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쟁(Holy War) 삼하8:1-14
요즈음 미국의 테러사건 이후에 <성전 Holy War> 즉, <거룩한 전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힌 테러세력에 대해서 피의 보복을 단행하겠다고 선언하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테러세력을 “악을 행하는자”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보복전쟁을 <거룩한 전쟁> 또는 <십자군 전쟁 Crusade>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과연 역사적으로 무엇이 <거룩한 전쟁>이었을까요?
11세기 말이었던 1095년 로마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당시 이슬람이 차지하고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으려고 유럽각국에서 기독교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이들 기독교 원정군의 이름을 <십자군 Crusade>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싸움을 싸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탈환전쟁을 <거룩한 전쟁,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빼앗긴 성지를 하나님이 다시 되찾는 종교전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군 원정군은 과연 3년 뒤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려졌던 시리아의 안티오크를 성공적으로 함락시키고, 이듬해 드디어 소원하던 예루살렘을 손에 넣을수 있었습니다. 그후 1270년까지 거의 200년 동안 십자군 원정은 8차례나 계속 되었고 그때마다 소아시아와 중동지방에는 엄청난 약탈과 양민 학살이 자행되면서, 기독교 원정군이나 이슬람 저항군이나 모두 피에 얼룩진 깊은 상처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슬람교도들도 기독교도들과의 싸움을 <성전, 거룩한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지하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신의 이름을 앞세운 이러한 피의 전쟁에 대하여, 작년 로마 교황은 십자군 전쟁 수백년이 지난 뒤에야 이슬람교도들에게 잘못했다는 정중한 눈물의 회개를 하였습니다. 로마교황이 십자가상의 예수님 발끝을 얼굴로 비비면서 눈물을 흘려 통회자복하는 사진이 전세계에 보도되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감동스러웠고 기뻤습니다. 로마천주교가 <희생과 섬김>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진정한 복음을 따르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십자군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국가간의 “영토싸움”이요, 정치적인 욕심을 채우기위한 주권다툼 “헤게모니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망녕되게 도용하는 너무나 큰 죄악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또다시 그런 십자군전쟁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테러분자들은 기독교뿐만아니라 모든 이슬람교도들의 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슬람형제들은 예수복음의 원수들이 아니라, 예수복음의 선교대상일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그토록 생명바쳐 예수님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했듯이, 오히려 이슬람형제들은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선교의 대상입니다. 금년 11월 중순이면, 우리교회에서 이슬람형제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두명의 선교사가 파송될 것입니다. 이슬람형제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청년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고, 사도들의 방법이었습니다. 교회의 원수는 무고한 희생의 피를 흘리며 기뻐하는 사탄과 마귀일 뿐입니다. 이 사탄과 마귀와의 싸움이 곧 <거룩한 전쟁>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왕이 싸우는 <거룩한 전쟁>을 담고 있습니다. 왜 그것이 거룩한 전쟁이었나요?
첫째,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므로 거룩한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위하여 다윗을 세웠고 지금 교회안에서 많은 대리자를 세웠습니다.
다윗의 싸움이 하나님의 싸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삼하 5:22-25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대항해서 <르바임 전투>를 벌일 때, 다윗은 어떻게 작전을 짜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군대가 직접 나가 싸우지말고, 뽕나무 밭 건너편에서 매복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가 싸움을 개시한 뒤에 싸움에 나서라고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작전을 이행해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거룩한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므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싸우시는 하나님 Divine Warrior>이라고 구약성경에서 호칭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의 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싸움이기 때문에 다윗은 전쟁을 준비하는 시작단계부터 행하는 공통적인 습관이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의견을 묻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내가 이것을 할까요 말까요?”(삼하 2:1; 5:19,23).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하나님의 싸움인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싸움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윗 자신은 다만 하나님 전쟁의 대리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다윗은 모든 전쟁에서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본문 6절과 14절에는,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과연 본문의 짧은 기록에만 해도, 무려 8개 나라에 대항한 공격적인 전투에서 다윗은 계속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니라’가 아니고,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기셨다는 말입니다. 과연 다윗은 자기 전쟁이 누구의 전쟁인지 그 성격을 바로 알고 있었고, 왜 계속 이기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어떻게 해야 전쟁에서 이기는지의 비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그분에게 요청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을 세웠듯이 오늘날 나를 세우고 여러분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을 크리스찬으로 부르시고 또 직분자로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여러분을 대리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세상에서 교회에서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요청하고 질문합니까? 여러분이 신앙 싸움에서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싸움이 하나님의 전쟁이 되게 하십시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십시오. 자신이 싸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싸우도록 하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싸우시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승리의 싸움꾼>을 여러분 편으로 만드십시오. 자신이 싸우려고 대들다 몸만 상하고, 재물만 낭비하고, 여러분의 정력과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싸워 승리하시면, 하나님은 목적을 성취하시며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우리에게는 한없는 축복입니다. 날마다 사건마다 하나님을 나의 대장이 되게 하십시오.
둘째, 죄와 악의 세력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시는 전쟁이기 떄문입니다. 이 싸움은 힘과 무기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인내와 희생과 섬김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에는 왜 하나님이 싸우시는 잔인한 하나님으로 소개됩니까? 그것은 타락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원수의 손아래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수를 물리치는 전쟁을 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계 열방 가운데에 “인종적 민족적 편견”을 조장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 구출>이라는 특수목적을 위한 상징적이고도 제한적인 피흘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피흘리는 전쟁을 합법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피흘리는 것도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의 싸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실되었던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정한 인간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적인 하나님이 싸움은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흘림과 십자가 승리로 끝났습니다. 구약역사가 하나님이 직접 죄와 싸우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출하시는 전투의 역사라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흘림으로 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입니다. 그 승리를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역사입니다. 그 선포는 총과 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단번에 Once and for all> 피흘림으로 더 이상 인간의 피를 흘리는 물리적인 전쟁은 필요없습니다.
오늘날 중동의 이스라엘이나 미국은 <하나님의 싸움>을 빙자해서 여전히 구약적인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인 싸움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부끄럽게 하는 참으로 적그리스도 (Anti-Christ)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은 교회에게 명령하고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키려는 사탄과 악의 세력일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형제들에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을 조장하려는 미국의 전쟁은 분명 <십자군>도 아니요, <거룩한 전쟁>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욕심에 가득한,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계 16:14에 예언했듯이, “온 천하 임금들”을 꾀어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생명들의 피의 잔치를 벌이려는 “귀신의 영”일 뿐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이러한 어두움의 영과 대항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결코 불신자들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제는 총과 칼 대신,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사랑의 수고와 섬김의 봉사를 하라고 세움을 받은 것이 교회입니다. 핍박하는 불신자들을 위해서 오히려 기도하며 희생해야 합니다. 폭탄으로 갈기는 대신 쓰라린 상처를 부둥켜 안고 분노를 안으로 삭이며, 그들을 진정한 형제로 대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패배자의 논리>요, 굴욕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만이 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악으로 악에게 보복해서, 절대로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롬 12:20-21). 사랑과 섬김만이 원수의 칼끝을 무디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탄과 악의 세력과 싸우는 우리의 전쟁이 <거룩한 전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탄과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하나님-인간, 인간-인간의 관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각종 유혹과 불신, 분노와 정욕, 그리고 절망과 복수심 등과 싸우는 <영적전투>입니다. 영적전투를 잘 분별하면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대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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