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삶

믿음의 삶
출2:1-4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영아학살 명령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던지라는 바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레위 사람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이 모세의 탄생은 부모에게 큰 기쁨과 희망이 되어야하는데, 시대적 상황은 모세가 온 가족에게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요게벳은 탄생의 기쁨보다는 버림받아야 할 자식의 앞 날 때문에 아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처럼, 모세도 부모에게서 버림받을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법의 강제에 의하여 모세는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보니까 아름다웠고, 어머니는 모세를 석달간 숨겼습니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에집트인들이 성전에 바치는 상자의 모형을 본뜬 파피루스 상자에 모세를 넣었습니다. 갈대 상자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노아의 방주처럼 어떤 홍수와 물에도 안전하게끔 만들어서 강물에 띄워보냅니다. 그리고 누이 미리암이 안타깝고 애타는 심정으로 멀리서서 모세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집적 확인할려고 눈을 크게 뜨고 서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강물에 휩쓸려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갈대 상자를 미리암은 애타는 마음으로 좇았습니다. 그리고 미리암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굳게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어머니 사랑은 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어머니 사랑은 위대합니다. 어머니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삼하 21장에 보면, 사울의 첩 리스바의 두 아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가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아비의 죄 때문에 리스바의 두 아들은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죽음 당한 그 아들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낮에는 새가 쪼아먹지 못하게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잡아먹지 못하도록 몇 달동안 지키는 장면을 봅니다.

타인의 눈에는 분명 죽은 자식이였고, 지켜도 소용없는 아들들이였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모성애를 가지고, 그 자식들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어머니의 본능적 사랑, 계속적인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 그 자리를 못뜨게 하는 것입니다.

아 8:6-7, --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라고 했듯이 어머니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그 무엇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들짐승도 제 자식은 예뻐 보이는데, 하물며 신앙의 사람 요게벳에게 모세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불같은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도록 막으면 막을수록 어머니 사랑은 더 커져가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모세에게 생명의 위협이 다가올수록 어머니 보호 본능은 날로 더 커져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본능입니다.



예전에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 불이 났습니다. 밑에서 불은 솟아오르고, 연기 때문에 질식해서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한 아비가 딸을 품에 안고 뛰어내렸습니다. 자신은 죽을 줄 알았지만,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떨어지는 순간 그 충격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냈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어린 딸은 살았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삭막하다 그래도 영원히 변치 않은 것이 있다면 어버이의 자식 사랑 아니겠습니까? 생명조차 아끼지 아니하는 이 사랑을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숨기게 된 동기가 준수함 때문인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은 모세가 준수함 때문에 보호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보호한 동기가 외적인데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은 자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어머니의 사랑은 변함없이 계속됩니다. 숨겼다는 말은 보호했다는 말입니다. 자식의 위험 앞에서 그 자식을 향한 보호는 어머니 본능이고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보기에 모세가 남달리 준수했다는 말은 좋게 보였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성품이 선하게 보였다 곧 내면적인 아름다움, 순결함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입니다. 이 \"토브\"라는 단어 준수하다. 좋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후 보기에 좋았더라할 때, 그 단어입니다. 모세가 준수했다 라는 말은 어머니의 평가라기보다는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모세를 향한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 그 사명을 감당할 사람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토브라는 선하다. 준수하다라는 말속에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나타나지 않지만, 이 단어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맡겨진 사명과 연관지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노예의 비참한 생활에서 그들을 구원할 도구로써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모세, 그 모세가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보기에 좋았다는 말입니다.

때가 찬 경륜을 따라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태어난 모세, 그져 뜻 없이 세상에 내어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기에 좋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런 뜻이 없이 태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윗 왕이 고백한대로, 시 139:13-1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길 렘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온 모세를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어머니가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것, 좋았던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시고,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라고 하실 때부터 이미 계획된 것이였습니다.



특별히 준수함을 보았다 라는 말은 모세가 앞으로 감당해 나갈 사명을 예견한 단어입니다. 그러니 어여삐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보일까요? 모세와는 다르게 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어머니에게 모세가 준수하게 보였던 것처럼 오늘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는 비록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허리가 꼬브라졌다 할지라도 준수하게, 선하고,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맡겨진 사명을 알고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없이 아름답게 보십니다. 아니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사명을 주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십니다. 모세처럼 한나라를 인도할 지도자로 쓰지 않았다 할지라도, 한 생명 한 생명을 주님 앞에 인도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고, 영광돌리는 자로 택하여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습3:17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하였는데,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그런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고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님은 아무런 원망과 불평없이 죽기까지 하나님아버지께 복종하여서 십자가를 지신 것 아니겠습니까?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요게벳은 모세를 숨겨서 석달 동안 보호했습니다. 더 이상 보호할 수 없을 때까지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서 그를 잘 키웠습니다.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방임했던 것이 아니라 소중히 키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머니가 모세를 숨겼다, 보호했다는 말은 yatichpnehu인데, 미완료형 동사로써 터 끝까지 어머니가 모세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순간, 위험의 순간이 모세의 가정에도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어머니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 위기의 때에 모세의 어머니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둘째로,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갈대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발랐습니다. 강에 던지라는 바로의 왕의 명은 거역할 수 없었었지만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였습니다. 강물 때문에 죽지 않도록 방주를 잘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잘 만들었습니까? 역청도 바르고, 송진도 바르고, 강물에 떠내려갈 때도, 멀리서 좇는 장면을 봅니다. 그져 자포자기하지 않고, 한탄하며 눈물흘리며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무조건 믿음으로 맡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가 병들면, 병원만 가서 고치겠다하는 사람을 봅니다. 상식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명과 치료의 주님,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주님을 모르시는 것입니다. 믿음없는 사람과 다를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믿음으로만 고치겠다하고, 병을 키우는 분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낫게 해주시니까 기도로 하겠다. 믿음 좋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다른 형태이고, 잘못된 형태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사도 주시고, 병 고칠 수 있는 약초도 이 땅에 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은 받고, 기도로 맡길 것은 맡겨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약을 먹으며 기도하면, 불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을 끊고 다 주님께 맡겨라고 합니다. 이것은 옳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곤케 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하며 하나님께 맡길 일은 맡기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내가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옵소서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요게벳의 믿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위해서 갈대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소중히 만들었습니다. 땟목을 만들어서 될대로 되라고 모세를 그곳에 누이고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역청과 송진속에 어머니의 사랑의 눈물과 기도가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도 스며들었습니다. 이제는 강물에 띄어보내며 하나님에 맡겨야 할 순간이 오고 있음을 생각하며, 어머니로써 할 일은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갈대 상자라는 단어는 파피루스로 만든 상자인데, 그 상자라는 말이 노아의 방주에 쓰이는 단어하고 똑같습니다. 테바라는 단어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해주었듯이, 요게벳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구원해주시기를 바라며, 모세를 강물에 띄우고 맡기는 것입니다.

강물에 띄우고 난 후에 그져 온 길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이제 내 할 일은 마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본문에 멀리 서 있다라는 말은 , 미리암이 끊을 수 없는 애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서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조용히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오늘의 현실이 막막해도 , 포기하지 않고, 멀리에서 뛰 좇으며 기다리는 요게벳과 그 딸 미리암의 모습을 봅니다. 믿음은 내가 할 일은 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행위를 바라며, 믿음 위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돌아서는 것도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게벳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미리 택하고,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전에 죽음의 위협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하나 하나씩 이뤄가고 있습니다.

모세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 민족 한 나라를 구원하라는 그런 사명을 받지 못했다할지라도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감당하라고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직분과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처럼 내가 할 일은 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길 것은 맡기고, 기도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