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영광

성찬의 영광/마26:26-29

성찬의 영광
마26:26-29





말의 힘

예수님께?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따로 모아놓고 축복을 해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주께서 직접 장소를 마련하셨고,
주께서 직접 음식물을 만들어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떡을 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식사가 끝난 다음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신 다음
\"이것을 마시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것은 주님의 선언입니다.
\'내가 내 생애 전체를 놓고 가장 중요한 약속, 중요한 메시지를 내 몸 전체로 서약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보통 선언할 때 말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살 소년이 자살을 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일기에서 밝혀진 소년의 자살의 원인은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소년을 죽인 범인은 어른들의 쓸데 없는 장난 섞인 농담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문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의 가정에 대하여 좋지 않게 생각한 사람이 좋지 않은 농담을 한 것이 소년을 죽인 것입니다.
유익하지 않은 말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만 반면 유익한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문서언어
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입니다. 말보다
글의 위력을 더 잘 나타낸 사건이 있습니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의 연설입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게티스버그연설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극의 전쟁터에서 무슨 말을 해야 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면서 일주일 내내 원고를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게티스버그로 떠나기 한 시간 전에 교회의 설교말씀에서 감동을 받은 말씀 몇자를 메모하였습
니다.
사람들은 워낙 연설 잘하는 이 대통령이 무슨 말할 것인가를 기대했습니다.
어떤 때, 에이브라함 링컨이 연설하고 있으면 그 연설을 받아써야 되는 신문기자들이 연설에 홀려서 연
설내용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아, 잃어버린 연설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기적절하며 정확하게 멋진 표현을 하는 이 에이브라함 링컨이 지금 이 전쟁터에서는 무슨 말할 것인
가를 사람들은 기대하고 그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가 등단했는데, 갑자기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그것은 에이브라함 링컨을 생각하면서 한 작곡자가 작곡한 것을 링컨 몰래 깜짝 놀라게 연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연주 때문에 또 늦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사진사가 링컨 대통령의 멋있는 연설 제스츄어를 잡기 위해서 사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드디어 단에 선 링컨이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는 직접 본론으로 들어가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념은 오늘까지 우리에게 왔고
그리고 그 분들의 정의로운 생각 따라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존귀함을 받
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강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갈라지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들의 희생 위에 이 나라는 번영할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는 영원하리라.\"
그리고는 3분도 못되어 그냥 내려갔습니다.
사진사가 멋진 폼을 잡으려다가 사진 1컷을 못 찍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밑에 내려와서 내 평생에 가장 잘못한 연설을 했다고 침울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서 아들 옆에 3일 동안 인사불성으로 그냥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기록으로 표현해놓으니까
민주주의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Gettysburg Address\"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글의 힘이 클 때도 있습니다.

행동언어
말과 글 못지 않게 중요한 언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행동의 언어를 잘 사용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것이 멸망하였을 때 노아의 가족만은 살아 남아 있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홍수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컴플렉스로 불안하여 하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시는 행동언어를 사용하셨는데 그것이 무
지개입니다.
무지개로 불안한 백성들에게 평안의 말씀을 행동으로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을 부르실 때는 할례라는 행동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너와 나의 언약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유월절이라는 행동의 선언을 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 날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양의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릅니다.
양고기를 같이 나눠 먹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이 날이 어떤 날입니까?\"
그러면 아버지는 자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날은 옛날 애굽에서 고통받던 그 때,
하나님께서 애굽을 마지막으로 치시던 그 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의 무서운 죽음의 신이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그냥 지나갔다.
\" 이렇게 \'pass over\'라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넘어간 위대한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을 그들은 몸
전체로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신앙고백으로 표현했었습니다.

생명의 행동언어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다시 몸 전체의 선언을 하십니다.
떡을 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시면서
\"이 떡을 받아 먹으라.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라.\"
또 주께서 잔을 가지셨습니다.
나누신 다음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 잔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
의 피니라.\" 선언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친 모든 것을 종합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몸 전체의 선언입니다.
행동의 선언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임재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잔을 받으라. 이 떡을 먹으라.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바 내 몸이니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바 내 보배로운 피니라.
너희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사라지며 너의 저주는 너와 상관없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너희에게 생명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 떡과 잔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 생명의 행동언어입니다.
우리를 죄와 저주 가운데서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축복언어입니다.
다윗이 사울이 죽이려는 음모를 피하여 수없이 도망 다니다가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를 하
게 되자 다윗은 일약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왕이 된 다윗은 사울왕에게는 사선을 넘는 피난 생활이었지만 그 피난 생활에도 자기를 목숨 걸고 지켜
준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고마웠습니다.
다윗왕은 그 요나단에게 평생 잊지 못하도록 고마웠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요나단은 죽었지만 요나단의 집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라도 감사를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안타깝게도 어려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두다리가 부러진 채
로 두다리를 절뚝거리는 절뚝발이입니다.
므비보셋이 절뚝 발이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에게 감사한 뜻을 전하기 위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가문의 수많은 재산을 무려주고,
특히 왕의 상에서 왕자들과 함께 밥을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식사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왕자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만일 성찬을 참여 할 수 있는 믿음이 없어서 성찬에 참여 하지 못한다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
랑의 애찬을 포기한 것입니다.
성령께 믿음을 구하고 믿음이 생겨서 영광 중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광의 성찬에 참여 하시기 바랍니
다.
어떤 분은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겸손인 줄 압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영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이 영광을 포기하지 말고 영광스럽게 성찬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축복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남자 직장인들을 많이 전도한 목사님이 계셔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점심시간에 햄버거 먹으며 나눈 대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찬은 영광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치료가 임합니다.
성찬의 축복이 성찬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