 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자녀 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 옵니다. 자녀들이 언제 부모에 대하 여 노여움을 품게 되는지 아십니까? 부모에게 꾸짖음을 당할 때 아니면 부모들에게 매를 맞을 때인줄 아십 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도 부모들에게 꾸짖음을 받고 심지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상처를 받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인격 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 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인격적 으로 대우하고 저들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어 준다면 저들은 부모 의 꾸짖음과 초달을 인정하고 받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과 초달은 아주 좋은 효과를 가져와 아 이들을 바르게 자라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말 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항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부모들 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반 항을 하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꾸 짖음과 매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들 이 자신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 로 말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때문입 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예 의는 아이들이 어른에게만 갖추는 것인줄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른들 이 먼저 아이들에 대하여 예의를 갖 출 줄 알 때 우리 아이들이 예의를 배우게 될 것이고 어른들에 대해서 도 예의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바르 게 양육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본이 되지 못함\'과 \'정직하지 못함\'입니다. 참된 교육은 말에 있지않고 삶에 있습니다. 보통 의 경우 삶이 따르지 않은 말은 힘 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경우는 다릅니다. 부모의 \'삶이 따르지 않 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바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삐뚤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삶 이 따르지 않는 말\'에는 힘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은 말만 해\'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부모 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서 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입 니다. 남들과 특히 친구들에게 자랑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 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큰 쇼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라고 늘 \'말과 삶 \'이 일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 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들 도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정직하면 됩니 다.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오히려 존경하고 자랑 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쓸데없 는 권위 의식 때문에 자녀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이 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이들의 눈에 부모는 위선자로 보이 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리고 자랑스러워야 할 부 모가 자녀들의 눈에 위선자로 보이 게 될 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엄 청난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모의 자 녀에 대한 교육은 끝입니다. 더 이 상 교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 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 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맞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 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이 아무리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자녀가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 나 극단적으로 세상의 다른 일들이 다 실패하고 어려워진다고 하여도 자녀들이 성공하고 잘된다면 그 실 패와 어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세상에 자녀를 바르게 양육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 다.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데 있어 서 부모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 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스승 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오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스승과 교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면 그것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키 면 훌륭한 자녀들이 되는 것으로 오 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 임은 저들에게 세상과 인생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와 스승 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 자녀들이 복이 있습 니다. 부모에게서 인생에 있어서 중 요한 것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아 이들이 복이 있는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저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줄 수 없습니 다.
저는 지금 제 실력으로 아 이들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 그 밖의 세상적인 지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학교 에 보내고 선생님들에게 저들을 맡 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삶과 신앙은 제가 가르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제가 가르 쳐야만 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이 되고 싶습니 다.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으로 좋은 동안 교회의 목사 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 분들이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목사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복 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해 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훌륭 한 일군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 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고 성 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자녀 교육 에 승리하고 성공하시는 분들이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먼저 공부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 부하여 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저들의 심리와 성격을 공부하여 저들에게 그와 같은 진리 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배 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인격적으 로 대하는 법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 고 자녀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 말 한마디라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 심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부 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정직하 고 솔직한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 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록 세상이 아무 리 혼탁하고 유혹이 많다고 하여도 틀림없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을 훌륭하고 반듯한 아이들도 키워 주 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 신대로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의 기업이 될 것이요 우리들의 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서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받으시 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                                                                                          제목 : 제일 좋은 사람                                       본문 : 요-06-09-11                                      
요6:9-11

 오늘 제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사랑하는 강변교회의 어린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유아부 어린이들과 유치부 어린이들과 유년부 어린이들과 초등부 어린이들이 성경암송과 찬양과 핸드벨 연주와 영어 찬양을 얼마나 잘 했는지 모릅니다. 너무너무 잘했습니다. 박수 한번 더 쳐 주세요.
 어린이들에게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지요. 아빠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지요. 목사님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일까요? 또 하나 질문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 엄청 많은 부자입니까? 지식이 엄청 많은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입니까? 힘이 엄청 많은 장관이나 장군이나 대통령입니까?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 힘이 많은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무엇이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입니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
 옛날 옛적에 이탤리 나라에 프랜시스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힘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프랜시스를 성자라고 부르며 그를 제일 좋은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프랜시스는 사람들은 물론 짐승들과 새들도 사랑했고 해와 달과 별들도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만 설교하지 않고 참새들에게도 설교를 했습니다.

 1 프랜시스의 일행이 시골 어느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때 언덕 위 숲 속에서 참새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프랜시스는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저 참새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오겠습니다.” 프랜시스는 언덕으로 올라가서 참새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참새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잠시 조용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요란스럽게 지저귀던 참새들이 일제히 소리를 그치고 조용해졌습니다. “나의 작은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은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매들을 만들어 이 땅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깃털로 옷 입혀 주셨고, 두 날개를 활짝 펴서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며, 농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또 아름다운 숲 속을 보금자리로 삼고 살도록 편안히 자고 깰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여러분들의 목소리처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새들은 프랜시스가 설교하는 동안 머리를 갸우둥 하고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자, 아까는 여러분 마음대로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찬양하여 봅시다.” 그러자 그토록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듣던 참새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참새들을 작은 자매라고 부르며 사랑했고, 특히 종달새와 비둘기를 귀엽고 순결한 자매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2 프랜시스는 늑대도 사랑했습니다. 굽비오라는 마을에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사나운 늑대 한 마리가 밤 마다 내려와서 사람들을 두려움에 쌓이게 했습니다. 프랜시스가 이 늑대 이야기를 듣고 그 늑대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프랜시스는 굽비오 마을로 가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을 해치고 있는 그 늑대가 그처럼 무섭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어떤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늑대를 해치려고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오늘 사랑은 어떤 악이나 두려움도 없애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늑대가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늑대가 살고 있는 바위틈 가까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게 하고 프랜시스는 마을 청년 한 사람과 함께 늑대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그때 눈에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늑대 한 마리가 이빨을 벌리고 당장 덤벼들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죽은 꼴이 되어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늑대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늑대는 약간 주춤했지만 계속해서 으르렁 거리고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계속 늑대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눈으로 조용히 늑대를 바라다 보았습니다. 한동안 숨막히는 긴장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프랜시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형제 늑대여!” 너무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늑대의 으르렁 소리가 그쳤습니다. “형제 늑대여,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이처럼 찾아 온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네가 마을로 내려와서 다정하게 살았으면 하고 있다. 자, 네 생각은 어떠냐? 나하고 약속하지 않겠니?” 그런 다음 늑대를 향해 손을 내 밀었습니다. 늑대는 저쪽 마을 사람들을 한 번 건네다 본 후 천천히 다가와서 프랜시스가 내 민 손에 자기의 앞발 하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프랜시스의 눈길과 늑대의 눈길이 마주쳤고 프랜시스와 늑대는 서로 무슨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드디어 프랜시스는 몸을 구푸리고 늑대의 목을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늑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프랜시스의 깊고 넓은 사랑에 감복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늑대는 곧 프랜시스를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굽비오 마을로 내려와서 2년 동안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친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3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사랑했고 특히 문둥병자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문둥병자 수용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입을 맞추며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문둥병자 수용소에 성질이 사납고 포악한 환자 한 사람이 그를 간호해주는 형제들에게 대들면서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 더러운 위선자들아, 나는 저주 받은 문둥이다. 예수의 사랑도 너희들의 사랑도 다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몸에 흐르고 있는 고름을 손 바닥으로 흝어서 형제들에게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을 본 프랜시스는 그에게 다가가서 욕을 퍼 붓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계속해서 욕을 퍼 붓는 그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고름 투성이의 몸뚱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어라.” 프랜시스는 아무 말하지 않고 깨끗한 물에다 향초를 넣어 불에 따듯하게 데운 다음, 그 물로 문둥병자의 몸을 머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씻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프랜시스의 손이 닿는 데마다 그의 피부에서 더러운 고름이 걷히고 상처들이 깨끗하게 아물어졌고 동시에 그의 영혼도 깨끗하게 씻어졌습니다. 그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고 울면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권력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빈들에 5천명이 모여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자기들이 가지고 왔던 먹을 것을 예수님에게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하나가 자기가 가지고 왔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가져다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했고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오천 명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고 예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도 했습니다. 오늘의 세상에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권력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프랜시스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장기려 박사님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강변교회 어린이들은 모두 사랑이 많은 어린이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참으로 잘 사는 자녀를 위하여                                       본문 : 잠-03-01-10                                      
잠3:1-10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
미국 텍사스 달라스 시에서는 세계사를 뒤바꿔 놓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영웅이었던 당시 47세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시내 퍼레이드 중 한 괴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즉시 채포되었는데, 오스왈드 라는 이름의 30대 청년이었습니다. 미 연방 수사국인 F.B.I.는 범행의 배후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사의 결과는 단순범행이었다고 발표했고, 그의 책임은 범인의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범인 오스왈드는 아버지를 세 번 씩이나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는 또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갈등과 시새움과 혼란이 뒤범벅 된 가정 속에서 그는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기를 낳지 않은 아버지에게 계속 야단을 맞고 소외되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으며, 어머니조차 완전히 이 소년을 무시하고 방관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픔 속에서 소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 그는 자기가 가진 우수한 지능에도 불구하고 침구들과 싸움을 일삼고 마침내 고등학교 때는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군에서도 동료 사병들과의 싸움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상관에게 폭행하고 그로인해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고 결국 군대에서조차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결심을 하고는 외국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그런 오스왈드를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거절된 아픔을 안고 전전긍긍 떠돌아다니다가 배경이 확실치 못한 한 여인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내에게서도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짝혀 항상 경멸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미국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그날도 그의 아내는 놀러온 자기의 친구들 앞에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경멸의 말을 퍼 부었습니다. 마침내 오스왈드는 자기의 인생에 대한 모든 꿈과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상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불행한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통해서 배운 사랑과 관심을 끄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모아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사건 당일, 그는 자기 집 창고 속에 숨겨 두었던 소총을 꺼내어 그가 가장 최근에 취직했던 직장의 서적 보관창고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케네디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수사의 내용입니다.

이 보고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집안이 그랬었군”
“그래, 그래서 가정환경이 그렇게 중요한거야”
“우리 아이들은 잘 키워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청년을 예정된 범죄자로 몰고 갑니다. 아니, 그 오스왈드라는 사람에게는 범죄 외에는 다다를 곳이 없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왜냐하면 ‘결손 가정은 곧 문제아를 낳는다’, ‘문제아 뒤엔 문제 부모가 있다’ 라고 하는 교육학적 확신을 불변하는 진리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아만 보면 “음 그래, 너도 그럴 수밖에 없구나” 라고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육학의 기여도와 그 학문의 연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교육학의 이론과 접근방법을 좋아하고 또 교육학적 학습읗 신뢰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교육학이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 참으로 불우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의 소년기는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한 아버지와 네 어머니, 배 다른 형들이 10명. 형들의 학대와 따돌림 속에 그는 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소년에게 더 큰 짐이요 아픔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박탈당한 형들은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그 소년을 괴롭히고 따돌리곤 하였습니다. 결국 청소년기에 형들의 손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먼 나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 정도면 누구인지 다 아실 것입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소년의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재롱을 떨어야 하는 그 나이에 그는 형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고, 또 청소년기에는 그는 먼 나라로 팔려가 그곳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시작합니다. 목숨을 연명합니다. 여러분, 그를 요셉이라고 생각지 말고 여러분들의 자녀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곳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가 그 곳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 모든 아픔을 극복하고는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 한 요셉에게 찾아 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성실의 결과는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더 큰 고통이 성실의 대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까지 참고 감옥에서 성실히 일 한 요셉에게 또다시 찾아 온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권이 될 때 요셉은 그에게 복권이 되면 죄 없이 감옥에 들어와 고생하고 있는 자신을 구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고 말았습니다. 창40:23에서는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라고 표현합니다. 그것도 2년간 말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미움, 학대, 진실이 오히려 고통 되어 돌아오는 현실, 그 상황에서 요셉은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격이 형성되겠습니까? 형들로부터 팔려온 사실, 고생의 연속, 정직과 성실이 무시된 현실...... 일반 교육학적으로 보면 청년 요셉에게서 나올 수 있는 정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오직 ‘분노’입니다. 그의 과거의 경험들을 보면 요셉은 분노의 사람으로 성장했어야 맞는 것입니다.

요셉의 불행의 씨앗은 어쩌면 그의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이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 한 욕심꾸러기였습니다. 쌍둥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는 태어난 경력이 그의 성격이 됩니다. 결국 청년기 때,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는 축복의 유산을 가로채고는 도망을 갑니다. 그에게서 가정의 느낌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족의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의 것을 챙기기 위해 가족과 친척이라도 속여야 했으며 결국 그 성격은 현실로 나타나 외삼촌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아내를 넷씩 얻기에 이릅니다. 그에게서 사람의 냄새는 찾아볼 수 없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 인생의 결과는 가히 짐작이 갈만합니다. 불우한 청소년기와 가정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요셉과 공통적이지만 한 가지 요셉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요셉과는 달리 본인의 성격 탓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버지 야곱의 삶의 뿌리가 거짓이었기에 그의 10명의 아들도 아버지를 속이고는 동생 요셉을 팔아먹습니다. 말이 팔아먹은 것이지 그들은 정말 동생 요셉을 죽인 것입니다. 가족의 사랑이 깨어진 집안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 집안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막말로 표현하면 ‘콩가루 집안’ 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한 가정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겠습니까? 위아래가 없고 형제는 형제를 죽이기까지 미워하고 팔아먹는 관계, 오늘날 이 가정의 모습은 성경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사회면에 나와야 더 어울릴 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집안은 신문의 사회면에서 소개가 되지 않고 바로 성경에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범죄인이 되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환경을 안고 그들은 살아갔지만 그들은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스왈드의 가정과 비교했을 때, 무슨 차이입니까?

정답이야 바로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 교육학이 아닌 기독교교육학의 정답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세상의 학문으로 증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저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 그리하면 장수하고 평강을 누릴 것이다
3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 그리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5절)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지도해주신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라 - 그리하면 몸이 윤택하게 될 것이다
9절)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창고가 가득 차고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저는 잠언을 읽을 때마다 솔로몬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솔로몬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원래 솔로몬은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생 자체가 죄의 뿌리였으며 수많은 형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출생으로나 서열로 봤을 때 결코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왕이 된다 하더라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계속 통치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던 20살의 막내 왕자였습니다. 무서운 형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에게는 많은 부귀영화가 소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축복해 주셔서 송로몬의 통치기간이 40년 동안 전쟁이 한 번도 없었던 유일한 왕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잠언이 무엇입니까? 그 경험을 간증으로 갖고 있는 아버지 솔로몬의 자녀교육철학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 많이 가르쳐 주는 일,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게 해 주는 일, 물론 다 필요합니다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들을 자신의 교사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느 교육기관에서 학생과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먼저 부모님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언제 당신보다 지적 수준이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대체적인 대답은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자녀가 대학을 다닐 때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들에게 물었을 때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자녀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머니 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중학생이 되면 아버지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현실과 아이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반항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부모님 날을 들어 주는 것뿐입니다. 속아서는 안 됩니다. 교육효과의 극대화는 교육을 받는 자들이(피교육자) 교육자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인정 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인데, 학교 선생님도 존경하지 않는 아이들이 부모의 교육을 받을 것 같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자화상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교육을 할만한 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를 그렇게 고상한 교사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극단적으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1992년도에 ‘New Kids on the Brork’ 이라는 미국의 인기 팝 그룹이 내한공연을 했습니다. 서울의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은 연일 몰리는 학생들 때문에 몸살을 앓다가 급기야 사고가 터졌습니다. 여학생 1명이 심장마비로 죽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각 매스컴에서는 이 현상을 크게 보도 하면서 “우리의 아이들은 목적이 없다. 한심스러운 일이다” 라고 논평을 했고, 학교에서는 “교육의 부재다” 라고 외치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사회인사들은 “장래의 우리 나라가 걱정된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그저 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아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부모님들이 당시 인기있었던 연속극인 ‘사랑이 뭐길래’ 라는 프로에 정신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그 프로는 아직도 기록을 깨지 못하는 엄청난 인기 프로였습니다. 그 연속극이 방송되는 시간에는 거리에 차가 한산했고, 수돗물의 사용량이 현격히 줄었으며, 그 시간에 집으로 전화하는 사람은 엄청난 결례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주일 저녁예배에 사람이 줄어 오후 예배로 전환한 교회가 많이 있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부모된 자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 가면서 자녀를 교육한다 해도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좀 다릅니다.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하고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가르치며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것 같지만 성경을 그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가르치기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실수와 잘못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인 것입니다. 거창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만 힘을 쏟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못합니다. 본을 보이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교회에 오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까지만 우리에게 원하고 게시는 것입니다.

모르드게 햄 이라고 하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미국 시골의 한 목회자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교회와 자신의 집회에 사람이 모이질 않아 고민을 하고 힘이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그가 말하기를 어느 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마음 속에 이런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다 해라. 그 설교에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성공이다.” 그는 그 음성이 낙심하고 있는 자신에게 주신 성령님의 음성이라 획신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오늘 설교에 그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 날 집회가 끝난 후 한 학생이 자기에게 나오더니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그는 “예, 빌이라고 합니다.” 대답합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빌리 그레이엄’ 이었습니다.

모르드게 햄 이란 전도자는 그 후 가는 곳마다 부모님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당신은 3천명을 회개시키는 베드로는 될 수 없어도 베드로에게 주님을 만나게 해 주었던 안드레는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우리의 자녀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미국은 경매문화가 많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꼭 유명한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나 또 오래된 귀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쓰지 않는 중고품들도 경매로 사고파는 일이 생활화 된 그런 나라입니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장이 열리게 되었는데 의례 그렇듯 마을 한 구석에서는 경매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한 상자에서 아주 낡은 바이얼린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 바이얼린은 너무 먼지가 많이 쌓였고 낡아서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회자가 집어 들고 살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군중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가격을 부릅니다. “1달러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2달러요!” 말 합니다. 더 살 사람이 없느냐 묻는데 한 사람이 “3달러!” 말을 했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더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어 낙찰이 되려는 순간 뒤쪽에 있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회자 내가 한 번 봐도 괜찮겠소?” 사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그 노인은 앞으로 나와 그 낡은 바이얼린을 이리 저리 보고는 먼지를 닦고 줄을 맞춰 소리를 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손길을 따라 그 바이얼린에서는 멘델스죤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놀랬고 또 그 소리를 듣고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경매장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음악을 듣고 있는데, 연주를 다 마친 노인은 그 바이얼린을 다시 사회자에게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해 보시지요.”

사회자가 다시 한 번 3달러 이상으로 살 사람이 있느냐고 군중들에게 묻자 어느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1000달러 내겠소!”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질세라 외칩니다. “2000달러요!”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이 사겠다고 손을 높이 듭니다. “3000달러 내겠소!” 결국 그 바이얼린은 3000달러에 팔렸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한 꼬마가 손을 꼭 잡고 있더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 참 이상해 아까는 3달러였는데 왜 3000달러가 됐어?” 그 때 아저지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단다”

우리는 모두 으리 자녀들이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갖고 있는 무든 부모님들께 여쭤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연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는 부모들이 아닌 천지를 창조하시고 능력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자녀들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녀’를 넣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자녀들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자녀의 목에 매며 자녀의 마음 판에 새기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너희 자녀들이 마음을 다 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자신의 명철을 위지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 자녀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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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에게 가르치라                                       본문 : 잠-22-6-                                      
    
잠언22장6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기
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농부의 마
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농부의 정성을 먹는 것이지 알
곡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농부의 지극
한 관심과 사랑과 헌신적인 돌봄이 없이 충실한 결실을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정성이 농부의 마음과 같지 않고는 훌륭한 자녀를 성장시킬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살 곳만 제공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
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게 된 것입니다. 마땅히 행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는데 무엇이 마땅히 행할 것입니까?

1. 자녀의 영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문제를 소홀히 해서
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중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그 자손들은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
터 죄인으로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린아이라도 영
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
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말을 배울 때부터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마땅히 가르쳐야 합
니다.
누가복음 18장 16절에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
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오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늘나
라가 예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계란과 같습니다. 수정되지 않는 계란은 겉모양은 같아도 결코 병아리가 되지 못
합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어린아이 때부터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아니하
면 그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능은 네 살 때 이미 90% 이상이 형성이 되고, 한살부터 세
살 이내에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은 이미 결정이 되고, 여섯 살 이전에 인격적인 토대가 형
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세 살이면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어린
아이는 이미 세 살이면 거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정신적 발달이 세 살이면 이미 결정되고 여섯 살이면 일생의 인격이 결정되는 그런 상황
이기 때문에 어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
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나온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의 코란은 아담과 아브
라함,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아론과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선지자로 다 인정을 합니다. 그러
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하나님이 그
대로 하늘로 데려 올라가시고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가룟 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근본
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부인합니다. 보혈을 부인해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번에 요르단의 암만대학에서 성회 첫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보
혈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니까 음향조정실에서 마이크의 스위치를 꺼버렸
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대한 말씀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습니다. 보혈의 역사 없이 누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
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이슬람교는 너무나 기독교에 가깝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하나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부
인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2. 삶의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라

다음으로 어린아이에게 삶의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순
서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혼돈하면 크게 낭패하게 됩니다. 잠언 1장 7절
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를 다 시키지만 지식이 근본이요,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자녀의 인생은 결국 부패하고 낭패하게 되고 마
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살리는 진리와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
로 양육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넘을 수 있었
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
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
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뉴욕 중·고등학교의 교사 중 절반이 유대인이고, 하버드, 스텐퍼드, 예일대학의 의과대
학, 법대 교수의 절반이 유대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말씀보다 위대한
지혜와 지식의 교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해서 가르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
가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도전과 응전에 의한 것인데 유대민족의 생존은 도저히 역
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음에
도 불구하고 민족성을 유지하고 1948년 5월 15일에 나라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
계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구약 성경을 통해 민족성을 유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토요일 안식일을 준수했는데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 없이 2천년동안 유랑하는 민족이었지만 구약 성경
을 공부하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켰기에 온 세계에 흩어져 수없이 짓밟히고 핍박을 받아도
국가와 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
기고 성수 주일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은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요. 가정 예
배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에 가능한 아버지를 중심
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가족끼리 교제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나
눠줄 가장 큰 유산은 제물도 아니고 이 세상 학력도 아닙니다. 제물과 세상 학력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이 신앙을 유산으
로 남겨 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질과 하나님 섬기는 일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가
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늙어도 거기를 떠나지 않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주
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 록펠러는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십일조를 드린 이후로 아흔 두 살이 되어 죽을 때까지 십일조를 도적질한 적
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콜게이트는 어린시절 비누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
과 콜게이트라는 위대한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부모의 손을 빌리지 말고 고사리 손이라도 직접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장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
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
니다. 어린아이에게 감사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임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
나님의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택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있
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
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초기 건국 이념은 청교도 사상에 기초한 사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먼저 짓고 후세 교
육을 위해서 성경 학교를 먼저 세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모두 성경 학교로 세운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세계적
인 교육 기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폐에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라고 기
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때부터 하나님을 경
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문화가 존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택하고 세상 나라를 먼저 택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택하고 세상의 정의를 먼저 택하지 말 것
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장 6절에서 9절에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
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고 기
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면 거기에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얻습니다. 미
국 교육을 보면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때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공부하는 것
을 법으로 금지한 뒤부터 신앙 교육을 소홀히하고 세상 학문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
년들이 타락하고 대도시마다 범죄율이 급증하게 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
늘 미국의 도덕적인 타락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과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
한 다음부터입니다. 교내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마약 중독과 도덕적인 부
패와 타락이 일어난 것입니다. 때문에 자녀들에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도록 가르치
고 반드시 그들에게 십계명부터 외우고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라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입니다. 사람과 사람만 이야기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과 이야기하고 그 다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
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나
중에는 데릴라와 부정한 관계 때문에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 엘리 대
제사장 때 한나라는 여인이 아들을 주시면 평생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는데 그 응답으
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그를 엘리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
리하여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소를 지키며 밤에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
성을 듣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으로 이기는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8절에 “그런즉 너희
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
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
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면 평생토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크면서
세상과 걸음을 걷더라도 주님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의 응답을 받고 도움을 받
는 길이 기도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
움을 청하는 길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
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길을 이기는 길도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로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
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
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정욕을 제
거하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초립동 다윗에게 곰과 사자는 가공할 대상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용기 충천하여 곰과 사자를 이겼고 훗
날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거대한 유혹과 죄악의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우리 한
국에 더구나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교육 제도, 입시제도는 마치 골리앗과 같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
수 그리스도를 알고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영화와 만화, 음악, 오락물 등 얼마나 많은 부패와 폭력이 홍수처럼 젊은
이들을 휘몰아쳐 가고 있습니까? 이 무시무시한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길은 부모님
들이 기도해 주고 그들에게 기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
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매일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
다. 폭력과 인간의 힘이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이웃과 환경이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
쳐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
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했는데 이 변화는 마음에 예수를 믿고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이 새롭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라

어린 자녀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돈을
사랑하면 파멸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몸에 체득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사실이 영혼에 깊이 박혀야 하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머니
가 성경을 열심히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링컨에
게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 바란다’라고 유언했습니
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서 일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서 정직한 사람이
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결국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이룩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
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아니하면 선생도 존
경하지 아니하고, 선생을 존경하지 아니하면 사회 지도층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들에게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
쳐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잘 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12장 10절에 “형
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 자신을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
도록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어떻게 사랑합니
까?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
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사랑, 나라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연이 죽으면 우리도 죽습니다. 한강이 죽으면 우리는 물도 못 마시고 다 죽습
니다. 한강에 물고기가 놀아야 우리도 살지요. 산천에 새들이 놀아야 우리가 살지요. 나무
가 다 없어지면 온난 현상이 생기고 탄산가스가 많아져서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결국 죽습
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꽃 한 포기, 풀 한 포기 그리고 생물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생명을 부요케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서 나를 강하게 하는 것
이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기가 대우받고 살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아
이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비방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터넷에 보
니까 부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일본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은 일본이 속국이 되어야 한
다. 대한민국은 망한 나라다’라고 썼는데 큰 충격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고등학
교 학생이 인터넷에 일본을 찬양하고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
니까? 그리고 한 민족을 비애하고 욕하는 이런 젊은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치욕스
럽기 짝이 없으며 이것은 부모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영혼의 문제와 신앙 생활의 문제만큼 일생과 영생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마음에 확실하면 일생동안 어떤 일을 당해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일생동안 누릴 수 있
고 영생토록 누릴 수 있는 제일의 재산이 신앙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
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허락하신 기업인 자녀, 잘 키워 놓으면 여러분 상급 중에 제일
의 상급이 될 수 있는 자녀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는 부모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기 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결혼하고 가장 먼저 얻는 것이 자녀입니다. 자
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녀에게 여
호와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믿는 법도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탐욕의
노예가 되어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혼돈하고 암울하고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
중에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고 세상에서 살면서 돌아보고 우리 부모님이 내게 가장 좋은 재
산인 신앙을 남겨 주었다고 기뻐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
니다. 아멘. 
 
  ===========================================================================================                                                                                          제목 : 성공한 결혼, 실패한 자녀교육                                       본문 : 창-25-19-34                                       (창세기 25장 19~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마지막 장까지를 살펴보면,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교육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먼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거리와 신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를 통하여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가정에서 태어난 에서와 야곱, 이 두 자녀의 양육이 별로 신통치 않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결혼에는 성공했으나 자녀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있어서 20년만에 얻은 아들들이었습니다. 간절한 기도로 얻은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결실로 얻어진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이 맘먹은 대로 쉽게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맏아들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분별력도 없고 인내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들판에서 돌아온 에서는 동생 야곱이 끓여놓은 팥죽에 구미가 당겼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 그는 장자의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면서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명예와 권한을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덕률과 윤리성을 다 내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맘에 원하는 헷족속 브에리의 딸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함께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매우 섭섭해하고 근심하는 것을 보고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이라는 여자를 또 얻습니다.
에서는 도덕관도 없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축복을 가로챘다는 한 가지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복수심에 불타던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적인 욕구도 절제할 줄 모르고 성적인 욕망도 제어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느낌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간교한 사람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 먼 아버지의 약점을 이용하여 별미를 제공하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챘던 간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형 에서를 닮아서 비윤리적인 생활을 답습하여 네 명의 아내의 남편이 되는 육적인 존재로 전락을 합니다. 두 사람은 융화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의 이해 득실을 따라 미워하고 증오하며 서로의 감정을 따라서 시기 질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 부모의 양육 방법에 큰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가에 따라 비열한 인간도 되고 신령한 인간도 될 수 있고, 자녀다운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자녀답지 못한 자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우리의 모든 자녀는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귀한 귀중품을 맡기면 얼마나 관리를 잘해야 합니까.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러보라고 맡겨주신 자녀를 우리가 소홀히 해서 망친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잘못된 양육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양육의 청지기로 세우셨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양육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두 가지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자녀양육의 시발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들의 개성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24절 이하를 보면 해산 기한이 다 되어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외모는 물론 성격도 정반대였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전혀 달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서로 다른 개성의 면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과 리브가는 이 점을 간과했습니다. 자녀들의 개성이 얼마나 다릅니까.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관심분야, 행동습관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과 리브가처럼 고정관념을 갖고서 편애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 때에 개성을 따라 종류를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개성을 존중할 때 인간관계도 제대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성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자녀의 양육은 무엇으로 양육됩니까? 사랑의 올바른 분배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28절을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는 했는데 자식에 대해 편애가 지나쳤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치우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왜 사랑했을까요? 첫째는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는 물질 중심의 사랑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를 많이 사냥하므로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기에 사랑했습니다.
그런 반면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야곱이 얼마나 상처가 많겠습니까? 리브가는 그런 야곱을 불쌍히 여겨 모성본능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3절 후반절을 보면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어린 두 생명이 들어있을 때 야곱이 에서보다 훌륭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는 씩씩하고 듬직하고 활동적이고 사회성이 강한 에서가 듬직해 보이고 매일 어머니 곁에서 집안에만 있는 야곱은 정말 볼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편애하기 시작하니까 이런 편애의 정신이 그 아이들에게까지 깊이 전달되었습니다.
자식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고 믿음이 들어가면 부모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해 세우신 대리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편애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됩니다. 사랑을 골고루 베풀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려면 신앙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는 믿음으로라야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는 믿음 안에서 생기는 것을 믿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사랑의 힘                                       본문 : 고전-13-1-13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모든 만물이 살아 움직이고 새 생명 이 힘있게 살아나는 생명의 계절입 니다. 모든 꽃들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날씨나 하나 하나의 일 들이 문화 행사를 하기에 너무 좋고 또 우리의 삶을 가슴을 펴게 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자연 을 마음껏 사랑하며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계절입니다. 5월은 계 절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우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복의 계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 버이 주일이 있고, 어린이 주일이 있고, 어린이날이 있고 우리를 가르 쳐 주는 스승의 날도 5월에 있습니 다. 여러분, 가정이 얼마나 귀합니 까? 우리는 모두 좋은 가정을 원하 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귀 중함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할 정도 로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새 둥지처럼 가정 을 에덴동산에 만들어 주시고 행복 하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 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에 주시는 모든 보화를 가정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가정을 위함 이고 사업하는 것도 가정을 위함이 고 정치도 국가도 가정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전 나라가 다 빌딩이라도 가정이 무너지면 집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해도 가정을 잃어버리면 그는 실패자인 것입니다. 가정은 참으로 가장 소중 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선물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을 바로 잡아야 되고, 바로 일으켜야 되고 우리의 모든 가정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할 줄로 믿 습니다. 가정에서 귀한 것은 사랑입 니다. 사랑의 울타리, 사랑의 집을 짓고, 사랑의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자와 만나서 사랑의 품안에서 자녀 들이 자라나고, 부모님을 섬기고, 부 부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이 가정입니다. 사랑은 가정의 전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 면 숨을 쉬어도 죽은 것이고, 제아 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사랑이 없으 면 그것은 그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성경은 두 가지 로 크게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또 하나는 인간에 의 해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사랑이 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로부 터 내리는 거룩하고 영원한 사랑이 고 인간에 의한 사랑은 인간 사이에 만들어지는 세상의 사랑, 육적인 사 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 말하고 이 세상 의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으로 에로스적인 사랑이 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어떻 게, 무엇으로 꾸며야 합니까? 하나 님의 사랑으로 꾸미고 하나님의 사 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 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 무 의미가 없고 웃기는 이야기로 들 릴지 몰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 이 귀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 랑이 있어야 귀하게 되고, 가정을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하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꾸미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꾸며야 그 가정은 아름다 운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고통 을 당하는 이유는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정이 이렇게 무 너지고, 가정이 형편없이 흔들리고 파도가 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을 외면한 데에 있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 니다. \'최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이고 그 다음은 개의 사랑이고 그 다음은 연인의 사랑이다\' 이렇게 말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은 이 땅에서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날이 있었는데 하도 아버지가 불쌍해서 지금은 어버이 주일로 만들었지요. 아버지 어머니 를 같이 했지만 그래도 사랑! 하면 다 모두 마음에 느끼는 것은 어머니 의 사랑을 우리가 경험하고 또 그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참 사랑을 알아서 내가 또 그 참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 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땅에 있는 사랑 으로는 최대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입니 다. 대통령이라도 어머니 앞에 무릎 을 꿇고 절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힘이 아니예요. 사랑의 힘이예요. 어 머니의 지성이 아니예요. 어머니의 사랑이에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 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것 같아♪ 푸른 하늘 그 보다 더 높 은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어머니의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 다. 있어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합니 다. 우리가 경험했던 어머니의 사랑 은 이미 서서히 자리를 옮겨가고 찾 기가 어렵습니다. 1월부터 3월까지 IMF로 인하여 버려진 아이만 3089 명이에요. 아이를 버립니다. 휴지통 에서, 쓰레기통에서 수많은 아이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버려 도 어머니는 안 버리는데 어머니들 의 생각이 바뀌어졌습니다. 어머니 의 가슴이 변했습니다. 이혼해도 아 이들을 안 기르겠다는 거예요. 아무 리 애들이 어머니를 붙잡고 이혼하 지 말라고 해도 지금 그런 말을 듣 는 분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 머니의 사랑이 과거와 다릅니다. 최 고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지만 우리는 지금 최고의 사랑을 찾지 못 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개의 사랑이에요. 사 람 사랑하는 것보다 개사랑하는 것 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 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사랑하다가 개만 못한 것을 경험하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개 기르는 시대가 옵니다. 개하고 살아 갑니다. 개가 열 배나 낫다는 거예 요. 개는 먹이를 주는 주인은 물지 도 않고 또 은혜를 배반하지도 않아 요. 개는 항상 주인을 위해 충성하 고 그 자리에서 지켜주고 주인의 말 을 잘 따릅니다. 사람이 그렇게 지 금 해주고 있습니까? 그렇게 못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은 개를 사랑하는 시대가 옵 니다. 개와 함께 자고, 개와 함께 먹 고, 개와 함께 여행하고, 그래서 여 행할 때도 비행기에 개를 가득 싣고 주인과 함께 떠납니다. 개와 함께 목욕도 합니다. 개 메뉴에 관심을 가지고 개의 식탁을 준비하느라고 슈퍼를 드나들고, 유명한 미용사를 찾아서 가장 잘하는 곳으로 개를 데 리고갑니다. 개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모든 시간, 모든 관심,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겪어보니 까 개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는 우리가 욕을 할 때
\"저 \'개\' 뭐\"
하고 아주 개자만 붙이면 나쁜 욕 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만 못 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어 떤 목사님 네 분이 보신탕 집에 갔 어요. 미국 가서도 한국 사람은 보 신탕을 버리지를 못해요. 여름에 땀 날 때 보신탕 드시러 갔어요. 종업 원이 와서 주문을 합니다.
\"선생님 무엇을 잡수시겠어요?\"
하니까
\"보 신탕 집에 왔는데 개 말고 뭐 있 나?\"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알고 그 다음에는 다른 분을 향해서
\"선 생님도 개예요?\"

\"선생님도 개예 요?\"
\"선생님도 개예요?\"
그러니까 세 분 목사님이 다 개가 된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개들은 천 년 만년 전의 개들처럼 변치 않습니 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 위기를 만나 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 입니까? 중요한 것은 사랑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아가 페의 사랑이 아닌 연인의 사랑, 에 로스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그전에 는 가정에서 어떤 사랑을 우선하는 것보다 책임을 우선하였습니다. 우 리 부모들은 지금보다 사랑을 안해 도 끝까지 잘 살았던 것은 부모로서 의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정 에서의 부모의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은 우리의 가정들이 무너져가고 있 습니다. 그것이 바로 잘못된 사랑 때문입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동 물적인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입 니다. 보이는 사랑입니다. 보이지만 않으면 변하는 거예요. 흔들리는 것 입니다. 성적인 사랑입니다. 쾌락적 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바로 이것 이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 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눈물만 나는 거예요. 사랑의 열매, 사랑의 종착역은 눈물이라는 거예 요. 그러나 사랑이 그렇습니까? 하 나님의 사랑,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 은 오히려 구원의 씨앗이요. 행복의 씨앗이요. 기쁨의 씨앗이요. 우리 가 정을 축복하는 축복의 씨앗이 됩니 다. 아가페의 사랑은 절대로 상처와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가페의 사 랑으로 우리 가정을 다시 찾아야 되 고 든든하게 일으켜 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찬사를 받으면 서 결혼한 사람이 찰스 왕자입니다. 다이애나와 함께 결혼한 그 결혼식 은 온 세계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직접 생중계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나라를 다녀가신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녀가 4남매입니다. 그러나 찰스 왕자를 비롯해서 지금 세 명이 이혼을 했고 마지막 에드워드만 남 아 있습니다. 제일 화려한 결혼식, 제일 돈 많은 결혼식, 제일 선물이 많은 결혼식, 전 세계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이 와서 축하 해준 결혼식, 전부 집을 다이아몬드로 꾸밀 정도 로 온갖 좋은 것들로 다 꾸몄지만 이 가정은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졌 습니다. 무너질 뿐만 아니라 만신창 이가 되었고 헤어져서도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유리알처럼 다 깨어져 버린 이 가정이 무엇 때문입니까? 돈이 없습니까 권력이 없습니까? 여 러분의 집을 아무리 잘 꾸며도 지금 이 찰스 왕자와 같이 꾸밀 수가 없 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 만 가정을 잃어버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동물적인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민족과 우리의 가는 앞날에, 위 기를 만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가정을 어떠한 사랑 으로 집을 짓고 어떠한 사랑의 이불 속에서 잠을 자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랑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우리 가정을 지켜야 할 것입니까? 그 왕자의 가정이 무너졌다면 우리 의 집들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아가페 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 만 영원하고, 이 사랑만 참되고, 이 사랑만 힘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사랑의 힘보 다 더 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에 로스적인 사랑은 하루를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원 래는 성을 전혀 모르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알게 되느냐? 결혼 이 가까워지면서 알게 됩니다. 하나 님께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서 신비 한 만남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보전하고 또 우리에게 가정을 이룩 하기 위해서 성의 눈을 서서히 뜨게 해 줍니다.결혼이 가까와져 눈을 뜨 면서 몸과 마음이 절정에 이르게 됩 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서서히 성은 멀어지게 되어 있고 약 하게 되어 있고 연세가 많아지면 그 쪽 면으로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 가서 제일 어렸을 때처럼 모르게 되 어 있습니다. 멀리 떠나게 되어 있 습니다. 가정에 대한 고마움과 그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만족을 더 큰 만족으로 여기 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에 로스적인 사랑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래서 지금은 60이 넘어서 이혼하 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부인을 볼 때 성적으로 보는 거예 요. 그 때는 그렇게 보면 안되는 나 이인 데 50대 60대가 되어도 이혼을 많이 하는 것은 아내를 성적으로 보 고 남편을 성적으로 보는 거예요. 아내가 남편을 보니 별 볼일 없다라 는 거예요. 그래서 엉뚱한 짓들을 하는 거예요. 남자들도 마찬가지입 니다. 60, 70이 되었으면 이제는 손 자, 손녀들을 봐 주면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데...... 인생의 마지막 그 열매를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함 으로 살아야 하는데 항상 결혼할 때 와 같이 펄펄 뛰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낸 것이 비아그라예요. 여러분, 약해져야 될 때 그걸 먹으 니까 그만 나자빠져서 죽는 거예요. 연세 많아 가지고 그래 죽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린아이 에게 그렇게 해보세요 어린아이가 견디지를 못합니다. 사람은 순진할 때는 순진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것을 끝까지 에로스적으로 가려고 하는데 가정의 위기가 있고 인격이 파괴되고 사회가 온통 혼란해지고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이 분진이 온 사 회를 앞을 못보게 흩뜨려 놓는 거예 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하 나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 나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사 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모르 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 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이미지는 하 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오직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왜 힘이 있습니 까?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 라가 온 세계를 통치하고 우리가 하 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도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 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 가에 못 박혀 죽이기까지 우리를 구 원하려고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 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큰 거예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 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 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 신 사랑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 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오늘 우리의 가정에 에로스적인 사랑만 있다면 그 가정은 불안한 가 정입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살 아간다면 그 가정은 믿을 수 없는 가정입니다. 가정을 넘어뜨리는 그 많고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온 세계의 인류와 이 모든 만물을 사랑으로 통 치하시는데 여러분 무슨 힘으로 이 세상을 승리하고 여러분의 가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 님 아버지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 다. 육적인 관계에서도 자식이 부모 를 닮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 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 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 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전 달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어받 는 것입니다. 육의 혈통을 이어 받 듯이, 성품을 이어받고 얼굴 외모를 이어받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도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 그 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오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심이 아닙 니다. 노력해서 사랑하는 게 아닙니 다.
\"여보 우리가 서로 변치 말고 사랑합시다\"
아무리 가도 역시 그 사랑은 필레오의 사랑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시 는 사랑은 성령으로 주어지는 것입 니다. 기도해야 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오는 성령의 은사요 열매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에 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신명기 5:10에 보면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고 하셨고, 사사기 5 : 31에는
\"주를 사 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솟음 같 다\"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에로 스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기분 좋으 면 \'아멘\' 하고, 조금 괴로우면 \'싫 어\'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참 사 랑, 영원한 사랑,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 로 사랑해야 참되고 영원하고 아름 다운 열매를 맺고 부부간에도 좋은 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 까? 오늘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을 통하여 사랑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사랑의 가 치가 나옵니다. 사랑이 얼마나 가치 가 있느냐?
첫째, 1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 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했습니다. 땅에 있는 말, 하늘에 있는 말을 다해도 사랑 이 없으면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 가 되고 그런 말은 피곤할 뿐이에 요.
둘째,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이 있어도 사 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예 언이 있어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알 고 개인의 미래, 장래를 다 알고 온 갖 비밀을 다 알고 많은 지식이 있 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 라는 것입니다.
셋째,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 니요\"
믿음이 얼마나 있는지 산을 옮길 수 있어요. 그래도 사랑이 없 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넷째,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 으로 구제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도망 다니는 신 창원도 구제를 하고 깡패들도 구제 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사랑입니까? 여러분, 남을 도 와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 까? 그게 다 필레오의 사랑, 즉 땅 에 있는 원시인들부터 하던 일이에 요. 그건 인간의 정에서 나오는 거 예요. 내가 나를 위해서, 기분 좋아 서 그를 도와주고, 내 만족하려고, 내 이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므로 참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 이 아니예요. 참 사랑은 그렇지 않 습니다.
다섯째,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회 참여를 부르짖고 정 의를 부르짖고 뭔가 내 몸을 분신한 다 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그건 다 알고 보면 흑막이 있는 거 예요. 자기가 뭔가를 이용해서 감투 를 쓰려는 것이고 자기를 위한 일인 거예요. 이런 사랑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집단이나 단체, 또는 어느 기 구든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다 어 떤 이기적인 목적으로 만나기 때문 이예요. 안 맞으면 배반을 하지요. 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사 랑이 없었을 때에는 잘 살았는데 오 늘 이 잘못된 사랑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어 야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어야 합 니다. 그 사랑만 영원한 것입니다. 그 사랑만 참된 것입니다. 그 사랑 만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가페의 사랑은 어떤 사 랑입니까? 오늘 본문에 열 다섯 가 지가 나옵니다.
1)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예수님 이 참듯이, 욥이 참듯이, 아브라함이 참듯이 아가페의 사랑은 오래 참습 니다. 2) 온유합니다. 부드럽습니다. 친절합니다. 인자하다는 말입니다. 3) 투기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자 기 잘난 것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자기가 잘났다는 거예요. 내 가 최고라는 거예요. 이것은 동물적 인 사랑입니다. 오늘 가정에서도 여 러분이 행복하시려면 내가 남편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떨쳐버 려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이 미 병든 것입니다. 남편의 훌륭한 것만 눈에 보이고 나는 오히려 너무 부족한 것만 느껴지는 가정이라면 그것이 아가페의 사랑인 줄로 믿습 니다. 내 잘난 것 있으면 남편의 그 늘에 숨겨버리고, 전혀 보이지 아니 할 때에 그 가정은 아가페의 사랑으 로 행복하게 됩니다. 오늘 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잘났는데 왜 저 사 람은 못났느냐, 나는 이렇게 잘하는 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못하느냐, 나는 이렇게 예쁜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못났느냐, 나는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못 배웠느냐\' 전부 자기 잘난 거예요. 자기는 올라가는데 다른 사람은 다 아래에 있는 거예요. 그것은 아가페 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파괴적이 고 일시적이고 에로스적인 사랑입니 다. 모두 그 사랑이 좋아서 밤낮으 로 찾아다니고 그 사랑을 얻으려고 생명 걸고 달려드는 것이 안목의 정 욕과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에로스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4)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 습니다. 자랑이라는 말은 장담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큰 소리 치지 않는다 말예요. 5) 교만치 아니하며 6)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무례라는 말을 헬라 원어에 보면 맵씨가 없다 는 말입니다. 사랑은 참 맵씨가 있 습니다. 사랑은 아주 아름답게 꾸며 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 게 거칠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들 에게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마음씨, 솜씨, 맵씨, 얼굴 씨는 없습니다. 그 런데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몰 라요. 솜씨가 없고 마음씨도 맵씨도 없어요. 얼굴씨 하나만 가지고 얼굴 만 꾸미려고 해요. 그건 안되는 거 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가정 주 부, 다시 말해 건강하게 가정을 지 키는 어머니들하고 기생들은 전혀 달랐어요. 딱 보면 금방 드러났어요. \'아, 술집 아줌마구나\' \'기생이구나\' 겉모습이 금방 드러났어요. 보면 알 아요.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전부 여기에 매어 달리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되었어요? 전부 다 동물 적인,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만족하 려고 보이는 것만 좇아가고 다른 것 은 다 버렸어요. 그래서 요사이는 남편이 부인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 원하고 매일 두들겨 맞는 남편이 그 렇게 많다는 이야기가 통계에 나왔 습니다. 나는 그걸 어떻게 때리는가 생각을 해봤어요. 꿇어 앉혀 놓고 때리나, 세워 놓고 주먹으로 때릴까, 태권도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때 려서 남편이 맞을까 하고 생각해 봤 어요. 어떻게 하는 건지 그것이 이 해가 안가요. 여러분, 무례히 행하 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이 아니예요. 남자도 무례하고, 여자도 무례하고 그러면서 행복을 바라는 거예요. 사 랑은 정말 얼마나 조용하고 아름다 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힘있 는 것이 사랑인지 모릅니다.
7)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이기적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 다. 8) 성내지 아니하며, 해를 받을 때 성질이 팍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 다. 조금만 어려우면 금방 얼굴에 드러나는 것, 사랑이 아니예요. 어머 니는 안 그렇잖아요? 9)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0) 불의를 기뻐하 지 아니합니다. 11) 진리를 기뻐합 니다. 12) 모든 것을 참습니다. 13) 모든 것을 믿어요. 아멘, 아멘 믿어 져요. 교회에 나와도, 기도해도 에로 스의 사랑으로 교회 다니는 분이 많 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있으면 믿 어집니다. 14) 모든 것을 바래요. 미 래를 바라보면 소망이 넘쳐요. 그러 나 에로스적인 사랑은 불안해요. 자 꾸 보험 들고 자기 개인을 향해서 뭔가 불안해요. 확실하지 않아요. 내 일이 어떻게 될지 항상 긴장하고 불 안해요. 여러분, 어머니의 사랑을 받 으면서 불안한 일이 있습니까? 사랑 은 불안한 법이 없어요. 이것이 인 간적인, 동물적인, 일시적인, 순간적 인, 쾌락적인, 육적인, 성적인 사랑 이기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참사랑 은 항상 소망이 넘치는 거예요. 15)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 그랬어요. 이것은 적극적인 인내라고 말합니 다.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것 이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사 랑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가정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가정을 향하 여 수많은 환난, 시험이 닥쳐도 가 정을 넘어뜨릴 수 없는 것은 아가페 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이렇게 잘살고 풍부한데 도 가정이 고무풍선처럼 펑펑 터지 는 것은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기 때 문입니다.
마지막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첫째, 8절을 보면
\"사랑은 언제까지 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며 예언도 폐 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나\"
예, 다 폐하지요. 방언을 언제까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우리 가 지식을 가질 거예요? 다 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잠간일지라도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가 는 것입니다. 둘째, 9절과 10에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 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사 랑은 온전합니다. 다른 것은 다 부 분적입니다. 알아도 부분적으로 알 고 가져도 부분적으로 갖는 것입니 다. 사랑은 다 가진 것입니다. 사랑 은 다 아는 것입니다. 셋째, 11절을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 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 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지금 사랑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 다. 얼마나 사랑이 중요한가를 말하 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인간적인 에로스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비교하면 애와 어 른과 같다는 거예요. 애들도 사랑하 지요. 소꿉장난하고 사랑하지만 일 순간 울고 버리는 거예요. 일순간 잊어버리는 것이 이 어린아이의 사 랑이에요. 장성한 사랑, 건강한 사 랑, 힘있는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 에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사랑의 풍년이 들고 사랑밖에 없는 것 같지 만 다 모든 만남이 어린아이의 만남 이에요. 그런 사랑 때문에 모두 어 제의 사랑이 다르고 오늘의 사랑이 다른 거예요.
넷째,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 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 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 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신앙생활도 사 랑이 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20 년 교회를 나와도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해요. 옛날 그 구리 거울 처럼 말이죠. 하나님이 계신 것이 희미해요. 하나님께서 나를 택한 것 이 희미해요. 설교를 들어도 구원받 은 것이 희미해요. 왜? 사랑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내 안에 거할 때 확실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희미한 것이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1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 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 일은 사랑이라\"
마지막 다섯 번째는 사랑은 제일이라는 거예요. 믿음도 물론 귀하고 소망도 귀하지만 사랑 은 최고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제일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온전합 니다. 사랑은 장성합니다. 사랑은 확 실합니다. 사랑은 최고입니다. 사랑 은 첫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이 내 안에 거하고 여러분 가정에도 그 사랑의 집을 지어서 영원히 주와 함께 복되 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하나님과 어버이                                       본문 : 눅-15-11-32                                       하나님과 어버이
 
 
본문 : 누가복음 15:11~32

   현대 문화를 책임 사회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자신
이 책임지고 이루어야 되는 그런 문화를 말합니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대
통령의 책임을 져야하고 또 저같이 이렇게 목사가 된 사람은 목사의 책임
이 있는 것이고 교회나 정부나 어느 공동체도 각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내가 맡은 책임을 훌륭하게 잘 완수하였을 때
이고 그 책임 완수를 훌륭하게 하지 못했을 때에는 불안감이 오도록 그렇
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잘 감당
할 수가 없다고 판단될 때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책임지고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면 됩니다. 때로는 한 나라의 대통령도 물러나는 때가 우리 역사에
보면 많이 있어왔고, 또 저같이 이렇게 목회를 하는 목사도 사표를 내고 사
임하는 때도 많이 있고 사회 모든 분야에 똑같은 그런 문화가 존재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괴로움이 많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사
표를 낼 수 없는 직책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자리요 어머니라고 하는 자
리입니다. 이 자리는 괴롭다고 사표 낼 수 없고 힘들다고 그만 둘 수 없
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되는 쉽지 아니한 그런 자리라고 볼 수 있습니
다.  
   저는 어떻게 신학교 시절부터 제 목회 경력이 개척교회를 많이 하게 되
었어요. 이렇게 갈보리교회 같은 좋은 교회에서 나를 오라고 한 적은 이번
밖에 없어요.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그런 지역을 찾아가
서 황무지 땅을 복음으로 개척을 하다보니까 나는 괜찮았어요. 사명감이 있
으니까 … 가족들에게 참 미안했어요. 개척교회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그곳을 개척하는 목사의 어려운 사정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짐작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아니고 다섯 개 개척교회를
하면서 젊은 시절이 다 갔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매우 기쁘고 나 때문
에 세상에 교회가 그렇게 생겼다고 하는 자부심도 있고 그렇지만 이 가장
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죄책감은 큽니다. 이 한 가정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가족들의 행복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개척교회 목사가
교인이 한 명도 없는 시골 산골에 들어가서 하니 가장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그래서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개척교회 하러 갈 때
어떨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 주일은 돌아옵니다. 그러면 주
일날 또 목사는 예배를 드려야 하잖아요? 그러면 제 아내 하나 앉혀놓고 주
일예배를 제가 설교를 해야 합니다. 지금 기억해 보면 그 예배드릴 때 서
로 안쳐다보고 예배를 드렸어요. 뭐, 미안한 것도 사실 없습니다. 그런데
도 쳐다보기가 힘이 들어요. 제 아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나는 저 쪽을 바
라봐요. 그리고 설교를 하는 거예요. 사실 그렇지, 한 사람 앉혀놓고 “회
개하라!” 그러면 “같이 해야 될 것 아니오?” 그러면 할 말이 없지 않아
요? 그런 일을 다섯 번이나 내 목회 인생에 거쳐갔으니 참 생각해 보면 구
차한 소리지만 ‘굶어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참 감사하
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어떤 때는 ‘이 아버지란 직책도 사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 아내도 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목사 부인으
로서 자녀들을 기르는데 불평도 못하잖아요? ‘이 자리를 내가 사표를 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을 거라고 내가 짐작을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똑같은 심정의 아버지 한 사람을 예수님이 예화로 소
개하고 계십니다. 먼저 오늘 이 유명한 탕자 비유를 설교하시게 된 동기가
15장 1절, 2절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 유대인 사회는 세리를 죄인으로 취급
을 했습니다. 또, 그들의 그 율법 개념으로 죄인이라고 구별해 놓은 사람하
고는 자리도 함께 하지 아니하는 흑백 논리의 사회 규범과 문화를 가지고
이렇게 좀 이상하게 살았단 말입니다. 그런 신앙의 의식화가 가장 철저하
게 정리된 사람들이 서기관들이요 바리새인들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
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해 놓고는 절대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사신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하고 말씀을 하시기를 즐겨하시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그래서 그런 광경을 보고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
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그런 사람은 상대도 하지 말고 밥도 같
이 먹지 말아야 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날마다 저런 사람들만 데리
고 …” 이렇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비판을 들으시고 나서 예수님
이 이 설교를 하시게 된 거예요. “내가 설교를 하겠다!” 그래서 유명한
이 탕자 비유 기록 일지에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리고 우리 육신 어버이의
마음이 잘 조명되어 있다고 판단이 되어서 오늘 같은 날은 이 말씀으로 아
버지 마음속에 조명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속에 조명된 어버이의
마음을 생각하는 그런 날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
중에 이 가정은 파탄이 나고 있습니다. 매우 비극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집에 작은아들이 매우 당돌한 요청을 아버지에게 했기 때문
에 벌어졌습니다. 이 작은아들의 요청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는 아버지와 아
들의 관계를 의무적 관계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 사회의 전통 문화
는 아들의 권리가 인정되는 인간적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라
는 사람의 의무가 뭐냐?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지불해야 되
는 그런 존재가 아버지다! 우리 나라도 그런 분위기가 있지만 유대 사람들
은 더합니다. 특히 이 아버지의 재산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물질적 능력은
당연히 아들에게 상속되어 지는 것이 문화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이
아들은 그러한 현실의 자기 권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지금 아버지
에게 가서 자기 권리를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그게 아버지의
의무 아닙니까?” 의무적 관계로 아버지를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
버지는 아들에게 두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의 요구대로 그의 분깃을 분배하
여 주었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자기 분깃을 요구하며 가출하겠다는 그 배후
가 무엇입니까? 아버지 없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나의 자유를 가
장 많이 방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인
이 된 나를 지금도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라, 늦게 다니지 마라, 돈 함부로
쓰지 말라... 이게 될 말인가? 이제 나는 넉넉히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책
임질 수가 있습니다. 간섭 좀 그만하고 이제 나를 놓아주쇼. 그리고 당연
한 의무적 책임이 있는 아버지의 분깃을, 내 몫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
게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수급해서 생각해 볼 수
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은 죄 아래로 떨어졌는가?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네가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는 말에 유혹을 받아서 파렴
치한 손을 내밀어서 하나님의 절대 권위에 침범을 했을 때 하나님이 이것만
은 안된다고 에덴에서 인간을 죄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하나님 없는 자유
를 인간이 누리고 싶었던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
를 행복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의무를 이행하십시오. 나
는 이제 하나님의 간섭 없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요즘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아주 멋진 Humanity한 말들을 많이 합니
다. “인간은 에덴에서부터 자율권을 시도한 성숙성이 있었다.” 그런 말
을 또 합니다. 여성운동가 신학자들은 더 멋진 말들을 합니다. “인간의 최
초의 지성을 깨운 것을 여자다. 선악과를 먹었으니까!”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인간의 모습은 세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찾음에 발견된 사
람들이 여러분과 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그 중에
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인간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하자.”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영원히 하나님
의 품을 떠나버리는 사람! 이렇게 분류가 됩니다. 지금도 성숙한 인간을 찬
양하면서 하나님 없는 자유함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그 길을 끝없이, 끝없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작은아들과 같이 생각을 합니
다. “인간 행복의 의무는 하나님이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으시
고 불행한 고난 속에 인간을 살게 하시느냐?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서 말합니다. “인간 불행의 모든 책임은 하나님이다! 자신이 없으셨다면
인간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무슨 이유로 나와 모든 인간을 세상에 이렇게
태어나게 하시고 불행한 삶을 살게 하시는가? 그러므로 마땅한 내 행복의
몫을 신이시라면 나에게 주십시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 없이 살아가겠습
니다.” 이러한 논리가 내 마음속에 정립이 되면 이런 사람은 항상 반항적
이고 투쟁적이며 불만이 떠나지 아니하는 그런 생애를 끝없이 살게 됩니
다.
   두 번째는 맏아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보통 둘째 아들을 탕자라고 규
정을 합니다. 실은 맏아들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맏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았는가? 율법적 관계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맏
아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오늘 성경말씀에 나온 대로 아버지의 말씀을 한번
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충실한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문제는 방탕
한 둘째 아들에게 돌아가는 아버지의 혜택 때문에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
다. 그가 생각하기는 이와 같은 아버지의 처사는 공정성을 잃었다고 판단했
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그 죄 값을 받아야 되는데 왜 죄 지은 자가 영광을 누려
야 되느냐?’ 나같이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마땅히 영광을 누려야 되는
데 지금 이 아버지의 처사는 그 반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
을 율법적 관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집의 재산을 절반이나 탕진하고
온갖 죄를 지은 저런 놈을 들어오지 못하게 내쫓아야지, 오자마자 비단 옷
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다니 … 그러면
나도 나가서 작은아들과 똑같이 살다가 돌아와야 될 것이 아닌가?’ 이것
이 율법으로 보는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모태 신앙이 많이 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뱃속에서부
터 신앙훈련을 받아서 평생을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했고, 죄 안 짓고 살려
고 얼마나 이를 악물고 절제 생활을 했는지 눈물겨운 신앙의 인생 여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에 그 시골 산
골에서 별로 그 놀이 문화 이런 게 없잖아요? 뭐 해야 윷놀이나 한다던가
별로 놀게 없어요.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이 화투를 많이 했단 말이에요. 그
러니까 시골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하는 화투 놀이를 많이 합니
다. 저도 어렸을 때 보면 화투 짝 맞추는 거 재미있으니까 아이들하고 막
화투놀이하고, 할게 없으면 팔뚝 맞기 화투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
느 날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화투놀이 하는 것은 죄다! 화투하지
마라!” 설교를 하셨어요. 강하게 하셨어요. 하지만 못하게 하는 것만 아니
라 “화투 같은 것은 만지지도 마라!” 그렇게 설교를 하셨어요. 아, 그래
서 그 설교를 듣고 ‘아, 그래야 되겠구나! 화투는 나쁜 짓이구나!’ 그렇
게 생각을 해서 그 다음부터는 안했어요. 방바닥에 어쩌다 화투가 떨어져
있으면 만지지도 말라고 그러셨으니까 젓가락으로 집어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그랬어요. 우리 신앙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신앙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많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목회 하는 이 목회자들도 보면 다양합니다. 저같이 어려서부터 신
앙생활을 해오다가 청소년 시절에 소명을 받아서 이렇게 목회자가 된 그런
사람도 많이 있지만 중간에 그냥 깡패 출신, 그런 목회자들도 주변에 보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그러니
까 지나간 이야기니까 친구간에 옛날 그 암흑가에서 놀던 간증들은 많이 들
었습니다. 그거 들어보면 저 같은 사람이 생각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게 정말인가?’ 온갖 잡스러운 죄에서 밤낮을 보내던 시궁창 같은 그
런 과거를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들이 훨씬 능력 있는 목회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암
흑가를 모르고 깨끗하게 살아온 목회자들은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거 공정하지 않습니다. 아니, 저 같은 사람은 저희 형제 중에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집을 한번도 떠
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
여 저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시나이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모태 신앙인데 세상 죄를 실컷 평생을 짓다가 이제 환갑이 넘어서
예수를 믿는 저 사람을 더 환영하고 복되게 하시나이까? 그러면 나도 일찌
감치 암흑가에서 죄를 실컷 짓다가 왔으면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시고 환
영해 주실 것 아닙니까?” 이게 율법적으로 보는 관계입니다. 이 맏아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비단 옷을 입고 금가락지
를 끼고 쇠고기를 파티를 받아야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은 그보다 열 배도
더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데, 아버지께서는 염소새끼 하나도 나한테 준 적
이 없나이다.” 율법을 갖다가 대는 것입니다. 이 집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는 작은아들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큰아들 때문에 시달
림을 받아야 될 괴로운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의무적이요, 율법적 관계로 아버지를 보았던 이 아들들
에 비해서 아버지는 아들들을 어떻게 보았는가? 아버지는 아들들을 사랑의
관계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도 아들들과 똑같이 의무적이나 율
법적으로 아들들을 본다면 이 아버지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실상 유대
인의 문화는 아버지에게 절대 권한이 있습니다. 아들들에게 아무 것도 베풀
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아버지는 너무 지나치게 관대
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둘째 아들이 재산의 몫을 달라고 선뜻 떼어주는 아
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음은 옛날을 하나도 기
억치 않고 있습니다. 이게 사랑의 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그 동안 동네 사
람들이 온갖 소문을 다 가지고 와서 아버지한테 괴로운 소문을 전합니다.
“당신 아들은 이제 거지꼴이 되었소. 내가 보았소. 내가 보니 돼지가 먹
는 쥐엄 열매를 주워 먹으면서 살고 있더이다. 가지고 나간 돈은 한푼도 없
이 창기들에게 다 주어 버렸소.” 그렇게 고통스러운 소문을 다 듣고 있었
는데 과연 소문대로 비참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신속하
게 행동을 했는지, 큰아들이 들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했기 때문에 큰아들
의 불평을 사게 된 것입니다. 비단 옷과 큰 가락지를 장식했다는 말은 뭡니
까? 옛날 부자 집 둘째아들의 권위 회복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의 추
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시켜 놓
고 동네 사람들을 급히 초대하여 변함이 없는 권위 있는 아들의 모습을 자
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많은 죄를 짓고 돌아왔지만
회개하는 즉시 “과거는 없어졌다! 너는 내 아들이다!” 이때 아버지의 마
음은 의무적이거나 율법적이 아닌 사랑 그 자체, 즉 법을 초월하는 관계입
니다. 생각 같으면 괘씸 죄를 적용시켜서 한번 분풀이를 해줄 수도 있습니
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아버지 속에 조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 깨끗하게 청산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의 회복을 신속
히 지켜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대로 하나님이 갚으신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서리요? 이
불평하는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제 그 아버지는 자기 소유는 모두다 포기한 것입니다.
다만 두 아들이 모두 자기 곁에 있다는 그 하나만이 중요합니다. 그게 뭔
가? 십자가입니다. “나는 나를 다 포기했다. 그러나 이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다면 …” 그 하나만이 하나
님의 사랑의 관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구원
의 길을 열어주고 모두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그것만이 하나님의 기쁨
이 되는, 이 아버지 속에 조명된 하나님! 오늘 같은 날은 교회가 어버이주
일이라고 하는 이름을 내세워서 기념하는 이유가 바로 이 어버이 속에 하나
님의 그림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를 보면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째
서 하나님을 보이라 하느냐?”
   오늘 여기 지금 예배를 드리고 계신 분들은 거의가 다 제가 보니까 어버
이 되신 것 같아요. 자녀들은 거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
에 은사 한 분을 잘 만나서 그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도 이 다음에
저 목사님과 같이 훌륭하게 살아야 되겠다!’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신
은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학생 시절에 나에게 Mentor와 그런 같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는 모범 가장이요, 교회에서 매우 존경받고 제자들에게 매
우 존경받는 그런 목사님이셨는데 항상 겸손하셨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나는 꼴찌요, 교회에서도 꼴찌 목사요 …”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그분의 가정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 하나를 제가 기억을 합니다. 새해
첫날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새해 1월 1일이 되었으니까 새해를 맞이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모님께서 부엌에 나가서 가족들에게 줄 떡국을 끓이
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아, 여보시오! 오늘 같은 날 뭘
그렇게 새벽부터 밥을 하느라고... 다 쉬는 날이라 아이들도 다 집에 있고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하시오? 이리 올라오시오!” “아, 아침이나 먹고
뭘 해야 될 것 아니에요?” “아,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내가 해라는 대로
좀 해요. 당신 날마다 부엌에서 그러지 말고 오늘은 예쁘게 화장도 좀 하
고, 교회 집사님이 해주신 예쁜 한복도 있는데 그것도 입고, 아이들한테 세
배도 받고, 또 교인들이 와서 세배할 지도 모르고 … 그렇게 밥 먹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좀 합시다.” 다른 때하고는 좀 이상하게 자꾸 우기
시는 거예요. “아, 나도 이렇게 양복 입고 다 준비하고 있지 않소?” 그래
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사모님이 하셨어요. 그런데 그 사모님은 평소에
도 참 미인이세요. 그래서 아주 곱게 차려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또 한복
을 입고 나니까 본래 미인이신데 참 돋보인다 말이에요. “아, 이게 참 좋
지 않소?” 그러고 방에 들어와 가지고 당신 저 아랫목에 한번 앉아보라고
방석을 가지고 깔아 앉히고는 그 다음에 아이들을 보고는 “다 일어나라!
너희들 빨리 세수해라! 너희들 세배 안하냐?” “아, 그래야죠!” 그리고
는 왔어요. 아들도 엄마 옆에 앉으라고 그러고, 딸들도 저 아래쪽에 앉히
고 … 아, 그런데 가족들이 이상한 거예요. “야! 아버지가 오늘 뭐하시는
거냐?” “몰라 … 아침부터 …” 뭐, 쫘악 앉혀놓고 이 목사님은 저 윗목
에 가서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우시는 거예요. “아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 그랬나? 내가 너무 좋아서 … 가만히들 있
어봐 …” 그러면서 말씀을 이렇게 하셨어요. “여보시오! 사랑하는 목사
의 아내된 당신! 미안하오. 옛날에 당신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처녀시절을 보냈소. 처녀시절 당신의 별명이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었소. 만약 당신이 그 말대로 그 인물을 가지고, 그 마음을 가지고 부
잣집 맏며느리가 되었다든지, 이 사회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기업
에 시집을 갔다든지 한다면 당신의 생애는 얼마나 빛이 나고 얼마나 행복했
겠소? 이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소.” 아들, 딸
을 보고는 “사랑하는 아들, 딸아! 미안하다. 만약 너희들이 이 목사의 아
들, 딸이 아니고 이 사회에서 실력 있는 그런 아버지의 집에 태어났다면 너
희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힘있게 살았겠니? 이 아버지의 아들, 딸로 이 세상
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고통을 받
았느냐? 이 아버지는 너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죄인이다. 내 죄를 용서해
줘라.” 그러면서 큰 절로 세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온통 집안이
“아니, 아침부터 왜 이렇게 사람을 울리느냐?”고 막 달라붙어 가지고 온
통 울음바다가 된 거예요. “여보시오! 내가 평생을 살면서 목회자의 아내
로 불평 한마디 안했소!” 아들, 딸이 “아버지!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
장 훌륭한 목사예요! 우린 그렇게 존경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왜 이러
세요?” 그런데 막 엉겨붙어서 울고 난리 치는데 교회 집사님이 세배를 하
러 오신 거예요. 아, 그러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아, 이거 목사님
댁에 무슨 불편한 일이...\'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그림자가 있습니
다.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어버이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없이 많은 그런 어린 인생들에게 이 아
버지와 같이 사랑의 관계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때 이런 주일을 하나
지키는 보람과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른 의미가 아니잖아요? 아버지 마음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 하나님 마음속에 들어있는 어버이! 이 위대한 생명
의 결부를 생각하면서 훌륭한 어버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부모를 경외하라                                       본문 : 레-19-01-4                                      
 
 
<부모를 경외하라> 레19:1-4

 

오늘 본문으로 시작되는 레위기 19장은 가장 고도로 발전된 구약성경의 윤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 레위기 19장보다 더 잘 설명하는 곳은 성경 전체에서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 첫 두 절인 1-2절은 이 19장 전체의 서론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 서두에서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거룩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명령이며 따라서 모두가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했습니다.

3절 이하 19장 전체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적 의무와 그들의 삶에 있어서의 인간관계의 온갖 도리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그 속에 인간의 모든 관계와 활동을 두루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모든 바른 관계의 실천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레위기 19장은 37절의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19장을 시작하는 말씀인 \"너희는 거룩하라\"는 말씀에 상응하는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거룩하여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것이 거룩하여지는 길임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뿌리에는 \"분리\"라고 하는 기본적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타민족들과는 달라야 할 것을 요구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타민족들과 다를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가르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19장이 제시하는 모든 규례와 법도,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룩하여지기 위하여 지켜야 할 것들 가운데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3절에서 보듯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목할만한 것입니다. 이 명령은 출20:1-17에서 보는 대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10계명에서는 다섯 번째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5계명이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레위기 19장에서는 제일 먼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10계명을 크게 하나님을 대하여 지켜야 할 계명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계명들보다도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는 명령이 앞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절 하반절과 4절을 다시 보면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했습니다.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3)는 것은 제4계명입니다.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라\"(4)는 것은 제1계명에 해당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는 것은 제2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네 부모를 경외하라\"는 명령 다음에 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줍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제 부모를 경외할 줄 모르며 지키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도 부모를 경외함이 없이는 참된 경건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 또는 \"존경하며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경외한다는 말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는 정상적으로는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 부모에게도 사용되었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공경이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크고 중한 도리인지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부모의 존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의 부모님공경은 나중에 커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끄는 가장 자연스럽고 훌륭한 훈련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왜 당연한 것입니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살게 하신 창조주요 섭리주이십니다. 따라서 그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인륜의 근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이것은 결코 부모사랑이 하나님사랑보다 앞서며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정 거룩해지고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되기 위한 실제적인 길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래서 단지 인륜이 아니라 천륜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 자신을 경외하는 것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존재가 이러하다면 우리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어떠하거나에 상관없이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의무와 책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제5계명에는 복주심의 약속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신5:16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했습니다. 잠언은 부모공경의 마땅함과 복됨을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잠1:7-9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지킴\"을 아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나란히 언급함으로써 부모공경이 하나님경외만큼이나 고귀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우리에게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목의 금 사슬\" 같다는 것입니다. 잠6:20-23에서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합니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등불이고 빛이며 길이라는 것입니다. 잠10:1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하며, 잠17:25에서는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하고, 잠23:22에서는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경고합니다.

그런데 레19:32의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신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시기에 앞서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하신 것입니다. 어른을 공경함이 없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 각자의 부모를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무릇 머리가 세고 주름잡힌 얼굴을 지닌 모든 어른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각 자기 부모들만 공경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어른들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임을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의 공동체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어른들을 어른으로 모실 줄 아는 사회가 거룩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경로사상이 복된 사회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한국사람들은 기본이 안 되어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기본을 튼튼히 하는 첫 단추가 경로사상인 것입니다.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할 줄 알아야 바로 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잘 행하는 사람이 다른 일도 바르게 할 수 있고 하나님도 바로 섬길 줄 알 것이라는 말입니다. 연로하신 어른들의 고충과 소외감을 잘 헤아리고 덜어드리기를 힘쓰는 공동체가 아름답고 성숙한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로정신이 점점 죽어가고 있는 사회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경로정신을 되살려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새문안교회와 우리 새문안의 성도들이 이 경로정신을 잘 살리고 실천함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랜 세월을 가정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바친 어른들이 연로하셔서도, 비록 은퇴를 하셨어도, 우리 교회에 오시기만 하면 존경을 받으시며 품위를 지키실 수 있으며 보람을 느끼시며 기쁘게 지내실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노후가 두렵지 않고 의지가 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어른들을 공경하는 우리 교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시설이나 사업이 없었으나 앞으로 그런 일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시설과 사업이 생겨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이러한 경로정신을 한번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우리 교회의 특징이 되고 체질이 되도록 하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연구와 계획이 이루어지며 머지않아 하나씩 하나씩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선한 뜻과 뚜렷한 비전과 뜨거운 마음과 그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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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8:1-6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
 
현대의 많은 가정들이 사랑과 행복은커녕, 상처받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
게 가정이 위기를 만나는 것은 돈이나, 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하나
님께서 아담에게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에덴을 다 주셨을 때, 아담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서 가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 했습니다(창 2:23).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직접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가정을 통해서 인간에게 복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헛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날마다 구하고, 그 복을 누
리는 가정이 되어야 참으로 복 받은 가정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특별히 가정에서 날마
다 예배드리고 있는 가정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복을 주셨는지, 어떤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지 구체
적으로 살펴봄으로 받은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보호하고, 인도하고, 복 주기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
와의 가정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을 때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혹
은 “물질”이나 “자녀”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지
켜주시고, 세워주셔야 복된 가정이 됩니다(시 127:1). 그 증거로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보다
더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했음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떠나자, 패가망신했습니다. 반대
로 하나님이 지키시면, 모두가 가난과 굶주림 속에 있어도 사르밧 과부처럼 안전하고 부족
함이 없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왕상 17:14-16). 가족을 부양할 남편과 시아버지가 없는 이방
여인 룻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를 가
정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마 1:5).

그러면, 어떤 가정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입니까? 예배가 그 가정의 중심이고, 삶
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입니다. 가족이 매일 함께 모여 예배드
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예배가 있는 가정은 고넬료의 가정처럼 하
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구제하며, 가족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복 주시
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에 예배를 회복하므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
도하시며, 복 주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

우리는 “축복”하면, 나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 나라에서 “축복”이란 아무공로 없이 받은 은혜인 “구원”과는 달리, 뿌린 대로 거두고, 심
은 대로 열매 맺으며, 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서 모은 재산을 속아서 한 순간에 날리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있습
니까?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께
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입니다(살후 3:10하). 하나님조차도 6일 동안 일하시고, 수고하셨
기에 창조의 기쁨을 맛보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고의 보람, 노력의 기쁨, 성실의 열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내가 수고하
고 애쓴 열매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
셔들이면, 죄로 인해서 깨어진 이 행복이 다시 회복됩니다(시 128:2).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
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그 수입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서 쓰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
인 것입니다(시 37:3). 따라서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과보호하고, 노동의 신성함
과 땀의 대가를 가르치지 않아서 범죄자나 사회의 낙오자로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
시다.

셋째,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학력이나, 외모, 집안 배경이 좋지 않아도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공부는 좀 못해도 부
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네 집 내실
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
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 128:3-4)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이 좋은 아내입니다. 혼수를 많이
해 오고,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아내요, 어머니가 아닙니다. 물을 구하기 힘든 유대 땅에
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포도나무와 같이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생명수”
를 공급하고, 그들이 힘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여성이 좋은 아내인 것입
니다. 이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고,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사업을 번
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
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
31:10-11)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
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슬기로운 아내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잠
19:14).

또한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은 그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포도나무처럼, 감
람나무도 유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감람나무에서 올리브유라
는 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밝히는 등불로도 사용하였습니
다. 더욱이 감람나무는 한 번 베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힘차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람나무처럼 우리의 자녀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이 사회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
다.

넷째, 대(代)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

복 중의 복은 우리 가정이 평생토록 성전에서 흘러 넘치는 복을 누리고, 나아가 자식의 자
식들을 성전에서 보는 것입니다(시 128:5-6). 성전, 곧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요, 축복이 흘러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향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면, 우리의 가정은 교회를 향해서 집을 짓고 살아야 합
니다.

세계대전에서 참패를 당한 뒤 교회를 향해 집을 지은 독일 가정은 빠른 속도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축복받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곧 우리의 가정이요, 우리의 가
정이 곧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등지고 살면, 내 대에서는 믿음 생활 잘 한다고 해
도, 자식 대에 가면 성전을 등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교회 중
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떠나지 않는 삶을 통해 모세의 후계자, 이스라
엘의 지도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여호수아처럼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키운 자녀와 부모가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향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가정은 “이미” 복 받은 가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 복의 기준으
로 삼는 물질, 명예, 권력은 우리의 가정을 결코 행복하게 하지 못합 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하나님의 가정이 되므로, 이미 받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갑시다. 
기 도
우리에게 복된 가정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가정을 통해 이미 받은
복을 찾고, 누리며, 베풀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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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 당신의 최선을 다하여 우리를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우주 만물을 누구를 위하여 창조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하여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창조는 인간중심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하셔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의 최선을 다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레 째 되는 날 하루를 안식하셨다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쉬신다는 것을 우리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지만 저는 하나님의 안식을 하나님의 최선으로 이해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루를 쉬셔야 하리만큼 하나님은 당신의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최선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선의 근거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최선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한 창조에 당신의 최선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창조가 다 하나님의 최선이시지만 그 최선 중에서도 최선의 창조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가정의 창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기 전 그 아름다운 세상을 다 아담에게 허락하셨지만 전혀 기뻐하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만들어 주셨을 때 그때 비로소 아담이 행복해 했다는 말씀 속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최선의 창조 그리고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는 가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중에 최고의 창조이십니다. 가정은 구원의 축복을 제외한다면 하나님의 축복 중에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오늘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감정적으로 잘 동의가 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가정이 축복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고통과 저주로 여겨지는 분들도 우리 중에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본시 축복과 저주는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축복의 가정이 고통과 저주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만일 현재 축복이 되지 못하고 고통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의 가정을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가정을 주시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고통의 가정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잘 관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래 축복은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 축복이 변하여 고통이 되고 나중에는 저주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잘 관리를 하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가정들이 관리 소홀로 파괴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이 정성스러운 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가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뜻밖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관리하고 투자하여야 할 대상이 바로 가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가정을 잘 관리하여 그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서는 가정이 무엇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우선 알아야만 합니다. 가정은 가족의 관계를 통하여 형성되고 유지됩니다. 가정은 부부관계, 부자관계 그리고 형제관계를 통하여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들을 잘 유지할 때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관계들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조심하고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가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부부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가정 중요한 관계를 부자관계로 보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창세기 2장 24절에서 분명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표현은 부모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가정의 중심은 부자관계가 아니라 부부관계라는 사실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충격적인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심이 부부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가정들이 이 원칙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상당수가 좋은 가정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는 장성한 아들들을 두고 있는 부모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 저도 며느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들을 결혼시킬 때 자녀들에게 내가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해 줄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의 중심이 내게서 자기 아내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할 때 그 마음의 중심과 우선순위가 부모에게서 자신의 배우자에게로 넘어갑니다. 그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요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것을 우리 부모들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의 관계를 질시하지 말고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행복한 가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원칙입니다. 이것은 제 말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중요한 원칙이 지켜지면 아름다운 부자관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원칙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지켜지지 아니하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자관계가 깨어집니다.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을 심리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된 부자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부부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부자관계만 잘 맺는 효자들이 우리들 중에는 많지 않지만 더러 있습니다. 우리 동양의 문화에서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효자라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물론 부자의 관계를 무시하고 소홀히 하고 부부관계만 소중히 여기는 불효자도 물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상품(?)까지 내 거시고 효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부자관계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원칙이 부자관계보다 부부관계를 더 근본적인 관계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행복한 가정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것이 저는 가장 중요한 축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시적이라고 생각 하실는지 몰라도 훗날 자식들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식하고 살아도 서로 불편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가정이 가장 좋은 가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우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따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식하고 살아도 서로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그 첫째가 저는 자식을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을 부자관계로 보지 아니하고 부부관계로 보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자녀가 출가한 후에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문제없이 오히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 원칙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와 자녀가 한 가정에서 함께 사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그와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분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차선이지 최선이 아닙니다. 최악보다는 차라리 최선이 나을는지 모르지만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은 누릴 수 없습니다.
저도 노력하다가 잘 안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백기들고 차선을 택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여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자식을 떠나보내겠습니다. 자식들이 나보다도 자기 아내들을 더 사랑하며 마음의 중심이 내게서 자기 아내에게로 옮겨가는 일을 인정하겠습니다.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마음껏 축복해 주겠습니다.
마음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고 살 수 있는 마음을 축복으로 주실 줄로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 일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 그렇게 생각하며 살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수만 있다면 자식들에게 필요 없는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수만 있다면 물론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무조건 기피만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모와 오히려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것은 부부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관계가 형성된 가운데 어린 자녀를 낳아 양육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가정과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가장 건강한 아이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설교가 오늘 다 말씀드리기에는 좀 분량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과 제목을 가지고 두 번 정도 더 설교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정은 구원의 축복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 최고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정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다.
`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가정을 잘 관리하여야 한다.  많은 가정들이 관리 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정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 가정을 관리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관계이다. 가족관계는 크게 부부관계, 부자관계, 형제관계로 나뉘어 질 수 있다. 그런데 그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고 중요한 관계는 부부관계이다.
` 가정의 중심을 부자관계로 보지 아니하고 부부관계로 보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과 좀 충돌이 되는 듯 싶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
` 자식을 떠나 보내라. 자식의 마음이 부모에게서 자기 남편과 아내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축복하라.
` 그리고 함께 살아라. 자식을 떠나 보낼 줄 아는 사람은 자식과 함께 살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떠나 보낼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식과 함께 살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살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음으로 자식을 떠나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들에게 자식을 떠나보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자식과 따로 살라고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식과 함께 살라고 주신 말씀이다.
`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식과 함께 살므로 자식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지 말라.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식과 함께 살 수 없어서 늙어서 자식과 떨어져 사는 사람도 되지 말라. 자식을 떠나보내고 자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라. 그것을 욕심내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와 같은 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제목 : 사랑하고 순종하십시오                                       본문 : 엡-05-21-33                                      
 사랑하고 순종하십시오


 에베소서 5장 21~33절


오늘 저는 가정에 대해서
특별히 부부간의 사랑과 순종의 질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직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학생들이나
홀로 되신 분들이나 혼자 살기로 작정하신 분들도
이 기회에 가정의 귀중함과 가족간의 사랑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15일(목)에 우리 교회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14일(수)에 중학생 아들이 정중하게
사용처도 밝히지 않은 채 용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주셨답니다.
그런데 그 날 그 돈으로 장미를 사서 여자아이에게
전해 주고 오면서 엄마에게도 하나 가져왔는데
또래 여자아이에게 전해 준 것보다 싸구려를 사왔더랍니다.
그 날이 장미를 주고받는 날(Rose Day)이라 하더군요.
그 아이도 여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어제 운전하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자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는데
아들이 엄마에게 엄청나게 매맞고 있더랍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엄마의 물건(목걸이)을 말없이 가져다가
여자친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2003.5.17. MBC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사랑의 느낌을 받으면…
요즘 말로 feel 이 느껴지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좋아해서 만나고 사랑을 확인하면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부부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부부란 5단계의 변화가 있답니다.
• 첫째 단계,    좋아서 산답니다.
• 둘째 단계,    어쩔 수 없이 산답니다.
• 셋째 단계,    필요해서 산답니다.
• 넷째 단계,    불쌍해서 산답니다.
• 마지막 단계, 묻어 주려고 산답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입니까?
 
 
부부는 가정의 중심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정은 <부부> 중심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가족관도 부부 중심이었습니다.
부모가 아닙니다. 자녀가 아닙니다.
부부가 화목해야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자식도 잘 기르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 가족의 중심입니다.
\"한 자녀 낳기 운동\"의 강조로 인하여
부부 중심의 가정에서 자녀 중심의 가정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자녀를 과잉보호하고, 과도하게 자녀를 사랑하여
각 가정에서는 자녀가 우상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부부를 먼저 창조하시고
그 부부로부터 자녀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중심은 부모와 자녀가 아니라 \'부부\'입니다.
부부는 가정의 핵(核)이며, 가정의 기본이며, 가정의 출발이 됩니다.
 
 
부부는 부모를 떠나야 이루어지는 새로운 하나입니다.
 
•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마태복음 19장 4~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 마가복음 10장 7~9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하시더라\"
 • 에베소서 5장 31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위의 말씀에서 공통되는 단어는 \"떠나\"입니다.
부부가 되려면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들도 딸도 떠나 보내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착각하는 것이 며느리를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아들도 며느리에게 떠나 보내는 것이며
딸도 사위에게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뱃 속에 10달 동안 품고 있던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려면
엄마와 아이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을 잘라야 합니다.
아무리 예뻐도 탯줄을 연결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탯줄이라면,
아들을 며느리에게 보내고, 딸을 사위에게 보내는 것은
두 번째 탯줄에 해당됩니다. 자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의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결혼시켜 놓고
그 부모들이, 형제들이 그 부부 사이에 끼어 들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생각과 판단속에 끼려고 합니다.
곁에 있어야 하지, 사이에 있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프겠지만, 마음 상하겠지만… 떠나 보내야 합니다.
 
부부는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빠르게 잘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부부 사이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하루 부부간의 대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봤더니
응답자의 48%가 30분이라고 했습니다.(국민일보 93년 2월 8일)
어떤 부부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부부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알았던 부산출신 후배가 하는 말이
\"부산 남자들은 퇴근 후에 집에 와서 딱 세 마디 한다\"고 합니다.
  - 아는?(얘들은 별일 없느냐?) / 밥도우(밥 달라는 말) / 불끄라(자자)
 
여러분은 몇 마디를 하며 사십니까?
부부간에 대화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너무 일이 바빠서이고,
둘째, 자녀들의 뒷바라지 때문에(가족, 부모, 형제 신경쓰는 것)
셋째, 텔레비전 시청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TV 시청으로 2~3시간을 소모하고
나머지 22~21시간으로 하루를 살아가니 바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부부끼리, 가족끼리 많은 대화를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 부부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① 존경(존중)해 주는 마음, 귀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②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고 자랑하고 높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어느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주부가 음식을 나르면서
    제게 \"목사님 정성껏 차렸으니 많이 드세요.\"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제 앞에 있다가 \"아유, 자기가 다 차린 것 같네.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해요. 우리 장모님이 다 하셨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말로 좋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제가 그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그 남편 길들이느라고…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 분을 내더라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사람이 살다 보면 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분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여러분 살면서 분을 품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④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부는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횡적인 보조관계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엡5:21~31)에는 부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2절, 24절에 -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했고
33절에는 남편을 \"경외하라\"했습니다.
 
이 말씀만 나오면 남자분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복종>이란 단어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한 인격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그리고 처음 창조된 남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창1:28)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남자에게만 혹은 여자에게만 사명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똑같이 그런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
권위를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복종할지니라\"는  \"… 아래 정열하다\"라는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적인 면에서의 \"순종\"임을 알아야 합니다.
 
새롭게 번역된 성경(쉬운 성경)에는 \'복종\'을 \'순종\'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영문성경(The Message)에 보면
\'복종\'이라는 말을 \'understand and support\'라고 쉽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Wives, understand and support your husbands in ways
 that show your support for Christ\" (22절)
\"아내들이여 남편을 이해해 주고 도와 주십시오\"하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을 지원하여 도와 주어야 합니다.
 
● 아내의 역할은 \"돕는 배필\"입니다.(창2:18)
아내는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생각으로 돕고 말로 돕고, 행동으로 돕고, 기도로 돕고
신앙의 본을 보여 돕는 것입니다.
하와처럼 죄 짓는 일에 돕는 배필이 되면 안됩니다.
 
주보의 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10가지
 
1. 가정의 상비약을 준비하라. 가장 큰 상비약은 칭찬과 격려이다.
    아내의 말 한마디는 남편에게 살맛을 부여한다.
 
2. 생명의 요리사가 되어라.
    가장 좋은 양념은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이다.
 
3. 얼굴에 미소를 띠어라.
    미인계가 아니라 미소계(微笑計)를 써라.
 
4. 고객 감동의 서비스 정신으로 살아라.
    고객 만족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면 나는 저절로 왕비가 된다.
   
5. 남편만의 시간을 주라. 모든 남자는 \'동굴\'을 가지고 있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상처를 치료하므로
   남편을 볶지 말라.
 
6.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 주어라.
    한 번 입게 된 자존심의 상처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7. 남편을 돈주머니로 여기지 말라.
   남편은 대표이사가 아니다. 남편은 정신적 지주여야 한다.
    생활비를 받을 때마다 지극한 감사의 표현을 하라.
 
8. 남편의 성적, 정서적 요구를 무시하지 말라.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욕구를 안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폭력만을 남긴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라.
 
9. 남편과 취미 생활을 같이 하라.
    머릿속에 아내가 없으면 이미 남남이다.
    남편과 더불어 같이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무대를 넓혀라.
 
10. 친정보다 시댁을 우선하라.
     진심으로 시댁을 위하면 남편은 당연히 친정 문제를 책임져 준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고전 13:4~7)
 
부부간의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랑이며,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도와주고, 이해하는 것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것처럼…
그런 사랑을 아내에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희생적이고 계속적인 사랑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변함이 없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 받은 잡지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아내가 어떤 이유로 식물인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오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는 중환자 보호자들 가운데 가장 씩씩했습니다.
대기실 청소도 도맡아하고 보호자들에게 재미있는 농담도 많이 들려주었습니다.
오랜 병원 생활 때문에 그는 늘 낡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아주 깔끔하고 멋진 양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장미꽃 한 다발을 안고 있었지요.
그날은 그의 아내, 식물인간이 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아내의 생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멋진 옷을 입고, 그는 아내의 이마에 키스하며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날 중환자실의 모든 보호자들은 제 환자를 면회하는 대신
그 부부를 넋놓고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고, 아내를 대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 상황을 떠난 사랑을 해야 합니다.
크리스챤, 특별히 남편이 아내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은
언제,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든지 전천후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일시적이거나 조건부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값없는 사랑, 그것이 값있는 사랑입니다.
 
-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9:9)
\"분복\"이라는 말은 \"타고난 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지금 만난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줄로 믿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남편 다섯을 얻었던 여인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받고도 인간은 만족이 없습니다.
 
어느 목소리 좋은 가수가 불렀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남자분들 들으십시오.
여자분들도, 여러분의 아내들도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하는 것 같습니까?
여자들에게 물었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것인가?\"에 대해…
여자들의 75%가 아니라고 했답니다. 
100명 중의 75명의 여자들이 지금의 남편과는
절대로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는 \"생각해 보겠다\", 5%는  \"다시 결혼하겠다\"고 했답니다.
남자분들, 잘 하고 사십시오.
 
주보에 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남편이 하지 않으면 안 될 10가지
 
1. 행복 비타민을 먹여라. 가장 좋은 비타민은 “비타민H”이다.
   \"H\"는 \"happy\"입니다. 하루에 한번 씩 사랑한다고 말하라.
    사랑은 보약과 같다.
 
2. 여성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아내를 연구하라.
    아내와 사는 것은 군대를 지휘하는 것보다 힘들다. 지식을 쌓아가라.
 
3. 최고의 리더십은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잔소리와 꾸지람 대신 기도하라. 기도를 이겨낸 잔소리는 없다.
 
4. 가장 깊은 사랑은 기다림이다. 서두르지 말라.
    제트기도 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릴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5. 베갯 밑 대화를 나누어라. 가장 깊은 대화는 침실에서의 대화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코 고는 소리가 아니다. 침실에서 돌아눕지 말라.
 
6. 돈을 맡겨라. 돈은 애정의 척도가 된다.
    아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가계부 좀 보자는 소리다.
 
7. 아내가 아니라 여성으로 대하라.
    아내는 소유의 개념, 여성은 보호의 개념.
    아내는 재산이 아니라 파트너이다.
 
8. 가족들을 위해 보험을 들어라. 가장 큰 보험은 시간 보험이다.
    가정은 시간으로 쌓아 올려지는 성과 같다.
 
9.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아내와 싸워 이기려는 것이다.
    꼭 이기고 싶거든 자신을 이겨라.
 
10. 아내를 키워라. 그리고 아내와 생의 목표를 같이 나누어라.
     아내도 자라가야 한다.  때로는 아내에게 품위 유지비도 지불해 보라.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화목하게 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남편사랑학교, 부부사랑하교]를 하는 것입니다.
화목한 가정,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참고 견디는 사랑\"(고전13:4~7), \"봐 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중고등학생들, 청년들… \'가정의 중심이 부부\'임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하는 부부의 질서\'를 알았으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 부모님의 사이가 좋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부모들은 자녀들이 화목하게 잘 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범사가 평안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생활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어버이에 대한 자녀의 책임                                       본문 : 엡-06-01-3                                       본문   엡 6:1-3      
   
 
미국에서 12살도 채 안된 소년이 아버지에게 가벼운 야단을 맞은 후, 총으로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정도가 아버지를 살해할 이유까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경찰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을 때 이 소년의 대답은 \"아빠가 보기 싫어요\"였습니다. 아마 자기가 하는 일마다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자유와 인생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아버지의 사냥총으로 잠든 아버지에게 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던 것입니다. 물론 이 소년은 수감되었지만 미성년이어서 소년 감호소 같은 곳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교도소의 숙직간수는 소등한 이후의 어두워져 가는 저녁 복도를 지나다가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가까이 다가보니 이 소년이 감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가느다란 소리로 뜻밖에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더랍니다.--\"아빠,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 보고 싶어요\"

영어에 \'love-hate relationship\'이란 말이 있습니다.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요. 사랑하면서 때로는 그 사랑의 요구가 자기식으로 충족되지 않았을 때 사랑이 오히려 미움으로 변해버리는 경우들이 오늘의 가정에서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시대에서 또다시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책임을 말한다는 것은 어쩐지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가부장적 시대의 도덕강론처럼 들려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믿는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변함없이 가르치는 이 시대 어버이들을 향한 자녀의 책임, 무엇입니까?

바울이 살고 있었던 시대도 오늘 이 시대 못지 않은 급격한 윤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팍스-로마나\'의 식민지 문화는 기존 전통윤리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부모와 자녀사이의 전통윤리에도 상당한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돈을 찾아, 자유를 찾아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와 같았던 에베소에는 아테미의 신전을 중심으로 사회가 음행을 합법화해주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의 거대한 로마식 체육관은 젊은이들의 힘과 기예를 한껏 상품화하고 있었고, 노인들은 사회의 짐스러운 구성원으로 가정에서 사회에서 주변인간으로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냐?\"고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주후 60년대 초 그가 삼년여를 정성을 쏟아 양육하고 세웠던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이런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전달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사도는 어버이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녀들의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두 가지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순종의 책임입니다.

6:1에\"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치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될 때에는 더 높은 권위이신 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예를 들어, 너 예수 믿지 말라 하면--)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심지어 잔소리처럼 들려지는 부모의 교훈 그 밑바탕에도 실상 자녀를 보호하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본능 때문인 것을 안다면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정당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1절 말미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옳으니라/자연의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법-Natural Law라고 하지요. 자연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새긴 양심의 법입니다. 어떤 문화권에도 부모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 문화는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양심의 명령인 것입니다. 부모의 존재는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어야 하고, 부모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느낄수 있어야 하고, 부모의 눈물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볼수 있어야하고, 부모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의 수형생활에 대한 참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너머로 고개 숙인채 땅만 내려다 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 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하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거스림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부모를 순종함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존재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옳은일\'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의 시작은 잔소리같은 부모의 말에 진지한 경청을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의 뜻이 본래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서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의 소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공경의 책임입니다.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어버이 주일에 주일학교 학생에게 엡6:1-3 말씀 성경봉독을 하라고 하니까, 이 대목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고 읽었더랍니다. 공격이 아니라 공경입니다. 순종이 의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라면, 공경은 정서적 측면이 더욱 강조된 단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 \'공경\'이라는 말은 희랍어에 \'timao\'라는 단어가 씌어졌는데,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부드럽고도 친밀한 반응\'을 뜻하는 말입니다.(영어성경에는 honor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순종이 외적행동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공경은 내적태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행동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부모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본래 두 개의 돌판에 나뉘어 쓰여졌습니다. 첫 돌판에는 1-4계명이, 둘째 돌판에는 5-10계명이 기록 되었습니다. 둘째 돌판의 첫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공경은 신의 명령이요, 신의 법입니다. Divine Law라고 합니다. 신의 명령은 자연의 명령 혹은 양심의 명령을 넘어섭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종이상으로 공경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따르는 이들에게 두가지 약속을 합니다 1)네가 잘되고, 2)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위의 두가지 약속을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면 자동적으로 출세하고 장수가 보장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이 사회생활에서도 성공하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내적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또한 장수할수 있다는 것은 아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약속이라고 할만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슷한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질 높은 성공적 삶과 더 오래 장수의 가능성이 있는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일반적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해전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미국 침례교회 선교대회에 강사로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오전 집회후 점심에 해변가에 위치한 아주 근사한 식당에 초청을 받아간 일이 있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식당주인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자기교회 집사인데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분이라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식당에 들어올 때 식당 입구 현관에 걸린 여인의 사진을 보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식당주인의 어머니라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후 타주에서 플로리다로 이사온후 해변가 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했는데 정성껏 손님을 섬기다 보니까 식당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계획 끝에 저축한 돈으로 드디어 아름답고 큰 식당을 바닷가에 열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픈 직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어 그만 오픈되는 것을 보지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는데 자기를 돕고 있었던 아들에게 두가지 유언을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1)식당을 잘 경영해 달라고 하면서 그러나 사업보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달라. 2)이번에 오픈되는 식당에서는 술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아들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순종했는데 처음에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해서 말썽이 있었는데--주류회사의 폭력배같은 사람들이 위협차 찾아왔을 때 아들은 식당입구에 걸린 어머니의 사진을 가르치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했더니 시비안하고 가더랍니다.

식당에서 나가다가 저는 그어머니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 아래 무엇이라고 글이 써있었습니다. 다섯 줄의 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미소는 저의 추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의 용기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저의 등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저의 능력입니다. 어머니의 주님은 저의 주님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모든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라고 그리고 공경하라고 말입니다. 순종이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면 공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박은수라는 분이 쓴 어머니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좋은 옷이 필요치 않으신줄 알았습니다./예쁜 그릇도 갖고싶지 않으시고/맛있는 음식에도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빛깔 고운 립스틱이나/꽃무늬 화려한 양산품/눈 여겨 보시지도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집와서 마흔 고개에 다다르며/이제사 깨달아 집니다./어머니도 여자이셨음을/어머니의 가슴에도 무지개가 있고 파랑새가 있고/사파이어 같은 꿈이 있음을/이제사 알아 봅니다.
어머니/언제나 귀한 이름입니다./언제나 우리맘속에 별처럼 살아있는/아름다운 이름입니다./이날에 어머니를 그리워 합니다.


 
 

 


  ===========================================================================================                                                                                          제목 : 잘 되는 명령                                       본문 : 엡-06-01-4                                       자녀들아 !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장 1~4절) 
    <목회기도>
 
복된 주일 아침,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배 드리고 은혜 받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가정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음에 안타까워 하나님께 구합니다.
부부간에 화목치 못한 이들, 부모 자식간에, 형제간에
화목치 못한 이들에게 하나님 은혜 베푸셔서
저들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홀로 사는 노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저들을 위로하여 주시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외롭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 모든 성도들이 가정을 귀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군대에, 외국에,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저들 가정을 그리워하며
가정을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부족한 목사가 강단에 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은헤 풍성한 시간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생명이 있어 숨쉬는 사람은 모두 감사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 예배의 자리에 있으니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봄, 가을이 되면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1부, 2부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봄이 되었든, 여름, 가을, 겨울이 되었든 주일을 귀중히 여기고, 예배를 귀중히 여기며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 받은 것입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 여기에 모인 우리 ♬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① 무관심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② 무감각합니다. 관심이 없으니 반응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해도, 무슨 일이 생겨도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반응하지 않습니다.
      ③ 무기력합니다. 즐거움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해 지다 보면 쉽게 \"뭐, 이렇게 살다 죽지 뭐\"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한 것 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무감각, 무기력해지면 안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둔해지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 민감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깨닫고 감사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 신선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모두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새 사람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때 콜럼부스는 \"내가 이루어 놓은 업적이란 계란하나를 탁자 위에  세워 놓는 것에 불과한 일입니다. 누구든지 계란을 탁자 위에 움직이지 않게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나의 한 일을 그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계란을 세우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때 콜럼부스는 계란의 밑부분을 약간 깨뜨려 세웠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에이, 그렇게는 나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일은 우습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 하는 것,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입니까?
①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의 이사를 제일 먼저 한 사람입니다.
 (창12:1 -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75세(4절)에 떠났습니다.)
② 그는 자기 장막보다 여호와의 단을 먼저 쌓은 사람입니다(창12:7~8).
③ 그는 십일조를 제일 먼저 구별한 사람입니다(창14:20).
④ 그는 할례를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입니다(창17:23~27).
   <할례는 \"양피를 베는 일\"인데 거기에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양피를 베는 일은 성별을 위한 아픔을 참아야 하는 것이며 성별은 헌신과 봉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이미 모든 것을 우선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온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주일에, 새로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바르게 하려면, 새로운 피조물로 살려면 참고 극복해야 하고, 믿고 순종해야 하는 일이 많아 찬송가에도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일터에서의 생활이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힘이 들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은 \'영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로 날마다 새롭게 사는 사람\'이지만, \'육체적으로는 날마다 늙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10대라고 해도 성장하면서 늙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와 어른은 한 순간의 차이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여러분은 자식을 향해, 부모를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도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왜 공경하라고 했을까요? \"공경\"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도덕의 중심이기 때문에 효도하라고 했습니다. 격언에도 \"충신은 효자 중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국사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제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서 이웃 노인을 귀히 여길 리 없고, 제 부모를 공양치 못하면서 자선심을 가질리 없고 공익을 앞세울 리가 없기 때문에 <효도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 에베소서 6장 1~4절에 보면
- 1~3절은 자녀들에게 주는 말씀이고
- 4절은 부모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 말씀을 다르게 번역 된 것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성경말씀과 비교해 보시며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은 일입니다.
②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출20:12, 신5:6) 하신 말씀은
     약속이 보장된 첫째 계명입니다.
③ 그 약속은 계명대로 사는 사람이 복을 받고 오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④ 부모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주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잘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잘 해야 하는 일도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보면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음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살인하거나 도둑질을 해야만 죄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말씀에 [겸손히 아멘]하며, 말씀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윤리강의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노인에게 아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젊은이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말씀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을 대언(代言)하는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존재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할 것은 인생은 다 늙어 가는 존재이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친히 장수하게 해 주셨습니다(출20:12). 뿐만 아니라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고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늙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도 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도 잠간이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인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든지 가정이 무너지는 시대나 가정이 무너지는 나라는 망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점이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고 가정과 노인을 우습게 여기던 시대나 국가는 곧 망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6~11절에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젊은 시절에 나라를 집권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나이 많은 노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과 국사를 의논했습니다. 그러다 나라가 둘이 되는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인류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어제를 모르면서 오늘을 말하기 어렵고, 어제를 모르면서 내일을 말하고 꿈꾸기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산 사람이나 지나간 세월의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나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나라에서나 나이 든 사람들을 공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진국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공경받는 나라입니다.
 
나폴레옹이 폴랜드를 침략해 들어간 때였습니다.
폴랜드 농촌에 있던 한 영주가 침략해 온 나폴레옹 황제에게 좀 잘 보이기 위해서 그를 자기 집의 저녁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패전국의 영주가 승전국의 황제를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와 있던 나폴레옹과 그 신하들은 이 영주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마련된 식탁에 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가정에 초대 받아 가거나 사무실에 가도 주인이 앉을 자리와 손님이 앉을 자리가 있습니다. 앉을 자리를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제 사무실에 온 손님이 제가 앉을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를 봅니다. 가정에서도 어른이 앉을 자리와 아이가 앉을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주는 좌석을 배치할 때 나폴레옹을 제일 상석에 모시지 않았습니다. 두번째에도 모시지 않았으며 겨우 세번째 좌석에 나폴레옹 황제를 앉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좌석들에 신하들을 앉게 한 후, 그 다음 좌석에 가족들을 앉게 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화가 났지만 체면상 말을 안하고 있을 때에 옆에 있던 신하가 화를 내며 그 주인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 대제국의 황제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자리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으실 자리입니다. 나라에서는 임금인 황제가 최고로 높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높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그 영주의 효성에 감탄하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인생을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이제 경험도 많으시니까 그 정도는 안해도 되지 뭐\"라고 배제시키지는 않으십니까?
 
 
물리적 시간과 논리적 시간
 
 
시간에는
- 물리적(物理的)인 시간과
- 논리적(論理的)인 시간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 지금 2002년  5월  12일 주일낮 11시 35분쯤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12시가 될 것이고, 오늘이 지나서 5월 13일이 될 것입니다.
이 물리적인 시간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날의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2003년, 2004년으로 미리 앞서 갈 수도 없는 것이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이 흐르는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그런가 하면 논리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2002년  5월  12일입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시간은 1950년에 있었던 6.25사건과 사람, 그리고 시간을 지금으로 끌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6.25 때 고생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라고 하면 잘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때의 감정까지 되살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흥분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돌이켜 지금의 시간으로 만들고 미래까지 미리 갈 수 있는 시간을 논리적인 시간이라고 합니다.
 
왜 역사를 배우고 가르칩니까? 지난날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 그것을 토대로 반성하고 준비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부모를 공경하고 귀중히 여겨야 하는 줄 아십니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나의 부모와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현재만 현재에 필요한 것만 가르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나라의 역사교육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아노, 태권도를 하고, 영어, 수학을 할 줄 알아야 하지만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드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윤리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에 모여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예배 잘 드리면 됐지, 성경 공부는 왜 하느냐고… 2000년, 4000년 전에 그 당시의 사람들, 선지자들과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왜 배워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신앙생활은 물리적인 시간 개념과 습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주신 것임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은 예전의 사람들에게,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 이 시대에, 이 예배 시간에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부모를 잘 공경하라\"는 말씀은 구약시대, 신약시대에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효자와 효부, 불효자와 불효부도 사실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어떤 가족을 보면 효도하고 싶어도 받아주지 않아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잘 들으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려면 여러분 같겠습니까?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여러분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며느리와 사위를 두신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려면 여러분의 며느리와 사위가 여러분이 직접 낳은 딸과 아들같겠습니까? 덮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대접을 받으려 하기 전에 젊은 사람들을 향해 먼저 베풀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선을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비록 부모를 공경하며 가정을 평안하게 하는 일이 어렵겠지만\' 그 선한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갈6:9).
 
자녀들은 부모를 순종하고 아비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잘 되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잘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5월 6일)에 미국에 갔다 어제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미국에 간 이유는 제 아내의 할머니 90세 생신 축하 잔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남매를 두셨는데, 90세 생신에 모든 자녀손자들이 모여 축하를 해 드리자고 해서 5월 4일(토요일)에 생신잔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제가 갈 수 없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손자 사위 고신일목사가 꼭 와야 된다\"고 하셔서 저 때문에 월요일로 바꿨습니다. 한국에서 월요일에 출발해서 미국에 도착하니 월요일 오전이고 저녁에 생신축하 잔치를 했습니다. 영국에 있는 손자, 한국에서, 미국의 각 주에서 모인 자손들이 모두 40명이었고 모든 가족 중 3명만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치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각 가정마다 성경구절을 적은 패를 만들어 주셨고 잔치를 은혜스럽게 마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오기 전 날인 목요일에 모두가 참석한 가정예배를 인도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얼마 전에 94세로 돌아가신 우리 교회의 조영자권사님 유언을 거기에 모인 가족들에게 전했습니다.
<- 첫째,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나야 합니다.
- 둘째,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화목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 셋째,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모두가 좋은 것만 기억하며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에배 후에 식구가 40명이 모여 있으니 아무리 집이 커도 앉을 데가 없어서 계단에 앉아 \"저 할머니는 90을 사시는데 우리 어머니는 70도 못되어 돌아가셨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0이 되셨는데도 지팡이도, 보청기도 필요 없이 건강하고 정정한 할머니를 보면서 \"저렇게 믿음을 지키고 온 가족들이 신앙생활 잘 하니까 얼마나 복받으신 분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일 저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거나 소대변을 받아내는 상태라면 가족들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의 남가주에 어느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교회 일에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아기를 갖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16년째 되던 해, 마침내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들 부부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흉칙스런 기형아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절망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친척들과 이웃들도 안타까워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병실을 찾아 온 남편을 맞는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밤새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어요.\" 그랬더니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아기를 어느 가정에 보내야 가장 사랑을 받을까 하고 하나님께서 고민하시다가 우리 가정에 보내셨대요. 그러니 잘 키워야겠어요. 당신도 도와 주세요.\"
 
      반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른이 계십니까?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노인이 계십니까?  혹시 소대변을 받아내야 할 만큼 너무나도 기가막힌 노인이 계십니까? 그 노인을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시지 않고 여러분의 집에 남겨 주신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계신 것으로 받으실 수 없습니까? 그 노인을 여러분의 부모로 주신 것은 그 노인을 공경할 사람이 여러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받아 들이실 수는 없습니까?
 
     <잘 되는 복>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되는 명령>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명령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교회에 찾아 나와 병들었거나
혹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치매에 걸려
소대변을 받아 내거나, 잊어 버려 찾아 헤매는 부모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잘 되는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명령하신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부모된 우리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삶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                                                                                          제목 : 효도의 계명                                       본문 : 엡-06-01-4                                      
  

 

요즘 학교에서 또는 사회 직장에서 부모님께 대한 효도의 행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효도잔치는 세계의 여러 민족보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나라에서 더 귀하게 치러지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나 다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지만 대개 개인적 혹은 가정적으로 행사를 많이 가집니다. 여가도 즐기고 스포츠도 하고, 또 자기 나름으로의 건전한 오락도 하며 개인 아닌 부부가 잘 다닙니다. 우리 나라는 동네나 혹은 지역 도시에 집단으로 모이는 경로당이 있어 효도잔치도 베풀고 효도관광도 자주 합니다. 이것이 해외에 계신 우리 교포들에게까지도 알려져 얼마나 아름다운 행사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부모를 섬기며 효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계명 중에 첫 번째이고, 전체 계명 중에는 다섯 번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효도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또 주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효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삶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삶의 많은 규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법칙은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5:16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명한 대로\'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공자는 형벌의 제목이 3천여가지가 있는데,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교훈도 하며, 또 명령도 내립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게 듣기 싫어서 귀찮아합니다.
정철의 시에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이러한 시구가 있습니다. 이 시 그대로 우리가 평생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부모가 곁에서 떠났을 때 효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섬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연 법칙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법칙인 것입니다.

둘째, 효도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숭고한 의무입니다.
\'하라\'고 명령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되고, 그 명령에 대해 우리는 의무를 감당해야 되는데, 의무도 마지못해서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 군대에서 상관이 사병에게 어떠한 명령을 했을 때, 그 사병이 상관의 명령을 복종하면서도 \'아이 추운데, 무거운데, 배고픈데, 힘드는데\' 하면서 짜증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섬기는 이 일은 마지못해서 하면 안됩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가장 숭고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기쁨으로 해야 될 그런 의무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일과 거역하는 일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의 의무를 다하려면 ①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요즘 개인주의가 너무 성하고 자기의 수단과 방법을 앞세워 살아가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간에 많은 불화가 있게 됩니다. 출애굽기 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22:4이하에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명이 단축되고, 이방인들의 능욕을 받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심지어 만국인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를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겔 22:7).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거역하는 일이 되고 천륜을 역행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②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옳으니라\'고 한 것은 마땅한 도리라는 의미입니다. \'순종\'이란 말은 \'따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잘 따라야 합니다. 부모의 의견이 내 뜻에 맞지 않고 일치되지 못해도 부모의 의견을 잘 따라주면 손해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역행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우리가 따르고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설득이 있어야 되고, 이해시켜드리고 가르쳐드리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될 것입니다.
③부모를 잘 봉양해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의 의식주에 대해서 잘 봉양해드려야 합니다. 저는 요즘 TV를 보면서 전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될 그런 특강도 하고 토크쇼도 하곤 했는데, 금년에 들어서 부모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생에 자식 위해서 투자하고 살다가 나중에 이제 자식 신세 좀 지려고 하니까 서러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자식들에게도 부모에게도 피차 어려우니까 할 수만 있으면 자식에게 신세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투자하지 말고 노후의 대책을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해놓는 것이 좋다는 그런 이론을 많이 전개하는 토크쇼의 대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어쨌든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금이야 옥이야 하며 과잉보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효자가 되게 하려면 자식들이 예수를 잘 믿게 해야 됩니다. 예수 잘 믿으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방탕하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지 않습니다. 가장 귀한 것은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부모를 잘 봉양해드리는 것입니다. 룻기 3:17에 보면 \"빈 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④부모를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80세 넘은 아버지가 60세 환갑이 지난 아들을 통해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 색동 바지 저고리 입고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이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니까 환갑이 지나고도 색동 바지 저고리 맞추어 꼭 생신 때 가서 한번씩 노래해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가 싫어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려는 그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귀합니까?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효도는 최고의 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보장받는 비결입니다.
효도하면 ①범사에 잘되게 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2,3절) 부모를 잘 공경하면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게 됩니다. 여러분, 노력하는데 열매가 없고, 수고를 해도 결과가 없고, 부지런히 찾는데 나타나지는 않고 허공을 치는 이런 삶을 사는 분이 있다면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잘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②장수하게 됩니다. \"땅에서 장수하리라\"(3절) 잘되면서 장수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부모를 잘 섬길 때 잘되면서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바닥에 물이 좀 있어서 발이 미끄러지자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어이쿠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라고 했답니다. 이것이 인간이 오래 살고자 하는 애착입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당에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죽을 때는 죽더라도 살고자 하는 의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려고 보약을 먹고, 헬스클럽에 다니고, 요양도 하며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 이상의 잘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효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12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창세기 47:11,12에 보면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요셉이 장수하는 복을 받는 비결 중에 하나였습니다.
③복을 누리게 됩니다. 신명기 5:16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이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떠다 놓은 물은 증발될 수 있지만 솟아나는 온천수나 샘물은 아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효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삶의 법칙이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숭고한 의무이며, 최고의 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보장받는 비결입니다. 효도의 계명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최고의 상 즉 범사에 잘되고 장수하며 하나님의 복을 보장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 엡-06-01-4                                      
 에베소서 6장 1절∼4절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상 사랑은 차원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을 헬라 사람들은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화끈한 사랑, 이것을 \'에로스\'라고 합니다. 남녀간에 사랑, 애정이라고 하는 사랑을 이렇게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에로틱\' 할 때는, \'에로티시즘\' 전부 그런 뜻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스토르게\' 라고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입니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이 부모의 사랑은 철저한 끈질긴 피로 연결된 그러한 사랑입니다. 이걸 스토르게라고 그러고요 그리고 친구간에 사랑, 이 수평적인 사랑, 심지어는 나라를 사랑하든 형제를 사랑하든 친구를 사랑하든 \'필아델피아\' 혹은, 필아델포스 이렇게 \'필\'자를 붙여서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친(親) 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것이 인간입니다. 한평생 우리는 사랑 속에 살 뿐더러 사랑을 배우며 삽니다. 사랑 공부하며 삽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배웠느냐 몇 학년이나 되었느냐 얼마까지 배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간 됨이란 사랑 이해의 수준에 있는 겁니다. 아직도 에로스적인 데 매여 있습니까? 아니, 필로스든지 그런데 매여 그 정도입니까? 아니면 끈질기게 스토르게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건 그 정도입니다. 사랑 이해가 높아져서 아가페를 이해해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아가페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될 때, 그게 바로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에 응답해야 됩니다. 자, 이제 보세요. 한 남자의 사랑에 응답해서 여자가 응답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 부모님의 사랑에 응답해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친구의 사랑에 진실하게 응답해서 친구가 되고, 신의를 지키는 인간관계가 됩니다. 또 인격이 되어갑니다. 자 이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에 응답해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응답하는 것은 곧 베푸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을 또 실천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서 남편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사랑 속에서 친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카도스 헤가페사 휴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랑이 아가페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아가페의 사랑을 하라. 베풀어라. 여러분, 여러분 생에 \'이것은 아가페였다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을 한 것이다\' 몇 번이나 있습니까? 몇 번이나 그런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저는 북한에 갈 때마다 좀 듣기 거북한 인사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만찬을 할 때에 꼭 서서 정식으로 아주 엄숙하게 연설을 하듯이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꾸 바뀌니까 그들이 나에 대한 관계를 다시 수립을 해야 됩니다. \"동무,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원에 의해서 총살되었는데 그 때 동무가 옆에 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하여 오셨으니 조국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럽니다. 가끔 묻습니다. \"목사 동무는 분명히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왜 이 북조선을 그렇게 도우려고 애를 쓰느냐?\" 그럴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당신들과 다른 것이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여기에 이유 없습니다. 당신들의 아무 대가성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정말 아가페적 사랑을 해 본 일이 있습니까? 거기서 내 인간의 인간됨의 수준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높은 사랑, 하도 귀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 받고 미워하고 특별히 고상한 사랑을 받고 배신한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죠. 아주 어렸을 때 제 어머니가 제게 일러준 이야기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그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이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답니다. 이 아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어요.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새처럼 전화도 안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종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 애인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얘 아무개야!\"하였더니 그 애인이 남자에게 묻기를 \"저 여자 누구야?\" 이 남자, 이 아들 하는 말이 \"어, 그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있던 식모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만요. \"사랑을 배신하지 마라.\" 사랑에 대한 배신은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 아들이 살아서 뭘 하겠어요. 성경은 이런 죄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한 200년 전에 중국에 선교를 할 때, 아시는 대로 중국은 그 당시 유교, 유교 문화에 꽉 젖어 가지고 있는데 이제 기독교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그게 마음이 열리기가 어렵죠. 그럴 때에 그 때에 만들어진 전도지를 보니까 그 전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랬어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1장17절을 인용합니다.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출애굽기 21장15절, 레위기 20장9절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죽여라. 신명기 21장 18절로 21절에 보면 패역한 자식,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계도 듣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공회에 끌고 가서 증거를 내고 끌어내서 돌로 쳐죽여라 그랬어요. 패역한 자식은 죽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라. 이 무서운 성경구절을 전도지에 써 놓았어요. 그리고 다시 긍정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버지가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그 때에 나이, 이삭이 스물 일곱살이에요. 아버지 나이 127세. \"너를 재물로 바치란다\" 할 때에 \"100세가 넘더니 노망했구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죠.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공경하고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한 것이요. 이것이 기독교다 그것이에요. 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철저한 효도의 종교다 이렇게 전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문이 열린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티마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새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아요. 안되었다 싶다나요. 이런 망언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하나의 친하는 친분정도의 그런 사랑을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라. 높이 섬기라 이거예요. 이것은 존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교회에서도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이 어머니 주일을 지킬 때에 늘 학생,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Illustration이 있습니다. 중요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미국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것은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기 때문이죠.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아는 조지 워싱턴, 1대 대통령 워싱턴이 어렸을 때 그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바다의 사람이 되겠다 생각을 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짐을 다 꾸려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줄줄 우는 겁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서 선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 나보다 어머니에겐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를 높이고 높여 순종한 것이에요.
 그리고 공경이란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가 하면 공경이란 대가성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질투 없는 사랑은 오로지 효(孝) 하나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올시다. 또한 이 사랑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에 응답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의 기도,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많더라도 아니요, 그의 소원을 우선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선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의로운 것입니다. 때로 부모님이 \"공부하라 공부하라\" 입버릇처럼 하지만은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제 때에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늘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고로 너는 공부하라\' 이것입니다. 그래,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었습니다. 그 속에 소원이 있단 말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또한 부모님의 소원 중에 가장 큰 것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병들지 마세요. 병들면 불효자입니다. 건강을 잘 지켜서 건강해야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앓아 누워있는 자녀는 불효자입니다. 그것도 내 잘못으로 인하여 내가 병들었다면,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한숨쉬는 것 아니에요. 죽기 전에는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 앞에 탄식하고 괴로워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마음에 기쁨을 드려야겠으니까요. 그의 소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죠.
 효는 가정 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할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아버지가 나이 많은 어머니를 내다 버리려고 지게에다 태우고 지게 지고 산으로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갔어요 꼬마 아이를. 깊은 산에다가 놓고 음식을 좀 내려놓고 요거 다 잡수시고 돌아가세요. 아 그리고 지게를 놓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그 지게 가지고 가지.\" 지게를 거기 놔두고 가려고 했더니 \"지게를 가지고 갑시다\" 그래요. \"왜냐?\" 그러니까 \"아버지 늙은 다음에 또 지어다 놔야지. \"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쿠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 어머니를 다시 업고 돌아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요새는 아이들이 효도를 하려해도 효도하는 방법을 몰라요. 효도하는 것을 못 보았거든. 언제 효도를 보았나? 못 본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못 배운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자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잊어버려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거예요.
 오늘 성경말씀에는 장수하게 되고 형통하리라. 이건 통계학적 진리예요.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혜로 가정으로 세계적으로 형통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경, 그것이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공경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 공경과 순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영영 구제 불능이에요.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부모란 네가지를 말합니다. 낳아준 부모, 나를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시는 왕부모, 그리고 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란 스토르게만이 아니에요. 이런 네가지 부모 속에 있어요.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의 덕을 익히고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건강하며 형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를 항상 새롭게 일깨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순종의 덕을 몸에 익히면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가정들이 효의 가정이 되고 주의 약속된 복을 다같이 받고 또 이어가는 거룩한 가정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제목 : 가정의 관계를 정립합시다                                       본문 : 엡-5-31-                                      

31절 :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 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 체가 될지니 32절 :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 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절 :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 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1절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 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절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 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절 :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 수하리라 4절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 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5절 :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 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 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절 : 눈가림만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절 :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 라 8절 :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 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 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절 :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 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 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가 바로 되면 행복하고 이 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불행해 지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사실은 부부 사이는 너와 나. 남남이 아닙니까? 하나의 부부라는 관계를 맺게 되어 이 관계 속에서 출발하는 부부, 또 부모와 자식으로, 한 가정을 이루고 우리 직장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 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립이 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이 있냐하면 옛날 제가 시골에 살아서 보기도 했 고 알기도 하였지만 마당에서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 때 둥그렇게 쇠로 띠를 두르고 그 다음에 다리 세 개 를 세우지 않아요? 그렇게 하고 그 위에다가 솥을 올려놓는 거예요. 그 렇게 하고 마음대로 불을 때서 음식 을 만듭니다. 그 세 발이 정확한 위 치에 든든히 서 있을 때 그걸 정립 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 중에 다 리 하나가 약하거나 없거나 하면 반 드시 넘어지고 쏟아지게 됩니다. 그 세 다리가 대립하여 제자리에서 제 구실을 해 줄 때 이것을 정립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해마다 5월 첫 주일은 가정 주일로 지키는 날입 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부부의 관계를 정립합시 다(5:31-33).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 에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추어 놓 았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담을 만들 었는데, 그렇게 좋은 동산에 남자 하나가 다니면서 외롭게 지내고 있 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 좋 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 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잠들었 을 때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혼 자 사는 것은 안 좋다. 그리고는 여 자를 아담 남자에게 이끌어 오시니 라는 말씀은 아담에게 가장 적합한 여자를 끌어다가 짝을 지어 주셨다 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두고 생각해 보면 김창인이라고 하 는 남자에게 김기옥이라고 하는 여 자를 이끌어 오시니. 이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이 세상에 많은 여자가 있는데 하나님 이 여자 하나를 꼭 집어서 나에게 짝을 지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러니까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면 좋습니다. 김창인이라고 하는 사람 에게 가장 적합한 여자는 바로 이 여자다 하여 짝을 지어 준 것입니 다. 여러분에게는 이 여자가 이 세 상 그 많은 여자 중에서 가장 나에 게 적합한 여자이기에 하나님이 골 라 주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여 자와 짝 지어 진 것이 그렇게 복되 고 기쁨이 되는 겁니다. 또 그 여자 에게는 이 남자가 좋다 하고 짝을 지어 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 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 라고 말씀하 십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부모 떠나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혼하게 되 면 부모는 내 보내라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즉 간섭하지 말라는 말씀입 니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기 전에 아 들이 월급을 타 오게 되면 전부 어 머니한테 갖다 바치지 않았어요? 결 혼해서 제 마누라를 맞이하게 되면 이제는 관여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이걸 자꾸 관여를 하다 보니까 시어 머니와 며느리가 문제가 심각해 져 서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 니까? 일단 내 아들이지만 장가를 보내면 남의 남편이 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기 남편이 벌어 온 것 이나 쓸 일이지 남의 남편이 벌어 온 것을 왜 가로채서 쓰려 합니까? 아들에게는 엄연히 제 아내가 있는 데 말입니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마 십시오. 서양 사람들은 결혼 시켜 놓으면 절대 간섭 안하고 알아서 생 활하도록 합니다. 한 집안에 살지라 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리고 그 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부모 를 떠나 라는 말씀은 경제적으로 독 립하고 자립해서 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 라고 하셨습니다. 이둘 사이에 시어 머니가 끼어 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이에 올케가 끼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 둘이 한 몸이 되라 고 하셨는데 여러분 천년을 함께 살 아보세요. 한 몸 됩니까? 내가 밥 먹었다고 아내가 배부르냐는 말입니 다. 똑같이 함께 먹어야 되지 않습 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 몸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한 몸처럼 살아가라 는 뜻입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목 표가 하나 아닙니까? 삶의 방법이 하나가 아닙니까? 또 주머니가 하나 아닙니까? 믿음이 하나입니다. 빨리 하나가 될 때 두 부부는 행복해 진 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 정의 제도. 즉, 부부로 짝을 이뤄 복 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 것이 부부라는 얘기입니다. 이 부부 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이상과 같 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1절부 터 33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 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 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 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 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고 하였습 니다. 그러면 부부가 하나 되는 비 결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자 하와를 만들어 남자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그 때 하는 말이 이는 내 살 중의 살이 요 내 뼈 중에 뼈로다. 즉 나와 불 가분의 관계. 내 살이요 내 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내 사랑하기 를 내 몸처럼 아끼고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라. 그런 말이 아닙니까? 우리는 내 살을 얼마나 귀히 여깁니 까? 조금 찢어져서 피만 나오면 야 단입니다. 그 다음에는 뼈가 상할까 봐 얼마나 신경을 쓰고 귀히 여깁니 까? 아내를 꼭 쥐면 터질세라 건드 리면 깨질세라 그렇게 내 몸처럼 아 끼고 사랑해 주는데 하나되는 비결 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로는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 였는데 경외라고 하는 말은 신하가 임금에게 쓰는 말입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쓰는 말입 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아내가 남편을 그렇게 경외하라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남편 알기를 왕같이 알라. 남편 알기를 하늘 같 이 알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 알기를 발바닥처럼 여겨보십시 오. 그렇게 되면 하나일 수도 없고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래서 사랑과 경외가 하나되는 비결입니다. 이것 이 바로 부부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부부간의 관계가 사랑과 경외로 정립이 될 때 행복한 부부가 됨을 명심하셔서 여러분들의 부부 사이의 좋은 관계가 되어지기 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부자의 관계를 정립합 시다(6:1 ∼ 4). 부부간에는 뒤틀리 면 헤어진다고 하지만 부자 관계는 헤어질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자 사이가 뒤틀려서 평생 원수 같 이 지낸다면 이것은 좋지 않은 부부 보다 더 심각한 겁니다. 그래서 부 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바로 되야 되 는 겁니다. 그때 그 가문이 서게 되 는 겁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 서 1절부터 4절까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 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 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돈 벌어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할 때만 잘 공경하라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많아 돈 한 푼 못 벌고 오히려 자녀에게 신세를 질 때도 똑같이 공경하라는 말씀입 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 가 주책부리는 그런 분 없어요? 주 책 부리면 내가 기저귀 차고 오줌 똥 못 가리고 밤새도록 울고 보채며 자기만 위해달라고 하던 그때처럼 부모가 주책을 부립디까? 내가 부모 에게 주책 부린 것은 생각도 안하고 열 배나 더한 주책 부린 주제에 부 모가 조금 그런다고 꼴 보기 싫다하 고 모시기를 싫어하는 자식.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실 복이 무엇 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 땅 위에 태어났고 존재하는 자체가 부 모의 은혜 아닙니까? 핏덩어리를 내 다 버렸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나를 낳아 주셨고 또 이만큼 키워 주셨고, 가난해서 공부를 못 시켜 고학해서 내가 성공했을 망정, 여러 분 그것이 전부 다는 아니지 않습니 까? 고학해서 공부했다는 것보다 그 동안에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 까? 가난한 부모일 지라도 조금도 차별하지 말고 공경하라는 겁니다. 즉 부자인 부모에게만 아니라 가난 한 부모에게도 공경하라는 겁니다. 건강한 부모가 아니라 병든 부모에 게도 공경하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축복이 약속 됐다는 것인데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잘되리라 했으 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장수하면 그 것도 축복이 아닙니까? 더 이상 복 이 어디 있습니까? 복이란 복은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함과 동시에 부 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본문은 말합니다. 한마디로 믿음 을 잘 키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부모는 학교 교육에서 일 등 하면 부모로서 할 일 다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 믿는 부모는 그게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등 하면 더 좋습니다. 회사에서 일등 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그 것보다도 내 아들 딸 들을 믿음으로 키웠다는 것이 더 큰 성공이요,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해도 좋고 못 해도 좋 습니다. 믿음으로 키웠다면 믿음의 부모는 정말 최선을 다 한 부모입니 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녀들을 꼭 믿음으로 키워야 됩니다. 그래서 여 러분 공경과 믿음으로 키우는 양육. 이 두 가지가 바로 될 때 부자 관계 는 바로 되고 정립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그 가정에 행복이 있고 그 가문에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 분들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좋은 관계를 정립해서 약속된 축복을 받 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상하 관계를 정립합 시다.(5∼9) 5절부터 9절까지
\"종들 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 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 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 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 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 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옛날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편지 할 때에는 종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이 있었고 상 전이 있었습니다. 즉 주종 관계입니 다. 다시 말하면 계급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계급 제 도가 엄격했는데 계급이라는 것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 늘날에는 민주국가에서는 계급이라 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계급 이라는 것은 없지만 계층이라는 것 은 있습니다. 그래서 계층이라는 것 은 일을 할때 위에서 일 하는 사람 이 있고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의 관계일 뿐이지 사람 자체가 위아래 라는 말 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 이 직장에 나가서 일 할 때 처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일을 할 때 계 장도 있고 과장도 있고 부장도 있고 이사도 있고 사장도 있고 그러지 않 습니다. 모두 평사원이라면 일을 못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위해서 위가 있고 아래가 있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일이 돌아가고 일을 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니 라\"
하면 일을 못 하는 겁니다. 이 까닭에 이것은 사람 자체가
\"위\"라 는 말은 아닙니다. 일에 위아래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입니다. 옛날의 종의 제도가 있어서 주종관계의 조 화를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오 늘날 우리는 계층간의 조화를 말한 다고 보시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종들은 상전 섬기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주 인을 꼴 보기 싫은 존재로 여기지 말고 예수님이라 생각하라는 뜻입니 다.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를 생각 해서 섬기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상전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은 만약에 내가 예수님의 입장 이라면 즉, 예수님이 내 입장이라면 종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그렇게 생 각하고 종에게 하라는 겁니다. 그렇 게 하면 그 행한대로 하늘의 아버지 께 받는다는 말씀도 첨부하고 있습 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한 마디 로 요약하면 종이나 상전이나 예수 님을 표준 하라는 뜻입니다. 즉 예 수께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나 상하 관계가 좋겠습니 까? 예를 들어 직장에 나가 아랫사 람에게 예수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할까? 그 결과는 뻔하지 않습니까? 또 아랫사람이라면 즉 예수님이 그 위치에 계시다면 내가 어떻게 할까? 를 생각하고 처신할 때 상하 관계가 잘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 회사는 정말 복 된 회사요, 가정에서도 윗 어른이 있고 아랫사람이 서로 그리 스도께 대하듯 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자체가 위, 아래는 아 니지만 그리스도를 대하는 마음으로 윗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을 대하면 얼마나 상하 관계가 아름다우냐는 말입니다. 이런 가정에 행복이 있고, 이런 사회가 복되고 잘 되는 것입니 다. 여러분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이런 상하 관계를 바로 정립하여 복된 가정과 잘되는 집안 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제목 : 가정과 천국의 신비                                       본문 : 엡-5-31-33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31-32절)

왜 부모를 떠나는가? 그것은 부모를 떠나서 또 하나의 새로운 관계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는 세상을 떠나서 예수를 만나는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이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만 믿으면 나는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나의 신랑으로 모시면 내가 그의 신부가 됩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종의 관계, 아들의 관계, 신부의 관계가 있는데 이 세 관계는 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내가 종이 되어서 일하게 됩니다. 이 관계는 일의 관계입니다. 충성하고, 섬기는 관계며,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충성된 종으로서 상도 받고, 면류관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 내가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됨의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받아서 천국에 가는 유업을 받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의 신랑으로 모시고 사랑을 나누면서 교제하고, 행복을 얻는 관계입니다. 종으로 일할 때는 삯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아들로 믿게 될 때는 거기에서 유업을 받고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신랑 신부의 관계가 되면 사랑의 관계를 형성해서 행복하고, 교제하면서 인격적인 만남을 이룹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인격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명령의 관계고, 순종의 관계며, 일의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인격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보호의 관계이며, 돌봄의 관계이며, 유업을 받는 관계일 뿐입니다. 그런데 신랑 신부의 관계는 일대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이 관계는 철저하게 서로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여기에서만 진정한 행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성장의 단계를 보면 처음에 하나님을 만날 때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만나서 주인에게서 무엇을 얻습니다. 또 도움을 받습니다. 조금 더 은혜를 받으면 내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위대한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음에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성숙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전부가 되어서 마치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고 교제하듯이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행복을 얻고 만족을 얻으며 기쁘게 살아가는 관계가 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연합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은 주인과 종의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종이고, 모세도 종이며, 여호수아, 이사야 모두 종이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렇게 부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연합하듯이 하나님을 나의 신랑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격적으로 성숙하면 신랑 신부의 관계로 일생을 살 듯이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 때 우리의 심령속에 하늘의 천국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31-33절)

먼저, 둘이 한 몸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연합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연합은 인격적이고 영적인 교통을 상징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형상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창세기 1장 2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 혼자만의 형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날 때 하나님의 형상이 내게 온전히 나타나게 됩니다.

남녀의 연합은 결국 신비한 비밀인데 천국의 즐거움, 기쁨을 땅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이 남녀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신비하게 봐야 합니다. 부부의 만남은 남녀의 성적인 만남이며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지으시고 우리의 성이 그 인격을 표현하는 도구라면 부부는 인격적으로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일대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서 사장과 일대일이 안됩니다. 이것은 권위상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일대일이 안됩니다. 이것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자녀는 약한 존재로 섭니다. 이 세상 어디에 가도 일대일의 존재는 안됩니다. 빈부, 학력, 인물, 모든 것에서 비교되는 차등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부부는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나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대일의 인격으로 만나는 것은 부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 앞에 있는 아내는 일대일의 인격적 존재의 존엄성을 다 받고 있습니다. 남편도 그 아내 앞에서 일대일의 인격적 존재의 존엄성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존엄성이 깨질 때는 그 가정은 이름만 남게 됩니다.

마이크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쓴「결혼의 신비」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가정생활의 고전적인 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듯 진정한 남녀의 교제만이 하나됨의 신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내가 하나됨의 신비에 이르듯이 남녀의 교제만이 하나님과 하나됨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이런 해석을 내렸습니다. \'부부의 관계로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과 헌신으로 하나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25절에 보면 부부가 연합하기 위해서 옷을 벗었다고 했습니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 전 존재를 진실하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또 연합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최상의 헌신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만남은 진실과 헌신입니다. 이 이상의 헌신이 없습니다. 이 이상의 진실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자기 존재를 벌거벗은 존재로 진실하게 내놓아야 되며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듯 헌신하는 것은 이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고전 7:3-4절에 보면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연합을 위해서 자기 존재를 내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함께 잠을 자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자고 남편은 건너방에서 따로 자는 것, 이것은 성서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집안에 서재를 꾸며놓고 혼자 거기에서 연구하고 잠자는 것도 올바르지 못합니다. 연구했으면 잘 때는 같이 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나 특별한 기도를 위해서라면 허락을 받고 하라고 성서가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교회 여 집사님이 12시에 철야하러 왔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했더니 아이 대학 진학을 위해서 백일기도를 시작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어서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백일기도는 새벽에 해도 됩니다. 자식 대학가는 것 가는대로 내버려두어야지 백일기도 한다고 떨어질 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격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실력없는 것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가서 주무시죠.\" 자야 할 자리에 가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라고 제가 집으로 보내드린 일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부부는 서로 존경과 사랑으로 연합해야 됩니다.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33절)

인생이 육체가 연합되었다고 그것으로 일생을 다 사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도 쇠합니다. 정욕도 갑니다. 육체의 연합도 식어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견고한 연합만이 일생을 강한 끈으로 연합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읽고 혼자 웃었습니다. \"아내가 예뻐보일 때...\" 이런 제목의 글인데 20대 후반은 남편을 위해서 예쁜 아기 낳아줄 때 아내가 예뻐보이고, 30대 후반은 좋은 집에 못산다고 불평하지 않고 잘 참아주는 아내를 볼 때 예뻐보이고, 40대 후반은 \"당신 건강해요. 건강해야 되요\" 하면서 보약 다려줄 때 예뻐보이고, 50대 후반은 \"당신은 참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칭찬해 줄 때 아주 예뻐보이고, 60대 후반은 \'당신과 살아온 생은 참 행복한 삶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싱긋이 웃어줄 때 예뻐보이고, 70대 후반은 조용히 \"우리가 죽거든 양지바른 곳에 함께 묻힙시다.\" 하면서 주름잡힌 얼굴로 쳐다볼 때 아주 예뻐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점이 있었는데 남자는 늙어서까지 여자에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남편을 존경해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줄 때 남자들은 아내가 가장 예뻐보인다고 합니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남편을 무시하면 정이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날로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남편을 자꾸 세워주면 어떤 여자도 포근한 가운데 예뻐보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도 훌륭한 가문의 남자였고 부인도 명문대학을 나온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남편은 그 부인에게서 포근함도 느끼지 못하고 항상 지적만 당하면서 기죽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지지리도 못난 여자와 눈이 맞아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이 부인이 목사님에게 상담하기를 \"목사님, 정말로 자존심이 상합니다. 잘난 여자와 도망갔으면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겠습니다. 천하에 못생기고, 배운 것도 없고, 가문도 형편없는 여자와 도망갔으니 너무 창피합니다.\" 할 때 목사님이 \"나라도 도망가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부인이 너무 똑똑하고 완벽해서 남편이 거기 붙어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갔습니다.

남편을 존경한다고 하는 것은 아내가 순종해 준다는 얘기입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를 보면 \'아래에서 받들어 준다, 잘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잘나고 똑똑한 것이 있어도 남편 앞에서만은 감추어야 됩니다. 다른 곳에 가서는 똑똑한 것을 아무리 나타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만은 \'똑\' 소리가 싹 사라지고 \'덕\' 소리만 나야 됩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해서 남편에게서 \'똑\' 소리가 나면 남편이 그때부터 기가 죽습니다. 하늘은 높고 넓어서 땅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땅을 품어야 되는데 하늘이 좁아지면 땅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품어야만 되기 때문에 품을 곳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 목사가 있는데 친구 목사는 외모가 외소하고 부인은 헤비급입니다. 그래서 밤에 잘 때 부인은 쑥 올라오고 남편은 쑥 내려갑니다. 그 친구가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우리 식구는 얼마나 태산처럼 헤비급인지 안을 수가 없어\" 그래요. 그래서 제가 \"자네가 하늘인데 하늘이 안아야지 땅이 안아서야 되겠어 땅이 안으면 거꾸로 되어서 뒤집어지겠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여자는 땅처럼 남편은 하늘처럼 만들어주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의 신비입니다. 혹시 이 가운데 똑똑한 부인 있습니까 너무 똑똑한 척 하지 마십시오. 똑똑한 척은 세상에 나가서 하십시오. 가정에서는 똑 소리를 죽이십시오.

우리는 다윗과 미갈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됩니다. 다윗은 서민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미갈은 사울 왕의 딸로 왕가의 공주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차이가 너무 많습니다. 가문, 교육, 배경, 인생관, 취미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정략적으로 다윗과 미갈을 결혼시켰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에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너무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춤을 추고 기뻐 뛰노느라고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삼하 6장 16절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라고 했습니다.

미갈이 이것을 보고 남편을 업신여겼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출신이 그런 사람이야 왕 이 체통도 없이 벌거벗고 춤을 춰\' 하면서 아니꼬운 눈초리로 멸시하면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집에 들어올 때 멸시하는 투로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 6:20)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정색을 하고 입을 엽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삼하 6:21-22)

이 말이 떨어지면서부터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별거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남남이 되어버린 것이죠. 다윗이 아내 미갈로부터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후로는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별거를 하게 되었고 다윗은 후에 밧세바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 왕가의 비극이 뭡니까? 바로 아내가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데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20년 길러놓은 남자를 다른 남자가 20분만에 망칠 수 있다. 그러므로 남편을 세워주어야 한다.\"

아내에게 순종을 명령하신 것은 남편을 세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것은 자기 존재가 주님을 만난 천사같이 되라는 말입니다.

한문으로 지아비 부(夫)자는 하늘 천(天)에서 조금 솟은 것입니다. 이 말은 남편을 하늘보다 높이 받들라는 말입니다.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면 자기도 하늘처럼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자는 순종함으로 행복합니다. 순종함으로 자기 존재가 올라갑니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왕노릇 하고 싶어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만은 왕으로 만들어주어야 됩니다. 회사에 가서는 멸시 당하고, 무시 당해도 가정에서만은 높은 자리에 세워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므로 연합하라고 말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

자기를 희생한다는 말은 자기 이기심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살면서 날마다 자기를 별세시켜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란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을 때 여자가 잘못했을지라도 남자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머리됨의 원리입니다. \"그래도 내가 남자인데...\" 하면서 목에 힘주고 있으면 머리됨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교인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는데 우리 식구와 무슨 얘기를 하다가 제 자존심에 상처가 와서 마구 화를 냈습니다. 원래 제가 제 집 식구를 사랑하다가 존경하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한신교회를 개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제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저를 설득해서 개척하자고 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위대하고 또 나를 복되게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서 존경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으로 존경스럽게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추켜 세워주어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게 우쭐거리면서 매사에 집에서도 무슨 얘기가 나오면 잘못한 것은 다 나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어떤 때는 속이 아려도 너무 존경해서 제가 참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기도원에 가면서 무슨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안했는데 잘못을 돌려요. 그래서 제가 화를 냈더니 운전하는데 마구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논두렁 길을 가는데 사고 나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자존심이 있지 잘못했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그래도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세우라고 하고는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여종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이 종을 용서하소서. 제가 오래 참지 못하고 화낸 것을 용서하여 주소서.\" 먼저 기도를 하고 나니까 잘못했다고 말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여보, 내가 잘못했소\"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자동차가 제대로 가요.

그렇게 하고 기도원에 가서 설교를 하니까 설교가 잘되요. 아내는 연약한 그릇인데 괴롭혀놓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내가 어떻게 설교하겠습니까

제가 그때 느낀 것은 남자는 자존심상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잘못한 것 없이 자기가 잘못했다고 죽지 않습니까 잘못은 다 우리들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내가 잘못했다.\" 그럽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을 보면서 격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남편이 옆에서 참고 들어주면서 같이 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정생활은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사는 것입니다.

미국의 컬럼비아 바이블 컬러지 학장이었던 맥컬리킨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의 부인이 침해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곁에 있으면 안정감을 가지고 편안히 있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불안해서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학장직을 여러해 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장직을 사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나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다. 42년전 결혼서약을 할 때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아내를 돌볼 것을 이미 약속한 것이기에 나는 그 서약을 지키고 싶다. 내 아내가 40년동안 나를 돌보아 주었기에 이제는 내가 그 사람의 빚을 갚기 위해 아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사랑과 기쁨 때문에 나는 그의 곁으로 간다.\"

그가 학장직을 사임하고 이 선언을 하면서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학장으로 있을 때보다 더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학장직을 몇 년동안 수행하는 것보다 자기 아내의 침해를 곁에서 돕기 위해서 가정으로 돌아간 위대함이 전 세계 남편들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만남이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신비를 몸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될 때 남편은 예수님처럼 위대하게 되며 아내는 예수와 함께 사는 위대한 천사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사도 바울이 결혼을 말하다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게 된 것은 부부의 연합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목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며, 가정생활은 천국 생활을 연습하는 것이 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종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천국가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가는 문턱까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땅에서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들어가서는 아들도, 종도 없고 신부만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날 때 주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며, 주님의 영화로운 인격이 내 인격이며, 주님의 찬란한 빛이 내 빛이 되어 일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되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듯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를 머리와 몸으로 비유한 것은 나눌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몸은 생명의 관계입니다. 신랑이 머리요, 신부가 몸이 되는 것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나, 어떤 위험이라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해 준 것입니다. 부부의 연합은 참으로 천국을 이루는 신비이며, 이것은 행복을 얻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신랑으로 모실 때 내가 그 품속에서 안식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종을 거느리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삼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신부를 만날 때만 하나님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므로 하나님도 행복하게 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종노릇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이 외롭습니다. 내가 아들 노릇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이 외롭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전부로 삼고 하나님이 나의 신랑이 될 때 하나님은 행복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행복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내가 행복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게 되면 주님이 나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오 주님이시여, 나를 신부 삼아 행복하소서.\" 이것이 바로 신앙의 극치입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신비의 경지에 이르러서 천국을 끌어 땅으로 안고 땅의 삶이 천국으로 이어가는 위대한 신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좋은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본문 : 엡-6-1-4                                      
   이 세상에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 안계신  분은 있을지라도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 없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존경하라”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똑같은 도덕권으로 부모 공경을 꼽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식은 항상 부모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섬기듯 부모를 섬겨야할 것입니다.

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약속으로 주신 계명 가운데 첫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일까요?
1.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우리는 부모에게 두 가지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출생의 빚입니다. 출생의 빚이란, 생명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나 부모를 통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에게 빚을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또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자신은 헐벗고 자식은 입히고, 자신은 굶어서라도 자식을 먹이는 것이 부모입니다. 우리가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2.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감사는 순종을 낳습니다. 순종 없는 감사는 어떻게 보면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식 이삭을 얻었으며 그런 이삭은 자신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부모에게도 순종해야할 것입니다.
3.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입술만으로 감사하고 마음만으로 순종하는 것은 제대로 된 공경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섬겨야 비로소 공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부모가 우리를 어떻게 대했든지 관계 없이 부모를 외롭게 하지 않고, 기쁘고 즐겁게 해드려야할 것입니다.

Ⅱ. 공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자식이 된 도리로서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삼중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직분, 선지자의 직분, 왕의 직분, 이 세가지를 잘 감당하는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 될것입니다. 제사장은 예배를 인도합니다. 부모 역시 가정 안에서 예배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분 앞에서 회개할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할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앞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부모로서의 선지자의 삶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왕은 다스립니다. 자녀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한 가정 안의 왕으로서 책임을 다해 자녀를 인도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Ⅲ. 좋은 부모는 물려줄 유산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남들보다 앞설 수 있도록 많은 유산을 남겨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산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형과 무형의 두 가지 자산이 모두 필요한데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신앙의 유산입니다. 신앙의 유산, 즉 믿음의 유산은 곤경에 처할수록 빛을 발합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자녀에게 애정을 쏟는 동시에 신앙도 함께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모두 좋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우리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신앙을 물려주시는 부모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또한 좋은 부모,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                                                                                          제목 : 좋은 관계                                       본문 :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은 참 좋은 날 입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또 한자리에서, 그리고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이 가정 입니다.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렸습니다.  서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형제애도 멀어져 버렸고, 부모에게도 마음이 멀어진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처럼 이렇게 함께 모여서,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니까 어떻습니까. 오늘은 다른것 생각하지 말고 가정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히 부모만을 생각해 보고, 자녀들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어떤 관계 입니까.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관계, 더 좋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은 다음의 몇가지를 꼭 생각해 보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부모는 나의 생명의 전수자다\" 하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생각이 이쯤되면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참 고마운 분 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만도 축복이고, 행복이고, 기쁨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이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없어봐야 부모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이름이 아버지고, 어머니라는 이름 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정답고 소중한 이름 입니까.

  연산군은 어머니 없이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어린 연산이 하루는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 성종이 어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무엇을 보고 놀았으냐\"  그 때 어린 연산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 가면서 엄마 하고 부르며 따라가는 그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웠습니다\",  그 말에 성종은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관계 입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 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첫째 가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마땅히 공경 받아야 할 대상 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 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함을 율법에 못을 박아 놓으신 것이며 그것이 이 세상에소 복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밝히 말씀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거이 가장 기본적이 도리이며 축복의 삶입니다.

 

  두번째는 \"자식은 상급\" 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아무리 존귀한 존재라고 해도 혼자서는 존귀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식은 \"상급\" 이라고 했고 \"열매\" 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분명 상급 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힘이고, 열매 입니다.  자식이 있어야 어딘지 모르게 힘이 있고, 든든하고,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모두 힘이 들어도 자식을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부모님들이 자식을 자랑하는 것을 들어 보십시요.  옛날에는 여편네 자랑을 왼병신이라고 했고 자식 자랑은 반병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생각해서 여편네 자랑은 왼병신일런지 모르지만 자식 자랑은 병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견하게 여기고,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그게 부모의 솔직한 마음 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아내는 남의 아내가 예뻐 보이고 자식은 자기 자식이 최고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하결같은 마음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자식을 귀여워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그만큼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이 두 관계는 좋은 관계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이 관계가 수난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외면 합니다. 어떤 자식들은 부모를 버리기 까지 합니다.  또 어떤 부모는 자식을 버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아주 슬픈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관계인데 이렇게 까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관계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관계 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두가지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식은 부모 공경으로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값이 주어지고  권위가 생기는 것은 부모를 알고, 부모를 공경할줄 아는데서 발생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을 했고, 잘 살고, 출세를 했다고 해도 이것이 잘 않되어 있으면 그것은 출세도 아니고, 성공도 아닙니다. 사람은 이 관계가 잘 되어야 떳떳하고 그 권위를 인정 받게 됩니다.

  여러분, 김대통령을 보십시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그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만큼은 이름난 분 입니다. 그분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다른 것

다 잘하고 이것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분이 복을 받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분을 좋아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권위 입니다.

  자녀들은 이것을 잘 해야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잘 않되면 아무리 오늘 잘 살아도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오늘만 날 입니까.  먼 훗날 까지 내다 보면 불효자는 복을 받지 못 합니다. 오늘에 심지 않은 사람은 내일에 가서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의 질서 속에 제시된 대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 하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의 질서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이기 때문 입니다.

  부모, 이것이 보통 단어 입니까.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경쟁세상에 나가서 노심초사 하시는 아버지, 또 아이 다섯을 낳고 여섯을 낳은 어머니, 그것도 부족해서 여덟을 낳고 열을 낳은 어머니, 열번째 낳은 아이는 젓을 먹일 때 등에서 내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 쯤에는 어머니의 젓이 사정 없이 늘어져서 등에 엎힌 아이에게 직접 입에 물려줘도 충분할 만큼 늘어져 있습니다. 그 말은 몸이 몹시도 망가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속이 모두 비어 있다는 말 입니다. 알맹이는 모두 빼 내 주고 자신은 빈껍데기만 가지고 사신다는 말 입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에게 이같은 본재입니다. 그래서 잠언 23:22절을 보면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잠23:22)고 했습니다. 또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고마우신 부모님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부모는 삶으로 권위를 지켜야 합니다.

 

  효가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 효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않됩니다. 옛날에는 자식들에게 명령만 하면 들어 먹혔는데 오늘은 그게 잘 않됩니다. 오늘은 민주화 시대가 되다 보니까 대통령의 권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명령해서 될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들도 오늘 권위를 지키려면 다음의 몇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먼저 이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자꾸만 고부간에, 자식간에 불화가 잦은 것은 부모님들이 이 시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의 문턱에 와 있는 시대 입니다. 옛날 시집살이 하던 그 때를 생각하고 자꾸만 고집 피우지 마십시요.  그것은 지혜스럽지 못한 행동 입니다. 아들이나 며느리는 이 시대에서 교육을 받았고,이 시대의 물을 마시고 큰 사람들 입니다. 내 마음에 들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 노년에 이르게 되면 분별력이 상실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노년에 이르게 되면 쉽게 노여워 하고, 서운해 하고, 자기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고집만 늘어나고, 이해력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들에게 쓸데 없이 서운한 마음만  많아 지게 됩니다. 그래서 불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시대의 고정관념을 빨리 이 시대에 맞게 고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 하고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고, 또 서운한 것을 극복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아들 딸이 살고 있는 미국엘 갔습니다. 결혼해서 살고 있

는 아들 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며느리가 밥상을 가져오더니 시어머니 하고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앉아 있고 아들은 밥상 옆에서 아이 우유병을 들고 앉아서 젓을 먹이고 앉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기가 막힙니다. 이 자식을 어떻게 키워서 미국에 보냈는데 오늘 와 보니까 이 모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속에서 솟아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데 그것을 참느라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을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마자 기분이 나빠서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 때 밥상이 들어 오는데 딸은 어머니하고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앉아 있고 사위는 밥상 옆에서 아이 젓을 먹이고 앉아 있습니다. 이 장모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얼마나 보기에 흐뭇했던지 전날 기분 나빴던 것 그 저녁에  다 풀었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그런 생각가지고 살면 마음 편안할 날 하루도 없습니다. 그분의 이 시대를 너무나 모르시는 분 입니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 시대, 그 사회를 알면 화낼 일 전혀 없는 일 입니다.

  또 사람이 노년에 이르게 되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 입니다. 말이 많다보면 할 말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말이나 마구 해 댑니다. 눈치도 없습니다.이미 조금 전에 한 말을 또 합니다. 좋은 말이 아니고 푼수 없는 말씀도 자꾸 하십니다. 그것이 노년의 현상입니다. 사람이 노년이 되면 이렇게 말씀이 많아 집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떤 노인학자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연구를 했는데 이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사람이 노인이 되면 몸에 있는 모든 힘이 모두 입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노인은 무릎에도, 허리에도, 가슴에도 힘이 없어지고 입만 힘이 있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이 많다는 것은 아직 힘이 있다는 증거 입니다.

   젊은이들은 바로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말씀이라도 많아야지  그것 조차도 없어지면 그것은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말씀이 너무 많으셔\" 그것은 좋은 징조 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힘이 있으시다 그 말 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합시다. 그것은 가실 때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곧 돌아 가십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젊은 며느리들이 유념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으로 하여금 이웃에 죽이 잘 맞는 할머니가 계시거든 두 며느리 끼리 짜고 두 노인을 자주 만나게 해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많이 하게 해 드리십시요. 그러면 건강을 오래 유지해서 오래 사실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이라도 많은 부모님이라도 계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허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나이가 들고, 늙어 갈수록 분별력을 잃지 말고 권위를 지켜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가족들이 자꾸만 분산되고, 집안에 자꾸만 갈등이 생기는 것은 부모 책임 입니다. 부모가 권위를 잃어서 구심점이 상실되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늙습니다. 노인을 무시하면 않됩니다. 노인은 힘이 없고, 능력도 없고, 분별력도 없기 때문에 업신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의 그 움푹 패인 주름살을 깊이 들여다 보십시요. 그 속에 지혜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경륜과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힘도있고 패기도 있어 좋긴 하지만 이같은 지혜와 경륜과 역사가 부족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하고 경솔한 행동을 하고 그럽니다.

 다만 오늘을 사시는 노부모님들은 노년의 삶에 권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다 큰 자식에게는 부모도 예의가 있어야 하고, 체통을 지켜야 하고, 권위를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앙드레 지드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아름답게 죽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노년의 삶을 더 세련되게, 경건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유산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집을 물려 주는 것만 유산이라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노년의 삶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볼 때 \"나도 아버지 처럼은 돼야지\" 생각하게 하는  이것 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습니다.  며느리가 볼 때 \"나도 어머니의 신앙 반만이라도 따라 가야지\" 이 보다 더 큰 권위는 없습니다. 이것이 유산 중에서 가장 좋은  유산인 것입니다.

  여러분, 참 인생의 깊이나 무게는 노년에 가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값을 잃은 노년의 삶은 젊어서 아무리 화려했고, 성공했고, 빛이 났어도 초라한 법 입니다. 그렇지만 젊어서 한때  방탕을 했던 사람도 노년에 가서 성숙한 인생을 살게 되면 젊었을 때의 방탕도 미담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권위 있는 인생 입니다.  그런 부모는 젊은 자식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탁해졌어도 그런 부모는 무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삶은 경건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해서 부모와 자녀들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습니다.  부모는 공경의 대상 입니다.  부모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 보다도 우선해서 공경 받아야 할 존재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분부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힘주어 강조하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권위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가정이 산산이 분산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노년의삶이 초라해 집니다. 부끄러워 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강조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적용되는 말씀 입니다. 이 관계는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변치 않는 관계이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                                                                                          제목 : 어버이의 즐거움                                       본문 : 잠-23-19-25                                      

몇 해 전에 신문에 기고되었던 내 용입니다.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아홉살에 그는 열네시간을 기 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부인이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그는 문 밖에서 무려 열네시간을 기 다렸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려서 아 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리고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일곱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 걸 액자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 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을 입학한다고 입 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 는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 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된다하는 얘기입니다. 쉰세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 버지 내의를 하나 사왔을 때, 쓸데 없는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 만은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만져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순한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 음을 짓고있는데, 나는 멀찍이 서서 나이 들었지만은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저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있 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귀한 것 입니다.
유명한 기독교인인 맥아더 장군, 그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제가 이 시간 에 다 소개하지는 않습니다만은
\"A Father\'s Prayer\"
by MacArthur 라 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첫마디가
\"Build me a son\"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 오.\"라고 말이 시작되고 긴 기도문 이 있고 맨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 다.
\"그리하여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 다\' 라고 속삭이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아주 유 명한 이야기입니다. 난 늘 이게 기억 이 됩니다.
\"그리하여 나로 \'한 생 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게 해 주십시오.\"
보람과 의미가 바로 그 자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만이 어쩌면 남는 일이기 때문 에, 그가 세계를 위하여 위대한 일 을 많이 했지만은 그건 그렇고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 고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 입니다.
한국사람은 역시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적 효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 것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다분히 유교적 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 가 젖었으니깐 그 속에서 가지는 생 각입니다만은 소위 한국적 효가 무 엇인가 한번 정리해 보십시다. 한 국사람으로서 우리 문화 속에서 생 각하는 효도, 첫째가 부모님을 장수 하도록 모시는 겁니다. 이유야 어 쨌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자식에 게 있겠습니까만은 부모가 일찍 세 상을 떠나게 되면 그건 자식 탓이 요, 그래서 자식은 죄인이 됩니다. 내가 잘못 모셨고, 내가 속을 썩여 드렸고 내가 어쨌고…… 그래서 장 례식에 가 보면 제일 많이 우는 자 식이 불효자예요. 나 때문에 돌아 가셨다고 가슴을 치는 거예요. 그 래서 그 상복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 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오래 살도록 모셔야 효자지 어쨌든 일찍 돌아가셨다면은 자녀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됩니다. 그것이 바 로 한국사람의 효의 기본개념입니 다.
두번째는 편안하게 모시는 겁니 다. 그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또 거처하는 곳, 평안하게 특별 히 마음을, 마음을 평안하게 모셔야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 들이 이제 자식의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식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하 고 싶지 않은 게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말 세 마디가 있는데, 첫 째가 뭐냐 하면은 어떤 일이든지 아 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발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자꾸 아프 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자녀들이 귀찮을 까봐, 자녀들이 걱정할 까봐 아프다는 말하는 거 그렇게 싫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안 하고 싶은 데 그러세요. 이것이 부모님의 마 음이에요. 자식을 괴롭힐까봐……. 두 번째는 외롭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아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해요. 그러나 사실은 외로워요. 자 식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운 건 외로 운 거죠. 그러나 내가 외롭다고 하 면 저들이 뭔가 어머니를 잘못 모셔 서 외롭다고 하지나 않나, 할까봐 그 말을 하고싶지 않은 거예요. 외 롭지만은 외롭다고 못 하는 게 부모 의 마음이에요. 세 번째는 배고프 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또 어 느 때 좀 궁진해서 뭘 잡숫고 싶어 도 혹시라도 귀찮게 여기지나 않을 까 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세 가지가 하고싶지 않은 말이요 조심스러운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입 니다. 이제 이 분의 마음속에 슬픔 을 드리고, 고통을 드리는 것은 불 효입니다.
또 한국적 효도의 세 번째 개념은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그 래서 대를 이어가는 것이에요. 요 새 세계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비혼 이요, 둘째가 불임입니다. 바로 며 칠 전에는 로마 카톨릭 교황까지도 나서서 제발 자식들 낳으라고 아주 사정을 하드만요. 자꾸 인구가 주 니까요. 바로 이것이 망조입니다. 효도요? 누구든 좌우간 시집, 장가 안 갔으면 불효요. 부모님의 마음 을 아프게 했으니까. 또 갔으면 또 이제 뭐 어찌 못 낳는 거는 할 수가 없을지 몰라도 자식을 안 낳는 거 그거 불효입니다. 그런 줄이나 알 고 사세요. 그런데 이게 문제라고 요. 부모님의 마음은 그저 이유 불 문이야. 자기가 한평생 고생했어도 그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서 아들, 딸 낳고서 그 손자, 손녀를 품에 안 겨드리는 거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그리고 무슨 공부 많이 해 가지고 큰 일하겠다고 밖으로 나도 는 거 부모님의 마음 반갑지 않아 요. 효도는 시집가야되요. 그리고 가서 자식을 낳아 이게 효도라는 거, 이게 한국적 효입니다. 또 하나 는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거 지요. 그래 옛날에는 과거를 보는 일이 있었지요. 가서 과거에 급제 하면 효자요, 허구헌 날 낙방하면 불효자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도 안 돼. 가문의 명예를 높여야지 요. 그래서 오늘도 자식들이 공부 를 잘하고 하면은 그 아버지 어머니 는 그거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실례 가 안 될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우 리 아들이 공부……. 어디 가서 뭘……\", 그러지 않습니까? 이게 효도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아들 이요 삼수했는데 두고 봐야 알겠어 요.\"
이거는 불효라고요 이렇게 되 면은 그러니까 가문은 명예는 높여 드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효도입니 다. 이렇게 네 가지 개념으로 집약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부모님 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해 드려라.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님의 길을 즐 거워하라. 기쁘게 해 드리라고 말 합니다. 역시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이 효도일 것입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 날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 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 니다. 개성에 거우동을 하게 됐는 데 온 방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 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 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 임금의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 도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 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그리고 죽었 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 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 십리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 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 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이렇게 해 드렸어요.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 머니를 업고있던 그 사람 좀 불러들 여라.\"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나서
\"너는 효자다.\"
그래서 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 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또 불러서 상을
\"금 백냥을 주라\"
그랬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 님이여,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효도 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 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 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 습니다.\"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
그랬어요.
\"흉내 내었더라도 좋은 거니 줘라\"
결국 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 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괜찮은 이 야기이지요.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 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고요. 존재의 가치를. 그의 지혜, 그의 경 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 리 속에 그 많은 잔소리 속에 중요 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겁니 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 다. 측은히 여기던가 불쌍히 여기 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겁니다. 존경이 없는 사 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귀찮게 여겨도 안됩니다. 일 본 동경에서 모였던 국제 심포지움 에서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거 동이 어렵게 된 부모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학 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옵니다.
\"양로원 에 보내야 됩니다.\"
그게 일본이 24%, 영국이 25%, 미국이 19%, 중 국이 9%, 한국은 0.4%. 한국, 소망 이 있습니다. 거동하기 어려운 부 모는 양로원으로 보내라. 이게 일반 적으로 25%입니다만은 한국만은 아 직도 0.4%. 그래도 한국은 아직도 효에 관한 한 모범 국가입니다. 그 래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 는 오래 살겠다고 보약을 먹고 운동 을 하고 발광을 합니다만은 그러나 여러분 잊지마세요. 성경은 오래 사는 비결 오직 딱 하나 가르쳐 줬 어요. 그것은 효도하라 그랬어요. 부모 박대하면서 오래 살길 바라지 마세요. 그건 비성서적이요. 사업 에 성공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나? 부모님 마음 슬프게 하면서 사업 잘 되리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40년 목회 하면서 수없이 보아왔습 니다. 오래 사는 집, 거기에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아주 성공 한 사람은 비록 잘못도 많지만은 그 분은 효자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여러분 불효하면서 잘 되고, 불효하 면서 건강하고, 불효하면서 오래 살 고…… 기대하지 마세요. 효가 장 수와 형통에 철저한 비결이에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제가 뉴욕 에 갔을 때에 제가 잘 아는 친구 분 이 계세요. 거기에 한번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제가 이 서 울에 있을 때에 그 분, 그 어머니를 가까이 지났거든요. 잘 아는 터이 라서 가자마자 어머니 어디계시냐고 그러니까 아 저 골방에 계신데 뵙지 말라고, 냄새나고 그런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이야기하고 있 는 동안에 어머니가 자꾸 보고싶어 서 문을 열어요. 문을 여니까 또, 가서
\"어머니 가만히 계세요.\"
문을 꽝 닫잖아요. 그걸 내가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웬만하면 내가 분위기를 위해서 그 냥 있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를 뵜더 니요, 그 어머니가요 얼마나 슬피 우는지요. 내가 곽목사님 온다는 말을 듣고 뵙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나를 못 만나게 했다고…… 그러면 서 우는 어머니를 보았어요. 여러 분 이렇게 업신여겨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할 작정이 요. 구제 대상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높이 존경하고 그 지혜와 경험과 그 거룩한 본을 우리 가 존중해야되요. 어느 사람은 논 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스 라엘 나라가 강한 이유? 오직 하 나,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이 요. 그리고 전승을 중요하게 여겨 무슨 말하다가도
\"이거는 조상 적부 터 내려오는 전승이요, Tradition\"
하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 에 강하고 그러기 때문에 지혜롭다 는 것이에요.
또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 니다. 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이 되 야 하는 거예요. 의롭게 살아야 됩 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높은 도덕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이 잔소리가 많고 그들이 간섭 이 많은 이유도 사실은 다 그 깊은 곳에 심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나 는 선하지 못했다 그러나 너는 선하 라. 나는 공부를 열심히 못했다 너 만은 좀 열심히 해다오.\"
보상적 심 리가 있어요. 또 나는 의롭지 못했 다 그러나 너는 의로워야 한다는 거 예요.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은 언 제나 선한 것이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많고 조 금은 지나칠 때도 있어요. 말씀은 다 안하고 있지만은 그런 후회가 많 아요. 과거의 후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랬다만은 너는 제발 이래다 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요. 그 런고로 효의 지름길은 내가 의롭게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보상해 드려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야 한 다고 성경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오늘 20절로부터 보면 은
\"술을 즐기는 자와 사귀지 마라. 게으른 자와 사귀지 말라. 단정히 행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그리 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듣는 지혜를 가져야 되요. 청종하는 지 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를 잘 믿는 것, 그리 스도인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효 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소원은 우리가 오래 사는 것이에요. 그런 고로 신앙생활 잘해서 영생의 기업 을 얻으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 드 리는 거예요. 우리가 지혜롭게 살 아서 모든 일에 실수없이 행하면 부 모님께 직접적으로 효도하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오늘 성경이 증거하 시는 것은
\"내 길을 즐거워하라.\"
그럽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 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 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 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 다고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은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 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 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뭐 그따위로 살았느냐고 말하지 말고요. 훌륭하게 살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듣고싶은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 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 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 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 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 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 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 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 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 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 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 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 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아 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 습니다. 내가 어깨 넘어로 배운바 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 다.\"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 니다.\"
떳떳하게 자랑을 합니다. 이것이 효도라는 거예요.
\"내 아버 지는 머슴이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머슴이요, 나는 그 아들입니다.\"
자 랑할 수 있어야 되요. 아버지의 직 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 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 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 시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 나 거 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 하려 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효도 예요.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돼는 거예요. 그걸 자랑하게 만 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 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여러분 효가 복 그 자체입니다. 효가 있는 가정이 복됩니다. 효가 복의 근본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효도하세요. 그리 고 내버려둬도 자녀들은 저절로 훌 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 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마세요. 그런 일 은 없어요. 그런고로 부모님을 즐 겁게 합시다. 효는 문화의 유산이 아닙니다.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건 성경적 진 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                                                                                          제목 : 효자 축복                                       본문 : 잠-23-22-25                                      
잠 23:22-25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을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고
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 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
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
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어버이날은 우리를 위해 피
와 땀과 눈물을 흘리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어버이날
뿐 아니라, 매일매일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순복음인천교회에서는 효를 실천
하기 위해 2000년 1월 1일부터 “믿는 자천국, 효자 축복”이라고 외쳐왔습니
다. “믿는 자 천국, 효자 축복”은 단순한 구호나 인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자, 성경적 효의 약속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적 효는 한국적 효나, 유교적 효, 불교적 효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효라고 하면 유교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효의 원조는 성경
입니다. 하나님은 공자가 태어나기 약 1천 년 전에 모세에게 ꡔ네 부모를 공경
하라ꡕ(출 20:1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하
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성경적 효입니다.하나님 아버지는 성경적
효를 실천하는 효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경적 효자에게 내리시는 복을 알아봄으로, 성경
적 효자가 받는 복을 받고 그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신앙의 복


신앙의 복은 성경적 효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아무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게 해주시지 않으면 우
리는 교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요 6:65). 신앙의 복을 받은 성경적 효자만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부를 수 있습니다. ꡔ너희가 아들
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
게 하셨느니라ꡕ(갈 4:6). 또한 누구에게나 성경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들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적 효자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수 있
습니다(마 13:15-16). 뿐만 아니라, 성경적 효자는 성령에 순종함으로 말씀실
천의 복도 누립니다. 예수님은 ꡔ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ꡕ(눅11:28)
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라면, 행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성경적 효자가 누리는 더 큰 축복은 신앙의 복이 자손들에게 전수되는 것입니
다. 예수 안에서 모든 저주는 끊어지고, 신앙의 복은 전수됩니다(딤후 1:5).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와 내 자녀의 하
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경적 효가정을 이루어 신앙전수의 축복을
누리며 삽시다. ꡔ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
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ꡕ(시 128:5-6).


둘째, 형통의 복


만사형통은 인간관계의 형통에서 시작됩니다. 나와 너, 부모와 자녀, 형제와
형제, 이웃과 이웃, 성도와 성도간에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
장 근본이 되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부모에게 효하
는 사람은 어디에서든지 형통합니다. 성경은 ꡔ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
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ꡕ(엡 6:2-3)리라고 약속
합니다. 이삭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거부가 된 것은 효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삭
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함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ꡔ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
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
부가 되어ꡕ(창 26:12-13). 이처럼 효를 행하면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
와 민족도 형통하게 됩니다. 에스더가 자신을 키워준 삼촌 모르드개의 말에 순
종했을 때, 위기에 빠진 유대민족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에 2:7; 4:14; 9:1-
5).


셋째, 장수의 복


효자는 장수의 복을 누립니다. 성경은 ꡔ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
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ꡕ(출 20:12)고 약속하십니
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오래 산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건강하고, 풍요로우며, 행복하
게 장수할 수 있도록 축복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
는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ꡔ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
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ꡕ(마 15:4). 그
러므로 우리 가정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불효를 눈감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불효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입니다.
ꡔ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내가 너의 중에 악을 제
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ꡕ(신 21:21).우리는 불효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 효를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하
루 속히 효도법을 제정하고, 효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효자가 되
고, 우리의 가정이 효가정이 되며, 우리의 마을이 효마을이 되고, 우리의 도시
가 효도시가 되며, 우리의 국가가 효국가가 될 때, 아동학대와 홀몸노인과 청
소년 문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넷째, 자손의 복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효자 집에서 효자가 나
옵니다. 효부 롯의 가문에서 효자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효자이신 스승 예수님
을 본받아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자녀가
효자로 크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레갑 족속이 하나님께 복 받은 것
은 순종의 효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농사를
짓지 말며, 포도원을 재배하지 말고, 천막생활을 하라”는 선조 요나답의 명령
을 300여 년 동안 기억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ꡔ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
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ꡕ(렘
35:18-19)고 축복하셨습니다.

반면에, 효가 없는 부와 권세와 지식은 자녀를 망치고, 부모까지 실패자로 만
듭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부와 권세와 지식은 있었지만 효가 없었기
때문에 불량자가 되었습니다(삼상 2:12).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저지
른 죄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엘리 제
사장까지 죽게 했습니다(삼상 4:10-18).
자손 천대까지 자녀들이 복 받기 원한다면 효의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효가
있는 가정은 자녀 때문에 “크게” 즐겁고 행복합니다. ꡔ의인의 아비는 크
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ꡕ(잠 23:24-25).
 
효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을 존귀하게 대
해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ꡔ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
히 여기지 말지니라ꡕ(잠 23:22)고 명령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삼으신 효를 행합시다. 우리가 효를 행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학
교교육이 잘 되며,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살며, 나라가 삽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믿는 자 천국, 효자 축복”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님처럼 하나님께 효자, 부모님께 효자 되어서 신앙천대, 자손천대, 축복천대
의 복을 누리게 해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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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아름다운 관계                                       본문 : 잠-23-24-25                                      

잠 23:24-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오늘은 부모님 주일입니다. 그리고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 이 세상에서 이 어버이 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이나 형제 그리고 친구와 친척 도 다 좋은 관계이지만 이 어버이와의 관계와는 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내 몸으로 낳은 자식입니다. 그리고 나를 낳으신 부모입니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좋은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는 아니지만 효 그 이상으로 가정과 부모와 자녀의 문제를 다루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모님과 함께 식사나 하고 꽃이나 달아드리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몇 가지 부모님 생각을 깊이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모두 정신적인 것들입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몇 가지 우선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 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녀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님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만큼 자식을 위한 희생과 사랑과 애정을 가진 존재가 없습니다. 부모는 그만큼 내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베풀고 희생하는 모습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입니다. 부모의 인생은 자식이 전부입니다. 자식이 우상입니다. 혹 어떤 부모는 내 인생도 중요하다 하는 이해타산적인 부모도 있기는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이지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 없는 내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에게는 자식 그 이상이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이것이 오늘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제일 먼저 생각하며 행하여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는 “생전에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생존해 있을 때 할 일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님 생존시에는 관심도 없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큰 비석을 세우고 무덤을 근사하게 만들고 울고불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에 왕릉 같은 무덤이나 웅장한 비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불효자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더 큰소리로 웁니다. 그렇게 큰소리로 울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부모님 생전에 즐겁게 해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효의 정신입니다. 그 말은 기회 있을 때 행하고 실천하고 이루라는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기회가 다 지나갔을 때는 이미 의미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 생전에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반드시 부모님의 영혼 구원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내가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나는 일찍이 예수를 알고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 자식도 내 친구도 내가 전도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 부모님은 구원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점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 부모가 구원받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지금쯤 성경말씀대로라면 지옥에 가셨을 것입니다. 그 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까.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면 이 일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보통의 일입니까. 내 부모가 예수를 믿어도 믿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내 부모가 살아생전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은 상태로 하나님으로부터 불려 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을 아십니까. 성경은 이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 여러 번 여러 번 말씀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지옥에 가지 말고 천국에 가라“고 말입니다. 성경이 허튼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현대인들은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면 웃습니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비웃습니다. 속으로 목사가 비이성적인 설교를 하는 줄 압니다. 그리고 현실성 없는 말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경이 할말이 없어서 장난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천국과 지옥도 없는 기독교, 장치 성경이 누차에 걸쳐서 경고한 심판도 없는 기독교를 왜 믿습니까. 수양이나 하고 불안한 마음 위로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습니까. 오늘 현대인들이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 자신감을 잃고 확신도 없이 믿음과 생기를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부모가 그 지옥엘 갑니다.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그곳을 오죽하면 지옥이라 했겠습니까. 상상도 학 싶지 않은 곳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렇다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효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 부모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내 부모님이 세상을 다 사시고 돌아가시면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가시도록 안내하는 영혼구원 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1억 원짜리 황금 수의를 입혀서 두꺼운 관에 넣어 큰 무덤에 묻어 놓으면 무엇 합니까. 그것이 뭐하는 짓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덤은 남의 무덤에 묻혀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도 남의 무덤에 잠시 묻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부활할 것인데 큰 무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원받는 것 그것이 최상의 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최대의 효는 내 부모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를 알게 해서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최대의 효입니다.

네 번째는 “부모님은 가장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내 부모는 싫다고 취소하고 다시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관계입니다. 이웃이나 친구는 싫으면 바꾸고 만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내 부모는 그럴 수 없는 특수 관계입니다. 내가 태어나 보니까 이미 나의 부모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그 관계가 보통 그냥 관계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않고 보지 않고 그냥 지낼 수 있는 관계입니까. 이 부모와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고 너 낳은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관계가 악화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악화되면 모든 것이 불화해집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불화되면 그것은 형벌입니다. 저주입니다. 가장 비참한 삶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을 보면 이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참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불화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부부가 이혼함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부부의 이혼은 참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근래 이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모가 이혼하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집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한을 마음에 안고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성장한 후에도 그 결손적인 요소를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가게 됩니다.
또 가정들이 불화화게 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며느리를 얻으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특히 며느리와 시부모와의 갈등은 전체 가정들이 모두 겪고 있는 아픔입니다. 이 문제는 서양의 가정들도 모두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 며느리의 문제는 갈등을 내포한 채 삶이 시작됩니다. 새 가족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렐만한 기쁨의 일인데도 양가정의 독특한 문화가 극복도지 못하고 시부모라는 고질적인 문화가 극복되지 못해서 자녀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이 갈등이 문제는 시작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좋은 경우와 바쁜 경우를 이렇게 비교해서 그 원인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 듣고 자신의 가정환경과 그리고 지금 처해진 여러분의 처지에서 한번 깊이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시어머니가 미울 경우입니다. 이런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눈에 밉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시어머니들은 잘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빼 놓고 아들과 소곤소곤 상의할 때, 세 며느리 중 한 며느리만 편애하고 사랑할 때, 당신의 구세대적 사고방식만을 막무가내로 고집할 때, 용돈을 주고 보약을 해 드리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을 때, 며느리가 시집살이 때문에 살이 빠졌는데도 아들에게만 얼굴에 살이 빠졌다고 할 때, 아들집에 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는 시어머니, 이런 경우가 며느리들이 볼 때 시어머니가 싫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감이 됩니까. 아주 하찮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 관계를 악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들입니다.
다음은 시어머니 눈에 며느리가 미울 때입니다. 이런 때 며느리가 밉습니다. 여러분들 중 며느리들은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빈손으로 왔을 때, 늙은 시어미를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릴 때, 시어머니의 생일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때, 직장 다니는 며느리가 돈 줌 번다고 시어미가 하는 살림을 간섭할 때, 휴가 갈 때 자기들만 갈 때, 직장 다니는 며느리 밥 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그냥 놔둘 때, 며느리가 아들인 남편을 종 부려먹듯 할 때, 이때 시어머니의 눈에서 열불이 난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세 번째는 시어머니가 좋아지는 경우입니다. 며느리들에게도 시어머니가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시어머니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게 “피곤하지 열심히 해라”하고 격려할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앉아서 남편들 흉볼 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장난칠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일을 함께 상의해 줄 때, 며느리 생일날 조금이라도 용돈을 줄 때, 아이 키우느라고 수고한다 하면서 우유 값을 주실 때 등입니다. 이런 경우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고마움과 친근감을 느끼며 마음으로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닙니다. 며느리들은 격려와 칭찬이면 다 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시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아량도 없고 조그만 용돈 줄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서로 마음 불편하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며느리가 예쁘게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예쁘게 보입니다. 며느리들은 생각을 깊이 하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를 어른으로 인정해 줄 때,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그 짐을 받아줄 때, 시어미를 엄마같이 대해 줄때, 때때로 “어머님 고맙습니다”하고 카드를 보내줄 때, 시어머니에게 검소한 며느리, 둘이 잘 살아가는 며느리 등입니다. 이상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우선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힘들 것도 없습니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됩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서로 열리지 않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좋은 관계가 평생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부모나 자식이나 한 가지를 꼭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식의 입장입니다.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이 맺어준 특수한 관계라는 것과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이 결국 내가 복을 받고 살아가는 가장 큰 비결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점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의 젊은 부부들은 이 점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만 살면 행복한 줄 알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살면 결국 내가 늙었을 때는 내 아이들도 나에게 그렇게 합니다. 심은 그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옛날에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늙은 어머니를 밥만 축낸다고 산속에 버리려고 지게에 지고 갔습니다. 산속에 어머니를 버리고 집에 돌아오니까 아이가 “할머니 어디다 두고 왔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산에 버리고 왔다”고 하니까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지게 잘 보관하세요” “왜 그러느냐” “잘 보관해야 나도 그 지게로 이 다음 아버지 늙으면 갔다 버릴 것 아닙니까”하고 말하더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무 소리 못하고 다시 가서 어머니를 모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은 강조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고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래야 내가 또 자식으로부터 그런 즐거움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입장입니다.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도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시어머니들에게는 이 생각이 부족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며느리가 아니고 딸입니다. 내 자식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며느리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식구들 끼리 이야기 하다가도 며느리가 들어오면 말을 그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여러 동서들 앞에서 한 며느리 흉을 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쓸데없는 고집을 피웁니다. 며느리가 해 주는 일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아들하고만 속닥속닥합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상의하는데 며느리를 소외시킵니다. 시부모가 그렇게 처신하면 오늘 며느리들은 모두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런 모습을 그냥 소화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가 한번 두 번 쌓이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치유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버립니다. 모든 문제는 상대적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들은 부모에게 즐겁게 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관계의 조화는 피차가 노력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피차가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무엇이 더 소중한 일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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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장 25절


여러분,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할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면 내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기쁘시게 할까?” 하는 이 두 가지 마음 중에 어느 쪽이 더 무겁습니까? 아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자식들의 사랑과 효심은 점점 식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고려장 하듯이 비록 산속에는 갖다 버리지 않으나, 제주도나 해외에 여행 갔다가 부모를 버리고 오거나 양로원이나 기도원에 갖다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피주 공고 교장이신 이영순 목사님의 글 가운데 고인이 되신 한영선 목사님의 “늙은이는 서럽다네” 하는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늙으면 섧다네. 눈 어두워 그렇지. 돋보기 안경 쓰고 확대경 손에 드나 그래도 안보여 두 번, 세 번 살핀다네. 늙으면 섧다네. 귀먹어 그렇지. 남의 소리 반타작. 묻기 뭣해 지나고, 재빠른 전화 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다네. 늙으면 섧다네. 무시당해 그렇지. 수에도 치지 않는 젊은이의 풍조로다. 무언가 저들끼리만 쑥덕쑥덕 하누나. 늙으면 섧다네. 짝 잃으니 그렇지. 백년해로 약속 어겨 어느 한 쪽 먼저 가니 남은 쪽 외로움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늙으면 섧다네. 병들어 그렇지. 내 몸은 내 몸이나 내 맘대로 못하니 옆에서 돌보지 않으니 꼼짝못해 답답하지.”
  이런 넋두리가 몇 년 전만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구구절절 가슴에 스며드는 것이 저도 이제는 늙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머지않아 늙음이 찾아옵니다. 늙으신 부모님의 심정 헤아려 어버이를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선량한 직장인이 되고, 선량한 시민이 되고, 좋은 교인이 됩니다. 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부모에게 행한 대로 자기도 받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인륜 관계의 첫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3절에서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고 부모를 멸시하는 사람은 결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는데, 친족이 아니라 자기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더 악한 사람이겠습니까?
  본문 잠언 23장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어버이를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1. 중심에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그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일본 어느 대학에 외아들 대학생이 있었는데 효자로 소문이 난 청년입니다. 한 번은 방학이 되어 집에 가는데 친구 하나가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효도하나 살피러 따라갔는데 실망을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나서는 옷을 훌훌 벗고 목욕을 하는데 연세 많으신 홀어머니에게 자꾸 심부름을 시키더랍니다. “어머니, 비누 좀 갖다 주세요.” 또 조금 있다 “어머니, 수건 좀 주세요.”, “어머니, 냉수 좀 주세요.” 그래서 목욕을 다 한 다음에 “나는 자네가 효자라고 해서 어떻게 행동하나 살펴보러 왔는데 실망했네. 자네가 직접 할 수 있는데 홀어머니를 심부름만 시키는 게 어디 있나?”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물론 내가 내 손으로 갖다 쓸 수 있어. 그렇지만 어머니는 내 요구를 들어주시는 것을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셔.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걸세.” 하는 설명을 듣고 과연 효자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식을 기쁘게 하고 자식을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의 3분의 1만 생각한다면 아마도 다 효자, 효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되겠지요.
  가렵기는 왼쪽 다리가 가려운데 긁기는 오른 쪽 다리를 자꾸 긁어주듯이, 부모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참된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에 저희 모친께서 살아 계실 때 큰 아들네 집에서도 모시려고 하고 둘째 며느리를 좋아하니까 저희집에 계시라고도 하는데 싫다고 하시면서 4형제 아들네 중심되는 거리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사달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저희 형제들이 집 가진 형제가 없지만 돈을 모아서 10여 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제일 고생하는 막내딸 이름으로 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했는지 그 딸이 그 집을 다 날려버렸는데 또 하나 사달라고 하셔서 돈을 모아 사 드렸더니 역시 그 딸의 이름으로 등기해 주고 몇 해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동생 하는 짓은 밉지만 어머님이 기뻐하신 것을 보며 저희들은 만족했습니다.
  형식으로 겉치레 효도보다 중심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참 효도라고 봅니다. 부모에게 무관심했던 죄를 회개해야 될 줄 압니다.

  2. 공경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무시하는 태도나 멸시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불효막심한 자식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부모를 구타하고 부모를 죽이는 자식까지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려면 어른을 공경하고(honer) 경외하는(fear)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마땅히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많고 경험이 많은 분이니까 공경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했습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나이 많으신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내 육신을 낳고 키운 부모님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가르쳐준 스승도 또 다른 부모와 같은 분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선생님을 사부(師父)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욱 중요한 우리 영혼의 지도자이신 주의 종, 영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목사나 영적 지도자를공경해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神父)라고 하는데 “Father”, 즉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교황”을 “Pope”라고 하는데 “아버지”, “파파(Papa)”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선 교인이 영세만 받으면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이 반말을 합니다.
  자식들한테 존경을 받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남에게 존경받는 것보다 더 흐뭇하고 기쁜 일입니다. 재작년에 제 여섯 살짜리 손녀가 주일 오후에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귀에다 대고 “할아버지, 참 훌륭해 보여요.” 하고 웃지도 않고 말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지금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또 제 막내아들 정민 전도사가 주일 밤 예배를 다 마치고 밤늦게 와서는 제 손을 꽉 잡고 머리를 숙이고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렇게 힘든 목회를 어떻게 40년이나 했습니까?” 하는데 못들은 척 하면서도 자식들한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흐뭇한지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또 사위 목사들이 주일 설교 끝나면 머리를 숙이면서 “정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외국 사람 설교, 한국 사람 설교 다 들어봐도 역시 아버님의 설교가 깊이 가슴에 와 닿곤 합니다.” 하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 공부 좀 했다고 건방지게 비판할 수도 있을 텐데 진심으로 인사할 때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아내도 언제나 고개 숙여 은혜 받았다고 인사하면서 설교 대지까지 외우곤 합니다. 한집에 사는 남편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존경을 표시할 때 정말 피로가 다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인정받아 그와 그의 가족들까지 방주를 타고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비판하고 흉보던 함은 저주를 받았지만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조급히 생각하여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랄 땅에 이사해 갔을 때 그의 아내 사라가 너무 미인이라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빼앗으려고 할 때 자기가 죽을까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성군 다윗은 그렇게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지만 부하 장군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였고,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흉계를 꾸며 충성된 우리아 장군을 일선에서 싸우다가 죽게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다 허물과 실수가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공부를 많이 못했어도, 자식을 공부 많이 못시켰어도, 부모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신분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3.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님은 연세가 많을수록 고독함을 잘 느끼고 가까움을 잘 탑니다. 그러므로 자주 대화하면 기뻐하십니다. 전에 보면 딸들이 시집갔다가 친정에 오면 밤을 세워가면서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을 세워가면서도 피곤해 하시지 않고 그 얘기 듣는 것이 좋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대로 자식들이 장관이 되고, 사장이 되고, 목사가 되었어도 부모님한테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전에 제 후배, 정 목사란 분은 30, 40이 되었어도 시골 부모님한테 가면 아버지 팔을 베고 다정하게 어리광 부리며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 앞에서 어른 행세하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도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과 대화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꼐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보잘것없는 죄인일지라도 오래 대화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속사정 다 털어놓고 하나님께 말씀 드리며 의논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사이 너무 바빠서 부모님과 자식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4. 감사와 칭찬을 해드려야 합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은공에 감사를 표시하고 칭찬해 드려야 부모의 마음이 기쁜 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뭐 새삼스럽게 감사하고 칭찬하랴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은덕을 감사하고 부모의 장점을 칭찬해 드리는 것을 부모님은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저는 사춘기 때 웃기는 얘기를 잘하고 가족의 폭소를 터뜨릴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가족을 웃기기 위해서 아버님의 단점을 들어 웃기는 얘기를 했더니 처음에는 같이 웃으시더니 두 번째 또 이야기를 했을 때는 안색이 달라지시면서 화를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도 쉬운 말로 하나님을 칭찬해 드리고 기쁘게 해드리고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송영할 때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하고 두 손들고 부르는 것도 주님을 칭찬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노아가 비록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는 실수를 했어도 그것을 들추어내면서 비웃고 흉보던 함은 저주를 받았고 그 허물을 덮어드린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훌륭한 점을 칭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5. 물질로 봉양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신 것같이 역시 어려운 중에라도 매월 얼마씩 형편에 따라서부모께 용돈도 드리고 여유가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파고다 공원에 모인 노인들이나 노인정에 계신 노인들 대부분이 용돈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식들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는 다 후회가 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 체면을 위해서 소를 잡아 제사 드리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생선 하나, 닭 한 마리 잡아 대접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어려우면 또 이해가 되지만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부모 위해 쓰는 것은 어찌 그리 인색한지 모릅니다.
옛날 한풍 곽(郭)씨 가문에 이름난 효자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밖에서 일하다 들어와 보니 연세 많으신 시아버지가 자기 손자 목을 타 누르고 죽이려고 하더랍니다. 며느리가 “아버님, 뭘 하고 계십니까?” 하고 비켜서게 했더니 “내가 닭고기가 먹고싶었는데 마침 닭이 한 마리 들어왔길래 잡아먹으려고 잡고 있던 참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들춰 업고 얼른 암탉을 잡아 삶아드려 잡숫고 있는 중인데 남편이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그 사실을 설명해 드리고 어린 아들을 보니까 이미 숨이 넘어갔더랍니다. 그것은 탓하지 않고 남편이 아내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당신은 하늘이 우리 가문에 내려주신 효부”라고 하니까 그 여자가 “이것은 내가 절 받을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라고 했더랍니다.
가장 큰 효도는 예수님 믿지 않는 부모라면 어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전도를 안 받으면 일주일, 혹은 한 달 금식하면 다 들으실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도하지 않고 있다가 이 다음 부모님이 지옥불에 들어가시면 영원히 고통 가운데서 원망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제목 : 효자 이삭                                       본문 : 창-22-01-10                                      
 창22:1-10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효자 이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효자란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국어대사전이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효자라는 말을 좀 넓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의 효자, 부모님을 잘 섬기는 사람을 부모님의 효자, 이웃을 잘 섬기는 사람을 이웃의 효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천 순복음교회의 최성규 목사님을 가리켜 여러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효자라고 부릅니다. 한국교회를 겸손하고 충실하게 잘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효자 중의 효자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하나님의 효자였고 부모님을 잘 섬기는 부모님의 효자였으며 이웃을 잘 섬기는 이웃의 효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았고 아버지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며 이웃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세 가지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되 자기와 자기 자손이 복을 받고 땅에서 복을 받고 하늘에서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복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효자
 첫째 이삭은 하나님께 효자였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세상에 태어난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의 할아버지였을 때에 어머니 사라가 나이 많은 할머니였을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세상에 태어난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이삭의 효심이 극진했습니다. 살라고 하며 살고 죽으라고 하면 죽을 정도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 앞에서 늘 감사하며 순종하며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웃긴다는 뜻도 되지만 기쁨이란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이삭은 한 평생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웃으면서 기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잡아서 번제물로 드리라고 분부했을 때 이삭은 아무런 불평이나 항의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분부에 순종했습니다. 살라고 하면 살고 죽으라고 하면 죽겠다는 순종과 효도의 자세였습니다. 이삭은 순종의 모델이 되었고 효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절대 순종의 모델이 되었고 절대 효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효도하되 절대 순종의 효도를 했습니다.
 이삭은 또한 신부를 얻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삭이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창24:63). 이삭은 결혼문제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께 효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장 아름답고 신앙이 좋은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주셨습니다.
 이삭은 나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그 축복으로 우물을 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효도했습니다.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창26:25). 이삭을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효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이삭을 또 축복했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26:24).

2 아버지에게 효자
 둘째 이삭은 부모에게 효자였습니다. 이삭은 늙은 몸으로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살았습니다. 일찍 일어나라고 하면 일찍 일어나고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가자고 하면 산에 올라가고 죽으라고 하면 죽을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도를 다했습니다. 창22장에 그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서 일찍 일어나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두려움과 떨림의 마음으로 아들에게 하나님의 분부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단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불평이나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대로 조용히 따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지극한 순종과 효심에 가슴이 미어졌을 것입니다. 이삭은 효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신부를 얻을 때에도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위하여 가나안 족속의 딸이 아닌 고향 족속의 딸을 이삭의 아내로 택하기를 원했습니다. 늙은 종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너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3,4). 이삭은 아버지의 선한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삭은 결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아버지에게 효자였습니다.
 이삭은 나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우물을 팔 때에도 아버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웠을 때 이삭은 제일 먼저 그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불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창26:17,18). 이삭은 태어나서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효자였습니다.

3 이웃에게 효자
 셋째 이삭은 이웃에게 효자였습니다. 특히 이삭의 말년은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효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이 100배의 축복을 받았을 때 이삭은 그 모든 축복을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삭은 이웃을 위해서 우물을 파고 또 파고 또 팠습니다. 이삭은 이웃이 자기가 판 우물을 빼앗으면 대항해서 싸우는 대신 그저 웃으면서 그 우물들을 이웃에게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도 했습니다. 이삭은 이웃을 마시게 하고 이웃을 도와주는데 모든 재산을 다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도리 세 가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효도하며 살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살고 그리고 이웃에게 효도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되 자기와 자기 자손이 복을 받고 땅에서 복을 받고 하늘에서 복을 받는다고 말씀했습니다.

4 효자는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까? 순종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고 위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렸고 이웃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최고의 효도는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과 부모님과 이웃을 기쁘게 해 드리라고 분부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고 분부하십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고 분부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고 고백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히11:5)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효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또한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라고 분부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많이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알아서 해 드리곤 했습니다. 방 청소도 하고 일찍 일어나 이불도 개었고 공부도 잘 했고 심부름도 잘 했고 무엇이든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알아서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아주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여러분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부모의 효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또한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분부합니다. 아내도 기쁘게 하고 이웃도 기쁘게 하라고 분부합니다. \"사람이 새로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신24:5). 어제 새로 아내를 취한 김한경은 아내 조윤정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김한경 군에게 묻습니다. \"새로 취한 아내를 기쁘게 해 주겠습니까?\" 성경은 특히 이웃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분부합니다.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롬15:2)고 분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3)고 분부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저를 기쁘게 해 주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에게 버불 검을 가져 다 준 어린이도 있고 예쁜 꽃을 가져 다 준 사람도 있고 마음의 글들을 써서 보내준 사람들도 있고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어린이 한 명이 저에 방에 들려 선물을 하나 놓고 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제가 선물을 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이웃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이웃의 효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도리 세 가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효도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살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되 자기와 자기 자손이 복을 받고 땅에서 복을 받고 하늘에서 복을 받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효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충만이 받으며 이삭처럼 웃으면서 기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아버지와 아들                                       본문 : 창-22-06-12                                      
창22:6-12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아버지와 아들”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어머니에 대한 설교를 주로 하는데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설교를 하겠습니다. 성경은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1:8). 어머니의 사랑은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하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도 더할 나위 없이 크고 깊습니다. 오늘 아침 두 사람이 나와서 아버지에게 드리는 사랑의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편지들이었습니다. 사랑이 묻어있고 신뢰가 담겨있고 고마움이 차있는 편지들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사랑과 존경과 신뢰와 고마움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값지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첫째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까도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까도 아니었으며, 어떻게 하면 성공해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까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바로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삭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아왔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특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리아 산으로 가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공부보다, 돈 버는 것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바른 제사 드리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이나 죽음도 기쁘게 받아드리려는 각오로 충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가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아들 손양원 목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들 손양원은 믿음의 유산을 아버지 손종일 장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매일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고, 집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렸고,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손양원은 11살 때 칠원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일본인 교장은 매일 일본 왕을 향하여 절하는 동방요배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방요배를 거절했습니다. 어느날 손양원은 동방요배 거부로 교장으로부터 뺨을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이렇게 기도하며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주님, 이 부족한 것의 미천한 아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제 아들을 더 큰 망치로, 더 강한 힘으로 두드려 주십시오.\" 손양원은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 라면 그까짓 학교 안 다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하며 사랑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이나 죽음도 기쁘게 받아드리려는 각오로 충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가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세 아들과 네 손자를 모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한국의 아벨이 되었고 아들 손양원 목사는 나병 환자들과 원수들을 용서하고 사랑한 한국의 프랜시스가 되었습니다. 

 셋째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그의 아들 김명혁 목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는 민족과 교회를 사랑한 애국자요 목회자였습니다. 일제 하에서도 감옥살이를 했고 공산치하에서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늘 설교준비와 심방에 바쁘셨고 그리고 많은 기간동안 감옥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6,7세 때 아버지와 함께 신의주 제2교회의 뜰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기억됩니다. 그 때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교회에서 제가 노래도 잘했고 연설도 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당의 유리창이 몇 개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때 제가 즉시 곱셈과 덧셈을 해서 유리창의 개수를 알아 맞추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주일성수를 철저히 했고 신사참배를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치하에서는 주일날 절대로 학교에 가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물론 벌을 받기도 했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것은 제가 11살 되던 해인 1948년 7월 어느날 평양 시외 사동탄광 감옥 안에서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서울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서울로 가도 좋다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간단한 말 한 마디였지만 그 간단한 말 속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너를 떠나 보내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너만이라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순교의 제물이 될지도 모르지만 너는 내가 다하지 못한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하여라. 아들아 잘 가거라.” 그것이 마지막 만남과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화였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한 제사의 대화였습니다. 그 다음 달인 8월 저는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믿음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의 대화는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대화인지 모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시게 되었고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순교자의 아들로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의 성격과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의 성격은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의 만남도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도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신뢰의 만남, 헌신과 제사의 만남, 존경과 사랑의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신뢰와 헌신과 제사와 존경과 사랑의 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여러분들의 삶이 값지고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그래도 부러운 가정                                       본문 : 창-24-61-67                                      

 

창 24: 61-67

 

  오늘은 창세기 24장 61절에서 67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래도 부러운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복을 주실 때 절대로 100%의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들어가 보면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삭의 가정은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 사실 좋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면 문제가 있었습니다. 쌍둥이 아들 중에 큰 아들 에서가 가나안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가정은 제가 볼 때 참으로 부러운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을 가정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5월만 되면 첫째 주일과 둘째 주일에 어린이 주일 혹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그런데 가정에는 어버이도 있고, 어린이도 있기에 두 주일을 합해서 가정 주일이라 하여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을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5월 첫 주일을 가정 주일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따라 이삭의 가정을 생각하면서 이삭의 가정이 어찌하여 \"그래도 부러운 가정\"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가정 (61-)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결혼을 하면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가정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부부 생활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주는 증상이 하나 있습니다. 의부증 혹은 의처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심만 하는 정신적인 질환입니다. 의부증에 걸린 여자는 자기 남편을 사사건건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전혀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의심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속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며 의처증이 있는 남자는 아내를 얼마나 의심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도 아내가 여자끼리 인사하는 경우에는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데 혹시 남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게 되면 집에 돌아가서 반쯤 죽습니다. \'너 그 남자 좋아하지\'라고 하면서 닥달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자가 버티어 낼 수가 없습니다. 서로 의심을 하고 의심을 받는 일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부부는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런 증세가 깊어지면 부부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서로가 믿어주는 부부가 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예를 들어서 동네 사람들이 저 집 아내가 어떻다고 하면서 별 소리를 다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이야기가 남편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그 때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남편이 \'나는 당신을 믿소\'라고 하면 이야기를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가하면 남편에 대해서 저 집의 남편은 아무와 바람이 났다고 소문이 돌아갈 지라도 아내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내 남편을 믿는다고 하면 그 사건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믿고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렇게 서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를 믿는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와 늙었을 때가 다릅니다. 하루에도 조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감정이 믿기는 믿되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사 성령으로 믿는 믿음이기 까닭에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너를 믿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를 믿는 바탕은 내 감정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듯이 남편을 믿고, 남편은 또 하나님을 믿듯이 아내를 믿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은 참으로 복되고 부러워할 만한 가정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1절을 보면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아내와 함께 떠납니다. 아들이나 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 생활을 잘 하겠노라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애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나이 100살, 그 아내 사라의 나이 90살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127세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만 남았습니다. 며느리를 골라 맞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때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는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고향 땅에 보냅니다. 고향에서 며느리를 골라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종을 보내면서도 아들은 절대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오고 가는 길에 해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아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고 혼자서 주인의 고향에 가서 며느리를 맞이해 오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주인의 고향에 가기까지 순적한 길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계속하면서 주인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길을 가다 보니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동네 밖에 우물이 있는지라 \'하나님 제가 여기에 지켜 서 있다가 아가씨가 물을 길으러 나오는 경우 내게 물을 좀 달라 했을 때 나에게 물을 떠주는 아가씨라면 하나님이 내 주인의 며느리로 택한 줄로 믿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리브가라고 하는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물을 좀 주어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을 떠서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약대들에게 물을 길어다 먹였습니다. 약대가 물을 한 사발 두 사발을 마십니까? 리브가는 시키지 않은 일까지 넉넉하게 하는 여자입니다. 너무도 후덕한 아가씨였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종은 벌써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무 고마운지라 손 목걸이를 끼워주고 코걸이를 달아주면서 \"아가씨의 집에 내가 좀 쉴만한 곳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리브가가 \"그럼은요, 우리 집은 넓고 낙타에게 줄 먹이감도 많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달려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라반이 달려 나와서 그 종을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저녁 대접을 잘 하려고 만반진수를 차려 놓았습니다. 그 때 그 종이 \"내가 한 마디 하고 대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나는 아브라함이 종입니다. 그래서 지금 며느리감을 골라 데리고 오라는 사명을 받고 왔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기도하면서 왔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물가에서 기도했더니 리브가가 기도한대로 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연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두엘과 또 그의 아들 라반이 \"이것은 우리가 가부를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다 짝지어 놓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아가씨에게 한번 물어는 봅시다\"라고 한 다음 리브가를 불렀습니다. 리브가가 남편 될 남자의 얼굴을 한번이나 봤습니까? 음성을 한 번이나 들어봤습니까? 편지 한번을 받아 보았습니까? 전혀 그런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리브가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확답을 했습니다. 종을 따라갔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순전히 믿음으로 따라 갔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자기가 직접 가서 보고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고 종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는 종이 데리고 오는 여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는 것으로 알고 내가 맞이하겠다 하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가정입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렇듯 철저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서 신학을 한 목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목사가 된 사람을 어느 교회에서 모시겠습니까? 그래서 개척할 수밖에 없다 하여 교회를 개척을 하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자기 보다 젊고 겨우 안면이 있는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젊은 목사의 사모가 차를 준비해서 대접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개척교회 목사님이 젊은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참 행복해 보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젊은 목사님이 \"제가 그렇게 행복해 보입니까? 뭐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목사 중에 사모가 없는 목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모가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거의가 재혼하여 사모가 있지 않습니까?\" \"예, 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어린 세 자녀가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자리가 그렇게 큰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 아내의 자리가 너무 컸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살아 계시니 얼마나 복됩니까?\" 그 젊은 목사가 그 다음 주일에 무엇을 했겠습니까? 감사 헌금을 했습니다. 감사 헌금도 봉투에 두둑이 넣어 가지고 드렸습니다. 큰 교회라면 헌금 내역을 다 부를 수가 없지만 그리 큰 교회가 아니기에 그 내역을 다 읽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내역에 \"아내가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저녁 시간에 남자 교인들이 전부 \"아내가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감사헌금을 들고 왔습니다. 아내들도 \"남편이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전부 감사헌금을 들고 왔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옆에 있는 남편이 곁을 떠나면 그 때 비로소 남편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믿고 사랑하는 아내, 정말로 내가 믿고 사랑하는 남편과 믿음으로 맺어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얼마나 복됩니까? 여러분들은 믿는 아내가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남편이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의 가정이 바로 아내와 함께 믿음으로 이루어졌고, 믿음으로 살아온 가정입니다. 정말로 부러운 가정입니다.

 

  둘째, 기도의 가정 (62-63)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나이 30이 될 때까지는 가정 일을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나이 30이 되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 하겠다하여 공생애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광야로 가셔서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서 키워야 되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를 때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셨습니까?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6절을 보면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세우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키우는 일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는 엄청난 일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입니까?

  이상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아무리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앞서 먼저 기도가 우선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를 하시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일을 하시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제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기도는 생활의 일부요,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가정은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요, 부러운 가정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2절에서 63절을 보면 \'때에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들에 나가 묵상을 하다가\'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묵상 기도를 하다가\'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감을 골라 데리고 오는데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고 종을 보냈습니다. 종을 보낸 날로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묵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물가에서 종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이루어 진 가정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20년이 되었는데도 아들도 딸도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애기가 없다면 이처럼 다급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걱정과 근심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부는 \'기도할 문제다\'라고 생각되어 열심히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20년 동안을 내외가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남편 이삭은 그 날부터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내는 혼자서라도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태중에서 쌍둥이가 싸우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 이쯤 되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작은 아들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도를 중단했기 까닭에 하나님의 그런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쉬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기어이 작은 아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그것을 응답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처럼 기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리브가는 계속 기도로 살아왔습니다. 합심기도는 끝까지 못했을지라도 개인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 가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부럽고 복된 가정입니까? 여러분들 가정에 기도 소리가 계속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극상 한다는 것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잠깐 하는 식사기도뿐이 아니십니까? 그 것도 형식적으로 말입니다. 기도가 없는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이삭의 가정은 기도의 가정이었습니다.

  한번은 젊은이가 벌목장에 가서 취직을 하려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님, 저를 좀 써 주십시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네에게 달렸어,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고, 일을 잘 못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래서 도끼를 받아들고 월요일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화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수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목요일에도 한 나절을 했는데 주인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일한 품삯을 계산해 주면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인님,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고 다른 일꾼들이 놀고 또 쉬는 시간에도 저는 일을 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때 주인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런 결과가 나오지?\" \"무슨 말씀이신데요?\" \"자네가 월요일에는 일등으로 제일 많은 성과를 올렸지. 둘째 날은 중 가운데쯤이었고, 셋째 날은 제일 꼴지야, 오늘은 지켜보니 영 형편이 없어. 왜 그렇지? 점점 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어.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 청년은 이상했습니다. 그 때 주인이 \"자네 혹시 도끼를 갈아서 날을 세운 일이 있나? 없나?\"라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도끼는 열심히 나무를 찍어서 하루를 일한 다음에는 반드시 갈고 갈아서 날을 세워야 하는데 도끼 날을 세우기 위해서 가는 시간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인가? 그 시간이 노는 시간인가?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가?라는 주인의 말에 결국 대답을 못했습니다.

  도끼의 날을 세워 놓고 한번 찍는 것은 무딘 도끼로 열 번을 찍는 것보다 능률이 더 좋습니다. 반드시 갈고 날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젊은이는 모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또는 믿음 생활에서 날을 세우는 일이 무엇입니까? 준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이 아닙니까?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가 놀고 먹는 시간입니까? 헛되이 보내는 시간입니까?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믿음의 날을 세우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안 하는 사람보다 열 배나 낫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열 사람이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도 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시작했고, 계속 기도로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에서의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부러운 가정이라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랑의 가정 (64-67)

  본문으로 돌아가서 64절에서 67절을 보면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지 25년이 지난 후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의 나이 3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37살이고 이삭은 37살입니다. 남자만 둘이 살았습니다. 홀아비만 둘이 산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홀아비 3년이면 뭐가 서말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홀아비끼리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재미가 없고 구차하다는 뜻입니다. 남자 둘만의 삶은 삭막할 뿐이었습니다. 웃을 일도,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의 세월을 홀아비끼리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이삭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본문에 등장하는 리브가라고 하는 아가씨를 맞이하여 장막에 들이고 사랑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합니까? 시아버지가 사랑합니까? 시아버지가 사랑합니다. 시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며느리를 얼마나 사랑했겠는지 상상을 해 보십시오. 어쩌면 시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랑을 받는 즉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하지만 내가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오히려 큰 복입니다.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이삭도 나이 40에 장가를 들었으니 이삭이 정신 없이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지 않습니까? 저도 제 아들 딸을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항상 져주니까 평안합니다. 우리들도 며느리를 맞이하거든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십시오.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정 어머니가 딸한테는 져 줄줄 알면서 왜 며느리한테는 꼭 이겨야 하는 줄로 여깁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며느리에게 이기려고 했겠습니까? 사랑을 주고 위로를 받고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부러운 가정입니다. 나중에 에서의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가정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부러운 이삭의 가정은 첫째 믿음의 가정입니다. 믿음으로 출발을 했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의 가정입니다. 기도로 시작을 했고, 기도가 생활의 한 부분이었고, 평생을 기도로 마친 가정입니다. 셋째 사랑의 가정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기에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평생 아내 한 사람으로 만족했고 아내는 이삭 한 사람 밖에 모르는 가정이요, 진정 부러운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도 이렇게 부러운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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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0:15-21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청년부에서 지난 주일에 이미 꽃을 나누어 드렸는데 고맙단 말도 못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버이 주일에 대한 말씀으로 바람직한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한문이 있는데 어버이 ‘친(親)’과 ‘효(孝)’입니다. 이 글자에는 묘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시골에는 5일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다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 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이라고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친(親)자와 효(孝)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엡6:1-3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고 잘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잘 되기를 바라고 바람직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비결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사는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효도해야 하는지 요셉을 모델로 생각해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부모효도는 천륜입니다.

 


부모 공경과 효도는 부모가 아무리 부족하고 무능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할지라도 부모라고 하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효도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보면 인간적으로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습니다.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은 사람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아내를 4명이나 두었습니다. 그것도 이종 사촌 동생 둘과 그의 몸종들을 말입니다. 이정도 되면 어디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남이 알까봐 조금 부끄럽지 않습니까? 어려서는 몰랐지만 커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하여 얼마나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이 많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담을 쌓고 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 아버지에게 극진한 효를 행하였습니다. 그 형들로부터 그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어서 그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애가 타서 말합니다. 창45:9-11절을 보면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고 하면서 버금수레를 준비하여 아버지를 모셔 오게 합니다. 아버지가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곧장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 아버지를 뵙고 그 품안에 안겨 웁니다.(창46:29) 그리고 임금님께 그 아버지를 소개해 드립니다.(창47:7) 그리고 평생을 봉양해 드립니다.(창47:12) 그렇습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조건을 보고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절대로 공경할만한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나를 이 땅에 있게 해 주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용서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일지라도 부모라는 이유하나로 우리는 효도해야 합니다. 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나에게 입에 닮을 수도 없는 상처를 준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용서하고 효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십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만약 부모를 저주하고 불순종하고 조롱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무서운 벌을 내릴 것을 말씀합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명령이요,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한 기회인 줄 믿습니다.

 


2.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사실 요셉의 가정환경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머니는 네 분입니다. 작은 어머니이면서 이모입니다. 어머니라고 부르기 힘든 종입니다. 그리고 배다른 형제가 10명이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복잡한 가정입니까? 어머니들이 서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투기하고 시기의 불꽃이 여기저기서 튑니다.(창30:1) 상상해보세요. 삼촌의 딸들입니다. 이종 동생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 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들을 또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서로 사랑받기 위해 아이 낳기 경쟁을 버립니다. 창30:1절에 보면 라헬이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아들 안나주면 자살하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이냐! 어떻게 내가 아이를 낳게 할 수 있겠느냐!”고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형제들의 질투는 끝이 없습니다. 결국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먹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열등감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들이 이렇습니다. 요셉의 가정처럼 복잡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가정에는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술주정, 부모의 무식, 남보다 못한 직업, 경제적인 어려움, 형제들의 시기, 불신, 가족 간의 대화의 단절, 부모님이 공부강요, 간섭 등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3. 그 받은 은혜 때문에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버이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태중에 있을 때, 순전히 어머니의 피를 받아 자라며 생리적 영향과 심리적 영향을 받으며 모태속의 나의 인생이었을 때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옛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사람의 해골을 보면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희고 무거우면 남자의 것이요, 검고 가벼우면 여자의 해골이라고 했습니다. 그 까닭은 여자는 아이를 한번 낳을 적마다 서말 서되(3말3되/三斗三升)의 피를 흘리고(66ℓ) 여덟 섬 너 말(8섬4말/八石四斗)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1680ℓ) 백골이 검어지고 또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여자의 해골이 가볍고 검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인의 해산의 고통은 어떻게 자식이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낳아서 강보에 쌓아 기를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밤잠을 자지 못한 양육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인격과 교양의 덕목으로 온전한 가정에서 인격형성의 교양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평생 잘되라고 복비는 부모의 축복의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평생토록 갚아도 다 못 갚는 것이 부모의 은혜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는 철이 나지 않아 효도를 못하고 이제 자식을 낳고 보니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 조금 깨달아 나를 기른 부모의 심정도 ‘그랬겠구나!’ 하면서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효를 행하려고 하면 벌써 이 세상을 떠나가셨으니 효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현자들도 부모에 대하여 남긴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순임금은 말하기를 “만약 자기 부친이 살인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는 즉시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 세상 끝까지 몸을 피해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즐거이 모시며 살아 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맹자(孟子)는 진심편(盡心篇)에서 “임금의 자리나 나라의 법규보다도 효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공자(孔子)도 “옆집의 양을 훔친 아버지의 죄는 자식으로서 이를 고발하기 보다는 숨기는 것이 더 도덕적이다.”라고 자로편(子路篇)에서 말했습니다. 또 위정편(爲政篇)에서는 “요즘은 부모에게 물질로서 봉양하는 것을 효도라고 하나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호의호식을 시켜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 그 정성을 대신하려고 하는 풍조에 병들어 있는 우리에게 크게 뉘우침을 주는 교훈입니다.

 


김소월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비록 나의 어머니가 문둥병자라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우리 모두가 다 이 말씀대로 바람직한 인간의 도리를 다하셔서 이 땅에서 잘 되시고 장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가족구원                                       본문 : 출-12-21-28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출애굽기 12:21-28)\"

구원은 하나입니다. 구원받는 방법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을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 뜻은 예수 믿어야 구원받고 그 구운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구원은 그 범위가 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경우도 있고 가족이 구원받은 경우도 있고 민족이 구원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인 5월이 시작되는 첫 주일이기 때문에 가족구원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옛날 어느 임금이 현상금을 내걸고 그림그리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가정화목 \"이었습니다. 경향각지에서 화가들이 모여들어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임금의 깊은 뜻은 모든 백성들의 가정이 화목하고 화락해야 된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계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최종심사 끝에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깨끗한 초가집 마루아래 댓돌에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부부가 싸웠거나 뜻이 맞지 않는다면 댓돌에 두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 역시 가족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은 값을 정할 수 없는 명작입니다. 그 그림이 주는 교훈 역시 부부의 화목입니다. 함께 일하는 부부, 함께 기도하는 부부야말로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가족관계에서 문제되는 것들
1)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가족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결혼이란 전혀 모르는 남남끼리 만나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길고 먼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성립되지 못 하면 함께 살기가 어렵습니다.
밤이 되면 부부가 잠자리에 듭니다. 그것도 불까지 꺼버립니다. 옆에 누워있는 사람을 믿지 못 한다면 어떻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신뢰의 기둥이 무너져 버린다면 부부도 가족도 원수나 마찬가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서세원씨가 진행하는 노인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젼 프로에 출연한 노인부부끼리 낱말 알아맞추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거기 출연하는 노인들은 대개 70이 지난 분들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낱말의 뜻을 말로 설명하면 부인이 낱말을 맞춰
야 합니다. 남편에게 주어진 낱말은 「천생연분」이었습니다. 천생연분이란 형이상학적 용어이기 때문에 결코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이말 저말, 이소리 저소리 다 끌어다 설명해도 할머니가 맞추질 못 합니다. 다급해진 할아버지가 \"이봐 그거 있잖어\" \"뭐 말인데유\" \"아이 그거, 당신하고 나 사이말여 \"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할머니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듯이 \"응 그거 원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니 네 글자여 \"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평생원수 \"라고 대답해 웃음판을 벌린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 숨겨 놓은 죄, 의심, 부정은 가족관계를 깨트립니다.

2) 다른 신앙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신앙이 다르면 가정화목도 어렵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남편은 기독교, 부인은 불교일 경우 서로의 신앙이 다르고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 어렵습니다.
남편은 이 교회, 부인은 저 교회, 아이들은 그 교회로 헤어져 나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나와 한 교회를 섬기고 같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가족이 둘러앉으면 같은 교회이야기며 받은 은혜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3) 편애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편애가 결국은 형제사이를 갈라놓은 불행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가족간의 시기, 질투, 분쟁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가족관계를 깨트려 버립니다.

2. 건전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1) 건전한 사고, 건전한 직업, 건전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법학강의총서 가운데 형사정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미국 어느 교도소에 1874년 쥬크가의 가족 6명이 죄를 범하고 동시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 후손 70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알콜중독자 131명(18.5%), 매춘부 174명(24.5%), 정신병자 64명(8.6%), 중범죄자 77명(10.8%)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연구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마아틴칼리마크」라는 병사가 전쟁중 정신박약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사생자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 후 제대하고 독실한 청교도신자인 기독교인과 정식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문제
는 그 후손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입니다. 이 조사는 지능측정학파의 개척자인 「곳다드」에 의한 것입니다. 사생자의 자손 488명 가운데 정박아 143명, 사생아 36명, 알콜중독자 24명, 간질병자 3명, 매춘업경영자 8명, 중범죄자 3명 등으로 드러났
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과 결혼해 낳은 자손 496명 가운데 정신이상자 1명, 알콜중독자 2명이 있을뿐 모두가 정상인이었고, 의사, 변호사, 법관, 교육자 등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생각도, 생활도, 직업도 건전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당대를 위해서도 그렇고 후손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왕과 다윗왕은 그런 면에서 차별화 됩니다.
사울왕조는 당대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 아들이 왕 된 것도 아니고 그 후손이 성공하거나 출세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40년을 통치했고 그 후손이 대를 이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범죄학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라 범죄가 유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나쁜 것을 물려주지 맙시다. 죄를 물려주지 맙시다.

2)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새며느리에게 밥솥에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밥 해본 일이 없는 새며느리는 밥물이 넘치는 것도 모르고 계속 불을 때다가 밥은 다 타버리고 솥은 금이가 깨져버렸습니다.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주저앉아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위로합니다. \"아가야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부어서 그렇게 됐구나 걱정마라. 솥은 다시 사면되고 밥은 새로 하면 된다. \" 시아버지가 거듭니다. \"내가 부엌에 나무를 너무 많이 들여놔서 네가 마음놓고 불을 땠구나 네 탓이 아니다 걱정마라. \" 새신랑이 한마디합니
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너무 물을 적게 길어와 물이 모자랐습니다. 이 담엔 물을 넉넉하게 길어다 놓겠습니다. \"
건너 집은 술집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새댁더러 밥솥에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마음놓고 때다보니 밥은 다 타버리고 솥은 깨졌습니다. 화가 난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제가 일부러 태웠습니까\"라고 한마디하자 곁
에 있던 시아버지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어디라고 어른한테 턱 치켜들고 덤비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왜 저만 야단치느냐\"고 며느리가 한마디하자 신랑이 나서더니 \"어디서 시부모에게 말대꾸냐\"며 귓방맹이를 쳤습니다. 얻어맞은 신부는 \"죽여라 살려라 \"며 악을 쓰고 덤빕니다.
뭐가 다릅니까? 무엇이 이토록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까?
그것은 이해와 사랑의 방정식 때문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남편도 아내도 사랑스럽고 며느리도 사위도 예뻐보입니다. 그러나 미움의 안경을 끼면 모두가 다 원수로 보입니다.
얼마 전 제 아내가 미국에 있는 며느리하고 전화통화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전화할 일이 있으면 용건은 간단히 끝내고 기도를 해 주곤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통화가 끝나고 전화를 끊으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더러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가야 사랑한다 \" 모두 일곱 글자입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글자수로 네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가정을 낙원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다듬지 않은 말한마디가 가족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형제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고 가정과 교회를 파괴합니다.
요한1서 3:11에서 사도요한은 \"서로 사랑하라 \"고 했고, 15절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 \"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고 교회를 만듭시다.

3) 구원받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은 유월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던 날 밤 애굽전역에 장자 죽이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장자를 죽이는 사자가 집집마다 찾아가 장자는 무조건 죽였습니다. 그런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고 뿌린 집은 천사가 그냥 넘어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12;21입니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으라 \"고 했습니다. \"가족대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족대로 믿고 순종해야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어머니 혼자 믿는다고 가족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6:28을 보면 지옥간 부자의 호소가 나옵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사오니...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는 지옥 불 속에서 가족구원을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절당했습니다. 이유는 살아서 믿어야 하고 전도자의 전도를 받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2을 보면 고넬료라는 로마군 장교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함께 예수 믿고 함께 교회나오고 함께 기도하고 교회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대도 후대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아멘.
 
  ===========================================================================================                                                                                          제목 : 효행                                       본문 : 출-20-12-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어버이 주일은 본래 어머니 주일이라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는, 이 교회 주일 학교에서 26년간이나 꾸준히 봉사해 온 자비스(Jarvis)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나이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선생님인 자비스 부인을 기념하기 위한 추도식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사는 자비스 부인의 딸을 추도식에 초청했습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

추도식이 있던 날, 식순의 하나로 안나에게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때 안나는 그녀의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면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늘 생각해 보라고 했던 것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카네이션 꽃을 추도식 제단에 바쳤습니다.

추도식에 모였던 사람들은 자비스 부인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안나의 말과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날을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로 정할 것을 그 자리에서 결의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 날 운동은 특히 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존 와너메이커도 이 운동의 취지에 적극 동의하여 그 활동을 도왔습니다. 그는 1908년 5월 둘째 주일에 자신이 경영하는 백화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험난했던 시대의 어머니들은 지혜와 용기로 가정 생활을 이끌어 감으로 현재의 미국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 날\' 운동은 금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일로 지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어머니 주일은 그후에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이 강조되면서 그 명칭이 어버이 주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어버이 주일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6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어머니 주일을 지키면서부터 였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주일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에서 5월 8일 (1955년 당시 어머니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습니다. 그후 교회에서는 1960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개칭하여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도 기리는 날로 삼았으며, 그 이후 1974년에 이르러 정부에서도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 주일은 일반인들의 기념일로 함께 지켜지고 있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 곳곳에 메스컴을 통해 울려 퍼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셨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버이의 사랑은 한이 없어라.”

어버이날을 홍보하고, 경효 사상을 홍보하는 노래로서 이 노래는 이 날 하루로 뚝 끝나 버리고 다음 날은 들을 수가 없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부모의 공경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어버이의 은혜와 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받은 은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부모님들 가운데 우리가 언제 자식 덕보고 살았나! 자식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저 무자식이 상팔자지! 라고 하는 말을 간혹 들어보는데 대단히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마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렸음에 대한 신세한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특히 소위 유교에 속한 사람들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부모님께 아주 불효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잘못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공경하고 돌아가신 후에 추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나 유교나 다 일치하나 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에서는 신(神)이 없는 고로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구성하는데는 기본적인 3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데??신관, 내세관, 현실의 고등윤리를 포함하는 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고등윤리는 있으나 신관과 내세관이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지 않고 유도(儒道)라고 하는데 즉 선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생들은 종교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신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신이 바로 죽은 조상신입니다. 그 조상신이 복도 주고 화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무덤을 다시 단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출 20장 4~5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은 영혼은 이 세상에 올 수 없기에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를 다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 효도하자! 효도하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살아 생전에 효도하자!

1. 효의 중요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동일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추도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부모님의 생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지키는 효의 예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효(孝)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십계명 중 둘째 돌 판에 기록된 첫 번째 계명 즉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간을 맞이하여 여러분들께서 다 잘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회고하고 그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점검해 본다면 효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기독교만큼 크고 귀하게 여기는 곳이 없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효도가 아내 때문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고, 자식들 때문에 천대를 받고, 핵가족 때문에 걸림돌의 신세가 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 6: 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효도사상이나 경로사상은 미풍양속이나 우리의 전통 혹은 동양 도덕의 척도이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곧 부모님께 효행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적극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만일 불효한다면 이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사회에 지탄을 받아야할 대상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에게 먹히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부모님께 효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적인 입장을 취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효행을 하여야 함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30세에 이르기까지 목수생활 가운데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그리고 십자가 위에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 그 아래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여 육신의 남은 여생을 봉양케 하셨습니다.

요 19:27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특히 자녀들은 부모님을 높여야 하고 만일 허물 된 일이 있으면 가리워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왔는지를 소개해 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창 09:20-27)

창 9:20~27절에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불효자의 저주와 효가 곧 축복 받는 근원이 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효행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러나 제대로 아는 자녀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희생, 그 사랑, 그 고생, 그 은혜를 안 받은 자녀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해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부모의 마음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하이다로라는 소년은 부모에게 순종을 잘하는 이로 소문이 났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학교에 가려는 하이다로를 불러 오늘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으니 게다(나막신)를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얘야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으니 조리(짚신)를 신고 가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이다로는 한쪽에는 게다를 신고 한쪽에는 조리를 신고 학교에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탈선치만 않으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부모를 물심양면으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물질이 없고 가난해도 얼마든지 섬길 수가 있습니다 독일 속담에 “한 아버지는 열 자녀를 기르는데 열 자녀는 한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마음을 편히 해 드린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사람이 늙어지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처럼 약해지고 단순해져서 패기 만만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조그만 일에도 섭섭해하시고 곡해를 잘 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옷가지도 우선적으로 해 드리고 필요한 용돈도 드려야 하되 특별히 헌금생활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시는 분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젊은것들 저희들밖에 모른다 저것들만 헌금하고, 고부간의 갈등 문제도 여기에서 출발되는 때가 많습니다.

3) 지금 효도해야 합니다.

물론 생활이 여의치 못하여 당장 부모님을 기분 좋게 못해 드릴 때도 있지만 효는 뒤로 미루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꼭 물질로 효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마음을 편케 해 드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불신자들은 돌아가신 이후에 야단스럽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낸다고 법석을 떠나 이는 지극히 무용한 일입니다.

나뭇가지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고 하는 말처럼 부모님은 무한정 살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실 때 효성을 다하여야 합니다.(朱子十悔: 不孝父母 死後悔)

4) 불신 부모님께는 전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다 믿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회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함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전도는 하지 않고 그저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린다고 남의 이목 때문에 산소를 잘 꾸미고 단장을 한다고 유익하거나 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꼭 전도를 하십시오.

딤전 5: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선언합니다.

3.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의 누릴 축복이 무엇입니까?

잘 되는 축복 즉 재물의 축복과 함께 생명이 길리라,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엡 6: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 5: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전략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그의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맨 먼저 자기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경례부터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과연 그는 죽지 않고 사라져 갔는데 장수하고 잘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 주간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기독교의 효를 실천해 보십시다.

현풍 곽씨 집안에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들어왔답니다. 그 며느리의 칭찬이 집 안에 자자하던 중 한 번은 며느리는 잔치 집에 갔고 남편은 나무하러 산에 갔었는데, 먼저 며느리가 집에 돌아와 보니 시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올라타고 앉아서 목을 조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며느리가 \"어머님 지금 무엇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황급히 묻자 시어머니가 \"얘야 내가 닭고기가 무척 먹고 싶었는데 마침 수탉이 뛰어 들어 왔구나. 그래서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중이란다\" 하시며 아들의 목을 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느리는 \"어머님 제가 잡아드리지요\" 하면서 아들을 얼른 빼내어서 안았는데, 이미 아들이 죽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아들을 가만히 눕혀 놓고 얼른 닭을 한 마리 잡아 가마솥에 끓여 어머님께 갖다 드렸답니다. 늦게 돌아온 남편이 낌새가 이상하여 묻자 며느리가 사실대로 말했을 때 남편은 그 아내에게 큰절을 올리며 \"당신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효부구료\" 이렇게 말하자 \"아닙니다. 어머님이 얼마나 닭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손자가 수탉으로 보였겠어요\" 하며 노망하여 자식을 죽게 한 시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은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말하게 되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현풍 곽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이 며느리가 믿는 예수님을 함께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의 영혼을 구원시켜 천국가게 하는 일은 가장 큰 효도입니다. 아무리 세상 적인 것들로 효도를 잘 한다 하더라도 영혼을 구원받게 못한다면 그는 가장 불효한 자가 될 것입니다. 부모님을 구원받게 하여 효도하는 일이야말로 천부 효행입니다.

독일 시인 헤르만 헷세(1877~1962) 부모님 은혼식에 드린 시(결혼 25주년)를 소개합니다.

두 분에게 있어 쓰라렸던 세월은 우리들 자식에겐 빛으로 가득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더없이 즐거운 나날이었지요.

두 분의 수고와 불안을 거쳐 온 길은 우리에겐 행복한 소녀의 길이었지요. 우리에게 향내처럼 사라져 간 것이 두 분에겐 지루한 것이었지요.

젊고 힘찬 손을 가진 우리는 달갑게 그 일을 맡겠습니다. 사랑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두 분의 남은 길 평안히 쉬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눈물겨운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면 어찌 불효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엡 6: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효도하라는 이 말씀의 뜻은 구원받은 자의 인격, 성품, 생활로 효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보다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버이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에♬
깨닫았으면 행함으로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주안에서 부모님께 효도하여 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제목 : 우리집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집                                       본문 : 행-15-30-34                                      
      설교본문    행 16:30-34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능력
의 하나님, 얼마나 능력이 많으십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하나
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애굽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군대도 동원하
지 않고 바로를 이기게 하시고, 배 하나도 준비하지 아니하시고 나무 막대기 하나도
이용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논밭 하나 없이도 하나
님께서 씨뿌리지 않아도 2백 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하나님의 능력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
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의 문제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
라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축복을, 또
가정의 행복을, 또 가정의 형통하고 잘사는 복된 가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비교할 수 없고 또 우리
의 삶은 인간이 가진 능력으로는 언제나 인간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우리
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뿐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큰 충격은, 위기는, 어려움은 가정이 붕괴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정말 만대를 내려오면서 심히 안정되게 오순도순 살아오던, 한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 감사하며 먹던 우리의 식탁이 무너지고 침실이 무너지고 우리의 가정
에 아름다운 부모와 자녀, 또 자녀와 자녀, 부부간에 이렇게 평화스럽던 동산이 무너
지고 있습니다. 일년에 36만 3천 쌍이 결혼을 하고 일년에 11만 8천 쌍이 헤어지게
됩니다. 매일매일 하루도 남김없이 323쌍의 가정이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혼
만  문제가 아닙니다. 2,3년 전부터는 가정을 뛰쳐나가는 가출하는 사람이 많습니
다. 그전에는 애들이 순간적으로 유혹받고 충동받아 뛰쳐나갔는데 지금은 그게 아닙
니다. 가정주부가, 30대 가정주부만 매월 천 명이 집을 뛰쳐나갑니다. 오히려 남자들
이 덜 뛰쳐나가요. 남자는 8백명이, 30대의 남자들이 8백 명이 집을 뛰쳐나가는데,
어린아이를 갖고 있는 가정주부들이 천 명이 집을 뛰쳐나갑니다. 막상 나가서 별로
일자리도 없고 또 좋은 길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더 큰 가정의 파
멸을 가져오고 더 큰 사회의 상처를 가져다 주게 됩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뻔합니다. 그들이 선택하는 직업은 뻔한 것입니다. 청소년의 가
출은 수만 명입니다. 더 많습니다. 노인들의 가출까지도 있습니다. 또 여기에 청년
들, 20대의 가출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이 이렇게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우리의 가정이 언젠가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
은 점점 없고, 내년은 금년보다 더할 것이고 그 내년은 또 더할 것입니다. 누가 가정
의 붕괴를 막으며, 가출의 길을 막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할 자가 누구입니까? 이 방
황하는 이 시대를 가정이 모두 안정이 되어야 사회도 안정이 되고 국가도 안정되고
길거리도 안정이 되는데, 이 모든 것을 누가 어떻게 수습할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가정은 회복될 수 있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출하지 않을 수 있는 길
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를 뛰쳐나가고. 여러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남편일지라도 아내에게 만족을 줄만한 남자는 이 세상에 없
습니다. 어떤 여자일지라도 남편에게 만족을 줄만한 여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렇기 때문에 뛰쳐나갑니다. 저럴 수 있느냐 하고 나가면 더 큰 저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더 큰 상처를 또 받게 됩니다. 끊임없이 연속될 뿐입니다. 누가 우리를
만족하게 할 것입니까. 어떤 부모가, 그래서 지금은 모두 다 내 기쁨, 내 만족,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자가 없느냐고 하는 이런 갈급한 이 목마름 때문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줄 이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밖에는 예수밖에는 아무도 없네 슬픈 일을 당할 때 날 붙들 친구는 구주 예수밖
에 다시 없도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내가 구원의 길을 찾아야 다른 길도 찾습니다. 구원을 먼저 찾아야 모든 문제에 응답
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두고는 어떤 것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
울은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집
의 구원이 있어야 됩니다. 너의 구원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간수장이 사도바울로 말
미암아 회개하게 되고 이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바울을 집안으로 모셔서 온
집이 세례를 받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 가
정의 어두움을 내어쫓았습니다. 저주와 멸망에서 이 가정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임마누엘 천국의 가정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
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은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입니다.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수양과 노력과 물질과 도덕과 어떤 인간의 희생과 헌신과 인간의 이 수많
은 방법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어주신 아들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신 능력입니
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셔서 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 오늘날까지 지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온 인류를 저주받은 죄에서 건져주시고 그의 죽으심
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망권세 이기시고 권능으로 능력으로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신약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언제나 명령하시고 권능으
로 해결하십니다. 죄 지은 자에게 너 죄를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라 하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풍랑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잔잔할 지어다 하셨습니다. 주님
은 고기 못 잡은 자에게 가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곳에 입구까지 물을 채워서 떠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능력으로 역사하시지 주님은 노력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강도를 만나서 주님께서 오늘밤에 낙원
에 이르를 것이라고, 낙원에 이른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능력
입니다. 그의 사랑도 무한한 능력이고 은혜도 무한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
에 있는 예를 들어서 걱정 근심도 이것을 버릴려고 노력해가지고 버려지는 것이 아
닙니다. 마음에 괴로움과 외로움과 속상함과 답답함과 미움과 좌절과 스트레스와 이
런 어려운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주여 믿
습니다. 이래서 의심을 몰아내고 염려를 몰아내고 걱정을 몰아내고. 잠이 안옵니까?
주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주여 내게 잠을 주시옵소서. 질병이 있습니까?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주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것
하나도 능력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쁜 것도 능력으로 고칩니다. 시험도 능
력으로 게으름도 능력으로 잘못된 습관도 능력으로 방탕한 생활도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주의 놀라우신 능력이 우리를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우
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악은 능력입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요사이 우리나라 구제역이라는 것 들어보셨죠? 구제역이라고 하는 거는 광우병과
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광우병은 이것을 먹은 사람에게 치명타가 됩니다. 소도 죽
고 사람도 죽습니다. 영국에서는 지금 발표한 바에 의하면 정확한 과학자들이 대체
로  몇백 명에서 한 4천 명이 광우병으로 죽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무섭습니다. 광우병으로 말미암아 작년 1년 동안 소만 4백만 마리를 그냥 땅에 묻었
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무슨 세계적인 대회를 일절 못합니다. 가서 만약에 고기를 먹
었다가는 병에 걸리니까 거기를 못갑니다. 여러분 소 네 마리를 땅에 묻어도 큰 구덩
이를 파야 합니다. 그래서 군인, 국방부가 다 동원되어 가지고 온 나라의 장비가 다
동원되어 가지고...  여러분 4백만 마리를 땅에 묻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피해
가 얼마나 큽니까. 관광객  안 오죠 4백만 마리의 그 농가의 피해가 또 얼마나 큽니
까. 또 식당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피해가 어마어마 하죠. 광우병은 참 무섭습니
다. 그래서 영국에 6개월만 있는 사람도 미국에서는 헌혈도 안 받을 정도로 영국 갔
아온 사람은... 영국뿐만 아니라 이태리도 프랑스도 많고요 EU국가들이 지금 광우병
이 많이 번졌습니다. 무서운 것이죠. 그 다음에 가장 무서운 것이 요사이 우리나라
많이 번지고 있는 구제역이라는 병입니다. 이것도 EU에서 먼저, 일본에서 먼저 일어
났습니다. 구제역으로 말미암아 작년에 양을 320만 마리를 땅에 묻었고요 소가 60만
마리, 돼지를 15만 마리를 도축시켜서 버렸습니다. 굉장한 거예요. 이것은 입과 발굽
에 물집이 생기면서 그대로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염병이 들어오면 철저하게 막
아내야 돼요. 우리나라도 지금 여기에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일부에 지금 구제역 생
기거든요. 구제역이 생기니까 즉각 첫째, 완전히 교통 단절시켜야 돼요. 사람 출입
을 일절 막아야 되고요 혹시 거기에 손이라도, 아까워하면 안돼요. 몽땅 갖다가 땅
에 묻어버려야 돼요. 그래서 며칠 전에 한 4만 마리 땅에 묻는 걸 내가 보니 그 어린
돼지 금방 태어난 걸 묻는데 내가 너무 눈물나더라구요. 그래도 그 우는 걸 불쌍히
여겨서 안 묻었다가는 나라 전체가 끝장이 나니까. 그래서 자동차도 거기 다니면 안
되고 16km반경을 완전히 교통 통제해버리고요. 완전히 단절시켜 버리더라고요. 아
주 급하게 번져나가니까.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를 두고 봐야돼요. 집은 다 소독하고
자동차도 전부 방독, 옷도 완전 소독 다 해야 돼요. 무서운 거죠.

  이 세상에는 악한 일이 있습니다. 전염병이 있고요 이 세상에는 불행한 일들이 많
이 일어납니다. 온갖 범죄가 일어나고 사고가 일어나고요. 성경은 이런 배후에는 다
악의 세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가 있고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로
가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성경의 이 모든 가정이나 국가나 사회 문
제를 일으키는 배후에는 악이 있다, 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광우
병, 구제역보다 더 무섭다는 거예요. 이건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예요. 온 인류를 다 망
하게 하는 것이 죄라는 거예요. 이걸 막을 자가 없어요.

  오늘 우리 사회 보십시오. 뭐 가정이 붕괴되어도 막을 길이 있습니까? 범죄를 막을
길이 뭐 있습니까? 계속 번져나갑니다. 이 번져나가는 모든 저주, 전염병, 악과 이 불
행을 막아내는 길이 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는 막아낼 수 있는 거예
요. 예수만이 너와 내 집을 건져낼 수 있고 너와 내 나라를 건져낼 수 있고 시험에서
저주에서 멸망에서 전염병에서 환란에서 온갖 죽음에서 불행에서 죄악에서 가난에
서 슬픔에서 어떤 비극에서라도 주님은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는 거예요. 우리를 모
든 것에서 구원하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예요.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
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뇨 반드시, 옛날 찬송에는 불가불 이기리로다♪ 하여
튼 불가불, 반드시 이기리로다. 누구로 말미암아?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능력으로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내 대적
이, 다윗이 말한대로 머리털보다 많을지라도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경에
는 그 말씀이예요, 성경 전체는 너는 능력이 없고 너는 부족하고 너는 아무것도 아닐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이길 자가 없는 거예요. 다윗은 목동이예요. 그래도 목동
못 이겨요. 다니엘은 남의 나라 붙들려 가도 바벨론이 못 이겨요. 요셉을 애굽이 못
이기는 거예요.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어요. 하나님이 나의 아버
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예수로 무장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그에게 기도하지 않고 그의 축복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지고 저주를 받는 것이예요. 누구든지 그의 도움을 받으면, 그
와 함께하면, 그가 우리를 축복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1967년 여러분이 많은 그 이야기를 들으셨죠. 6일전쟁이 일어납니다. 1967년 6월 5
일부터 10일까지. 사실은 시간은 132시간입니다. 만 6일도 안된대요. 그래서 이 전
쟁 이름을 6일전쟁이라고 그래요. 그때 똑같이 쳐들어온 나라가 남쪽에는 이집트, 옆
에서는 요르단, 북쪽에서는 시리아라고 하는 세 나라가 동시에 들어옵니다. 애굽은
세계의 강대국이죠. 그때 유대 나라는 지금의 땅덩어리 3분의1도 안됩니다. 지금도
강원도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때는 하나의 도 정도밖에 안됩니다. 67년이니까 얼마
안됐어요. 골란 고원도 다 그때 시리아 땅이었고요 그 이스라엘 동쪽에 있는 그 전부
다 요르단 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도 요르단 땅이었어요. 또 남쪽에는 애굽이
그 위에까지 다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조그만 땅을 향하여 세계 3대 국가가 달려들
었고 그 배후에는 유명한 이라크라든지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알제리까지 모
두 전쟁 재정지원, 군사지원을 다 해 가지고 이렇게 들어왔어요. 여러 나라가 동시
에 들어 왔어요. 여러분 그런데 이 전쟁이 한순간에 끝나 버리는 겁니다. 한 주일도
되기 전에 애굽은 사일만에 끝나 버렸고요 요르단은 삼일만에 끝나버렸고, 저 북쪽
은 산악지대니까 좀 어려우니까, 시리아하고는 육일동안 해서 육일전쟁이라고 하는
데 사실은 사일로 끝나는 거예요. 완전히 다 손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냥 쑥밭이 돼
버리는 거예요.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 많은 탱크, 그 많은 비행기가 몽땅 녹아버
리는 거예요. 아직도 이걸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 가
보면 여러분 이스라엘에 가 보십시오. 그 시나이반도에 가면 아직도 그때의 그 녹슨
탱크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볼 수 있어요. 가이드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그때 하늘에서 빛이 확 비췄다고 하기도 하고, 난 못 봤으니까
모르는데 하여튼, 어떻게 동시에 조그만 나라가, 그래 유대 나라는 비행기가 있어도
훈련 할 데가 없어요. 자기 영토를 2분이면 벗어나니까. 무슨 연습이 돼요? 그런데
도 그 나라의 공군을 세계 나라의 비행기와 비행장을 하루 동안에 싹 다 없애버렸어
요. 이집트 그 넓은 영토를 지키는 비행기 수 천대를 동시에 싹 없애 버렸고요. 그리
고 거기 끝난 다음에 요르단 가서 없애 버리고, 시리아 가서 다 싹 없애 버렸어요. 멀
리 수 백대의 탱크가 아래에서부터 막 올라오는 것을 총 한번도 못 쏴보고  싹 녹여
버리는 거예요. 뭔지 몰라요. 그래서 학자들은, 내가 정확하게 알려고 어제 또 전화
를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요 이스라엘에서, 그때 탱크에 벌들이, 광야엔 벌들이
많거든요, 그 포구에 벌들이 들어가니까 총을 쏘면 다 녹아버렸다고 하기도 하고 하
여튼, 뭔 말인지는 모르는데, 이 전쟁이 엿새만에 끝났다고 해서 유명한 육일 전쟁
은 세계 인류 역사에 이웃 간에 형제간에 싸워도 육일만에 안 끝나는데, 엿새만에
싹 끝내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잘 아셔야 해요. 이것이 정확한 비유가 될지는 몰라도, 우리 인류가
아담, 이브로 말미암아 범죄가 우리 인류를 다 삼키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이 모든
악의 세력을 누가 막느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한 분이 그 흘리신 보혈로, 그
능력이에요. 보혈은 그냥 피가 아니에요. 보혈은 능력이에요. 어떤 능력이냐 죄의 능
력을 파괴하는 능력이에요. 죄의 어마어마한 세력을 완전히 맥을 못 추게 하는 능력
이 어디에 있느냐? 보혈의 능력이에요.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이세
상의 모든 죄를 맑히시는 주의 보혈. 이 세상의 모든 탱크가 확 들어오는 대적을 한
분이 십자가에 피 흘리신 분이 싹 다 멸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5장 15절에 보
면, 예수님은 첫 아담의 다시 오실 표상이라. 그랬어요. 한 아담이 잘못 해 가지고
이 땅위에 확 퍼져있는 죄가 새로운 한 아담이 오셔서 한 아담이 이분은 에덴동산에
서 죄를 지어 죄를 온 세계에 퍼뜨렸는데, 이분은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이분이
지은 죄를 몽땅 멸하고, 몽땅 덮어 버리고, 이 가운데 빠져있는 온 인류를 건져내는
새로운 아담, 구원의 아담, 능력의 아담, 모든 저주, 한 분이 모든 죽음 멸망에서 우
리를 건져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할 일이 뭐냐, 이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아
들을 영접하고, 아들을 믿고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 우리가 사는 길이에요. 할렐
루야.
 
  여러분이 잘 아는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어요.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
니다. 사실은 어버이 주일이 왜 귀 하냐면, 어버이가 왜 귀한지 아세요? 우리가 어머
니가 특별해서 어머니 주일을 지키는 게 아니고,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어
요. 하나님의 큰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부모님 이예요.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두 가지잖아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희생의 하나님이에요. 자기를 얼
마나 희생해요, 참으로 희생해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분이
에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특징이 사랑과 희생이죠.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을 통하
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또 부모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자
녀들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줘요 여기에
는 탕자의 위대함이 아니에요. 탕자가 대단한 건 아니야, 탕자는 100% 나쁜 놈이야.
탕자의 공로가 없어요. 누가복음 15장에는 뭘 가르치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큰 걸 가
르치는 거예요.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짛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박으시리요 우
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기다리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오니 반가워
가지고 집으로 영접하여 송아지를 잡고, 옷을 갈아 입히는 그 아버지의 사랑, 놀라
운 아버지의 사랑. 막 반지를 끼워 주고 기뻐하는 거예요. 이 기쁨이 하나님 아버지
의 큰사랑,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큰사랑이 함께 합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능
력이 여러분의 삶을 바꿔 줍니다. 다 치료해 줍니다. 새롭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우
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해요.
 
  어제 저녁에 텔레비전에 나왔대요, 나는 못 봤는데, 이스라엘 군인이 전쟁이 끝나
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군인들에 대해서 텔레비전에 나왔대요. 집으로 돌아가는
데 온 어머니들과 동생들이 와 가지고 막 입을 비비면서, 울면서, 키스하고, 안고 막
그러는데 거기에 안나온 분이 있더래요. 누구냐 하면 아버지는 안나왔어요. 어디 있
느냐 하면 집에 있는 거예요. 대문에서 그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와 동생들과는 다른 거예요. 깊은 곳에 있는 사랑, 말은 못해
요.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큰 거예요. 아버지의 사랑이 누나와 어머니 같으면 안
되는 거예요. 요사이 문제가 바로 그거예요. 요사이 \'모노섹스\'라고 해 가지고, 남자
여자가 없어요. 의복도 \'유니섹스\'라 그래 가지고, 이게 여잔지 남잔지, 요사이 남자
들은 남자다워야 해요. 집에서도, 사랑도 남자다운 면이 있어야 해요. 여자들 같이
그러면 안돼요. 남자는 의복이고 뭐고 하나님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의젓하게 놀
아야 해요. 하나님의 사랑은 큰사랑, 우리를 향하여 한없는 사랑과 불쌍히 여기시는
것. 어떠한 저주도 어떠한 능력도, 하나님의 능력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침략 할 수
가 없어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곳엔 안정이 있는 거예요, 평안이 있는 거
예요.
 
  행복한 가정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느냐, 무너진 가정은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대상 16장 11절에 그 능력을
항상 구할 지어다 라고 말했고요.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에게 있고 인간에
게 있지 아니함을 알려 함이라고 고린도후서 4장 7절에도 말씀해 주셨고,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왜 이렇게 약해 있느냐, 지식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
하고, 인본주의요 하나님 없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어떻게 보면 굉장히 힘이 있는
거 같은데,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적인 피조물인데, 그 힘으로 능력을 얻을 수
가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점점 싸이게 되고, 길이 막히게 되고, 답답
하게 되고, 범죄와 이런 흉폭한 일들로 발전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 늘 침투하는 악의 세력, 광우병처럼 우리 마음에 침투하는 구제역, 이
런 질병들, 이런 저주, 온갖 불행한 일들이 온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
이 우리 집에 함께 하시고, 우리 가정에 함께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잠을 잘 때에
도 주님과 함께 하는 잠이 되어야 하고, 사업을 할 때에도 주님이 사장이 되셔서 사
업을 하셔야, 그 사업을 헤칠 자가 없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보십시오, 사업을 어떤
배경을 가져도, 어떤 물질, 어떤 권력, 만세 반석도 무너질 때에는 한 순간에, 수 조
원도 수십만의 직원들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걸 얼마나 많이 보아 왔습니까. 참으로
인간은 능력이 없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헛된 것을 우리가 역사 속에
서 얼마나 배워 왔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그 힘으로 살아가시렵니까. 예
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내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파괴자 원수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 갈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 가정을 지키실 때, 자동차를 탈 때에도 그러므로 주님
이 우리의 운전사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길러도 주님이 우리의 자녀
를 길러 주셔야 되는 거예요. 나와 너의 행복한 삶도 주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서 우
리는 행복의 꿈을 꾸고, 행복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조금만 좋은 일이 있고, 조금만 능력이 있어도 주님을 떠나는 일이 많습니다. 주의
능력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끊임없는 능력을 베푸시는 은혜의 능력, 사랑의 능력,
사랑도 능력이에요. 인간의 사랑은 능력이 없어요. 요만한 오해가 와도, 하여튼 말
한마디만 들어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니까. 이 탱크의 물이 늘 출렁거리는 거예요.
흔들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식 날이 다르고, 그 다음날이 다른 거예요. 하나님
의 능력으로 무장된 사랑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 전에 들으신 대로 소련 격언
에,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 할 때는
몇 번 기도? 세 번 기도하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은 군에 갈 때는 전쟁이니까 무서우
니까, 기도 많이 해야지, 바다에 갈 때는 저 파도를 인간의 힘으로는 못 이기니까, 아
이고 저 기도 많이 해야지, 가정이야, 뭐 저 푸른 초원 위에 여기야 무슨 문제가 있겠
냐 하지만은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요, 가정이야말로 진짜 전쟁터이고요, 가정이야말
로 진짜 파도가 안 치는 곳이 없고요, 바다에 가는 거야말로 진짜 가정이에요. 주님
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여러분, 출발에서부터 끝까지, 예수와 함께 출발하는 성도 되기
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택시를 타는데, 만원이 나왔는데 팔천 칠백 원을 내는 거예
요. 아줌마 만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왜 천 삼백 원은 안 줍니까. 날 속이지 말아
요, 나 탈 때부터 벌써 천 삼백 원부터 시작했는데, 뭐 웃기는 소리 하냐고, 그래서
천 삼백 원을 빼고 팔천 칠백 원만 받으라는 거예요. 어떤 분은 택시를 타면서, 오천
원이 나왔는데 이천 오백 원만 내요. 아 왜 오천 원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니
는 안 탔나, 그러는 거예요. 기사인데 말이죠. 오늘 우리 주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야
지, 나 혼자 타고 가면 안됩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타고 요금 내고, 주님의 은혜
맘껏 받고, 예수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해요. 예수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
어야 해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해요. 무엇이든지, 내 기술과 능
력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해요.

  하나만 더 잠깐 이야기를 하고 마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에 셰퍼드 개 한 마리
를 먹여 길러 가지고는, 날마다 셰퍼드를 이기도록, 셰퍼드보다 더 빨리 뛰도록, 늘
경주하는 거예요. 그래도 셰퍼드를 못 따라 가는 거죠. 그래서 모두가 다 동네 사람
들이, 쟤는 개만 못해. 개만 못해. 날마다 어쨌든 목표를 개보다 더 빨리 달리는데 두
니까, 아무래도 걔는 개만 못하다는 거예요. 아 근데 한 오 년 뛰었더니 드디어 개만
한 거야, 이야 똑같이 가는 거예요. 야 쟤는 개만 하다. 개 같다니까. 드디어 몇 년 목
표를 정했으니까요, 날마다 그 셰퍼드 보다 더 빨리 뛰려고요, 몸부림치는 거예요,
노력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 삼 년 더 지나니까 개보다 더 빨리 달리는 거예요. 그래
서 모든 동네 사람이 쟤는 개보다 낫다. 목표를 어디다 정했느냐, 개에다가 정했어
요. 오늘 보십시오. 이래 살아보면 평생 돌 모으는 데다가 목표를 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 사람은 요 자기 아버지도 돌로 보여요, 밥상도 돌로 보여요, 밥그
릇도 돌로 보이고, 자동차도 돌로 보이고, 전부가 돌로 보여요. 돌에다가 목표를 뒀
어요. 사람이 목표를 잘 정해야 해요. 어떤 분은 바둑에다가 평생 목표를 두니까요,
어떤 목사님은요 바둑을 못 두니까요 교인들이 전부다 검은머리가 되고, 흰머리가
되고요. 기도하다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고 마지막에 아다리 이러는 분
도 있고요.

  목표를,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평생 돈버는 데다가 목표를 두는
분도 있고요, 돈 외에는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와 경쟁하느냐. 누구에 목표를
두었느냐, 누구하고 같이 뛰어 가느냐, 예수와 함께. 아 저 사람은 예수를 닮았다. 예
수를 따라가는 분이다. 저 사람은 예수를 닮으려고 하는 분이야. 예수 중심의 삶, 이
것은 능력이요, 축복의 삶이요, 가정도 나라도 내 자신도 범사에 모든 은혜와 축복
은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                                                                                          제목 : 가장 복된 가정은 주예수를 모신 가정                                       본문 : 행-16-30-34                                      
 
설교자    김삼환목사   설교본문    행 16:30-34
 
 
 
가정은 건강해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가정이 든든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속 한 가정의 구성원에게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아가 온 나라를 건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졌을 때 아무리 훌륭한 정치 를 하려고 할지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교육문제도 해 결이 됩니다. 모든 사회악이 줄어들게 됩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못할 때에 땜이 붕괴가 되듯이 오늘 이 사회는 막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를 학자들은 4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첫째가 가정의 붕괴였다고 말합니다. 가정 은 신성하고 소중해야 합니다. 가정은 아름답고 깊은 하나님의 동산처럼 오염되지 아니하는 거룩함으 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로마는 성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혼이 급증하게 되고 가정이 붕괴되면 서 그 나라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의 두 번째는 과중한 세금이었다고 합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데 썼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서커스를 보여주고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면서 돈을 잘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저들이 정신적으로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돈을 잘 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문에 보신대로 돈이 없는 분이 감옥에 가는 법은 없습니다. 돈을 잘 못써서 감옥에 갑니다. 돈을 잘 못 써서 나라가 망하고 기업이 망합니다. 돈을 잘 써야 합니다. 국가는 돈을 모아서 잘 써야 합니다. 사명감을 갖고 이 돈이 얼마나 소중한 돈임을 알고 잘 쓰여질 때 그 국가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로마가 멸망한 세 번째 원인은 노는데 너무 열중을 했다 고 합니다. 저도 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로마시대만 하더라도 천명 이상이 동시에 들어가 목욕할 수 있는 곳이 열 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내뿐만 아니라 로마가 지배했던 곳은 지금도 운동장, 극 장, 연회를 베푸는 장소가 한이 없이 많습니다. 에베소 같은데 가보면 이 만 명이 동시에 앉아서 음악 회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동전 하나를 딱 떨어뜨리면 5m앞에 사람도 듣고 50m밖에 있는 사람도 똑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기술이 나왔는지 모릅 니다. 이스라엘에도 가면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도 있습니다. 로마가 지배했던 곳은 항상 놀 고 먹고 마시고 온갖 스포츠를 날마다 즐겼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사람과 짐승이 싸우고, 짐승 과 짐승이 싸우고, 노예들을 데려다가 투쟁을 시키고 끊임없이 이렇게 즐기면서 스포츠와 함께 로마 는 몰락해 갔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신앙은 형식뿐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국가 니까 교회는 다 가지만은 교회 안과 교회 밖이 달랐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거룩한 척 했지만, 예배 를 드리고 나면 바로 저들은 음탕한 길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교회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촛대를 옮기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국가의 흥망을 보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 니다. 이런 나라들은 다 수백 수천년 세계를 향하여 큰 일들을 하고 이렇게 몰락하였지만은 우리는 인 류를 향해 아직 한가지도 한 것이 없는데 지금 우리가, 이런 문화가 퇴폐적이고 물질적이고 향락적이 고 비도덕적인 이런 문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가 속히 도피성을 찾아가듯이 이 시대를 뛰 쳐나와서 오늘 어떤 개혁보다 더 정신적인 개혁, 영적인 개혁을 할 때 이 나라가 새로운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가정이 든든해야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가정에 행복이 있 어야 합니다. 행복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가정을 떠나서는 하나님이 숨겨두지 않았습니다. 하나 님의 축복은 다 열이라면 아홉은 가정에 숨어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우리는 회복시 켜야 할 것입니다. 가정이 건강하고 든든할 때 이 사회와 이 민족은 모든 분야가 힘있고 건강하게 제 기능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아담과 이브를 창 조하셔서 에덴 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어떤 동산입니까?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함께 하 는 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입니다. 낙원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슬픔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 다. 고통이 없습니다. 질병이 없습니다. 수고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갖는 고 통스러운 불행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죄악이 없습니다.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악한 것이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에 아담과 이브는 행복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천국입 니다. 그곳에서 예배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간교한 뱀이 찾아와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섬김에서 그들은 범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두 곳에서 온다고 합니다. 하나는 아담 이브를 넘어뜨린 사탄에게서 오는 길입니다.

하나는 에덴동산 안 에 있는 하나님께로 오는 길입니다. 사탄이 유혹한 행복의 길은 어디 있습니까? 사탄의 행복의 요소 는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세상입니다. 먹는 것입니다. 정욕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저거, 이거, 이거 있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좋은 사람, 멋진 아내, 최고의 미인, 보암직하고 먹음직하 고. 이런 곳에 행복이 있다라고 뱀이 말했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렇게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고 땅에 복을 내려주시고 권세와 능 력을 주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복종시키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 고 있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그 하나님을 떠나라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에 있 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있다라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에 있다라고 말했습니 다. 영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 이브가 뱀의 길로 나아간, 사 탄의 길로 나아간 길이 바로 그 길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선택했습니다. 환상적인 것을 선택했습니다. 먹고 마시 고, 즐기는, 정욕적인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죄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저들은 세상의 것을 다 가졌지만은 먹고 마셨지만은 그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마음의 허무함이 왔 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불안했습니다.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낙심이 옵니다. 좌절이 옵니다. 부부간 에는 서로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가정불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왜 먹었느냐 하니, 내가 먹었습니까? 우리 아내가 그랬습니다. 저 사람이 먹으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저 기였습니다. 이브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먹으라고 했느냐? 저 뱀이 먹으라고 서로 원망합니다.

부부 간에 다툽니다. 다툼이 일어납니다. 오늘날도 가정이 붕괴되는 원인의 76%가 부부의 불화라고 합니 다. 불화가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을 떠난데서 오는 것입니다. 범죄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귀를 따라 갈 때 오늘 우리의 가정불화가 오는 것입니다. 가정불화의 요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눈 녹듯이 녹아질 것입니다. 태산도 평지같이 만들 것이고 광야에 장미꽃이 피게 할 것 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아주 적은 장애물도 넘지 못해서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결혼할 때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이 만난 지 일년도 안돼서 그때 오빠가 나를 먼저 꼬시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전부 전가하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이라고. 서로 불신하 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서로 미워하고 싸워서 살인범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사이 가정의 붕괴, 형 제의 붕괴, 부모 자식간의 만남의 불화, 부부간에 불화, 이 모든 부조화가 어디에서 오느냐? 범죄하므 로 왔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을 누가 회 복할 것입니까? 영적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원인도 알 수가 없습니다. 에덴 동산의 문은 동쪽으로 있 었는데, 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쫓아내 버리고, 쫓아내고, 문을 막아 버리고, 화염검을 든 천사들이 지 켰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과 점점 멀어져서. 오늘날 온 인류가 에덴동산을 지상에서 물질을 가지고 찾고, 지식으로 찾고, 인공위성으로 찾고, 인간의 과학으로 찾고, 권력으로 찾지만은, 이 땅위에, 이 지상 위에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은 한 사람도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어디 가도 슬픔이요, 고통이요, 아픔입니다. 저주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을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매여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을 찾으러 누가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떠난 우리 인류를 찾으시려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다시 찾으려 고, 에덴 동산을 회복하시려고, 기독교는 회복의 종교입니다. 앞으로 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개혁의 종교가 아닙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 주시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내가 잃었던 지식을 찾았도다. 눅15장에 말씀한대로 하나님을 떠나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범죄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이 우리의 죄 를 사해 주셔서, 우리로 아버지 앞에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선생들아 어찌할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오 셔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가정에 오셔야 합니다. 내가 변화 받아 죄에서 사함 받고, 용서함 받아 하나 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인간은 찾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 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떠나갈 때, 주님이 함께할 때 우리는 잃어버렸던 것을 찾고, 어느 누구든지 초막이나, 궁궐이나 우리 는 좋은 곳에서 행복을 찾고, 세트 메뉴에서 빈틈없는, 좋은 것을 갖추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과 만족은 주님 한 분으로 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축복은 위로부터 옵니다. 하 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요사이는 결혼식도 얼마나 준비하고 계획을 갖고 하는지, 사진 찍는 것도 며칠 씩 걸립니다. 우리들은 결혼식할 때 나만 팡팡 찍으면 끝납니다. 그 사진밖에 없어요. 다른 사진은 없 어요. 그런데 요사이는요, 경복궁에 갔다가 남산에 갔다가, 한간에 갔다가 옷도 열 번도 더 갈아입고 요, 앉아서 찍고, 서서 찍고, 둘이 요러고 찍고요. 별의별 것을 다 찍습니다. 행복이 거기에서 오는 것 은 아닙니다. 신혼여행부터 얼마나 만가지로 모두 꾸미는데, 행복은 그런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입 는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 여러분. 결혼의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나는 권장하고 싶어요. 나보고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저녁예배에 강단까지 걸어와서 목사님께 축복기도 받고. 잘 입 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렇게 소중한가요? 살아 보세요. 뭐가 필요합니까? 선물이 필요합니 까? 축복기도 한번 받고 돌아갈 때 우리 교인들 일어서서 박수해 주고, 본인은 걸어가면서 찬송하나 부르고.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 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모신 곳에 있습니다. 주님 함께 하는 곳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를 보십시오. 우리가 그 전보다 얼마나 화려하고, 잘 살고, 잘 먹고,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 리의 가정은 한없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 보셨지요. 우리는 이혼율이 세계 2위에 올라와 있 습니다. 웬일입니까? 일본보다 더 앞질러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말 할 단계가 아니에요. 자살이 얼마 나 많은지 시사저널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의식을 조사했는데, 매일 죽고 싶다는 아이들이 13%. 죽고 싶다. 학교에 가도 공부도 힘들고, 짜증스럽고, 집에 와도 위로 받거나, 기쁨이 없어요. 갈 데도 없고, 전자오락에 빠지고, 성격은 강퍅해 지고, 음란 비디오 보면서 도덕은 무너지고. 죽고 싶대요. 한 달에 한 번씩 죽고 싶다는 학생이 46%, 살겠어요? 우리나라가 자살도 세계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어요. 온 나라가 자꾸 죽어요. 자살해 죽어요. 청소년 탈선 가출이 얼마나 많습니까? 네 번째 범죄가 한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폭력, 학교 폭력, 사회 폭력, 가정 폭력, 마약, 술, 성적타 락. 오늘 우리는 전체적으로 상처와 아픔투성이로 나오고 있습니다. 없어서 이렇습니까? 몰라서 이 런 것입니까?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 다. 주 예수님 품안에 안기어야 합니다. 가정을 회복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번 준 기회를 놓쳤는데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 한 분이 면 넉넉히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잘살아도 좋고, 못 살아도 좋습니다. 남편이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습니다. 자식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부모가 계셔도 좋고 안 계셔도 좋습니 다. 테레사 수녀를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어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화여대 김활란 박사 보십시 오. 아무도 없어도 천국같이 살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있 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내 주 예수 모심으로 우리는 천국같이 살 줄 믿습니다. 주여 우리 가정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우리 가정을 회복하여 주십시오. 죄에서 건져 주십시오. 주님께로 우리가 돌아가 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죄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의 특징이 무엇이지 요? 요사이도 신문에 자주 보게 됩니다만 검찰이나 경찰서에 불려가 있는 사람은 고개를 떨굽니다.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모습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 님 앞에서 범죄한 우리 인간이 어떤 모습이냐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도 똑같습니다. 고개를 떨굽니 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떨굽니다. 희망이 없어져요. 용기가 없어져요. 부끄러워요, 자신이 없어요. 그 런데 죄를 지으면 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퍅해져요.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 치고 강퍅하지 않 은 사람이 없어요. 그곳에 갔다 오면 더 강퍅해지고 별을 더 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길이 막혀요. 죄 인은 분리되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이 다 끊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다 끊어지는 거예요. 행복과 끊어져요. 하나님을 떠난 아담, 이브가 땅을 가니까 땅이 도와주느냐? 아니라고 했어 요. 이미 권세가 떠나갔어요. 에덴동산에 있을 때는 능력이 있어서 땅도 말을 잘 듣는 거예요. 하나님 을 떠난 인간은 곡식을 심어도 곡식이 거두어지지 않고요. 일하며 땀을 흘리며 수고해도 열매를 거두 지 못해요. 부부간에 노력하고 한없이 이해하고 참으려고 해도 행복은 점점 멀어져요. 수고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영육의 축복을 얻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죄에서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주님을 영접하고 오늘 본문 에 나오는 간수장도 온 식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주님을 모신 임마누엘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 와 자식간에 관계도 회복되고 부부간도 회복되고 형제간에도 회복되고 또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도 다 회복이 되어서 좋은 아버지로 회복이 되고 좋은 아들로 태어나게 되고 부모로 태어나게 되고 자식 으로 태어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창조함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거룩함이 주의 손에 능력 이 주의 손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데 있 는 것이 아닙니다.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미국에 등반가 한 사람이 서부지역에 사막지역의 협곡을 혼자 등반하다가 바위가 떨어져서 손이 끼었어요. 신문을 보셨는지요? 손이 낀 상태로 3일을 버텼어요. 힘 이 서서히 빠지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조금 늦으면 안되겠다. 사는 길을 찾아보니 아무도 없으니까 어떻게 했느냐? 팔뚝을 묶고, 손의 뼈를 부러뜨린 거예요. 그리고 등산용 칼로 1시간 넘게 손을 자르 고 나온 거예요. 그리고 내려오다가 사람을 만나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이런 걸 안보고 뭘 보세요? 얼마나 놀라워요? 신앙은 도대체 뭡니까? 조에서 한 번 붙잡히면 떨어질 수 있 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에게로 가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철저한 회개가 없이는 생명을 건질 수 없습 니다. 이 사람이 왜 이걸 부러뜨렸어요? 생명이 천 배 만 배 중요하니까 억 만 배 소중하니까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결단이 간단해 지더라는 거예요. 아프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못하지요. 평상 시에야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나 조금 더 지나면 지신에게 자를 힘도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살 아야 된다. 나와야 된다는 생각할 때는 어렵지 않은 것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두 눈으로 지옥 에 가는 것보다 한 손으로 천국 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은 죄 에서 그냥 살려면 그대로 사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영생을 얻고 우리 가정이 영영, 만만, 은혜와 복 을 받으려면 적어도 죄 하나는 끊을 줄 아는 담대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주신 우리의 가정에 찬송이 흘러나오게 하고 정말 주님이 왕노릇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는 기도가 즐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신앙만이 우리를 승리하 게 합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록펠러에게 얘야 너는 주일을 꼭 지켜라. 어렵지 않습니다. 재벌을 만드 는 길, 위대한 세계적인 인물을 만드는 길, 간단한 몇 가지만 알면 누구든지 위대한 인물을 만들 수 있 습니다. 주일 잘 지켜라. 두 번째, 너는 십일조 꼭 해라. 반드시 해라 그리고 교회에 나가거든 꼭 앞자리에 앉 아라. 나올 바에는 바짝 붙어야지요. 안나오면 몰라도 나올 바에는 신앙을 바짝 붙여야지요. 이 생명, 이 구원, 이 영생,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올 바에야 빨리 빨리 나와서 은혜 받고 가고 오늘 이렇게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방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성도 되시기 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가 되 시는 성도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세상에서 의 구원을 이 땅을 떠나서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주신 가정에 논리는 간단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보면 효도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깁니다. 감사하는 마음, 가르치지 않 아도 저절로 나오고, 열심히 공부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 이게 배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일 때 저절로 만들어지는 저절로 본능적으로 살아나는 자녀의 성품이요 인격인 줄로 믿 습니다. 제가 목회 연구하는 자리에 닭은 몇 마리 먹이거든요. 이번에 6마리가 계란을 품었어요. 알에서 병 아리가 며칠만에 나오지요? 21일이에요. 3주예요. 저는 농촌에서 살았어도 이번에 다시 깨달았어요. 여러 마리니까 너무 잘 배웠어요. 닭이 달걀을 20개를 넣어주면 그것을 품는데 21일 동안 3번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목이 마를 텐데 닭은 원래 쉬지 않고 먹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도 안나 오고 가만히 앉아 가지구요. 종일 앉아 있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몸이 바싹 말라 들어가요. 그래도 기어이 참고 나중에 병아리가 한 17, 18일 되니까 삐악삐악하며 나와요. 21일이 되니까 그 품안에 오 글오글 한 거예요. 그런데 다 그런 게 아니에요. 어떤 닭은 매일 바람이 나가지고 앉았다가 나오고 앉 았다가 나오고 이건 가만히 앉아있지를 않아요. 이건 병아리 한 마리도 못나오는 거예요. 항상 그 체 온을 유지시켜 주어야 하는데 이 여자, 여자가 아니고 이 닭이 바람이 들어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그 래서 제가 가만히 그것을 보면서 우리 가정생활을 성실하게 진실하게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그 열매가 많고요. 나중에 그 품안에 온갖 축복이 가득가득 채워질텐데 가정생활을 우습게 알고 막 돌 아다니는 그 품안에는 사실은 가정밖에 주시지 않았는데 세계를 품어요? 가정밖에 안 주셨는데 어디 가 뭘 품어요? 돌아다니다가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 아무것도 없이 헤매는 거예요. 병아리가 자기 어 미 품을 너무 잘 알아요. 다 어미를 찾아가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 앞에 성실하 게 진실하게 힘들어도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 그래야 다 복을 받아요. 쉽게 왔다갔다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아무것도 안 돼. 목회도 그렇고요. 목회도 힘들어도 항상 최선을 다해 자기의 자리를 지킬 때에 하나님의 그 품안에 복을 내려 주시고 가정도 그래요. 기업도 그래요. 기업을 하면서 왔다갔다하고 돌 아다니고 만나고 골프하고 있는척하고 왔다갔다하는 기업, 될 리가 없어요.

저도 세계 수십 개국 다녀보지 만은 우리나라 가정주부들 같이 너무 화장도 별나고 머리도 날마다 하고 도대체 누구한테 보이려고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 어디를 돌아다니고 말이죠. 오늘 우리 사회 가 이 문제가 가정에서 왔고, 가정에 어머니들이 특별히 가정을 잘 지켜 주셔야 되요. IQ는 어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딱 달라붙어서 말이죠. 이렇게 하면 다 하나님이 채워 주셔요. 여기 고박사님 앉으셨는데 그 사모님,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을 보고 놀랬잖 아요. 하루에 8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아이들을 집안에서 교육시키는 거예요. 사모님이 유명 한 교수예요. 그래도 머리 꾸미고 화장하고 이렇게 다니지를 않고 집안에서 아이들과 매일 8시간을 지내는 거예요. 미국 사회가 든든한 것은 가정에 있는 거예요. 어머니들이 철저하게 아이들 교육을 시 키는 거예요. 우리는 아이들만 나가면 바로 나가는 거예요. 뒤따라 나가요. 못된 암탉같이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가정이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도 이브처럼 유혹을 받아 나가면 잃어버린 다니까요. 주님과 함께 감사함으로 경건하게 믿음으로 기도로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든든하게 세워지 는 노아의 8식구 같이 구원의 가정 은총의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가정의 달이 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아 길러주신 부 모님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시고 우리 또한 믿음의 부모 되어 자녀를 믿음으로 잘 기르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을 헤치는 원수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 가정을 지켜주옵소서 주님 모시고 살아가는 복된 가정 만들어 주옵소서.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