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자, 하나님의 아들 눅1:30-35
우리는 지난주일 성탄절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성탄절이 단순히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가를 보여주신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신실한 사람의 말을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다 믿어지지만, 의심이 가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그럴듯할지라도 자꾸 의심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증거는 수 천년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말씀들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다 이루셨음을 구약의 약속의 말씀과 신약의 성취된 말씀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거짓되지 않은 말씀이기 때문에 신뢰해도 좋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과정을 기록한 성경 말씀을 보게 되면 그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잘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을 담은 사도신경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단 한번만의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믿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정녀 탄생을 절대 진리로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이 필연적인 의구심을 잘 아시면서 왜 성경에 기록하여 만인에게 공개하게 하셨을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 사실임을 더욱 확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동정녀 마리아의 몸
가고 오는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세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는 위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위인들의 전기를 서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어린 시절에 그와 같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나도 이다음에 자라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인일지라도 공통점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과 생애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과 좌절을 딛고 일어섰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부부에게서 태어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연약하다는 것과 그 내면의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 완벽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내며, 조금도 모순이나 불합리함이 없는 진리만을 말하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아무리 존경받는 위인이라고 할지라도 의인이 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욥 25: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욥 25:5)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욥 25: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죄와 허물이 하나도 없는 정결한 사람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면 인류에게는 태어나서는 물론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거룩하고 깨끗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실 때 하나님이 이미 제정하신 생명의 법칙을 지켜가면서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부모의 원죄에 오염 받지 않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남자와 결혼하지 아니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게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생명은 모태를 통해서만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시험관 아기나 복제 인간을 운운할지라도 결국 모태를 거치지 않고서는 생명이 태어날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그와 같은 생명의 법칙을 하나님이 파기하지 않으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모의 죄를 물려받지 아니한 아기의 출생을 위해 동정녀 몸을 빌리셔야만 하였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약혼만 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고지하여 주었을 때 어떻게 처녀인 자신의 몸에서 아이가 잉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란 것은 그가 처녀였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만일 예수님이 그렇게 태어나지 않고 다른 위인들처럼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을 통해서 태어나신 분이라면 예수님의 언행이 아무리 흠이 없으셨을지라도 혹 위인은 되셨는지 모르나 인간을 구원하는 구세주는 되실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위인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보다 그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남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단순한 처녀가 아니라 약혼만 하고 결혼하지 아니한 동정녀로서 하나님께서 그녀의 몸을 빌려 아기 예수가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묘한 지혜인 것입니다.
또한 동정녀 마리아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일에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것은 그녀의 무슨 공로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눅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2. 성령으로 잉태하심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리신 것은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죄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려면 인간과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셔야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단자들은 예수님이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육체나 우리 인간의 육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함이며,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할 죄 없는 몸으로 태어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건을 가득 실은 수레에는 더 이상 다른 짐을 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짐을 실기 위해서는 빈 수레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들은 이미 죄를 가득 실은 수레와 같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빈 수레로 오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이기 때문에 죄 없는 몸이며, 그 몸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 없는 몸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리아가 처녀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고, 마리아도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녀 마리아가 단독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마리아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몸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원죄와 상관이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마리아조차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많은 신학자들이 동정녀 탄생부분을 역사적인 사실이 아닌 상징이나 비유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마리아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준 말씀이 바로 그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성령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렇습니다. 그 성령님이 곧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마치 암탉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어 마침내 병아리로 깨어나게 하는 것처럼 흑암과 공허와 혼돈이 가득한 세상을 품으셔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바로 그 성령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창조의 능력으로 마리아를 덮으심으로 처녀이지만 아기가 잉태되고, 동시에 마리아의 몸에 원죄를 차단하여 죄가 없으신 몸으로 아기 예수가 잉태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몸은 우리와 달리 슈퍼맨과 같은 특별한 몸으로 태어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굶으면 배고프고, 과로하면 피곤하고, 매를 맞으면 아픔을 느끼는 우리와 똑같은 육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지만 오히려 그 연약한 몸으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아기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던 마리아였지만 능치 못함이 없으신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의심이 확신으로,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눅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마리아처럼 동정녀 탄생을 의심하던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깨닫고 확신을 갖고 기뻐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렇다면 성탄절이 어느 한 가정이나 국가의 명절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명절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임마누엘 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이며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존재의 시작이 모태에 잉태될 때부터 시작됩니다. 가고 오는 역사의 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출생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죽고 난 이후에는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인생에게 삶의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있기 영원 전부터 영원한 이후까지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죽은 지 오래되었으나 그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자녀 삼으신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젠가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섬기던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오늘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들과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신 예수님과 세상에 다른 철인이나 교주나 위인과의 차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의 시작은 모태에서 잉태됨으로 시작된 유한한 존재이지만 아기 예수는 마리아에게 잉태되시기 전 영원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세상에는 예수님처럼 본래 하나님의 독생자로 신성을 가지신 분이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을 다 갖추신 유일하신 구주이신 것입니다.
1) 한 몸에 온전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온전한 사람의 성품을 동시에 지니심으로 인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을 오가시면 중재자의 역할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돌이켜 보면 인성을 지니셨으나 인간들처럼 약점이나 허물이 없으시며, 인간의 몸을 입으셨으나 전능하신 신성을 동시에 지니셨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며,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시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2) 한 몸에 지닌 인간의 성품으로는 인간이 육신으로 지은 죄를 대신 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대속자가 되시고,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으로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속죄자가 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3) 한 몸에 지닌 인간의 성품으로 세상에서 인간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동고동락을 하시면서 인간의 고통을 경험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셨기 때문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육신과 더불어 우리와 다른 하나님의 신성을 동시에 지니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결 론
물론 성탄에 대한 말씀은 오늘 처음 듣는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성탄절을 전후하여 매년마다 귀가 아프도록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가슴에는 성탄에 대한 감격이 식어져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고작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눈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는 날 정도가 아닙니다.
성탄절은 인간이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을 사죄와 영생이라는 선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참으로 복된 날이라는 성탄의 본질을 희석시키거나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와 같은 성탄이 없다면 우리는 원죄와 평생토록 짓는 모든 죄가 장작더미처럼 고스란히 쌓여 지옥 형벌의 열도를 더하게 만들 것입니다.
세상에는 한 번 형벌을 받았으면 그 죄 때문에 두 번 다시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고, 그 죄 때문에 한 번 죽었으면 두 번 다시 죽지 않아도 되는 일사 부조리의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 몸을 대신하여 모든 형벌을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된 날이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결코 어느 한 시대의 민족이나 국가나 그리스도인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명절과 축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으로 탄생하신 영광스러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시골에서 가끔 대조적인 두 행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 결혼의 행렬과 또 하나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 위한 장례의 행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인간들의 삶은 어떤 행렬입니까? 하루를 산 것이 아니라 하루를 죽어가고 있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닙니까? 마치 고인을 안장하기 위해 무덤으로 가는 장례 행렬과 같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자,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루 하루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향해 하루 하루를 가고 있는 축제의 행렬인 것입니다. 결코 모든 사람의 삶이 다른 것처럼 모든 사람의 죽음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금번 성탄은 바로 그와 같은 감동과 기쁨을 다시 회복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며, 이 성탄의 소식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초청하여 그들도 우리와 함께 성탄절만이 아니라 영생의 대열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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