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케하는 물 민19:1-10
FM 방송을 들으니 어떤 사람이 어떤 악한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상담자가 하는 말이 악한 생각을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악하지 않고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능인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알지 못한 자들이 인간에 대한 생각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악한가를 변명하러 들고 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능일 뿐이다.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그는 긴 세월을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고 고난에도 고통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 죄를 범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의 신앙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을 통하여서 그의 자신을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자신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 자신이 거룩해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어떤 인간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죄인이며 날마다 악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해 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날마다 제사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내가 언제 어떤 장소이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은 시체를 만지는 자가 부정하게 되었는데 그 부정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도를 취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조치는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하게 합니까? 붉은 암송아지를 끌고 와서 그것을 제사장에게 주어서 불사르고 재를 거두어서 정한 곳에 두었다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 만드는데 쓰라고 합니다.
우선 우리가 여기서 발견해야 할 것은 인간이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암송아지를 잡는데 그 암송아지를 잡은 제사장도 부정하고 그 암송아지를 불 사른자도 부정하고 또 재를 모아 두는 사람도 부정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사람들을 부정하다고 합니까? 제물을 잡고 태우고 그 재를 만들었는데 왜 부정하다는 것입니까? 그 제물이 누구의 죄를 위한 제물입니까? 인간의 죄를 위한 제물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정한가하는 것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쁜 짓 안하면 착하고 나쁜 짓하면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쁜 짓 했느냐 안 했느냐 또는 본능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인간은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부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왜 나쁜 짓을 안하는 줄 아십니까? 나쁜 짓을 하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벌을 받으면 자기한테 고통이 오고 죽음이 오고 생명이 단축되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이 깨어지고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유인 것입니다. 즉 자기한테 손해가 오기 때문에 나쁜 짓을 안하는 것입니다. 손해가 무엇이냐 자식이 아프고 내 몸이 아프고 내가 하는 일이 안 풀리고 하는 것 때문에 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부정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이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이것이 죄인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정결케 하기 위한 물을 만들기 위해서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너무도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정결케 한 물을 만듭니까? 어떤 상태에서 정결케 하기 위한 것입니까? 시체입니다. 왜 이것이 지금 필요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까닭에 여러 가지 재앙으로 인하여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ㄱ 시체를 처리하기 과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이런 문제에만 초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민수기의 기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행군을 하는 그러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제사장의 문제 그리고 오늘 본문에 시체를 만진자들이 부정하게 되었는데 그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한 물을 만드는 그러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땅을 들어가려고 하다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재정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가 어떤 자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느냐 그것은 깨끗한 자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부정한 존재 즉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자 그래서 하나님의 그 희생과 긍휼로 깨끗해 질 때에 그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슨 이유입니까? 이들은 아낙 자손과 같이 너무 힘이 센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못들어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니까? 무기를 만들고 훈련을 받아서 그들이 정복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은 힘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희생으로 인하여서 정복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군대, 폭력, 부강, 이런 것이 아니라 네가 부정한 것을 아느냐 예 저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라는 것을 아는 그 상태 그것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과 사람만을 바라보는 가나한 심령 이러한 마음상태를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바로 내가 얼마나 부정한 존재, 악한 존재라는 것을 알 때 나같은 자를 위하여서 십자가를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나는 도대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신자의 모습이고 진정한 힘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에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라는 것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같은 자가 천국을 갈 수 있다는 것 나같은 자가 십자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자가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이것을 아느냐 안다면 네가 천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드리는 삶,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나를 죽여 갈 때에 나는 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하여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발견하고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겨워서 살아가고 기뻐하는 그러한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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