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의 성결을 지키라 고전5:6-13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6)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7)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8)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9)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10)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11)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12)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고전5:6-13)
교회의 잘못된 자랑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흔히 \\\\\\\"4 C\\\\\\\"로써 평가됩니다. 첫째는 carat, 즉 크기입니다. 1캐럿은 0.2g입니다. 둘째는 clarity, 투명도입니다. 셋째는 color입니다. 황색, 갈색, 녹색, 청색, 적색, 흑색 등이 있는데 청색을 띤 백색을 가장 높은 품질로 평가합니다. 넷째는 cutting입니다. 이상적인 비례로 잘라졌는가를 평가합니다. 다이아몬드의 품질에 흠이 되는 것은 包有物, 내부의 균열, 연마시의 흠 등입니다. 포유물은 자연산인 경우 0.2%까지의 질소와, 20ppm까지의 알루미늄이 포함됩니다.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보석이 되는 이유는 稀貴性과 强度, 광채, 내구성 등입니다. 물리적인 성질을 보면 다이아몬드는 硬度 10으로 현존하는 광물 중에 가장 단단합니다. 安定性도 비활성기체 속에서는 1700℃까지 안정하고, 산화 조건 하에서는 1000℃가까이까지도 안정합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외형뿐만 아니라 그 내적인 특성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교회를 다이아몬드에 비유한다면 어떨까요? 같은 보석이라도 내용을 살펴보면 품질이 천차만별이듯이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다 같은 교회 같지만 공동체의 내용을 품질로 평가한다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평가 내용이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부지런함, 수고, 인내, 거짓 사도를 드러낸 장점이 있는 반면 처음 사랑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물질적으로 가난해진 교인들로써 칭찬을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 도시에서 어느 정도 버티었지만 반도덕 주의자들인 니골라당을 용납한 것에 대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가 있었으나 자칭 선지자인 이세벨을 용납하여 우상과 음란에 빠진 것을 책망 받았습니다. 사데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富饒하여 겉모양은 살아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인은 적었지만 말씀을 철저히 지킴으로 신실한 생활을 함으로써 칭찬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인 교회의 전형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앙은 세속적이고 미지근하기만 한 것을 책망 받았습니다. 그러면 과연 오늘의 교회들은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아마 하나님의 평가는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만일 하나님의 평가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오늘날 교회들처럼 저 혼자 잘났다고 자랑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자기 교회를 무척 자랑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가장 큰 도시에 세워진 가장 큰 교회입니다. 바울, 아볼로 같은 좋은 지도자가 거쳐간 교회입니다. 방언, 예언, 신유 등, 성령의 은사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철학자의 나라인 그리스에 세워진 知的인 교회입니다. 이런 식의 평가는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얼마나 큰 교회인가? 얼마나 유명한 지도자가 있는가? 얼마나 성령의 은사가 많은가? 얼마나 고학력자들이 많이 모이는가? 그러나 과연 그런 것들이 자랑거리가 될까요? 오늘 사도 바울은 단언합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6절) 다 잘못된 자랑입니다. 주님은 이런 교회들을 외형과 상관 없이 미성숙된 교회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한 평가 기준을 순결과 진실에 두고 있습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8절) 얼마나 공동체가 순수한가? 얼마나 공동체가 진실한가? 즉,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졌는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진실한가? 바울은 교회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3:21)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9:23-24)
공동체의 순결 문제
오늘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순결, 즉 거룩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거룩하고 죄가 없어야 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특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특성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개인의 순결을 말하기 전에 공동체의 거룩을 말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개인의 순결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순결 없이 개인의 순결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순결은 하나님 백성의 특성입니다. 교회는 지상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공동체는 개인의 범죄를 특별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공동체를 몇 가지로 비유합니다. 건물에 비유합니다. 인체에 비유합니다. 가족에 비유합니다. 오늘 말씀은 반죽 덩어리에 비유합니다. 이러한 비유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체성과 연관성입니다. 교회는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개인은 혼자만의 삶을 누리는 독자적 존재가 아닙니다.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 속의 개인입니다. 건물은 기둥만으로, 혹은 지붕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모든 부품이 다 합쳐져야만 집이 됩니다. 인체도 마찬가집니다. 눈, 코, 귀, 입, 심장, 뼈, 손과 발, 다 중요하지만 홀로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다 합쳐져서 서로 협력할 때에만 생존이 가능합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가족 중 어느 한 사람만 행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함께 행복하든지, 함께 불행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에 비유된 반죽 덩어리도 그렇습니다. 반죽의 일부만 좋고 나머지는 나쁜 경우는 없습니다. 전체가 나쁘든지 좋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공동체의 특성은 무엇이든지 서로 共有한다는 점입니다. 좋은 것도 공유하고 나쁜 것도 공유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공동체에서 어느 한 사람이 악하다면 그것은 개인만의 죄가 아닙니다. 전체가 악한 것이 됩니다. 명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개인의 죄라 할지라도 공동체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누룩 없는 절기를 지키자고 합니다. 구약 절기를 지키자는 말이 아니라 신약적 의미의 무교절을 얘기한 것입니다. 구약의 무교절이 뭔가요? 무교절은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7일간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유월절 절기의 기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결정적 이유는 애굽에 내려진 長子 심판의 재앙입니다. 파라오의 왕실에서부터 시작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집에는 특별한 은혜가 내려졌습니다. 집집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심판을 시행하는 천사들이 피를 바른 집에는 심판을 내리지 않고 그냥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즉, 유월절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바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어린양 때문에 살아났듯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에 이어지는 무교절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백성의 성결의 의무를 나타낸 것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애굽이나 가나안의 모든 죄악된 삶에서 떠나 완전히 성결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7일간 무교병(누룩 없는 떡)을 먹은 것은 모든 날 동안 거룩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자녀답게 평생토록 거룩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누룩 없는 떡을 먹자는 뜻입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 자체가 식품 영양학적으로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룩이 지닌 상징성 때문입니다. 누룩은 죄와 닮은 특성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전염성이고, 둘째는 변질시키는 능력, 즉 파괴성입니다. 누룩을 반죽에 넣으면 삽시간에 퍼집니다. 그리고 반죽을 변질시킵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죄는 놀라운 전염성과 파괴성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에 그 아들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숨었지만 가인은 뻔뻔하게 대들었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홍수로 심판을 당했지만 그 자손들은 바벨탑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항했습니다. 소돔성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당할 때에 그 성안에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온전한 사람은 롯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그 땅에는 죄가 \\\\\\\"貫盈\\\\\\\"(가득 차다)\\\\\\\"했다고 말씀합니다. 죄의 전염성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해갑니다. 오늘날 죄는 어느 시대보다도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모든 매체들이 다 죄를 전파합니다. 신문, 잡지, 영화, 소설, 텔레비전, 드라마, 인터넷, 각종 광고들이 다 죄를 전파합니다. 이와 같은 타락에는 언제나 그럴싸한 명분이 있습니다. 經濟發展의 명분, 文化 暢達의 명분, 평등 사회의 명분 등등, 각종의 명분으로 죄가 조장됩니다. 경제 발전을 예로 들어 볼까요? 금년 4월 8일자 뉴스위크에 한국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제목은 \\\\\\\"한국의 어두운 비밀\\\\\\\"(Korea`s Dark Secret)입니다. 기분 나쁜 제목입니다. 기사 내용은 한국의 落胎 실상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 관리의 말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매년 150만 건 내지 200만 건의 낙태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미국과 비슷합니다. 미국의 가임 여성은 한국의 6배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낙태 비율은 미국의 6배인 셈입니다. 말로는 유교 국가인데 性文化는 미국보다 더 개판입니다. 1950년대까지 한국은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낙태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人口를 문제삼고 가족계획을 시작했습니다. 예비군 훈련 가면 단체로 꼬셔서 불임 수술을 시켰습니다. 인구 조절을 빌미로 여성들의 낙태가 공공연히 조장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형식적인 낙태관련법이 있기는 합니다. \\\\\\\"강간이나 기형아 출산 산모의 건강이 문제되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한다는 법입니다. 그러면 이런 특별한 경우가 일년에 200만 건이나 됩니까? 매년 200만 명이나 되는 생명체를 母胎에서 虐殺하는 나라를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 같습니까? 경제 발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문화 창달의 명분도 그렇습니다. 모든 문화 예술 활동에서 표현의 자유를 거의 무제한으로 보장하라는 것이 현대 사회의 흐름입니다. 미신, 우상, 포르노, 폭력, 살인, 범죄, 모든 내용들이 상업주의 물결을 타고 범람하고 있습니다. 죄는 또한 놀라운 파괴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죄의 파괴력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죽은 미군 병사는 몇 십 명도 안 됩니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서 강도의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매년 2 만 명도 더 됩니다. 얼마 전에 \\\\\\\"막가파\\\\\\\" 식의 범죄자들에게 다섯 명의 여성들이 살해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년 병원에서 살해되는 200만 명의 생명에 비하면 \\\\\\\"鳥足之血\\\\\\\"입니다. 막가파는 살인자로 감옥에 갔지만 낙태자들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죽이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멸망한 이유는 신앙적 背敎와 도덕적 타락입니다. 중세 교회가 몰락한 이유도 도덕적 타락 때문입니다. 범죄는 교회를 파괴시키고, 개인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파괴시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性犯罪가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의 심판도 성범죄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심판도 성범죄가 주종입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이 몰락한 것도 성범죄 때문입니다. 죄는 개인과 공동체를 다 파괴합니다. 이제 다시 교회공동체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성도들이 죄를 방어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인 동시에 교회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죄를 방어해줄 공동체가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세상 종말까지 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개인이 홀로 범죄적 환경에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가서 죄를 방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교회 공동체 자체가 죄에 오염된다면 큰일입니다. 아무도 개인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순결을 생명처럼 방어해야 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거룩한 삶을 지켜가야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순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범죄자를 추방하라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교회 공동체가 죄에 감염되는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 가차 없이 죄를 추방해야 합니다. 죄는 개개인을 통해서 공동체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개인의 범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됩니다. 만일 누가 지속적인 범죄 행위를 일삼는다면 공동체는 그를 격리시켜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13절) 죄를 짓기만 하면 무조건 내어쫓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회개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얘기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세상 공동체로부터 聖別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교회는 세상 모든 단체들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입니다. 주인이 다르고, 구성원이 다릅니다. 공동체의 목표가 다르고, 삶의 방법이 다릅니다. 비록 외형상 구성원들이 세상과 관련을 맺고 있기는 하나 영적으로는 완전히 세상에서 분리된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 교회 공동체는 죄를 철저히 격리시켜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묵은 누룩은 반죽에서 떼어 내라고 했습니다. 묵은 누룩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죄악된 행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세요. 여섯 가지 특정 범죄가 나옵니다. 음란한 자, 탐욕스러운 자, 우상 숭배자, 후욕하는 자(욕설을 하는 자), 술취하는 자, 토색하는 자(노략질) 등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범죄들은 세상에서 크게 여기는 죄가 아닙니다. 즉, 법적으로 다룰 범죄들이 아닙니다. 도덕이나 윤리적인 범죄들입니다. 누가 욕심이 많다고 처벌할 수 있습니까? \\\\\\\"김 아무개는 욕심이 많음으로 징역 10년에 처함!\\\\\\\" \\\\\\\"박 아무개는 음란한 생각을 품었으므로 징역 5년에 처함!\\\\\\\" \\\\\\\"이 아무개는 욕설을 해서 남을 모욕했으므로 벌금 3천 만 원에 처함!\\\\\\\"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교회공동체는 세상법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법에 지배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법과 상관없이 교회 공동체를 철저히 평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평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도덕적인 범죄자들과 사귀지도 말고 식사도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음식점에 가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 식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하라는 말입니다. 범죄자와는 사귀지도 말아라! 왕따 시켜라! 그래야 공동체가 산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죄를 제거하는 것은 성도 개개인이 다 함께 져야될 책임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 죄악이 침입한다면 단호하게 추방해야 됩니다. 철저히 잘라버리세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2-29) 거짓을 버려라! 진실을 말하라! 분내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고 제 손으로 노동을 하라!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말을 하라! 먼저 내 자신부터, 모든 삶에서 죄악을 추방하십시오. 그것이 공동체를 위한 나의 책임입니다. 때때로 죄와의 싸움은 희생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물질적 손실을 입습니다. 지위를 잃기도 합니다. 명예가 손상되기도 합니다. 인간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죄와의 싸움은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를 살리고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인체에 세균이 침입하면 백혈구가 나서서 싸웁니다. 백혈구는 세균을 완전히 감싸서 분해시켜버립니다. 그러는 동안 백혈구 자신도 생을 마감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입니다. 백혈구의 전투로 우리 몸의 건강이 지켜집니다. 오늘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서 죄와 투쟁할 때에 교회 공동체의 건강이 지켜집니다. 거기에 따라서 내 자신과 가족의 영적 건강도 지켜집니다. 오늘날 세상은 급격히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 세상 한 복판에 교회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서 세상을 심판하고 거룩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럴 능력도 없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도 않으십니다. 불신 세상에 대한 심판은 전적으로 하나님 몫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거룩입니다. 앞으로 교회는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처럼 될 겁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 別種의 집단으로 드문드문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혹독한 생존의 투쟁을 해야만 합니다. 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를 위해서 끝없는 투쟁을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서 끝없는 투쟁을 해야만 합니다. 그 투쟁은 계급 투쟁이 아니라 죄와의 투쟁입니다.
우리는 나날의 삶이 잔치요 명절(feast, festival) 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 잔치 같고, 가정 생활이 잔치 같기를 원합니다.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면 공동체 自淨의 책임을 감당하십시오. 죄의 누룩을 제거하세요. 먼저 내 자신의 죄를 제거하고, 그 다음에 교회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러면 매일매일 잔치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 두 번째 멧시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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