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10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6:9-10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실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부르도록 하셨는데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는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산이나 바다나, 하늘의 해와 달이나 별이나,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돌과 나무 같은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있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영원히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신 우리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하나님께 자녀들이 부모에게 떼를 쓰고 조르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제일 먼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보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보다 먼저 해야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하나님을 높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 어떤 이들은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 그래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장로교인들은 이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장로교 요리 문답 제1번의 질문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하는데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기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를 제일 먼저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름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며,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삶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 주셨습니다. 믿음과 신앙과 인격에 어울리는 모든 나라의 아버지가 된다는 뜻의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부인도 모든 나라의 어머니라는 뜻의 새 이름 \"사라\"로 바꿔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다투어 이겼다는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고, 시몬은 믿음의 반석이라는 베드로로, 사울은 가장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은 그의 인격과 신앙과 삶을 대표하며 그 사람 차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을 말할 때에 꼭 \"무슨 자 무슨 자 이십니다.\" 하고 말합니다.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보통 성씨에다 직함을 사용하여 김 목사님, 이 장로님, 박 집사님 하고 부릅니다.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의 3번째 계명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그 뜻이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셔서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I am who I am!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영원토록 계실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계셔서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마땅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고, 경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높이며,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할까요?

거룩이란 히브리 말로 카도쉬인데 짤라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칼로 짤라 내어 둘로 만듭니다. 하나는 내 몫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이 거룩의 의미입니다.

소득의 열의 하나를 짜릅니다. 구별해 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립니다. 십일조는 거룩한 예물입니다.
나의 시간 가운데 7분의 1을 짜릅니다. 구별해 냅니다.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은 거룩한 성일입니다.

거룩할 성자를 쓰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민족 중에 택함을 입고 구별된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백성들 가운데 택함을 입어 구별된 우리는 구별된 거룩한 민족입니다. 거룩한 백성인 성민입니다.
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를 주관하는 구별된 직업은 성직입니다.
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고 있는 구별되는 책은 성서입니다.
많은 노래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는 구별된 노래는 성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보좌 아래 6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있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웠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웠고, 두 날래로는 날며 찬송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천사라도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어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감히 하나님께 더러운 발을 내어놓을 수가 없어서 날개로 발을 가리우고, 거룩하다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과 찬송과 존귀함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귀한 사람에게 귀한 대접을 합니다. 세상의 어른에게 어른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왕 중 왕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접하고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최고로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선거를 하는데 아무리 바빠도 주일 날 주님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대통령 되는 것이 귀한 일이지만 이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 그가 전에 가지고 있던 공식적이 직함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 그가 다니는 교회의 교회학교 교사 직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직보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직책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가수들의 콘서트 장에 가보면 가수에 대하여 열광적입니다. 함성을 지르는 것을 물론이고 일어서서 온몸을 흔들며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을 부를 때에 그렇게 열광하며 불러 본 적이 있습니까?
조용필이 아무리 훌륭한 국민가수라도 해도, 서태지가 아무리 젊은이들의 우상이라고 해도 우리 주님보다 더 귀하단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어찌 세상의 가수만도 못하게 여깁니까?

존귀하신 하나님을 존귀히 대접하고, 영광의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섬기고,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게 구별되게, 존귀하게, 영광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였을 때에 러시아 군인 하나가 나폴레옹 군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장교는 이 병사에게 러시아의 군인 될 것을 포기하고 프랑스를 위하여 일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인은 프랑스의 장교를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면 \"나의 조국은 러시아입니다. 나는 황제의 사람입니다. 오직 황제에게만 충성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장교는 인두를 가져다가 그의 팔에 나폴레옹의 소유라는 의미로 N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순식간의 일입니다. 이 러시아 병사는 옆에 있는 프랑스 병사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병사를 찌를 것 같은데 인도로 지진 N자가 새겨진 자신의 팔의 살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나의 황제에게만 속할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만 충성하며,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는 고백이요, 약속이요, 실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가 거룩하신 분입니다. 원래가 구별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자라고 표현합니다.

상대적에 반대말입니다.
키가 크다고 말할 때에 작은 사람보다 크고, 큰 사람보다 작은 것은 상대적입니다.
착하다고 말할 때에 악한 사람보다 착하고, 더 착한 사람보다는 악한 것은 상대적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늘 위대하십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늘 존귀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언제나 영광스럽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거룩히 여긴다고 거룩하여지시고, 우리가 천히 여긴다고 천한 분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 되시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천한 분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한 분으로 섬기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당시 총리로 있던 최규하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최고의 통수권자로서 입법, 사법, 행정 모든 것의 최고의 결정권자입니다. 특별히 군대의 최고 사령관으로 모든 군대를 지휘 감독합니다.

그런데 명목상으로는 최고의 실력자이지만 실제적으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참 뒤에 나온 월간지에 실린 글의 제목이 \"최규하 대통령의 빼앗긴 몇 일\" 이었습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습니다. 권세가 없었습니다.

다 아는 대로 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던 전두환 씨가 실세였습니다. 전두환 씨가 최고의 결정권자였습니다.

그 당시 고스톱을 칠 때에 전두환 고돌리, 최규하 고돌이가 있었습니다.
최규하 고돌이는 아까운 패지만 달라면 주는 것입니다. 전두환 고돌이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좋은 패도 가져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최고의 권력의 자리이지만 밑의 사람들이 순종할 때, 높여줄 때, 받들어 섬길 때에 그 자리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대통령 각하 하면서도 다 자기 멋대로 하였습니다. 결국 어두운 군사 독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귀히 여겨야 하고, 하나님으로 하나님으로 높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는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하나님이 높여 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입으로 주여 주여 하던 자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의 생활로 주여 주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에급을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친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 있는 동안 종살이하던 애급에서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하고,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농사할 수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 주시는 것을 감사하고, 쓴물을 달게 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내어 마시게 하신 것이 감사하고, 장차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감사하며 소망으로 행진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런데 감사 대신에 불만과 불평으로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것이 더딤을 보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 대신에 섬기는 것입니다.
애급에 모두 버리고 나왔어야 하는데 애급에서 하던 금송아지 만들어 섬기던 나쁜 습관을 광야까지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까지 가지고 가려는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결국 노를 발하였습니다.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내가 그들을 다 진멸하겠다. 대신에 너 모세로 큰 민족을 이루고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뜻을 전해 받은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노를 거두시옵소서.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진멸하시면 애급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었다 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노를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형벌을 받는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에 우상 숭배하고, 불의와 불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나라가 망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파멸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말둑보다 힘이 없는 신이다 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다 놓고 불레셋과 전쟁을 하였을 때에도 평상시에는 찾지도 않던 법궤를, 평상시에는 부르지도 않던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호들갑스럽게 법궤를 가져다 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대며 전쟁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불레셋의 노획물이 되어 실려가 불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 우상 단지 앞에 노획물로 처량하게 놓여지게 됩니다.
평상히 믿음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었고 심판이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되었던 것임.

이런 경우에 대하여 (롬 2:24)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초대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모여서 말씀을 듣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세상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칭송하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귀하게 보았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 왕을 기스의 아들 사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이새의 아들이 다윗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기쁨입니다. 사울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기스에게도 기쁨입니다. 아버지 기스에게도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왕이 된 사울은 누구 아들이야? 기스의 아들이구만! 아버지에게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왕으로 합당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백성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의 이름이 욕되었습니다. 그러나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의 아버지가 되는 기스에게도 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 뿐 아니라 아버지 이새에게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라고 합니다. 다윗에게 영광이지만 아버지 이새에게도 영광입니다.
다윗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불려질 때 그 아버지의 이새의 이름도 영광스럽게 불려졌습니다. 언제난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우리가 칭송을 받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칭송을 받습니다.
우리가 존귀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고급 옷 로비 사건의 수치스러움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꾼이 권사 집사의 이름이 청문회장에서 불려졌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이름을 외쳐대면 자신의 진실함을 말하였지만 진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권사 집사가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만 손가락지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손가락질을 당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손가락질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독일 뤼베크 성당에 기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고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고 부르면서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고 부르면서 구하지 않고
너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부르면서 오지 않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느니
그런즉 너희들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우리가 제일 먼저 하여야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입술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신앙과 삶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보통 사람은 뜨거운 냄비를 잡을 때 \"앗 뜨거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앙인은 \"오 주여!\" 하고 말합니다.
앗, 뜨거워 해야 하는데 오, 주여 했다고 결코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의 정성과 삶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정직하게 살면, 진실하게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면 하나님이 존귀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이 요구되는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기도를 입술로 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겠다는 삶의 결단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구별된 삶을 사는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 거룩한 생활의 기도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