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넘치는 생수의 강물(겔47:1-12)
시편 126편을 보면 놀라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기독교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2,000년 동안 흩어져 나라도 없던 백성들이 독립을 한 것도 기적이요,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들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더라도 기적이요, 다니엘이 사자굴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일들도 기적이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메시야를 보내신 것도 기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의 백성이 된 것도 기적이요, 성경은 기적의 역사로 가득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시편 126편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70년 간 바벨론에서 포로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때 이들에게 독립이란 희망은 다 사라지고 자포자기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른뼈들의 골짜기를 보여주시면서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에스겔에게 물으십니다.
대부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이 마른 뼈들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희망이 없고 말라비틀어진 인생과 같은 심령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 아닙니까? 꿈이 없고, 무언가에 쫓기는 인생을 살며, 마음에는 조그마한 여유도 없이 극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술로 나날을 보내는 모습, 기쁨과 감격과 기대 속에서 살기보다는 처자식 때문에, 죽지 못해서 사는 모습, 매일을 신음하면서 사는 모습들을 갖고 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매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살아나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바벨론에 포로생활하고 있는 에스겔을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다 폐허된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이 있는데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려 바깥문에 이르러 보니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에스겔로 걷게 하시는데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또 일천 척을 측량하고 또 걷게 하여 걸으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오르고 나중에는 그 물이 창일하고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강가로 돌아가는데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고 이 물이 동방으로 흘러 아라비아 사막으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니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게되고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많아 그 고기를 잡기 위한 어부들이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다란 사해 바다를 말합니다. 사해바다란 들어오는 물은 있으나 나가는 물이 없어 물이 수증되어 소금기까 25%가 되어 아무 생물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사해바다 사이에는 유대광야가 있는데 이리로 흘러 강좌우편에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고 잎이 시들지 않으며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을 보았을 때 에스겔의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새 힘이 솟고, 기대가 되고, 뭔가 모르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주지 않습니까?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 생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소성케 하고 살리고 풍성케 하는 물은 성전 문에서부터 스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7:37-38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생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로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인관 관계에서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을 보십시요. 전도서는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의 노년에 고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원함의 동기가 하나님과 맞아떨어졌을 때 그 위에 부귀와 영화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명성이 높아지고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공허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문제를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찾으려 하였습니다. \"낙을 누리기 위해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자, 사업을 크게 하자, 재물을 마음껏 쌓아보자,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기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년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의 사람의 본분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도 풍성한 인생을 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아말렉군대와 싸울 때 승리의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모세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싸움터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아론과 훌이 돌을 쌓아 팔을 올려 놓고 양쪽에서 붙잡아 해가 지도록 팔이 내려오지 않으니까 승리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
첫째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예루살렘에서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황폐한 사막 지대라고 합니다. 여리고로 내려가기까지 계속 사막지대라 한 그루의 나무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강이 흐르고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하고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미국에서 80세가 된 한 노인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년 후에 임종이 가까웠을 때 누군가가 그의 나이를 묻자 그는 \"나는 겨우 두 살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즉 침례 받기 이전 80년 동안의 삶이란 죽은 삶입니다.\"라고 확신 있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역사가 그리스도에 의해 B.C.와 A.D.로 나뉘어진 것처럼 예수를 믿기 전의 삶과 예수를 믿고 난 후의 삶은 차원이 다릅니다.
한 무리의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창조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그래 상식이 있고 조금이라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천년 전에 하나님이 땅 위에 허리를 굽히고 진흙 한 웅큼을 집어서 거기다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냔 말이오?\"
그때 그리스도인인 한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창조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다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허리를 굽히시고 이 도시에 있던 가장 더러운 진흙 한 조각을 드셔서 그 흙에다 그의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그리하여 노름하고 술 마시고 도둑질을 일삼던 개망나니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3년 동안 나는 도박과 음주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대적해서 싸구려 비판의 이론을 전개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생애에서 일어났던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하나님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을거요\"
모든 위기에서의 회복은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길이 소경의 눈에 닿을 때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사막이 오하시스로 변하는 역사기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들어갈 때 인류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민족이 치유됩니다. 복음이 들어갈 때 가정이 치유됩니다. 복음이 들어갈 때 땅이 치유됩니다. 복음만이 교육을 회복시킵니다. .
둘째로,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에스겔 47장 6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읽을 때에 어떤 분위기를 느낍니까?. \'심히 많더라. 소성함을 얻고,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어부들이 설 것이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등등\' 풍성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12지파가 출애굽하고 후에 각 지파의 인원이 몇 명이라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광야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더 늘어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주신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오늘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글을 집필해 자신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책을 출간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볼테르의 글과 연설에 갈채를 보냈다.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미신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
결국 볼테르도 나이가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며 의사에게 생명을 6개월만 연장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
\"오 이제 나는 지옥불에 들어가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났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수는 약 8억명에 이른다. 볼테르가 운영하던 인쇄소에서는 지금 성경을 찍어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나무의 모습과 같이 쓸쓸해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있는 일들을 보면 의미가 있는 이들은 없고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크게 신문에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매맺는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셋째로, 치료하는 심령으로 변합니다.
12절의 말씀을 보면 \'그 실과를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잎사귀가 약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마 생명수를 마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명수의 물을 먹은 식물은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소를 키우시는데 인삼 잎사귀를 먹여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팔 때 \'이 소는 인삼 먹고 자란 소다\'라고 말하니까 불티나게 팔리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당을 밝히는 형광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전과 연결되니까 빛을 발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를 통해 그 빛이 밝혀지고, 이 세상을 생명으로 이끌 수 있는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생수의 강이 우리의 심령에서 흘러 넘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주를 앙모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있었지만, 어쩌면 더 이상 민족의 회복이라는 꿈이 산산이 부서진 상황에 있었지만 주님만을 끝까지 신뢰하고 바라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일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마음이 부드러운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그 진펼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땅이 될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곳들은 사해 언덕에 바닷물이 넘쳐서 괴었다가 마른 뒤에 소금만 있는 곳들을 말합니다. 이곳들은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들의 자기 자신을 믿는 교만을 비유합니다. 이들은 복음 운동의 길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