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거룩한 예식 마26:26-30
어린 け拷?타고 예루살렘 성을 향해 입성하시는 우리 주님을 앞서고 뒤따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면서 찬송하고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정말 주님을 찬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오전 11시에 드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교회사를 보면 이렇게 예배를 오전 11시에 안 드렸던 때도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적인 전통이 우리 한국에 들어와서 사실 오전 11시 예배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얼마든지 교회에서 변경할 수도 있고 정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배가 주로 저녁 시간에 드려졌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서 교회로 갑니다. 그래서 음식을 펼쳐놓고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애찬 식사를 다 마친 뒤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또 성찬에 참여를 하는 이런 일들이 흔하게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유럽 교회들 가운데 저녁 7시에 주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섬기던 비엔나 장로교회가 원래 빌려쓰던 알버트 슈바이처 하우스에서 드리는 그 모임은 우리는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린 반면에 그들은 저녁 7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빌려쓰면서 주인 행세를 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에 애찬과 성찬에 대한 경계가 불확실할 때, 그들이 저녁에 모여서 함께 만찬을 나누고 또 예배를 드리면서 성찬을 하고 이러는 가운데, 그들 사이에 약간의 내부적인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부자인 어떤 사람들은 늘 맛있는 암소 갈비를 먹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늘 말라 곰팡이가 쓴 빵만 한 조각씩 먹어야 되는, 똑같은 사랑하는 성도들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너무나 요즘말로 하면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아! 이거 뭔가 제도를 바꿔야 되겠구나. 식사는 식사이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찬은 성찬이다.\" 이렇게 해서 사랑의 식탁을 나누는 애찬과 성찬을 완전히 구분을 하게 되어졌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먹는 음식을 두고 마음 상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실 그런 일들이 흔히 있지 않습니까?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할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상대방을 앞에 앉혀놓고 혼자 먹을 수 있는 그런 문화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앞사람이 빤히 쳐다보고 먹지 않은 데서 배짱 좋게 혼자 음식을 먹어내질 못합니다. 그게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끔 생깁니다.
성찬 의식을 진행하다 보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온전하게 세례 받은 세례 교인으로 한정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찬 예식이 거행되는 동안에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떡을 떼고 잔을 나눌 때 멀뚱멀뚱하게 쳐다보게 되는 민망스러움을 아마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모처럼 교회에 와서 성찬 예식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성찬 예식을 통해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목회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한 교회에 남편이 믿지 않아서 늘 기도하고 남편을 전도하려고 애쓰던 어느 집사님이 계셨는데, 모처럼 달래고 달래고 애원하고 애원해서 남편을 어느 날 드디어 교회에 인도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이 그 교회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는 날이었습니다. 앞에서 집례하는 목사님이 성찬 예식을 집례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주욱 말씀을 하시고 난 뒤에 \"여러분 가운데 세례를 받으신 분만 이 떡과 이 잔에 참여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그게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고 이제 떡과 잔이 돌았습니다. 그분이 봤을 때 떡과 잔이라고 해봐야 빵도 조그마한 빵 조각 하나에다가, 포도주라고 해봐야 조그마한 잔에다 한 컵씩 돌리면서 그걸 치사하게 누구는 먹으라 그러고 누구는 먹지 마라고 그러냐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집에 돌아가서 내가 다시는 교회에 안 갈 것이니까, 나에게 교회 가자고 하면 당신하고 이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더랍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성찬과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례와 예식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이 성찬 예식과 세례 의식은 교회에서 정말 2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아주 거룩하게 거행되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의식인 것입니다.
수많은 이 예식을 통해 기독교회가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독교가 온전하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 제국 하에서 4세기 초 AD312년까지는 기독교는 자유가 없었고, 엄청난 박해를 받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순교를 당했어야만 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수많은 로마 황제들이나 로마의 정치권력은 이 성찬 예식을 오해함으로 기독교 박해의 빌미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예수쟁이들은 음침한 지하 무덤 카타콤에서 어린 아이를 잡아서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신다는 이런 유언비어가 온 로마 제국에 퍼져나가면서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솟아 올랐고 또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진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탄압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이 성찬 예식에 대해 오해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찬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하 무덤에서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다?\" 이게 뭔가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월하의 공동묘지\"도 아니고... 하여간 그렇게 오해들이 좍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 성찬과 세례 의식은 기독교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한 교회의 예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교회의 거룩한 예식
교회의 거룩한 예식은 일반적으로 우리 개신 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외에는 교회에서 어떤 의식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안에도 우리 개신교가 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있고, 동방 정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는 이 두 가지 의식을 교회의 거룩한 의식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7가지 거룩한 예식이라고 해서 7가지 예식을 그들은 지키기도 합니다. 우리 개신교 안에서도 침례교회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례 의식을 반드시 그들은 침례라는 용어를 쓰고, 침례교회 용 성경을 보면 우리는 세례라고 번역을 해 놓았는데 그들은 침례라고 번역하고, 우리는 세례 요한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들은 침례 요한이라고 번역해놓은 성경을 서점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만큼 교파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특별히 카톨릭과 우리 개신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카톨릭의 신학자로 알려진 한스 큉 같은 독일 튀빙겐 대학의 교수는 20세기 마틴 루터라고 할 만큼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카톨릭의 7성례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카톨릭 내부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사실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카톨릭은 일곱 가지 성례가 있는데 이것을 성사라고 합니다. 첫 번째로 성세성사인데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세례와 같습니다. 흔히들 영세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카톨릭 신자가 되는 하나의 관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의 세례와 그들의 성세성사와의 차이점은, 우리는 반드시 성직자가 세례를 집례하지만, 그들은 성직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평신도 가운데에도 이 성세성사를 거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가 지금 임종을 맞이하려고 하는 급박한 상황일 때에는 카톨릭 신자인 의사나 간호사가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다음 견진성사라고 거룩한 예식이라고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또 성체성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흔히들 말해 거룩한 몸이라는 말인데 곧 우리 개신교에서 말하는 성만찬 곧 성찬예식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 가면 고해소가 있죠? 신부가 그 속에 들어가 앉아 있고, 신자가 가서 자기의 모든 죄를 다 고백하고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고해성사는 카톨릭 역사 속에 가장 많은 비리의 온상이 되었고, 많은 문제가 되었는데도 카톨릭 교회는 이것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부들의 권위를 높여주는 면이 있지만, 오히려 신부들이 영적으로 타락하는 하나의 타락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스 큉 교수 같은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다음 병자성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종유성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질병이나, 사고나, 노회 현상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임박한 신자들에게 기름을 발라서 축복해주는 의식입니다. 그 다음 신품성자는 성직자로 임직하는 즉 개신교로 본다면 목사나 장로나 집사 안수식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혼인성사 또는 혼배성사는 흔히들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을 거룩한 성사 혹은 거룩한 예식이라고 붙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 칼빈은 성찬예식과 세례예식 외에 어떤 예식도 성경적이지 못하고 그것은 다 거짓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개신교에서 지키는 세례의식과 성찬의식은 가장 성경적인 원리 하에서 교회에서 지키는 거룩한 예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2. 성찬 예식
그러면 우리가 이 성찬예식과 세례의식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을 다 불러모으고 같이 먹을 때에 오늘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그 생애 마지막 자리에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이 성만찬의 예식을 집전을 하시고, 세우시고, 그리고 앞으로 이것을 지키도록 명령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예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식이 바로 이 성찬 예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성찬예식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 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그 말씀을 좇아서 우리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주님의 이 땅에 오심과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합니다.
또한 이 성찬예식의 의미는 예수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받아먹으라고 나눠주시면서 \"이것이 바로 내 몸이다.\" 빵을 찢어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라고 했고, 잔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것을 다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찬예식의 의미는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성찬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다음 세대에까지 계속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찬의 의미는 언약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새로운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어지고 허물어졌는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시고 새 언약을 세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천국백성으로써 함께 먹고 함께 마시는 영적인 교제관계에 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따라 이 성찬 예식에 우리 모든 믿는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이 성찬예식에 참여하지 않고 이 성찬을 회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성찬을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태도인 것입니다. 모든 세례 교인이라면 자기가 지은 죄와 죄책감 때문에 부담감을 느껴서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성찬을 참여하기 전에 자기가 지은 죄를 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우리는 성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됩니다.
내 마음에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으니까 나는 용서하지 않고 이 성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 이렇게 뻗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써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다 용서해야 됩니다. 여기에 따르는 많은 예화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를 더욱 더 주님 앞에서 새롭게 하는, 그리고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에 동참함으로 주님의 삶을 주님의 그 본을 우리의 삶 속에 실천해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또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함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신령한 양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심으로 우리의 몸과 영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의 육신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신령한 천국양식을 먹고 천국음료를 마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힘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만났던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요즘은 이런 예화를 하나 하려고 해도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자기 이야기를 알아보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예화를 들 때 각색을 좀 많이 합니다. 각색을 너무 심하게 하다보면 말이 완전히 엉터리 말이 되기도 합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 한 집사님이 계셨는데 신앙생활은 너무 잘하는데 지독한 골초였습니다. 그리고 지독한 술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어떻게 저렇게 교회에 성실하게 다니면서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할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본인도 그 문제 때문에 늘 부담감을 느끼고 고생을 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이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정말 하늘의 신령한 양식과 하늘의 신령한 음료를 내가 먹고 세상에 얽매여 있는 이것을 끊고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성찬예식을 끝마치고 나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니까 헛구역질이 자꾸 나더랍니다. 술을 마시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파서 술을 못 마시겠더랍니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술과 담배로부터 온전하게 자유함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야! 나도 한 번 실험해봐야 되겠구나.\" 이런 분이 혹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몸과 마음을 더 깨끗하게 더 정결하게 더 거룩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세속에 물들고 찌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함께 정결하게 해 나갈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성찬에 참여함의 유익은 축복과 사례를 통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고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셨다고 했습니다. \"축복하셨다. 사례하셨다.\" 축복하셨다는 말은 쉽게 알겠는데 사례하셨다는 말은 어렵습니다. 이 말은 원어적으로 유카리스테오라는 말인데 이 말도 번역하면 축복이라는 말로 씁니다. 주님께서 그 떡과 그 잔에 축복하시고 그것을 나눠주셨습니다.
이 잔과 이 떡을 받는 것은 바로 우리가 축복에 동참하는 아주 거룩한 행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성찬예식은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가 체험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 가운데,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그리스도와 내가 일심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와 너가 일심동체가 되어지고, 우리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지는 2천년 기독교 역사에 아주 중요한 정통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가장 상징적이고 기념적인 그런 의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꼭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이 성찬예식을 그렇게 자주 하지 않는데, 서양교회들 가운데에는 매주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뒤에 목사님이 이렇게 떡과 잔을 가지고 준비를 해놓고 나가면서 성찬을 받고 퇴장을 하는 이런 교회들도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교회는 이 성찬예식을 할 때 보면 포도주 잔도 각자, 떡도 잘게 썰어서 입에 집어넣기만 하면 아주 쉽게 잘 녹아서 넘어가도록 이렇게 하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교회는 큰 빵 덩어리를 이렇게 목사님이 옆구리에 수건에 말아서 끼고 찢어서 주는 그게 더 성찬의 의미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잔도 말입니다. 큰 잔 하나에 가득 부어서 그 한 잔을 다 돌아가면서 마십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더럽다고, 비위생적이라고 아마 야단법석을 떨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흰 수건을 가지고 한 사람이 마시고 나면 싹 닦고 또 마시고 그러는데 그래도 그게 그것 아닙니까? 저도 거기서 목회를 할 때 제 1조 한 20명 정도가 나와서 둘러앉아서 그렇게 하고 들어가고, 다음 2조가 나와서 그렇게 하고, 또 3조가 나오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성찬예식을 앞에 다 놔두고 둘러서서 떡과 잔을 나누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은 교회마다 다르고 교파마다 다릅니다.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많이 하지만, 카톨릭에서는 얇은 빵을 이상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100원짜리나 500원짜리 동전만하게 만들어서 입에 딱 넣으면 웨하스가 입에서 녹듯이 사르르 녹도록 이렇게 만들어서 주지 않습니까? 그것을 집전하는 신부가 직접 넣어주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그것을 집어서 입에 넣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정교회 곧 러시아나 유고나 폴란드나 이런 동방정교회 정통에서는 성찬예식을 좀 더 걸쭉하게 합니다. 빵을 포도주 속에 다 집어넣어 가지고 저어서 어린아이들 이유식 같이 만들어서 신부가 이렇게 숟가락을 들고 다니면서 입에 떠 넣어 줍니다. 제 생각에는 그건 좀 안 맞다 생각됩니다. 여러분들도 잘 이해가 안되시죠? 참 우리가 수용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동방정교에서는 그게 정통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뭐 그렇게 떠 넣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은 그게 정통이라고 고집을 합니다. 방식은 다 다르고 횟수도 다르지만 성찬의 본래적인 의미는 우리가 이렇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하나 되어지고,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3. 세례예식
또 이와 아울러서 우리가 행하는 것은 세례의식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통해 \"가서 세례를 주라.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례에 대한 명령은 전도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져있는 지상명령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이 세례는 일반적으로 학자들 가운데에는 구약의 할례의식에서 예수님 안에서 세례로 승화되었다고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대교회 때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물세례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례는 씻음을 통한 용서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이 세례의식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씻음 받는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 밥티스마(banptisma)라는 단어에 유래하는데, 이 밥티스마라는 단어를 우리 장로교나 일반교회에서는 세례라고 번역을 하고, 침례교에서는 침례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밥티스마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의적인 의미 중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 \"물 속에 잠근다\"가 있는데 물 속에 잠그는 의식으로 번역하면 침례가 되지만, 또 \"물로 씻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물로 씻는 의식이라고 하면 세례가 되는 것입니다. 또 \"물을 뿌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번역을 하면서 교파간에 용어간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나는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 세례의식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흔히들 우리 장로교에서는 유아세례, 입교, 학습, 세례 이렇게 나눠서 구분을 합니다만, 어떤 교단에서는 유아세례를 베풀지 않는 교단도 있습니다. 침례교 같은 경우에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유아세례는 부모님들의 신앙고백과 부모들이 자녀를 말씀으로 교육하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 양육하고, 영적인 본을 보이면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그런 서약과 함께 당회에서 부모들의 서약을 확인하고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성년세례와 꼭 같이 물세례로 거행하는 것이 유아세례입니다. 이 조건은 양친 가운데 한 사람이 반드시 세례 교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세례교인이라면 좋지만, 그 중에 한 사람 이상 세례교인이고, 어린 아이가 2세 미만일 경우에 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교는 이렇게 유아세례를 받았던 어린 아이가 이제 믿음 안에서 말씀 가운데 부모의 그 신앙적인 양육태도에 의해 자라나서 만 14세 이상이 되면 영적인 성인식과 같은 입교라는 의식을 통해 이제 부모님들의 신앙고백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는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부모님들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이제 입교는 자기 자신이 자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온 회중들과 교회 앞에 자기 신앙을 고백하고 확인 받는 의식입니다. 서양에서는 입교 의식을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거대하게 치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학습이라는 이 의식은 사실 우리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의식이고, 교회를 등록하고 출석한지 6개월 이상되는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믿기로 작정했을 때 교회에서 베풀 수 있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 6개월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또 신앙적인 교육을 받고 다음 세례를 받겠다는 그런 서약과 함께 교회에서 거행하는 의식입니다.
세례는 1년 이상 교회 생활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당회에서 세례 문답과 또 신앙적인 점검을 통해 확인 받았을 때 교회에서 베풀 수 있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개신교 안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는 학습을 반드시 받은 사람만 세례를 받게 하기도 하고, 학습을 받지 않아도 세례를 바로 베푸는 그런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학습을 반드시 받고 세례를 베풀게 하는 교회는 진짜 교회이고, 학습을 받지 않고 세례를 바로 받게 하는 교회는 가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성경적인 원리는 성경에는 학습이라는 제도가 없습니다. 바로 세례를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교회 전통 속에서 하나의 안전장치입니다. 결혼할 때 약혼 절차 없이 바로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약혼 절차를 거쳐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와 유사하다고 여러분이 생각하시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예수님께서 사례하시고, 떼어서 성찬에 참여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이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신령한 믿음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는 일평생 한 번만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성찬은 일평생 반복적으로 계속해야 된다는 것을 함께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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