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라 이것이 내몸 이니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막14:22-26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막14:22-26





오늘 본문은 기독교의 성만찬 제정입니다. 유대교의 유월절 만찬이 오늘 본문으로 해서 기독교의 성만찬으로 전환됩니다. 유월절 만찬에서의 떡과 잔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겪었고 그리고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의 고난의 떡과 생수를 의미했습니다만 오늘 예수님의 성만찬에서의 떡과 잔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성만찬을 통해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우리 삶에서 구체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종교는 구원의 확실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모든 사람이 환히 볼 수 있는 길이라야 합니다. 종교의 생명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추상적인 교리에 묶여 있게 되면 오리무중이 되고 맙니다. 뜬 구름 잡는 식이 되고 맙니다. 교리가 추상적으로 되면 사변적이고 궤변적인 것이 돼 버려 철학이 되고 맙니다. 철학은 가설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실제, 실존적 진리를 추구합니다.

우리 기독교도 종교인 이상 교리가 중시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가 추상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교리가 우리 삶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실천되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믿음이 내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한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생활, 긍정적인 생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는 생활,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도 말로만 사랑 사랑하면 뭘 합니까? 이웃 사랑은 나눔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나눔이 없는 삶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율법을 추상적인 교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교의 교리가 백성들을 율법 속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그만 율법에 묶이고 말았습니다. 유월절 만찬도 너무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통한 신앙공동체의 나눔이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유월절 만찬을 그리스도의 성만찬으로 바꾸시면서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만찬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느냐? 모든 인류를 위해 그 몸과 피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몸은 생명의 떡이요 그 피는 언약의 피 입니다. 그래서 성만찬을 통해 생명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성만찬이 성도의 교제로 우리 생활에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나눔을 통한 교제, 이것이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말로 백 번 사랑한다고 외쳐대도 그 사랑이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을 함께 하는 나눔, 이 마음을 나누게 되면 소유도 나눌 수 있잖습니까?

II. 본문 강해

예수님의 지상 마지막 유월절 만찬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율법의 전승인 학가다의 가르침에 따라 포도주 첫 잔을 들고 손을 씻은 다음 쓴 나물을 먹습니다. 그리고 둘째 잔을 들었습니다. 이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을 차례입니다. 유월절 만찬에서는 만찬을 주도하는 사람이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합니다. 그 감사기도 내용이 학가다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우리 조상들이 먹은 고난의 떡이다.

주린 자는 누구나 와서 먹을 것이요 가난한 자마다 와서 유월절 식사를 먹을 지라’ 또는 ‘땅에서 떡이 생기게 하신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우리 하나님이시여 찬미를 받으소서’. 이렇게 기도를 한 다음 떡을 떼어 먹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학가다의 교훈에 따라 이렇게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떡의 의미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불과 몇 시간을 남겨놓고 유월절 만찬의 떡을 가리켜 ‘이것이 내 몸이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역사적 사건이 곧 전개될 순간입니다. 제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을 보시면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Longfellow라고 하는 유명한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연자방아는 서서히 돌지만 완전하게 돈다’(God\\\"s mill grind,slowly but surely). 하나님이 작정하신 인류구원의 십자가 사건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입니다. 인류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역사 History는 His Story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역사는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안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선하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참고 견디면 반드시 승리의 역사가 만들어질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면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이요, 예수님의 몸을 바로 세우는 삶인 줄 믿습니다!

1. 22절,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감사기도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그냥 먹기 전에 식사기도 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본문 말씀이 주는 뉘앙스를 읽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만찬의 자리는 고별의 자리입니다. 잠깐 헤어지는 고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더구나 이제 주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겪어야 하고, 엄청난 수모와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또 같은 사람입니다. 배신당하면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수모를 겪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맞으면 아픕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우리와 또 같습니다.

사람이니까요.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수님은 아십니다. 그런데도 떡을 들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어떤 때 감사가 됩니까? 여러분이나 저는 받아야 감사가 됩니다. 일이 잘 돼야 감사가 됩니다. 받고 소유하고 잘 될 때 하는 감사, 이럴 때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는 대단히 초보적인 감사입니다. 그러나 받지 못하고 잃어버릴 때에도 하는 감사, 일이 잘 안 돼서 힘들 때에 도 하는 감사, 손해 보면서도 하는 감사, 이게 수준 높은 감사입니다. 그리고 진짜 감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것을 나눠주면서 하는 감사입니다. 자꾸 나눕니다. 나눔을 통해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 지금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요. 온 몸이 갈기 갈기 찢어지는 아픔과 두려움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감사함으로 순종하시는 주님, 손가락에 가시만 박혀도 아프다면 찡그리고, 조금만 손해를 봐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우리 아닙니까? 부끄럽지 않습니까? ‘오 주여, 용서하옵소서!’. 제자들의 배신을 미리 용서하시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는 주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작은 이해타산 때문에 미움을 잔뜩 품고 있는 이 죄인,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오 주여 용서하옵소서!’

2. 22절,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조상들이 먹은 고난의 떡이 이제는 예수의 몸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선언으로 유월절 만찬이 주님의 성만찬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된 유월절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만찬은 우리 주님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면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 물론 여기 이 떡은 누룩이 없는 떡입니다. 누룩은 밀 기울이로 만든 발효제 아닙니까? yeast입니다. 떡에도 이스트가 들어갑니까? 빵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빵에는 보통 발효제인 이스트가 들어갑니다만 그러나 유월절 빵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말 구약성경에서는 무교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죄의 속성을 누룩 같은 것으로 봅니다. 죄는 금방 막 퍼져서 빵처럼 부풀어버립니다. 그래서 유월절 빵에는 전혀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흠 없고 티 없는 정결한 빵,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다 아담의 원죄가 전이 되었지만 예수님에게는 그 원죄가 전혀 없습니다. 누룩 없는 유월절 떡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내 몸’은 예수님의 신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1절에서는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낸 몸이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영원한 현존(his abiding presence)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있지만 그러나 영원히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이 성만찬을 기념하여 지킬 때마다 거기에 예수께서 실제로 현존해서 계시겠다는 서약입니다. ‘비록 이제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다 도망치겠지만 그러나 나는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고 언제나 함께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비록 여러분들이 세상 삶에 바빠서 예수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님은 결코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십니다. 힘들 때나 아플 때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지금 여러분들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우리 아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축복하심 속에 살고 있는 줄 믿습니다!

3. 23-24절,‘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피니라’

떡을 먹고 난 다음 세 번 째 잔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린 다음 그 잔을 제자들에게 돌리면서 ‘이것은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도 피는 단순히 신체에서 나오는 혈액을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생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입니다. 떡을 주실 때에는 ‘몸’이라 하셨고, 잔을 돌리실 때에는 ‘피’라고 하셨습니다. 몸과 피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몸속에서 피가 흐르고 피가 흐름으로 몸이 삽니다. 그러므로 몸과 피는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입니다. 마태복음 26:28절에서는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속죄의 피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하나님의 피로만 씻겨지고 그 흔적이 덮여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원죄, 아담의 범죄로 전이된 그 원죄는 그 누구도 씻어낼 수 없고 덮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씻겨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인간의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죄의 대가라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가 대속됐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용서되고 구원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 ‘언약의 피’라는 말씀이 좀 어려운 말씀입니다. 여기의 ‘언약의 피’라는 말씀은 예레미야 31장 31절의 새 언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새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그 새 언약의 내용은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날이 이르리니’의 그 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시는 그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그 날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여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바로 이 말씀이 여기 24절의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어째서 새 언약이냐? 구약의 언약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흘리시는 피’입니다. 모든 사람, 세상사람 모두입니다.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흘리시는 피 입니다. 그 피로 여러분의 죄가 씻겨지고 덮여지고 있는 줄 믿습니다!

4. 25절,‘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는 마시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의 의미를 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 율법에 의한 유월절 만찬은 이제 최종 마감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성만찬이 지켜집니다. 둘째, 지상에서의 만찬은 이것으로 끝난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는 새로운 만찬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집니다. 그때 천국 잔치가 베풀어집니다.

우리 주님께서 만국을 다스리는 그 날,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고 하늘의 식탁이 만들어집니다. 그 날 주님과 우리 다 함께 새 것으로 먹고 마실 줄 믿습니다! 새 것으로 마신다고 하셨습니다. ‘새 것’이라고 할 때 시간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있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어린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새롭게 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적 변화는 아닙니다. 질은 같고 다만 모양만 새롭게 변한 것(νεος)입니다. 그러나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전혀 질적으로 변한 것(χαινος)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면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새로운 떡과 잔을 받을 줄 믿습니다!

IV. 맺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분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해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으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영생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성찬예식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은 여러분들은 하나님 품속에서 영원토록 살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