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팎의 도전과 극복 |
|---|
| 안팎의 도전과 극복 (느 4:4-6) 느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느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느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너 나를 막론하고 남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기보다는 남을 도우며 살고 싶어 하고, 남의 지도를 받기보다는 남을 지도하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도우려면 재력과 체력이 있어야 하고 남을 지도하려면 실력과 지도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도우며 살겠다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부터 나누어야 하며, 남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실력을 닦지 않는다면 설령 지도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보면 무한 경쟁의 시대에 한 나라를 이끄는 대권주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지도자의 자격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만일 리더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단지 욕심만으로 지도자가 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는 지도자 되기보다는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에만 급급하여 독재를 마다하지 않는 폭군이 되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말게 됩니다. 그렇다면 남을 지도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뛰어난 지도력을 행사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여 도리어 전화위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고난 받는 동족과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라는 영화로운 자리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많은 고난을 겪으며 예루살렘에 귀환한 느헤미야의 하루하루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은 물자와 인력을 다 갖추어도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 거듭되는 도전을 극복하면서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느헤미야의 지도력을 통해서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1. 두 종류의 지도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은 정작 유다 백성들을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관심하다 못해 냉담한 백성들을 설득하여 공감대를 이루고 감동시켜 다 함께 일어나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성벽 재건을 시작하였습니다. 뛰어난 리더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같이 수고하는 느헤미야에게 마땅히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할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암몬족장 도비야는 도리어 이를 보고 시기하여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비난하고 조롱하고 모함하고 협박하는 등 온갖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여 훼방하였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도 느헤미야처럼 사마리아와 암몬 족속을 잘 다스려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느헤미야처럼 자기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므로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기득권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한 삶을 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과 달리 오로지 고난 받는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적인 지도력은 산발랏 일당과 현격한 차이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산발랏은 도전을 받고 자기를 반성하고 느헤미야처럼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헤미야 때문에 피해 받는다고 착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산발랏과 도비야는 오직 느헤미야를 낮추고 매장하고 모함하고 죽이는 일만이 자기들의 권위를 회복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느헤미야를 대적하는 일만을 일삼는 비겁하고 악한 지도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느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느 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그러나 느헤미야는 겁먹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 때마다 원수를 자기가 갚는 대신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느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그 결과 산발랏은 그의 여력을 자기 발전이나 성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느헤미야를 대적하는 일에만 쏟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인격적인 사람이 되었고 포학해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대적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일과 공사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함으로 많은 성과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느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예나 지금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나 교회나 국가나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의 리더십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리더십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항상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밀어내고 자기 혼자서만 앞서가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게 되면 시기심이 일어나고,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을 밀어내기 위해 트집을 잡고 험담을 하고 따돌리는 비겁한 짓을 하기 때문에, 실력도 인격도 신앙도 퇴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지도자는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거나, 힘으로 협박하여 패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산발랏과 같은 지도자입니다. 또 하나는 긍정적인 리더십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항상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본받으려고 하고, 자기도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착실히 공부하여 실력을 닦음으로 점차 힘을 키워나가게 되며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입니다. 2. 시험에 빠진 유다 백성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고 하는 궁극적이 이유는 사마리아나 암몬이나 아라비라 사람을 공격하거나 해롭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유다 백성들의 자구책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산발랏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위협만으로는 통하지 않자 기필코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는 물리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느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느 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여기서 1) 심히 분노하여(와우 계속 미완료 동사)는 \"불을 태우다\" cause fire to burn 는 뜻에서 나온 동사이며 대단한 분노로 후끈 달아오르다, 성내다, 노하다\" 를 의미합니다. 2) 함께 꾀한다는 말은 함께 묶는다, 연합하다, 공모하다, 음모하다는 뜻으로 느헤미야를 대적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입니다. 3) 요란하게 하자는 말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하자는 뜻입니다. 이러한 경우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느헤미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계속하고 적을 막기 위해, 파수꾼을 세워 산발랏의 공격을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느 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반면에 그러한 느헤미야를 돕고 격려해야 할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지레 성 쌓기를 포기함으로 지도자 느헤미야를 낙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에게 외부적인 도전보다 더 힘들게 하는 내부적인 도전이었습니다. 느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그렇다면 유다 백성들이 이미 예루살렘 성을 반이나 중건하고서도 그처럼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고 패배주의에 빠져 포기해버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1) 무엇을 보는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중요성을 공감하고 시작은 잘 하였지만 계속되는 공사에 육신이 힘들어 지쳐버릴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유다 백성들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합심하여 느헤미야의 말을 따라 각각 분담하여 공사한 결과 무너졌던 성들이 전부 이어지고, 그 높이가 절반에 이르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 사람들이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보람과 기쁨을 얻기도 하고 정반대로 절망하고 낙심하며 포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 쌓은 절반을 보느냐 아니면 아직 쌓지 못한 절반을 보는가에 따라 기쁨과 감사 하는가 낙심하고 포기하는가가 좌우됩니다. 물론 성의 반을 쌓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을 완성하기 위해서 끝까지 인내하고 지금까지 수고 한 것처럼 수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쌓지 못한 나머지 절반을 보게 되면 낙심하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절반의 쌓은 것이 성공이 아니라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지도자입니까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벌써 반이나 쌓았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2) 누구를 보는가? 산발랏의 일당은 느헤미야가 꿈쩍도 하지 않자, 백성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심리전을 사용하였습니다. 성을 쌓다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목을 베어간다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사람들이 불안에 떨기 시작하였습니다. 느 4:11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그것을 알고 성 쌓기를 포기하고 투항하면 살려 주겠다고 열 번이나 집요하게 유혹하였을 때, 유다 백성들은 다 마음이 약해져서 두려워 떨게 된 것입니다. 느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이와 같이 유다 백성들은 성을 쌓으면서 눈과 귀를 산발랏에게 맞추었기 때문에, 시험과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시종일관 하나님만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소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이 약해지게 되면 사단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더욱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패배의식과 절망감을 조장시켜 좌절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도전을 받을 때,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며 사람의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만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3. 두려워말고 싸우라 느헤미야도 인간이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좀 어렵다고 해서 동족들마저 격려와 위로 대신 원망과 불평만을 늘어놓을 때 아무리 믿음이 좋은 느헤미야지만 얼마든지 좌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여러 번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외부적인 도전 만이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힘을 합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적인 도전만이 그로 인해 나약해진 유다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내부적인 불안은 외부적인 도전보다 더 강력한 대적이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가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지도자는 배신감을 느끼고 회의하며 백성들을 비난하고 책망하고 자기 사명을 포기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나약해진 유다 백성들을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돌아보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믿음의 말로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1) 두려워 말라 느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돌아본다’는 말은 ‘주목하다, 느끼다, 이해하다, 배우다’ 뜻인 동사의 미완료 동사로서 느헤미야의 온유함과 자상함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귀족이나 민장이나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다 불러 모아 놓고 진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산발랏의 일당이 아니라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산발랏이 유다 백성들에게 위협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근원은 환경이 아니라 신앙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이 좋은 지도자들도 위기를 만날 때, 우리와 다름없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만일 강도가 작은 칼을 들고 위협할 때 다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강도보다 더 길고 큰 칼을 내가 들고 있다면 진정 무서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강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고난을 두려워하고 원수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손에 들려주신 길고 큰 검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시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2) 일어나 싸우라 느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대적 산발랏을 두려워 떨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주를 기억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신앙적인 권면을 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맞서 싸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무장하고 담대해야 하지만 담대한 마음만으로 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적을 두려워하게 되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사랑하는 처자식도 잃게 됩니다. 처자식을 살리려면 적과 싸워 이겨야만 한다면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가.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무장하고 느 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가지고 서 있게 하고 느 4:16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여기서 칼과 창과 활은 적을 공격하는 무기라면 방패와 갑옷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무기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무장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에 병기를 잡고 느 4: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적과 싸움을 핑계하고 성 쌓기를 중단한다면 성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고, 성을 쌓는다는 핑계로 적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적의 기습 공격을 받아 성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성을 쌓는 일과 적을 막는 일을 동시에 하게 하였습니다. 다. 나팔을 불게하고 느 4: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어느 공사 구간에서든지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나팔을 불면 모든 공사를 중단하고 그리로 집결하여 적을 막게 함으로 공사가 중단됨이 없이 진행되게 하는 고도의 전술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팔 소리를 들으시고 대신 싸워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라. 절반은 밤을 지키고, 절반은 낮에 일하고 느 4: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느 4: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교대로 적을 지키고, 성을 쌓는 일을 계속함으로 공사가 하루도 중단됨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산발랏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유다 백성들을 오히려 잠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항상 깨어 성을 지키며 성을 쌓게 하였고, 온 백성들을 똘똘 뭉쳐 단합하게 하였고, 장차 보다 더 강력한 유다가 되게 하는 훈련의 기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위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에게는 사랑과 용서와 양보를 권하면서, 영적으로는 원수 마귀에 대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양보하거나 후퇴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맞서 싸워 이기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만일 우리가 이 같은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하면, 마치 오늘 성경의 유다 백성들처럼 선한 역사를 중단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그와 같은 패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안팎으로 고난과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마다, 번번이 넘어지고 낙담하고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삶을 언제까지 계속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외부의 도전에 대해 내부적으로 용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위험한 대적은 없습니다. 설령 어떤 위협과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희망과 용기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으나, 선한 일에 당연히 따르는 고난에 대한 낙심은 항상 마귀로부터 오는 법입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신앙은 특별한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형식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며,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을 주께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일에 마음을 모아 드리고, 매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며 자신을 바꾸어가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말고 영적으로 깨어 원수 마귀를 대적하는 신앙적인 삶이 영적인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원수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최선의 비결임을 잊지 말고 이제 후로는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를 실천하여 외부적으로 도전하는 사단의 권세와 더불어 외적인 도전을 두려워하며 낙심하는 내부적인 도전까지 모두 이기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