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이름 마6:9 이번 한 주간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의 영광\'을 계속하여 말씀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 밤에 말씀을 묵상했던 내용이 십게명의 제 3계명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내용은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라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여야 할 말씀 역시 동일한 관점의 내용입니다. 요사이 보니까 우리교인들 가정에 고속 인터넷망이 계속 깔려가는 소식을 듣는데 한우리교회 홈페이지를 열어두어 즐겨찾기에 놓으시고 늘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제가 메시지를 전하고 나면 즉시 구어체 그대로 다듬어 홈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메시지를 꼭 보시며 오늘 말씀을 더욱 마음에 담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예쁜 딸을 얻으신 이준연집사님, 전성순자매님께서는 아이의 이름을 \'수민\'이라 지었습니다. \"예수의 민족\"이랍니다. 보니까 오래 전부터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대기상태에 있었더군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는 멋진 이름이었습니다. 우리 집 옆방에는 대학생이 있는데 \"예수\"입니다. 신앙의 가정이고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서 그렇게 지은 것 같은데 도무지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니 이름 부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름을 참 잘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옛말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도 이름을 남기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잘못 이름을 남겨놓으면 두고두고 가문의 수치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람의 이름이란 영광이라 하여도 후손에게나 자랑거리일 뿐 본인은 살아있는 동안만 가져보는 순간적인 영광일 뿐입니다. < 두 이름의 영광 > 세상에는 자기이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고 우리를 존재케 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자기이름을 위해 산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사람들의 이름은 두고두고 오는 모든 세대속에서 영광스런 이름들이 되었습니다. 이름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깁니다. 한 사람의 구별된 호칭으로만 불려질 이름이 있고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인격을 떠올릴 사람이 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동안만 기억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자라도 남을 위해 사는 삶의 가치를 알고 산 사람들은 이름이 후대까지 남는 법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로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저는 한우리교회를 세우고 섬긴 초대목사로서의 이름만 하나님 앞에서 남길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전제된 것입니다. 목사의 직함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의 역할로서 자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이름을 남기시렵니까? 신에 버금가는 권위를 누렸던 이집트의 수많은 파라오들도 로마의 황제들도 중국의 진시황같은 자들도 많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고통만 강요했던 한 시대의 절대군주자로서의 이름 외에 우리에게 매력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의 이름 > 모든시대는 갑니다. 이름도 사라집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1;9-11) 이 세상에 남는 것은 변화되는 문화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전세대가 남겨놓은 유산이요 흔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이름에 우리의 인격이 담기듯 하나님의 이름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담기어 있습니다. 그 이름만이 영원하며 그러기에 그 이름만이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바로 우리의 주인이시며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미 우리는 기도의 시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였으며 나는 그의 자녀요 백성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그의 나라에 소속된 백성이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랑받는 자녀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르고 싶어도 부를 아버지가 없고 부를 어머니가 없으며 부를 남편이 없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불행한 자입니다. 이 불행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데서 행복감을 얻습니다. 소속감을 느낄 가정이 있다는데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기 이전의 어린시절은 오직 그 행복을 느낄 곳이 가정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이 때에 해줄 것은 그런 가정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점점 그 행복감을 느낄 공간이 가정의 울타리에서 인간관계쪽으로 옮겨져 갑니다. 가정도 소중하지만 내가 만족을 느낄 또 다른 소속감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인지라 육적인 소속감 뿐 아니라 영적 소속감에서 동시에 행복의 동력을 얻습니다. 생각해보면 저처럼 어린시절 행복한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남들처럼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아주 어린시절 얼마간 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정상적인 가정생활속에서는 너무 행복했고 또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누린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습니다. 사람들이 보면 자신의 행복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물질적 여유가 조금 더 있어 보이면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 두 개의 가정을 건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어도 하나님을 참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된 지체들과의 사랑의 가족공동체를 만들어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룩히 여김> 아버지는 가족공동체의 최고 권위자이십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의논의 최고 결정자가 됩니다. 꼭 힘이 제일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부권의 권위 때문입니다. 여권신장을 주장하는 어느 단체에서는, 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해야만 하느냐 \'하나님 어머니\'라고 하자 ! 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라 하든 어머니라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되 한 분 하나님이실 뿐이며, 우리가 그에게 드릴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보통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과 희생을 베풀면서 오직 한가지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람과 기쁨입니다. 보상을 요구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참 부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내용이 \'거룩\'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였는데, 여러분 이 말을 기도로 드릴때마다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첫째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영광\'입니다. 이 말은 쉽게 표현하면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사랑해요 좋아요\' 하며 뽀뽀하는 일과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빠, 엄마로 인정한다는 것이요, 소중하다는 것이요, 항상 옆에 있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요, 주님은 나의 사랑입니다. 주님없는 삶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는 고백 이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는 영광의 내용인 것입니다. 천상에서 천사들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계시록에서 보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찬양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저 북한 어린아이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 찬양하며 울며 율동하는 세뇌교육의 발현과 같은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철부지의 몸짓이었는지를 깨달을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혹 예전의 정치바람에 휘말려 정신없이 이름부르며 환호하는 것을 보는데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 천사들의 찬양을 가보지 않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사실, 우린 찬양을 부르다가 그의 사랑과 은혜앞에 울며 감격할 때 얼마나 많습니까? 이땅에서도 우린 그의 사랑앞에 감격하여 이 영광을 드리는데 그를 직접 대면하며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될 때에 우리가 그 앞에서 할 일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의 찬양은 그의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자연스런 행위이며 기쁨의 표현임을 아시고 늘 찬양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생각해보는 것은 \'구별된 삶\'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기도문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고쳐 드려야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게 하옵시며...\" 입니다. \'거룩\'이란 항상 \'구별됨\'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씀을 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다른 이름과 철저히 구별되어야 하는 이름입니다. 어떤 다른 신과 비교되어질 이름이 아니며 사람의 이름과는 더더욱 비교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가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없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에서 나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 부분에서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그는 희생을 하셨습니다. 거룩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희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군중의 한사람으로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주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를 원하여 찾아오는 자들에게는,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나를 좇으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희생과 버림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생을 통해 구별됨을 보이는 자가 되십시오 먼저는 그리스도인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 세상에서는 더욱 인정받지 못합니다. 또한 먼저 가족과 친족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가까운 친지들에게 원망들을 사람이 무슨 이웃에게 인정받을 구석이 있겠습니까? 교인은 그래도 이해합니다. 친족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속으로 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상관없는 세상사람들은 이웃들은 우리의 조그마한 이기심 때문에 희생못함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두고두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먹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거룩히하는 것이 아니라 욕먹이는 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