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주라

세례를 주라/마28:18-20

세례를 주라
마28:18-20





교회가 잃은 영광을 회복하는 구체적 대안은 예수님의 대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대 명령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아라”는 전도요. “세례를 주라”는 양육을 뜻합니다. 전도는 양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린 아이를 낳기만 하고 기르지 않으면 그 아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세례를 준다는 것은 초신자를 양육하여 확신을 가지게 하고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 세례요. 다른 하나는 물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라고 말했습니다.

물세례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요한의 세례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는 세례이었고(행13:24), 예수님의 세례는 죄를 씻는 세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세례를 주셨습니다. 요 3: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 된 자는 세례를 받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복음이 전파와 세례 베푸는 일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믿는 자가 생겼고, 믿는 자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행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 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 8:34-39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여기 37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변주에 보면, “어떤 사본에는 [37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 줄 믿노라]가 있음” 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전도는 반듯이 양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세례는 양육의 열매입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양육하지 않으면 열매가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정하신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것입니다. 아기들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양육해야 합니다. 아기들은 양육하는 만큼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 성도를 양육해야 합니다.



1) 성도의 양육은 삼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성도의 양육에 사람의 수고와 의지가 따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3:6). 하나님은 모든 가축과 풀과 채소를 자라게 하시고 공중의 새도 직접 기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 몸을 서로 연합하여 자라게 하시고 영혼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십니다. 실제로 자라게 하는 것은 사람의 인위적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들이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치시고 의사들은 고치도록 진단과 처방만 합니다.



2) 성도의 양육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합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인격이며 그 사람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름 외에 세례를 베풀 이름이 없습니다. 바울이나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습니다. 바울은 분쟁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고전 1:13-15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그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이름이며, 그 이름은 권능이 있어 그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며(막9:25,행16:18) 그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요16:24).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고(행16:31), 주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행3:6), 그 이름을 믿으면 낫습니다(행4:10).



3. 성도의 양육의 마지막 단계는 세례입니다.



베드로는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세례는 죄사함의 전제가 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은 이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준비의 끝이며 양육의 끝입니다. 빌립이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성경을 가르친 다음 물이 있는 곳에 가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 가다 눈이 멀어 아나니아를 통하여 안수를 받고 눈에 비늘이 벗겨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와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바울을 만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새롭게 일할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전도한 다음에는 반드시 세례를 받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2. 세례의 의미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합됨(Engrafting)과 주님의 사람으로 되기로 언약 맺음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 입니다.



3. 세례가 주는 유익



1) 죄의 용서 및 칭의를 받게 한다(막1:4, 행2:38, 22:16).



세례는 죄의 자복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막1:5, 행8:37)을 전제한 것이므로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칭의는 약속에 근거한 법정적 은혜이므로 율법행위에 관계없이 의롭다함을 입기 때문입니다(롬4:11-16).



2) 중생의 축복을 받는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사활에 참례하므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중생의 축복을 받습니다(골2:12, 롬6:2-10, 고전6:11, 엡5:26). 그러나 죄는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3)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와 교제를 갖게 된다.



세례 받는 사람은 이 패역한 세상에서 나와 구원을 얻고(행2:40), 예수의 제자가 되며(마2:19, 요4:1), 교회와 한 몸이 되고(고전12:13), 성령을 선물로 받으며(행2:38),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고(롬6:4), 그리스도의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킬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마28:20).

이런 은혜를 세례받기 전에 이미 받았으나 세례로 확실히 인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까닭 없이 세례받기를 지연시켜서는 안 됩니다. 신자라면 예수님의 명령에 신속히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회에 가입하므로 그 회원권이 발생하는 것처럼 교인은 세례를 받은 후에 완전한 교인으로써 모든 권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은 세례 받고 입교인이 되어 충성되이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