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찬가(讚歌): 거룩한 기다림 눅1:39-56
현대 실존주의 문학가 중에 사무엘 베켓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책 가운데“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베켓트는 우리 유한한 인생의 간절한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두 사람이 ‘고도’라고 하는 한 존재를 기다립니다. 이 ‘고도’의 정체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그를 기다릴 뿐입니다. 매우 열렬히 기다립니다. 고도는 그들의 소망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고도가 오면 구원이 임하는 것이요, 그들의 세상 문제 거리가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얼마나 그들의 기다림이 애타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느 날 고도가 온다는 소문에 그들은 초 긴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도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다시 고도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학수고대하던 고도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수 차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고도는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절대자인 신을 기다리지만,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자는 종내 나타나지 않는다는, 아주 절망적인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으니 남은 것은 좌절 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연 우리의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시는 분일까요? 사무엘 베켓트는 바로 이 점에서 허무주의로 끝났고, 많은 현대인들이 이 허무주의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신다는 사실, 우리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 나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마리아라고 하는 한 여성을 존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5세기 이후로 \'하나님을 낳은 자\'라 해서 예수님을 낳은 친모로서 높이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도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장 38절)고 순종과 겸손을 드러내었던 마리아의 믿음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그의 친족이요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하자, 엘리사벳이 뛰어 나오면서 마리아를 맞이 했습니다. 마리아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는데, 이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서\"(눅 1장 41절) 여자 중에서도 마리아가 복이 있으며 태 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다고 큰 소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마리아 찬가\'는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설교와 강해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 \'마리아 찬가\'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전권적인 구원하심과 이에 대한 우리 인생들의 찬양과 우리를 영원히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함께 고백해 왔습니다. 한 연약한 여인인 마리아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그의 하나님 찬양을 통하여 우리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즉 이 \'마리아 찬가\'를 대하는 심령은 누구나 새롭게 변화가 되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리아 찬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1.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돌아 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돌아 보셨다\"(에피블레포)는 말은 \'향하여 본다\'는 말인데,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을 하감하셨다는 것이요, 곧 영원 자께서 유한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연민의 마음으로 대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자신을 3인칭, \"계집종\"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시녀\'란 말입니다. 그저 주인이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그러한 자라 했습니다. \"계집종의 비천함\", 우리는 마리아가 얼마나 자신의 존재를 겸손하게 표현하였는가를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은 외형적인 구부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마음이 낮아져야 겸손이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평소에는 겸손한 것 같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 대강절 주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교만을 멀리 해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교만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역사 어디를 들쳐보아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교만하였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대리석 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에서 미켈란젤로는 가련하고도 청순하게 보이는 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가끔 사람은 영적으로 겸손하다가도 외형적으로 교만할 때도 있거니와, 외형적으로 겸손한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 교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영적으로도 겸손하였고, 외적으로도 겸손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오는 것을 보자, \"내 주의 모친\"(눅 1장 43절)이라 불렀고 마리아보고 ‘복된 여성’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뭇 백성 가운데서도 겸손한 자를 굽어 살피시는 분임을 믿으시고 겸손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반드시 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멀리하신다\"(잠 16장 5절) 하셨고, \"교만은 멸망의 선봉\"(잠 18장 22절)이라 말씀합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자랑한다 했습니다(대하 25장 19절). 자기 합리화가 있습니다. 시 10편 4절에 보면, 교만한 자의 얼굴을 누가 하고 있느냐 하면, 악인이 교만한 얼굴을 짓는다 했습니다. 합 2장 5절에 보면 교만한 자는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였습니다. 또 단 5장 20절에 보면, 교만한 자는 뜻이 강퍅하다 했습니다. 이러한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시 101편 5절) 하셨고,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잠 22장 29절) 하셨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약 4장 6절)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마리아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우리 성도 모두, 늘 겸손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참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겸손하게 되어서 주님께 매달리게 될 때에, 놀랍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마음이 겸손하게 되어 간절히 기도했더니,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잠 15장 33절) 하셨습니다. 성경은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장 5절)고 말씀합니다. 교만으로 배부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경은 겸손하게 될 때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겸손의 눈물을 \'거룩한 눈물\'이라 부릅니다. 나아가 겸손한 자는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생각한다 말씀합니다(빌 2장 3절). 바로 마리아가 이러한 겸손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에, 마리아는 겸손과 온유의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처럼 못난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음을 체험하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즉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민과 근심과 염려를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 찬가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2. 둘째로, 두려워하는 자에게 긍휼하신 분이십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마리아가 체험한 하나님은 또한 경외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단지 예배와 경외를 받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러한 우리의 자세를 통하여 더욱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더욱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경외할 분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내 마음에 욕심이 발동하면, 하나님도 찾지 않기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실패의 사슬에 묶여 허우적거리고, 영적으로 타락하기 때문에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 말년에 그 동안 살아 온 자기 인생을 되새겨보면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찌니라.\"(전 5장 7절) 또 시편은 말하기를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119편 161절)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먼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십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지만,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을 멀리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경외하고 예배하는 최소한의 자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의 조건을 제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오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하신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긍휼하심을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긍휼히 여기는 분이시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장 15절)
우리가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사고를 당할 때에, 그대로 방치해 두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풍성한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내가 당하는 고난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며, 내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먼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두려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 두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조차도 존경을 받고 함부로 대하는 일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격으로도 할 수 없으나, 성령께서 내 마음을 변화 시켜주시고, 나와 함께 하실 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그 종들을 긍휼히 여기신다\"(시 135편 14절) 하셨고,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기를 원하시는\"(롬 11장 32절)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주님께 해야 할 일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장 2절)라고 항상 기도하는 일입니다. 죄인의 불의조차도 긍휼히 여기신다(히 8장 12절 참조) 하셨고, 야고보는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장 11절)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살아서 주님을 찬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찬송가 455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은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에, 주님을 예배하는 우리의 인생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영원한 구원을 선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유한하며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긍휼과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섭리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제 아무리 날뛰는 자도 하나님은 그대로 두시어 결국에는 죽음이라고 하는 심판을 견디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한계를 가리켜 주고 계십니다. 가끔 선한 자와 믿음의 자녀들도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 같으나, 바로 그 고난의 한 가운데서 함께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 아니 그 고난을 손수 감당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선물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영원한 것을 주셨습니까?
1)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요 3장 36절)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요 6장 47절) 하셨고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장 51절),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장 25절)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았으며 그래서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영원한 나라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두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 속한 나라요,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한 나라, 곧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에는 흥망성쇠가 있으나, 하늘 나라는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장 28절) 비록 우리의 육신은 죽은 후에 썩어 버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몸이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몸으로 부활시켜 주셔서, 영원한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이 영원한 나라에 속한 사람임을 더욱 굳게 믿고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시험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마리아 찬가\'를 함께 찬양하며 대강절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비천함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우리 존재는 모두가 귀합니다. 내가 비천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마음은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한 나라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 나라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계 22장 1절)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의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 22장 3절 이하)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 마리아 찬가가 울려 퍼지면서 성탄을 준비하시는 여러분의 기다림이더욱 거룩한 기다림이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마리아의 찬가\'가 울려 퍼질 때에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이 날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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