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산 제사를 드립시다/레18:1-5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립시다/레18:1-5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립시다
레18:1-5

\'황금의 입을 가진 성자\'라고 불리는 명설교가 크리소스톰(347-407년)이 자기 교구 내에 있는 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워낙 외진 곳이었습니다. 사제를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안 돼 사제가 없어서 자기 교구에 속하긴 했지만, 너무 멀고 외진 곳이라 자주 방문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위해서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던 중에 그곳에 살고 있는 한 농부를 짧은 기간 내에 교육을 시켜 사제로 세우고 돌아왔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 돌아온 크리스소톰의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격도 없는 사람을 내가 사제로 잘못 세운 것은 아닌가? 과연 농부 사제가 제대로 예배를 인도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곳에 가서 몰래 예배 시간에 참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농부 사제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데, 주교인 크리스소톰은 기둥 뒤에 숨어서 그 사제가 얼마나 사제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 농부 사제처럼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사제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짧은 설교를 하는 동안 그 농부 사제의 얼굴은 열정으로 빛났고, 그의 설교 한 마디 한 마디가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크리소스톰은 제단 앞으로 나아가 농부 사제에게 축복해 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농부 사제는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 바로 자신을 사제로 세워준 주교님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축복해주셔야 할텐데 어찌 제게 축복해 달라고 하십니까?\" 주교가 대답합니다. \"나를 축복해 주시오. 나는 당신처럼 그렇게 뜨거운 불과 사랑을 가슴에 안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소.\" 그러자 배운 것 없는 농부 사제는 이상하다는 듯이 주교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주교님, 다른 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


\"다른 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 이 말은 예배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시골 농부 출신의 사제이지만, 그 사제는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열정을 다해 드리는 예배 말고는 다른 예배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예배드리는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드려지는 예배 말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요 4:24)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외에는 예배가 없다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의 말씀에서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러분, 참된 예배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그걸 \"거룩한 산 제사\"라고 말해줍니다. \"산 제사\"라는 말은 \'죽은 제사\'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죽은 제사입니까?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죽여 그 피를 흘림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게 \'죽은 제사\'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는 내 대신 짐승을 죽임으로 드려지는 그런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산 제사\"라는 말은 \"살아 있는 제사\"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처럼 죽은 짐승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 자신을 드리는 제사가 \'산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제물로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는 많은 예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굉장히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 1:11-13)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을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삶이 그들의 제물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제물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리면서 삶에서는 거짓되고 죄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이 따라가지 못한 제사는 모두 헛된 제사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를 이렇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미가 선지자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면 그 어떤 제사나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 몸\'이란 말은 우리의 삶 전부를 말합니다.

여러분, 삶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 함께 드리는 예배는 예배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럼 언제 예배가 마치는가? 다시금 주일이 되어 예배당을 찾아 나올 때 예배가 마칩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계속해서 거룩한 산 제사로서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축도하고 예배당을 떠나면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예배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떠나 한 주간 동안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이 곧 새로운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게 가정이기도 하고, 직장이나 일터이기도 하고, 이웃이나 친구를 만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내가 있는 모든 곳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삶의 제단\'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삶으로 드리는 산 제사가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영적 예배\"라는 말은 \'가장 합당한(reasonable) 예배,\' \'가장 합리적인(rational) 예배\'라는 말입니다. 삶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가장 합당한 예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산 제사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가 가장 합당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본문 2절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삶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방법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세상 풍속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는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의 풍속을 따라 살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세상적인 것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버려야 할 세상적인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 3:14-15)


세상적인 것은 곧 육체적인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육체적인 것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육체의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세상적인 것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을 재물과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재물보다는 은혜를 더 사모합니다.

돈을 버는 방법에서도 세상과 우리는 다릅니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왜 돈을 버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사업을 위해서 돈을 법니다. 돈을 쓰는 것도 다릅니다.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세상적인 방식입니다.

모든 것에서 세상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인 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장차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백성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구약에서 읽은 레위기의 말씀에도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살던 애굽의 풍속을 따라서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이제 들어가 거하게 될 가나안 백성들의 풍속도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규례만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게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과는 이미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미 벗어난 세상적인 것에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 세상의 가치, 세상의 기준들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첫 번째 과정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변화된 신분에 맞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지로 살던 때의 생활 습관과 왕자로 살 때의 생활 습관은 달라야 합니다. 왕자가 거지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거지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받고 이제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늘 나라의 왕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종노릇하며 거지로 살던 옛생활을 벗어버리고 하늘나라의 왕자로서 왕자답게 왕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옛사람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려야 새사람의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형상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 3:9-10)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우리는 이제 \'빛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밝은 희망의 빛을 비춰주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주는 세상의 빛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살아갈 맛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맛을 찾아주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몸과 삶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하나님께 버림받은 소금은 세상 사람들에게 무참히 짖밟히게 될 뿐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풍속을 따르지 않고 세상적인 것을 버렸으면,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으면, 이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생각에 그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막 14:34)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 그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하셨던지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실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여러분, 여러분은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하며 기도하십니까? 너무 쉽게 \'이게 하나님의 뜻일거야\'라고 판단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살면서 어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분은 좀 낫습니다. 너무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버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내 마음대로 처리하고서는 나중에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 너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솔직하게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진지하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기도해본 적이 과언 얼마나 됩니까?


직장을 선택할 때,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중요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 가정의 문제나 사업의 문제 때문에 힘들 때 -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고민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내 생각과 내 고집을 하나님께 강요하듯 들어달라고 떼만 쓰지 않았습니까?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그 뜻을 따라 살도록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따라 사는 것 - 그게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당신의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우리의 예배하는 삶은 이 주일 예배가 끝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또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가실 때에 \'내 이 삶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다\'하는 생각을 늘 품고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가장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