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거룩하라 레19:1-4
레위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사를 잘 드리라는 것입니까? 죄의 용서를 받으라는 것입니까? 레위기에는 제사 드리는 법이 있으니 그런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성도는 하나님을 참되게 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섬기는 하나님처럼 거룩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 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제사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그 이후에는 어떤 후속 조처도 필요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 후에는 죄 사함 받은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레위기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 지점은 거룩한 삶인데, 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길은 우선 속죄의 제사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이고, 그리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추구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죄를 사함이 없다면 아무리 선하고 깨끗하고 의롭게 살아도 그 선행은 빛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더러운 구정물에 깨끗한 물을 부어도 역시 구정물은 구정물에 불과한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구정물을 완전히 비우고 그릇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새물을 넣으면 깨끗하고 맑은 물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인사와 개혁정책의 실천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지금까지의 구정물을 완전히 비우고 근본적으로 깨끗한 새물을 갈아넣을 수 없는데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도모하려면 속죄제를 통하여 과거를 완전히 청산한 후 거룩한 삶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채워야할 새롭고 거룩한 삶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생활 전반에서 새로워져야 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레위기가 서두에서는 제사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후반부에서는 성도의 거룩한 삶의 여러 모델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과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적어도 3가지 거룩한 삶의 모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정 생활에서 거룩을 유지하는 모델이고, 두 번째는 사회생활에서 거룩을 유지하는 모델이고 세 번째는 거룩한 가치관의 모델입니다.
물론 그 이외에도 레위기에는 식생활의 문제, 질병의 문제, 해산의 문제, 남녀의 이성적인 관계 등등 다양한 삶의 모델을 보여 주면서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상의 세 가지만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가정에서
가정생활에서 거룩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레 19:3).
가정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범의 첫 번째는 부모를 경외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최초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이 가정 공동체는 모든 사회 공동체의 모체가 됩니다. 따라서 가정의 규례는 모든 공동체의 규범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서 반드시 부모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하고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권위가 무너지면 그 공동체는 난파선과 같이 방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권위주의의 억압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에 대항한답시고 모든 권위를 거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새로운 무질서가 이 땅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권위주의는 배격 되여야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근원을 두고 있는 권위마저 배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가지는 권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권위가 배격되고 무너져도 끝까지 지켜지고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위마저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픔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는 것으로 말씀을 끝내지 않으십니다.
\"너는 센 머리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레 19:32.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위에 있는 권위를 인정하고 경외하는 생활의 범주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권위주의는 배격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는 윗사람을 존경하고 높여 주는 것은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그러면 이런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일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것입니까?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레 19:32).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 사회에서 윗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까지 가야 완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잘 믿고 그를 경외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너희가 처하여 있는 모든 공동체 즉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국가에서나 어디서든지 센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잘 하는것 같은데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이런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나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경외하고 믿는 생활양식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사회 생활에서 거룩한 삶의 모범적인 모델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나의 사욕을 챙기는 삶보다는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잘 감당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선 성경 말씀을 눈으로 보아주기 바립니다.
\"논밭에서 추수를 할 때는 이삭을 남겨 두고, 과수원에서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에도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여유 있게 남겨 두라(레 19:9-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경제활동을 할 때 내 욕심, 내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의식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들을 도울 수 있을 가를 염두에 두면서 활동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과 연결되는 적극적인 선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저들의 양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공개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저들은 모두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서민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 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서민을 위하여 이삭을 남겨 두면서도 그만한 재산을 벌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과연 저들은 목소리만큼 이삭을 남겨 두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신자가 아닙니다. 거룩한 삶도 아닙니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레 19:11-12).
왜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거짓을 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교훈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이 바로 진실이고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 19:13).
자신이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약하고 못가진 사람과 고통을 분담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한 삶이 전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아서\"(레 19:14)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성도가 되어야지 그늘을 더 어둡게 하면 어찌 하나님을 공경하는 생활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공정한 재판을 할 것(레 19:15)을 가르쳤고, 상거래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기 위해서 공정한 도량형기를 사용해야 한다(레 19:35-3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활을 하여야 할 근거는 무엇입니까? 제사를 드리면서 죄의 용서를 받아도 거룩한 삶의 뒷받침이 없으면 거룩한 삶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회개를 하고 예수님의 공로를 믿어도 그후의 삶이 성결해 지지 않으면 정의로운 사회의 생활이 뒤받쳐주지 않으면 거룩한 삶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룩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도록 하십시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애를 쓰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과도한 욕심을 배제하고 남을 도우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십시다. 내 이익만을 챙기는 것보다 사회적인 의무와 책임의 소재를 알고 이에 더 관심을 갖도록 하십시다. 정의와 진실을 행하며 가진 것을 남용하지 말며 사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백성 되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성도가 되십시다. 이것이 사회에서 성도가 살아야 하는 생활의 구체적인 모델입니다.
거룩한 가치관
세 번째로 우리가 가져야 할 거룩한 가치관의 모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레 19:4).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레 19:26).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1).
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왜 미신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그 모든 것은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강조 하십니까? 참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제일로 높이고 그 분만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생활은 고백이 아니라 실제적인 생활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과일 나무를 심으면 3년까지는 열매를 따먹지 말라\"(레 19:23-25)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째에는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 제 5년째에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왜 3년씩이나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혹자는 위생을 위해서 라고 하고, 이스라엘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지만 그 땅은 우상 숭배로 더러워졌으니 이것을 3년동간 씻으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은 항상 씻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4년째 되는 해 추수한 것은 깨끗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전부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생활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제일 먼저 드리고 다음 것을 내가 가지며, 하나님께 제일 좋은 것을 드리고 다음으로 내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제일주의의 구체적인 실천 강령입니다. 이런 실천적인 생활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레 19:25)
그렇게 할때 하나님은 풍성한 소산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축복 받으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십시오.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 때 축복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은 성도들이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시며 또 하나님은 그분을 제일로 높이며 살 때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축복을 받으면 그것을 망령되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주신 축복도 올바로 쓰여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축복받기를 원하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이때 받는 축복만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맺는말
믿으십시오, 사십시오, 그리고 받으십시오.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이제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권위를 존중히 여기며 순종하므로 거룩한 삶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하십시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현장인 사회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십시다. 사욕보다는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십시다. 그래서 성화의 삶의 꽃을 활짝 피우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가치관을 가지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성도가 되십시다. 그와 영원히 교제하며 그가 주시는 축복의 날개 밑에서 안식과 번영을 누리도록 하십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