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晩餐) 마26:26-30
성만찬은 우리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제도로서 세례와 함께 기독교의 2대 성례입니다. 성만찬은 유월절 식사 마지막에 제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희생제사를 드리는 유월절이 그 예식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비유하기를 우리의 구속을 이루신 유월절 희생제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전 5:7)...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이며, 이것은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 적용이 되는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 보다 더 큰 구출에 대해 적용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행하신 최후의 만찬은 무엇이며 그 배후에 숨어 있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유월절
유대인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최대의 명절로서 그 전날인 무교절로부터 시작됩니다. 무교절은 누룩이 없는 떡으로 발효되지 않았던 떡을 먹는 기간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교절은 유월절기간에 누룩 없는 떡을 먹는데 대한 별칭이었습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며칠 전부터는 온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각처로부터 와서 흥청거리며 즐기는 전야제를 길게 갖습니다.
니산월 14일 즉 유월절의 전날 오후까지는 집안에 모든 누룩을 제거하고 저녁에는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어린양은 제사장이 성전 마당으로 끌고 와서 희생 제물로 잡습니다. 이 때에 제사장들은 어린양의 피를 취하여 그릇에 담아 그 피를 제단 아래에 쏟는다. 그리고 그들은 번제단에서 어린양의 기름을 태웁니다. 이런 일련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할렐 찬양시인 시113-118편이 불려집니다.
해가 지게 되면 가족 단위롤 모여서 유월절을 지키게 되는데, 온 가족은 어린양의 고기는 구운 고기를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과 함께 먹습니다. 이는 애굽에서 백성들이 구출을 받은 날을 기억하기 위하여 때문이었습니다. 이 날에 보내는 절기는 먼저 가장(家長)이 감사를 드리고 네 번에 걸쳐서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에서 첫 잔은 기도로 시작되며, 둘째 잔은 본 만찬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서 셋째 잔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축복의 잔\\\'이라고 부른다. 이 잔을 마실 때 또 한번의 감사기도 있게 됩니다. 이 때에 가족들은 할렐 찬양의 나머지 부분(시115-118편)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잔을 마시면서 유월절 식사는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유월절은 해방의 기쁨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이들이 애굽의 종되었던 데서 자유롭게 된 것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과 관련을 시켜서 그 의미를 해석해보면, 예수님은 위대한 해방자가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움과 실의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실 뿐 아니라 그를 찾는 모든 백성들에게 참 해방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둘째로 유월절은 안전의 상징이었습니다.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가 죽는 그 날 저녁 이스라엘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준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이루어졌던 만찬은 성찬의 예표로써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2. 만찬에서의 떡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유월절 식사는 명절에 있는 만찬인데, 이것은 최초의 성찬예식입니다. 성찬은 문자그대로 거룩하게 먹고 마시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입니다(요6:35). 육신의 생명이 떡으로 말미암아 공급이 되듯이 영혼의 생명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되고 유지되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받아 먹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주어진 것처럼 그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 \\\'환영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 이것은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고 그에게 영양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나의 삶 가운데에 머물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고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그의 말씀을 동의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 번역에는 \\\"그를 맞아들이고 믿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자에게 삶에 놀라운 변화와 함께 큰 이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에서 \\\'축복\\\'은 하나님이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과 같이 제자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 하였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신 복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큰 기적적 은혜를 말합니다. 그냔 있는 어떤 평안이나 위로, 안정이나 고요함의 축복보다도 더 뛰어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정통 개혁주의 신앙은 성찬식 때에 나누는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하신다는 \\\'영적 임재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성찬식에 예수님께서 여기에 직접 오셔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의 몸과 마음을 경험하는 성찬식에서입니다.
3. 만찬에서의 잔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그리스도의 피는 포도주로 묘사되었습니다. 완전한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는 힘을 내게 하는 떡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잔\\\' 즉 \\\'은혜의 잔\\\'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떡은 먹어서 영양이 되는 것처럼 잔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잔은 은혜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잔\\\'에 대하여는 27절에서 다음 몇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첫째, 이 잔을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피는 동물의 피로 실제적인 송아지나 염소의 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동물의 피와 구별되는 새로운 언약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성찬 예식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는 언약적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잔을 가지시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많은 사람 즉 온 세상의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신 바 속죄의 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그의 죽으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셋째,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린 피\\\"입니다. 그는 고통을 당하시며, 우리의 죄를 면제시키기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은 성만찬 때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대한 축복입니다.
포도주의 연회는 즐거운 교제와 잔치의 기쁨을 절정으로 이어가게 만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먹고 마시는 자는 그 안에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기독교 강요-성찬에 대하여) \\\"성령의 신비한 능력은 우리의 모든 감각을 훨씬 초월하여 계십니다. 지성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결합시킬 수 있고...그의 살과 피에 대한 거룩한 참여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마치 우리의 골수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성찬은 이해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 로마의 애천에 동전을 던지면 연애에 성공합니다는 것이나, 또는 경북 어느 지방에 있는 지팡이를 사면 오래 산다는 등입니다. 명산 또는 효험 있는 온천을 찾으며 병 낫기를 모여드는 행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년 첫해에 동해안에서 첫째로 해맞이하면 한해에는 운수 대통한다는 등의 미신이니 의미를 부여시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영산의 물이나 효험 있는 어떤 신비한 음식이나 기념되는 것에 매료를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이 언약적 축복은 어떤 행위보다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더 큰 효력이 있습니다.
결 론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으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모든 사랑의 관계를 갖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드신 최후의 만찬은 실제적인 식사였으나, 우리의 성찬식은 예수님의 구속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 주님께서 영적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례를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라 경험하게 되고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서게 됩니다. 성례의 의미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뜻합니다.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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