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정결법(1)/레13:1-59

피부의 정결법(1)/레13:1-59

피부의 정결법(1)
레13:1-59





레위기 13장에서 14장은 피부와 관련하여 부정케 된 사람의 정결법이 나옵니다. 피부와 관련한 증상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화려한 옷을 입혀 주시고 별별 일을 다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의사들이 해야 할 일까지 제사장들이 감당하였던 것을 봅니다. 우리가 읽는 개역성경을 보면 문둥병에 관한 정결법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차라아트\'라는 말입니다. 보통 \'문둥이\' 또는 \'문둥병이 있는 자\'로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나병\'으로 번역합니다. 개역 개정판에서는 각주에 \'넓은 의미로 악성 피부병을 뜻함\'이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쉬나에 보면 차라아트에는 72가지 종류의 병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나병도 포함되겠지만 꼭 나병 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광범위한 악성 피부병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차라아트는 전염성이 있는 병이므로 옷이나 집에 생긴 곰팡이나 검은 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제사장으로부터 부정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고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차라아트가 걸렸다면 그것은 그 당사자에게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그 진위 여부에 정확한 판단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밑줄을 쫙 쳐가며 외워야 하는 필수 암기사항이었을 것입니다. 환자를 진찰하는데 언제 성경을 들여다보면서 진찰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제사장이 감당하기 상당히 힘들었던 사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악성피부병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나병이 왜 부정하게 취급되었을까요? 이것은 의학적이나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 병이 지니는 발육성, 전염성, 격리성 등이 죄의 속성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악성 피부병인 나병의 무서움과 부정함을 알고 더 나아가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피부병의 진단
제사장이 부정하다고 판단해야 하는 경우를 살펴봅시다.
1)병든 자리의 털이 희어지고, 피부보다 우묵해진 경우(2-6절)
2)발진이 피부에 번지는 경우(7-8절)
3)병든 자리의 응어리가 희고, 털이 희어지고, 특히 생살(난육)이 드러나는 경우(9-17절)
4)종기가 나은 자리에 다시 흰색 응어리나, 희고 불그스름한 어루러기가 생겨서 피부보다 우묵하고 털이 희어졌을 경우(18-23절)
5)피부 화상 자리에 희고 불그스름한 어루러기나 흰 어루러기가 생겨서, 털이 희어지고 피부보다 우묵한 경우(24-28절)
6)머리와 턱의 병든 자리가 피부보다 우묵하고, 털이 누렇고 가늘 경우 역시 부정하며, 이것은 네텍(백선 또는 옴)으로 진단된다(29-37절).
7)피부의 백반병과 대머리나 이마 대머리는 정하며, 대머리에 희고 불그스름한 피부병 응어리가 있을 경우에는 부정하다(42-44절).
여기에 나오는 악성 피부병을 대부분 나병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병은 하나님이 때리시는 병이라는 히브리인의 개념에서 온 것이다(天刑). 이 병은 치명적인 것이어서 몸에서 악취가 나고 3기가 되면 몸의 털이 빠지며 외모가 추악하게 되오 혐오의 대상이 되어 따로 격리 수용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진찰한 결과 부정한 사람으로 판명되었을 경우 환자는 7일 동안 격리 수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오판하여 병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실수를 막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7알 후에 제사장이 다시 진단하여 전과 다름이 없으면 또 다시 7일을 격리 수용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제사장은 단순한 피부병으로 진단하고 그를 정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정한 자로 선언된 자는 옷을 빨았으며 그 후에는 정결한 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오히려 나병이 전신에 퍼졌을 경우에 제사장은 그 환자를 정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나병이 전신에 퍼진 것은 내부의 병독이 모두 밖으로 표출된 사실을 의미하며 이런 나병은 이제 곧 완쾌되기 때문입니다.

나병으로 판명된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레 13:45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레 13: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
환자가 옷을 찢고 머리를 푸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슬픔을 나타낼 때 옷을 찢고 머리를 풀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진 안에 거할 수 없는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였으며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으로 머리를 풀고 옷을 찢었습니다. 윗입술을 가리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윗입술을 가리는 것은 자기 증오와 자기 비하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들은 사람이 접근해 올 때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침으로써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한 모습을 스스로 증오한 것입니다.
저의 장인 어른과 장모님께서 과거 목회 하시기 전에 소록도 갱생원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소록도는 일본 사람들이 나병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서 만든 수용시설이 아닙니까? 저희 장인어른은 소록도 갱생원에서 사무를 보는 직원이었고, 장모님은 간호원이었답니다.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병환자들은 정상인이 지나가면 모두다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상인이 지나간 후에 자기가 할 일을 하거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2.나병의 특성과 죄의 성질
워런 W. 위어스비 목사는 나병의 특성을 말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죄를 상징하는지를 잘 설명합니다.
1)피부보다 우묵하다(3절)
나병은 피부에 발진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피부보다 깊은 것이다. 얼마나 죄와 유사합니까! 문제는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보다 깊숙한 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천사 같아도 속에는 이리가 들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깊은 내면의 세계에 들어가 봐야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피부병이 잘 낫지 않습니다. 의사들이 진료를 할 때 겉에 나타나는 증상치료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완전한 치료가 안됩니다. 언젠가는 다시 재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뿌리를 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에 나타나는 증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부의 병이 발병하게 된 원인을 치료해야 합니다. 인간은 얄팍한 표면적인 치료로는 고치지 못합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욥 14: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2)퍼진다(7절)
나병은 몸의 일부분에 제한된 종기가 아니라 퍼져서 그 사람 전체를 파멸시킵니다. 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에서 시작되어 욕망으로, 행동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심각한 결과들을 초래합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다윗은 나아가 싸워야 할 그 시간에 군대를 떠나 자기 이웃의 아내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그는 갈망했고, 간음죄를 저질렀으며, 거짓말을 하였고, 우리야를 술 취하게 했으며, 결국에는 그를 죽였습니다.
3)더럽힌다(44-46절)
물론 이것은 의식을 더럽힌다는 뜻이며, 나병환자는 성전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병자임을 표시하도록 강요되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나병환자를 만지기만 하여도 역시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비극입니다. 죄는 마음과 정신과 몸과 죄가 닿는 모든 것을 더럽힙니다. 죄인하나가 집안 전체를 더럽힙니다.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아간 한 사람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4)격리된다(46절)
이 병으로 판명된 자는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죄는 언제나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죄는 가족들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친구들로부터도,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도 떨어지게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죄를 지실 때 그분은 외쳤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죄는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5)소각된다(52절)
나병으로 더렵혀졌다고 알려진 것은 어떤 의복이든지 불살라야 했습니다. 죄를 위해 준비된 곳은 오직 한 군데, 곧 심판의 불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수억의 영적인 나병환자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아 영원한 불의 심판에 처해진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3.구약의 율례와 예수님의 치유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한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그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며 진 밖으로 나가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가 행위 언약적이었으므로 인간은 그의 행위의 온전함과 거룩함을 가지고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병환자와 같이 부정한 자로 판정을 받은 자는 다른 방도를 강구할 여지도 없이 즉시 진을 떠나 하나님의 임재가 단절된 곳, 더 나아가 사람과의 교제가 단절된 곳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야 했던 구약 시대와는 달리 나병환자들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극적으로 나아왔습니다.
마 8: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막 1: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눅 5: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눅 5:14 예수께서 저를 경계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 17: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 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 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 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이것은 구약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떠나야만 했던 사실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신약시대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하고 저주스러운 처지를 하나님께 고하며 당신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왔던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피부에 나타난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책임이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얼마나 신중하게 처리해야 합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제사장에 대한 신뢰와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목회자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따라서 성도들을 잘 지도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죄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는 인정사정 없이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파멸로 인도할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불의 심판뿐입니다. 죄를 제거하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