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6-8,눅18:1-8





세계올림픽이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데 올해가 올림픽이 열리는 해입니다. 우리 나라가 1988년도에 제 24회 올림픽을 열었는데 벌써 12년이 지나 이번 해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다고 합니다.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운동경기를 통해 우정을 나눌 뿐 아니라 이러한 이들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세계평화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큰 나라, 작은 나라 할것 없이 같이 모여 기쁨을 나누는 것이 올림픽의 정신이라 생각됩니다. 본래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행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 중 하나가 운동경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제전은 어느 한 곳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운동경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큰 경기는 올림피아 였는데 올림픽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도시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림피아 제전이 가장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제전인 것입니다.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 즉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76년 전에 시작되어 4년마다 행사를 치렀는데 393년까지 모두 293회에 걸쳐 근 1000년 동안 계속 되어왔다고 합니다. 393년 이후에 경기를 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올림픽 경기가 너무나 부패해 졌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1등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예로 당시 세계를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 폭군 네로는 자신이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를 2년간이나 연기 시켜서 참석하여 스스로 1등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경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고대세계를 정복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난 이후에 올림픽 경기는 이교도의 경기라는 이유 때문에 올림픽 경기가 끝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00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프랑스의 쿠베르탱에 의해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현대 올림픽 제1회가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이 대회도 세계 1,2차 대전으로 3번 쉬었고 지금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올림픽 경기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딤후4:6-9)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그리스에는 여러개 도시국가로 되어 있었는데 도시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운동시합을 합니다. 그러나 시민이라고 누구나 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림픽 경기에는 특별히 선발된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격은 크게 4가지 였습니다.

①순수한 헬라인 일 것 - 야만인이나 노예는 안됨 ②배신자나 범법자가 아닐 것 ③10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연습을 할 것 ④대회 1개월전에 올림피아 제사에 참석하여 제우스 신전에 기도를 올리고 자격 심사에 합격할 것 이런 자격을 가지고 선발된 사람들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올림픽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순수한 헬라인 인 것처럼 신앙의 경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 하는 것입니다.

또한 범법자가 아닌 것처럼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한 구별된 성도들이 이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개월 동안 연습한 사람만이 참여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신앙중심으로 신앙의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이 신앙의 경주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제우스 신전에서 기도하고 선서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며 살겠다라고 서약하는 사람들 만이 신앙의 경주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주하는 사람들이 신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경주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 참석하는 모든 선수들은 하루 전날, 전야제를 합니다. 전야제에서 선수들은 헬라의 신전 앞에서 엄숙한 선서를 합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죄를 짓지 않고 10개월 이상 훈련을 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경쟁을 할 것이며 승리를 위하여 결코 비열한 행동이나 반칙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내용의 선서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시합에 참여하되 경기 규칙을 엄수하고 시합에서 선수가 국가의 명예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뜻입니다.

심판은 왜 세웁니까? 심판이 하는 일을 조금도 범법함이 없이 바른 규정대로 시합을 진행하기 위해 심판을 세우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육상선수는 1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나중에 약물 검사에서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이유로 금메달을 빼앗겼습니다. 우리 나라의 임춘애 선수는 아시안 게임에서 2등을 했는데 시합 비디오를 분석한 결과 1등한 선수가 라인을 밟는 실수로 탈락되고 임춘애 선수는 2등 했으나 1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선수들이 운동경기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지켰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경주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바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기를 하든지 어떠한 곳에 가서 일을 하든지 그 자리에서 믿음을 지켰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면서 믿음을 지켰는지, 부부간의 대화에서 믿음을 지켰는지, 직장생활에서 믿음을 지켰는지,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명예와 부를 가졌어도 실패한 것입니다. 믿음의 규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눅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항상 기도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면서 낙망치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낙망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도시의 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 정부에 의해서 고용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하다는 것은 죄인을 판결할 때 법대로 하지 않고 뇌물을 받아 사람들에게 억울한 형벌을 부과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재판관들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재판관을 가리켜 강도 재판관이라고 했습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잃은 한 과부가 이 재판관을 찾아가 억울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의한 재판관이 들어주었을까요? 당연히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여인은 무시를 당합니다.

찾아오지 말라고 팽개쳐 지는 버려짐도 당하고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여인이 계속 찾아오니 그 불의한 재판관은 번거롭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느끼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까지 느낍니다. 아침, 점심, 저녁할 것 없이 계속 찾아오는 과부의 간청에 결국 그 불의한 재판관은 그 원한을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밤낮으로 부르짖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있느냐,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부는 이런 생각도 가졌을지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수모를 당하면서 원한을 풀어야 하나\'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믿음을 지키는 것 때문에 무시 당하고, 조롱당하고 손



가락질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얘기 하시다가 믿음을 얘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믿음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미래를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되 \"하나님 제게 이러한 어려움을 주시지만 이러한 어려움도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라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1.선한 싸움을 싸웠다.

신앙의 경주, 믿음을 지키는 일은 싸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교적부를 보면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적부에는 직업, 종교 등 여러 가지를 쓰는 란이 있습니다만 어느 한 학생의 교적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썼습니다만 이 학생은 종교란에는 \"무교\"라고 쓰고 취미란에 \"기독교\"라고 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아버지는 기독교를 강요하지만 자신은 취미라는 뜻입니다. 취미란 흥미거리입니다. 없어도 되고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신앙을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움이라는 말의 헬라어인 \"아고나\" 라는 말의 뜻은 전쟁에서의 병사의 싸움 또는 레슬링 이나 권투와 같은 격투기에서의 싸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훈련하지 않고는 절대로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족하는 사람들을 보면 싸움에서 실패한 경우입니다. 싸움이 커서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회사가 부도나고, 가정이 어려워 져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켜 회복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유없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나오지 않는가를 물으면 십일조 하라는 목사님의 권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넘어지는 것은 큰 싸움이기 때문이 아니라 작은 싸움일 때에도 넘어집니다. 왜냐하면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출석한지 10-20년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10년이 되었다고 집사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나면 그 직분으로 문제가 됩니다. \'내가 집사인데... 목사님이 봉사 하라고 했지만 안해서 나를 미워한다\'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것이 짐이 되어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직분을 주지만 직분이 굴레가 되고 짐이 되어 신앙까지 팔아 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싸움이고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훈련받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훈련의 시간에 여러분의 시간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가고 싶을 때 나오고,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신앙 생활하겠다는 것,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절대 그대로 놔 두지 않습니다. 훈련 받지 않은 군사는 훈련을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텡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성공여부를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나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 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하나는 노력했느냐 이고 또 한가지는 규칙을 지켰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반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얼마나 훈련을 다했습니까? 세상의 회사에서도 신입 사원들을 얼마나 훈련시킵니까? 이 훈련 기간동안에 단 한 사람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그 과정을 마쳐야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세상의 일도 그렇다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당연히 우리는 훈련은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훈련받는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믿음은 하루 아침에, 선천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받았고 그는 100세나 되어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과 같이 제사를 드리러 갔을 때 이삭의 나이는 대략 17살 정도라고 성서학자들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42년의 시간이 흐르니 그런 헌신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구출해 내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는 여정을 멈추어 시내산에서 1년간이나 교육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성막을 제작토록 하시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를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이고 레위기, 민수기입니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꼭 \'경험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실패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 부족해서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원망하고 불평하기 쉬울 때는 훈련받지 않았고 채워진 것이 없어서입니다.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될 때 120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고 성령을 충만히 받아 그 시대를 놀랍게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삼천명, 오천명이 되었고 사람들이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절입니다. 미국의 유머 작가인 \'루코크\'란 사람이 현대판 성령 강림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는 광고가 나갔다. 적어도 120명이 출석해야 하는데 출석한 사람은 모두 40명이다. 베드로는 최근 갈릴리 호수 근처에 구입한 별장으로 가족들과 함께 떠났고, 바돌로매는 집에 손님이 와 있기 때문에 나오지 못했고, 빌립의 가족은 지난밤 늦도록 참석한 파티의 후유증 때문에 주무시고 계시고, 안드레는 새 차를 구입하려고 모터쇼에 갔고, 마태는 시간외 근무수당을 위해 시간외 근무를 자청했고, 요한은 사업상 골프치러 나갔고, 도마는 취직시험이 주일과 겹쳤으니 당연히 나올 수 없다고 하며 나오지 않았다. 불길같은 성령도 망설이다가 다락방 앞에서 되돌아 갔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겠는지를 풍자한 얘기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선한 싸움에 승리자가 되도록 믿음을 지키기 위해 훈련을 잘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렸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경기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라톤 경기는 42.195km를 달려서 그 소요시간을 겨루는 경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아무리 빨리 달렸어도 끝까지 달린 사람이 아니라면 등수를 가릴 수 없습니다. 끝까지 달려서 10시간을 달렸던, 20시간을 달렸던 끝까지 달린 사람만이 등수에 들 수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도 중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의 기원은 이렇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북동쪽 마라톤 광야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의 명장 밀티 아데스가 침략해온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아테네의 군사가 그 승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 \"우리는 이겼노라\"고 아테네의 시민에게 알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병사는 자신의 사명인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끝까지 달렸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마라톤 경기가 생겼고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갈려갈 길을 마쳤다라는 말씀은 끝까지,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명에 살았고 충성했습니다.

끝까지 사명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 아니했다\" 인생에서 어려운 것은 마지막입니다. 시작은 쉽지만 끝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인생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은 지구력인데 지구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결여된 것입니다. 어떤 의사는 살아 있는 동안 자서전을 쓰라고 했더니 쓰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한 바퀴에서 낙오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권사님은 봉사도 잘했습니다. 충성도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암으로 죽게 되자 하나님을 원망 하고, 교회를 원망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끝까지 잘 죽어야 될텐데.. 주여 나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 옵소서\' 그렇게 봉사를 잘 해오던 사람도 이처럼 마지막까지 달려가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오고 원치 않는 일이 생길 때 정말 자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정말 사명 따라 살고 계십니까? 돈 따라 살고, 명예 따라 살고 직분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신 사명, 주어진 환경이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주신줄 알고 복음 전하는 선교사로 살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들이 얼마나 힘듭니까? 언어, 생각, 행동이 통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 하고싶은 것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교사라고 생각하면 가정에서 불평할 것이 무엇있겠습니까? 직장에서 불평할 것이 무엇있겠습니까? 교회에서 무엇을 불평하겠습니까? 주신 사명으로 안다면 말입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구원받고 민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올림픽경기에서의 우승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관을 쓰게 되어있습니다. 손기정선수는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월계수 나뭇잎으로 만든 관을 썼습니다. 왜 올리브 나무이며 월계수 나무 잎이겠습니까? 과거부터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나 월계수 나무는 신의 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썼을 때 신이 인정하고 신이 함께 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운동경기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경주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 사람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인정받는데 과연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인정된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

그리고 주님께 충성한 자에게 의의 면류관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수 있는 면류관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합니까? 무엇 때문에 싸우고 순종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인정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 앞에서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는 자 말입니다. 사람 앞에서 인정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더욱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받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70세 된 할아버지가 밭에 나무를 심습니다. 지나가던 젊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나무를 지금 심으시는데 열매는 언제쯤 생깁니까?\" \"한 70년 후 생기지\"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젊은이는 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살아 생전에 이 열매를 드실 수 있겠어요? 그런데 왜 심으십니까?\"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열매를 못 먹지요.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나의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나무를 심었소. 나는 그것을 먹고 자랐다오. 내가 심으면 내가 아니라 내 손주 들이 먹고 살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나뿐 아니라 내 후손들이 잘 먹고 잘 살수 있고, 은혜 속에 살수 있는 나무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지켜 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