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은 마리아 눅1:26-38
성탄을 기다리면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는 과정에서 육신의 부모로 거룩하게 쓰임 받은 마리아의 신앙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우리의 육신도 거룩하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거룩한 일을 천사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오늘 우리들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사역에 쓰임 받은 마리아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 받아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1.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을 말합니다. 은혜는 자신의 수고와 행위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누리는 자연만물이 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공기와 물과 자연환경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본문에 마리아에게 임한 천사의 메시지에 언급했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대통령이 특정한 사건을 위해 특별 검사를 임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기 위해 그 당시 이스라엘의 수많은 처녀들 가운데 마리아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한 첫마디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마리아에게 임신이라는 것은 그의 삶을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는 정혼한 처녀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정죄 받아야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용서하여 결혼을 한다고 해도 두고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과 눈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백성 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구원은 신앙의 끝이 아니라 출발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사역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자에게 필요한 사역을 맡겨주셨습니다. 이것을 저는 특별한 은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들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세 가지 비유에서도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기름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못한 사람, 주어진 달란트로 열심히 일한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 주님의 뜻대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았던 사람과 그렇치 못했던 사람들을 말하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를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임신의 충격과 로마 황제의 명으로 조상들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몸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을 구하지 못한 채 마구간 말구유에 아기 예수를 출산했습니다. 헤롯왕의 칼날을 피해 애굽까지 피난가야 했습니다. 헤롯 왕이 죽자 다시 나사렛으로 가서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인 요셉은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일찍 돌아갔을 거라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형편이 말해주듯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일찍 돌아갔기 때문에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진 아픔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은혜를 입은 자가 된 것은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하였지만 그는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온전히 감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각 개인마다 다른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각자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에게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 그 자체가 인간에게는 큰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 선물을 소유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불신자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를 주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물질로, 마음으로, 재능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이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에게 섬기며 나누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실천하기를 축원합니다.
2. 마리아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충격적인 메시지에 잠시 놀라고 두려워한 마리아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는 말에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확신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에게는 여러모로 불이익이 감수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자신이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는 46-55절에 자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오, 이 몸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함은 주님이 비천한 계집종을 돌보셨음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 하리니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그분이 내게 큰일을 하셨음이라. 그분의 자비는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대대로 있으리로다 그분의 팔이 능력을 베푸심이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그분은 왕들을 그들의 왕좌에서 쫓아내시고 천한 자들을 높이셨도다. 그분은 마음이 갈급한 자들을 만족하게 하시고 부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도다. 그분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심이여 자비를 베푸시마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셨도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자비는 영원히 있으리로다”(현대어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들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볼 때에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아내였던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불임여성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도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한 사라의 몸에서, 그것도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 하나님의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철벽을 자랑하는 여리고 성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라고 합니다. 돌 때마다 제사장의 나팔소리만 듣고 모든 백성들은 조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바퀴를 돌고난 후 큰 소리를 외치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것은 무모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철벽성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구원자 메시아가 자신의 몸을 통해서 출생한다는 꿈같은 말씀 앞에 마리아는 순종하고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계집 종이라고 겸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의 특징은 모두다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단의 책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고 교만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매주일 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여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했던 마리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은 바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질그릇으로 사용하면 질그릇으로 살아가고, 금그릇으로 사용하면 금그릇으로 살아가는 것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대통령이면 대통령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존재냐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존재냐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높은 직책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권력과 명예를 가졌어도 하나님 앞에서 무기력한 것보다 평범한 사람으로 주어진 삶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 왕을 비롯하여 대제사장, 서기관, 열심 있는 바리새인들이 많았지만 그들의 삶은 비천한 계집종이었던 마리아보다 못한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과 연예인 및 부와 명성으로 출세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 앞에 순종과 실천적인 삶의 기준으로 평가하십니다. 신앙인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교회의 직분과 규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했는가? 그 말씀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불이익과 어려움과 고통이 그의 생애를 통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했고, 그의 육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도구가 된 것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았던 마리아처럼 우리의 생애도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주님은 주님의 귀한 사역을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어두어져가고 있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썩을대로 썩어져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합니다. 하늘나라를 포기합니다. 우상과 미신이 우리의 문화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빛을 비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속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나를 필요로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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