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의 정결법/레12:1-8

산모의 정결법/레12:1-8

산모의 정결법
레12:1-8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정결을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몸, 의복까지 정결하기를 원하십니다. 11장에서 음식에 관하여, 12-13장에서 몸에 관하여, 14장에서는 의복에 관한 정결법을 말씀하고, 15장에서는 정결한 접촉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2장은 산모의 정결에 관한 결례법입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 하시니라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한 생명을 탄생시킨 여인의 산후조리 기간을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을 위하여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거친 광야 생활을 그들이 여인들에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종종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희 어머님은 10남매를 낳으셨습니다. 가정 형편도 어려웠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애기 낳기 전 까지도 일을 하셔야 했고, 아이를 낳은 바로 그 다음날부터 보리 방아찧어 식구들 밥해 먹였다는 것입니다. 요즘 산모들은 얼마나 호강합니까? 요즘 조금은 말썽을 일으키고 있지만 산후조리원이라는 것도 생겨서 친정이나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못하는 산모들은 산후조리원에서 편하게 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은 그러치 못했습니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모두 경험한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3400여년 전에 산모에게 산후조리 기간을 정하여 주신 하나님의 배려는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산모를 위한 출산 휴가와 마찬가지입니다.

1.해산한 산모의 정결 규례(1-5)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본래 해산 자체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창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삼상 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삼상 1: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그러나 출산에 따르는 것들, 예를 들어 태반, 출혈, 신체의 부조화 등에서 나오는 것을 부정으로 여긴 것입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여인들이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을 방영하여 준 적이 있습니다. 여인이 출산을 하려고 할 때 간호사들이 아이를 받기 위하여 출산실로 들어가는데 여러분들이 농사를 지을 때 신는 커다란 장화를 신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출혈이 심하고 분비물이 많이 배출되기에 보통 신을 신고는 출산을 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산 이후의 부정은 월경하는 여인의 경우와 같이 7일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7일간 부정하고 33일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지며, 여자아이를 낳은 경우 14일 동안 부정하고 66일이 지나야 깨끗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아이를 낳은 경우는 40일 동안, 여자아이를 낳은 경우는 80일 동안 산후 조리의 기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은 성물을 만지거나 먹을 수 없으며, 성소의 출입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자와 여자를 낳은 산모의 정결 기간이 갑절이나 차이가 날까요?
마틴 노트라는 사람은 이것이 제례식에서 여성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엘리거라는 학자는 구약 전통에서 여자는 보다 쉽게 악마적 세력의 영향에 노출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창 3:1이하, 출 22:17절 참조). 또 어떤 학자는 딸을 낳은 경우 산모의 회복이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레위기 문맥에서 성소에 드리는 몸값의 경우 여자는 남자의 절반으로 규정한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레 22:2-7).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남자를 낳았거나 여자를 낳았거나 똑 같은 제사와 제물을 드릴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성차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남아선호 사상이 나타난 증거라고 말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주석가 매튜헨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율법을 만드신 분의 뜻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간의 구별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자 명령이었던 인간의 출생 과정에서 産血(산혈)을 흘린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 성경적 배경이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피를 흘리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생명의 근원을(창 9:4-6) 땅에 흘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인류 타락 이후 새로이 주어진 여인의 해산의 고통 이외에 산혈도 의식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인간의 출생은 영생을 위한 출생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출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는 예식을 거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영적 부정도 말끔히 제거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출생이 곧 영생의 축복이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만은 출생이 곧 영생의 기쁜 출발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결케 하는 기한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자아이를 낳은 경우 40일 동안, 여자는 80일 동안 부정하였는데 이 기간이 끝나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 정결예식을 거행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매우 귀중한 뜻을 암시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40일을 두 번이나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제공한 음식을 먹고 40일 동안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갔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에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자주 나오는데 이 숫자는 시험의 기간 또는 시련의 기간으로서 믿음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기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 동안, 여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80일동안 부정한 모습으로 지내도록 하신 것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부정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면서 믿음의 시련기간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떻습니까? 임신한 산모가 믿음생활을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믿음의 시련기간은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 40년을 연단 하신 후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숙한 사람만 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자아이는 낳은 지 제 8일에 양피를 베라고 명령하셨습니다(3절). 7일 동안 부정한 어머니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부정한 기간이 지난 후 8일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할례를 아브라함 때부터 시행된 것입니다. 신체의 일부를 베어 냄으로 영원히 남는 흔적을 가짐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신약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손할례보다는 우리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출혈이 가장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점입니다. 현대의학이 밝혀낸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천년 전에 이미 알고 계셨고 그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운 뉴욕의 시내산 병원의 연구에 의하면 유대인 남자들은 다 포경수술(할례)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유대인 여자들에게 자궁암이 가장 적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할례를 통해서 아이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들어가게 되고 산모는 몸을 깨끗이 씻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으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2.산모의 정결을 위한 제사법(6-8절)
산모는 정결케 되는 기간이 차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 정결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물을 가지고 회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결예식은 두 가지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1)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번제를 위하여는 가능하다면 일년된 어린양을, 가난하다면 비둘기를 예물로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도 마리아는 결례의식의 제물로 집비둘기 둘과 산비둘기 둘을 가지고 갔습니다.
눅 2: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가난한 가정에서 탄생하셨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까? 우리로 부요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예물은 해산의 고통과 위험을 무사히 끝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또 앞으로도 여인 자신과 아기에게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하고 소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그 가정에 기쁨이요, 희망입니다. 기쁨과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정성스러운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속죄제물은 가난한 자나 부자가 똑 같아야 합니다. 즉 속죄제를 위하여는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의 예물에는 빈부간에 격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속죄를 위한 제사는 빈부간에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 속죄제물은 의식법상 부정하게 된 여인을 완전히 깨끗케 하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해산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만 그것은 도덕적 부패의 한 상징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속죄제물을 드리도록 한 것은 부당하게 자녀의 축복을 욕심 냈다든지, 해산의 고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인내하지 못하는 따위의 실제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의 죄악이 제거되는 것은 오직 대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만일 주님의 속죄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성소에서 쫓겨나거나 성물을 먹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은 세금 지불이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이미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깨닫습니까? 이스라엘의 공동체와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러야 하는 곳, 건강하고 온전하여 질 때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해산한 여인의 몸인 것입니다. 얼마나 여인들에게는 눈물나게 감사한 하나님의 배려입니까? 안식일이 인간의 삶에 쉼을 주듯이 정결 기간은 해산한 여인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기간에 믿음을 회복하고 더욱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시련의 기회가 찾아오면 믿음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감사하며 믿음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