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신자의 삶 눅3:1-14
2004년 새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에 우리 교회 임장환 성도님이 세례를 받고, 또한 온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84문에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접붙이는 일이며, 그리스도 안에 맺은 은혜 언약의 여러 가지 유익에 참여하며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중요한 예식입니다. 그리고 성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며, 현재에 성령이 임재하며 미래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소망을 바라보는 예식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이며, 이 신분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배운다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례받은 자답게 사는 삶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임장환 성도님은 우리 교회 마하나임 성가대 지휘자 이지윤 성도의 남편으로 대전과 충남북지역에서는 타악기 연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러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음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임장환 성도님은 지난 2001년 5월 20일에 아내되는 이지윤 성도가 세례를 받을 때부터 우리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출석도 성도님이 세례받은 소감과 자신의 결심을 기술한 내용에도 나타나 있었지만 본인이 원해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지윤 성도는 저의 아내가 인도하고 강남숙 집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함께 기도하며 지금의 임장환 성도가 복음을 믿어 세례를 받고 음악적인 달란트를 받은 대로 우리 교회의 성가대를 함께 섬기게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장환 성도는 교회의 울타리에 들어와 출석은 하였지만 좀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리의 기도가 참으로 더디 응답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설교시간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실함으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지루함으로 언제 설교가 끝나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 성도님 가운데 서서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드디어 복음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지윤 성도와 임장환 성도에게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하여 교회에 잘 출석할 것과 주일에 레슨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눈에 띄게 믿음의 진보가 있었고 우리 교회 새가족 교재인 「하나님의 아는 길」을 공부하면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진지하게 공부하여서 구원의 개념과 교회와 신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과 성도님의 주변에 있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삶을 성경의 원리와 비교해 볼 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아가기 시작하였고, 어떤 삶이 신자의 삶인지 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임장환 성도는 신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동시에 그 품위에 어울리는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오늘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성도가 오늘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배후에서 오랫동안 기도한 여러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말없이 기도와 헌신과 봉사로 열심히 섬기는 좋은 믿음의 가족들이 있음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임장환 성도님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말없이 교회에 봉사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보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교회의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교회에 석유가 떨어져 석유를 사러가기 위해 교육관에 통을 가지러 갔더니 이미 어떤 성도님이 석유를 사다 놓았습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매 주일 식사봉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맛있게 먹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교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비합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말없이 기도하면서 교회가 제 위치에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작은 일에서부터 신경을 쓰며 교회를 기쁘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세례를 받는 임장환 성도님도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까지 배후에서 기도한 아내인 이지윤 성도와 여러 성도들이 있었음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은사에 따라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중보기도하며, 우리 교회에서 말없이 기쁨으로 봉사하는 믿음의 사람들과 협력하여 우리 한샘교회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새해를 처음 시작하는 시간과 동시에 임장환 성도가 세례를 받는 아주 특별한 시간에 세례와 신자의 삶의 관계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일과 신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이 문제를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나올 때 세례 요한이 한 말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세례 요한의 사역과 세례
세례 요한의 독특한 사역은 그의 이름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세례 요한\\\'(ԩՙՁՍՍՇՒ ץ ՂՁՐՔՉՆՙՍ)이라고 부릅니다(마3:1; 막1:4). 이것은 그의 이름에 세례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요한의 독특한 사역이 세례를 베푸는 일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사람 요한\\\'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3:3에도 보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목적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목적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주는 세례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세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요한은 죄를 회개하고 그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게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9:4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에베소에서 온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일과 연관되어 있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심으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기 때문에 세례의 궁극적인 목표인 구원을 얻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세례가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세례 요한이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일을 가리켜 이 책의 저자인 누가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3:4-6의 말씀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은 낮아지고 굽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참고. 사40:3-4) 이 말씀은 옛날 왕이 행차할 때 길을 준비하는 그림을 가지고 지금 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산과 언덕,\\\' \\\'골짜기,\\\' \\\'굽은 것\\\' 등의 표현은 죄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들은 구원을 주시는 분을 맞이하기 위하여 제거해야 할 요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물로 주는 세례도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받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는 오늘날 교회에서 주는 세례와 예수님이 성령으로 주시는 세례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례는 아무에게나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자에게 베풉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을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세례를 베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교회의 시작으로 보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할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는 일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오심의 신비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을 알지 못해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그 분은 부활하여 성령을 주셨다는 사실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행2:37-38)고 도전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세례를 받는 일과 회개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회개하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베풉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임장환 성도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습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삶
그러면 구원을 얻는 필수조건인 회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회개\\\'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로 \\\'죄를 뉘우치고 슬퍼한다\\\'는 의미인 \\\'니함\\\'(nicham)이라는 말과 \\\'돌이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슈브\\\'(shubh)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신약성경에는 \\\'니함\\\'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메타노이아\\\'(metanoia)이고, \\\'슈브\\\'를 번역한 것이 \\\'에피스트레포우\\\'(epistrepho)인데, 상호교체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메타노이아는 회개의 과정 중에 내적인 변화와 연관되어 있고, 에피스트레포우는 내면적인 변화가 외형적인 생활로 나타나는 삶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아는 사람에게는 복잡하지 않으나 원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하게 보이는 듯한 설명을 한 것은 단어적인 의미로 회개는 그 마음 속에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것과 아울러 외적인 행동으로도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kema)라는 훌륭한 신학자가 회개가 무엇인지를 성경적인 개념을 잘 정의하였습니다. \\\"회개는 중생한 사람이 삶에서 온전한 변화를 보이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의식적으로 돌이켜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Saved by Grace, 127).
이러한 그의 정의가 성경적으로 잘 정의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 본문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당시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나왔을 때 신랄하게 책망한 말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3:7-8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의 조상이라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세례 요한의 설명 중에 세례를 받는 일과 장차 올 진노를 피하고 구원을 얻는 문제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의 이 설명은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 내용적인 의미인 진정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행한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다면 외적인 표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 받은 자답게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이 본문에서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그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 본문에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세례를 받을 수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시에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있었던 무리들도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복음 3:10에서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말씀의 의미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이 무엇이지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흥미있는 것은 헬라어 성경에 보면 옷은 겉옷(בՌՁՔՉՏՍ)이 아니라 속옷(ՉՔՙՍՁՒ)입니다. 당시에 누구나 겉옷은 입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옷은 저당에 잡힐 수 있는 것이었고,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속옷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핵심사상은 가난하여 속옷조차 입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있는 자는 가난 한 자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우리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전반적인 활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새로운 변화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한 자는 더욱 부해 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 지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의외로 고통을 받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돌아보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고, 구원받은 자의 신분에 적합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 말고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도 우리가 사랑을 보여야 하나님을 아는 자요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하는 사실을 요한1서 4:16-18에서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옷 두 벌이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주십시오. 양식이 있는 자는 없는 자들을 위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세례받은 자의 삶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리도 구원을 얻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눅3:12)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정한 세 외에 더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당한 과세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로마가 무력으로 유대를 정복하고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은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하여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하청을 주어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원망을 덜 들으면서 세금을 거두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의 세금제도는 그들에게 봉급을 주지 않고 세금의 일정한 부분은 로마에 바치게 하고 나머지 징수한 세금은 자신들이 가지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자연적으로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옳지 못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두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세리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특히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방인과 죄인처럼 여겼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요구로서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세금을 받는 세리는 부당하게 세금을 매겨서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국세청에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와 상관없는 것을 간주하지는 마십시오.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모든 집단 가운데 세리를 모(母)집단으로 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위와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직업군인들(ՓՔՑՁՔՅՕՏՌՅՍՏՉ)이 와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들에게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눅3:14)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헬라어 뜻을 풀어서 쓰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폭력을 사용하여 사람에게 돈을 빼앗지 말고, 거짓으로 고소하여 감옥을 넣지도 말고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 살아야 한다.\\\" 과거 로마 시대의 직업 군인이나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에 우리나라의 직업군인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군인만이 아니라 그의 지위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짓으로 모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폭력을 행하고 거짓을 행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는 이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3. 열매없는 자에 대한 경고와 우리의 응답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가 모든 골짜기와 산과 언덕, 굽은 길을 곧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까? 세례 요한은 이러한 일을 가리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은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나타나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누십시오.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우리의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으려고 하면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본문에 보면 그 문제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세례를 받으면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켜 아주 놀라운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끼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뿌리에 놓여 있는 그림입니다. 누가복음 3:9을 보십시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그러면 세례 요한이 왜 이 그림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것은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는 말 다음에 세미콜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미콜론 다음에 나오는 말은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습니까? 그것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서 불에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그림을 보여주는 목적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뿌리에 도끼가 놓여있는 이 그림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형식적이고 의식적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하여서 다 구원을 얻고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회개는 단순히 내적인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세례받은 자에게 합당한 삶은 그의 삶에서 온전한 변화를 보이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의식적으로 돌이켜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면 사고방식, 세계관, 가치관이 달라지고 감정상태가 달라지며 행동과 습관 등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ꎸ는 사람은 그의 생활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고 봉사하기를 즐겨합니다.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도 아니라고, 그 지위를 악용하여 폭력이나 거짓을 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외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그는 어떤 면에서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례와 신자의 삶의 관련성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에게 베풉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이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직분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폭력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심판날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복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도 세례받은 자에 합당한 사람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세례를 받는 임장환 성도님은 저와 성경을 공부하면서 여러 차례 본인의 입으로 주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을 밝히고, 술에 취하여 살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한 욕설과 행동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점을 말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역겹고 잘못 되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예수 믿는 사람을 주시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님의 행동이 주목을 받고 비판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성도님의 말과 행동이 성도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그의 복음이 전파되는냐? 아니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고 복음을 전하는 길이 막히느냐 하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나 성도님이 세례를 받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서 산다면 성도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바와 같이 온 천하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그 안에 있는 모든 풍성한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위 힘있는 사람과 줄서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줄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께 줄을 서는 것은 가장 안전한 줄서기이며, 이 세상에서 무수히 많이 선택하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택한 것이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