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교제 몬1:4-7 오늘의 본문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 중일 때 골로새에 있던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에서 약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 골로새에 살던 빌레몬이 사업 차 에베소에 자주 왕래하던 중에 바울을 만났고,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울의 도움으로 자기가 살던 도시 골로새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바울이 파송한 에바브라를 교역자로 모시고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로마 옥중에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거기서도 활발하게 복음을 전했고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집에서 종으로 있던 사람인데 돈을 훔쳐 가지고 도망 와서 로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바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던 중에 그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가 이대로 지속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성도로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오늘 본문인 빌레몬서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먼저 바울과 빌레몬 사이의 좋은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종이 도망을 치면 그 자체로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돈까지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죽음으로 응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여 마땅한 사람을 용서하라고, 믿음의 형제로 받으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과 빌레몬 사이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말 하기 어려운 부탁이자 권고를 할 사이이고 또 그 권고를 받을 사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대로 믿음의 교제를 깊이 나누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두 사람 바울과 빌레몬 사이가 그토록 돈독할 수 있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너를 말함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평소에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다는 고백입니다. 이 기도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탱해 주는 힘인 것입니다. 왜 바울과 빌레몬이라고 그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겠고, 왜 불평이 없겠고, 왜 문제가 없겠습니까? 왜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없겠고, 섭섭함이 없겠습니까? 이런 문제들을 기도로 해결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서로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생각이 달라서 다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지금은 서로 배짱도 맞고, 서로 뜻이 맞아서 사랑한다고 하고, 동업하자고 하지만 어느새 서로 다투고 서로 갈라서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렇게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 사이에 관여하십니다. 여기에 믿음의 교제의 비밀이 있습니다. 창 33장을 보면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는 극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에게 속아 장자권을 빼앗겼던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멀리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해서 21년간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창 32장에 보면 야곱이 이제 식솔들과 가축들을 몰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미리 사람을 형에게 보내 선물도 전하고 이해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400명의 이끌고 야곱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화해를 청했으나 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창 33장에 와 보면 야곱과 에서가 서로 포옹하고 화해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쉽게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그 답이 창 32장 후반부에 나옵니다. 야곱이 너무도 겁이 나서 식솔들을 얍복 강을 건너게 하고서는 자기는 강을 건너오지 못하고 날이 새도록 밤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두 사람을 화해시켰던 것입니다. 정말 창세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기도 외에 갈등과 화해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기도가 두 사람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야곱이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에서에게도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사이의 화해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그렇고, 형제 사이의 문제도 그렇고, 친구 사이의 문제도 그렇고, 교인들 사이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 둘 사이에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 둘 모두를 변화시켜주실 때 화해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성도의 교제를 아름답게 이어가려면, 모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이어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문제가 생기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 중에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실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우리 힘으로 어렵다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 관계를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관계가 다 잘 풀리고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둘째, 바울은 빌레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빌레몬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음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빌레몬이 골로새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제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부탁할 수 있음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지체 장애자를 둔 여자 분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솔직하게 말하더라구요. 정말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 아이를 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12살인데 지능은 2살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답니다. 아직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한답니다. 주는 대로 입고, 주는 대로 먹고 하루 종일 자폐증 때문에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 한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기 아이 또래 아이가 엄마 손 잡고 시장에도 가고 활짝 웃으며 엄마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답니다. 차라리 엄마 속을 썩여도 좋으니까 말썽도 피우고, 학교에서 야단 맞으며 엄마 모시고 와 그래서 학교에도 불려가고, 아이들과 싸워서 옆 집 엄마하고 아이 때문에 말다툼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기도하면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딜 수 있고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하셔서 우리에게 맡기셔서 요사이는 이 아이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도 아이들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공부를 잘할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착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을 텐데... 감사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내와 남편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 부부 관계는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들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면 부모 자식간에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 때문에 감사하고 장로님 때문에 감사하고, 교인들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최근의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이혼이 급속도로 늘어간답니다. 평균 하루에 500쌍 정도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답니다. 하루 평균 1500쌍 정도가 결혼을 하니까 한편에서 세 쌍이 결혼하면 다른 한편에서 한 쌍이 이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혼 사유를 조사한 보고를 보니까 50-60년대에는 배우자의 부정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피웠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답니다. 그런데 70-80년대 폭력과 부당한 대우가 이혼 사유 1위가 됐습니다. 물론 바람 피우면 이혼이고, 과거에는 참고 살았지만 남편이나 아내가 폭력을 휘두른다든지 아내 대우 남편 대우를 제대로 안 할 경우에도 이혼하는데 이것이 더 빈도 수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0년대에 들어와서는 행복하기 위해서 이혼한다는 것이 1위가 됐답니다. 남편과 아내가 바람도 피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특별히 부당하게 대우하지도 않지만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거나 이 사람하고 살아서는 앞으로도 행복할 수 없겠다고 판단되면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혼하는 가장 큰 사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부 생활이 역할이 중심이었답니다. 남편은 가장 역할, 아버지 역할, 남편 역할이 결혼 생활을 지탱시켜주었답니다. 아내는 주부 역할, 엄마 역할, 아내 역할이 부부 생활의 중심이었답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관계가 좋지 않아도 그 역할에 충실하면서 참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관계 중심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역할, 아버지 역할, 주부 역할, 엄마 역할을 못해도 부부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부부 관계가 행복하지 않다면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아빠로서 엄마로서 역할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부부 관계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이들 문제는 두 번째이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내를 만나서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자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을 만나서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자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때문에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감사할 수 없어진다면 더 이상 함께 살기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서로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의 인간 관계는 행복합니다. 여기 믿음의 교제의 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서로에게서 감사의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조건으로 감사하고, 서로에게 그 조건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차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깨지고 금이 가는 것은 서로에게서 감사의 조건보다는 원망과 불평의 조건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셋째,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했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번역해 보면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마음이 그대를 통하여 다시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빌레몬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돈독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이 바로 칭찬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빌레몬의 칭찬을 했고, 또 빌레몬 자신에게도 칭찬을 했습니다. 이 칭찬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남의 이야기 즐겨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남의 이야기도 주로 험담을 즐겨합니다. 조선 왕조 중엽 상진이란 분이 정승으로 있었는데 그 사람이 시 한 구절에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술안주가 많지만 남의 험담처럼 맛있고 좋은 안주가 없다\" 남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누군가를 올려놓고 험담을 합니다. 여자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떨며 험담을 합니다. 그 험담에 공감하고 동조하며 맞장구를 치면서 자기들끼리 더욱 다정해 집니다. 마치 못된 일을 함께 저지른 공범이라는 어두운 마음에 하나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험담들이 그 사람 귀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을 사회의 공악으로 칩니다. 그 사람의 문제가 있으면 단 둘이 풀거나 본인에게 직접 말해야지 다른 누구에게 그 사람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험담을 들은 사람은 당사자에게 찾아가서 \'아무개가 당신 험담을 하고 다니니까 조심하라\' 일부러 알려주는 것이 미덕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험담은 모든 관계를 깨뜨립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믿음의 교제에는 가장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서로 칭찬합시다. 서로의 좋은 점을 보고 그 좋은 점을 나눕시다. 칭찬은 모두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저는 요사이 교회 밖에서 인사 받느라고 너무 행복합니다. 노회 목사님들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제게 말씀합니다. \'박 목사 요즘 목회 재미있게 한다면서...\', \'아니요 별로 그렇지도 못합니다\', \'아이고 상도중앙교회 장로님들이 박 목사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우리 장로님들이 워낙 좋은 분들이셔서 제가 시원치 않는데도 그렇게 좋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또 목회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용기를 내게 됩니다. 장로님들이 보실 때 저라고 왜 약점이 없겠습니까? 저라고 험담할 일이 왜 없겠습니까? 예쁘게 봐 주시니까 칭찬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칭찬을 듣고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자기는 칭찬을 듣고 교회 장로님들이나 교회 욕할 수 있습니까? 저도 더 칭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믿음의 교제의 비밀입니다. 칭찬은 칭찬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칭찬은 서로의 관계, 서로의 교제를 더욱 굳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서로 칭찬합시다. 서로 덕담을 나누고, 서로 믿음의 교제를 든든히 세워 가십시다.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를 본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작은 오두막을 무엇에 쓰시려고 짓고 계십니까?\" 그 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습니다. \"이 작은 집 안에 진실한 우정을 나눌 친구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소원이 없겠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인생이란 누군가와 오두막 속에서 함께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자 했습니다. 이 인생의 오두막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그 사람들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작은 오두막 속에 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작은 오두막 속에 정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거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두막 속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로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혼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와 함께 믿으며 함께 하나님 앞에서야 합니다. 소크라테스 말처럼 우리네 신앙생활도 하나의 오두막 생활입니다. 이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더불어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생활을 잘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 생활을 잘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불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오두막에 보내 주신 믿음의 형제들과의 관계입니다. 이분들과의 관계를 잘 발전시켜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들을 칭찬하고 덕담을 나누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