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마6:9 10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도의 대상에 대해서 상고했습니다. 기도의 대상은 누군가? 아버지죠.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 기도에 대상입니다. 땅에 있는 육신의 아버지는 좋습니다마는 완벽하지 못하지요? 악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해요.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럼 기도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아버지라고 부르는 나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기도자와 기도를 받으시는 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해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되지 않으면 절대로 기도가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렬히 기도해도 나중에는 다 변질된 기도가 되고 맙니다. 나는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은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라는 이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면 기도는 언제나 잘 못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란 자식이 아버지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식에게 주신 바 특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널드 던 이라고 하는 분은 기도란 크리스챤의 비밀 무기다 그렇게 정의를 했어요. 설명을 어떻게 하는고 하니 기도란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능력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자녀에게 선물로 주신 가장 능력의 도구가 기도라는 거지요? 그런데 왜 기도가 능력의 도구가 아니라 짐으로 여겨지느냐? 하나님과 싸우려 하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기도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할 때 기도는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길을 달리고 있는데 큰 길 한가운데 큰 돌덩어리가 놓여져 있더랍니다. 아버지가 차를 멈추고 아들한테 물었습니다. \"얘, 저 큰 돌을 네 힘으로 치울 수 있겠느냐?\" 아들이 말하기를 \"그러믄요, 간단하죠.\" \"그래 네가 한번 치워 봐라.\" 그래서 아들이 내려서 그 돌을 옮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있는 힘을 다해도 안되거든요. 이렇게 해봐도 안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되고 도무지 안 되는 거에요. 큰 소리는 치고 갔는데, 그러자 아들이 낙심을 해서 \"아버지 도저히 못 옮기겠어요\" 하고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최선을 다 해봐 최선을\" \"나는 최선을 다 했어요 더 이상 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때 아버지가 얘기했습니다. \"틀렸다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아니에요 다 했는데요.\"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어떻게 해야 최선을 다하는 겁니까?\" 그 아버지 대답입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그 말까지 해야 최선을 다 한 것이다. 너는 그 말을 하지 않았어 그러므로 너는 너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다.\" 그렇게 말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가르쳐 주었답니다. 멋있는 아버지지요.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기도를 해야만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크리스챤에게 주어지는 위대한 특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특권을 어떻게 이제 잘 활용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기도문의 정신이지요. 여러분이 늘 외지만 주기도문은 아주 논리적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 정확히 있어요. 주기도문의 서론은 \"대상에 대한 부르짖음\"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이 서론입니다. 본론은 크게 둘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 세 가지, 인간과 관계된 것 세 가지 그리고 결론이에요. 하나님과 관계된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게 하나요, \"나라이 임하옵시며\" 둘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셋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을 위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시고, 그 다음엔 \"시험에 들지 않게 악에서 구해주세요.\" 세 가지 그리고 나서 결론은 뭡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나님 찬송이에요. 그게 결론입니다. 아주 논리구조가 정확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무엇이 있어요? 주기도문 자체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에 관계된 것부터 기도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여러분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대개 하나님이 먼접니다. 1 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해서, 5 계명부터 10 계명까지는 인간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기준이다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준된 기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주기도문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이 연구를 많이 했는데, 엘머 타운즈 라고 하는 박사님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기도는 하고 싶은데 말이지 기도는 나오지 않고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연약한 성도들 또는 정말로 더욱 깊이 깊이 기도하고 싶다고 하는 성숙한 성도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의 발전을 위해서 주기도문은 꼭 필요하다. 그렇게 말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면, 시간은 1 분이면 족하답니다. 그렇죠? 주기도문 외우는 데 1 분이면 족한 줄 알아요. 그런데 그냥 외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고백으로 주기도문을 외라. 그랬어요. 주기도문을 외다 보면 어느 부분인가가 자기에게 와 닿을 거라는 거에요. 그럼 거기다가 몇 마디 보태도 된다고 그랬어요. 예를 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버지라는 말이 마음에 와서 탁 닿아요. 하나님 내게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나는 아버지가 안계십니다. 우리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내 아버지보다 더 좋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할 때 거룩에 대해서 내 마음에 와 닿을 때는 나는 거룩해 지기 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닮기를 원합니다. 또 나라이 임하옵소서.. 할 때 우리회사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어.. 우리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어.. 이런 것들. 장사하면서 외웁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그 마음이 마음에 와 닿을 때는 하나님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장사가 잘 되어서 빚도 갚게 하시고, 일용할 양식도 얻게 하옵시고.. 얼마든지 그 속에서 전개가 가능합니다. 또한 갈등이 생길 때..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이 주기도문의 활용도는 무궁 무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기도문 외는 데 무지하게 빨리 외어요. 다다다다... 외는 데 저도 말이 빠르다면 꾀 빠른 데 못 따라가겠어요. 얼마나 빨리 외는지 아무튼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숨 가프게 그렇게 하지 말고 한 구절 한 구절 속에 내 마음을 담아서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연습하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특별히 기도하기 어려울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불러보세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음이 차분해 질것입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지를 그 속에서 캐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분이 자기 회사 상관에게 결재 받으러 갈 때마다 마음이 부들부들 떨렸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웠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잠깐 기도하고, 그런 짧은 기도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를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 주기도문을 외면서 그 한 부분이 내게 와 닿는 것을 가지고 기도한 후에 들어가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몇 백번이고 기도할 수 있고, 매일 매일 기도할 수 있고, 이런 훈련을 하다 보면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린답니다. 그럴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도의 가장 좋은 모범을 내가 늘 내 마음 속에 내 고백으로 하면서 마음과 입술이 길이 들어요. 이렇게 기도하는 정신을 내 마음 속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기도의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해요. 많은 효과를 보는 것을 임상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정말로 차분한 마음으로 1 분이면 됩니다. 주기도문을 진심으로 외는 시간들 또 차 타고 가면서 라디오만 틀지 말고 주기도문을 고요히 고백적으로 하면서 주시는 바 내게 부딪쳐오는 부분을 놓고 좀더 집중적으로 기도해도 전체 기도에 상당한 균형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많이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제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하는 주기도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랍니다 이것이. 아버지 앞에 선 나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세며 목적에 관한 말인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이 가장 정확한 기도자세가 되는 겁니다. 기도할 때 잘못하면 내 형편과 처지가 답답하고 분하고 억울하고 답답해서 감정에 사로잡히다 보면 기도가 나오지 않지요.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그러한 기도, 아주 위대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란 여기서 벌써 우리 일반적인 기도 개념을 다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란 내 고집으로 하나님을 꺾는 거다. 이런 개념이 없잖아요. 잘 보세요. 또한 내가 하나님과 같이 신비한 연합에 이르는 거다. 그런 것도 없어요. 정말 기도의 진정한 목적은 뭐냐?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궁극적으로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기도의 목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이걸 전문 용어로는 기도의 일차 목표와 이차목표로 구별합니다. 기도의 일차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광\"이지요. 이것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지요. 오직 하나님께 영광, 사람의 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라틴말로 ~쏠리 데우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 개혁자의 모토 아닙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인생의 목적이면서 궁극적인 기도의 최종 목적이요 이것이 기도의 일차 목표입니다. 이차 목표는 무엇인가? 내 삶 속에 필요한 것을 아뢰고 공급받으면서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기도의 이차 목표라고 구분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는 기도한다 우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후에 우리가 잘 되기 위하여, 무엇이든 구한다. 진정 성숙한 기도란 하나님 중심의 기도요 성숙한 기도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는 기도, 이것이 위대한 기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지요. 제가 들었습니다 만은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우리 교우들 중에 몇몇 분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아픈 사람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는 중에 거기 나와보니까 참 좋더란 말이죠? 성도가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겠어요. 아마 기도하는 사람들도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어느 한 분의 마음 속에 이런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너희들이 기도하는 건 참 좋다마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예? 너희 자신들을 위해서 너희는 기도할 뿐 왜 나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느냐? 그 음성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정말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런 얘기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말씀하실 때가 있지요. 아니 대부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얘. 너는 너를 위해서는 많이 오는 구나. 네 자식을 위해서는 많이 기도하는 것 같아 정말로 너는 나 위해 기도하냐? 어! 이 말을 들었다면 말이죠. 낯이 뜨거워 질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뭡니까?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 주지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하나님 당신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하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기도를 해라 그런 얘기죠. 이건 위대한 기도요 거룩한 기도입니다. 소위 많은 기도의 용사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가 하면 이것을 위해 기도한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높이 드러나도록 이 나라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내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이 극대화되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이러한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기도지요. 그러므로 맨 날 우는 시시한 기도만 아니고 그것도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더 기도를 크게 바라보세요. 나는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리라. 그리고 기도해보세요. 엄청난 성장이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분석해보세요. 기도 중에 누가 가장 존중이 되고 있는지? 기도하는 당사자인 내가 가장 중심인지 아니면 내 기도를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 사람이 기도의 초점인지? 아니면 어떤 사건이 나서 아물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하나님이 초점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지는 것은 당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 그것을 하나님은 구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소위 성령 충만한 기도, 막 붙들려서 막 강권적으로 하는 기도란 어떤 것이냐 하면 바로 이런 기도에요. 내 환경만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 거룩한 마음 그 위대한 기도의 영(靈)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은 말하지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 데 하나님의 이름이 특별히 세 가지가 많이 나오죠. \"하나님\" \"여호와\" \"주\" 이렇게 나와요. 히브리 말로는 엘로힘. 야외. 아도나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주로 세 가진데 하나님은 보통 명사고 야외는 고유명사에요.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뜻이 강한 것이고 여호와라는 말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고 아도나이 \"주\" 라는 말은 나의 주인이다 인생의 섭리자라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이 대개 무엇으로 부르는고 하니 아도나이로 불러요 아도나이. 얼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했는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쓴 글자가 네 글자거든요? 이 네 글자를 특별히 신성한 문자 신성한 사 문자라고 해서 그 단어가 나오면 발음을 안했어요. 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해야 되는데 망령되이 부를 수가 없어서 안 불렀어요. 이름을 그리고 그 단어만 나오면 목욕재개를 하는 것입니다. 쓰다가 그 단어가 나오면 닥 가서 목욕하고 다시 한자 쓰고 그 다음 또 나오면 또 목욕해야지 뭐. 아마 살이 달았을 거에요 그리고 그것 쓴 펜은 다른 글자 안 쓰고, 하나님이란 말만 딱 쓰고 그렇게 거룩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보호했는데 이러다 보니까 말이죠 수 백년이 흘러가면서 발음을 못하게 되어 발음을 잊어버렸어요 원래 어떻게 하나님을 읽어야 되는지를 모르게 됐다니까 자음으로만 히브리어는 써 있어요 그래서 발음은 그 때 그 때 외워야 되는 데 수 백년간 이름을 안 부르다 보니깐 아도나이라고 자꾸 부르다 보니깐 원래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렸다구요. 그래 가지고 자음에다가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 가지고 만든 것이 여호와란 말입니다. 아마 이렇게 발음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죠?. 정확한 옛날 원래 발음이 뭔지는 몰라요. 그 정도로 이름을 거룩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름만 그렇게 거룩하게 여겼지 하나님 자신을 그렇게 높이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은 다르냐 하면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에 대한 개념에서 서양에서는 이름을 인격과 별개시 했어요 그래서 이름은 자주 부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아버지 이름도 막 불러요 서양에서는 이름에 대한 철학 때문이에요 이름과 인격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면에 동양에서는 이름과 인격이 일치해요. 그래서 안 부를수록 존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버지이름 안 부르잖아요. 나이 드신 분의 이름을 안 부르고 무슨 자 무슨 자 그러고 말고 그래서 안 부르려고 호가 생기고 자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이름을 그만큼 존중했다는 거요 이름 자체가 인격이기 때문이요. 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거룩히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 존재 자체를 거룩하게 높이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 우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내가 존중하겠다는 결단이 그 속에 들어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준 사명과 그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들 존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와 소원이 여기에 종속이 되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거룩만 위하면 나는 뭐가 되나? 하나님의 영광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하나님 영광 받으실 때 항상 그 백성에게 하나님은 최고의 은혜를 베푸셨어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때 나는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위대한 일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우리의 가치는 가장 소중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데 하나만 예를 들자면 모세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어요. 모세가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 송아지 만들어 가지고 범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내가 이 백성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때 모세의 유명한 기도가 출애굽기 32장에 잘 나옵니다. 그 기도에 핵심이 뭐냐?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금 송아지 만든 사람 진멸하는 것은 뭐 마땅합니다. 죄인들이 죽어야지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이들이 이 광야에서 다 죽어 엎어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애굽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 열 가지 재앙과 그 위대한 능력을 보고 찬송하고 아! 위대하다. 위대하다. 그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전부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죽어버리면 우리 죽는 건 괜찮은데요 하나님!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들의 신이 광야에서 그 백성을 죽이려고 그들을 인도하여 냈도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말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 백성을 살려 주옵소서. 그랬어요.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 졌어요 정말로 뜨거워 졌어요. 입빠른 말로 뭐 하나님 뭐 뭐 하나님 때문에 살려주세요 하는 말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알지요. 모세의 신학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져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을 돌려 말한 거지요. 그러니깐 소극적으로는 내 행동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 되는 거지요. 차라리 내가 손해 보고 내 자존심 좀 상하면 되고 내 이름 석자 좀 무시 받으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져서는 안되겠다는, 더 나가서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도 이것이 옳지 않는 일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겁니다 세계예수 전도단 창시자인 로랜 커닝이라는 유명한 분인데, 그분이 어느날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 큰 배를 사도록 해라. 너희들의 사역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말씀하세요 이러한 위대한 비젼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너무너무 기뻐서 많은 사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에 또 응답이 왔기 때문에 기뻐서 얼마든지 믿음도 생겼고 그래서 발표했더니 헌금도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래서 신문에다가 확 떠들어댔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를 주셨다 우리 배를 살 것이다. 그리고 자신 만만했어요. 그래고 배에서 일할 사람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세요. 너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너희들의 믿음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흥분했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막아버리겠다고 합니다. 전세계로 떠들어 놨는데 하나님께서 막으셨어요. 그때 그가 크게 깨닫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특별히 성공적일 때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일이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되겠는데 인간이 간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때가 있어요. 이게 하나님이 역겨워 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뭐 우리가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계획했고. 뭐. 우리. 우리. 우리.. 그래놓고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정말로 그러느냐?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내가 했다는 마음 꿈틀 꿈틀 일어나고 있단 말이요. 이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결코 용서하시지 않으신다. 특별히 간증의 목표가 뭐냐 이겁니다. 간증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우리 삶의 목표도 그렇고 기도의 목표도 그렇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최고 우선인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라고 형식적으로 말해놓고 결국은 다 자기 자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이지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또 열심히 일하다가 보면 하나님 사람 앞에 영광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부득이 주님 때문에 영광을 받았을 때, 그날 밤에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다 돌려드립니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 제가 한 게 아니고 우리 교회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셨고 하나님이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받은 모든 영광 하나님께 다 돌려드립니다. 다만 사용해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서 그 감사를 다 받으시고 자신에게는 칭찬과 교만으로부터 자유할 심령을 주신답니다. 위대한 고백이지요. 사람들이 왜 잘 나가다가 타락하고 실족하고 웃기는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서 잘 나가다가 꼴깍하는 사람, 잘 나가다가 이단으로 햇갈려 빠지는 사람이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 영광을 안 돌려서 그래요 최종적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그렇게 되지 않아요. 그런데 잘 되다가 교만해지고 영광을 스스로 취하게 되면 잘못된 길로 나가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역사 속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린 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뭘 사용하는고 하니 놋 뱀을 사용해요. 놋 뱀을 바라보라 그러면 산다 그랬어요. 놋 뱀이란 뭐냐?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는 수단으로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놋 뱀을 보면 살았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지게 될 때는 놋 뱀 자체를 숭배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 그것이 우상으로 전략하는 것입니다. 그건 가차없이 때려 부시는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버리고 자기교만으로 빠지게 될 때는 언제나 우상이 되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소요리 문답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가? 대답을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생활과 교리가 일치할 때 내 신앙고백과 내 생활이 일치할 때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라고 했어요. 우리 기도의 목적을 이제 분명하게 세웁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이요, 궁극적인 목적이요, 삶의 목적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 삶이 비방 받지 않아야 되는 거지요 소극적으로는.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고 하는 빛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요, 이것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하여 나를 드리겠다는 기도가 바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 말씀의 의미가 되는 겁니다. 우리 기도의 가장 중심 목적 그리고 소원이 \"주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것,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 그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기도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기도란 내가 하나님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신이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 그것을 위하여 나를 드리는 것이 기도의 궁극적 자세임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의 일차 목표와 이차 목표를 분명히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이차 목표로 시작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고 교제하며 성숙해 지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차 목표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기도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내가 중심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중심 되는 기도를 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초라하고 그리고 아집에 붙들렸던 기도들이 이제 크게 성장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그 영광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우리의 믿음의 시선이 활짝 열리게 하여 주시고 기도의 통로가 확 열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우리로 체험하는 역사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 위대한 기도의 목표로 주의 백성을 불러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이러한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것이 기도의 목적일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목적이 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인생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