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휘파람/시7:1-17

거룩한 휘파람/시7:1-17

거룩한 휘파람
시7:1-17



스포츠 가운데 고급스럽고 귀족스러운 것이 골프입니다. 골프선수 가운데 세계 10대 선수에 포함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의 닉 프라이스입니다. 이 사람은 우승도 여러 번 했지만 짐바브웨의 국가적 인물이고 세계인들이 짐바브웨라는 나라는 잘 몰라도 닉 프라이스는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입니다. 이 사람은 타이거 우즈처럼 우승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골프선수들은 슬럼프가 종종 오곤 하는데 닉 프라이스는 슬럼프가 없는 선수로 유명한 것입니다. 그는 실력이 항상 유지되고 있고 랭킹이 유지되는 선수입니다. 보통 선수들은 한번 부진에 빠지면 헤어 나오는 것만 해도 반년 혹은 몇 년이 걸리지만 닉 프라이스는 그 슬럼프를 곧 회복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닉 프라이스는 그 비결에 대해서 아버지가 자기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면서 늘 충고해준 말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골프를 칠 때 잘 되지 않거든 휘파람을 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닉 프라이스는 골프를 치다가 잘되지 않으면 혼자 필드에서 휘파람을 불면서 골프의 슬럼프를 이기는 비법을 배웠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거룩한 신앙고백

휘파람은 슬픈 노래가 아닙니다. 휘파람으로 진혼곡을 불지는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휘파람을 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인가 기쁨이 있다는 것이며 일하는 보람을 표현하는 하나의 고백입니다. 휘파람은 기본적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노래이고 즐거움의 노래입니다. 저는 다윗이 거룩한 휘파람을 아주 유창하게 불고 사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밤중에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 찬미는 천사가 와서 옥문을 열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고 바울과 실라가 옥문에서 탈출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아마도 바울과 실라가 그 고난의 밤에 불렀던 노래가 하나의 거룩한 휘파람일 수 있습니다.
본문 시편 7편을 통해 다윗은 그의 생애 속에 아름다운 장면들을 우리 앞에 보여줍니다. 다윗은 지금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범죄자는 아니지만 도망을 다니는 사람입니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를 받아서 쫓겨다니게 됩니다. 다윗은 백성들 앞에 칭송을 받고 골리앗을 이긴 공로에 대해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혼자 도망을 다니다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고 가는 곳마다 모두가 다윗을 도와줍니다. 그런데 악한 왕 사울은 다윗을 도와준 사람들을 전부 찾아서 죽였습니다. 한번은 다윗을 도와주었던 제사장들과 그 일행을 사울의 군대가 850명이나 죽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애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다윗은 휘파람을 불고 있습니다.

세 가지 휘파람

첫째로 다윗은 울부짖음의 휘파람을 불고 있습니다. 다윗이 곤경에 빠졌을 때 탄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그를 에워싸고 있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지금 희망이 없습니다. 또 갈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굴이나 들판으로 쫓겨다니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고난을 울부짖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 불어야 될 거룩한 휘파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 다윗은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쫓겨다니면서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감사하고 찬양을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인도와 보호의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깊은 감사와 찬양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다윗은 승리의 휘파람을 붑니다. 원수들이 자기를 헤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윗이 승리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야에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어야 됩니다. 다윗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였습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그를 돕지 못합니다. 사울이 군대를 풀어서 그를 추격하고 자기의 생명이 언제 잡혀서 끝날 위기에 직면한 그 상태에서도 다윗은 영적으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었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쫓겨 다기면서 했던 일을 보면 쫓기면서도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일라라는 유다의 땅은 블레셋 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그일라가 위기를 당하면 마땅히 사울왕이 군대를 그곳으로 보내 블레셋과 싸워야 하는데도 군대를 풀어서 다윗을 쫓고만 있습니다. 그일라를 돌볼 여유가 없는 사울왕입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다윗이 자기를 따르는 400명의 오합지졸과 함께 그일라를 침공하는 블레셋과 싸워서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은 그때부터 다윗을 실제적인 왕처럼 추앙하고 다윗을 도와줍니다. 블레셋을 이기고 난 후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지지도가 더 높아갔고 400명이 따르던 다윗에게는 600명이 따르는 세력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진정한 적을 몰랐습니다. 당연히 자기 백성을 구해야 될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쫓아다니느라 블레셋과 싸울 줄 몰랐던 것입니다.

감동을 주는 삶

오늘 우리가 힘을 엉뚱하게 쓰면 안됩니다. 우리의 원수가 무엇인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는 다윗이 아니라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을 향하여 싸울 줄 몰랐습니다. 다윗을 잡아죽이는데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던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악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영적 싸움은 마귀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워야 됩니다. 악과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우리끼리 싸움하는 상대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탄과의 전쟁입니다. 그 사탄이 우리 가운데 펼치는 악과의 전쟁에서 싸움의 상대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
작년 이맘때만 해도 광화문의 밀레니엄 축제나 동해안, 서해안 등의 해돋이 행사로 온 지구촌이 떠들썩 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2000년은 축제의 노래보다는 한숨과 탄식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이 지구촌에 온갖 탄식소리가 높아갔습니다. 남미나 북미, 구라파, 아프리카에 상상을 초월한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30여 군데에서 전쟁이 끊이지 아니하는 온갖 어려운 문제들이 지구촌에서 한해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모두가 쫓기고 여유가 없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며 감동시키는 일을 할 줄 몰랐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 남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남을 감동시키는 일에 관심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생각의 깊이와 폭이 여유가 없습니다.
록펠러의 어린 시절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록펠러는 유치원 때부터 아주 똑똑하고 정직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이에게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게 하고 정직에 대한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록펠러를 기특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어느 상점에 들렀는데 주인 아저씨가 록펠러를 보고 착한 일을 했다고 상을 주겠다면서 사탕을 한 웅큼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록펠러는 주인 아저씨가 계속 가져가라고 해도 계속 서있기만 했습니다. 보다 못한 주인 아저씨가 사탕을 듬뿍 집어 주었는데 두 손으로 다 받지 못해서 주머니에도 넣을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아까 아저씨가 집으라고 할 때 왜 가만히 있었니?\' 록펠러는 \'엄마, 아저씨 손이 더 크잖아요\'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가 록펠러가 남다른 것을 알고 마음에 두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록펠러를 통해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남을 감동시키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다윗은 쫓겨다니면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3절 이하에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다윗의 이 기도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평가를 당당히 받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내가 말로 남을 무고한 게 있습니까? 남을 해한 것이 있거든 내게 갚아 주십시오. 내 원수가 나를 죽이도록 버려 두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의를 판단받는 당당한 다윗의 휘파람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행동이 결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당당히 고백합니다.

승리의 휘파람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장점이 살아있는 휘파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을 다했고 그가 가진 은사가 발휘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고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장점이 평가받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당당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너무 소극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족합니다. 불충합니다. 아무 것도 못합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당한 평가의 기도를 요구합니다. 그 분의 의 앞에서 당당히 평가받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당당할 수 있는 나의 삶, 이것이 다윗의 놀라운 또 하나의 휘파람입니다.
가수 가운데 노영심이란 가수가 있습니다. 노영심씨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가 볼 때 그리 인물이 잘나지 못했습니다. 영화에 출연해도 결코 주연배우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말솜씨도 별로입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달변이 되어야 하는데도 노영심씨는 정반대입니다. 또 미스코리아 출신처럼 몸매가 좋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TV에 한 시간씩 나올 정도로 계속 인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별 볼품도 없는 사람을 왜 그렇게 대중들이 좋아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탁월한 피아노 솜씨가 있습니다. 노영심씨는 동요를 하나 연주해도 정성을 다해 연주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감동을 준다는 것입니다. 또 노영심씨의 인상이나 말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진솔함을 줍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좋다는 것입니다. 노영심씨 인상을 보고 화낸 사람이 없고 노영심씨 말을 듣고 말다툼할 사람도 없고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불평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대중들 앞에 부담없는 표정과 행동과 노래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들에게도 다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장점이 드러나야 하고 그 장점이 하나의 삶의 휘파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수용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나중에 승리하는 자로 살아야 됩니다. 나중을 의식하지 않는 오늘의 찰나적인 문화, 내일은 어떻든 오늘만 성공하자는 메뚜기 인생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딸을 미국의 쥴리어드 음대에 공부시킨 성도 한 분이 있습니다. 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딸로 인해 뉴욕에 여러 번 가서 아픈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전부 우리 동족끼리 경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분야의 정상에 가서는 우리 동족은 모두 탈락하고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마침내 승리하도록 가야 됩니다. 연초보다는 연말에 열매가 분명해야 됩니다. 내가 기도로 시작하는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어떤 사역의 목표를 이루는 결과를 가지고 열매로 그 나무를 말할 수 있는 마침내 승리하는 다윗의 신앙생활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자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제가 안경이 초점이 맞지 않아 고생을 했습니다. 평소에도 눈에 장애가 많기 때문에 조금만 맞지 않아도 표가 납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원인을 몰라 안경을 한참동안 살펴보는 중에 안경알을 끼우는 나사가 조금 풀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안경알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초점이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조그만 나사가 풀려있기 때문에 안경이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내 삶 속에 어느 부분에 나사가 풀려 있는가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사를 조여야 됩니다.

맺는 말

우리 사회의 위기를 말할 때 흔히 \'도덕적 해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떤 조직사회의 기강이 해이가 되어 있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입니다. 어떤 일본인이 우리 나라에서 25년 동안 살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한국사회가 병들어 있으며 의식 가운데 치료불능인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음주운전이라는 것입니다. 음주운전은 마치 장작 불에 기름붓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속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음주운전이 단속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는 순리대로 일이 안됩니다. 적어도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않을 정도의 국민의식이 되어야 법을 들이대면 법이 살아나고 도덕을 들이대면 도덕이 살아납니다. 음주운전이 단속되지 않는 이런 의식 속에서는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우리 사회의 기강해이를 그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저는 믿는 사람들의 영적 해이는 더 큰 위기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풀어져 있는 나사를 조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풀어져 있는 부분이 어디입니까? 다윗처럼 울부짖음이 안됩니까? 기도의 휘파람을 부셔야 됩니다. 전도의 휘파람을 불어야 합니다. 승리의 휘파람을 불어야 됩니다. 우리 가운데 거룩한 휘파람 소리가 하늘높이 진동하는 200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