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환영/창18:1-10


거룩한 환영
창18:1-10,히13:1-2





한 수도원에 나이 많은 수도사가 오랜 세월 수도를 하며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젊은 수도사가 노인 수도사에게 오더니 당돌하게 질문을 합니다.
\"오랜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절제하며 참회하면서 세월을 보내왔는데 아직도 뭔가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아직도 거룩해지지 않았습니까?\"
노인 수도사는 깔깔 웃으면서 말합니다. \"자네가 물으니 대답해 주지. 아니!(No!) 나는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어. 뭐 깨달음은 아직 없었냐고? 글쎄 잘 모르겠네. 솔직히 말해서 하루하루 은혜롭게 사는 것마저 아직도 매우 힘드네. 지혜를 깨달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수도사가 묻습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머무르세요? 수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셨다면 더 머무르실 필요는 없잖아요?\"
노인 수도사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합니다.
\"사실 내가 한가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어. 언제나 깨어 있어야(Stay awake!) 한다는 것. 우리는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지 몰라.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해! 우리의 모든 계획이 언제 수포로 돌아갈지 몰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하시곤 해. 하나님은 우리가 아차하고 있을 때 오실 수가 있어.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에 오시길 원하셔. 언제나 깨어있어야 해!\"
노인 수도사가 오랜 시간 수도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단 한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깜쪽 같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주위깊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깜쪽같이 찾아오십니다.
지난 주간에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수양회를 좋은 강사님을 모시고 아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자연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수양회에 참석치 못하신 교우분들은 여름 휴가를 통하여, 아니면 여러 모양으로 깜쪽같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줄 압니다.
이제 이번 주로서 8월은 과거 속으로 흘러가고 9월을 맞이합니다. 9월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깜쪽같이 우리를 찾아오실까요?
이 시간 9월이 되면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본문말씀을 봉독합니다.
\"형제들을 꾸준히 사랑하십시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서가 쓰여진 배경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에 심한 핍박이 있었을 때임은 틀림없습니다. 많은 핍박 가운데서 나그네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았을 것입니다.
박해로 인해 도망가던 신자들이 좀 유복한 크리스챤 가정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마 그 집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오늘의 말씀이 쓰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이 늘 손님이 오고가는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주석가들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장본인 중에 한 사람을 오늘 봉독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은 자손을 약속 받았던 아브라함이 세월이 지나도 아들이 생기질 않습니다. 이젠 아내 사라도 경도가 다 끊어진 때였습니다.
어느 무더운 날 아브라함이 천막문 앞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세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을 보자마자 천막문에서 뛰어나와 맞으면서 나그네들에게 청합니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쳐가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떡을 만들라고 하고는 종에게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게 합니다. 최고로 정성껏 요리한 것을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는 본인이 손수 옆에서 시중을 듭니다.
손님들이 아브라함에게 \"부인 사라는 어디 계시오?\"하고 정중하게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천막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때 갑자기 손님의 말투가 바뀝니다. 아니 창세기 기자는 더 이상 손님이란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봄 새싹이 돌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가정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후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는데 그의 부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늘 기도하곤 하였을 것입니다. 약속하신 아들을 달라고... 그런데 세월은 지나가는데 아들을 낳은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사라의 경도는 끊어진지 오래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더 이상 지쳐서 아들을 달라는 기도도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날 천막 앞에서 비몽사몽 졸고 있는데 세 나그네가 나타납니다. 여느때처럼 아브라함은 이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그네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아들이 일년 안에 주어진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였기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자신의 가장 치부였던 \'아들이 없는 부자\'라는 오명을 벗게 됩니다. 그는 이 아들을 통하여 만국의 아버지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8월중 여름 수양회를 통하여 여름 휴가를 통하여 또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를 깜쪽같이 찾아오셨던 하나님께서 9월이 성큼 다가옴과 함께 어떻게 찾아오실까요?
하나님은 나그네들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새로 보스톤에 유학오고 연수오고 이사오시는 나그네의 모습을 안고 우리를 깜쪽같이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번 가을 우리를 찾아오는 나그네들을 맞이하십시다. 나그네들과 함께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십시다.
유명한 정신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r May)가 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The Courage To Create]란 책이 있습니다. 한편 폴 틸리히(Paul Tillich)라는 독일에서 히틀러 정권을 피해 이민 온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책 중에 [The Courage To Be]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폴 틸리히의 [The Courage To Be]를 먼저 읽었고 그 후 롤로 메이의 [The Courage To Create]를 접해 보았습니다. 롤로 메이의 책을 집어 들으면서 폴 틸리히를 흉내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이처럼 비슷한 제목의 책을 쓴 사연이 있었습니다.
롤로 메이가 유니온 신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히틀러 정권에 의해 추방당한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가 부임해 왔습니다. 폴 틸리히 교수는 당시 철학과 신학,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석학이었습니다. 그런 폴 틸리히 교수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억센 독일식 악센트가 그대로 튀어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영어 발음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 내내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이런 일이 계속 되자, 폴 틸리히 교수는 강의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사랑하는 조국에서 추방당한 고독한 망명객의 처지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낯선 땅에서 망명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그에게 학생들의 비웃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쌓아온 학문적 업적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는 한없는 좌절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모든 의욕을 잃어갔습니다.
2학기가 되자 폴 틸리히 교수는 강의실 앞에만 서면 벌벌 떨었습니다. 강의는 안 할 수 없고, 하자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틸리히 교수의 마음에 생긴 병도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롤로 메이에게 이런 틸리히 교수의 고통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어느날 경직된 마음으로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틸리히 교수는 우편함에 카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 힘을 내세요. 우리가 웃는 것은 선생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오. 우리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롤로 메이 드림.\"
그날 저녁 카드를 다 읽은 폴 틸리히 교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통곡했습니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 있다가 노트에 이렇게 썼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 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러 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날 폴 틸리히 교수가 뜨거운 가슴으로 써 내려간 책이 그 유명한 [조직신학 2권]입니다.
그날부터 폴 틸리히 교수는 롤로 메이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롤로 메이는 심리학자로서 틸리히 교수를 도왔고, 틸리히 교수는 신학자로서 롤로 메이를 도왔습니다.
후일 시카고대학에서 폴 틸리히의 장례식이 치러졌을 때도 롤로 메이가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그날 롤로 메이의 눈물의 조사는 수천 명의 조문객들을 울리고도 남았습니다.
결국 폴 틸리히는 [The Courage To Be]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롤로 메이는 [The Courage To Create]란 책을 쓰는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롤로 메이는 나그네 된 폴 틸리히를 따뜻하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롤로 메이는 폴 틸리히로부터 진주와 같은 지혜를 배웁니다. 그리하여 그도 세계적인 정신심리학자가 되어 갔습니다. 롤로 메이는 나그네를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올해 여러분의 문지방을 넘어 여러분의 집을 방문했던 손님은 몇 분이나 되십니까? 여러분은 그만큼 올해 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을 방문한 나그네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여러분 가정의 가장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고 또 채우십니다.
사실 나그네가 천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많은 종교가 이 생각을 갖고 있고 특히 로마신화에도 이 사상이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 신화에서 보면 재누스(Janus)라는 신이 있습니다. 재누스는 문지방(doorway)을 지키고 축복하는 신입니다. 재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 앞문과 뒷문을 동시에 지킵니다. 재누스는 손님이 올 때 환영을 하고 떠날 때는 송별인사를 합니다. 재누스에서 1년의 시작인 January(1월)의 이름이 비롯된 것입니다. 아울러 문을 지키는 사람을 Janitor라고 부르는데 다 같은 어원에서 나올 것입니다.
원래 인간문화는 나그네를 반기면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나그네는 천사에서 악마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스톤에 온지 6년이 지났습니다만 가끔 이웃 목사님들의 불평어린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기는 일년에 30번 뉴햄프셔의 \'큰바위 얼굴(Old Man\'s Face)\'에 가 본다고 합니다. 또 일년에 30번 플리머스(Plymouth)에 간다고 합니다. 좀 과장된 표현이겠습니다만 너무 손님이 많이 와서 목회에 지장이 있다고 불평을 털어놓는 것을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그런 곳에 30번 가지 않나 생각해 보았더니, 제가 한국에서 신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별로 관광하려고 오는 손님이 없습니다.
이처럼 별로 손님이 없는데도 갑자기 누가 온다고 하면 먼저 겁이 나고 수첩을 보게 됩니다. 뭔가 바쁜 일은 있지 않은가 체크해 보려고... 어떤 때는 바쁜 일이 있길 원합니다. 피해 보려고...
이것이 현대인의 마음은 아닙니까? 우리는 더 이상 나그네가, 천사가 아닙니다. 도리어 괴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자꾸 메말라 가진 않습니까?
반면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천막 앞에서 졸다가 세 사람이 눈에 띄자 달려가서 절하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다 지친 아브라함에게 많은 소원이 하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그네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나그네를 기다리십시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접하십시다. 깜쪽같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실 것입니다.
올해도 9월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안 기다리던 새로운 나그네들은 보스톤을 찾아옵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그네를 기다린다면 나그네들을 통하여 깜쪽같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스코트랜드 어느 섬에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가 있습니다. 스코트랜드 특유의 신앙 전통을 이어 받아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로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에서 하는 큰 일 중에 하나는 찾아오는 사람을 잘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에서 강림절에 대한 좋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강림절 곧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강림절 기간 매일매일 명상하도록 날짜별로 쓰여져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쓰여진 이 책에서 강림절 가장 첫날에 명상하도록 쓰여진 이야기는 바로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를 찾아오는 자들을 위해 청소하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그리 흥미진진한 것을 아니었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아주 의미 깊게 읽었습니다.
새로 오는 나그네들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넘칠 자기내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지낸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기다리면서 강림절 첫날을 지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9월이 오기 전 8월의 마지막 한 주 우리도 우리를 찾아올 나그네들을 기다리면서 지내십시다. 이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깜쪽같이 임할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면서 지내십시다.
사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오늘의 우리 교회가 된 것은 저희 교회를 나그네처럼 왔다 가신 분들의 자취가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나그네처럼 왔다가 깜쪽같은 선물을 저희 교회에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면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성가대에서, 주일 학교에서, 대학부, 청년부에서, 각 구역에서 아름다움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올해 특히 우리 교회에서 아리죠나 선교와 페루 선교를 마쳤는데 나그네로 왔다가 이 귀한 선교의 동참하고 떠난 대학, 청년부 회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자취를 남기고 떠난 것입니다. 이처럼 오가는 나그네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온 것입니다.
이제 9월을 맞아 새롭게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하나님은 나그네들을 보내십니다.
이들을 기쁨으로 맞이하십시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십시다.
그러나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주 값진 일입니다. 깜쪽같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나그네를 영접하는 아이오나 공동체(Iona Community)에서 부르는 시를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어젯밤 나는 나그네를 보았습니다.
나는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잔에 마실 음료를 따라 드렸습니다.
아름다운 선율로 그의 방을 채웠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집을 축복하셨습니다.
나의 가축을, 나의 모든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종달새가 울었습니다.
\'자주 자주 자주
그리스도는 나그네로 오시네
자주 자주 자주
그리스도는 나그네로 오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