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거룩하라 레19:1-8
부모를 공경하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첫 말씀이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 않고 경외하라고 하였다. \'경외\'하라는 말은 두려움, 놀라움의 뜻으로 성경에서는 대부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부모님을 섬기는데 사용된 것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았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부모를 무시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모공경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하시는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
·신상들을 버려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두 번째 말씀이 \'헛것\'을 위하지 말고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헛것이란 아무 것도 아닌 무가치한 것을 뜻한다. 우상은 무가치한 것이다. 왜 무가치한 우상을 섬기는 것일까? 두려운 감정 때문이고 소원을 성취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상이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상을 버리라는 것은 헛된 일에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뺏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의지하라는 뜻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오직 하나의 믿음으로 섬길 때 거룩한 삶으로 인도받는다.
·화목제를 드려라
화목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제사요 자원제사이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사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화목제는 나눔의 제사이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에게 잔치를 베푸는 잔치제사이다. 우리 주위에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웃이 언제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를 통하여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라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주님을 닮아가는 잣대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함과 흠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레위기 18:에서는 성도덕에 대해 말씀하시고 19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사는 동안 지켜야 할 윤리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에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15에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거룩이라는 히브리어는 \'카도슈\'인데 \'구별하다\'는 뜻이 있는가 하면 창녀라는 뜻도 있습니다. 거룩과 창녀, 극과 극입니다. 비슷한 뜻이 아닌 정반대되는 뜻입니다. 왜 카도슈라는 말을 거룩과 창녀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성결하게 구별된 삶이 아니면 창녀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면 창녀처럼 지저분하고 타락한 삶이 된다는 강한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셨습니다. 흑탕물을 가까이 하면 흑탕물로 더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거룩하게 닮아갑니다. 깨끗하신 성품을 가지신 주님을 닮아야 깨끗한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거룩하신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닮아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속사람이 변화될 때 거룩한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가림으로 깨끗해지고 겉으로만 성결해 보이면 안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진실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과가 일본의 사과보다 품질이 월등하게 우수하지만 국제시장에서 항상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눈가림을 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윗부분에는 영글고 아름다운 사과를 담고 안보이는 밑에는 좋지 않고 알이 작은 사과를 담기 때문에 신용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겉은 성도 같은데 속은 속된 것으로 가득차 있으면 안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같은데 실상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고 어두운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받은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닮으려는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멀리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삶의 태도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삶을 위하여, 첫째로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부모님에 대해 말씀할 때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또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셨습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움, 놀라움의 뜻으로 성경에서는 대부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부모님을 섬기는데 사용된 것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았고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부모를 무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1:15에는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셨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심판하십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고 하십니다.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계명입니다.
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 임금님이 지방으로 행차 하시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TV나 신문이 없던 때라 백성들이 임금님이 어떻게 생겼을까 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신다는 소문이 나면 모두 길거리에 나와 엎드려 구경을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이 많은 어머니 한 분이 중풍에 걸려서 거동을 못하지만 임금님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반신불수 어머니, 손을 벌벌 떨고 계시는 어머니를 업고 길거리에 나왔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시다가 손을 벌벌 떠는 노인을 업고 나와 있는 광경을 보고 물었습니다. 임금님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 아들은 \'병상에 계신 어머니가 임금님을 보고 싶어하여 이렇게 업고 나왔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감동한 임금님이 크게 칭찬을 하시고는 큰 상을 내렸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평소에 불효자이던 아들도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안 가겠다는 어머니를 업고 임금님의 행차에 나와 섰습니다. 임금님이 또 상을 내리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이 \"저 놈은 동네가 다 아는 불효자입니다. 상받을 욕심으로 흉내내어 나왔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흉내라도 좋다. 효도하는 일은 흉내라도 내어라\" 하시며 그 불효자에게도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흉내라도 내어 부모공경을 배우고 닮아가야 합니다.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효도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귀한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을 물려주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여기에 진정한 효의 유산이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앙의 유산, 경건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부모를 경외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라고 하십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기도의 문이 막힙니다. 삶에 즐거움을 뺏깁니다. 부모공경으로 기쁨의 삶과 기도의 응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거룩한 삶을 위해 신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4절에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헛것\"이란 \'아무 것도 아닌, 무가치한\'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우상을 의미합니다. 우상은 헛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헛된 우상을 섬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는데 첫째는 두려움 때문이며, 둘째는 소원을 성취하고 싶어서 우상을 섬깁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두려운 일들은 일어나는데 그 두려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부적을 만들어 품에 넣고 우상을 만들어 기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헛된 것인데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주지를 못합니다. 소원성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은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신상을 섬기는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래에 와서 많은 신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단군신상을 만들어 학교나 공공시설에 세우려는 것이나, 동화사에는 12층 아파트 높이와 맞먹는 33m 높이에다 둘레가 16.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불상을 세웠고 지난 4월에는 영천시 북안면의 영천-경주간 국도변에 동남아 최대 규모의 불상을 세워 밤에는 100여개의 전등 불빛을 비추어 운전자들의 주행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보도도 읽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조각이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인간의 우매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다른 것으로 채우는 우상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탐심과 쾌락과 물질이 하나님 계실 자리에 앉으면 안됩니다. 가장 작은 우상도 우리 속에 거하지 못하게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거룩하기 위해서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5절에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하는 감사제요 자원제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화목제는 세가지 경우데 드렸습니다. 첫째는 서원이 이루어졌을 때 드렸습니다. 둘째는 감사할 일이 있을 때 드렸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니까 그 사랑 때문에 드렸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사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6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인격, 감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웃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나눔의 제사입니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에게 잔치를 베푸는 잔치제사입니다. 시편 146:9 \"여호와께서는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소외당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를 통하여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잔치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세계 유니세프 회원국 180개국과 함께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의하며 소외된 계층에 대한 지원 등의 복지수준으로 한 나라의 발전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1400만명의 어린이가 정상적인 치료혜택을 받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으며 에이즈로 인하여 숨진 부모 때문에 820만명의 고아가 생기며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1억 3000만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소외계층에게 가진 것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나눔의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비교적 나눔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지관을 통한 나눔의 일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선교회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분이 통닭 300여마리를 갖다주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맛있게, 배부르게 드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35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주기를 좋아하는 성도, 나누기를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잠언 11:24-25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돕는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이번 다가오는 추석에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감사와 기쁨의 나눔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화목제란 기쁨, 행복이란 뜻이 있습니다. 감사의 생활, 나누는 생활, 돕는 즐거움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3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 이틀 동안 잔치하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곧 바로 나누어야지 2일을 넘기면 안됩니다. 2일이 지나면 탐심이 생겨서 나누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기 전에 남김없이 나누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생길 때 즉시 감사헌금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닫게 될 때, 감사한 마음으로 뜨거울 때 드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나눔도 시간이 지나기 전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잘 지키고 우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제사요 나눔의 제사이며, 사랑의 잔치인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실천하므로 날마다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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