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부끄러움 스8:21-23
다른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외형적으로 볼 때 이 작은 교회가 불과 몇 블록 넘어 이사가는 것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는지 모릅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서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고 희망에 부풀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땅을 사서 아름다운 교회당을 지으면 오랫동안 남의 집에 살면서 이 눈치 저 눈치보면서 셋방을 살다가 자기 집을 마련한 기쁨보다 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교회를 이루며 지상에서 주의 일에 힘쓰다가 영원한 본향에 마련되어 있는 우리 집에 들어가면 그 감격은 어떨까요?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설레임과 함께 한편으로 계속 밀려오는 현실적인 불안감 또한 숨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대전에 올라온 해는 1989년 12월 24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산에 있을 때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고 하루 종일 눈을 치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실 저는 왜 대전에 왔는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개척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니던 대학에서 강제로 해직되고 단지 한 1-2년 정도 교회를 성장시켜 놓고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전에 왔습니다. 그 때에 저는 당시 대전신일교회 목사님에게 속아서 유성큰샘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후에 신일교회 목사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목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여건도 제공해 주지 않았고, 사소한 일부터 지나치게 간섭함으로 그만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유성큰샘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는 동안에 제 선배 목사님이 되시는 장갑덕 목사님이 섬기시는 과학원 교회에 잠시 동안 설교를 해 주도록 부탁을 받고 약 세 달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제 설교를 듣고 있었던 사람 가운데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과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구속사적인 설교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대전에 가거든 제가 개척한 교회에 가도록 제 동기요 친구 목사님인 전영욱 목사님의 소개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우리 교회가 하도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과학원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간 그 때에 저의 설교를 듣고 알아보았습니다. 예배 후에 둘 다 자전거를 타고 유성구 구암동에 있는 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때 그 학생이 우리 교회의 집사님으로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는 황도훈 집사님입니다. 황 집사님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 가장 뜨겁고 활동적인 강남숙 성도를 인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역시 우리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집사로 봉사하는 이지훈 집사님을 인도해 왔습니다. 이지훈 집사님은 지금의 아내인 김혜주 자매를 인도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도훈 형제와 거의 동시에 서울 두레교회에서 당시 기윤실 간사로 있었던 유해신 간사의 지도로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던 안경관 형제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과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형제가 전용수, 홍지중, 천성훈이라는 세 형제를 인도하였습니다. 안경관 형제는 지금도 저의 기억에 가장 기억에 남는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인데 과학원을 졸업하고 난 뒤에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과학원에서 저전거를 타고 그 멀고 먼 거리를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하나님을 배우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과학원 교회에서 제양규 박사를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이 다니던 한국기계연구소에서 신우회가 조직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설교와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제 박사님이 한 형제를 데리고 저의 집으로 왔습니다. 이 분은 제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말이 없으면서도 신실한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신실했던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가장 먼 거리에서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교회에 왔습니다. 만약에 한번 차를 놓치는 날이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서라도 주일 예배와 수요밤 예배에 한번도 빠진 일이 없습니다. 이 분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참한 아가씨 중에 한 사람인 강남숙 자매와 결혼한 한용식 집사님입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세례를 준 사람들이었고,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가 벌써 8-9년 전의 일입니다.
바로 제가 언급한 이 분들과 함께 1991년 9월 12일에 지금의 우리 한샘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전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이들을 통해 하실 교회에 대한 이상과 꿈 때문이었습니다. 한용식 집사님, 황도훈 집사님, 이지훈 집사님, 강남숙 집사님 그리고 안경관 형제 이 분들로 인하여 꿈을 꾸며 힘을 얻기도 하였고, 좌절당하는 경험도 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가장 많은 보람과 감사도 있었지만 이들로 인하여 가장 많이 갈등하면서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교회의 미래요 꿈이었고,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잉태하여 해산의 고통 속에서 낳은 자녀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개척한 이후로 강남숙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착하고 신실한 사람 가운데 한 분이었던 오명숙 성도님을 인도해 왔고, 오명숙 성도가 장차 자매의 시동생이 될 송현채 성도를 인도해 왔고 결혼하여 역시 신랑인 송현우 성도와 함께 우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가 개척할 당시에 대학부는 조직도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정진욱 형제와 피제훈, 임상빈 성도가 있었습니다. 또 그 해에 과학원 학부과정에 입학 시험을 치기 위하여 이경수 형제가 부산 수영교회에서 섬기고 있었던 김상원 권사님이 데리고 저희 집에 데리고 왔는데 과기대에 합격하여 지금까지 신실한 일꾼으로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수 형제의 어머니인 김상원 권사님이 지금 우리 교회를 뒤에서 말없이 신실하게 봉사하고 있는 김용기 집사님 가정을 저의 교회에 보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의 집에 차편이 없었는데 김용기 집사님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금 제가 타고 다니는 프라이드 승용차를 헌금하였습니다. 지금 처음 우리 교회가 시작할 때 1-2년 어간에 있었던 분들과 참 오랫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심지어 밤 12시가 넘도록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미래를 준비해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작년에 처음으로 교회당이라는 외적인 예배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개서의 말씀을 근거로 교회당 건축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헌금할 것을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많이 고민하면서 이 설교를 하였는데 어느 날 저는 목사님이 헌금하도록 하기 위하여 학개서를 빙자하여 잘못 설교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학개서의 말씀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성경적으로 잘 설명하였다고 믿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학개서의 말씀을 설교하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이후로 마침 교회당 지하 공간의 누수현상과 비가 오면 물을 퍼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예배하기에 어려움도 있고 전도하는 일에도 많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약 1년 전에 기도하면서 헌금으로 준비하면서 적절한 예배공간도 마련하고, 사택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는 7월 30일에 이사를 계획하고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내부를 수리하고 예배하는 공간과 교육하는 공간, 그리고 교제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 역시 우리가 기도하며 준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원래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적어도 7-8백만원 이상이 추가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저의 친구들과 동기들, 그리고 저의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서 돈을 빌리거나 지원을 해 달라고 몇 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올 2월에 이지훈 집사님 가정과 기도동산에 가기 전에 읽고 묵상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연구할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제사장이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인 에스라가 쓴 역사 회고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여 언약을 맺으시고 이 백성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언약 백성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살면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복을 주시겠지만, 언약의 말씀을 배반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면 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말씀에 충실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언약서에 약속한 대로 복을 주시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책망하시고, 때로는 천재지변과 많은 고통을 통하여 언약의 말씀에 돌아오도록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역하고 가나안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우상숭배에 빠지며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722년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기원전 586년에 남쪽 유다는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이었던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포로들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고, 에스더, 모르드개, 느헤미야, 에스라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비록 범죄하였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70년 뒤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시고, 언약의 백성을 친 바벨론을 페르시아로 하여금 심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 시대에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이 때가 기원전 538년입니다. 이 때에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의 인도로 49,697명(42,360+종 7,337)이 귀환하였는데 이것을 가리켜 \\\"포로에서의 1차 귀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때에 페르시아 제국의 국고 지원을 부분적으로 받아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는 에스라 1-6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차 귀환은 기원전 458년, 아닥사스다(Artaxerxes I, 465-424 B.C.) 시대에 있었는데, 에스라의 인도로 1,758(남자 1,500 + 레위인 38 + 조력자 220)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자와 이이들을 포함하면 1만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완공된 성전에 바벨론 포로당시에 빼앗겼던 성전 기물들을 찾아가지고 와서 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에스라 7:27-28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도다.\\\" 그리고 8장에 보면 이 때에 올라온 사람들의 명단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올라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에스라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에스라는 비록 유대인으로 포로로 끌려왔지만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인 왕의 신하로서 그가 구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을 다 받는 자더니\\\"(스7:6) 하지만 에스라는 세상에서의 위치와 권력이 주는 기쁨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여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섬기는 당시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도록 청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은 에스라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함께 가도록 하용하고 조서를 내려 왕의 국고에서 모든 필요를 지원해 주도록 하였습니다(스7:12-26).
그런데 에스라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남자만 1,500명이며, 레위인이 38명이며, 레위 사람을 돕는 220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적어도 1만명 이상이 되는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들이 가야할 거리는 약 1만 5천 키로미터 이상은 되었습니다. 이들은 걸어서 정월 초하루에 출발하여 오월 초하루에 도착한 것을 감안해 볼 때 네 달 이상을 걸어서 가야했습니다(스7:9). 이 길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또는 적군에 의해 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여정에 군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에스라는 도움 받기가 부끄러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왕에게 적군의 공격에서 보호해 줄 보병과 마병을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왜 그는 부끄러워하였을까요? 그는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인 페르시아에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스7:6). 하지만 그는 차마 왕에게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에스라 8:22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에스라가 왕에게 그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사람들과 여자와 아이들과 그들이 소유한 재산을 여러 위험에서 보호해 줄 군대는 가장 필수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차마 왕에게 부끄러워 군대를 요청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자기 백성이 왕에게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크게 진노하신다는 것을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다\\\"(우리 번역에는 \\\'하였으므로\\\', ࢮࠏধऩࡎ)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1인칭 복수 완료형인데 많은 영어 번역성경은 과거 완료사로 번역하여 \\\"말해 왔다\\\"(had spoken)는 과거 습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에게 에스라와 그와 함께 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습관적으로 소개할 때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들에게는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크게 진노하시는 분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혹시라도 왕이 이렇게 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너희들이 평상시에 늘 말해왔던 것처럼 너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모든 자들에게는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진노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으니 군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너희들의 하나님은 죽은 신이냐?\\\"
우리도 이러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친지들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는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네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 일도 못하느냐?\\\"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네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이시라며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저는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주일날 장사도 하지 않고, 시장도 보지 않으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믿으려는 노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는데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든지, 아이가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는 미련은 떨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에 따라 올바르게 가르쳤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어설프게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이 \\\"너희들은 좀 특별하게 믿는다며 …\\\" 하면서 조롱하기도 합니다. 지금 에스라가 이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에게 그와,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에게 말해왔던 하나님은 증명해 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페르시아 왕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끄러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끄러움을 가리켜 에드윈 야마우치(Edwin Yamauchi)와 로널드 영브러드(Ronald Youngblood)는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세상사에 있는 다른 부끄러움과 구별하여 \\\"거룩한 부끄러움\\\"(a holy blame)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거룩한 부끄러움을 경험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지금 현재 우리 교회의 상황은 거룩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상황은 아닙니까?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운데는 제가 몇 년 동안 가르쳤던 학생들조차 작은 교회라고, 또는 부담이 된다고 하여서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장 혐오하는 교회로 가서 잘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자존감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상하는 것은 너희들이 바르게 믿는다고 주장한 그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성장이 안되느냐고 말할 때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내가 지금까지 잘못 믿어왔고, 잘못된 진리를 가르쳐 왔는지를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제가 믿고 가르친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교회당 이전문제를 앞두고 에스라가 느꼈던 동일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거룩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이 오랫동안 사모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아하와강 가로 부르고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간구하였으니\\\"(스8:21)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지금 저는 우리 교회가 약 7-8백만원의 이사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는지 대책이 없습니다. 유일한 대책은 에스라가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머나먼 걸어서 적어도 네 달 이상이 걸리는 대장정 앞에서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한 것처럼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입니다. 저는 이 일에 우리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는지를 지금까지 확인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2일간 금식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비전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실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계신다면 필요한 모든 경비를 주시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저와 함께 이 일을 위하여 단 2일간이라도 함께 기도하실 분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금식하고 기도한다면 에스라 당시에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 문제도 들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8:23) 이 기도의 결과로 약 1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있었고, 많은 소유들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많은 적들과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내 보이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면서 에스라 7:27-28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찾으시며 이들을 통하여 주의 전을 아름답게 장식할 뜻을 두시고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당시 왕궁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일이라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왜 에스라는 이 일을 위하여 금식하며 간구하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당 이전문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실 비전을 품고 계신다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샘교회를 통하여 하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꿈을 꾸기를 바랍니다. 에스라는 당시에 세상에서의 위치와 권력이 주는 기쁨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여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 개혁주의 교회가 건설되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꿈을 꾸십시오. 이 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즐겁게 헌신합시다. 알베르트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희망이 없는 노동보다 무서운 형벌은 없다.\\\" 우리에게 만약 꿈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간구와 수고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거운 짐이고, 무서운 형벌이며, 고통이며 절망입니다. 또한 이 지역 사회에서 그럭저럭 있다가 언젠가 사라져 가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에스라와 같이 거룩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전능하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 병든 조국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지금 우리 모두 다 거룩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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