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함과 거룩함이면 됩니다/히12:14 2002-09-02 15:10:27 read : 82
날씨가 너무 너무 좋습니다. 우리 도개교회와 황학교회의 관계를 교회 역사책을 찾아보니 1952년 6월에 도개교회건축을 위해서 황학교회가 일금2만원을 헌금 1957년 5월19일 황학교회 뒷산에서 친목 연합예배일로 양교회가 모여 예배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황학교회는 큰집, 우리 도개교회는 작은 집입니다. 이런 사랑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좋은 가정됨의 의미를 생각해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17:1에 보면-마른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정의 근본은 무엇보다 화평입니다. 화평이 없는 집은 가정이 아닙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목하지 못하다면 그 가정은 안식처가 아니라 지옥일 뿐입니다.
오늘 이렇게 야외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사람은 여기 이렇게 나와 있어도 편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여기에 참석조차도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화평이 없는 효도는 효도가 아닙니다. 아무리 잔치를 크게 벌리고, 동네 사람들을 다 초청해도 화평이 없는 효도는 효도가 아닌 것입니다. 화목 없이 드리는 좋은 옷, 좋은 음식은 결코 효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화평하지 못한 가정에서 무슨 착한 아들이 나오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 나오고, 효도하는 아들이 나오겠습니까? 가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평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애들 교육한답시고, 묻는 말이 고작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참 영리해서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잘 대답합니다마는 정말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엄마하고 살 거야, 아빠하고 살 거야?\"하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엄마 없는 아이, 아빠 없는 아이가 과연 행복할 수 있다고 봅니까? 화평이 우선입니다. 아이들은 부부가 화평한 가정에서 자랄 때에만 인격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생명이 자라고, 신앙이 자라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 한 가정에서는 기형아가 태어나고, 정신병자가 태어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바보가 태어납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화평이 최고임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언제나 사랑과 자비와 용서입니다. 5리를 원하면 10리를 가 주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고, 용서할 때에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씀은 천국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마 18:3). 5리를 원하는데, 10리를 같이 가 주는 것, 어린아이의 심정입니다. 용서하되, 70번씩 7번씩이나 용서할 수 있는 것은 \" 이런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혹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사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보기가 좋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가정이란 원래 온 식구가 어린아이와 같이 살아야 행복합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 때, 그곳이 바로 낙원이요 참 가정입니다.
엄한 벌이 있고, 복잡한 격식이 많을수록 그 집안의 살벌해 집니다. 아이와 같은 마음이 절대적입니다.
둘째, 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성령과 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 이 말씀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으로, 상징적으로 바꿔 보면 결국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생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지고, 깨끗해지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교인이 되어야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 화목도 할 수 있고 \"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셋째,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크게 헌신하고, 구제 사업은 하지 못했어도 어쩔 수 없지만, 용서만은 반듯이 해야 우리도 용서받고 천국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가기 싫은 사람은 용서 안 해도 됩니다. \'어떻게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해---\' \'그럼 하나님도 그래 맞아 나도 너를 어떻게 용서해 지옥이나 가라\'
용서 못할게 뭐 있습니까?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원수지고 삽니까?
넷째, 성령을 훼방한 자는 사함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감동케 하시는데, 이것을 거부하고, 거역하면 다시는 회개할 기회나,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에 대해서는 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 주시는데, 받아야합니다. 거부하지 말아야합니다. 말씀의 감동이 오면, 거부하지 말고, 감사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감동 주시는 대로 살아야합니다. 어떤 꼬마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디에 있니? 제 마음속에요. 얼마나 맑고 깨끗합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가지의 당부를 하십니다. \"너희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다시말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화평함과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평에는 두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강압적인 화평입니다. 라틴어로 팍스(Pax)라고 하는데, 권력에 의한 화평입니다. 즉 전쟁으로, 힘으로 지배하는 화평입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으나 그 속에는 억압이 있고 분노가 있는 화평입니다.
또 하나는 샬롬의 화평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입니다. 참 자유함에서 주시는 화평입니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몸이 아프고, 가진 것이 없고, 사업에 실패했지만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고,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화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누려보지 못하는 화평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화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평과 함께 동반되는 것이 있습니다.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 없는 화평은 화평이 아니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묘지는 언제나 화평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화평이 아닙니다. 거룩함이 없는 화평은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묘지의 적막함과 같이 죽음 뒤에 있는 고요함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싸움이 없는 곳은 극장과 무덤뿐이다\'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극장에 가면 영화를 보느라 너무나도 조용합니다. 두말할 것 없이 공동묘지에는 말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가 전쟁터요 시장바닥이라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어느 통계를 보니깐 3사람 중에 2사람은 어디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약을 먹어야하고, 수술을 해야하고, 고통을 참아야하는 형편에서 살아 가고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심각한 이야기입니까? 이런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거룩하심에서 오는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 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사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짐승이 딴 것이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짐승이요, 기쁨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짐승입니다
막9:50-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란 다른 물질에 들어가면 자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그 맛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형체는 비록 녹아지지만 다른 물건을 짜게 만들어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소금입니다.
가령 배추나 무우에 소금을 치면 뻣뻣한 채소들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이런 화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만한 사람, 오만한 사람에게 소금 한번 쳐서 다들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도 이런 뜻에서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목한답시고 술집에 가고, 화목하다는 미명하에 도박을 하고 있으니 언제 화목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나 소금처럼 자기 본질을 잃어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거룩함이 무엇입니까?-구별됨입니다. 희생함은 있으나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집안의 화평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써의 거룩함을 포기할 때 사실은 더 더욱 불행해집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면 화평이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고요함일 뿐 화평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는 것에서는 한(恨)만 더 쌓이게 만듭니다.
진정한 화평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문제를 소화하고 기뻐하는 자세입니다. ex)어느 부인이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으니, 전에는 보기 싫던 남편이 갑자기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좋던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남편의 얼굴을 봤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평 없이는 누구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 12:14).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원수를 용서하고 화평을 찾았을 때 하늘이 열림을 보았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서로 쌍둥이였지만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서로 싸우다가 6년 후에야 비로소 형제가 만남니다. 이 순간을 야곱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 화목해 질 때,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은 감격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늘 보며 사는 가정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화목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거룩함을 가지고, 언제나 주안에서 화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같이 한번 암송합시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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