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라/벧전1:13-24 2001-11-08 09:55:31 read : 163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라고 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라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무서운 분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영원까지 존재하는 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정녕 죽게 된 운명이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왜 쫓겨났을까요? 범죄했기 때문이지요. 또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범죄했다고 왜 쫓겨납니까? 한 번 쯤 실수할 수도 있고 범죄 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매몰차게 동산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너무하다?생각이 안 됩니까? \"심히 좋았더라\"고 뜨거운 애정표현을 하실 때는 언제고, 당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의 모든 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아낌없이 다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한 번 실수하고 범죄했기로서니 이렇게 몰인정하게 동산에서 쫓겨낼 것이 뭐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안 됩니까? 한 번 쯤 타이르고 한 번 쯤 기회를 줄만도 하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우리 말에 삼 세 번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까? 그래요. 한 번은 너무 아쉬워요. 한 번은 너무 야박해요. 그런데 한 번의 실수로 아담과 하와는 여지없이 매몰차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아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으셨을까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여기서 거룩하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의롭고 정결하고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다.\'라고 할 때 이 말은 곧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분, 정결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의롭고 정결하고 죄가 없는 자만 상대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다 거룩하다고 구별된 것들입니다.
a.예수님-하나님의 거룩한 아들 b.하나님의 이름-거룩한 이름 c.하나님의 전-성전, 주일-성일, d.레27: >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과 십일조를 거룩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된 것들인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하나님은 거룩한 것들만 상대하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이미 저들에게서 거룩함이 깨어지고 오히려 죄로 인하여 추악하게 되었으나 추악하게 타락한 인간들을 하나님은 더 이상 상대할 수없게 된 것이고 따라서 범죄한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쫓겨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만 것입니다. 범죄하는 순간 이미 더러워졌습니다. 의, 진리, 경건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악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이렇게 타락한 실존으로는 하나님과 더 이상 어떠한 거래도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1:15-의 성경은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 하나님과의 관계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범죄한 인간의 실상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완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켜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나는 더 이상 인생들과는 상대하지 않겠다.\'는겁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는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지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최고의 감탄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에덴의 아름다운 모든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인간들에게 주셨던 하나님께서 왜 이제 와서는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마음이 돌아서신 것입니까? 해답은 이것입니다. \"나는 거룩한데 그런데 너희 인생들은 거룩하지 않다\"는 겁니다. \"나는 거룩한 자하고만 상대하는데 그런데 너희 인생들은 거룩함이 깨지고 추악하게 되었으니 내가 어찌 너희들과 함께 어울리며, 너희들과 함께 거래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함과 추악함, 거짓과 진리는 함께 공존할 수없습니다.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생은 거룩한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펼 때에 하나님은 눈을 가리우고, 기도할찌라도 듣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서울에 화장장을 건립하는 문제로 서울시와 자치단체 그리고 주민들과 심한 마찰을 빗고 있습니다.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이 무엇입니까? 이 청정지역에 혐오 시설을 들어오게 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천사를 거룩한 천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룩하게 지음받은 천사가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습니까? 마귀가 되었습니다. 마귀-바알세불 > 똥 집 주인 => 하늘에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리며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거룩한 천사라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타락하게 되면 거룩함이 상실되어버리고 쫓겨납니다. 그래서 계12: 에 보면 범죄하고 타락한 천사가 더 이상 하늘에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하늘에서 쫓겨났는데 어디로 쫓겨났는고 하니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범죄하여 추악하게된 천사가 더 이상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지 못하고 똥과 같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존재가 되어 쫓겨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디 타락한 천사만 그렇겠습니까? 인간도 타락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없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거룩한 자만 상대하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마8:12에 보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잔치 집에 들어 왔다가 주인으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해 밖에 나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준비된 자, 구별된 자만을 상대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 이하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거룩함을 회복한다고 할 때 어떤 측면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하는가? 우리가 거룩함을 이야기 할 때 행위의 거룩이 있고 존재(실존)의 거룩이 T습니다만 이 시간은 존재의 거룩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범죄했다고 하는 것은 내적인 자아의 거룩함의 훼손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원천적 본질이 추악해 졌다는 얘기입니다.
a.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왜 돌로 펴 죽인 것입니까? 이미 마음 속에 시기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것이 겉으로 표출되어 동생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b.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게 됩니다. 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게 된 것입니까? 그거야 한적한 시간에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심복 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목욕하는 여자를 봤으면 봤지 본 것으로 인하여 밧세바를 왜 겁탈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봤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미 겉으로 범죄하기 전에 다윗의 속 사람은 거룩함을 찾아 볼 수 없는 죄에 대하여 친순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예)자석을 수건에 싸서 쇠붙이에 갖가 대면 쇠붙이가 달라 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수건인데 그런데 어째서 쇠붙이가 달라붙습니까? 겉은 수건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속은 엄연히 자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속에 있는 자석의 힘에 의하여 쇠붙이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예)밀가루를 반죽해서 하나는 네모를 만들고, 또 하나는 세모를 만들고, 또 하나는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치십시다. - 본질은 밀가루입니다. > 네모인 척해도 밀가루요, 세모인척 해도 밀가루요 동그란 모양인 척해도 밀가루입니다.
예)잘 생겼어도 추악한 죄인이요, 못 생겼어도... 박사님도..., 일 자 무식한 양반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은 멀쩡합니다. 신사에요. 흠잡을 데 없습니다. 그런데 속이 병들었습니다. 속이 썩었습니다. 겉은 그냥 속의 특성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문제는 속 사람입니다. 노아 시대의 범죄를 성경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그 마음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악하니 겉으로 행동되는 모양도 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거 어떻합니까? 걸레나 수세미로 문질러 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그냥 방치한다고 모든 것이 없던 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추악한 자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즉 다시 말해서 당신이 거룩하니 거룩한 자만 상대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거룩한 자만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는 어떠한 방법이 없기에 하나님은 당신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는데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불로 태울 수없고 물로도 씻을 수 없는 우리 안의 추악한 죄, 예수의 피로 씻으며 그 피로 말미암이 정결케 되고 그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이니 우리가 거룩함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고 단절되고 파괴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이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갑니다. 왜 도망을 갑니까? 이미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추악한 신분이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뭇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저들의 추악함을 다시 회복시키지 못합니다. 두려움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을 찾아오실 때 빈 손으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추악하게 인간을 거룩한 당신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찾아오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만약에 인간에게 다시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굳이 애절하게 아담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덕으로 윤리로 인간이 거룩해 질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셨겠습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방법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8절 이하는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보배로운 피로서 한 것이라\"
또 히9:19-의 말씀에는 \"우슬초에 피를 묻혀 그 피를 뿌림으로 백성이 거룩해 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피 뿌림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거룩함을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다 거짓입니다. 죄 없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인즉 예수의 피를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예수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파괴된 관계를 다시 복원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피 없이 거룩해 지는 자 없습니다. 피 없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자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을 이야기하고 도덕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타락한 양심이고 인간의 도덕은 타락한 도덕이라는 사실입니다.
타락한 양심과 타락한 도덕을 가지고는 거룩함을 다시 회복할 수가없습니다. 그것 갖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를 가리켜서 피로 산 자들(계5:9)이라고 말을 했고 또 교회를 피로 사신 교회(행20:28)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피뿌림이 없이는 거룩함이 없으며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를 뵙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영원한 단절된 운명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 나사로를 시켜 손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세요\"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애절한 호소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단호합니다. 인정사정없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끝내 거룩함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된 저주받은 인생의 모습입니다.
지옥이 무엇입니까? - (헬) 게엔나 >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저주스런 쓰레기장. 끝내 거룩함을 회복하지 못한 추악한 인생의 마지막 결론이 \'게엔나\' 즉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저주스런 쓰레기장입니다.
하나님은 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며 왜 그를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게한 것이며 또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그의 피만이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내려오는 추악한 인생의 실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저주요 불행입니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아담과 하와가 행복했던가요?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가 행복했던가요? 아닙니다. 저들은 하나님 없는 행복을 추구했지만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저들이 어떤 방법으로 다시 행복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까? 탕자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에는 돼지 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굴면서 살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인간이 돼지 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굴면서 살다니요... 우리는 여기에서 집 나간 탕자가 왜 하필이면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굴며 살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을까요? 소도 있고 말도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돼지의 상징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대사람들은 특별히 돼지라는 동물을 가장 efjq고 부정한 동물 로 취급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돼지고기는 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가 돼지 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최악의 저주스런 운명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어떻게 대해 주었습니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방을 갈아 신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게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어울리던 그 더럽고 추악한 그대로의 모습을 데리고 산 것이 아니라 다시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키고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게 했으니, 범죄하여 추악하게 된 인생들, 정녕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인생들 그리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고 사단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돼지와 함께 뒤엉켜 살던 탕자처럼 사단과 함께 뒤엉켜 살던 그 모습 구대로 살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깨끗이 씻기고 입히고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고.... 그러니까 지난 날 집나가기 전의 그 모습을 다시 완벽하게 회복시킨 후에 아버지와 어울리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죄지은 추악한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과 어울릴 수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없습니다.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오직 어린 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 피l로 말미암아 죄 씻김 받고 거룩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로 인하여 거룩하여진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육체의 옷을 벗고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게 된 거룩한 성도입니다. 자유롭게 하나님과 어울릴 수 있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찬양하고 자유롭게 예배하고 자유롭게 기도하고 또 자유롭게 은혜받고 자유롭게 복을 받고 자유롭게 응답받고 자유롭게 능력을 체험하고... 할렐루야! 이것이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과 영생하는 축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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