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습관 눅22:39-44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습관이 있다. 습관에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든가 도박을 한다든가 마약을 하는 습관은 나쁜 습관이다. 이런 나쁜 습관은 인생을 실패케 하며 패가망신케 한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항상 배우려는 좋은 습관은 우리를 성공케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대개 성공하고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한 7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다. 거기에도 보면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좋은 습관을 길러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세상에 빛을 남긴 위대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도 우리와 별 다름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남다른 좋은 습관이 있었던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은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유대인 포로 2세였다. 그는 이역 땅에서 말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 처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루 세 번씩 조국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간직하였다. 그러한 그의 거룩한 습관이 그로 하여금 이역 땅에서도 이방 종교에 물들지 않고 죄악에 빠져들지 않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한 것이다.
어떤 분은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고 비꼬아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열심히 적는데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다. 그런데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 치고 집에 가서 다시 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영어에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하자.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대하고 환경과 다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며 불평한다. 이런 사람은 흔히 자포자기하고 절망하며 굴종하므로 실패와 파멸로 빠져들기 쉽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꼭 같은 어려움과 위기에 직면했는데도 긍정적으로 대처한다. 그것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간다. 그러므로 오히려 성장과 축복의 기회가 된다. 여러분!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인가?
그럼 우리의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우리의 생각이 행동화하고 우리 행동을 반복하게 될 때 그것이 습관화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의 양식\'(lifestyle)을 습관이라 부른다. 습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후천적인 것이다. 우리 속담에 \'습관은 제 2천성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세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습관은 천성과 함께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길러가려면 어려서부터 기르는 것이 중요하고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우리 말에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어른이 하는 대로 곧 바로 따라 한다. 딸이 배가 아프자 엄마가 말하기를 \'속이 비면 배가 아프단다\' 말하면서 무엇을 좀 먹으라고 했다. 정말 빈속에 음식이 좀 들어가자 마자 아프던 배가 깨끗이 나았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들어와서 하는 말이 \'골이 쑤시고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린 딸이 말하기를 \'아빠 사람이 골이 비면 머리가 아픈 거야\'라고 말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그 만큼 아이들은 빨리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행동이 습관화하려면 적어도 6주간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습관이 우리의 인격과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습관을 잘 다스리면 세계를 정복하게 되고 습관을 잘못 다스리면 자기를 파괴시킨다\'.
오늘 본문 39절에 보면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나가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간단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지니셨던 몇 가지 아름답고 거룩한 습관을 찾아 볼 수 있다.
1) 예수님은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즐기시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님은 분주하고 바쁜 일상생활과 사역을 떠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시는 귀한 습관이 있으셨다. 성경에 보면 여러 곳에 예수님께서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계셨던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일과와 사역을 계속 하시면서도 가끔 그 바쁜 삶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시고 감람산으로 나가셔서 조용히 묵상하고 사색하며 쉬는 시간을 가지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준다. 우리가 바쁜 이민생활 속에서도 잠시 우리의 일손을 멈추고 삶의 포즈를 취해보고 휴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문장에서도 쉼표가 대단히 중요하다. 쉼표 없이 글을 계속 써 가다 보면 의미가 왜곡되고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글이 되고 문장이 되려면 물음표나 감탄사도 있어야 하고 마침표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쉼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달려가는 도로에도 stop 사인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stop 사인이 없으면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도 이러한 삶의 정지와 휴식을 통해 인간다워지기 때문이다. 휴식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새 출발과 재창조를 위한 준비운동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재정비하여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발돋움인 것이다.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도 일주일에 하루를 쉬도록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창조적으로 살도록 주신 창조적 질서이다. 이것을 깨고 살아갈 때 잘 살 것 같지만 오히려 불행하게 되고 육신과 심령이 병들게 된다.
파스칼은 \'인간이 잘못되는 것은 조용한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휴식은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만일 밤의 휴식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낮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 유명한 화가 Grant Wood는 \'나의 좋은 작품은 붓을 들었을 때가 아니고 소의 젖을 짤 때 이미 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영감, 위대한 착상이 붓을 들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산책하고 오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부여된다는 말이다.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체험을 할 때가 많다. 말씀 준비가 잘 안되고 생각과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붓을 놓고 쉬면서 산책을 하거나 머리를 좀 식히면 영감이 떠오르고 좋은 착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전쟁에서 작전상 후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후퇴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의 가장 큰 위기는 조용히 사색하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잃어 버렸다는 점이다. 리처드 포스터 박사는 현대인에게 바쁨과 소음은 영적 생활을 빼앗고 마비시키는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곧 마귀라고 묘사했다.
신학자 화이트헤드는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이 조용히 물러앉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의 슬픔은 조용히 물러앉아 추구하는 삶을 상실했다는데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휴식이 참으로 필요하다. 위대한 행동은 결국 조용한 묵상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선교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너희는 때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고 권면하신 것이다.
시편 기자도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고 말씀하셨다. 엘리야가 burnout(기진맥진)했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게 된 것은 강한 바람이나 불 속이나 지진 가운데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다 지나간 후 아주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심을 체험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와의 깊은 영적 교제를 갖기 위해서는 가끔 온갖 소음이 우리의 고막을 울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 문명을 떠나 혹은 삶의 현주소를 떠나 조용한 장소나 기도원을 찾아 분주한 삶의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자기 자신의 삶을 되새겨 보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반추하는 삶을 통해 인생의 깊이와 멋이 형성되고 길러지는 것이다. 삶의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삶의 여유가 너무 없다. 심한 경쟁과 빠른 속도문명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사람이 삶의 여유가 너무 없고 너무 삶이 각박해지면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예수님처럼 break time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쉼을 통해 인생을 재충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2) 예수님은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가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기도하는 거룩한 시간을 가지셨다. 그는 어떤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필요로 하실 때 항상 기도하셨다. 그는 공생애에 들어가시면서 광야에 나가 40주야를 금식 기도하므로 시작하셨다. 12제자를 선택할 때나 십자가를 앞에 놓고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7마디 말씀을 남기셨는데 7마디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을 맺으셨다. 이렇게 그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맺은 삶이었다.
한 미국의 제재소 직원이 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책상 위에 보니까 해고 통보가 있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졸지에 퇴직을 당했다. 말하자면 졸퇴를 당한 것이다. 황퇴는 황당하게 퇴직 당한 것이고 졸퇴는 졸지에 퇴직 당한 것을 말한다. 그는 한 마디로 살 의욕을 잃고 자살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모든 노력을 다해 봤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살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인이 \'여보 당신은 한 가지 시도를 해 보지 않았어요. 당신은 하나님께 정말 진지하게 당신의 문제를 내 놓고 기도해 본 적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 말에 감동을 받고 아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기도하는 가운데 직장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하였다. 건축을 하면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값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호텔이 없는 것을 알고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좋은 서비스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저렴하고도 깨끗한 시설을 갖춘 호텔업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곧 세계적인 체인이 된 홀리데이 인이다. 이것이 창업자 케몬스 윌슨이라는 사람의 성공담이다.
Prayer Christian is powerful Christian이란 말이 있지만 크리스천의 삶에서 기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깊은 영적 교제를 지니고 사는 성도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그 내면적인 삶이 항상 풍요롭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경건하고 위대한 신앙의 삶을 산 크리스천들은 모두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기도의 용사들이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매일 한 시간을 기도하였고 더 분주한 날에는 한 시간을 더 기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기도 없이는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생략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본 회퍼도 매일 30분씩 Quiet Time을 갖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위대한 순교적 행위와 사랑은 바로 그의 그러한 조용한 기도생활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능력 있는 크리스천 생활의 비결은 한 마디로 기도생활에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변화산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너무나 황홀한 체험을 하고 산상에 머물기를 간청했지만 예수님은 산아래 마을로 내려오셔서 가난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사람들을 섬기셨다. 한 병든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예수님께 그 아들의 병을 고쳐 주기를 소원하였다. 예수님이 그 아이의 병을 고쳐 주셨을 때 제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우리는 노력했지만 못 고치고 실패했는데 주님은 그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 이외에는 이런 유의 병을 고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다.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한 앉은뱅이가 구걸을 요청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내게 금과 은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을 때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 귀한 것은 이런 장면을 보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민심을 두려워해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사도들을 감금하였다. 그러자 초대 크리스천들은 합심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그때 옥문이 열리어 베드로가 출옥하게 되고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기도는 전기코드를 소케트에 연결시키는 것과 같다. 전기를 연결시키면 라디오나 TV가 소리를 내고 뉴스를 전해준다. 냉장고나 발전기가 돌아가며 역사한다. 우리도 힘이 없고 연약하지만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될 때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성을 뛰어넘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다. 혹은 기도는 셀룰러폰과도 같다. 아무 선도 없지만 이쪽에서 말하면 상대방이 듣고 응답하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영적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는 거룩한 습관을 지니고 계셨다. 앤드류 모레이는 모든 크리스천은 \'순종학교\'에서 순종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5:8-9절에서 예수님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 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기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이루려고 하기보다도 내 뜻을 추구하고 이루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내 뜻대로 해달라고 떼를 쓰고 악을 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기도 들어주지 않으면 교회 안 나올래요! 하나님께 엄포를 놓고 공갈을 할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한 마디로 자기를 항상 부인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쳐 복종시키는 삶인 것이다.(고전 9:27)
사도 바울은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 빠뜨리게 되었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드린 기도가 순간적인 기도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항상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쳐 복종시키시던 예수님의 일상생활의 거룩한 습관이 그 기도 속에 반영되고 십자가를 지시는 하나의 위대한 결정체를 이루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어떤 문제 앞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항상 긍정적으로 보고 대처해 간다. 어떤 역경과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 중년신사가 삶에 지치고 사업에 골치를 앓다가 친구와 함께 머리도 시킬 겸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창가에 앉아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기차가 시끄러운 기적소리와 함께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 가리고 말았다. 그것은 불과 몇 십 초 또는 길어야 1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기분이 상해서 \'저 놈의 기차가 나의 시야를 가로막아 기분을 잡쳤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때 옆에 앉았던 친구가 \'이 사람아 기차의 객실에는 양쪽에 창문이 달려있지 않은가! 한 쪽이 어두워지고 시야가 가리면 다른 쪽 창문을 통해 밝은 세상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은가?\' 타일렀다. 아닌게 아니라 다른 쪽 창문을 통해서 바깥쪽의 더 아름다운 하늘과 새털구름, 맑은 호수와 그 위에 떠다니는 요트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있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는 양쪽 창문이 있다. 하나의 창문이 가리고 닫힐 때 우리는 다른 창문을 통해 더 밝고 푸른 창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 관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어떤 처지에서도 거기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찾게 되며 풍부와 궁핍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2차대전 때 한 병사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서 큰 수술을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선생은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회복될 것입니다. 한 쪽 팔을 잃었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하고 위로했다. 그때 그 병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오히려 의사선생을 향해 \'선생님!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팔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 병사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사실 없어진 한 팔에 대해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삶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가치관을 위해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삶의 훈련이 된 사람은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으며 세상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게 된다. 저는 한국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와 이봉주 선수를 길러낸 정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 그에게 연봉 20억 엔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로 \'나는 한국의 마라톤 선수를 길러내는 사명이 있을 뿐이라\'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 후에 다시 40억 엔을 주겠다면서 감독으로 와 달라고 제안해 왔다. 사실 sportsman이 외국에 나가 활동하는 것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절한 것이다. 저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목사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닌 줄 안다. 그의 삶의 오랜 습관을 통해 인격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본 보여 준 것처럼 거룩한 습관을 통해 인격화하고 영성화해 갈 때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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