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거룩하라!(2) 레19:11-18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삶 속에서 거룩함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지난 시간에는 대인관계에서, 그리고 대신 관계에서 나타나야할 거룩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진실한 삶(11-12절) 1)물질생활-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도적질이란 \'옆으로 슬쩍 밀어 넣는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의 것을 과도하게 바라보는 것은 탐심 때문인데 탐심은 도적질의 근원이 됩니다. 이 도적질의 다른 의미는 타인의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주는 것, 손해를 끼치는 것, 남을 망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 8계명을 이웃의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의 이면에는 수고하지 않고는 결코 땅의 소산물을 먹을 수 없는 노동과 생산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도적질은 하와가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도적질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남의 것을 탐내고 훔쳐서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적질은 하나님께 대한 불성실에서 생겨나는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무서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도적질이 얼마나 무서운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간을 보십시오, 그는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에서 아무 것도 취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금하셨지만 여리고성에서 취한 노략물 중에서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과 금덩이\"를 몰래 가져다가 감추었습니다. 아간은 자신의 행동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모든 행동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통해서 아간의 범죄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도적질을 한 결과 아간과 그 일가족은 훔친 물건들과 함께 돌에 맞고 불살라 돌무더기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 또한 도적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 가까이 에서 돈을 관리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었지만 그는 탐심으로 가득찬 도적이었습니다. 유월절 엿새전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가 아주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이것을 본 가룟 유다는, “어찌하여 이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지만 가룟 유다의 본심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은 훔쳐 감이러라(요12:6)\"고 했습니다. 우리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습니다.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에 근거한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는 말씀에 따라 우리 모두는 수고의 대가에 따라 떡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30:8,9) 라는 잠언의 말씀처럼 물질에 대한 적정선을 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편89:11 / 참조 출19:5 ; 시19:1 참조)는 말씀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2)언어생활-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엄히 금하는 것이 거짓말인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말하는 것이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은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로서 범하는 거짓말의 죄를 조심하여야 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은 하루에 거짓말을 17번 정도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클린턴의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그들이 저지른 잘못보다는 그 잘못을 은폐시키려고 저지른 거짓말을 두고 더 분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 거짓말에 대해서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2)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8:17)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잠24:28)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거짓말을 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베드로 앞에 내 놓으면서 일부를 감추고 전부라고 거짓말을 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거짓말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구타한다든지, 도적질한다든지, 간음을 하는 것들만 큰 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짓말도 얼마나 큰 죄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바로 이어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찌니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 을 받는 자니라\'(골3:9,10) 우리는 새롭게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에서 거짓말을 제해야 합니다.
3)하나님의 이름-거짓 맹세하지 말라 거짓 말이 사람을 향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거짓 맹세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을 걸어 사소한 일이나 부정한 일에 이용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세 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감추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죄악된 것입니다.
2.이웃을 사랑하는 삶(13-14,17-18절) 1)이웃을 배려하는 생활(13절) \'압제하다\'라는 말은 \'내리누르다, 착취하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약자나 가난한 자를 억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출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품꾼은 그날그날 일해서 번 것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품삯을 아침까지 주지 않는다면 그 집 식구들은 굶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 24: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신 24: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말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약 5: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거룩한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서 배려해 주는 삶입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첩경입니다.
2)장애인을 배려는 생활(14절) 귀머거리가 듣지 못한다고 저주하고 무시하는 것과 장님 앞에 장애물을 놓는 것은 한 장애인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7장 18절 말씀에서는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하고 소외된 장애인을 향하여 그들에게 걸림이 되는 것을 두지 말고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국가가 추구하는 장애인 복지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장애인 복지는 모든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두어서 그들이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장애물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한 가정에 장애어린이가 태어나면 그 순간부터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장애어린이가 태어나게 된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장애어린이를 둔 가족은 수치감과 열등감을 겪게 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많이 배운 집안일수록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심한 실정입니다.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병든 자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긍휼이라는 단어로 제일 많이 사용된 단어는 \'라하임\'입니다. \'레헴\'에서 유래된 말인데 레헴은 모태를 뜻합니다.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기는 어머니 태중에서 적당하게 주는 영양으로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병든 자나 장애자에게는 어머니의 태중과 같은 보호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쓰이는 긍휼은 밖에서 주는 동정이나 자비가 아니고 상대방의 입장에 들어가서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의 느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단순히 \'불쌍하다 구제해야지\'하는 생각이 아니고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3)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17-18절) 레 19: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책선하라\"는 말은 \"책망하다, 꾸짖다, 경책하다, 바로잡다\"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웃에 대해 증오심을 품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형제의 잘못을 못 본체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형제에게서 죄가 발견되면 이를 온 교회 내에 다 공개하여 물의를 일으키지 말고 \"솔직하게 꾸짖으라\"는 말입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이 이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마18:15-17). 공동체 내에 죄악을 묵인해서는 안되나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곁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공동체 내에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나게 되고 잘못하면 교회를 떠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신약 시대에는 동포의 의미가 확대됩니다. 예수님의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치심은 유대인 자기 동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눅 10:29-37). 약 2: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이웃 사랑의 표준이 무엇입니까? \"네 몸과 같이\"입니다. 이 표준은 신구약이 다를 바가 없으나 주님의 말씀에 의해 좀더 강한 표준으로 바뀝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신 표준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은 기준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즉 이웃에 대해 희생적인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3.공의로운 삶(15-16절) 1)공의의 재판(15절)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사라는 말이 \"통치하다\", \"재판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사사가 재판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송사는 대부분 족장이나 장로들에 의해 그 재판권이 행사되었습니다(신 1:13-17, 룻 4:1-12)). 왕정 시대에는 왕에 의해서 임명된 관리가 재판을 행했습니다(대하 19:5-7). 그러나 전반적인 재판권은 왕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해석상의 소송은 제사장들에 의해 판결되었습니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재판관은 하나님이십니다. 재판은 가난한 자라고 해서 더 이익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부자요, 권력자라고 해서 아부해서도 안됩니다. 출 21: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 21: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 말씀은 복수에는 복수로 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법의 공정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이 복수의 의미로 쓰였다면 사회는 피로 물든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재판관은 정확하고 공정한 심판을 내리라는 말이지 개인적인 앙갚음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어떤 탈주범이 남겼던 말이 있듯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올바른 재판을 하지 않은 재판관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체크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전정한 재판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 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2)사람을 논단하지 말라(16절) 논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중상모략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돌아다니며 비방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남의 인격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험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커다란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논단\'은 행상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짓 증거를 금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인이 됨으로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은 어떤 것입니까? 진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공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삶 속에 나타나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