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로워지는 믿음

다시 새로워지는 믿음
딛3:4-8





며칠 전 이사심방을 했습니다. 15년 정도 된 기존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셨습니다. 지어진지 어느덧 15년 정도 되다보니 이곳저곳 낡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환경도 아파트 건물 자체도 깔끔한 새 아파트와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 가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막 새로 분양한 새집이었습니다. 집을 사셔서 소위 리모델링(Remodeling)을 하신 것입니다. 오래된 집이 새 집처럼 변한 것입니다. 너무 보기가 좋았습니다.

리모델링이라는 말은 “낡은 주택이나 상업공간을 최신 유행의 구조와 마감으로 바꾸는 개보수 작업”을 통칭합니다. 그러니까 지은 지 오래된 건축물에 재투자함으로써 부동산의 가치를 개선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리모델링을 제 2의 건축이라고 부른답니다.

전문 서적을 찾아보니까 리모델링은 건물의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개수(renovation)를 모두 포함한 광범위한 말로 쓰인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리모델링은 우선 기존 건물을 파괴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유지하는 작업입니다. 다음으로 낡고 문제가 생긴 부분을 보수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더 필요한 기능과 모양으로 바꾸거나 첨가하는 작업니다.

저는 이 심방을 하면서 우리 신앙도 이렇게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 신앙도 새롭게 리모델링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신앙 리모델링이 필요할까?

저는 사사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고 그것을 제 신앙의 교훈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1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의 상황이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점령해 들어갔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죽고 얼마 남지 않은 가나안 땅의 정복은 각 지파에게 위임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가나안 땅 정복이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1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표현입니다.(19, 27, 28, 29, 30, 31, 32, 33 등) 여기저기 가나안 족속이 남아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을 완전하고 확고하게 정복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을까요? 그 답을 삿 2:2-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한 마디로 가나안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저들의 우상을 철저하게 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가시가 되도록 가나안 땅에 남아두셨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의 백성의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그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셨고 믿음의 풍성한 삶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옆구리에 가시를 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사사기를 전체 큰 틀에서 살펴보면 하나의 반복되는 신앙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납니다.(배신) 삿 2:1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과 교류하면서 하나님을 등지고 저들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저들을 징계하십니다.(징계) 삿 2:14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를 세우셔서 저들을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간구) 삿 3:9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세우셔서 저들을 구원해 내십니다.(구원) 삿 2:16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세우셔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반복되는 의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입니다.

삿 3:12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옷니엘 선지자를 세우셔서 메소포다미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40년 태평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패턴의 사이클 즉 배신 - 징계 - 간구 - 구원의 사이클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삿 4:1을 보면 “에훗의 죽음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데 시간이 흐르자 저들이 다시 배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삿 6:1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삿 10:6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삿 13:1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정신 차리고 하나님 앞에 섰다가도 세상살이에 쫓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고 퇴색되어갑니다. 그래서 “또” 죄짓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호와를 등지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우리의 신앙을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신앙 리모델링을 할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신앙을 리모델링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도 이번에 부분적으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본당 1층 소예배실을 확충했고, 자모실과 화장실을 개수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며 머리로 구상했고 장로님들과 협의하면서 기대했던 모습보다 훨씬 멋진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전문가의 손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손길이 닿으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앙 리모델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가 따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3:5을 보면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신앙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존재 안에 임하시면 우리 존재 구석구석 손을 보십니다. 새롭게 하십니다. 리모델링하십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하십니다.

엡 4:23을 보면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령이란 ‘하나님 앞에 선 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이루는 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심령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심령을 리모델링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번 국제 선교학술대회에 강사로 오신 고봉 목사님은 이제 45세인데 중국 전국양회의 부주석 자리에 올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중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학술대회 도중 어떤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목사가 됐고, 어떻게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물었습니다.

이분은 4대째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 자기 증조부가 100여 년 전 의화단 사건 때 순교를 하신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할머니께서 태어날 때 자기를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바쳤답니다. 그래서 그 모진 박해 속에서도 자기는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개혁개방 후 신학교가 문을 열 초창기에 신학교에 입학을 해서 공부를 했고, 젊은 나이에 남달리 주목을 받게 되어 정부가 보내서 미국에 가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답니다. 돌아와서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나실인으로 바쳐졌다고 해서 할머니 말씀 따라 신학교에 왔는데 당시 자기 마음에는 소명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입학할 때 자발적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변화시키셔서 소명감을 갖게 되었고 주를 위해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신학생이 신학 공부할 때 억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시면 나 같은 것이 이 귀한 신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감격하며 공부할 수 있게 됩니다. 목사가 목회할 때 억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시면 마른 막대와 만도 못한 나를 주의 종으로 쓰신다고 감격하며 목회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주의 일을 감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시면 감히 내가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격하며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리모델링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세상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롬 12:2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리모델링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세상을 향해 선 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을 살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점점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 마음은 자기중심적인 마음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생각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살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작품 가운데 “칼레의 시민”이 있습니다. 칼레시가 1347년 영국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시민들을 위해 밧줄에 목을 매어 처형받기로 자원한 6명의 시민들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는 영국 왕에게 항복사절을 보내 자비를 구했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조건으로 그동안 반항한 책임을 지고 시민대표 6명을 골라 교수형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살려주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몰살은 면했지만 누군가 6명이 대표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자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라 시장이 나섰고 그의 아들을 포함해서 7명 자원자가 나섰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되는 상황입니다. 이 때 생 피에르가 내일 아침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습니다.

긴 밤이 지났습니다. 여섯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생 피에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은 왕비의 간청을 듣고 이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생 피에르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조각가 로댕에게 생 피에르의 조각상을 의뢰해서 기념상을 제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기중심적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너를 위한 마음, 우리를 위한 마음, 모두를 위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따르라 말씀하신 마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리모델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구교의 낡고 부패한 신앙을 다시 새롭게 하려고 분연히 일어나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교회는 개신교 특히 개혁교회의 전통 가운데 서 있습니다. 계속해서 개혁해 가겠다는 뜻을 세우고 있는 전통입니다. 늘 새로워지고자 힘쓰는 전통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손에 붙잡혀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뜨거운 마음으로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종교개혁의 의미는 오늘 여기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