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성찬의 의미를 아십니까? 막14:22-26
누구에게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스러운 일들이 있습니 다. 각자가 경험하는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 감동의 의미는 하나 같이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영적 감동으로 온몸이 구름을 탄 듯한 경험을 한 때가 있었습니 다. 처음 경험은 세례 받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고향의 시골교회를 다니던 때였고 목사님이 귀한 세월이었기에 우리 교회도 예외 없이 전도사님이 시무하셨고 당회장 목사님은 1년에 1회 순행을 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요즈음 큰 교회처럼 성례식이 자주 있을 수 없었고 당회장 목사님이 순 행을 할 때 세례문답과 함께 세례식에 이어 성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열아홉의 나이, 담임 전도사님이 당회장 목사님의 순행일자를 광고하시고 세 례 받을 사람들을 한 달 동안 교육을 하셨고 당회장 목사님이 순행을 오셔서 세 례 문답을 할 때는 가슴이 천둥치듯 쿵쿵거리고 사지백체가 다 떨리는 것을 참아 내면서 문답을 받고 주일 아침에 세례를 받고 이어 성찬식에 참예할 수 있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일생의 첫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우등상, 개근상은 물론 1등 졸업생에게 수여되는 교육감 상을 받을 때도 그런 감동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이 베푸시는 성례식! 성수(聖水)가 머리에 적셔지면서 목사님의 성수(聖手)가 내 머리에 얹어지는 순간 온 몸이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한 순간을 맞는가 싶더니 마치 한여름에 샤 워를 하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또 경험하면서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이 마루바닥을 흠뻑 적셨고, 바로 이어 일어나는 온몸의 경련과 온몸에 불 이 붙은 듯, 아직은 추웠던 3월의 날씨에도 더워서 땀을 흠뻑 쏟아냈던 일은 평 생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감격에 울었던 시간은 성찬식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6개월 만에 학습을 받고 다시 6개월이 지나 세례를 받게 된 믿음의 순수함을 간직했던 청년의 때, 당회장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바 로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받으시는 떡은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그 귀하신 몸 을 십자가에서 찢으시고 여러분을 영원한 사망에서 살리셨습니다.” 떡을 받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 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구나. 내가 죽을 자리에서 주님이 대신 죽으셨구 나. 이 떡이 주님의 몸이로구나.” 그 떡을 입에 물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참다참다 못하여 “주여 ~~” 하면서 그냥 엎드려 엉엉 울었고 누군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자 집사님 이 내 곁에 오셔서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함께 우셨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받으신 잔은 주님의 피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흘리신 피를 기억하시면서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 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포도주는 그 순간 비릿한 피 냄새로 느껴지면서 주님이 십 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쏟으신 피를 생각할 때 온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이었 습니다. 눈을 감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나는 주님을 위하여 이 몸 을 찢을 수 있을까? 나는 주님을 위하여 내 생명을 다하도록 피를 흘릴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 주님 앞에 서원했던 것이 “주님의 나귀가 되겠 습니다.”였고 오늘도 그렇게 나는 주님의 나귀가 되어 목양의 세월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믿음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감동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은 누구를 무론하고 그 아름답고 소중했던 영적 감동의 순간을 쉽게 잊어버립니 다. 그러기에 입술로는 주님을 위해 살고 죽는다고 하면서 삶의 내용을 뒤집어 보 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오늘의 새사람이 아닌 어 제의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정말 성찬의 의미를 아십니까?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주님은 다락방에 모인 본래 목적인 만찬을 시작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유월절 만찬을 자기 자신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그것 은 성만찬(聖晩餐)이 되었고 또한 그것은 오늘의 성찬예식의 제정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출23:14-17) 가장 큰 절기로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종노릇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설 주에 양피를 발라 재앙이 지나가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죽음을 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마지막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 주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과 연관됨을 말씀 하셨습니다. 즉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구원을 얻은 것처럼 성만찬은 이 세상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구원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설주에 칠해짐으로써 구원을 받은 것처럼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는 죄로 사망에 이른 백성들을 구원 하는 피입니다. 유월절 예식이 어린양의 피로 세워진 옛 언약이라면 성만찬 예식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워진 새로운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이렇게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써 바로 오늘 의 성찬예식입니다. 주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과는 그 내용이 조금 은 달랐지만 의미는 동일합니다. 주님의 성만찬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만찬의 주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축복하심입니다. 셋째는 떡과 잔을 주셨는데 그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신비로운 관계설정입 니다. 즉 이것은 주님과 하나됨과 동시에 이 예식에 참예하는 자들이 주 안에서 하 나 되는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만찬 예식이 초대교회처럼 그 예식이 같지는 않아도 그 의미는 변함 이 없습니다. 성찬의 의미
1. 영생의 길은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22절)
22절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즉 주님이 떼 어 주신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떼어 주시는 떡을 먹 는 제자들은 주님의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시려면 요한복음 6:49-51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로서 내 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즉 성찬식의 떡은 다른 떡과 다를 바 없는 모양도 맛도 동일하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떼어’라는 헬라어는 e[klasen (에크라센)인데 ‘부서지다’라 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몸이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깨 달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가 영생에 이르지 못하지만 생명의 떡이신 예수 님을 믿고 그 안에 살아가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 놀라운 말씀의 언약에 대하여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53-5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 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리고 사도행전 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 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2.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 문제가 해결됩니다.(23-24절)
우리는 23절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가룟 유다 의 문제입니다. 가룟 유다도 분명 성만찬에 참예하였거늘 그는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 은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오늘날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예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행위적인 의식이 아닌 그 의미의 실제적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생활을 잘 하고 교회 의식에 참예한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믿고 그 몸과 피의 의미를 깨달아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17-18절에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다시 말하면 그 당시의 교회로 볼 수 있는 열두 사도의 모든 범사에 유다가 분 명 한 직무를 맡아 수행했지만 그는 구원의 은혜에는 이르지 못함을 의미하는 말 씀입니다.
그러기에 24절이 진리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인간의 모든 죄를 해결하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구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렇습니다. 언약의 피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짐으로 살게 되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 혈이 우리의 마음 문설주에 칠해짐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화려한 예배당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성의(聖衣)를 자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엄한 의식을 자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자랑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사회봉사도 좋고 구제도 좋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피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입니다. 성경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예수님의 피로서만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믿음을 생활로 표현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생활입니다.
3. 성찬은 하나님 나라의 만찬의 예표입니다.(25절)
25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 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는 구약의 유월절 의식이 최종 마감되었다는 의미이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 막 식탁공동체의 선언입니다. 동시에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새로운 만찬에 대한 확실한 약속입니 다. 즉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만찬 이 있음을 확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찬예식에 참예하는 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장차 영원 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만찬을 바라보면서 감격하는 지상 최대의 감동입니다. 그래서 세례와 성찬을 우리는 성례(聖禮)라 하는 것입니다.
4. 사죄와 구원의 은총은 날마다의 경험이어야 합니다.(26절)
26절입니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성만찬 이후의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감람산은 식사 전에도 예수님이 자주 들리시는 곳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에서는 ‘습관을 좇아’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 면 ‘전에 하던 그대로’입니다. 성찬식을 했다고 금방 일상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다고 당장 특별한 변화가 온 것이 아닙니다. 여전 히 일상생활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재미로 읽어본 이야기책의 글 하나 소개합니다. 기도원 부흥회에 참여하여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한 집사님이 자기는 완전히 권 능의 사람이 되어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행하는 성령 불을 받았다고 확신했습니 다. 그 확신을 확인하기 위하여 호숫가에서 “주여~~~”라고 산천이 떠나갈 듯 외 치고 “이제 나도 베드로처럼 호수 위를 걸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고 호수 로 뚜벅뚜벅 걸어갔는데 그만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볼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의 삶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아닙니다. 간악무도(奸惡無道)가 아닙니다. 경거망동(輕擧妄動)이 아닙니다. 계군일학(鷄群一鶴), 즉 닭 무리 속의 한 마리의 학처럼 거룩과 진실을 생명처 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결초보은(結草報恩), 즉 주님의 은혜는 결코 죽음에 이를지라도 잊지 않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성찬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성찬의 감동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의 몫 입니다.
내 기분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초지일 관(初志一貫)의 신앙생활, 곧 구속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변함없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성찬의 의미를 아십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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