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을 받을때

   성찬을 받을 때/막14:22-25

성찬을 받을 때
막14:22-25





시인 김지하씨는 \\\"밥이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지하씨는
성찬 예식을 기독교의 중심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고 \\\"이
것이 내 몸이다.\\\"라고 하신 것은 곧 \\\"빵이 나 그리스도다\\\"라고 말씀하
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성찬식을 하면서 빵을 먹
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만약 최
후의 만찬이 한국에서 이루어졌다면 예수님께서는 밥을 놓고 \\\"밥이
나 그리스도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김지하 시인의
명제 \\\"밥이 하나님이다.\\\"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호흡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부류의 구체적
인 신관(神觀)입니다. 밥을 입에 넣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즉 생활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눈
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
다. 하나님은 막연한 존재가 아니라 호흡 속에서, 밥 속에서 발견하
게 되는 구체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년에 네 차례씩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
찬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자주 받는 성찬, 성찬의 의미는 아마 다
알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간단히 새겨봅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과 한몸이 되는 예식입니다. 그분의 생명을 먹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내안에 있습니다.
성찬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는 것입
니다.
성찬은 구약의 유월절 사건으로서 어린양 예수님의 피흘림을 통해 죽
음의 재앙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여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이 제정하신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주님과 더
불어 영원한 만찬을 누리게 될 것을 이곳에서 기념하면서 느끼게 되
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성찬식에 참여하여 떡과 잔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성찬식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때 여러 가
지 설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떡과 잔을 받
아 입에 넣을 때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주장합니다. 루터교
에서는 공재설로서 떡과 잔속에 예수님의 몸과 피가 함께 한다고 믿
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장로교에서는 기념설을 믿습니다. 누가복음
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
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기념하는 예식
으로 지켜야 합니다만 항상 이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사명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전 날밤에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여 제자들과 나
눌 때는 이미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진 것은 주님의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잘 나타나 있습니
다.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돌리시되 내뜻대로 마옵시
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은 자신
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그 길을 기꺼이 가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
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우리
를 구속하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는 사명을 알았
기 때문에 성찬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예식은 불과 12시간
도 채 지나지 않아서 십자가 위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
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명감이 성찬
이 되어 주셨다는 것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함께 깨달아야 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
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사명감당함의 충성됨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
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주님께서 사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얼마나 잘 감당했는가를 느껴야 하고, 나 자신에
게 맡겨진 사명도 생명을 걸고 준행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시
간이어야 되어야 합니다.
1840년, 리빙스턴은 런던선교협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
에 파견되었습니다. 이 때 그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27세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두메까지 들어가 전도사업에 진력했습
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
작했고 세계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1871
년에는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
를 만나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
는데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리빙스턴은 자신의 경험
으로 \\\"사람은 자기 사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
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 선교를 강행했습니다. 그 후 리
빙스턴은 스탠리 일행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다가 1873년 뱅귀울루 부
근의 마을에서 이질로 사망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당신도 아름다
운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혹 친구를 위하여 내어주는 사랑도 있습니다. 혹 모르
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의로운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가 남은
살리고 자신은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의를 가지고 하는 행위입니
다. 그래서 그렇게 죽은 사람을 \\\'의사자의 죽음\\\'이라고 해서 정부에
서 보상을 하고 그의 죽음을 높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런
죽음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살과 피를 내어준 것은 모든 인류를 대
속하기 위하여 주는 것으로서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얼마
나 어떻게 깨닫고 있습니까? 성찬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은 아픔
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어머니의 피를 흘리게 하였고, 죄 용서함을 받
고 다시 태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진정 아픔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아픔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
찬을 받을 때 막연한 사랑이 아닌 고통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러므로 우리도 사랑하면서 찾아오는 아픔은 기꺼이 받아 넘겨야 합니
다. 진짜 사랑은 아픔과 죽음이 요구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생살
을 찢고 생살 속에 있는 피를 흘리게 하는데 어찌 아픔이 없겠습니
까? 성찬을 받을 때마다 아픔의 사랑을 깨달으시고 그 아픔의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의 자리로 다가가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도 십자가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랑하
는 죕니까? 왜 이렇게 고통이 따릅니까?\\\" 라고 반문하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진짜 사랑은 아픔이 있고 아픔의 사랑 속에 달콤한 꿀 같은
사랑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사랑할 때
아픔을 느껴보셨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당신의 것을 찢어
보셨습니까? 생명을 내어주었습니까? 그분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당신
이 잃은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만찬은 사랑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성찬입니다. 이 사랑의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항상 주님의
고통의 사랑을 느끼며, 또한 나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을 극복할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떡
과 잔을 받을 때 아픔의 사랑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희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찬으로 주신 떡과 잔은 곧 주님의 살과 피였습니다. 이것은 자신
을 희생한 것입니다. 그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최근까지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법에 의하여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생겨진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흑
인 교회인 성 시온 교회에서 수난일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이 예배 때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자기가 정말 고맙
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에 백
인 판사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존경을 받는 판사로서 대법원장에 내정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올리버 판사입니다. 시온 교회에서 이루어지
는 세족 예식의 광고를 듣고 그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의 흑인
여종 마르다 포트윈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흑
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입
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내 아들딸들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 준 정
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 소식이 퍼지자 내정되었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
된 것은 물론 판사직도 박탈당했습니다. 시온 교회 목사가 올리버씨
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올리브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
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
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희생 없는 사랑이 있겠습니까?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아픔의 사랑
을 깨달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아픔은 바로 희생입니다. 자기를 내
어주는 희생, 자기 것을 손해보는 희생, 자기의 재물을 찢겨져 나가
고 자기의 권력과 명예가 찢겨져 나가고, 인관 관계가 찢겨져 나가는
희생의 아픔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찬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희생은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당신의
작은 희생이 한 생명을 살 릴 수 있습니다. 희생의 가치를 깨닫는 성
찬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참된 용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영국교회에서 뉴질랜드에 헌신적인 선교사를 파송했습니
다. 몇 해 동안 힘써 일하고 성공한 후에 그는 어느 안식일에 야만인
생활로부터 개심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지방에서 성찬식을 베풀
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성찬식을 인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일
어나서 교회의 반대편으로 황급히 갔습니다. 그러더니 곧 돌아와서 조
용히 제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성찬식이 끝난 후 목사가 그를 한쪽
으로 데리고 가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할 때 나의 아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빨
아먹은 이웃 종족의 추장이 바로 내 다음 사람임을 알아챘습니다. 나
는 모든 신에게 그 사람을 처음 만날 때에 죽이기로 서약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복수해야겠다는 충동이 거의 나를 압도
하여 선교사님이 보다시피 그 힘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돌진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이 십자가상에 달리실 때 자기를 못 박은 자를 위해
서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있는
지 모르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옆
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찬을 받을 때는 반드시 주님의 용서를 깊이 깨달
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큰 용서를 베푸셨는가를 깨달아
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성찬을 받는 의미가 없습니
다. 주님의 용서의 잔이 바로 오늘 우리가 받는 잔입니다. 용서의 떡
이 바로 우리가 받는 떡입니다. 혹시라도 당신은 주님의 엄청난 용서
를 받아놓고도, 오히려 당신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마음으로는 이 잔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분이 계시면 마음에 용서를 먼저 하시고 이 떡과 잔을 받
으시고 떡과 잔을 받는 순간에 모든 미운 마음과 증오의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성찬을 받을 때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교제를 생각해야 합니
다.
주님이 성찬을 베푸실 때 열두 제자가 한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공동체의 지체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성찬을 받을 때 대구
칠곡교회의 지체들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공동체의 지체는 지상
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가서라도 갖
는 영원한 교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눈 혈맹관계입니다. 예수님
의 생명을 나누어 먹고 마신 자들입니다.
1972년 우루과이에서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가 눈 덮인 안데스산맥
에 추락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4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고 후 67
일이 지난 후 16명이 살아 있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죽
어간 동료들을 눈속에 묻어놓고 그 살을 배어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다
고 했습니다. 당시에 살아남은 호세라는 청년이 목사에게 고백하기
를, 성찬식 때 습관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을 뿐이었는데 막
상 친구의 살을 먹으면서 비로소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
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
다.
그러므로 성찬은 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서
로 나누어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은 자신을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까지 말입니
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
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
냐?\\\" 아멘. 오늘 이 성찬식을 받을 때 한 사람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
한가를 깨달으십시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용서를 깨달아야 합니다. 끝으로 성찬을 받을 때마다 천국에서의 주님
과 영원한 교제를 생각하십시오. 영원한 즐거운 자리에서 아름다운 잔
치에 참여할 소망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