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지키는 믿음

은혜로 지키는 믿음
히13:7-9





얼마 전에 동아일보 명예 회장의 부인이 13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사건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살을 하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이 세상에 더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는 그렇게 불행하게 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한동 국무총리와 사돈간이기고 했고, 현역 정치 경제 언론계에 깊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조금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이상 살아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느낌, 현실에 대한 절망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런 것들이 사람을 자살로 끌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 물론 생각에 따라서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고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대답을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다시 말씀드리면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그 사람의 마음의 두께, 생각의 넓이만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면서 삶과 죽음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행복은 절대로 세상적인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진정한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적인 지위나 명예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눅17:21-\"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행복의 극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찾기 어려운 하늘 나라에서나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현실의 삶을 승리롭게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장차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영원한 세계보다는 지금 여기, 우리 속에 이루어진 평화와 사랑과 행복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때는 이유 없이 마음에 불만이 생기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공연히 의심하는 마임이 생기기도 하고, 내일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 마음에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악한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둥지를 틀게 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기쁨이 달아나서 불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어지고, 마귀의 나라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마음에 성령이 오셔서 어두운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몰아 내시면, 다시 마음에 소망이 생기고, 감사가 생기고, 기쁨이 생깁니다. 다시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의 마음에 임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수 없고, 너의 마음에 임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된 사람이 행복을 소유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훗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지혜서인 <잠언>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4:23-\"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킬 때 그 속에 말씀이 자리를 잡게 되고, 그래서 믿음이 잉태되고, 구원이 있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서, 그런 사람의 삶에 행복이 가득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즉 어떻게 해야 마음에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그래서 의심도 생기지 않고, 불만도 생기지 않고, 불신이 없어서 마귀의 나라가 형성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슨 물건이 아닙니다. 몸에 붙어 있는 어떤 지체도 아닙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베드로에게 <네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신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펄쩍 뛰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느냐고 장담했습니다.

마26:35-\"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렇게 큰 소리 치며 장담하던 베드로였지만 막상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몰래 숨어서 모닥불을 쪼이고 있을 때, 작은 계집종 하나가 다가오더니 베드로를 빤히 처다 보면서 하는 말이 <여보시오. 당신도 예수의 제자지요?>라고 할 때 깜짝 놀란 베드로는 당황해 하면서 부인합니다.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죽을지언정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던 베드로의 마음이 한 순간에 두려움과 비굴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렇게 장담하던 마음이 한 순간에 불신하는 마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순간적으로 은혜가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렇게 많이 받았던 은혜가 그의 마음에 확실하게 자리 매김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주님의 은혜가 완전히 사로잡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읽은 말씀은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큰 말씀입니다.

9-\"마음은 은혜로써 굳게하라\"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만 가지고서는 절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기의 지식이나 지혜나 노력만으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지켜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깊은 신앙과 감사만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충만할 때 우리의 마음은 지켜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을 <은혜 신학>이라고 합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이라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얻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의 세계관을 <은혜 중심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은혜로 보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은혜로 해석하고, 은혜로 생각하고, 은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은혜 안에서 생각하고,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남에게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언제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주님의 선택을 받고, 용서의 은혜, 거듭나는 은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날벼락을 맞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핍박한 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기로 한다면 천벌을 받아도 싼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살아 남게 되었다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용서해 주시고, 은혜로 살려주시고, 은혜로 선택하셔서 복의 사도로, 전도자로 만드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15:10-\"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을 은혜로만 보고 해석하는 <은혜 중심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라고 하면 보통 좋은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즉 복되고 긍정적인 것만이 은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좋지 않은 것, 부정적이고, 저주스러운 것까지도 모두 은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옥에 갇히는 것도 은혜였고, 굶주리고, 매맞고, 욕먹는 것도 은혜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있는 질병도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간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쓸어 집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뒤틀면서 버둥거립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했습니다. 참으로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은혜로 마음을 굳게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쫓겨다니는 생활을 수 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은혜로 마음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그를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악랄한 방법을 써서 그를 위협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종교개혁을 포기하지 않고 성공한 것은 <오직 은혜>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 이것이 루터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이끌어 가는 힘이었습니다. 루터는 은혜로 마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살며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남에게 증거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알았으면 은혜 안에 살아야 하고, 은혜를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은혜가 더 많아지고, 은혜가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20대 후반에 모교의 신학부장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기대하는 유망주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너무 달콤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 행복감에 잠겨 있던 어느 날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침의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내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그러나 이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렇게 쓰고 그는 아프리카로 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눠 줄 것을 결심하고 받은 은혜를 더 값지게 하기 위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일평생 은혜 안에서 살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은혜로 마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은혜로 마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복이 무엇입니까?

<평안과 안식>의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서 마음이 확고히 선 사람은 항상 평안한 가운데 살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을 무엇에 의하여 끌려가고 있습니까? 은혜로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 안에 나의 마음을 단단히 묶어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서는 은혜만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말속에서도 은혜가 나오게 되고, 삶 속에서도 은혜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은혜로 굳게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