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명 막16:15-
서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사資?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값지고, 거룩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은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명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순종해야 하는 것이 명령입니다.
이는 그 사명의 중대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명령은 때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한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특히 군대에서 명령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명령이 준수되어지지 않을 때, 군대는 그 힘을 잃게 되고, 만약의 경우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상황에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가정에서 또는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 각을 합니다. 만일 탑 리더와 상관없이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 겠습니까 ? 자유로움도 있지만 어떤 것은 꼭 지켜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살리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이 얼마나 중대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 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12:30) 주님과 뜻을 같이 하지 않게 되면 이 말씀은 맞은 말씀입니다. 상사와 상관없이 내 뜻대로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일을 망치고 회사를 망치는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을 해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는 매우 부정으로 복음 전하는 사명에 대해서 언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두고 고백을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이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을까요 ? 도대체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어떤 일이기에 바울은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다고 하였을까요 ? 얼마나 중요한 사항이기에 예수님은 명령을 하였을까요 ?
바울은 디모데후서4:2에서 말하기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얼마나 다급하고, 중대한 일이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람은 종종 자신에게 있어서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느끼는 필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감각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내가 어떻게 사느냐 보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왠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벌고, 안되면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 사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것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노는 청 소년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현실에 급급하여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고통하고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정이 소중한지를 모르고 살 때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가 보면 때로 소중한 것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 배움에 대한 소중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소중함도, 사랑의 소중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으로 포장되어 있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 한 것들을 잃은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때로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분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상대적인 필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편은 하더 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없으면 절대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절대 필요라고 합니다. 물이 그것이며, 공기가 그것입니다. 빛이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있어서 물보다, 공기보다, 빛 보다 더 절대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죽으면 그만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외면하고 살아갑니다. 영생은 원초적 본능입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인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명예도, 권세도, 권력도 부도, 지식도, 지혜도 다 소용없게 됩니다. 진시 황제가 불로초를 구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 영생아닙니까 ?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 필요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나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여진 사실입니다.\"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사람은 방법이 없습니다. 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 복음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 복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죽으신 분이 살아나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 만이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복음뿐입니다.
둘째, 이 복음 전할 사명을 모든 제자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제자가 누구입니까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살다가 영원히 죽을 수 없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통해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며, 죄가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이고, 죽음 후에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보니까 어떤 사람들이 보입니까 ? 자기와 같이 구원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 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변화된 생활을 살수가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알고 있으면서 전하여 주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 이런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고전9:16-17)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도 저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고 부담이 없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해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고 죽어 가는 사람을 받지 않는 병원들에 대해서 분노를 금치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러나 영생의 문제는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내게 사명을 주신 이유가 또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과 환경 속에서 전혀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주안에서 형제가 되어 주님을 섬기게 된 일입니다. 만남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평생을 살아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나 보지 못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생을 가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전혀 모르고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속에서 알게 될 수는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다르고 활동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제한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시간적으로 제한을 받고, 거리로 제한을 받고, 공간으로 제한을 받으며, 처해 있는 환경으로도 제한을 받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많 은일을 하는 것 같고, 많은 곳을 다니는 것 같아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람쥐 채 바퀴를 도는 것 같은 인생 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사람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도 많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 이렇게 많은 인구 중에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100사람 이름되기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내가 아니면 복음을 들을 수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친구와 가족을 다 찾아 다니겠습니까 ?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사명을 부여하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분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하지 않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 입니까 ? 직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중요한 일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담을 주시는 영혼을 향해 가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부담을 느끼면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중국에 부담이 있으면 가야 합니다. 직장에 부담이 있으면 복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가족에 대한 부담이 있으면 복음 가지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복음이 없이 아무리 들락날락한다해도 영혼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11-27까지의 말씀을 보게 되면 열므나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한 귀인이 종 열을 불러 한 므나 씩을 주고 장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인은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귀인을 왕위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는 종들을 불러 장사한 것에 대해서 샘을 하게 되었 습니다. 이때 한 종은 나아와 10므나를 남겼다고 하였고, 다른 한 종은 5 므나를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종은 나와서는 말하기를 보자기 에 싼 한 므나를 내밀며 말하기를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라 두지 않은 것 을 취하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분이시라 며 한 므나를 내 놓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 종을 일컬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책망을 하고는 가지고 있던 한 므나 빼앗아 열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귀인이 왕이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여기에 열므나를 남긴 사람과 다섯므나를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귀인은 크게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는 큰 상을 내림이다. 고을을 다스리는 상이었습니다. 이는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으로 장사를 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나는 셩령을 상징한다고 하기도 하며, 그에 따른 은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은사는 복음을 전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기 때문에 결국 이 비유는 복음의 장사를 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한 사람을 말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상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아 없어지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 상의 이름은 기쁨의 면류관입니다. 바울은 기록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2:19-20)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수 믿는 삶의 가장 큰 기쁨은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께 돌아 올 때입니다. 이때 처럼 기쁘고 즐거울 때가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영혼이 구원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다 잊어버리게 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기쁨의 면류관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바울은 자신을 통해 구원 받은 영혼들이 기쁨이요 자랑의 면륙관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얼마나 환상적인 일입니까 ? 꽃다발의 크리스탈 트로피와 금으로 된 관을 쓰는 것과는 달리 나를 통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다 모여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될 때,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 영혼들이 말하기를 \"하나님 ! 나는 누구의 열매입니다. 나도 누구의 열매입니다. 나는 그 열매의 손자입니다. 증손자입니다. 조손자입니다. 등등\"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 되겠습니까 ?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무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 대해서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주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 사명에 대한 상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고는 헛되지만 주님께 대한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수고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환란을 당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더 이상 패배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버리시고 죽기까지 희생 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능히 구원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짐 엘리웃의 말을 다시한 번 기억합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은 바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복음 전할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이 사명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 첫째,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복음 전할 사명을 모든 제자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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