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갈증이 있습니까?/시42:1-5

거룩한 갈증이 있습니까?/시42:1-5

거룩한 갈증이 있습니까?
시42:1-5





우리 몸에 물(수분)이 부족할 때에는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운동을 많이 하거나, 무더운 여름에 힘든 일을 하다가 땀을 많이 흘렸을 때에는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땀으로 빠져나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비행기를 오래 탔을 때와 같이 건조한 공기 속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에도 건조한 공기 속으로 수분이 증발되어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과 소금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우리 몸은 수분을 공급해 달라는 의미에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마심으로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더운 여름에 우리 몸에 있는 수분이 땀으로 다 빠져나가서 몸에 수분이 부족한데도, 몸이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큰 병 중에 병일 것입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껴야 하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공급해줌으로써 갈증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만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영적인 갈증이 있고, 우리 마음에도 마음의 갈증이 있습니다. 분명 영적인 존재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인간은 영적인 수분이 공급되지 못할 때에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계십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영적인 갈증을 느껴보셨습니까? 우리의 몸에 물이 부족한데도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몸이 병들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에도 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았음에도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영혼은 병들어 있습니다. 병들었기 때문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목마름, 영적인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영혼이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아주 건강한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갈증을 느낀다는 것에 우리는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건강한 영적인 상태를 갖고 싶어하는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황연이 할머니 문병을 갔습니다. 화요일에 수술을 하신다고 하여 장로님을 비롯해서 권사님들, 집사님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왔습니다. 황연이 할머니께서는 눈에 눈물이 글썽이며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황연이 할머니의 그 눈물은 단순히 외로움의 눈물이나 수술을 앞둔 두려움의 눈물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할머니께서 이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찬송을 좀 불러 주세요. 가슴까지 시원하도록..\" 저는 그 병실에 여러 분이 계시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기도해 주고 나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는 마음으로 \'찬송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한 권사님께서 주위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찬송을 부르면서 황연이 할머니의 마음 속에 있는 영적이 갈증을 보았습니다. 몸은 비록 침상에 누워있지만, 그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여 훨훨 날아가고픈 간절한 갈망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할머니의 영혼이 느끼고 있던 영적인 갈망, 영적인 갈증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영혼이 느끼는 영적인 갈증을 \'거룩한 갈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갈증에다 굳이 \'거룩하다\'는 말을 붙이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메마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영적으로 메말라가고 있는데, 자신의 그 메마름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그게 지극히 당연한 삶인양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목마름 - 갈증을 \'거룩한 것\'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적인 갈증이요, 거룩한 갈증이겠습니까? 오늘 구약의 말씀인 시편 42편에서 영적인 갈증이 어떤 것인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 일에 갈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사슴이 시내물을 찾아 갈급해 하는 것처럼, 시인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갈급하다\"는 말은 \'지독한 가뭄 때에 온 산을 뛰어다녀 보아도 물을 얻지 못한 들짐승들이 울부짖으며 헐떡거리며 시냇물을 찾는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단어입니다.


숲 속의 사나운 맹수들이 배가 고파 사슴 고기로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때에는 시냇가 주변에 잠복해 있는다고 합니다. 목이 말라 갈급한 마음으로 시냇물을 찾아온 사슴을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사슴은 발이 무척이나 빠르기 때문에 숲 속에서는 도저히 사슴을 추격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가로이 물을 마시고 있을 때에 습격을 합니다. 그러기에 사슴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시냇가를 찾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나서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갈급함을 채워야 합니다. 맹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냇물을 찾지 않으면 결국 목이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갈급해 하는 자신의 심정도 사슴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영적인 기갈로 인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이 목숨을 걸고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도 갈급하게 주님을 찾습니다.\" 이게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는 시인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왜 시인이 그렇게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 만나기를 그렇게도 갈망하고 있습니까? 시인이 찾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2절에 보면, 시인이 찾는 하나님은 생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게 찾듯이, 우리가 갈급하게 찾아 만나야 할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박제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 그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 우리가 만나기를 갈망해야 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 다가오셔서 우리의 상처 받고 아파하는 마음을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가 만나야 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의 하나님은 인간이 손으로 만든 우상처럼 폼만 잡고 앉아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늘도 구원의 손을 펴사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악한 마귀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 오늘도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셔서 성도로 하여금 만나기를 갈망케 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안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그 하나님은 성도들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피할 길을 주시고,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 뵙고 싶은 거룩한 갈망 때문에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같은 절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뵙고자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하며 탄식합니다. 시인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본문의 시인과 같은 거룩한 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뵙고 싶은 거룩한 갈망이 여러분의 심령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부득이한 일로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 못했을 때에, 시인처럼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하는 거룩한 탄식과 갈망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어도, 그게 그저 당연한 일,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어 넘어간다면 우리의 영혼은 날로 메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이 정말 기다려지십니까? 주일을 지나고 나면 빨리 다음 주일이 왔으면 하는 간절함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습니까? 토요일이 되고 주일 아침이 되면 \'왜 이리 주일이 빨리 돌아오나?\' 그런 생각으로 주일을 맞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을 만나기를 얼마나 갈망하며 사십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릎으로 기도의 지성소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옵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성도들의 교제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시인은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그러나 사람들이 놀리면 놀릴수록 더욱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기쁨과 찬송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4절)

시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밀려올 때에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그 마음에 찬송이 흐르기 때문입니다.(5절)


갈망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우리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 만나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은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에는 또 하나의 거룩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거룩한 갈망입니다. 죄악에 찌들어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진정한 갈망은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 때문에 느끼는 배부름에 대한 갈망이 아닙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마름 때문에 느끼는 물 한잔에 대한 갈망도 아닙니다. 진정 거룩한 갈망은 하나님을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배고픔보다, 목마름보다 더 큰 갈증과 기갈이 바로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면 그 때에는 배부름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배부름은 하루를 넘기지 못합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를 때에 물 한잔을 마시면 목마름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채 한 나절을 넘길 수 없습니다. 곧 다시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갈증은 육체를 위한 갈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영적인 기갈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갈증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향한 갈증을 거룩한 갈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투자를 하면서도 진정 중요한 영혼을 위해서는 투자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쇠퇴해지고 쭈글쭈글 해지는 육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 모릅니다. 예쁘게 보이겠다고 몇 십 만 원짜리 화장품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부를 탱탱하게 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여가며 피부미용 마사지를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씩 들여 성형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의 몸과 육체를 위해서는 시간이나 돈이나 정성을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보람은 우리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삶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육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투자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우리 영혼이 느끼는 참된 만족은 없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있는 남편도 언제 죽을지 몰라 \'내 남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삶의 즐거움이나 기쁨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물에 물을 길러 나오는 것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모두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 아무도 우물을 찾지 않는 바로 그 시간에 남몰래 와서 물을 길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물에 물을 길러 나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말을 붙이셨습니다. \"나에게 물을 좀 줄 수 있겠소?\" 그러자 이상하다는 듯이 여인이 대답합니다. \"아니, 유대 사람들은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기를 꺼려하는데, 유대 사람이 당신이 - 그것도 유대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 물을 달라고 한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당신이 오히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거요.\" 여인이 대답합니다. \"아니, 당신은 이 우물에서 물을 길을 어떤 그릇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에게 물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본론을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물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물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話頭)를 바꾸셨습니다. \'마시면 목말라 또 마셔야 하는 그런 물 말고, 한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물\' 바로 그런 물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여인이 이렇게 요구합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물\",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물\",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물\", 그 물이 어떤 물입니까? 그건 분명 육체를 위한 물은 아닙니다. 몸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은 야곱의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에게는 두레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물입니다.

그 물은 육체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이 아닙니다. 영적인 갈증을 풀어주는 물입니다. 그 물은 마시고 나면 다시 갈증을 느껴야 하는 그런 물이 아닙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주는 물입니다. 영혼을 위해서 필요한 물입니다. 죽었던 영혼을 살려내는 물입니다. 영적인 기갈로 인해서 황폐화되어버린 영혼을 소성케 하는 물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물입니다. 삶에 아무런 기쁨이나 행복 없이 살아가던 영혼에게 인생의 참된 기쁨과 행복, 참된 보람과 은총을 알게 해주는 물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죽었던 영혼을 살려낼 수 있습니까? 무엇이 영적인 기갈로 인해서 황폐화되어버린 영혼을 소성케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삶에 기쁨과 행복, 참된 보람과 은총을 알게 해 줍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살려내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 병든 영혼을 치료하여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회복시켜주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데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정말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길이며, 우리의 영혼이 만족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영적인 갈증을 육체적인 것으로 채우려 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갈망은 물질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갈증, 갈망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채움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해야 우리 영혼이 풍요로움을 누립니다. 말씀을 사모해야 우리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방법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에 느끼는 갈증을 우리는 \'거룩한 갈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까?

만일 영적인 갈증이 없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풍성해서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갈증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혹 우리 영혼이 메말라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사모하여 더욱 만나고 싶어하는 거룩한 갈증과 영혼을 살찌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갈증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갈증이 우리에게 영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거룩한 갈증을 가지고 사는 사람만이 참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룩한 갈증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풍성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앙가족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거룩한 갈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셔서, 우리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사시길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